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그림책 읽기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을 만나면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도 함께 즐겁고 반갑구나 싶어요.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그림책이란 ‘어려운 인문책에 지친 어른’한테 마음을 맑고 밝게 어루만지면서 한결 깊고 너른 이야기를 들려주도록 이끄는 빛이 촉촉히 서리는 책이로구나.


  어느 그림책이든 짧게 쓴 글과 그림 하나를 어우르면서 엮습니다. 한 쪽 두 쪽 잇는 그림이야기는 아이들 마음을 건드려 생각날개를 펼치도록 합니다. 무엇보다 아이하고 두고두고 되읽는 그림책을 살펴보면, 지식이나 정보를 건드리지 않습니다. 지식이나 정보를 건드리는 그림책은 아이도 어른도 몇 번 넘기지 않기 마련입니다. 어른들이 읽는 인문책도 지식이나 정보를 건드릴 적에는, 여러 차례 되읽는 일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식이나 정보는 날마다 바뀌고 또 바뀌어요. 새로운 지식과 정보가 쏟아집니다. 지식이나 정보는 머릿속에 머물 틈이 없습니다. 자꾸 다른 지식이나 정보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니, 지식그림책이나 정보그림책을 아이들이 좋아할 수 없어요. 지식이나 정보를 다루는 인문책도 어른들이 여러 차례 되읽으면서 마음을 살찌우기 어렵습니다.


  마음을 열어 온누리를 깊고 넓게 돌아보도록 이끄는 책이 되면, 지식과 정보가 쏟아지더라도 휩쓸리지 않습니다. 지식과 정보를 알맞고 바르며 즐겁게 다룰 수 있도록 이끄는 ‘책다운 책’이 되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아름답게 살아가도록 길동무가 됩니다.


  아이와 그림책을 읽습니다. 마음을 따사롭게 보듬도록 이끄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마음을 사랑스레 추스르도록 돕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눈빛을 곱게 밝히고 눈높이를 맑게 가다듬도록 어깨동무하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4347.2.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름다운 책을 찾는다

 


  온누리에는 온갖 책이 태어난다. 이런 책이 나오고 저런 책이 나온다. 저마다 쓸모가 있어서 태어난다. 쓸모없이 태어난 책이란 없다. 다만, 누군가한테 쓸모있대서 나한테까지 쓸모있지 않다. 이를테면, 누군가는 주식투자를 하지만, 나는 주식이 무언지조차 모른다. 누군가는 자기계발을 할 터이나, 나는 자기계발이 무언지 하나도 모른다. 누군가는 성당이나 예배당이나 절을 드나들 텐데, 나는 시골에서 조용히 살아갈 뿐이다. 누군가는 집안에 텔레비전을 두고 연속극을 볼 테고, 나는 집안에 텔레비전을 안 들일 뿐더러 연속극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누군가는 자가용 몰아 골프장을 다닐 테고, 나는 골프를 모르기도 하지만 자가용도 없다.


  어제 서울에 일하러 왔다. 일할 곳으로 가기 앞서 책방 두 군데를 들렀다. 책시렁을 살피면서 시계도 쳐다본다. 일할 곳으로 가야 할 때를 지나고 만다. 택시를 잡아 신나게 달린다. 택시 일꾼이 넌지시 묻는다. “예술 하시는 분인가요?” “예술이라면 예술이고, 예술이 아니라면 예술이 아닌 일을 합니다.” “어떤 일을 하시는데요? 보통 사람 같지는 않아 보이고.” “보통 사람이 안 한다면 안 하는 일이지만, 보통 사람이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저는 국어사전 만드는 일을 해요.”


  스무 살에 우리 어버이한테서 제금을 나서 혼자 살던 그날부터 두 아이를 낳고 시골에서 네 식구 살림을 꾸리는 마흔 살 오늘까지 ‘한국말사전 만들기’가 내 첫째 일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몇쯤 될까? 이런 일도 ‘직업 사전’에 오르거나 ‘직업인’ 가운데 하나가 될까? 한국말사전 만들기를 스무 해 남짓 하는 이웃은 몇쯤 될까?


