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이야기

숲노래 우리말꽃 : 사춘기란 뭘까요?



[물어봅니다]

  선생님, ‘사춘기’란 뭘까요? 아, 그냥 모르겠어요. 사춘기란 말뜻도, 사춘기가 뭔지도 모르겠어요.


[이야기합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푸름이가 사춘기인가요? 아마 그럴는지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사춘기란 참말 무엇이려나요? 사전 뜻풀이를 넘어서, 또 둘레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대목을 넘어서, 푸름이 스스로 “사춘기란 참말 뭘까?”를 먼저 마음으로 물어보면 좋겠어요.


[표준국어대사전]

사춘기(思春期) : 육체적·정신적으로 성인이 되어 가는 시기. 성호르몬의 분비가 증가하여 이차 성징이 나타나며, 생식 기능이 완성되기 시작하는 시기로 이성(異性)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춘정(春情)을 느끼게 된다. 청년 초기로 보통 15∼20세를 이른다


  여느 사전에서 ‘사춘기’란 한자말을 찾아보았습니다. “어른이 되어 가며 몸이 달라지며 ‘춘정을 느끼’는 때”가 사춘기라 하는데, 이런 뜻풀이가 가슴으로 와닿는지요?


  제가 어른이란 몸이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이 뜻풀이는 사춘기를 제대로 풀이하지 않은 듯합니다. 자, 사춘기란 한자말을 잘 뜯어 볼게요. ‘思(생각/헤아림) + 春(봄) + 期(때/철)’ 얼개요, 이는 ‘봄을 생각하는/헤아리는 때/철’입니다.


  푸름이 여러분, “봄을 생각하는 때”나 “봄을 헤아리는 철”이란 무엇일까요? 봄은 어떤 철일까요?


 봄 : 새싹. 새잎. 새로운 나뭇가지하고 나무줄기 + 이른 꽃

 여름 : 짙은 잎. 굵은 가지하고 줄기 + 무르익는 꽃 + 이른 열매

 가을 : 바래는 잎. 지는 잎. 가랑잎 + 무르익는 열매 + 갈무리

 겨울 : 씨앗. 새봄을 기다리며 꿈꾸는 잎눈하고 꽃눈


  네 철을 이렇게 갈라 볼 수 있습니다. 이 흐름을 본다면 “봄을 생각하는/봄을 헤아리는” 무렵이란, 새로 돋을 잎을 이야기한다고 할 만해요. 사춘기란, 이제 갓 피어나려는 옅고 보드라우면서 푸른 잎사귀를 그리는 철이나 나이라 할 만하지요. 그러나 아직 여름이 아닌 봄인 터라, 잎이 돋고 줄기나 가지가 차근차근 뻗으려 해요. 아마 사춘기라는 나이나 때나 철을 지나면 줄기하고 가지가 굵으면서 꽃이 피는 흐름으로 들어서겠지요.


  푸름이 여러분은 이런 ‘봄나이’나 ‘봄철’을 그려 보았을까요? 흔히들 사춘기라는 때는 “성호르몬 분비에 따른 이차성징으로 몸이 많이 바뀌면서 힘들고 어지럽고 아픈 나날”로 여깁니다. 그렇지만 굳이 이렇게 볼 일은 없지 싶어요. 우리가 새봄에 마주하는 꽃이며 풀이며 나무는 그다지 아프거나 힘들거나 어지러워 보이지 않거든요.


  봄날 매화꽃이나 벚꽃이 아파 보이는 꽃인가요? 봄에 돋는 새싹이 아파 보이나요? 봄꽃이 어지러워 보이나요? 봄꽃이 힘들어 보이나요? 온통 기쁨으로 반짝이고, 언제나 기쁘게 활짝활짝 웃음을 지으면서 눈부시게 우리를 부르지 않나요? 이리하여 저는 ‘사춘기’라는 낱말을 새롭게 풀이하려고 생각합니다.


[숲노래 사전]

사춘기 : → 꽃나이. 봄나이. 꽃철. 봄철

꽃나이 : 1. 꽃을 생각하거나 그리거나 꿈꾸거나 마음에 품는 나이. 씨앗·열매을 맺으려고 피우는 숨결을 품었다 할 나이나 때 2. 사랑스럽거나 아름답거나 눈부신 나날·때·철·삶이라 여기면서 마음에 품는 나이나 때 3. 가장 돋보이거나 대수롭거나 뜻있거나 크거나 사랑스럽거나 뛰어나거나 아름답다고 할 나이나 때


  먼저 ‘사춘기’란 이름보다는 ‘꽃나이’나 ‘봄나이’라는 이름을 새롭게 쓰고 싶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꽃철’이나 ‘봄철’을 함께 쓸 수 있어요. 뜻풀이는 ‘꽃나이’를 붙여 봅니다. 꽃을 생각하는 나이라서 꽃나이라 할 만해요. 꽃을 생각한다는 뜻은 꽃다운 숨결을 앞으로 이루려는 뜻이나 꿈으로 간다는 나이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푸름이 여러분이 맞이하는 꽃나이·봄나이·꽃철·봄철은 어지럽거나 힘들거나 아픈 때가 아니라는 뜻이에요. 꼬물꼬물 애벌레가 깊이 잠들고 나서 눈부신 나비로 거듭나듯이, 푸름이 여러분은 바야흐로 ‘꿈꾸는 애벌레’처럼 한창 꿈을 꾸면서 곧 이 꿈에서 일어나 ‘나비로 거듭나는 길’에 들어선다는 뜻입니다.


꽃나이·푸른꽃나이

봄나이·봄

꽃철·봄철·꽃날·봄날

푸름이·푸른날


  저는 여러분을 ‘푸름이’란 이름으로 부릅니다. 한자말 ‘청소년’은 그다지 안 쓰고 싶습니다. ‘청소년’이란 이름을 사회에서 널리 쓰기는 해도 제 입에는 잘 안 붙어요. 푸르게 빛나고 싶은 꿈꾸는 애벌레다운, 또 새봄을 맞이해서 갓 돋은 맑은 풀빛다운 넋이요 숨결이 바로 여러분이라고 느끼기에, ‘푸르다 + 이’ 얼개로 ‘푸름이’라는 이름을 쓰곤 합니다.


