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우리말 이야기꽃 : 청소년은 언어 파괴를 할까?



[물어봅니다]

  요즘 어린이나 청소년이 쓰는 급식체나 신조어나 준말이 우리 언어를 파괴하는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야기합니다]

  먼저 이렇게 되물어 볼게요. “참말로 요즘 푸름이나 어린이가 쓰는 말이 말썽이나 잘못이라고 여기는가요? 우리 삶터에서 어른들이 쓰는 말은 어떤가요? 어른들은 말을 얼마나 이쁘거나 곱거나 바르거나 참하거나 착하거나 옳거나 슬기롭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거나 훌륭하거나 멋지거나 어질거나 상냥하게 쓰나요?”


  어린이나 푸름이(청소년)는 어른 곁에서 배워요. 어린이나 푸름이는 또래끼리 어울리면서도 배우거나 물들 테지만, 누구보다 곁에 있는 어버이랑 어른한테서 배우거나 물듭니다. 이렇게 ‘어버이랑 어른한테서 먼저 배우거나 물든’ 뒤에 이 모습이 또래 사이에서도 퍼져요.


  쉽게 생각하면 되어요. 어린이나 푸름이가 쓰는 말씨가 안 곱고 안 사랑스럽다면, 거칠거나 사납다면, 뭇 어버이하고 어른부터 안 곱고 안 사랑스럽게 말하며 산다는 뜻이고, 숱한 어버이하고 어른부터 거칠거나 사납게 삶하고 살림을 꾸린다는 뜻이에요.


  차분하게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고운 말을 늘 듣고 배울 수 있도록 어른부터 거듭나야겠어요.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사랑스럽게 생각해서 마음에 이 사랑 씨앗을 심을 수 있도록 어버이부터 날갯짓하는 마음으로 달라져야겠어요.


  가만히 보면 어른들은 으레 끼리말을 써요. ‘끼리말’이란 끼리끼리 쓰는 말이에요. 어른들은 ‘전문용어·업계용어’ 같은 말을 쓰는데요, 이런 끼리말을 쓰는 어른들 흉내를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내지요. 둘레를 보셔요. 어른이 짓는 사회나 정치나 문화나 예술이나 교육이나 산업현장이나 교통하고 통신이나 군대나 학교나 …… 다들 끼리말을 써요. 쉽게 어우러지거나 즐겁게 어울릴 만한 부드럽고 수수한 말을 좀처럼 안 쓰려고 합니다.


  퍽 옛날인 일제강점기에는 일본말을 그대로 딴 ‘원족’이란 말을 썼고, 해방 뒤에는 ‘소풍’이란 한자말을 썼는데, 요새는 ‘현장학습·체험학습’이란 말을 씁니다. 저는 아직도 ‘현장학습·체험학습’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말을 여덟 살 어린이나 열 살 어린이가 잘 알아들으리라 여겨서, 학교에서 여태 이 말을 그대로 쓰는지 궁금해요. 왜 어른끼리 알아들을 만한 말을, 또 어른 가운데에서도 어느 무리에 있는 어른끼리 알아듣거나 나누는 말을 함부로 쓸까요?


  어른이 어른이라면, 이름만 어른이 아닌 슬기로운 어른이라면, 나이만 먹은 어른이 아닌 참어른이라 한다면, 아무 말이나 섣불리 쓰지 않습니다. 아이를 가르치고 아이한테서 배울 줄 아는 어른이라면, 억지로 낮추는 말이 아닌, 아이하고 함께 생각을 북돋우고 살찌우는 말을 새롭게 지어서 쓸 줄 아는 마음이 되리라 봅니다.


  예부터 이 땅에서 태어나 살아온 사람은 ‘마실’을 다녔고 ‘나들이’를 했습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면 ‘마실’을 잘 모를 수 있는데, 요새는 도시에서도 ‘마실’을 꽤 널리 써요. 무슨 소리인가 하면, ‘원족·소풍·현장학습·체험학습’이란, 마실이거나 나들이란 뜻입니다.