  내가 가장 마음과 힘을 쏟아서 하는 일이란 ‘한국말사전 만들기’인 만큼, 책을 찾아서 읽을 적에도 언제나 ‘한국말사전을 제대로 잘 만드는 길을 걷도록’ 살펴서 읽는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한국말사전을 만들자면 이제까지 나온 모든 한국말사전을 모아야 한다. 한국말을 다룬 책과 논문을 챙겨 읽어야 한다. 한국 문화를 알고 배워야 한다. 한국 역사를 살피고 한국 사회와 정치와 경제를 헤아려야 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른 나라 말도 돌아보고, 다른 나라 문화와 역사도 아울러 짚을 줄 알아야 한다. 말 한 마디가 사람 마음에 어떻게 스미는가를 짚어야 하고,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한테 교육을 어떻게 하는가를 돌아보아야 하며, 집집마다 여느 어버이가 이녁 아이를 어떻게 마주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런저런 것보다 숲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한국뿐 아니라 지구별 모든 나라 모든 겨레에서, 말은 숲에서 태어났다. 도시에서 지식인이나 권력자가 만든 말이 아니라, 시골에서 숲을 돌보고 아끼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지은 말이다. 말밑을 헤아리면 알리라. 어느 나라 어느 겨레 말이든 모두 숲(자연)에서 태어났다. 숲말을 바탕으로 온갖 문명과 물질을 가리킨다. 갑작스레 하늘에서 똑 떨어진 말은 한 가지도 없다. 그러니, 한국말사전 만드는 일을 하자면, 다른 어느 대목보다 숲(자연)을 읽을 줄 알아야 하고, 풀과 꽃과 나무를 삶으로 고이 껴안아야 한다.


  지난 스무 해 한길을 걸어오며 내가 시골에서 보금자리를 튼 흐름을 돌아보니, 나로서는 언제나 아름다운 책을 찾는 발걸음이었구나 싶다. 한국말사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한국말사전을 제대로 알차게 잘 만드는 길을 차근차근 익히고 배웠구나 싶다. 고등학교 다닐 적에는 한 해에 백 권을 읽자 했고, 스무 살을 넘긴 뒤로 한 해에 천 권을 읽자 했으며, 스물다섯 살 언저리에는 한 해에 이천 권을 읽자 한 뒤, 서른 살을 넘긴 뒤로는 한 해에 삼천 권을 읽자 했다. 마흔 살을 지나면서 더는 숫자를 세지 않는다. 풀포기 하나와 꽃송이 하나를 숫자로 따질 수 없다. 나무를 숫자로 세는 바보가 있겠는가. 구름과 빗물을 누가 숫자로 헤아릴 수 있는가.


  내가 맨 처음 책을 손에 쥔 때가 언제였는지 아득하지만, 어린 나이에 신데랄라를 읽을 적이든 마흔 나이에 임길택이나 권정생을 읽을 적이든 눈물을 흘린다. 내 책읽기는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책읽기이면서, 눈물을 흘리려는 책읽기이다. 눈물을 흘리도록 이끄는 책을 찾아서 살아간다. 내 글쓰기도 내 이웃과 동무 눈가에 맑은 웃음과 눈물이 촉촉히 흐르기를 바라는 글쓰기이다. 남이 읽어 주기 앞서, 내가 내 글을 쓸 적에 눈물을 흘리거나 빙그레 웃으면서 쓴다.


  남들이 몰라준다면? 몰라준다면 모르겠지. 알아준다면? 알아준다면 알겠지. 언제나 그뿐이다. 눈은 눈을 알아주라면서 내리지 않는다. 지구별 땅뙈기가 눈을 바라니까 눈이 내린다. 비는 비를 알아주라면서 내리지 않는다. 지구별 숲이 비를 바라니까 비가 내린다. 나는 글을 쓴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사람으로 살면서 한국말사전을 만든다. 오늘 아침에는 고운 이웃님이 노래한 ‘무지개다리’라는 낱말 하나를 살살 노래하고 되새기면서 글을 쓰고 한국말사전 만드는 밑틀을 다진다. 모두 아름다운 사람이요 아름다운 책이자 아름다운 사랑이다. 4347.2.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4-02-19 14:13   좋아요 0 | URL
너무나 훌륭하고 좋은 글, 또 감사히 찜해갑니다~
함께살기님! 오늘도 기쁘고 좋은 날 되세요~*^^*

