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큰아버지를 만납니다. 나한테는 언니이고 아이들한테는 큰아버지입니다. 아이들은 큰아버지를 좋아하면서도 정작 큰아버지와 있을 적에 딴 놀이만 실컷 했고, 큰아버지와 헤어질 무렵 뒤늦게 무엇인가 깨닫습니다. 울먹울먹합니다. 얘들아, 그러니까 큰아버지 계실 적에 함께 놀며 웃었어야지. 아직 아이들은 뒷북스럽습니다. 뒷북아이입니다. 어른인 나는 다른 데에서 가끔 뒷북어른이 되곤 해요. 뒷북말을 하고 뒷북짓을 합니다. 뒷북노래를 부르거나 뒷북꿈을 꾸기도 해요. 어느 날 아침에 생각합니다. 자, 이제부터 뒷북질은 그치고 앞북질을 하자. 앞북걸음으로 살자 하고요. 4347.6.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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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35] 길찾기



  네 식구가 함께 택시를 타고 경기도 일산에서 움직입니다. 나는 작은아이를 안고 앞자리에 앉습니다. 문득 내 눈에 한 가지가 들어옵니다. 어라, 택시에 붙은 ‘네비게이션’ 기계에 한글로 ‘내비’라 적혔네? 피식 웃습니다. 빙그레 웃습니다. 큼큼 재채기를 하면서 목소리를 고른 뒤, 택시 일꾼 아저씨를 부릅니다. 택시 일꾼 아저씨하고 ‘네비게이션’과 ‘내비’ 이야기를 나눕니다. 택시 일꾼 아저씨는 ‘네비’인지 ‘내비’인지 몰랐다고 합니다. ‘ㅓ’인지 ‘ㅐ’인지 모를 뿐더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네비’게이션 기계에 적힌 ‘내비’라는 낱말이 틀린 줄 느끼지 않은 셈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한 가지가 떠오릅니다. “그러게요. 처음부터 ‘길찾기’라고 하면 이렇게 ㅓ와 ㅐ를 틀리지도 않고, 더 알아듣기 좋았을 텐데요.” 택시 일꾼 아저씨는 내 말을 듣고서 “그래, ‘길찾기’라고 하니까 바로 알겠네요. 그 말 좋네.” 합니다. 우리는 왜 ‘길찾기’로 나아가지 못할까요. 왜 한국말사전에 아직 ‘길찾기’라는 낱말을 안 실을까요. 4347.6.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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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34] 고양이밥



  고양이를 키우는 분들은 고양이한테 고양이밥을 줍니다. 예부터 집집마다 소와 함께 살았기에 ‘소밥’인 ‘소먹이’를 마련했습니다. 돼지는 돼지밥을 먹고, 닭은 닭밥인 닭모이를 먹지요. 바다에서 사는 고래라면 고래밥을 먹어요. 고래처럼 커다란 몸이 아닌 작은 새우라면 새우밥을 먹어요. 풀을 뜯는 염소는 염소밥을 먹고, 노루는 노루밥을 먹어요. 개가 먹는 밥은 개밥이고, 사람이 먹는 밥은 사람밥입니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 시골에서 멀어지고 도시로 떠나, 밥을 손수 심거나 길러서 먹지 않다 보니, 시골에서는 일할 사람이 없기도 하고 짐승을 공장과 같은 곳에 잔뜩 가두어서 길러요. 풀 먹는 소한테 풀을 주지 못합니다. 좁은 곳에 수백 수천 마리를 가두어서 기르니, 이 소가 먹을 풀을 마련할 수 없어요. 이제 소는 사료를 먹습니다. 풀이 아닌 사료를 먹어요. 돼지도 닭도 사료만 먹어요. 다시 말하자면 사료를 먹어 온몸이 사료덩이가 된 소와 돼지와 닭을 사람들이 먹는 셈이고, 사료덩이인 소와 돼지와 닭을 먹기에, 사람은 스스로 ‘사료를 만들어 사료를 먹는’ 삶을 누립니다. 4347.6.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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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33] 삶그릇

  밥그릇에 밥을 담아요. 국그릇에 국을 담아요. 마음그릇에 내 마음을 고이 담아요. 너를 사랑하고 서로를 아끼는 마음은 마음그릇에 차곡차곡 담지요. 사랑을 담아 사랑그릇이 되겠지요.  꿈을 그득 담아 꿈그릇이 되고,  노래를 담뿍 담아 노래그릇이 되어요. 나는 어떤 그릇을 건사할까요. 너한테 어떤 그릇을 내밀며 함께 즐거운가요. 우리 삶에 고운 빛을 담도록 삶그릇을 보듬습니다. 삶그릇에 꿈도 사랑도 이야기도 웃음도 노래도 살포시 담습니다. 말그릇에는 아름다우며 맑은 말을 하나둘 담고요. 4347.5.29.나무.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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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32] 찻삿

 


  시외버스를 탑니다. 고흥부터 서울까지 달리는 시외버스에 네 식구가 타니, 네 사람 몫 표를 끊습니다. 어른 두 장을 끊고 어린이 두 장을 끊습니다. 버스에 손님이 거의 없으면 버스 일꾼은 “아이 표는 안 끊어도 되는데.”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버스에 손님이 있을는지 없을는지 우리가 알 길은 없습니다. 네 식구가 움직이면 표를 넉 장 끊으니 버스삯을 만만하지 않게 씁니다. 네 식구가 기차를 타면 기찻삯을 냅니다. 배를 탄다면 뱃삯을 치르고, 비행기를 탄다면 비행기삯을 뭅니다. 택시를 타면 택시삯을 내요. 자가용을 몰지 않기에 누군가 우리 식구를 실어 나릅니다. 누군가 우리 식구를 태워서 옮겨 주면 고맙다는 뜻으로 삯을 치릅니다. 찻삯 얼마를 들이면 어디이든 가뿐하게 나들이를 할 수 있습니다. 4347.5.2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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