  ‘학습’이란 말은 안 붙여도 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 늘 배우기 마련이니 억지로 ‘학습’을 붙여야 하지 않습니다. 학교라는 곳에서는 모두 배움하고 얽힌 일을 하니, 구태여 붙일 일이 없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정 붙여야겠다고 여기면 ‘배움마실·배움나들이’쯤 쓸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 해보는 곳에 다녀온다면 ‘해보기마실·해봄마실’처럼 새 이름을 지어도 됩니다. 이름을 붙이거나 지을 적에는 어른끼리 알아듣는 말이 아닌, 처음 들을 어린이도 알아들을 만한 자리를 살펴서 지어야 합니다.


  삶터가 상냥하면 말은 저절로 상냥해요. 마을이 아름다우면 말도 저절로 곱지요. 보금자리가 사랑스러우면 말도 저절로 사랑스럽답니다. 말을 말대로 찬찬히 보고 가다듬을 노릇이면서, 말에 앞서 우리 삶을 짓는 이 터를 함께 살피면 좋겠어요. 우리 삶자리부터 ‘삶을 부수는(사회 파괴)’ 흐름이 깃들지 않도록 한다면, ‘말을 부수는(언어 파괴)’ 흐름도 저절로 사라지리라 여깁니다. 그러니까 ‘어른부터 스스로 말을 부수니까, 어린이랑 푸름이가 말을 부수는 일을 따라합’니다. 어른부터 말을 사랑하고 가꾸면, 어린이랑 푸름이도 말을 사랑하며 가꾸겠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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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꽃



 내가 바라는 말을 찾기


[물어봅니다]

  이 책에서 짚어본 여러 말은 대부분 겹말이었습니다. 또는 “생각 없이 던진 말”같이 아예 서로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이러한 말을 손질하자는 생각에는 많은 사람들이 같이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우리말이 있으면 굳이 한자말이나 서양말을 쓰지 말고 그 우리말을 쓰자는 생각도 나누고 있습니다. 이를 놓고 만약에 사람들이, 맞지 않는 표현도 아닌데 서양말이든 한자말이든 내가 원하는 말을 골라써도 되지 않냐며 굳이 우리말을 써야 하는 까닭을 묻는다면 저는 어떤 말로 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요?


[얘기합니다]

  먼저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굳이 우리말을 써야 하는 까닭”을 묻는 그분들을 설득하지 말아 주셔요. 아마 설득이 안 되고, 논쟁이나 토론만 되지 않을까요? 저는 이웃님을 ‘설득’하려고 사전을 쓰지 않습니다. 사전을 쓰는 길에 보기글이며 밑글을 잔뜩 헤아려야 하는데, 이러면서 ‘새롭게 생각을 밝혀서 쓰기’를 함께 살핍니다. 이를 다른 분들은 ‘글손질’로 바라봅니다만, 저는 글손질을 하지 않아요. ‘나라면 이 글에 담은 줄거리를 이렇게 말을 하겠다’는 뜻을 새롭게 밝히는 셈입니다. 보기를 들게요.


칼로 썰어 만드는 칼국수 (보기글 ㉠)

→ 칼로 썰어 끓이는 칼국수

→ 칼로 썰어 먹는 칼국수

→ 칼로 썰어서 하는 칼국수

→ 칼로 써는 국수


  저는 칼국수를 ‘끓여’서 먹습니다. 저는 칼국수를 ‘만들’지 않아요. 그러나 참 많은 분들은 영어 ‘make’를 한국말에 끼워넣어 “국수를 만든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분들은 이 말씨를 스스로 못 고치더군요. 스스로 길들었거든요.


  제대로 말하자면, 국수는 ‘삶’습니다. 삶는 모습은 ‘끓이기’하고 비슷하니 “국수를 끓여서 먹는다”처럼 말할 수 있어요. 밥을 ‘짓다·하다’로 말하니 “칼로 썰어서 하는 칼국수”처럼 말해도 되겠지요. 다른 보기를 들게요.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세 가지 요소인 의식주(衣食住) 가운데 (보기글 ㉡)