숲노래 2014-02-20 00:0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서울 일 마치고 고흥으로 돌아온 저한테
가장 즐거운 인사를 띄워 주셨네요 @.@

appltreeje 님도 언제나 아름다운 하루 누리셔요~~
 

사진 배우고 싶은 이한테 ‘추천하는 책’

 


  사진잡지 《포토닷》 4호(2014.3.)에 실을 글을 하나 쓰고 난 뒤 아무래도 아쉽다. 사진을 배운다는 어느 젊은이가 ‘사진기술 다루는 책 말고 사진에 담을 이야기를 배우는 데에 도움이 될 책’을 추천해 달라고 묻는 말에 대답하는 글을 썼는데, 주어진 원고종이가 짧아, 하고픈 말을 다 하지 못했다. 책 하나 추천해 달라는 젊은이는 으레 ‘추천하는 책 한 권’만 읽으면 넉넉하리라 여기곤 하는데, ‘추천하는 책 한 권’이면 넉넉할 일이란 없다. 왜냐하면, 추천해 주는 책은 맨 처음 읽을 길잡이책일 뿐이다. 이 책 하나를 길잡이로 삼아서, 모든 책을 다 읽겠다는 몸가짐이 되어야 한다. 사진책뿐 아니라, 사진을 다루는 책, 사진과 얽히지 않은 수많은 책, 이 책 저 책 골고루 아우르면서 마음과 넋과 삶과 꿈과 사랑을 나란히 가다듬고 가꿀 수 있어야 한다.


  사진찍기란 삶찍기이다. 사진에 담을 이야기란 무엇이겠는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어떻게 읽는가? 제대로 들여다볼 줄 알아야 읽는다. 어떻게 해야 제대로 들여다보는가? 서로 이웃이 되고 동무가 되며 한식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웃이나 동무나 한식구가 된 뒤에도 사회와 문화뿐 아니라 역사와 살림을 읽을 수 있어야지.


  사진 한두 해 찍는대서 사진이 나아지지 않는다. 마땅한 노릇이다. 그러면, 책 한두 권 읽거나, 책을 한두 해쯤 읽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 나아지지 않겠지만, 조금씩 나아질 테지. 무슨 소리인가 하면, 사진을 아름답게 찍으려는 이라면 한두 해 찍고 그칠 수 없어, 열 해 스무 해 꾸준히 찍고, 서른 해 마흔 해 차근차근 나아가듯이, 책도 한두 권이 아닌 열 권 스무 권 천 권 만 권으로 나아갈 노릇이며, 서른 해 마흔 해 한결같이 곁에 두면서 차곡차곡 읽고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어야 한다.


  사진을 쉰 해쯤 찍었으면 ‘이제 사진을 다 아니’까 새로 안 배워도 될까? 아니다. 사진을 예순 해나 일흔 해 찍었어도 새로 배울 이야기가 있다. 책을 십만 권이나 백만 권 읽었으면 이제 책은 안 읽어도 될까? 아니다. 십만 권을 읽었으면 십일만 권 읽도록 나아가고, 백만 권 읽었으면 천만 권 읽도록 나아갈 노릇이다. 새롭게 배우고 새롭게 깨달으며 새롭게 사랑할 길이 보이니까.


  책 하나 추천해 달라는 젊은이한테는 늘 이 말을 들려주고 싶다. 자, 이 책 하나부터 앞으로 두고두고 수많은 아름다운 책을 만나면서 사진빛을 사랑스러운 삶빛 되도록 가꾸어 보셔요, 하고. 다음달 잡지에는 아마 이런 글이 실리리라 본다. 4347.2.11.불.ㅎㄲㅅㄱ

 


[물음] 사진공부에 도움이 되는 책 추천바랍니다. 기술서가 아닌 내용적인 측면에서 사진의 작업에 도움이 되는 책이었으면 합니다. 혹은 사진을 공부하는 데 있어 반드시 읽어야할 책에 대한 추천도 좋습니다.

