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넋 2023.4.24.

책하루, 책과 사귀다 176 책집



  쌀집에서는 쌀을 팔고, 빵집에서는 빵을 팝니다. 꽃집에서는 꽃을 팔고, 이웃에 있어 이웃집입니다. 그런데 좀먹은 쌀을 팔거나, 풀죽임물(농약)을 듬뿍 쓴 쌀을 판다면? 총칼(전쟁무기)로 이웃나라를 짓밟는 나라에서 거둔 밀을 사들여서 구운 빵을 판다면? 풀꽃나무 씨앗을 마구 건드리거나 바꾸어서 겉보기로만 이쁜 꽃을 판다면? 담을 맞댄 옆집이라지만 마당에서 비닐을 태우고 밤낮없이 쿵쾅거리고 쓰레기를 휙휙 던진다면? 책집은 어떠한 책이라도 다루거나 팔아도 될는지 궁금합니다. 책마을을 망가뜨리는 짓을 하면서 목돈을 벌어들인 펴냄터 책을 ‘베스트셀러’라거나 ‘손님이 바란다’고 해서 들여놓거나 팔아도 될까요? 책집이란, 뜻있거나 뜻깊거나 값있거나 값진 책을 알리기도 하는 자리이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삶길·살림길·숲길·사람길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생각을 밝히는 마음이 흐르도록 징검다리 노릇을 하는 자리를 먼저 헤아릴 일이라고 여겨요. 더 많은 책이나 더 좋은 책이나 더 대단한 책이 아닌, 틀에 굳거나 갇히지 않는, 틀에 가두거나 감추지 않는, 누구나 어린이란 마음으로 살면서, 또 어린이 곁에 서며 어깨동무하는 마음을 북돋울 책을 둘 적에 비로소 책집이나 책숲이라는 이름을 쓸 만할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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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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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넋 / 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75 날



  하루가 빛난다면 이틀도 빛나고 사흘도 빛나며, 나흘 닷새 엿새 열흘 스물 모두 빛납니다. 한 해 삼백예순닷새 모두 빛나요. 하루가 어둡다면 이틀도 어둡고 사흘도 어두우며, 나흘 닷새 엿새 열흘 스물 모두 어두우니, 한 해 내내 어둡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날은 한 해 가운데 하루라고 일컫는데, 밤에 잠들어 아침에 깨어나는 삶을 돌아본다면, 모든 날이 빛날(생일)이로구나 싶어요. 첫날을 첫걸음 삼아 두걸음 석걸음 차근차근 딛습니다. 다 다른 하루를 다 다르게 걸어가면서 언제나 스스로 빛나는 눈길로 오늘을 지어요. 둘레에서 치켜세워 줄 빛날 하루가 아닌, 스스로 춤출 한 해 모든 날입니다. 이 얼거리를 문득 깨달은 때부터 빛날잔치(생일파티)를 아예 안 하고, 제가 태어난 하루라는 날마저 잊습니다. 다 다른 한 해 내내 곁님하고 아이들하고 새삼스레 즐길거리에 웃음거리에 이야깃거리에 생각거리에 사랑거리에 살림거리를 찾아내고 가꿉니다. “왜 진작 몰랐을까?” 하고 뉘우칠 일은 없습니다. 오늘 알았다면 오늘부터 빛나면 돼요. 아직 모르면 앞으로 익히고 새겨서 빛나면 되어요. 누구나 알맞구나 싶은 때에 눈을 뜨고 마음을 열어 맞아들입니다. 빨리 살아낼 하루가 아니듯, 얼른 읽어치울 책이 아니니, 가볍게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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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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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하루, 책과 사귀다 174 손빛책