→ 사람이 살며 꼭 곁에 둘 세 가지인 옷밥집 가운데

→ 사람이 꼭 갖추며 살아가는 세 가지 옷밥집 가운데

→ 사람이 살자면 갖출 세 가지 옷밥집 가운데

→ 사람이 갖추며 사는 옷밥집 가운데


  보기글 ㉡을 네 가지로 새롭게 써 봅니다. 손질하지 않아요. 저라면 이러한 줄거리를 이처럼 새로 쓰겠다는 뜻일 뿐입니다. 보기글 ㉡을 잘 보면 ‘필요’하고 ‘요소’란 한자말이 나오는데, 두 한자말은 ‘요(要)’라는 한자가 나란히 깃들어요. 보기글 ㉡은 겹말인 셈이지요. 보기글 ㉡을 쓰신 분은 ‘의식주’라고만 하지 않고 한자로 ‘衣食住’를 달았어요. 저는 이 말씨를 ‘옷밥집’으로 적어 봅니다. ‘옷밥집’으로 적으면 다섯 살 어린이도 알아볼 테니까요.


  이제 물음말을 생각할게요. 우리가 스스로 생각을 깊고 넓게 한다면, 생각도 깊고 넓게 나타낼 테고, 생각을 담은 말이나 글도 깊고 넓게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이때에 볼 대목은 ‘깊거나 넓게 생각을 담은 말이나 글’은 영어인가 한자말인가 일본말인가 독일말인가 프랑스말인가, 아니면 한국말인가라 할 수 있어요.


  “우리말(한국말)이 있으니 굳이 우리말 아닌 영어나 한자말을 안 쓴다”가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생각을 가장 잘 나타내면서 스스로 즐거울 뿐 아니라, 이웃하고 한결 즐겁고 상냥하게 어우러지는 길을 살피면서 ‘한국말을 더욱 깊고 넓게 살펴서 쓰는 말결’을 돌아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굳이 우리말(한국말)을 쓰려고는 하지 않아도 좋다”고 이야기하겠어요. 우리 생각을 마음에 슬기롭게 담아서 글이나 말로 사랑스레 펼칠 수 있도록 ‘우리말(한국말)을 한결 깊고 넓게 보듬으며 생각을 펴자’고 이야기하겠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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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꽃



 ‘임산부 배려석’에 새 이름을


[물어봅니다] 서울메트로에서 ‘임산부 배려석’을 두면서 홍보 노래를 틀어 주는데, 노랫말이 좀 어색해 보입니다. 숲노래 님이 좀 우리말답게 손질해 주실 수 있을까요? 서울메트로에 노랫말을 고쳐 보라고 건의하고 싶어요.


[이야기합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임산부 배려석’이란 이름부터 안 쉽구나 싶습니다. 되도록 차분하면서 아끼려는 말씨로 이런 이름을 쓰는구나 싶지만, 어린이 눈높이를 찬찬히 생각한다면 한결 부드러우면서 살가이 이름을 지을 만해요. 먼저 ‘임산부’란 “아기 엄마”나 “아기 어머니”입니다. ‘임부 + 산부’인 ‘임산부’라지만, 한국말로는 “아기 엄마”일 뿐이에요. 왜 그러한가 하면, 한국에서는 아기를 몸에 밸 적부터 ‘엄마·어머니’로 여기고, 이때부터 사내도 ‘아빠·아버지’입니다. 아기를 낳은 뒤부터 ‘엄마 아빠’가 아니라, 아기를 밴 그날부터 ‘어머니 아버지’예요.


  이런 살림살이를 들여다본다면 ‘아기 엄마(아기 어머니) ← 임산부’로 가다듬을 수 있어요. 다음으로 ‘배려’란 “마음을 쓰기”예요. 아기 엄마한테 마음을 쓰며 자리 한 칸을 내어주도록 하자면, “아기사랑칸·아기사랑 자리”나 “엄마사랑칸·엄마사랑 자리”처럼 이름을 붙여도 됩니다.


  아기는 혼자 다니지 못해요. 엄마나 아빠가 늘 같이 있어요. 그러니 ‘아기사랑칸’이라고 해도 어울려요. ‘엄마 아빠’는 아기가 쓰는 말이에요. 그래서 ‘엄마사랑칸’이라 하면, 아기를 배거나 갓 나은 분을 헤아리는 이름이 됩니다.


