우리말 이야기

숲노래 우리말꽃 : ‘동반 상승’이든 ‘시너지’이든



[물어봅니다]

  샘님이 조금 앞서 이야기할 적에 ‘서로좋다’라 하셨는데, 그 말은 저희가 ‘시너지’라고 한 말을 순화한 말이 맞지요? 어떻게 그렇게 바로바로 순화하는 말을 쓸 수 있는지 궁금해요.


[얘기합니다]

  눈치가 빠르네요. 훌륭합니다. 그렇게 빠른 눈치라면 여러분도 얼마든지 ‘한국말 동시통역’을 할 수 있어요.


  네, 저는 ‘한국말 동시통역’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한국말 동시통역’이란 무엇인가 하면, ‘몇몇만 알아듣거나 나누는 말’을 ‘어린이나 시골 어르신도 쉽게 받아들이거나 알아듣거나 나눌 수 있는 말’로 그때그때 그자리에서 옮기는 일을 가리킵니다.


  잘 생각해 봐요. 오늘날 우리는 여러 가지 한국말을 써요. 큰 틀에서 보면 오래된 한국말이 하나 있어요. 이 오래된 한국말은 어린이하고 시골 어르신도 다 알아들을 만합니다. 둘째로, 조선이란 나라 오백 해에 걸쳐 임금과 벼슬아치하고 글쟁이가 섬기던 중국 한자말이 있어요. 셋째로, 일제강점기에 스민 일본 한자말이 있지요. 둘째하고 셋째에 걸치는 한자말은 모든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넷째로, 해방 뒤에 물결치는 영어가 있고, 번역 말씨가 있습니다. 넷째에 드는 말도 모든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지는 않습니다.


  자, 다시 생각하기로 해요. 첫째를 뺀 둘째·셋째·넷째는 ‘모든 한국사람이 아닌 몇몇 한국사람이 알아듣거나 나누는 말’이기 일쑤입니다. 푸름이 나이쯤 되면 ‘반성’이나 ‘반추’ 같은 한자말은 얼추 알아들을는지 모릅니다. ‘반성문’ 같은 글을 쓸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여덟 살 어린이한테 ‘반성’이나 ‘반추’가 쉬울까요?


  적어도 ‘뉘우치다·돌아보다’라 할 수 있고, ‘되새기다·곱씹다’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입으로 하는 말이나 손으로 쓰는 글은 언제나 이런 ‘한국말 동시통역’이에요. 몇몇 사람만 알아볼 만한 말은 쓰고 싶지 않아요. 이러다 보니 여느 한국말사전에 아직 없는 말을 늘 새로 지어서 쓰곤 해요.


 서로좋다 ← 동반 상승, 시너지, 윈윈, 일석이조, 일석다조


  제가 문득 쓴 ‘서로좋다’란 낱말은 ‘서로 좋다’처럼 띄어서 써야 맞습니다만, 입으로 말할 적에는 굳이 ‘서로 좋다’처럼 사이를 띄지 않아요. 그냥 붙여서 말하지요. ‘다좋다’나 ‘모두좋다’라 할 적에도, 글하고 말이 달라서, 말에서는 그냥 붙여서 주루룩 읊지요. 어떤가요? 푸름이 여러분 스스로 혀에 얹어서 말해 보셔요. 이 얼거리로 ‘고루좋다’나 ‘두루좋다’를 말하기도 해요. 그리고 이처럼 혀로 주루룩 붙여서 말하듯 글에서도 다다닥 붙여서 쓰곤 합니다.


  아직 이런 말을 쓰는 이웃님이 드뭅니다만, 저부터 쓰는 셈이에요. 즐겁게 쓰자는 뜻으로 입말하고 글말을 하나로 엮는 일이기도 합니다.


시너지(synergy) : 1. 분산 상태에 있는 집단이나 개인이 서로 적응하여 통합되어 가는 과정 2. 한 집단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소모하는 에너지의 총체

synergy : 시너지 효과, 동반 상승효과. 협력 작용, 협동. 공력(共力) 작용. 공동[상승] 작용. 공동 작업

シナジ-(synergy) : 1. 시너지. 공동. 공력(共力) 작용 2. (개개의 일의 합계보다 큰 효과를 노리어 행하는) 협동 활동


  사전에 ‘시너지’란 영어가 올림말로 나옵니다. 예전에는 이 영어를 ‘동반 상승’으로 고쳐쓰라고 풀이했더군요. 요새는 풀이가 좀 바뀌어서 한자말로 고쳐쓰라는 붙임말이 사라졌어요. 그런데 있지요, 한자말 ‘동반 상승’이든 영어 ‘시너지’이든 여덟 살 어린이한테는 어렵기 마찬가지요, 시골 어르신한테도 낯설 만합니다. 그래서 저는 둘 다 안 쓰기로 하면서 ‘서로좋다·다좋다·모두좋다·고루좋다·두루좋다’ 같은 말을 쓰려고 합니다.


