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나무와 나무와

 


  나무로 짠 책꽂이에 나무로 엮은 사다리 있고, 나무로 묶은 책이 나란히 있다. 헌책방 골마루를 찬찬히 돌아보다가 세 가지 나무를 문득 느낀다. 나무와 나무와 나무가 어우러지는 책방이로구나. 나무와 나무와 나무가 있어 푸른 숨결 흐르는 책방이네. 나무와 나무와 나무가 어깨동무하면서 따순 사랑과 빛을 나누어 주는 책방이야.


  나무 책시렁을 쓰다듬는다. 나무 사다리를 어루만진다. 나무 책을 살몃 쥔다. 나무를 만지는 손에는 나무내음 스미고, 나무를 쥐는 손에는 나무빛 감돌며, 나무를 품는 손에는 나무노래 퍼진다. 나 또한 나무가 되어 새로운 이야기를 쓴다. 4346.1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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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07 21:02   좋아요 0 | URL
최영미님의 <꿈의 페달을 밟고>,가 있네요~?^^
오늘 어떤 책을 보다 이정록님의 詩 '나무기저귀'를 읽었는데

'목수는/ 대패에서 깎여 나오는/ 얇은 대팻밥을/ 나무기저귀라고 부른다
천 겹 만 겹/ 기저귀를 차고 있는,/ 나무는 갓난아이인 것이다
좋은 목수는/ 안쪽 젖은 기저귀까지 벗겨내고/ 나무아기의 맨살로/ 집을 짓는다
발가벗은 채/ 햇살만 입혀도 좋고/ 연화문살에/ 때때옷을 입어도 좋아라
목수가/ 숲에 드는 것은/ 어린이집에 가는 것이다'

이 시를 읽고 또, 함께살기님의 나무노래
'나 또한 나무가 되어 새로운 이야기를 쓴다' 를 들으니
참 좋습니다~*^^*

숲노래 2013-12-08 03:16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책방에서 이 책들 사려고 골라서 사다리에 얹었다가,
다른 책을 보는 사이
깜빡 잊고 이 책은 셈을 안 하고
사다리에 얹은 채 그대로 시골집으로 돌아온 듯하군요.
어어.... @.@ ㅜ.ㅠ

나무기저귀 이야기 재미있네요.... ㅠ.ㅜ
 

책사랑 나누는 벗

 


  저녁에 인천에 닿아 배다리 헌책방거리로 걸어간다. 가방에 짊어진 책짐 몹시 무거워 이대로 안 되겠다고 느낀다. 헌책방에 들어 책짐을 택배로 시골집으로 부쳐 달라 말씀을 여쭈어야겠다. 터덜터덜 천천히 골목길 걷는다. 동네 아이 몇 빈터에 앉아서 논다. 조용하고 한갓진 인천 골목길을 걷는다. 땀이 비질비질 흐른다. 헌책방거리에 닿는다. 어두움 내린 헌책방거리에 사람 발길 없다. 단골로 스물두 해째 드나든 책방에 들어간다. 짐을 내려놓는다. 어깨와 등허리와 무릎을 편다. 시큰시큰하다. 숨을 돌린다. 무릎과 다리를 풀며 골마루를 천천히 돌아본다. 책손은 나 혼자이다. 책방지기 한 사람과 책손 한 사람이 책방에서 발소리 내지 않고 서로서로 일을 한다. 책방지기는 책을 손질해서 꽂고, 책손은 마음에 담을 책을 살핀다. 이윽고 다른 책손 들어온다. 다른 책손 더 들어온다. 조용한 책방에 발소리 늘고, 숨소리와 책종이 넘기는 소리 퍼진다.


  인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이백만을 웃돈다 하는데 이 작은 헌책방에 깃든 책손은 몇일까. 모두들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 택배로 맡길 책을 내려놓고는, 이곳에서 책을 몇 권 더 골라서 함께 묶는다. 이제 이 책들은 이튿날 아침에 책방지기 손을 거쳐 우리 시골집으로 즐겁게 날아갈 테지.


  아이들 그림책은 택배꾸러미에 넣지 않는다. 아이들 그림책은 가방이 좀 무겁더라도 씩씩하게 짊어지고 들고 가서, 시골집 대문 열고 대청마루에 짠 하고 풀어놓아 아이들 선물로 보여주고 싶다.


