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군내버스 006. 나락 말리는 가을에

 


  나락 말리는 가을에 시골길을 달리는 군내버스는 나락내음을 싣고 달린다. 마을마다 길바닥에 나락을 말리느라 부산하고, 군내버스는 이 마을과 저 마을을 돌면서, 다 다른 마을에서 다 다른 할매와 할배가 거둔 나락마다 곱게 풍기는 내음을 담아 고흥군을 한 바퀴 돈다. 왜 찻길에 나락을 말리느냐고 따질 수 있을 테지만, 나락을 말리는 할매와 할배가 군내버스를 타는 손님이다. 군내버스가 태울 할매와 할배는 나날이 줄어든다. 길바닥에 나락을 더 말리지 못한다면, 군내버스에 탈 할매와 할배도 사라지고 만다는 뜻이 될 테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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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군내버스 005. 가을억새 버스

 


  겨울을 앞둔 늦가을 들길은 고즈넉하다. 들은 벼를 모두 베어 텅 빈다. 그러나 들이 비었다고 할 수 없다. 마늘을 심은 논이 있고 유채씨를 뿌려 이듬해 경관사업을 하는 논이 있다. 무엇보다, 벼를 베었어도 흙이 있으며 들풀이 살몃살몃 고개를 내미니까 ‘비었다’고 할 수 없다. 빗물에 흙이 쓸려 시멘트도랑에 흙바닥이 생기면 억새가 씨앗을 날려 자란다. 지난날에는 시멘트도랑 아닌 흙도랑이기만 했을 테니 가을억새 물결이 훨씬 곱고 커다랐으리라 생각한다. 고작 열 해 앞서만 하더라도 훨씬 출렁대는 가을빛 밝은 길을 시골버스가 달렸겠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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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군내버스 004. 버스 냄새 나

 


  아이들이 버스만 지나가면 “아이, 버스 냄새.” 하고는 코를 싸쥔다. 자동차 지나가는 일이 아주 드문 두멧시골에서 살다 보니, 어쩌다 마주치는 버스가 있어도 ‘자동차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군내버스를 타도 택시를 타도 늘 ‘자동차 냄새’를 말한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서 코를 싸쥐고는 웃는다. 좋구나. 그런데 무엇이 좋니?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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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군내버스 003. 할머니 보퉁이

 


  마을 할매가 광주로 마실을 갑니다. 할매는 귤상자를 보자기로 싸서 들고 갑니다. 상자는 귤상자이지만 속에는 온갖 먹을거리가 담겼겠지요. 시골에서 흙을 일구어 거둔 여러 가지를 이래저래 손질하고 여러모로 버무린 먹을거리가 가득하겠지요. 할매는 짐보퉁이가 무거워 잘 들지도 못하시는데, 이 보퉁이를 땀을 빼며 들고 갑니다. 택배로 부쳐도 좋으련만 택배값 얼마를 아끼고 싶으실 테고, 할배 경운기를 빌어 우체국까지 다녀오는 길도 멉니다. 깨지거나 쏟아지는 먹을거리는 섣불리 택배로 못 부치기도 합니다. 그러면, 도시로 떠나 살아가는 이녁 딸아들이 시골로 찾아와서 이 보퉁이를 가지러 들를 수 있을까요. 그래도, 할매는 이녁 아이들을 보러 마실을 떠날 적에 빈손으로 가지 못합니다. 이것 챙기고 저것 꾸리다 보니 어느새 매우 묵직한 보퉁이가 됩니다. 2014.3.13.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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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군내버스 002. 버스 탈 적에

 


  시골에서 군내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거나, 언제나 할매가 먼저 오릅니다. 방정맞은 할배라면 할매보다 앞서서 타기도 합니다. 마을에서 잔치가 있어 고기집에서 모임을 하면, 고기집 작은 버스가 마을로 찾아오는데, 이때에도 할매부터 한 분씩 버스에 다 올라서 앞쪽 자리에 앉습니다. 이렇게 할매들이 다 타고 나서야 할배들이 한 분씩 올라서 뒤쪽 자리에 앉아요. 짐을 드는 몫도 할배입니다. 할배 허리가 안 좋다면 모르되, 노란 보퉁이가 되든 빨간 보따리가 되든 언제나 할배가 짐꾸러미를 듭니다. 2014.3.13.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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