 

[답변] 《휴먼》이라는 이름으로 오래도록 ‘사람’ 사진을 찍은 최민식 님이 쓴 《다큐멘터리 사진을 말하다》라는 작은 책이 있어요. 젊은 사진가한테 띄우는 편지 같은 책으로, 모두 열여섯 가지 이야기를 간추려서 들려줍니다. 이러한 책을 만날 적에는 옳고 그름이나 나한테 맞느냐 안 맞느냐를 살피지 말고, 무엇이든 새롭게 느끼고 배운다는 생각을 해야, 사진을 즐겁게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진책도서관을 꾸리는 사람으로서 ‘사진을 찍고 읽으며 배우는 길’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추천한다면, 저는 ‘사진을 말하는 책’보다는 ‘삶을 말하는 책’을 추천하고 싶어요. 이를테면, 권정생 님이 쓴 동화책 《몽실 언니》와 이원수 님이 쓴 동시집 《너를 부른다》, 이 두 가지를 추천합니다. 동화책 《몽실 언니》는 어린이부터 할머니까지 눈물을 적시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립니다. 동시집 《너를 부른다》는 어린이부터 할아버지까지 가슴을 울리는 아름다운 사랑을 그려요. 글 한 줄로 우리 삶을 밝히고 빛내면서 노래하는 이러한 동화책과 동시집을 읽으면서 마음속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 보셔요. 사진을 찍는 분들 누구나 스스로 찍고 싶은 빛이 있어야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사진기 다루는 기술이나 솜씨가 모자라거나 없어도 사진을 아름답고 즐거우며 사랑스레 찍는 힘과 밑바탕이 어디에 있는가를, 이 두 가지 책이 예쁘게 보여주리라 생각합니다. 울림, 곧 감동이 있을 때에 문학이고 문화이며 예술이니, 사진에 울림을 담도록 하는 몸가짐과 넋을 즐겁게 배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린이책 읽기

 

 


  어린이책은 어린이가 읽도록 만드는 책이다. 그런데 어린이가 읽도록 만드는 책은 어린이부터 누구나 읽는다. 또한, 어린이 눈높이로 생각하거나 바라보거나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모두 읽는다. 한편, 어린이책은 어린이가 읽도록 만들지만, 어른이 만드는 책이다. 그래서, 어린이책을 읽는 첫 독자는 늘 어른이다. 어린이는 어린이책이 새로 나오는 줄 알 길이 없다. 어른들이 맨 먼저 알고, 어른들이 어린이책을 장만한 뒤 어린이한테 건네기에 어린이가 어린이책을 읽을 수 있다. 어린이 한 사람이 어린이책을 읽도록 하려고 수많은 어른들이 어린이책을 읽는다.


  아이한테 읽히려고 어린이책을 장만하니, 아이로서는 어버이나 둘레 어른이 책을 선물해 줄 때에 고맙게 받아서 즐겁게 읽는다. 그런데, 아이일 적에 어린이책을 다 못 읽거나 미처 못 읽거나 그냥 안 읽기도 한다. 책보다는 놀이가 좋아, 놀이에 사로잡히는 나머지 책하고는 등지기도 한다.


  이렇게 어린 나날 어린이책을 안 읽고 살며 어른이 된 사람이 나중에 짝꿍을 만나 사랑하면서 아이를 낳으면, 새삼스레 어린이책을 읽는다. 이녁 아이한테 읽히려고 어린이책을 새롭게 장만한다. 이때에 ‘왜 어린이였을 적에 안 읽은 어린이책을 이제 와서 읽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어린이책을 왜 어린이였을 적에는 못 읽고 어른이 되어서야 읽는가?’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릴 적에 이 사랑스러운 어린이책을 읽었으면 내 마음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하며, ‘이처럼 놀랍고 좋은 어린이책을 뒤늦게 깨닫고 읽으니 우리 아이를 한결 깊고 넓게 아끼고 사랑하는 빛을 얻는구나.’ 하고 깨닫기도 한다.