  우리는 사춘기를 거쳐야 할 까닭이 없다고 여깁니다. 꽃나이를 즐겁게 맞이하고 누리면서 꽃철로 접어드는 꽃길을 가면 넉넉하다고 여깁니다. 푸름이 여러분은 중2병도 고2병도 고3병도 아닌 언제나 싱그러운 푸름이요 푸른꽃이요 푸른봄이요 푸른나이라고 느낍니다. 여러분이 오늘 이곳에서 푸르게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이야기하는 숨결을 바로 저 같은 어른한테 푸른 사랑으로 나누어 준다고 느낍니다.


  자, 봄철 봄나이를 누려 볼까요? 꽃철 꽃나이를 누리면 어때요? 푸른꽃나이를 누리고, 푸른봄나이를 함께해 봐요. 여러분 모두 다 다르게 빛나는 나비가 되어 온누리에 아름다운 사랑을 널리 펴시면 좋겠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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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

숲노래 우리말꽃 : 풀이하기 어려운 낱말이 있나요?



[물어봅니다]

  국어사전을 쓰시면서 기억에 남거나, 뭔가 뜻을 풀이하기 어려운 낱말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이야기합니다]

  ㅅ(시옷) 이야기를 해볼까 싶네요. 저는 처음에 ㅅ이라고 하는 닿소리로 여는 낱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시골에서 살고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삶을 물려줄 수 있어야 어버이다운가를 생각하다 보니까 여러모로 ㅅ하고 얽힌 말이 자꾸 들어오더군요. ‘시골’에서도 시옷이 들어가는데요, 시골이 어떤 곳인가를 생각해 보니까, 다른 사전에 나오는 시골 뜻풀이가 아닌 나 스스로 시골이라는 낱말에 새롭게 뜻풀이를 붙이자고 생각해 보니 두 가지가 있어요. 시골이라고 한다면 첫째는 숲이 있어야 돼요. 숲이 없으면 시골이라고 할 수 없어요. 둘째로는 골, 골짜기, 멧골, 멧갓, 봉우리, 그러니까 산이 있어야 하고요. 숲하고 갓(메·산)이 어우러진 곳이 시골이라 할 만하지 싶더군요. 숲이 있으면 저절로 샘물이 솟아서 냇물이 흐를 테니, 시골이라는 곳은 누구나 스스로 땅을 일구어 밥옷집을 얻거나 살림을 가꿀 수 있는 터전인 셈이지요. 이러면서 온갖 짐승하고 푸나무가 함께 살아가는 곳이고요. 예전에는 생각도 못한 뜻풀이요 얼거리였습니다만, 삶터를 바꾸고 살림을 새로 가꾸면서 비로소 눈에 들어오고 마음으로 느낀 뜻풀이예요.


  서울 같은 도시에 너른 공원이나 높은 산이 함께 있어도 이곳은 시골이 되지 못해요. 집하고 길이 너무 많아서 사람들이 저마다 제 땅을 못 누리거든요. 마당이든 텃밭이든 말이지요. 그런데 여느 사전을 살피면 ‘시골’을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풀이하고 그쳐요. 오늘날 우리는 거의 모두 도시에서 살잖아요? 시골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시골에 살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는데, 정작 시골이 어떠한 곳인가를 사전 뜻풀이부터 제대로 못 밝히니, 사람들은 시골을 더더구나 알 수 없겠구나 싶어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돈이 많든 적든 학교를 오래 다녔든 아니든 사내이든 가시내이든 나이가 많든 적든, 누구나 제 땅에서 삶을 가꾸고 살림을 지을 수 있으면서 맑은 물하고 바람을 누리는 곳이 ‘시골’일 텐데,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라는 뜻을 사전에서 못 밝히면 어떻게 될까요? 이때에 우리는 무엇을 볼까요?


  저는 사전 뜻풀이가 어렵다고 여긴 적은 없지만, 바로 이 대목을 늘 느껴요. 저처럼 사전을 새로 쓰고 뜻풀이하고 보기글까지 새로 붙이는 몫을 맡은 사람이 낱말 하나를 놓고서 제대로 짚거나 다루거나 풀이하거나 이야기를 붙이지 못한다면, 또 낱말 하나하고 얽힌 보기글을 슬기로우면서 아름답고 뜻있게 달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어느 낱말 하나만 제대로 모를 뿐 아니라, 그 낱말하고 얽힌 삶이며 생각이며 꿈이며 사랑이며 이야기를 모두 모를 수 있어요. 어느 모로 보면 무섭거나 무시무시한 일이 될 만해요. 고작 사전에서 낱말 하나를 엉성하게 다루고 그치는 일이 아니더군요. 바로 그 엉성하게 다룬 낱말풀이를 읽는 분들이 생각이 고이거나 갇혀 버리기 쉬워요.


[표준국어대사전]

어린이문학 : 1. [문학] 어린이를 대상으로 그들의 교육과 정서를 위하여 창작한 문학. 동요, 동시, 동화, 아동극 따위이다 2. [문학] 어린이가 지은 문학 작품

그림책 : 1. 그림을 모아 놓은 책 2. 어린이를 위하여 주로 그림으로 꾸민 책 3. 그림본으로 쓰는 책 4. ‘화투’를 속되게 이르는 말

동시 : 1. [문학] 주로 어린이를 독자로 예상하고 어린이의 정서를 읊은 시 2. [문학] 어린이가 지은 시


  푸름이 여러분은 동시나 동화를 요즈음 읽는가요? 이제는 안 읽고 소설과 어른시만 읽나요? 어때요? 동시나 동화 같은 어린이문학은, 또 그림책은 푸름이 나이에는 멀리하거나 안 읽을 이야기나 책일까요? 어린이만 읽어야 하는 어린이문학이거나 그림책일까요?


  사전 뜻풀이를 보면 어린이문학이든 그림책이든 동시이든 다 ‘어린이만 보는’ 틀로 담습니다. 자, 이 뜻풀이를 그러려니 하고 지나칠 수 있습니다만, 무척 많은 분들이 이 뜻풀이가 알맞지 않다고 여겨요.