핑크색 자리를 임산부 자리로

우리의 배려가 멋진 하루 만들어줄 거예요


  이제 ‘서울메트로 임산부 배려석 노래’를 살피겠습니다. “핑크색 자리”라든지 “우리의 배려가 멋진 하루 만들어줄 거예요” 같은 대목이 좀 아쉽네요. 빛깔말을 보자면 한자말로 ‘분홍’이 있고, 한국말로는 ‘진달래빛·철쭉빛’이 있어요. 남녘에서 널리 자라다가 이제 서울 쪽에서도 볼 수 있는 ‘배롱나무 꽃빛’인 ‘배롱빛·배롱꽃’이 있습니다. 그리고 ‘배려가 하루 만들어줄 거예요’ 같은 글월은 퍽 엉성합니다. 번역 말씨로군요. 이 노래를 찬찬히 손질해 보겠습니다.


1. 배롱빛 자리를 아기 엄마한테 

우리 사랑으로 멋진 하루를 지어요

2. 배롱꽃 자리를 아기 엄마한테 

사랑스레 마음쓰는 멋진 하루


  ‘배려석’이란 이름을 썼지만 노래에서는 ‘자리’라 했네요. 이 말씨를 잘 살피면 좋겠어요. 그리고 “배롱빛 자리”라 하며, 사람들이 빛깔을 새삼스레 꽃빛으로 느껴서 생각하도록 이끌 만해요. 배롱꽃이 낯설다 하면 ‘진달래꽃’이라 해도 좋아요. 이러면서 전철에 꽃무늬를 그려 넣으면 더욱 좋겠지요. 배롱꽃을 낯설어 하더라도 배롱꽃 무늬를 넣어서 ‘아기 엄마는 배롱꽃처럼 눈부시고 고운 사랑입니다’ 하고 알려도 좋습니다.


  “멋진 하루를 지어요”라는 대목을 살린다면 “우리 사랑으로”를 앞에 넣어서 꾸미도록 합니다. 이 말씨는 “사랑스레 마음쓰는”을 앞에 넣고 “멋진 하루”로 뒤쪽을 마무리하는 얼거리로 써 보아도 됩니다.


  아기 엄마한테 마음을 쓰면서 사랑을 나누는 멋진 하루가 되기를 바라는 뜻 그대로, 전철에 있는 자리 하나에 붙이는 이름에도 즐거이 마음을 기울이면 좋겠어요. 이 마음을 꽃빛으로, 꽃 가운데에서도 긴긴 날을 해사하게 밝히는 배롱꽃 빛깔로 한결 살뜰하면서 부드럽고 포근하게 비춘다면 더욱 좋을 테고요. 활짝 웃고 노래할 수 있는 마음이 꽃빛으로 곱게 물들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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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꽃



 순우리말이 더 어렵다면


[물어봅니다] 그 글들은 한 번씩 다 읽어 봤어요. 그런데 읽다 보니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순우리말을 쓰지 않아 버릇해서 그런지 순우리말로 쓰면 더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고, 의미가 좀 바뀐다(?)는 느낌도 있어서,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이야기합니다] 먼저 ‘순우리말’이 무엇인지부터 짚겠습니다. 사전을 살피면 ‘순우리말(純-)’을 “우리말 중에서 고유어만을 이르는 말”로 풀이합니다. ‘고유어’란 낱말을 써서 풀이하니, ‘고유어(固有語)’도 찾아보는데 “1. [언어] 해당 언어에 본디부터 있던 말이나 그것에 기초하여 새로 만들어진 말. 국어에서는 ‘아버지’, ‘어머니’, ‘하늘’, ‘땅’ 따위가 있다 ≒ 토박이말·토착어”로 풀이합니다. 사전풀이로만 본다면 ‘순우리말 = 고유어 = 그 말을 쓰는 터에서 예전부터 쓰던 말’을 가리킨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순우리말’이나 ‘고유어’ 같은 이름을 쓴 지 얼마 안 되었어요. 일제강점기 즈음 이르러 비로소 이런 이름을 썼습니다. ‘토박이말·토착어’ 같은 이름도 쓴 지 얼마 안 된다고 느껴요. 이 또한 일제강점기 어림해서 겨우 불거지고는 더러 썼구나 싶어요.


