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46 시늉



  모두 받아들여서 나아가는 길이 가장 느린 듯하지만 가장 빠릅니다. 그런데 모두 똑같이 맞추라고 억누른다면 가장 빠른 길이 아니라 가장 어리석은 길입니다. 모두 받아들이지는 않으나 더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는 길로 나아가려 할 적에는 다툼질이 잇따르고 오락가락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길(다수결)’로 틀을 잡을 적에는 언제나 ‘기꺼이 받아들이기(승복)’를 바탕으로 깝니다. 기꺼이 받아들일 줄 모른다면, 우리가 졌을 때뿐 아니라 우리가 이겼을 때에 저쪽에서 딴죽을 걸어도 된다는 뜻이에요. 오늘날 우리나라는 겉으로 ‘민주주의’란 이름이지만, 속으로는 ‘끝없는 쌈박질·딴죽질’입니다. 딱 하나만 옳은길로 삼으려 하되 모두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찬찬히 기다리지 않아요. 딱 하나 옳은길을 서둘러 따르라고 억누르는 얼개입니다. 누가 나라지기로 뽑히더라도 함께 아름다이 어우러지며 어깨동무로 노래하고 사랑할 길을 이야기할 노릇입니다. ‘꼭 내가 거머쥐어야 한다’거나 ‘넌 거머쥐어서는 안 돼’ 하고 가른다면, ‘시늉만 민주주의인 독재·독선’입니다. 틀이나 이름이나 우두머리는 대수롭지 않아요. 우리 스스로 슬기로우면서 착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레 이 삶을 저마다 다른 숨결로 가꿀 노릇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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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넋/숲노래 책빛 2022.10.25.

책하루, 책과 사귀다 145 안 읽는다면



  해마다 나오는 어림셈(통계) 가운데 하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얼마나 안 읽느냐’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책을 참 안 읽는다’고 밝히는 어림셈이 안 옳다고 느껴요. ‘종이꾸러미’만 책일 수 없거든요. 바람하고 해하고 흙하고 풀꽃나무도 책입니다. 아이가 바라보는 어버이 눈망울도 책이요, 어버이가 마주하는 아이 눈빛도 책입니다. 왜 ‘종이꾸러미를 몇 자락 훑었느냐’ 하나만 ‘책읽기’로 따져야 할까요? “요즈음 사람들이 책을 참 안 읽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하고 묻는 분한테 “읽는 사람일 뿐 아니라 쓰는 사람으로서, 먼저 잘못했다고 빌고 싶습니다. 저 스스로 이웃님이 기쁘면서 새롭게 읽을 만한 책을 제대로 못 써낸 탓일 테니까요.” 하고 대꾸합니다. 이러고서 “요즈음 이웃님이 ‘즐겁게 삶을 두루 바라보고 누리도록 북돋우는 여러(다양한) 책’을 아직 모르기 때문일 수 있어서, 날개책(베스트셀러)이 아닌, 작고 수수한 책을, 이름이 그리 알려지지 않았어도 알차며 아름다운 책을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서 이웃님한테 이야기하고 알려주어야겠구나 하고도 생각해요.” 하고 보태지요. 몇 가지 책이 날개책이 되기보다는, 즈믄(1000) 사람이 즈믄 가지 책을 읽으며 다 다르며 새롭게 마음빛을 가꾸기를 빕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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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넋 2022.10.24.

책하루, 책과 사귀다 144 표절



  저는 베낌질(표절)이나 훔침질(도용)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다른 분 글을 베끼거나 훔칠 만큼 널널하지 않을 뿐더러, 제가 살아왔고 살아가는 나날을 글로 담아도 넉넉하거든요. 글멋을 부리려는 이웃님한테 “부디 멋질에 품을 쓰지 마시고, 이웃님 하루를 수수하게 옮기셔요. 띄어쓰기·맞춤길이 틀려도 됩니다. 다른 사람이 잘 봐주기를 바라지 마셔요. 마음빛 하나만 바라보고서 쓰셔요. 베끼거나 훔친 글은 다 티가 나요. 삶을 사랑하며 숲빛으로 여미면서 살림한 나날을 옮긴 글은 바로 이웃님 스스로 두고두고 되읽으면서 온넋을 적시는 빛줄기가 된답니다.” 하고 여쭙니다. 그런데 이 나라를 보면 ‘베낌글꾼·훔침글꾼(표절작가·도용작가)’이 몇 해쯤 얌전히 숨은 듯 지내다가 슬금슬금 나와서 책장사를 합니다. 주먹질(학교폭력)을 일삼은 배구선수도 슬쩍슬쩍 다시 돈벌이를 하려고 나섭니다. 문득 묻고 싶습니다. 베낌글꾼이 쓴 책이 아니면 그렇게 읽을 책이 없나요? 훔침글꾼이 낸 책이 아니면 우리 마음을 적실 길동무로 못 삼나요? 아무 책이나 곁책(반려책)으로 못 삼습니다. 아이들한테 아무 책이나 쥐어 주어도 될까요? 들꽃을 짓밟은 사납짓으로 붓을 쥔 이들은 우리가 쫓아내야지요. 그들 손에는 호미를 쥐어 줍시다.