  그런데 무척 많은 분들이 이 뜻풀이가 알맞지 않다고 여겨도 정작 국립국어원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는 이런 뜻풀이를 바로잡거나 손질하거나 고치려고 하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아무래도 적잖은 어른들이 어린이문학을 안 읽거나 그림책을 안 들여다보는 탓일 수 있어요. 푸름이 여러분 같은 딸아들을 낳아서 돌보는 어버이 자리에 서서 어린이문학이나 그림책을 가까이한 어른이라면 흔히 이렇게 말한답니다. “와! 이렇게 아름답고 재미난 책이 어린이문학이었네? 어쩜 이렇게 눈물겹고 웃음나며 사랑스러운 그림책이 다 있을까? 그야말로 쉽고 재미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동화이고 그림책이네!” 이리하여 ‘동화읽는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모임이 있답니다. 동화나 동시나 그림책은 ‘어린이부터 누구나 누리고 즐기고 나누면서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사랑을 배운다’는 마음을 주고받으려고 해요.


[숲노래 사전]

어린이문학 : 삶을 사랑하는 슬기롭고 상냥한 이야기를 어린이 눈높이로 담아서 누구나 읽고 누리고 나누고 즐길 수 있는 글. 어른이 쓰기도 하고 어린이가 쓰기도 한다. 어린이문학은 어린이만 읽는 글이 아닌 어린이부터 다같이 읽고 누리며 나누는 글이다

그림책 : 1. 그림을 모으거나 엮거나 담은 책 2. 삶을 사랑하는 슬기롭고 상냥한 이야기를 그림을 바탕으로 엮은 책. 그림을 바탕으로 줄거리를 엮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 아기나 어린이도 쉽게 알아보거나 느끼도록 엮기 마련이고, 아기나 어린이부터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책

동시 (= 노래꽃)

: 삶을 사랑하는 슬기롭고 상냥한 노래. 어린이 스스로 쓰는 동시가 있고, 어른이 써서 어린이하고 함께 읽는 동시가 있다. 동시는 누가 쓰든 어린이부터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시인데, 시란 우리가 나누는 말을 마치 노래처럼 누리는 글이기에, 따로 ‘노래꽃’이라 해볼 수 있다. 동시도 시도 ‘노래꽃’이라 할 만하다


  제가 쓰는 사전은 이렇게 ‘어린이문학·그림책·동시’ 같은 낱말을 아주 새롭게, 또 오늘날 흐름이나 결에 맞추어서 풀이하려고 합니다. 푸름이 여러분을 만나는 이 자리뿐 아니라 여느 어른을 마주하는 자리에서도 이런 새 뜻풀이를 이야기하지요.


  거듭 말씀을 하겠습니다만, 저는 뜻풀이를 붙이면서 어렵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다만 여느 사전이 여태까지 무척 엉성하거나 한켠으로 기울어진 뜻풀이를 참으로 많이 했다고 느껴요. 저로서는 이런 엉성한 여느 사전 뜻풀이나 한켠으로 기울어진 뜻풀이를 가다듬거나 확 뜯어고쳐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이 즐겁고 새로운 빛이 될 뜻풀이하고 보기글을 즐겁게 붙이자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렇게도 이야기할 만해요. 제가 어느 낱말 하나에 뜻을 제대로 붙일 수 있다면, 이리하여 제대로 붙인 뜻풀이를 찬찬히 읽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우리는 어느 낱말 하나를 제대로 알아차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삶과 살림과 사람과 사랑을 모두 새롭게 바라보면서 스스로 씩씩하게 일어서는 힘을 찾아내거나 키울 수 있답니다.


  그나저나 푸름이 여러분이 궁금해 하는 대목은 이런 얘기가 아닐 수 있을 텐데요, 제가 말풀이를 달기 어려웠던 낱말을 굳이 꼽아 보라면 ‘생각’이라든지 ‘사랑’이라든지 ‘하다’라든지 ‘있다’처럼, 아주 쉽고 흔한 낱말이에요. ‘보다’나 ‘주다’나 ‘가다’ 같은 낱말도 섣불리 뜻풀이를 마무리하기 어려워요. 그런데 저로서는 어렵지는 않았고 좀 품이 들었을 뿐이에요. 이를테면 ‘생각’이나 ‘사랑’ 같은 낱말은 뜻풀이를 붙여서 마무리하기까지 적어도 여섯 달이 걸렸어요. 여섯 달을 써서 낱말 하나를 풀이했답니다. ‘보다’나 ‘주다’는 석 달쯤 걸렸고요.


  이렇게 말해도 되겠는데요, 우리가 ‘흔히 어렵다고 여기는 낱말’은 오히려 뜻풀이가 쉽습니다. 우리가 ‘으레 쉽다고 여겨서 사전을 거의 안 찾아보는 낱말’이 도리어 뜻풀이가 어렵다고 할 수 있어요. 이 대목이 참 재미있어요. 생각해 봐요. 푸름이 여러분이 한국말사전에서 ‘있다·보다·주다’나 ‘생각’ 같은 낱말을 찾아보나요? ‘시골’ 같은 낱말도 그렇고요. 그런데 오히려 이런 낱말, 사람들이 사전에서 잘 안 찾아볼 듯한 낱말이야말로 뜻풀이를 제대로 붙이기까지 훨씬 긴 나날에 오랜 품을 들여야 한답니다. 전문용어 같은 낱말은 뜻풀이가 대단히 쉬워요. 삶말이나 살림말은 뜻풀이에 오래오래 마음을 써야 하고요.