곡물의 향기가 매치되니 시너지 효과를 내서 맛깔스런 향으로 바뀌는 거죠

→ 곡물 내음이 어우러지니 더 좋아서 맛깔스럽게 바뀌지요

→ 곡물 냄새가 만나 서로좋아서 맛깔스럽게 바뀌지요


  어느 책을 읽으니 이런 글월이 나와서 슬쩍 손질해 보았습니다. 가만히 보면 “더 좋다”도 붙여서 새말로 삼아도 되겠지요. 다만 “더욱 좋다”나 “더더욱 좋다” 꼴로도 쓸 수 있어서 이때에는 굳이 안 붙였어요. “한결 좋다”나 “새롭게 좋다”처럼 말맛을 살릴 수 있으니 “더 좋다”는 띄어서 쓰는 길이 낫지 싶어요. 비슷하면서 다른 갈래에 있는 낱말을 헤아리면서 이렇게 쓰지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할 수 있는 바탕이라면 하나를 꼽을 만합니다. 저는 말더듬이에 혀짤배기란 몸으로 태어났어요. 어릴 적에 이 두 가지로 몹시 벅찼어요. 국민학교를 다니던 여덟 살∼열세 살 사이에 괴롭힘이나 놀림을 숱하게 받았거든요. 이러다 열 살 적에 천자문을 마을 어르신한테서 배웠고, 천자문을 떼고 교과서를 다시 보니 말더듬이에 혀짤배기가 소리내기 어려운 낱말은 모조리 한자말인 줄 깨달았어요. 이렇게 깨닫고서 스스로 익히고 살핀 끝에 이제 ‘한국말 동시통역’을 스스럼없이 합니다.


  저랑 비슷한 몸으로 태어난 푸름이가 있다면 어깨를 활짝 펴면 좋겠어요. 우리가 더듬는 말은 한국말 아닌 한자말이나 영어일 수 있습니다. 한자말이나 영어가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 생각을 수수하면서 스스럼없이 나눌 적에는 말하기 쉽고 어린이하고 시골 어르신도 함께 알아들을 만한 낱말을 골라서 쓰면 좋아요. 영어를 익힐 적에는 영어를 잘 소리내도록 더 힘을 내면 되겠지요. 영국이나 미국에도 틀림없이 혀짤배기에 말더듬이가 있을 테니, 그 나라 그 사람은 어떻게 어떤 낱말을 골라서 소리를 내려나 하고 헤아려 보면서 기운을 내고 애쓰면 다 된다고 느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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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꽃

숲노래 우리말꽃 : 에스엔에스(SNS)는 언어파괴를 할까?



[물어봅니다]

  요즘 에스엔에스상에서 언어파괴가 심각하다고 해요. 짧게 줄여서 쓰느라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무시하기도 하고 급식체 같은 말을 쓰기도 하잖아요. 이런 언어파괴는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요?


[이야기합니다]

  저는 1993년까지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 제 또래 가운데 피시통신을 거의 아무도 안 했지 싶습니다. 새로 바뀐 대학입시를 쳐다보느라 바쁘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형은 저보다 세 살 위였고, 저보다 일찍 고등학교를 마치고서 ‘천리안·하이텔’ 같은 이름이 있던 ‘PC통신’이 처음 생길 때부터 알았어요. 저는 모든 대학입시가 끝난 1993년 12월부터 피시통신이 뭔가 하고 들여다보았고, 이듬해에 갓 태어난 ‘나우누리’를 만났어요. 이무렵 인천에서는 ‘인디텔’이란 이름으로 인천이란 고장 이야기를 스스로 새로 지어서 펴는 누리판이 처음 열리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피시통신이 한창 뜰 무렵, ‘어른’이란 이름인 분들은 “피시통신이 언어파괴의 주범이다!” 하고 윽박질렀습니다. 아마 1993년에도 이런 말이 나돌았지 싶었으나 이해에는 대학입시로 바빠서 시큰둥했고, 1994년부터 이런 말을 신물나게 들었어요.


  피시통신보다 조금 이르게 ‘삐삐’가 퍼졌어요. 삐삐도 피시통신 못지않게 “한글파괴의 주범이다!” 같은 윽박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을 넘어서며 인터넷이 생기고 피시통신이 저물어 가니 바야흐로 “인터넷이 언어파괴의 주범이다!”로 말이 바뀌더군요. 어느덧 2010년을 넘어 2020년으로 나아가니 “에스엔에스가 언어파괴의 주범이다!”로 말이 바뀝니다.


  몇 줄로 지난 1990∼2020년 사이 서른 해 사이를 이야기했습니다만, 2030년이나 2040년이 되면 또 이때에 나올 새로운 누리판을 놓고서 ‘어른’들은 “언어파괴의 주범”을 찾아나서리라 싶어요. 그런데, ‘언어파괴’란 무엇일까요? 어떤 말을 누가 어떻게 왜 부수거나 허문다는 뜻일까요?


  우리 삶터에서 어른들이 걱정하거나 나무라는 ‘언어파괴’를 돌아보면, 바로 ‘갑갑하거나 딱딱하거나 차갑게 세운 울타리에서 쓰는 말을 거스르거나 손사래치는 몸짓’은 아닐까 싶습니다. 갑갑한 말이 아닌 트인 말로 가려는 생각으로, 딱딱한 말이 아닌 싱그러운 말로 가고픈 마음으로, 차가운 말이 아닌 포근한 말을 쓰려는 몸짓이라고도 여길 수 있어요. 낡은 말이 아닌 새로운 말에 새로운 생각과 살림과 삶과 사랑을 담고 싶은 몸부림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테고요.