ㅅㄴㄹ


베낌글꾼 신경숙을 못 쫓아낼 뿐 아니라

오나오냐 감싸니까

설민석이 또 슬금슬금 기어나온다.

예전에 배구선수였던 학폭범 쌍둥이 자매도

다시 돈벌이를 하려고 기어나온다.


그들은 ‘반성도 자숙도 없이’

돈만 바라보는 양아치이다.


왜 양아치를 우러를까?

양아치를 글판에서도 운동판에서도

내쫓지 못 한다면

아이들한테 어떻게 고개를 들까?


창피하다.


그들이 감옥에 안 들어갔으니

잘못이 없다고 여겨도 되는가?


그들이 시골에서 호미를 쥐고서

텃밭짓기 서른 해쯤을 하며

조용히 뉘우쳤다면

그들이 다시 글을 쓰건 배구선수를 하고 싶건

그때에는 조금은 봐줄 수 있겠지만,

그저 이 나라 글판이 부끄럽다.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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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숲노래 책넋 2022.10.19.

책하루, 책과 사귀다 143 거짓책



  1992년부터 책느낌글을 씁니다. 어느덧 서른 해 넘게 책느낌글을 쓰는데, 지난날에는 아름책(추천도서) 이야기를 신나게 썼다면, 요즈음은 거짓책(비추천도서) 이야기를 자꾸 씁니다. 지난날에는 책동무 스스로 읽고 느낀 대로 ‘아름답다·아쉽다’ 같은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흐름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서평단·팬덤’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는 너울이 사나워 ‘아쉽다’는 말이 쑥 들어가요. 게다가 어느 책이 어느 대목에서 아쉽거나 안타깝다고 찬찬히 짚거나 밝히는 느낌글을 쓰면 ‘명예훼손 고발’을 하겠다거나 ‘누리책집지기(인터넷서점 관리자)’한테 일러서 ‘검은이름(블랙리스트)’에 오르도록 괴롭히기까지 할 뿐 아니라, 여러모로 뒤나 둘레에서 ‘아쉬운 책을 아쉽다고 말한 글지기’를 들볶거나 따돌리는 짓이 춤춥니다. 아름책을 짓거나 여민 이라면, 아름책에서도 아쉬운 대목을 짚는 글이웃을 반기고 서로 글동무로 지냅니다. 거짓책을 꾸미거나 팔아치우는 이라면, 무엇이 거짓이고 껍데기이며 못나거나 얄궂은가를 알려주어도 스스로 배워서 아름답게 거듭날 마음이 없이 새삼스레 거짓질에 겉발림질로 치닫는구나 싶어요. 한때 거짓책을 내놓으며 장사질(베스트셀러 욕망)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숲을 사랑하기를 빕니다.


ㅅㄴㄹ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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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42 익숙한



  즐겁게 읽은 책이기에 곁에 놓습니다. 아름답게 읽은 책이기에 고이 품습니다. 사랑스레 읽은 책이기에 두고두고 건사합니다. 새로 펼 적마다 반갑게 생각을 북돋우기에, 익숙하거나 똑같은 책이란 없습니다. 펴냄터(출판사)에서 일하며 길장사(가판)를 나온 2000년 봄날이었을 텐데, 어느 아이가 어머니 옆구리를 잡고 쭈뼛쭈뼛 서면서 저를 쳐다보더군요. 어머니 말씀으로는 “얘가 이 그림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1000번도 넘게 읽었어요. 다른 그림책이 있어도 이 그림책을 그렇게 좋아해서 책이 낡으면 새로 사 줘요.” 하시더군요.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을 만든 사람이 궁금하다고 해서 찾아왔답니다.” 하고 덧붙이셔서 ‘파는 일(영업부)’을 하는 사람이지만 그 그림책하고 얽힌 이야기를 잔뜩 들려주었고, 덤으로 몇 가지 책을 주었어요. 아니, 제 일삯으로 사서 ‘그냥 주는 척’했습니다. 그날 저녁 ‘나는 한 가지 책을 1000벌을 되읽으면서 새롭게 새길 줄 아는가?’ 하고 돌아보았어요. 곰곰이 보면, 아이들은 익숙한 책도 늘 새롭게 즐길 줄 아는 멋지고 부드러운 눈길이자 손길이로구나 싶어요. 아이하고 노는 어른이라면 이 깊고 너른 사랑을 아이한테서 배우겠지요. 마음을 사로잡는 책이란 끝없이 솟는 맑은 샘물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숲노래 씨가 쓴 책을

1000벌을 읽어 줄 이웃님이 있어도

기쁘고 아름다울 텐데

10벌을 읽어 주는 이웃님이 있어도

1벌을 읽어 주는 이웃님이 있어도

즐겁고 사랑스러우리라 생각해요.


곁에 《곁말》하고 《곁책》을

놓아 보는 가을날 누려 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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