  ‘시골’이란 이름을 놓고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요, 제가 시골을 풀이할 적에는, 시골은 ‘숲’하고 ‘살림’이 어우러져야 한다고 느꼈고, 둘 가운데 어느 한 가지만 있으면 안 어울리겠다고 여겼어요. 둘이 같이 있어야 되고 둘을 사람이 만지지요. 사람이 숲하고 살림 사이에서 둘을 만지는 셈이에요. 이러면서 숲하고 살림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슬기로울 수 있어야겠지요. 사람이 있되 그냥 아무 사람이나 있어야 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슬기로운 사람이 있어야겠지요. 그런데 ‘슬기롭다’고 하는 이 말은 ‘똑똑하다’하고도 이어지거든요. 머리가 좋기만 해서는 슬기롭거나 똑똑하지 않아요. 머리가 좋기만 하면 ‘꾀부리는’ 길로 빠질 수 있답니다. ‘꿍꿍이’를 꾸밀 수 있고요. 그러니까 “사람이 슬기롭게 살림을 살펴서 새롭게 살아가는 숲이 사랑스러워서 시골”이라고 할 수 있다고 느껴요. 집이 숲이 되고, 숲이 집이 되는 터전이 시골이라고 해도 좋고요.


  저는 사람들이 머리가 좋은 사람이 되기보다는, 생각이 밝고 마음이 상냥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요. 더 많은 지식을 머리에 쌓기보다는, 한 가지 지식이라도 즐겁고 상냥하면서 밝고 따스하게 가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쁜 텃말을 더 많이 알지 않아도 되어요. 말 한 마디에 깃든 고운 넋을 삶으로 받아들여서 즐겁게 가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이란 그렇거든요. 우리 생각을 말에 담는 대로 우리 하루가 달라질 수 있어요.


  우리는 ‘사람’이 되어서 살아야 할 텐데, 이 사람이란 슬기롭기만 해서는 안 되겠고 사랑이 있어야겠더라고요. 좋은 머리를 사랑으로 보듬을 줄 알아야 되겠더라고요. 머리만 좋아서는 망가지는 사람이 되고요. 이 좋은 머리를 사랑이라고 하는 마음으로 추스를 수 있어야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줄 느껴서, “시골 = 숲 + 살림”인데 여기에 ‘사람’이 있고 사람마다 ‘슬기’가 더 있으며, 슬기는 다시 사람으로 이어져, 여기에는 이제 삶이 태어날 수 있구나 싶더라고요.


  삶이 태어나는 곳에는 무엇이 있느냐 하면 새로운 생각이 자랄 수 있어요. 새로운 생각은 우리 목숨, 숨을 살리는 결이라고 해서 ‘숨결’이 되고요. 바로 이 숨결은 오늘 내가 이곳에 있는 ‘씨앗’이 되는구나 싶더군요. 이렇게 해서 저는 ㅅ으로 여는 말을 아주 좋아해요. ㅅ을 좋아해서 ㅅ 낱말을 틈틈이 다시 읽어 보기도 하는데요. 뜻풀이를 마무리했어도 ‘삶’이나 ‘사람’이나 ‘생각’이나 ‘슬기’ 같은 낱말에 붙인 풀이를 꾸준히 보태거나 새로 이어 보려고 하기도 합니다.


  뜻풀이 붙이기란 한 벌로 그치지 않거든요. 어느 낱말 하나를 어느 때에 새롭게 쓰기도 하고요. 새로운 쓰임새가 나타나면 이 새로운 쓰임새를 뜻풀이에 더 담을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이 대목을 어렵게 여기면 사전짓기는 끝내 할 수 없는 일이 되지만, 늘 새롭게 쓰임새가 늘어나는 말을 사랑할 수 있다면, “말풀이는 끝날 수 없어서 한결 즐겁다”는 생각으로 이 일을 할 수 있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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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
숲노래 우리말꽃 : 나이를 새롭게 읽고 싶어요


[물어봅니다]
  저는 이제 열다섯 살이에요. 국어 시간에 배웠는데 열다섯 살이면 ‘지학(志學)’이라 하고, 논어에 나오는 말이라고 해요. 그런데 ‘지학’이란 말은 중국사람이 지은 말이잖아요?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다른 이름을 지을 수 있을까요?

[이야기합니다]
  한자를 바탕으로 한문을 쓰는 중국에서는 마땅히 한자로 새말을 엮어서 씁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한글이란 글씨를 씁니다만, 이 글씨가 없었어도 모두 말로 이야기를 엮어서 나누었어요. 다만 한국은 아직 한글이란 글씨를 마음껏 쓴 지 오래지 않아서, 우리가 스스로 우리 입으로 나누는 말로 새 낱말을 짓는 길이 서툴거나 낯설다고 여기곤 합니다.

  중국에서 ‘지학’이란 한자를 엮은 얼개를 보면, 그냥 두 한자 ‘지(志) + 학(學)’으로 썼을 뿐이에요. 열다섯 살이라는 나이라면 제대로 널리 배우는 길을 간다는 뜻일 텐데요, 이때에 배움이란 학교만 다니거나 책만 읽는다는 뜻은 아니에요. 온누리를 둘러싼 삶이며 살림이며 숨결을 고루 살펴서 배운다는 뜻이랍니다. 이른바 철이 제대로 들면서 머리가 트이고 마음을 열며 온사랑으로 일어선다는 뜻이라고 할 만해요.

  저한테 물어보신 말을 곰곰이 생각하니, ‘지학’뿐 아니라 여러 가지 이름이 있네요. 스물, 서른, 마흔, 쉰, 예순 같은 나이를 두고서 ‘약관, 이립, 불혹, 지천명, 이순’ 같은 한자 이름이 있네요. 또 일흔 나이를 두고서 ‘고희’나 ‘종심’이나 ‘희수’란 한자 이름도 있어요.

  한국에서 쓰는 이름을 보면 아직 ‘열다섯, 스물, 서른, 마흔, 쉰, 예순, 일흔’처럼 숫자를 나타내는 이름만 있네요.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나이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북돋우는 이름’을 지을 만하겠어요.