  예전에는 어떤 말을 썼을까요? 1800년대 첫머리, 1500년대, 1200년대, 800년대, 300년대 같은 무렵에 이 땅에서는 어떤 말로 생각을 나눴을까요? 이천 해나 오천 해 앞서는 어떤 말로 마음을 주고받았을까요?


  요새는 쉽게 ‘우리말’이라 합니다만, ‘우리말’이란 말조차 일제강점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타난 말이라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 땅에서 사는 사람이 ‘말’을, 여느 말을, 예전부터 죽 흐르던 ‘그냥 말’을 쓰지 못하게 가로막힌 때에 한꺼번에 ‘우리말·순우리말·고유어·토박이말·토착어’란 말이 태어났고, ‘고유어·토착어’는 중국말로 지식을 펴는 길이 익숙하던 이들이 일본 한자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퍼뜨린 말씨요, 이 말씨가 달갑잖으면서 독립운동에 마음을 기울인 쪽에서는 ‘우리말·순우리말·토박이말’이란 말을 새로 지은 셈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봐요. 우리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말(또는 조선말)을 들을 수 없이 일본말만 들으면서 일본 학교에 다니고 일본글이 적힌 책만 읽어야 하는 판이라면 ‘일본말 = 우리말’이에요. 꽤 많은 한국사람이 이러했습니다. 그래서 해방 뒤에 어쩔 줄 몰라하던 분이 무척 많아요. 해방 뒤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나온 책이나 신문을 살피면 새까맣게 한자투성이랍니다. 한국말 아닌 일본말(일본 한자말)이 익숙한 분은 글을 쓸 적마다 새까맣게 일본 한자말을 그려 넣어요. 한자를 벗긴 한글로 적으면 낯설어하고, 한자말을 어린이도 알아들을 수 있게 풀이하거나 바꾸면 힘들어했어요.


  1980년대를 지나며 책이나 신문에서 한자가 많이 걷혔습니다. 해방 뒤에 태어난 사람이 부쩍 늘어난 탓이에요. 1990년대를 지나고 2000년이 되니 이제 신문에서 한자를 쓰는 일이 없다시피 해요. 2010년대를 지나는 요새는 한자 쓰는 이가 거의 없으나, 새롭게 영어를 쓰는 이가 늘지요. 우리는 이 흐름을 잘 읽어야 해요. 일제강점기에 앞서는 사람들이 ‘순우리말이나 토박이말이나 고유어가 아닌 그냥 한국말’을 스스럼없이 즐겁게 썼어요. ‘깨끗한 우리말’이 아닌 ‘삶·살림을 사랑으로 담은 수수한 말’을 나누었습니다. 그때에는 사투리만 있었으니, 다른 고장 사투리가 처음에는 낯설어도 꾸준히 말을 섞으면 다 알아차렸어요. 이와 달리 일제강점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에는 ‘삶을 사랑으로 담은 수수한 말’보다는 ‘일본 한자말, 중국 한자말, 영어, 번역 말씨’라는 네 가지 굴레가 판을 치면서, 이러한 말씨가 책하고 신문에다가 교과서에 방송까지 차지했습니다.


  이리하여 앞으로는 새로운 한국말을 살피고 가꿀 노릇이라고 느껴요. 우리가 갓난아기한테 들려주는 말을, 다섯 살 어린이한테 가르치는 말을, 열 살 어린이가 기쁘게 배울 만한 말을 새로 찾고 살찌울 일이라고 느낍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나 여느 어른이 쓰는 말씨를 열 살 어린이한테 그대로 쓰면 알아들을 만할까요? 아니지요? 저는 ‘열 살이나 다섯 살 어린이’도 함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을 가다듬으려 합니다. 누구나 스스로 익숙하게 듣고 쓰던 낱말이 아니면 아리송하거나 ‘뜻이 바뀌었네’ 하고 느껴요. 꼼꼼히 밝힐 뜻도 살피되, 말에 담는 마음과 숨결을 함께 살펴 주시면 좋겠습니다. ‘순우리말’ 아닌 ‘삶·살림을 사랑으로 담은 말’을 함께 생각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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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꽃



 쓰사살, 안버림, 즐안삶


[물어봅니다]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제로 웨이스트 카페에 가입을 하고 활동을 하고 있는데, ‘제로 웨이스트’는 우리말로 옮기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야기합니다] 말뜻대로 본다면 “쓰레기 없애기”나 “쓰레기 치우기”가 되겠네요. 이 말뜻 그대로 쓸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온누리에 쓰레기가 없어지기를 바란다면 “쓰레기 없애기”를, 온누리에 있는 쓰레기를 치우기를 바란다면 “쓰레기 치우기” 같은 이름을 쓰면 되어요.