[시내버스 알림글] 승객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손잡이를 꽉 잡아 주세요

[공사장 알림글] 안전모 미착용자는 현장내 출입을 금합니다


  어른들은 시내버스나 공사장에서 이 같은 알림글을 내겁니다. 이런 말은 얼마나 한국말스러울까요?


[숲노래 글손질 ㄱ] → 손님 여러분이 안 다치도록 손잡이를 꽉 잡아 주세요

[숲노래 글손질 ㄴ] → 안전모자를 안 쓰면 이곳에 못 들어옵니다


  요즈음 공사장 일꾼이 거의 이주노동자입니다. 이주노동자 가운데 한글을 읽는 이는 적습니다. 겨우 한글을 읽는다 하더라도 “안전모 미착용자”나 “현장내 출입을 금합니다”를 얼마나 알아차릴까 모르겠습니다. 한글을 읽고도 못 알아볼 글을 적는 어른들 말씨는 아닐까요? 오늘날 ‘언어파괴’란 바로 이처럼 딱딱하고 낡은 말씨를 걷어치우고 싶은 젊은 바람은 아닐까요?


  요 몇 해 사이에 ‘최애’나 ‘애정하는’ 같은 말씨가 쫙 퍼집니다. 이 말씨는 아무래도 누리길(에스엔에스·SNS)을 발판으로 퍼졌을 텐데요, 일본 한자말을 함부로 끌어들인 ‘어른’들이 쓰는 말씨입니다. 어린이나 푸름이는 이런 일본 한자말을 알기도 어렵고 알 수도 없겠지요. 어린이나 푸름이는 바로 ‘어른들이 퍼뜨린 말씨를 어깨너머에서 지켜보다가 따라서 쓸’ 뿐입니다.


 최애 아이템 → 즐기는 것 / 가장 좋은 것 / 으뜸으로 좋은 것 / 으뜸것 / 사랑것

 애정하는 말 → 사랑하는 말 / 좋아하는 말 / 즐기는 말


  한국말은 “가장 좋은”이나 “가장 아끼는”이나 “가장 사랑하는”입니다. 때로는 “가장 즐기는”이나 “가장 신나는”이라 해도 될 테지요. ‘가장’은 ‘으뜸’하고 맞물리기에 “최애 아이템”이라면 ‘으뜸것’으로 담아내어도 되어요. ‘사랑것’이라 해도 될 테고요.


  곰곰이 생각해 봐요. ‘언어파괴’를 일삼는 쪽이라면 어린이나 푸름이도 아니요, 예전 피시통신도 아니며, 요즈음 인터넷이나 에스엔에스도 아니지 싶습니다. 우리가 알뜰히 아름다이 즐거이 사랑스레 참하게 멋스러이 재미나게 신바람을 내면서 쓸 한국말을 알맞게 가다듬거나 갈고닦거나 세우지 못한 ‘어른’이야말로 한국말을 무너뜨리거나 흔들거나 허문다고 해야 올바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지난날 삐삐나 피시통신이나 오늘날 인터넷이나 에스엔에스는 이음길이에요. 사람하고 사람을 잇는 길인 이 자리를 바탕으로 온나라 사람이 한꺼번에 쉽게 만날 수 있으니 새로운 말을 아주 빠르게 나누거나 퍼뜨릴 수 있어요. 새말도 쉽게 나누거나 퍼뜨릴 수 있고, 얄궂게 퍼진 말씨도 다시금 돌아보도록 서로 바로바로 알려주면서 가다듬을 수 있습니다. ‘어른’들 생각처럼 걱정거리만 있지 않아요.


 인터넷 홈페이지 → 누리집

 인터넷 블로그 → 누리글집

 에스엔에스(SNS) → 누리길, 누리마당, 누리판


  사전에 ‘에스엔에스’는 안 나옵니다. 영어사전은 ‘SNS’를 “Social Network Service”로 풀이합니다. 한국은 이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나 ‘사회적 관계망’으로 풀이하기도 하지만, 그리 어울려 보이지 않아요.


  ‘인터넷 홈페이지’를 ‘누리집’으로 풀어내면 좋다고 합니다. ‘네티즌’은 ‘누리꾼’으로 풀어내어 쓰기도 하는데, 저는 ‘누리님’으로 손질해서 쓰곤 해요. ‘누리’라는 낱말을 헤아리면 ‘에스엔에스’를 ‘누리길’이나 ‘누리판’으로 담아낼 수 있어요. 말 그대로 사람들 사이에 쫙쫙 퍼지는 길이나 마당이나 판이거든요.


  한국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는 아직 제대로 서지 않았습니다. 남·북녘이 엇갈리기도 해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면 좋겠어요. 우리는 입으로 말할 적에 띄어쓰기를 안 따지면서 잘 말해요. 입으로 잘 말하듯 글로 옮길 줄 안다면 어떤 누리길이나 누리집에서도 걱정할 일은 없으리라 여겨요. 맞춤법을 틀리는 사람은 흔해요. 누리길이나 누리집에서만 틀리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그리고 맞춤법을 틀리는 사람이 많다면, 맞춤법도 곰곰이 따져서 쉽고 즐겁게 쓰는 새길을 살피면 한결 나으리라 생각해요.