[숲노래 사전]
열다섯·배움나이·배움길·배움눈길·배움철 ← 십오 세, 지학(志學)
스물·의젓나이·의젓길·의젓눈길·의젓철 ← 이십 세, 약관(弱冠)
서른·똑똑나이·똑똑길·똑똑눈길·똑똑철 ← 삼십 세, 이립(而立)
마흔·홀가분나이·홀가분길·홀가분눈길·홀가분철 ← 사십 세, 불혹(不惑)
쉰·하늘나이·하늘알이·하늘눈길·하늘철 ← 오십 세, 지천명(知天命), 지천(知天)
예순·둥글나이·둥글길·둥근눈길·둥근철 ← 육십 세, 육순(六旬), 이순(耳順)
일흔·바른나이·바른눈길·바른길·바른철 ← 칠십 세, 칠순, 고희(古稀), 종심(從心), 희수(稀壽)
여든·트인나이·트인길·트인눈길·트인철 ← 팔십 세, 팔순
아흔·고운나이·고운길·고운눈길·고운철 ← 구십 세, 구순
아흔아홉 ← 백수(白壽)
온·온나이·온길·온눈길·온철 ← 벡 세

  배우는 나이라면 ‘배움나이’라 하면 되어요. 아주 수수하지요. 그러나 수수한 이름부터 생각하면 좋겠어요. 바로 이 수수한 이름에서 새롭게 생각을 지필 이름이 태어나는 바탕이 서거든요. 배움나이란 ‘배움길’이면서 ‘배움눈길’이 돼요. 그리고 배우면서 철이 든다는 얼거리로 ‘배움철’이라 해도 되겠지요.

  스무 살은 의젓하게 서는 나이라고 느껴요. 이때에는 푸름이 여러분도 어버이 손길을 떠나 스스로 삶터를 부대낀다고 할 만하니 의젓하게 서겠지요? ‘의젓나이’예요.

  서른 살은 그동안 배운 길을 가다듬고 여태 의젓하게 살아온 나날을 되짚을 테니 한결 똑똑하다고 여길 만해요. ‘똑똑나이’라 하면 어떨까요? 마흔이라는 나이에 이르면 둘레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누가 꼬드긴대서 넘어가지 않을 만하고, 남이 무어라 따져도 가볍게 튕길 줄 아는 나이래요. 그래서 ‘홀가분나이’라 해보고 싶어요.

  쉰이라고 하면 하늘이 흐르는 길을 안다고들 하니 ‘하늘나이’라 하면 어울릴까요? 예순이라고 하면 이제 모가 사라지고 둥글둥글 어우러지거나 사귄다고들 합니다. 이런 모습을 고스란히 살려서 ‘둥글나이’라 해도 좋겠어요.

  이다음 일흔부터는 우리 나름대로 생각할 대목이에요. 배웠고, 의젓했고, 똑똑했고, 홀가분했고, 하늘을 읽었고, 둥글둥글했다면, 이제는 언제 어디에서나 바르리라 여겨요. ‘바른나이’라 할 만해요. 여든이라면 바른눈길을 넘어서 활짝 마음을 틔우는 때이지 싶어요. ‘트인나이’라 해보고 싶습니다.

  바야흐로 아흔 줄에 접어들면 이 모든 살림을 곱게 다스리면서 스스로 고운 눈빛이 되는 ‘고운나이’라 할 수 있다고 느껴요. 그리고 백 살에 다다르면, ‘온’이란 낱말을 넣고 싶어요. 한국말 ‘온’은 바로 ‘100(백百)’이라는 한자를 나타낸답니다. 그리고 ‘온’은 숫자 ‘100’뿐 아니라 ‘모두·모든’을 가리켜요. 그래서 ‘온나이’라 하면 모든 것을 아우를 줄 아는 너르면서 깊은 숨결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제 나름대로 생각해서 이름을 붙여 본 나이를 갈무리해 볼게요. 배움나이(15), 의젓나이(20), 똑똑나이(30), 홀가분나이(40), 하늘나이(50), 둥글나이(60), 바른나이(70), 트인나이(80), 고운나이(90), 온나이(100)입니다. 저부터 스스로 이러한 나이를 거치는 동안 이러한 숨결이자 몸짓이자 마음이 되고 싶은 뜻을 담아서 이름을 지었어요. 푸름이 여러분은 어떤 이름이 되고 싶나요? 어느 나이에 어떤 마음이자 살림이자 사랑으로 서고 싶나요?

  푸름이 여러분도 스스로 나이에 맞는 이름을 지어서 그 나이를 살아내 보시면 좋겠어요. 우리가 스스로 이름을 지어서 그 나이를 살아낸다면 참말로 우리는 그러한 마음이자 눈빛이자 생각이자 사랑으로 살림을 짓고 살아가는 슬기로운 어른이자 사람이 될 만하다고 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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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

숲노래 우리말꽃 : ‘특수 학급’은 뭘까요



[물어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다양성’과 ‘평등’을 얼마나 살리는 길로 가야 하느냐가 큰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성이란 서로 다른 길일 뿐, 틀린 길이 아니라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이 다양성을 살릴 수 있을 때에 진정한 평등이 될 테고요. 샘님이 들려주는 우리말 이야기를 들어 보면, 우리가 쉽게 쓸 수 있는 말을 안 쓰고 자꾸 어려운 말을 쓰거나 멋을 부리는 말을 쓰려고 하면, 말 사이에서도 계급이 생기면서 차별이 생길 수 있다고, 이는 다양성을 해치고 평등에도 어긋나는 일이 되겠다고 느껴요. ‘말의 다양성과 평등’ 문제를 조금 더 들려주시면 좋겠어요.


[이야기합니다]

  아무래도 사회나 학교에서는 ‘다양성’이나 ‘평등’이란 이름을 쓰지 싶고, 푸름이 여러분도 이 낱말에 푸름이 여러분 생가글 담으리라 느껴요. 그런데 저한테 물어보면서 한 말 사이에 ‘다양성·서로 다른’이란 대목이 있어요. 한자말로 하자면 ‘다양성’이요, 한국말로 하자면 ‘서로 다른’이나 ‘다르다’입니다. 먼저 말씀하셨듯, 우리는 서로 다를 뿐, 누가 맞거나 틀리지 않습니다.


  푸름이 여러분이라면 ‘다양성’이나 ‘평등’이란 낱말을 그냥 쓸 텐데, 이 말씨를 놓고서 여덟 살 어린이나 다섯 살 어린이하고 나란히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여러분한테 어린 동생이 있을 적에 이런 한자말을 그냥 쓸 수 있을까요? 아마 아닐 테지요?