  어린이책은 어린이가 읽도록 만드는 책이다. 틀림없다. 그런데, 어린이책은 어린이보다 어른을 더 일깨우고 가르치면서 눈물과 웃음을 뽑아내지 싶다. 어쩌면, 어린이책이란, 어린이한테 읽히겠다는 뜻을 내걸지만 정작 어른들이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마음을 언제까지나 한결같이 지키거나 보살피고 싶은 꿈을 담아서 빚는 책이라고 할 만하지 싶다. 4347.2.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한 권만 추천해 주셔요

 


  ‘한 권만 추천한다면?’ 같은 말을 들을 적에 언제나 알쏭달쏭하다. 온누리에 책이 얼마나 많은데 한 권만 추천하라는 말인가 하고도 생각하지만, 무엇보다 ‘추천책 한 권’만 읽고 더는 책을 안 읽으려 한다는 냄새가 풍겨서 쓸쓸하다. 책을 추천해 달라고 말하려면 ‘추천할 수 있는 책은 모두 다 추천해 주셔요.’ 하고 해야 올바르지 않을까. 모르는 것투성이라서 책을 읽으려 하고, 궁금한 것투성이인만큼 책을 알려 달라는 뜻 아니겠는가.


  어느 책 한 권을 읽는다고 해서 사진을 잘 알 수 없다. 어느 책 한 권을 읽었으니 인문학 소양을 알차게 갖추었다고 할 수 없다. 어느 책 한 권을 읽었기에 만화를 잘 알거나 배웠다고 할 수 없다. 어느 책 한 권을 읽은 만큼 이제 끝이라 할 수 없다. 모든 ‘추천책 한 권’은 첫걸음일 뿐이다. 첫걸음으로 들어서는 책이기에, 이 책을 발판으로 스스로 다른 책을 꾸준히 눈여겨볼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책들을 차근차근 추천받을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배우지 않고는 알 수 없으니까. 배우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으니까. 배우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고, 배우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아주 쉬운 이야기이다. 배우지 않았으면 알 수 없다. 배우지 않았는데 어떻게 사랑하는가? 사랑한다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배우지’ 않고서 사랑할 수 있는가? 사랑한다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를 ‘배우지’ 않고서 함께 살아가며 사랑할 수 있는가? 아이들이 무엇을 하며 놀고 싶은가를 아이한테서 ‘배우지’ 않고서 아이를 사랑할 수 있는가?


  배우지 않는 사람은 생각하기를 멈춘다. 배우지 않는 사람은 살아도 살아간다고 하기 어렵다. 먹을 수 있는 풀을 배우면서 풀밥을 맛나게 누린다. 밥차림과 밥하기를 날마다 새롭게 배우면서 ‘날마다 똑같은 밥과 국과 반찬을 올리더’라고 날마다 새롭게 맛난 끼니를 나눈다.


  새롭게 배우기에 새롭게 글을 쓴다. 새롭게 배우기에 새롭게 강의도 하고 책도 엮을 수 있겠지. 새롭게 배우는 사람은 새로운 책을 찾아서 기쁘게 읽는다. 새롭게 배우는 사람은 이웃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새롭게 배우는 사람은 아침저녁으로 다르게 부는 바람을 살갗으로 느낀다. 새롭게 배우는 사람은 철마다 달리 내리쬐는 햇볕을 가만히 느낀다.


  ‘한 권만 추천한다면?’ 하고 묻는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 가장 아름다운 책을 추천하라는 뜻일까. 그러면,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책에 순위를 매겨서 1등 2등 3등으로 가른 뒤 1등만 말하면 ‘사람들이 1등이 될 책만 읽으면 된다’고 해도 될까.


  한 권만 추천해야 한다면, 아예 어느 책도 추천하고 싶지 않다. 빙그레 웃으면서 저기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서 하늘을 보고 풀을 보며 숲으로 달려 보라고 말할 생각이다. 숲 한복판에 드러누워 하늘바라기를 하면서 새와 벌레가 빚는 노래잔치를 누리라고 말하려 한다. 꼭 한 권만 바란다면, 숲책을 읽고 숲빛을 읽으며 숲꿈을 사랑스레 돌보면 된다고 말하려 한다. 4347.2.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