  무엇보다도 ‘언어파괴를 고치거나 없애’려는 생각을 접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한결 즐거우면서 아름답게 쓸 말을 ‘새롭게 짓고 생각하며 가꾸’려는 생각을 하면 좋겠어요. ‘이 말씨는 틀렸으니 쓰지 말자는 가르침’보다는, ‘이 말씨보다는 저렇게 새로 쓰는 말씨가 뜻이며 느낌이 한결 살아날 만하지 않을까 하고 이야기하는 길’로 간다면 좋겠지요. 이제는 가르침 아닌 이야기로 가면 되리라 생각해요.


  누리길이 온누리를 잇는 길이 되도록, 나라 곳곳을 잇는 너른 판이 되도록, 새롭게 말을 살찌우고 생각을 북돋우는 한마당이 되도록, 즐겁게 마음을 쓰면 되리라 봅니다. ‘언어파괴 현상을 어떻게 고쳐야 할까?’ 같은 생각이 아닌, ‘즐겁게 어깨동무하는 사랑스러운 말을 우리 스스로 어떻게 찾아서 쓰면 아름다울까?’ 같은 생각으로 마음을 써 봐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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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

숲노래 우리말꽃 : ‘평화의 언어’인가 ‘분노의 언어’인가



[물어봅니다]

  오늘날에는 다들 ‘분노의 언어’로 표현하는 듯해요. 무슨 일만 있으면 무섭게 달라붙어서 악플을 달고, 이 악플도 엄청 화난 말씨에다가 공격적인 말씨예요. 그런데 샘님이 들려주는 말씨는 되게 낯설어요. 어쩐지 ‘평화의 언어’ 같아요. 들려주는 말에 한자말이나 영어가 안 섞였다는 생각은 했는데, 그 때문은 아니지 싶어요. 샘님이 낱말에 붙인 뜻풀이 같은 ‘평화의 언어’는 어떤 단어로 표현을 하더라도 누구나 따뜻하게 사랑으로 껴안으려는 언어 같아요. 우리도 앞으로는 이런 ‘평화의 언어’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야기합니다]

  요즈음에는 ‘정확한 의사표현·의사소통’을 밝히는 곳을 자주 봅니다. 이런 말씨도 나쁘지는 않다고 여기지만, 썩 아름답기는 어렵다고 여겨요. ‘정확한 의사표현·의사소통’이란 으레 ‘올바른 맞춤법·띄어쓰기·문장표현’에 기울기 일쑤예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시골 할머니가 쓴 글이 무척 사랑을 받아요. 경상도 칠곡 할매가 쓴 글을 모은 《시고 뭐고?》(삶창, 2015)란 시집이 있고, 전남 순천 할매가 쓴 글을 갈무리한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남해의봄날, 2019)가 있어요. 할매들은 할매 삶을 할매 말씨로 담아냅니다. 올바른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아니라, 살아서 숨쉬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할매가 쓴 글이 아닌 어린이가 쓴 글도 그렇지요. 이오덕 어른이 그러모은 어린이 글을 엮은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양철북, 2018)를 읽으면,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자주 틀리는 멧골 아이들이 멧골말로 저희 이야기를 고스란히 밝히는데, 눈시울을 적시는 슬픈 대목이나 이뻐서 함박웃음이 터지는 대목이 쏟아지는구나 싶습니다.


  올바른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로 ‘정확한 의사표현·의사소통’을 해도 나쁘지 않겠지요. 그러나 우리 삶이, 우리 만남이, 우리 하루가, 우리 어울림이, 우리 오늘이, 빈틈없이 짜맞춘 틀에만 머문다면 어떤 빛이 될까요?


  겉으로는 번듯해 보이지만 겉치레로 끝나는 말이 많아요. 언제부터인가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굴레가 된 터전인데요, ‘감정노동’ 이른바 ‘억지웃음’을 지으면서 일해야 하는 자리에서는 속으로 곪습니다. ‘억지일’을 하면서 돈을 벌기만 해야 하는 얼개라면 마음이 타들어 갈밖에 없어요. 이때에 우리 입에서 어떤 말이 터져나올까요? 억지웃음을 더 짓지 않아도 되는, 억지일을 끝마친 하루라면, 이때부터 어떤 말을 마구 터뜨릴까요? 아무래도 ‘따스한 말(평화의 언어)’이 아닌 ‘매몰찬 말(분노의 언어)’가 되기 쉽지 않을까요? ‘포근한 말’하고 동떨어진 ‘사나운 말’이 되지 않을까요?


악플 → 막글

선플 → 꽃글


  누리그물에서 덧글을 쓰는 분들이 으레 두 갈래로 간다고 합니다. 하나는 ‘악플’이요, 다른 하나는 ‘선플’이라 하더군요. 곰곰이 보면 예전에는 ‘덧글’이란 수수한 말 아닌 ‘리플’ 같은 영어를 썼는데, ‘악플·선플’은 그냥 이대로 쓰곤 하더군요.


  이 말씨도 생각해 봐요. ‘갑질’을 닮은 ‘악플’이에요. 갑질이란 서로 아끼거나 어깨동무하려는 몸짓이나 일이 아닌, 위아래를 가른 윽박질이에요. 말 그대로 ‘윽박질’이요 ‘막질·막짓’이랍니다. 곧 ‘악플’은 ‘막글(막말)’이에요. 이와 맞서는 ‘선플’은 무엇일까요? 서로 아끼자는 마음이요, 함께 어깨동무하자는 뜻이며, 같이 아름답게 보듬는 숨결이 되자는 생각으로 쓰는 글일 테지요. 이 결을 찬찬히 살린다면 ‘고운글’이자 ‘아름글’이자 ‘사랑글’이자 ‘꽃글’이라 할 만합니다.