  다 다른 길을 살피는 눈이란, 더 많이 알거나 잘 알거나 똑똑하다는 쪽 눈길에 그치지 않겠다는 마음이에요. 우리가 더 많이 안다면 더 많이 알기에 더 쉽고 부드럽게 풀어내어 이야기할 수 있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평등도 이렇게 볼 만하지요. 한자말로는 ‘평등’이요, 한국말로는 ‘나란히’나 ‘어깨동무’입니다. 자, 생각해 봐요. 키도 작고 걸음도 느린 어린 동생하고 ‘나란히’ 걸을 수 있는 마음이 바로 평등이라고 하는 첫걸음이랍니다. 어린 동생하고 눈높이를 맞추려고 푸름이 여러분이 무릎을 꿇고 앉을 수 있는 몸짓은 평등이라고 하는 두걸음이에요.


  저는 이 자리에서 ‘다양성·평등’ 두 한자말을 푸름이 여러분보다 훨씬 어린 동생 눈높이에서 생각해 보자고 이야기했어요. 다 다른 길을 한결 널리 살피고, 더 너른 마음으로 나란히 갈 수 있는 어깨동무를 하자는 마음이 바로 말을 말답게 가꾸는 길이 되기도 합니다.


  아주 쉬워요. 무엇이 쉬운가 하면, 쉽게 말하면 모든 일이 쉽답니다. 쉽게 말을 하지 않으니 모든 일이 쉽지 않아요. 이 이야기가 오히려 어려울까요? 말부터 쉽게 하면 일도 쉽게 풀 수 있는데, 말부터 어렵게 하면 일도 어렵게 꼬이기 마련이랍니다.


  푸름이 여러분이 빵을 반죽하거나 김치를 담그거나 밥을 짓는 자리에서, 여러분이 알아듣기 어렵거나 낯선 일본 한자말이나 일본말이나 영어를 섞는다면 얼마나 알아들으면서 함께하거나 따라할 수 있을까요? 어린 동생하고 함께 빵반죽을 하거나 밥짓기를 할 적에도 매한가지예요. 같이 즐겁게 일을 하자면 말부터 쉽게 해야겠지요? 한국이 낯선 이주노동자하고 함께 일한다고 생각해 봐요. 한국도 한국말도 낯선 이주노동자한테 어려운 말을 쓰면 일을 함께 할 만할까요?


  우리가 쓸 모든 말은 다 다른 길을 살필 뿐 아니라, 더 너른 길을 나란히 갈 수 있도록 헤아리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추스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쓰는 말이란 쉬울 뿐 아니라 곱고, 고울 뿐 아니라 참하고, 참할 뿐 아니라 상냥하며, 상냥할 뿐 아니라 부드럽고, 부드러울 뿐 아니라 어질거나 슬기롭지요.


 별빛 ← 성광, 에이스, 스타, 천사

 별빛사람(별빛님) ← 장애인

 별빛아이(별아이) ← 장애아, 장애 어린이

 별빛칸 ← 특수 학급, 특수반, 장애아 학급


  슬쩍 다른 이야기를 곁들여 볼까 합니다. ‘별빛’이란 낱말을 들었어요. 왜 별빛이란 낱말인가 하면, ‘특수’란 한자말 때문입니다. 사전에서 ‘특수’란 한자말을 찾아보면 “특별히 다름”으로 풀이하고, ‘특별’은 ‘다름’으로 풀이합니다. 곧 ‘특수 = 다르게 다름’이란 셈인데요, 사전은 ‘다르다 = 같지 아니하다’로, ‘같다 = 다르지 아니하다’로 풀이합니다. 매우 뒤죽박죽이에요.


특수(特殊) : 1. 특별히 다름 2. 어떤 종류 전체에 걸치지 아니하고 부분에 한정됨 3. 평균적인 것을 넘음

특별(特別) : 보통과 구별되게 다름 ≒ 특단

다르다 : 1.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아니하다 2. 보통의 것보다 두드러진 데가 있다

같다 : 서로 다르지 않고 하나이다 ≒ 여하다

보통(普通) : 1.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음. 또는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아니한 중간 정도 2. 일반적으로. 또는 흔히


  오늘은 이 엉성한 겹말풀이나 돌림풀이 사전을 다루지 않겠습니다. 오늘 다루고 싶은 이야기는 ‘특수반·특수 학급’입니다. 푸름이 여러분이 저한테 다양성하고 평등 이야기를 물으셨는데요, 어느 학교에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데 ‘특수반’이란 이름으로 두 가지 학급이 있어요.


  첫째 특수반은 시험성적이 잘 나오기에 더 시험성적이 나오도록 북돋우려고 하는 곳입니다. 둘째 특수반은 장애가 있다는 어린이나 푸름이를 모두 몰아넣고서 가르치는 곳입니다.


  다른 길이란 틀린 길이 아니지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다른 사람을 그저 다르게 다루곤 합니다. 왜 시험성적으로 누구는 첫째 특수반에 들어가고 누구는 그냥 학급에 있을까요? 왜 장애로 갈라서 누구는 둘째 특수반에 있고 누구는 그냥 학급에 있을까요? 다름하고 같음이란 무엇일까요?


  예전에는 ‘장애자’라 하다가 ‘장애인’으로 바꾸다가 ‘장애우’라고도 합니다. 말끝을 ‘자(者)’에서 ‘인(人)’을 거쳐 ‘우(友)’처럼 한자만 바꾼 꼴이에요. 우리 삶터는 이렇게 말끝만 바꾸는 시늉을 했어요. 이러면서 더 생각을 못하기도 했는데요, ‘놈(者)’을 ‘사람(人)’으로 바꾸다가 ‘벗·동무(友)’로 고치는 길인데요, 처음부터 ‘사람’으로, 또 ‘벗’으로, 또 ‘님’으로 부를 수 있지 않았을까요?


