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책 12] 새와 사람

 


  잠에서 깨어날 때부터
  일 마치고 즐거이 오순도순 모여
  하루 돌아보는 이야기꽃 피우다가 잘 때를 알려주는 새

 


  시골마을 어르신은 새벽 세 시 반이나 네 시부터 하루를 엽니다. 저녁 일고여덟 시에 하루를 닫습니다. 일이 바쁜 철에는 저녁 아홉 시나 열 시에 하루를 닫는데, 바쁜 철 지나면 으레 네 시부터 일고여덟 시까지 들일을 합니다. 멧새는 언제나 네 시 언저리부터 새벽노래를 부르고, 저녁 일고여덟 시 즈음이면 저녁노래를 부릅니다. 멧새가 새벽노래를 부를 무렵에 밤개구리 노랫소리 잦아듭니다. 멧새가 저녁노래 부를 무렵에 저녁개구리 노랫소리 피어납니다. 달리 생각하면, 개구리 노랫소리 멎을 때부터 하루를 열고, 개구리 노랫소리 다시 피어날 때에 하루를 마감하는 셈입니다. 시계 없이 하루를 살핍니다. 시계보다 또렷한 하루 흐름을 헤아립니다. 날과 날씨와 철에 맞추어 몸과 마음을 움직입니다. 달력이 아닌 삶에 따라 이야기를 짓습니다. 4346.6.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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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1] 시냇물과 빨래터와 샘가

 


  마을마다 시냇물 다시 흐르고
  샘물과 빨래터 차츰 복닥거리면
  이야기꽃 조촐히 살아납니다.

 


  구불구불 시냇물이 흘러야 물이 깨끗하고 흙이 기름지다고 어릴 적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1980년대에 다닌 국민학교 자연 수업에서 이런 이야기를 배웠어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삶터 돌아보면 구불구불 시냇물은 자취를 감추어요. 구불구불 논두렁도 자취를 감추지요. 길도 반듯하게 펴고, 논자락도 냇물도 몽땅 반듯하게 밀어요. 이러는 동안 물은 차츰 흐려지고 더러워집니다. 이러는 사이 바람은 매캐해집니다. 자동차가 늘고 시골 논밭도 기계가 차지해요. 그러면 우리 삶은 나아졌을까요. 지난날 시골마다 넘치던 노래와 놀이와 두레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노래와 놀이와 두레를 즐길까요. 오늘날 도시와 시골에는 어떤 이야기 남거나 새로 태어날까요. 시냇물 사라지고, 골짜기 관광지로 바뀌며, 샘터와 빨래터 파묻히면서,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이야기가 시나브로 없어집니다. 4346.6.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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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0] 외딴섬에서 눈을 뜨다

 


  외딴섬에서 눈을 뜹니다
  바람 햇살 흙 풀 꽃 숲 나무
  고이 어우러져 눈을 틔웁니다

 


  서울에서는 눈을 감습니다. 바람도 햇살도 흙도 풀도 꽃도 숲도 나무도 만날 길 없기 때문입니다. 서울에서는 눈이 감깁니다. 바람이든 햇살이든 흙이든 풀이든 꽃이든 숲이든 나무이든 싱그러이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부터 누군가 엉터리와 같은 말,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낸다’ 같은 이야기를 퍼뜨립니다. 서울에도 고운 바람 불었고 맑은 햇살 있었지만, 이제 서울로 찾아가는 제비가 없습니다. 서울에도 살가운 흙 푸른 풀 있었으나, 이제 서울에서는 숲도 나무도 꽃도 맑게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자동차 넘치며 아파트가 치솟습니다. 서울사람 스스로도 서울에서 눈을 못 뜨지만, 시골사람도 서울에 깃들면 감기는 눈 지키기 벅찹니다. 4346.6.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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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9] 생각을 부르는 말

 


  늘 좋은 생각 불러일으키는 낱말
  아이도 어른도 가슴에 곱게 담아
  온누리 아름답게 빛나지요

 


  좋은 생각 불러일으키는 낱말을 찬찬히 읊으면 참말 좋은 생각 샘솟습니다. 슬픈 생각 불러일으키는 낱말을 가만히 떠올리면 참말 슬픈 생각 떠오릅니다. 고운 생각을 바라기에 고운 말을 노래합니다. 미운 생각을 바라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꾸 미운 생각을 하는 바람에 시나브로 미운 말이 튀어나옵니다. 생각하는 대로 말이 되고, 말을 하는 대로 삶이 되며, 삶을 짓는 대로 사랑이 됩니다. 사랑을 품에 안아 삶을 일구고, 삶을 일구면서 말이 태어나며, 말이 태어나는 사이에 어느덧 생각이 찬찬히 자랍니다. 4346.6.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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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8] 아이가 태어날 때에

 


  아이가 태어날 때에
  나무 한 그루 심어
  삶동무 삼습니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마당에 나무 한 그루 심을 수 있어, 언제나 마당나무 바라보며 놀고 자랍니다. 밭이 있는 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밭둑에 나무 한 그루 심을 수 있으니, 날마다 자라며 밭나무 마주하고, 어느덧 어른 되면 밭나무는 시원한 그늘 드리워 모두한테 기쁜 웃음 베풉니다. 숲을 돌보는 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숲 한켠에 나무 한 그루 심기도 하지만, 해마다 나무 스스로 떨구는 씨앗에 따라 씩씩하게 자라는 어린나무를 동무나무로 삼을 수 있습니다. 언제나 숲에 깃들며 숲내음 먹고 숲바람 들이켜면서 푸른 숨결 건사합니다. 나무를 안고 나무를 사랑하며 나무를 아끼는 아이들은 모두 시인이고 작가이며 살림꾼입니다. 시인은 총을 들지 않습니다. 작가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살림꾼은 아이를 사랑으로 낳아 사랑으로 돌봅니다. 4346.6.1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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