[숲노래 사전]

막글 : 다른 사람한테 함부로 굴거나 제멋대로 하는 마음을 담아서 쓴 글. 다른 사람을 괴롭히거나 따돌리거나 놀리거나 비웃는 마음을 담아서 쓴 글이기도 할 텐데, 다른 사람에 앞서 이러한 글을 쓴 사람부터 스스로 다칠 수 있는 글. ‘악플·비방·폭언’을 가리킨다.

꽃글 : 늘 아름답고 빛나면서 즐거운 글. 꽃처럼 곱고 사랑을 담아서 쓴 글. 다른 사람을 돌보거나 감싸거나 아끼거나 달래거나 다독이려는 마음을 담아서 쓴 글이기도 할 텐데, 다른 사람에 앞서 이러한 글을 쓰는 사람부터 스스로 기쁘게 사랑이 샘솟을 수 있는 글. ‘선플’을 가리킨다.


  오늘날 우리 사전은 ‘정확한 의사표현·의사소통’에 지나치게 갇혔구나 싶어요. 사전 뜻풀이인 만큼 어디에 치우치지 않아야 합니다만, 사전 말풀이인 터라 한켠으로 기울거나 휘둘려서는 안 되어야겠습니다만, 딱딱하거나 차가운 풀이는 이제 그만해도 되리라 여겨요. 차곡차곡 풀이를 하면서, 어느 낱말을 혀에 얹거나 손에 실어서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들 마음에 새로운 기운과 생각을 심을 수 있는 ‘보탬말’을 들려주기도 하는 사전으로 거듭나야지 싶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제가 새로 쓰는 사전에 ‘막글·꽃글’이란 낱말을 새롭게 풀이해서 실으려 합니다. 이 말이 나쁘니 저 말로 좋게 고쳐쓰자는 얼개가 아닌, 이 말에 얽힌 마음이며 삶을 읽어서, 새롭게 사랑으로 보듬어 아름답게 삶을 가꾸는 길에 실마리가 될 만한 말을 마음에 씨앗으로 심도록 이끌어 보자는 사전으로 나아가기를 바라요.


  제가 쓰는 사전을 따로 ‘아름말·사랑말·꽃말(평화의 언어)’로 엮으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말은 우리 삶을 이루는 씨앗이 되기에, 어느 삶이나 몸짓이나 느낌을 나타내는 낱말을 풀이하거나 다루더라도 ‘함부로·가볍게·허술히·그냥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사전 올림말로 ‘전쟁·싸움’을 풀이하는 자리에서도, 이러한 일이 무엇인가를 속속들이 살피고 밝혀서, 앞으로 우리가 말을 바라보는 눈빛을 스스로 새로 가다듬는 징검다리가 되기를 바라요.


  이런 마음이기에 요새는 노래꽃(동시)을 자주 씁니다. 낱말풀이하고 보기글을 열여섯 줄 노래꽃으로 뭉뚱그리는 셈입니다. 사전에 싣는 낱말풀이나 보기글은 언제나 노래꽃(동시·시)다울 때에 사전다운 얼거리이겠다고도 생각해요. 노래가 되는 말이 되도록, 노래로 피어나는 글이 되게끔, 우리가 쓰고 읽고 나누는 사전이 새길을 걸을 수 있으면 참말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나누는 말글은 꽃글도 될 수 있고 밉글(미운 글)도 될 수 있어요. 어느 말글이 될 적에 즐겁거나 아름다울는지, 처음부터 하나하나 새로 헤아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노래꽃 한 자락을 붙입니다.


꽃글


놀리는 마음이니 놀림말

미워하는 마음이라 밉말

투정이 가득하여 투정글

시샘을 부려서 시샘글


아끼려는 뜻으로 아낌말

돌보려는 뜻이어서 돌봄말

사랑 듬뿍 실어 사랑글

웃음 잔뜩 심어 웃음글


너무 거칠구나 거친말

마구 퍼붓네 막말

싸울 듯 달려드는 싸움글

어거지 넘실넘실 억지글


아름다고 싶어 아름말

포근하게 함께 포근말

숲이 되려는 숲글

꽃다이 노래하는 꽃글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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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이야기

숲노래 우리말꽃 : ‘페미니즘’하고 ‘어깨동무’



[물어봅니다]

  저는 페미니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페미니즘 책을 많이 읽어요. 그런데 샘님이 쓰신 책이나 오늘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 보니, 샘님은 ‘페미니즘’이란 낱말을 한 번도 안 쓰시는데, 무척 페미니즘에 가깝거나 지지하는 느낌이 들어요. ‘페미니즘’이란 낱말을 대신할 한국말이 있을까요?


[이야기합니다]

  물어보신 말씀처럼 저는 ‘페미니즘’이란 낱말을 안 씁니다. 예전에는 ‘성평등·여남평등·남녀평등’ 같은 한자말을 곧잘 썼으나, 이제는 이 말조차 안 씁니다. 제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조금 더 귀여겨들어 보시면, 또 제가 쓴 책을 더 눈여겨보시면, 제 나름대로 어떤 낱말로 그때그때 달리 풀어내어 쓰는가를 알아챌 수 있어요.