  더 생각해서 ‘장애’라고 하는 이름부터 바꿀 수 있습니다. 오늘 여느 삶터에서 바라보기에는 ‘장애가 있는 사람’이지만, 다른 별에서 보기에는 그야말로 다른 삶을 짓는 사람일 뿐이에요. 그래서 저는 ‘별아이·별빛아이’나 ‘별사람·별빛사람’ 같은 새 이름을 떠올렸어요. 둘째 특수반을 놓고도 ‘별빛칸(별빛반·별빛학급)’ 같은 새 이름을 그려 봅니다.


  우리 곁에 있는 다 다른 이웃하고 동무한테서 흘러나오는 고운 별빛을 마음으로 느끼고 나누자는 뜻으로 이런 새 이름을 생각해요. ‘차별·차이’나 ‘특별·특수’로 가르지 말고 서로 마음으로 별빛 같은 눈빛이 되자는 뜻으로 이렇게 새 이름을 헤아립니다.


  별빛하고 꽃빛이 어깨동무하면 좋겠어요. 별빛하고 풀빛이 손을 잡으면 좋겠어요. 별빛하고 물빛이, 별빛하고 흙빛이, 별빛하고 잎빛이, 별빛하고 불빛이, 별빛하고 바람빛이, 서로서로 덩실덩실 춤을 추는 한마당이 되면 좋겠어요.


  여느 사람을 흔히 풀에 빗대곤 합니다. 한자말로 ‘민초’를 쓰기도 하는데요, ‘일반인·보통 사람’을 ‘풀사람’이란 새 이름으로 나타내 보아도 어울립니다. 다 다른 우리는 풀사람·풀빛사람으로, 또 별사람·별빛사람으로 어우러집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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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

숲노래 우리말꽃 : “하루 종일”이 겹말이라고요?



[물어봅니다]

  선생님이 쓰신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을 보고 여러 번 놀랐어요. 겹말이라고 한들 몇 가지나 있을까 싶었는데 이 사전에는 자그마치 천 가지나 담아서 놀랐고요, 두께에도 놀랐는데요, 이 사전을 내고 나서도 천 가지를 더 모으셨대서 또 놀랐어요. 그런데 무엇보다도 “하루 종일”이란 말씨도 겹말이라 해서 충격을 받았어요. 늘 입에 달고 살던 “하루 종일”인데, 도대체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야기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놀라실 만합니다. 그런데 털어놓고 말하자면, 푸름이 여러분에 앞서 글쓴이인 저부터 놀랐어요. 우리 삶자리에 퍼진 겹말(중복 표현)이 제법 많은 줄 알기는 했어요. 그럭저럭 생각하며 살다가 사전이란 책을 쓰면서, 무엇보다 비슷한말을 제대로 다르게 풀이해서 가르는 사전인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을 쓰면서, 우리 사전 뜻풀이가 이렇게 엉망진창이었나 싶어 깜짝 놀랐답니다.


  여느 어른들은 이럴 때에 ‘확인사살’이란 말을 쓰더군요. 군대에서 쓰는 무서운 말 가운데 하나인데요, 그냥그냥 알던 대목을 눈앞에서 주루룩 낱낱이 보고 나니까 좀 질렸습니다.


  보기를 들어야 알기 쉽겠지요? 이 보기는 《읽는 우리말 사전 1》에 낱낱이 밝혔는데 몇 가지를 읽어 볼게요.


[표준국어대사전 뜻풀이]

변화(變化) : 사물의 성질, 모양, 상태 따위가 바뀌어 달라짐

변하다(變-) : 무엇이 다른 것이 되거나 혹은 다른 성질로 달라지다

바꾸다 : 1. 원래 있던 것을 없애고 다른 것으로 채워 넣거나 대신하게 하다

달라지다 : 변하여 전과는 다르게 되다

갈다 : 1. 이미 있는 사물을 다른 것으로 바꾸다 2. 어떤 직책에 있는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바꾸다


  한자말 ‘변화’를 “바뀌어 달라짐”으로 풀이하지요. 뜻풀이부터 겹말풀이랍니다. 그런데 ‘바꾸다(바뀌다)’하고 ‘달라지다’는 비슷하면서 다른 낱말이에요. 여기에 ‘갈다’란 비슷하면서 다른 말이 있는데요, 참 엉성하지요.


  그렇다면 이 엉성한 표준국어대사전 풀이는 어떻게 손질해야 알맞을까요? 제가 먼저 손질말을 들려주기 앞서 차분히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자, ‘바꾸다(바뀌다)·달라지다·갈다’ 세 낱말은 뜻이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틀림없이 다른 말이에요. 세 낱말을 혀에 얹어서 찬찬히 소리를 내 보시고요, 소리를 내면서 어떤 결인가를 살펴보셔요.


[숲노래 사전]

변화(變化) : → 바꿈(바꾸다) . 달라짐(달라지다)

변하다(變-) : → 바꾸다(바뀌다) . 달라지다

바꾸다 : 1. 처음 있던 것을 없애고 그것이 아닌 것으로 하거나 채우거나 넣다 2. 내 것을 나 아닌 사람한테 주고, 이와 걸맞게 그 사람 것을 받다 3. 처음 짠 줄거리나 모습이나 흐름이 아니게 하다 (고치다) 4. 이제까지 있거나 쓰던 것을 버리고 그것이 아닌 것을 두거나 쓰다 5. 어떤 자리에 있는 사람을 그 아닌 사람으로 두다 6. 어느 말을 그 말 아닌 말로 풀어 놓다 (옮기다) 7. 처음 있던 곳에서 그곳 아닌 곳으로 가다 (옮기다) 7.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거나, 이쪽에 있던 것을 저쪽에 있게 하다 (차례를 번갈아 하다) 9. 곡식이나 옷감을 돈을 주고 사다 10. 말이나 인사를 서로 하다 (주고받다, 나누다)

달라지다 : 처음이나 예전과는 다르게 되다

갈다 : 1. 이미 있는 것을 빼고서 그것 아닌 것으로 하거나 넣다 (고치다) 2. 어떤 자리에 있는 사람을 빼고서 그 아닌 사람으로 두다


  ‘바꾸다(바뀌다)’는 “이이·이것·이곳을 이이·이것·이곳이 아니도록 하다”를 나타냅니다. ‘이것 밖(바깥)’에 있도록 하는 셈이에요. ‘달라지다’는 ‘다르다·다른 것’이 바탕이니, “다르게 되도록 하다”를 나타내지요. ‘갈다’는 “이이·이것·이곳을 빼내거나 덜거나 없애서 이이·이것·이곳이 아니도록 하다”를 나타내요. ‘갈다’는 ‘갈아치우다’란 말을 떠올리면 느낌이 바로 올 만합니다.