  책방에서 오랜 동무들 만나 이야기꽃 피우면 더없이 즐거울 텐데, 마흔 고개 넘어서는 내 동무들 가운데 책방마실을 누리는 아이는 거의 없다. 그래도, 뭐, 나쁘지 않아. 종이책을 읽지 않더라도 내 동무들이 저희 아이를 낳아 그 아이들 무럭무럭 자라는 웃음빛 마주하면서 삶을 읽을 줄 안다면, 책방마실을 안 하더라도 내가 책빛을 살포시 나누어 주면 될 테니까. 4346.1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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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3-12-05 12:06   좋아요 0 | URL
책빛- 소리내어 말하니까 더 아름답네요.

숲노래 2013-12-05 21:07   좋아요 0 | URL
더없이 아름답기에
자꾸자꾸 '책빛' 이야기를 써서
예쁜 이웃들하고 나누고 싶어요.

앤님 가슴에 아름다운 책빛 언제나 드리우기를 빌어요~

양철나무꾼 2013-12-05 17:50   좋아요 0 | URL
전에 방송에 출연하신 모습, 링크 거신거 트랙백해서 봤어요.
말씀은 조근조근 차분하게 하시는데,
자전거 페달을 밟는 근육이 발달한 것을 보고,
몸도 마음도 참 건강한 분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벼리와 보라는 아빠를 더 기다릴까요, 아빠 손에 들린 그림책을 더 기다릴까요?


숲노래 2013-12-05 21:06   좋아요 0 | URL
아이들은 아버지가 사올 '맛난 먹을거리'를 기다린답니다 ㅋㅋㅋㅋ

그리고, 아버지가 꼬옥 안아 주기를 기다리고요~ ^^

아이들은 "집에 책 많으니 책 더 사지 말아요." 하고 얘기해요 ^^;;;;;
 

책넋

 


  책을 쓴 사람들 넋을 읽는다. 책을 빚은 사람들 꿈을 읽는다. 책을 다루는 사람들 손길을 읽는다. 책이 되어 준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흐르던 빛을 읽는다. 책마다 곱게 드리우는 무늬를 읽고, 책 하나에 살포시 감도는 이야기를 읽는다.


  책을 읽는 사람은 어떤 마음이 될까.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삶을 일굴까. 책을 말하는 사람은 어떤 눈빛이 될까.


  어린이와 함께 읽는 책을 쓰거나 엮거나 다루는 사람은 이 땅 아이들한테 어떤 꿈을 들려주려는 마음일까. 성인잡지를 내거나 성인만화를 그리는 사람은 이 땅 어른들한테 어떤 노래를 들려주려는 마음일까. 시를 쓰거나 소설을 쓰는 사람은 이 땅 이웃들하고 어떤 사랑을 나누려는 마음일까. 자기계발과 처세를 말하려는 사람은 이 땅에서 나고 자라는 이웃들 앞에서 어떤 빛이 되고 싶은 마음일까.


  어느 책이든 나무가 있기에 태어난다. 이제 나무도 종이도 없이 전자책이 나올 수 있다 하는데, 나무도 종이도 쓰지 않는 책은 참으로 지구별과 숲을 아끼는 넋으로 엮는 책이 될까. 나무도 종이도 쓰지 않는 책이 되면서, 오히려 지구별과 숲하고 더 멀어지는 책으로 나아가지는 않을까. 나무로 된 책이요, 종이로 빚는 책을 엮으면서, 섣불리 아무 글을 쓸 수 없으며, 함부로 아무 책이나 내놓을 수 없는 넋을 잊거나 잃지는 않는가.


  글 한 줄에 아름다운 넋 담으려 한 책은 오래도록 읽힌다. 글 두 줄에 사랑스러운 얼 실으려 한 책은 두고두고 읽힌다. 글 석 줄에 푸른 숨결 얹으려 한 책은 한결같이 읽힌다. 누구나 바람을 마셔야 목숨을 잇듯, 아름다운 넋이 있기에 책을 읽는다. 누구나 물을 들이켜야 목숨을 건사하듯, 사랑스러운 얼 있어 책을 읽는다. 누구나 밥을 먹어야 목숨을 살찌우듯, 푸른 숨결 있는 책을 읽는다. 바람과 같고, 물과 같으며, 밥과 같은 넋으로 책이 태어난다. 4346.1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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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 노는 아이들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논다. 집에서도 마루에서도 마당에서도 골목에서도 찻길에서도 아이들은 거리끼지 않는다. 아이들로서는 어디이든 삶터이고 놀이터 된다. 어른들이 따로 돈을 들여 시설을 마련한 데가 놀이터 아니다. 아이들이 놀면 어디나 놀이터 된다.