  ‘페미니즘’이란 영어는 나쁜 말이 아니고, 안 써야 할 말도 아닙니다. 그저 열 살 어린이나 여덟 살 어린이나 다섯 살 어린이한테는 어렵거나 너무 낯선 말일 뿐이에요. 열대여섯 살 푸름이쯤 된다면 영어 ‘페미니즘’이 그럭저럭 익숙할 만하고, 한자말 ‘성평등’도 썩 어렵지 않게 와닿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더 눈높이를 낮추어서 헤아리고 싶어요. 푸름이 여러분한테 대여섯 살 동생이 있다면 페미니즘이 무엇이라고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어요? 이 대목하고 이 눈높이를 먼저 차분히 살펴보아 주셔요.


 함께 일하기·함께 애쓰기·같이 놀기·같이 힘내기

 서로 손잡기·곱게 하나되기·즐겁게 하나되기

 어깨동무·마음동무·사랑동무

 살림·참살림·꽃살림

 같이 짓는 살림·같이 짓는 삶

 다같이 가꾸는 삶·다함께 가꾸는 살림

 서로 아끼는 하루·서로서로 돌보는 길

 서로사랑·참사랑·참다운 사랑·사랑·꽃사랑


  굳이 한 가지 낱말을 써야 할 까닭이 없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즘·성평등’을 놓고서 이런 온갖 말씨로 나타내곤 합니다. 이밖에도 그때그때 또 다른 말씨로 엮어서 이야기하곤 합니다. 이를테면 “슬기로운 살림”이나 “상냥한 손길”이나 “따사로운 마음” 같은 말씨로도 ‘페미니즘·성평등’을 담아낼 수 있어요.


  다만 어느 때나 자리에서는 꼭 한 낱말로 갈무리해서 이야기해야겠지요. 이때에는 ‘어깨동무·어깨살림’이나 ‘참살림·참사랑’ 같은 낱말을 쓰곤 합니다.


[숲노래 사전]

어깨동무 : 1. 서로 어깨에 팔을 올리거나 끼면서 나란히 있거나 서거나 걷거나 노는 일·몸짓 (때로는 ‘이인삼각’을 나타낸다) 2. 서로 어깨에 팔을 올리면서 끼고 나란히 서거나 걷듯이, 늘·자주 가까이 있거나 붙어서 지내거나 어울리는 사이. 나이·키·마음·뜻이 비슷하거나 같아서 즐겁거나 부드럽게 어울리는 사이 3. 서로 어깨에 팔을 올리면서 끼고 나란히 서거나 걷듯이, 마음으로 아끼고 살피면서 어떤 일을 함께 하거나 돕는 사이. 마음·뜻·일·길이 비슷하거나 같다고 여겨서 돕거나 돌보거나 아끼거나 어울리는 사이. (평화·평등·연대·공조·협력·협동 들을 나타낸다)

살림 : 1. 어느 한 곳(집·마을·고을·나라·누리)에 모여서 살아가는 일 2. 살아가도록 갖추거나 두거나 모은 것(흔히 돈·먹을거리·옷 들을 가리킨다) 3. 어느 한 곳에서 살면서 다루거나 부리거나 쓰는 여러 가지 (세간) 4. 어느 한 곳(집·마을·고을·나라·누리)을 알맞게 이루거나 꾸리거나 가꾸거나 다스리려고 돈·연장·물건을 돌보거나 살피는 일

사랑하다(사랑) : 1. 어떤 사람·넋·숨결·마음을 무척 곱고 크며 깊고 넓고 따스하게 여기다 2. 어떤 것을 무척 곱고 크며 깊고 넓고 따스하게 여기거나 다루면서 즐기다 3. 서로 무척 곱고 크며 깊고 넓고 따스하게 마음을 쓰면서 지내다 4. 다른 사람을 돕거나 따뜻하게 마주하다 5. 고우면서 마음에 드는 사람·아기·짐승·숨결을 일컫는 말


  따로 영어나 한자말로 어떤 이름을 따서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가리키는 영어나 한자말을 가만히 보면 매우 수수한 영어나 한자예요. 대단하거나 놀라운 영어나 한자를 안 씁니다.


  어떤 이름을 한국말로 새롭게 나타내려 할 적에도 이와 같아요. 우리가 여느 자리에서 자주 쓰는 가장 수수하고 쉬운 말을 엮어서 나타내면 됩니다. 그래서 ‘평등, 성평등, 페미니즘, 남녀평등, 평화’를 모두 ‘사랑’ 한 마디나 ‘살림’ 한 마디로도 나타낼 수 있어요. 다만 이 수수하고 쉬운 말로 살짝 아쉽구나 싶으면 앞뒤로 이모저모 붙이면서 새삼스레 엮을 만해요.


[숲노래 사전]

어깨살림 : 어깨를 겯는·어깨동무를 하는 살림. 서로 어깨에 팔을 올리면서 끼고 나란히 서거나 걷듯이, 마음으로 아끼고 살피면서 함께 하거나 돕는 살림. 마음·뜻·일·길이 비슷하거나 같다고 여겨서 돕거나 돌보거나 아끼거나 어울리는 살림.