  모름지기 사전풀이라면 그 말이 태어난 뿌리부터 오늘날 우리가 쓰는 흐름까지 두루 살펴서 다뤄야 해요. 그렇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이런 사전풀이가 못 나와요. 다들 다른 사전을 슬쩍 옮겨서 짜맞추기를 한답니다. 올림말을 늘리려고 하다 보니 뜻풀이를 살필 틈이 모자라거든요.


  겹말이란 이 때문에 불거집니다. 숱한 사전은 올림말을 부풀려서 자랑하려고 바쁘다 보니 겹말풀이가 되고, 우리는 뭔가 바쁘거나 부산한 나머지 말 한 마디를 더 깊거나 넓거나 차분하거나 즐겁게 생각할 틈을 못 낸 채 부랴부랴 말을 하다 보니 겹말이 나타나고, 이 겹말에 매이고 말아요.


  그나저나 저는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을 내놓으며 1000가지 아닌 1004가지 겹말을 담았어요. 1000이란 숫자만큼 모아서 사전을 엮으려 했는데 셈을 잘못 하는 바람에 1004가지가 되었습니다. 그때 어떤 네 가지 보기를 덜어내야 하고 망설였어요. 이 보기를 빼자니 아쉽고, 저 보기도 못 빼겠고, 한참 애먹었어요. 1000으로 맞추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까요, 1004가지라는 이 숫자는 ‘천사’로 읽을 수 있데요? 그렇지요? 이웃들한테 이 《겹말 사전》이 마치 천사처럼 상냥하게 겹말을 다독여 주면서 즐거운 빛살이 된다면 좋겠네 하고 생각했어요.


  이제 푸른 벗님이 물어본 “하루 종일”을 차근차근 짚을게요. 먼저 여느 사전 뜻풀이를 읽겠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풀이]

하루 : 1. 한 낮과 한 밤이 지나는 동안. 대개 자정(子正)에서 다음 날 자정까지를 이른다 2. 아침부터 저녁까지 3. 막연히 지칭할 때 어떤 날

진종일(盡終日) : = 온종일

온종일(-終日) : 1.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동안 ≒ 종일(終日)·진일(盡日)·진종일 2.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종일(終日) :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동안 = 온종일


  사전풀이를 보니 어떤가요? ‘종일 = 온종일’이고, ‘진종일 = 온종일’이니까, 세 한자말은 다 같은 말이에요. 그리고 세 한자말은 “아침부터 저녁까지”를 뜻합니다. 이렇게 한자말 뜻풀이를 갈무리했으면 ‘하루’ 뜻풀이를 새로 들여다보기로 해요. 자, 둘쨋뜻이 무엇인가요? “아침부터 저녁까지”이지요?


  이다음은 제가 굳이 보태지 않아도 “하루 종일”이 왜 겹말인지를 푸름이 여러분 스스로 알아차렸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요? 알겠지요?


  그러면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 “하루 종일”이 겹말이라 이 말을 못 쓴다면 입을 다물어야 할까요, 아니면 우리가 새롭고 즐거이 쓸 말씨를 찾아내면 좋을까요?


 하루·하루 내내·온하루·하룻내


  적어도 네 가지로 새롭게 쓸 수 있습니다. 먼저 수수하게 “하루”라고만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힘줌말처럼 “하루 내내”라 할 수 있고, ‘온하루’처럼 앞에 꾸밈말을 붙일 만하며, “하루 내내”를 줄여 ‘하룻내’라 해도 어울려요.


 하루 : 오늘 하루 책하고 씨름을 했어

 하루 내내 : 하루 내내 즐거웠지

 온하루 : 온하루를 어머니하고 김치를 담그며 보냈다

 하룻내 : 하룻내 애썼지만 수수께끼를 못 풀었네


  겹말이란 군더더기 말씨입니다. 말이나 글에서 군더더기를 덜어낸다면 홀가분할 수 있어요. 날개를 달고 훨훨 날 만큼 부드럽답니다. “수채화 그림”이라 말하는 분이 있던데, 수채화가 물빛으로 담은 그림이니 겹말이에요. 그냥 ‘수채화’라 할 수 있고, 아예 새말을 지어 ‘물빛그림’이라 해도 됩니다.


  우리가 겹말이란 군더더기를 털려고 한다면, 군말을 씻기도 하는 셈이면서 새로우며 즐거운 말을 스스로 짓는 길이 되기도 해요. 정치를 하는 분들은 곧잘 “참된 정의”를 말하는데요, ‘참되다 = 정의’예요. 겹말이지요. 이때에도 생각해 봐요. “참된 길”이나 “참된 마음”이나 “참된 삶터”처럼 새롭게 손질할 만합니다. 단출히 ‘참길·참마음·참터’라 해도 어울리고요.


  겹말을 씻는 길이란, 어느 말씨가 틀렸으니 바로잡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너무 바쁘게 사는 나머지 그만 잊거나 잃은 상냥하고 즐거운 말씨를 곱게 가다듬어서 새롭고 눈부시게 일구어 보자는 이야기예요. 틀린 말씨 바로잡기는 재미없어요. 새로우면서 곱게 피어나는 말로 우리 생각을 환하고 넉넉하게 짓는 길일 적에 재미있고 뜻있고 신나고 멋있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사랑스러운 숨결이 자란다고 느껴요. 말마디에 새숨을 불어넣기를 바라는 뜻으로 겹말을 손질하자고 이야기하면서 사전까지 하나 꾸렸습니다. 그동안 모은 보기가 꽤 많으니 앞으로 《겹말 사전》을 한 자락이나 두 자락쯤 더 선보일 수 있겠네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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