  아이들은 헌책방에서 개구지게 뛰어논다. 헌책방이라 해서 시끌벅적 뛰어놀아도 되지 않지만, 아이들은 새책방에서든 헌책방에서든 거리끼지 않는다. 어떤 어른은 헌책방에 있는 책을 만질 적에 장갑을 끼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아무것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떤 어른은 헌책방에 있는 책은 먼지와 세균이 많다 여기는데, 아이들은 어느 하나 따지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먼지와 세균은 어디에나 있고, 헌책방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들락거리는 도서관에서 오래도록 묵는 책이야말로 먼지와 세균을 많이 품지 않을까.


  순천에 있는 헌책방집 막내와 우리 집 큰아이는 같은 또래이다. 우리 집 작은아이는 누나랑 형이 노는 틈에 함께 끼어 놀고 싶다. 아이들은 책방마실을 하더라도 책보다 놀이가 훨씬 맛있다. 아이들은 온갖 책이 그득한 숲에서 이리 뛰고 저리 노래하면서 논다. 책방에서 놀며 천천히 책내음 맡고, 책방에서 뒹굴며 가만히 책빛 마신다. 아이들 스스로 모르는 사이에 책노래가 아이들 마음속으로 젖어든다.


  골목에서 놀듯 책방에서 논다. 골목에서 놀며 골목숨 마시고 골목빛 먹듯이, 책방에서 놀며 책방숨 마시고 책방빛 먹는다. 시골에서 놀며 시골숨과 시골빛 먹듯이, 책방에서 놀며 책숨과 책빛을 한껏 들이켠다.


  땀 실컷 흘린 뒤 살짝 땀을 식히며 그림책이나 만화책 집어들 수 있겠지. 땀 옴팡지게 쏟은 뒤 살짝 땀을 달래며 나무그늘 찾아 쉬거나 풀밭에 드러누울 수 있겠지. 놀고 쉬고, 놀고 먹고, 놀고 자고, 놀고 노래하는 아이들이다. 천천히 튼튼하게 자란다. 4346.11.2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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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헌책방

 


  책방은 책꽂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책방은 간판을 보지 않는다. 책방은 책방지기 얼굴을 보지 않는다. 책방은 오직 책꽂이를 본다. 책꽂이가 통나무여도 좋고 합판이어도 좋으며 쇠붙이여도 좋다.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살피며 책방 한 곳 살아가는 흐름을 읽는다.


  책방지기가 예쁘거나 잘생겼대서 책방에 가지 않는다. 책방이름이 예쁘거나 간판이 멋스러워서 책방에 가지 않는다. 책방이 신문이나 방송에 나왔기에 책방에 가지 않는다. 책방지기한테 박사학위가 있다거나 시인·소설가라는 이름표가 있대서 책방에 가지 않는다. 책방에는 오직 책을 만나러 간다.


  책방에 깃든 책을 살피며 책방지기 마음을 읽는다. 책방에 갖춘 책을 골라 장만하면서 책방지기와 이야기를 나눈다. 다만, 책을 살피고 장만하는 동안 책방지기하고 말 한 마디 섞지 않는다. 책방 책꽂이에 있는 책을 만지는 사이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한 번 슥 훑으면 그만일 듯하다고 여길 수 있는 조그마한 자리에 남은 조금 있는 헌책을 바라본다. 그렇지만, 나는 이 조그마한 자리, 조그마한 책꽂이, 조그마한 칸에 깃든 책들을 한 시간에 걸쳐서 찬찬히 살피기로 한다. 보고 또 보면서, 다시 보고 거듭 보면서, 이 작은 헌책방 조그맣게 남고 만 책꽂이 사이에서 아름다운 빛을 누리고 싶다.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아 헌책방살림 벅차고, 그예 다른 일을 한다 하더라도,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이곳에 서린 빛을 못 보았을 뿐, 내가 이곳에 있는 빛을 못 보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즐겨 찾아오지 못했다 하더라도, 내가 이곳을 즐겁게 찾아가서 아름답구나 싶은 책 하나 만나면 넉넉하다.


  이 작은 헌책방에는 책손 열 스물 드나들 수 없다. 이 작은 헌책방에는 책손 두엇만 있어도 꽉 찬다. 이 작은 헌책방에는 차분히 책을 돌아볼 책손 한둘이면 넉넉하다. 이 한둘이 흐뭇하게 책을 고른 뒤 자리를 비우면 다른 책손이 찾아들어 찬찬히 책을 누린다. 아름다운 책빛이 조용히 웃으면서 기다린다. 4346.11.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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