어깨사랑 : 어깨를 겯는·어깨동무를 하는 사랑. 서로 어깨에 팔을 올리면서 끼고 나란히 서거나 걷듯이, 마음으로 아끼고 살피면서 함께 하거나 돕는 사랑. 마음·뜻·일·길이 비슷하거나 같다고 여겨서 돕거나 돌보거나 아끼거나 어울리는 사랑.

참살림 : 참다운 살림. 참된 살림. 참답게 가꾸거나 짓거나 꾸리는 살림

참사랑 : 참다운 사랑. 참된 사랑. 삶과 살림을 참답게 가꾸거나 짓거나 꾸리는 사랑

꽃살림 : 꽃 같은 살림. 꽃다운 살림. 꽃처럼 곱거나 눈부시게 가꾸거나 나누는 살림. 늘 아름답고 빛나면서 즐겁게 누리거나 가꾸는 살림.

꽃사랑 : 꽃 같은 사랑. 꽃다운 사랑. 꽃처럼 곱거나 눈부시게 가꾸거나 나누는 살림. 늘 아름답고 빛나면서 즐겁게 누리거나 가꾸는 사랑.


  어깨동무를 하는 살림이라는 뜻을 ‘어깨살림’으로 그립니다. 어깨동무를 하는 사랑이라는 뜻을 ‘어깨사랑’으로 그립니다. 페미니즘이나 성평등이란 어느 한쪽을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는 마음이자 몸짓이에요. 이는 바로 어깨를 겯는 모습, ‘어깨동무’랍니다. 어깨동무를 하는 살림이나 사랑이라고 하면 한결 또렷하겠지요.


  서로 어깨를 겯으면서 살림을 하거나 사랑을 한다면, 그야말로 더없이 고운 모습이나 몸짓일 테고, 이런 모습은 저절로 페미니즘이나 성평등이 나아가려는 길하고 맞물립니다. 그래서 ‘살림·사랑’이란 수수한 말씨로도 얼마든지 담아낼 만하고, 꾸밈말을 붙여 ‘참살림·참사랑’ 같은 말로도 이야기할 수 있어요.


  제가 어떻게 이런 쉽고 수수한 말씨로 페미니즘이나 성평등을 담아내려 했을까 하고 푸름이 여러분이 스스로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저는 바로 두어 살, 서너 살, 너덧 살, 대여섯 살, 이런 어린 아이들하고 마음을 나누고 생각을 북돋우고 싶어서 이야기를 들려주다 보니 어느새 이런 쉽고 수수한 말씨에 모든 깊고 너른 넋이나 숨결을 그려 넣을 수 있더군요. 2017년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이란 책을 쓴 적 있어요. 이 책에 붙인 이름 “살림 짓는 즐거움”이 무엇인가 하면 “성평등으로 가는 즐거움”이요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즐거움”이란 뜻입니다. 굳이 딱딱한 한자말이나 영어를 쓰고 싶지는 않아요.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는 말씨로 생각꽃을 펴고 싶어요. 앞으로 나아갈 아름다운 살림이나 사랑이라면 ‘꽃살림·꽃사랑’이리라 여겨요. 페미니즘도 성평등도 바로 꽃살림이나 꽃사랑을 바라보고 바랄 테지요? 그래서 저는 ‘꽃살림·꽃사랑 = 페미니즘·성평등’이라 여기고 ‘꽃살림·꽃사랑 = 평화·평등’이라고도 여깁니다. 다같이 꽃이 되면 좋겠습니다. 다함께 꽃이 되기에 아름답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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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 ‘샘님’하고 ‘선생님’ 사이



[물어봅니다]

  저기, 이런 걸 물어봐도 될는지 모르겠는데요, 저희는 ‘선생님’들을 ‘샘님’이라고 부르거든요. 어떻게 보면 학교에서 쓰는 은어 같다고 할 수 있는데, 저희가 선생님들을 ‘샘’이나 ‘쌤’이나 ‘샘님’이나 ‘쌤님’이라 부르는 말씨는 나쁜 말이 아닌가요? 이런 말은 안 써야겠지요? 그렇지만 또 묻고 싶은데요, 이런 말은 나쁜 은어이니 안 쓰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이 말이 저희 입에서는 떨어지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해결책 좀 알려주셔요.


[이야기합니다]

  음, 무슨 말부터 하면 좋을까 생각해 봐야겠네요. 제가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던 1982∼1993년 사이를 떠올리면, 그때에는 ‘샘·샘님·쌤·쌤님’이란 말을 못 들었어요. 다만 저는 인천이란 고장에서 나고 자랐기에 못 들었을 수 있어요.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도 살아 보고, 또 여러 고장을 두루 다니다가 경상도 쪽에서 “샘이요”나 “샘님이요” 하는 말씨를 처음 들었어요. 전라도 쪽에서는 “슨상님”이라 하는 말씨를 들었지요.


  제가 나고 자라던 고장에서 듣거나 쓰는 말을 넘어, 여러 고장에서 저마다 다르게 쓰는 말씨를 들으며 무척 재미나고 새로웠어요. 인천이든 서울이든, 어느 고장 어느 학교에서든 고장말(사투리)도 같이 가르치면 참으로 재미날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왜 그렇잖아요, 우리는 영어라는 외국말을 학교에서 배우고, 일본말이나 독일말이나 중국말이나 프랑스말이나 러시아말 같은 다른 외국말을 ‘제2외국어’란 이름으로 학교에서 배우기도 해요. 이렇게 배우는 여러 말 가운데 ‘서울 말씨가 아닌 전국 여러 말씨’도 ‘한국말 수업(국어 수업)’으로 배우면서, 여러 고장 다 다른 살림결을 헤아리는 길을 열면 좋겠구나 싶어요.