  그런데 이 이름으로는 아무래도 수수하구나 싶어서 다른 이름을 찾아볼 수 있어요. 어느 분은 수수한 그대로 좋아서 수수한 이름을 쓸 만하고, 어느 분은 좀 남다르면서 도드라지는 이름을 쓰고 싶을 만해요. 그래서 수수한 이름 말고 다른 이름도 생각해 볼게요.


 쓰레기 살리기. 쓰레기에 새 숨결을. 쓰레기를 사랑으로 살려쓰기


  쓰레기는 나쁘지 않습니다. 쓰고 남기에 쓰레기일 뿐입니다. 쓰고 남은 것은 저절로 흙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숨결로 피어나요. 자, 나무를 헤아려 봐요. 숨을 다해서 마른 나뭇잎은 가지에서 톡톡 떨어집니다. 가랑잎이란 무엇일까요? 언뜻 보면 쓰레기이지만, 가랑잎은 흙을 살찌워 나무를 새롭게 북돋우는 구실을 합니다. 그러니까 ‘쓰레기’란 이름이 붙는 것은 우리 살림터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숨결이나 바탕인 셈입니다. 이를 생각하면 “쓰레기 살리기”나 “쓰레기를 사랑으로 살려쓰기”나, 이를 줄인 ‘쓰사살’ 같은 이름을 쓸 수 있어요.


  ‘제로 웨이스트(zero-waste)’를 더 생각해 볼게요. 사람들이 ‘제로 웨이스트’를 한다면서 펴는 다짐을 살피니 “환경보호·되살림·다시쓰기·플라스틱 줄이기”, 이쯤으로 간추릴 만해요. 이런 네 가지는 무엇을 쓰거나 다루거나 장만할 적에 “쓰레기가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이라고 할 만해요.


  몇 가지로 새로 간추려 볼게요. “버려지지 않도록. 버리지 않기. 쓰레기 줄이기. 쓰레기 없애기.” 이렇게 간추리면 어떤 이름이 어울릴 만한가를 짚기에 좋아요. 이 다짐을 바탕으로 “안 버리기·안 버려요” 같은 이름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널리 말할 만한 이름이라면 ‘안버림’처럼 짧게 붙여서 쓰고, ‘안버림삶’이나 ‘안버림살림’처럼 뒷말을 붙여도 되어요.


  즐안삶. 즐안살림. 즐안길


  그런데 어떤 물결이든 일부러 하려면 힘들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좋은 뜻이라 하더라도 ‘좋은 뜻만 너무 앞세우’면 좀 벅차거나 힘이 빠질 수 있어요. 그래서 ‘제로 웨이스트’라는 물결에서도 ‘즐겁게 하자’는 마음을 담으면 한결 나으리라 여겨요.


 즐안삶 : 쓰레기가 나오지 않도록 즐겁게 안 쓰는 삶 + 쓰레기가 없도록 즐겁게 안 버리는 살림

 즐안날 : 쓰레기가 나오지 않도록 즐겁게 안 쓰는 날 + 쓰레기가 없도록 즐겁게 안 버리는 날


  ‘즐’을 앞에 넣으면 어떨까요? 쓰레기가 나오지 않도록 즐겁게 안 쓰는 삶, 쓰레기가 없도록 즐겁게 안 버리는 삶, 이렇게 해보아도 돼요. 오래오래 즐겁게 푸른길이며 푸른삶을 지으면 좋겠지요.


  어떤 영어를 어떤 한국말로 ‘고치면 좋을’까 하는 생각이 아니라, 어떤 새로운 살림을 어떤 새로운 마음으로 ‘담아내어 새롭게 지으면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먼저 수수한 이름으로, 이다음에는 즐거운 이름으로, 이러면서 뜻있고 사랑스러운 이름을 하나하나 혀에 얹으면 좋겠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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