  어릴 적부터 ‘헌책방’을 다녔습니다. 그러나 둘레에서는 ‘고서점·중고서점’이라고 일컫더군요. 1992년부터 ‘책방마실·책방나들이’란 이름을 지어서 쓰니, 둘레에서는 ‘서점순례·책방투어’로 고쳐쓰라고 자꾸 떠밀었습니다. 2007년 즈음부터 ‘책집’이라는 낱말을 섞어쓰고, 2010년 즈음부터 ‘마을책집’이란 이름을 함께쓰다가 ‘책빛숲·책집마실·책빛마실·책숲마실·책꽃마실’ 같은 이름도 지었습니다. ‘책집·새책집·헌책집’에 ‘책숲·책마루숲·책숲집’처럼 여미어 보고요. 여기에 ‘헌책·손길책·손빛책’처럼 새삼스레 가리킬 이름을 짓기도 합니다. 둘레에서는 수수한 우리말 ‘헌책·새책’을 낮춤말처럼 삼더군요. 한자로 ‘중고서적·고서·신간·신서’라 해야 책맛이 난다고 여겨요. 우리말 ‘허(헌)’는 ‘허허바다’처럼 ‘하늘(가없이 넓고 크며 하나)’을 밑뜻으로 품습니다. 우리말 ‘새’는 ‘새롭다·생각·사이·삶·살림·사랑·사람’을 밑뜻으로 품습니다. 작고 수수한 낱말에 오히려 크며 깊고 너른 숨결이 깃듭니다. 헌책은 손길을 타면서 빛나기에 ‘손빛책’으로 바라볼 만합니다. 수수하게 ‘손길책’이기도 합니다. 새책이라면 ‘새책빛·사잇책’처럼 새록새록 마주할 수 있어요. 모두 책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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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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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하루, 책과 사귀다 173 쓸모



  우리는 다 다른 곳에서 다 다르게 살기에, 어느 분은 풀을 보며 ‘김(잡초)’이라고 느껴 김매기(잡초 제거)를 해야 합니다. 어느 분은 모든 풀이 다 다른 곳에 쓰임새가 있는 줄 느껴, 풀마다 이름을 붙이면서 요모조모 알뜰하게 건사합니다. 풀책(식물도감)을 펴면 참말로 모든 풀이 어떤 쓰임새(약효)가 있는가를 밝힙니다. 둘레에 “자, 보셔요. 이 풀은 이렇게 알뜰히 쓴답니다. 그렇게 사납게 죽이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 ‘못 쓸 풀(잡초)’이란 없이, 우리가 ‘안 쓰는 풀’일 뿐인걸요.” 하고 이야기하지만, “에그, 그렇게 하면 밭이 다 망가져!” 하는 대꾸가 쏟아집니다. 배추밭이며 마늘밭을 하자니 풀을 모조리 뽑거나 죽입니다. 어쩌면 서울살이(도시생활)라는 길도 김매기 같지 싶어요. 어떤 일을 겪거나 하건 늘 배워요. 배우지 않는 날이란 없어요. 책이나 배움터에서만 배우지 않아요. 밥을 짓다가도, 아기를 안아 어르다가도, 길에서 넘어지다가도, 매캐한 바람에 콜록이다가도, 파랗게 트인 하늘을 보다가도, 문득 이 삶을 배워요. 쓸모만 찾다가는 책을 책대로 못 읽지 싶습니다. 쓸모가 아닌 기쁨을 마음에 품고서 마주할 적에 모든 다른 책마다 일렁이는 즐거운 기운을 맞아들이면서 책읽기를 삶노래로 녹여내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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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하루, 책과 사귀다 172 놀이



  어린이 누구나 집·골목·마을을 비롯해 들숲바다하고 멧골하고 냇물에서 놀던 무렵에는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어른은 어른대로 기쁘게 일하고,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신나게 놀면서 어우러졌어요. 어린이 누구나 어디에서도 뛰어놀 틈이 사라진 오늘날에는 그야말로 거의 모두라 할 사람들이 걱정투성이입니다. 이제는 어른이며 어린이가 나란히 걱정꾸러기입니다. 어린이로서는 실컷 뛰놀 터전을 몽땅 빼앗기고, 어른으로서는 이웃하고 기쁘게 얼크러지며 땀흘리던 삶터를 잃었어요. 빈터를 차지하고 잡아먹는 부릉이입니다. 빈터에 들어서는 끝없는 가게입니다. 빈터마다 빼곡하게 박는 갖은 알림판(광고판)입니다. 눈을 느긋이 둘 틈이 없고, 숨을 가벼이 돌릴 틈이 없습니다. 서울도 시골도 온통 부릉부릉 시끄러워 멧새가 노래하고 바닷새가 춤추는 모습을 눈여겨볼 틈새가 없다시피 합니다. 예부터 어른들은 “책 좀 그만 읽고 놀아라” 하고 말씀했습니다. 아무리 종이꾸러미에 담은 줄거리가 알차더라도 먼저 몸뚱이를 바람한테 맡기고 들꽃한테 띄우고 해랑 눈비한테 보낼 적에 깊고 넓게 삶을 익혀 사랑에 눈뜬다고 여겼어요. 아이어른 모두 한 손에 책을 쥐려 한다면, 다른 손에는 신바람으로 놀이를 누릴 숲을 놓아야지 싶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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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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