  자, 이 고장 저 고장 다 다르네 싶은 말씨 이야기를 들어 보았어요. 제가 왜 고장말 이야기를 들었느냐 하면, 경상도 이웃님이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상냥상냥한 숨결을 담아서 “샘이요, 내 말 좀 들어 보이소” 하고 묻는 말씨가 대단히 보드라우면서 참하네 싶더군요. 이 말씨를 듣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해보았는데요, ‘샘’이든 ‘쌤’이든, ‘선생·선생님’을 줄여서 부르는 말씨로 볼 수도 있지만, ‘골짜기에서 비롯하는 맑은 샘물’을 가리키는 ‘샘’으로 생각해 보아도 즐겁고 재미나며 아름다운 우리말이 될 만하다고 볼 수도 있어요.


[숲노래 사전]

샘·샘님 : 숲이나 멧골에서 비롯하여 온누리를 시원하고 포근하게 적시는 물줄기처럼, 사람들을 슬기롭고 상냥하게 가르치면서 스스로 새롭게 배울 줄 아는 몸짓으로, 언제나 부드럽고 너그러운 품이 되어 즐거이 앞장서고 먼저 살림을 지어서 익힌 하루를, 차근차근 이야기로 들려주면서 어깨동무를 하는 사람.


  한 해 내내 맑고 시원하면서 포근하게 솟아나는 물이 샘물입니다. 바다에서 아지랑이가 되어 하늘로 오르고는 구름으로 바뀐 뒤 비로 거듭나서 온누리를 촉촉히 적셔 푸나무에 스며들었다가 새롭게 흙 품에 안겨 고이 잠든 뒤에 서로 모여 땅밑을 흐르는 길을 거치고 나면, 비로소 샘을 이루어 퐁퐁 솟아나요. 이러한 흐름으로 우리 터전을 감싸는 샘물이요, 냇물이며, 바닷물입니다. 모든 물줄기에서 첫자리가 되는 곳인 샘물이요, 모든 숨결이 자라나고 싹트고 퍼지는 첫길이 되는, 다시 말해서 우리가 우리답게 비롯하는 빛이 ‘샘(샘물)’인 만큼, ‘샘’이라는 낱말 하나를 혀에 얹으면. ‘샘 + 님’ 곧 ‘샘님’이라 부르면, 서로 아낄 줄 알고, 서로 배울 줄 알며, 서로 앞장서서 새로운 기쁨을 나누는 자리에서 이슬떨이가 된다는 뜻이니, 더없이 아름답고 빛나는 이름이로구나 싶습니다.


  ‘교사’나 ‘선생님’을 가리킬 새로운 이름으로 ‘샘님’을 쓸 만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새말을 지어도 새삼스러우면서 멋지지 않을까요? 우리가 어떤 나쁜 변말(은어)을 쓴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우리가 어느 결에 새로우면서 고운 말씨를 문득 하나 지어서 쓴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어요.


  단출히 ‘샘’이라 해도 좋아요. “박 샘”이나 “김 샘”이라 해도, “아름 샘님”이나 “보람 샘님”이라 해도 좋지요. 어린이나 푸름이인 학생이 어른인 선생님(교사)한테 수수하게 ‘샘’이라고만 불러도 좋다고 여겨요. ‘샘·샘님’은 모두 슬기롭고 상냥히 가르치는 어느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삼을 수 있거든요.


  생각을 새롭게 하면 좋겠어요. 말을 새롭게 사랑으로 바라보면 좋겠어요. 우리는 나쁜 말도 좋은 말도 쓰지 않아요. 언제나 우리 고운 꿈과 슬기로운 사랑을 담아서 쓰는구나 싶어요. 그러니까요, 우리 모두 샘이 되면 어떨까요? 학생인 어린이하고 푸름이도, 선생님인 어른들도, 서로서로 가르치면서 배울 줄 아는 샘님이 되기로 하면 어떨까요? 아이들 곁에서 샘 같은 어른으로, 어른들 사이에서도 샘물 같은 지기로, 다같이 맑고 사랑스러운 샘이자 샘님으로 어우러지면 어떨까요? 이런 뜻으로 여러 고장말을 살몃살몃 섞어 노래꽃을 한 자락 지어 봅니다. 이 노래꽃을 즐기면서 새말 한 마디를 우리 눈빛으로 곱게 바라보아 준다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숲에서 4 샘님


저그짝에선 슨상님 슨상님 하는디

영 맴에 안 들어

조고짝초롬 샘님 샘님 하믄

참 착착 감겨들어


거 보이소

마을마다 어귀에

샘이 떠억하니 흐르잖소

골짝서 조르조르 맑게 솟잖소


앞에서 이끄니께

이슬을 걷어 주는 길잽이니께

뒤에서 받치니께

바위 되어 든든 버텨주니께


샘 같은 님이지예

샘물마냥 맑지예

샘빛으로 곱지예

샘님 샘님 참 좋잖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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