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간판 옷집

 


  헌책방을 꾸리는 분 가운데 간판을 굳이 올리지 않는 분이 있다. 예전 가게 간판을 그대로 두는 분이 있다. 이와 달리, 헌책방 간판을 그대로 둔 채 다른 가게를 꾸리는 분은 드물다.


  어떤 마음일까 하고 가만히 헤아려 본다. 헌책방 간판을 내리지 않은 채 다른 가게를 꾸리는 분은 어떤 넋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예전에 이곳에 헌책방이 있었다는 자국을 치우지 않은 모습이 무척 반갑다. 문화부도, 시청이나 군청도, 신문사나 방송사도, 출판사나 작가나 시인도, 헌책방을 살뜰히 아끼는 법이 없고, 알뜰히 사랑한 일이 매우 드물다. 헌책방이 걸어온 길을 차근차근 돌아보거나 갈무리하는 공무원이란 없으며, 헌책방 박물관도 없다. 헌책방 간판 하나 건사하는 기관이나 박물관이 어디에 있는가. 그런데, 전주 홍지서림 골목 한쪽에 있는 조그마한 옷집은 ‘헌책방 간판’을 얌전히 두었다. 옷집 간판과 예전 헌책방 간판이 사이좋게 어울린다. 간판 하나로도 따사로운 빛이 흐른다. 4347.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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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4-01-06 21:50   좋아요 0 | URL
전주에 갔다오셨군요.저도 저 간판 기억납니다.한참 절판된 SF및 추리소설을 찾으로 전국을 누볐을때 저곳에서도 한 두권 구매한 기억이 새삼 떠오르네요^^
늦었지만 함께살기님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숲노래 2014-01-07 01:59   좋아요 0 | URL
카스피 님도 즐거우며 아름다운 새해 예쁘게 누리셔요~
 

전주 관광지도

 


  전국 어디에나 헌책방은 있다. 그러나 헌책방을 관광지도에 예쁘게 적어 넣는 지자체는 거의 찾아볼 길이 없다. 부산에는 보수동 헌책방골목 있으나, 이곳을 관광지도에 넣은 지 아직 열 해가 안 된다. 서울에 있는 청계천 헌책방거리는 어떠할까? 서울 관광지도를 거의 본 일이 없어 모르겠는데, 서울 관광지도에는 청계천 헌책방거리를 적어 넣었을까?


  곰곰이 헤아리면, 헌책방뿐 아니라 새책방조차 관광지도에 안 넣기 일쑤이다. 관광지도에 ‘책방’을 넣으려는 생각이 아예 없다고 할까. 아니, 관광지도를 만드는 일은 공무원이 하는데, 공무원 스스로 책방마실을 누리거나 즐기지 않기에, 관광지도에 책방을 넣으려는 생각을 못한다고 느낀다.


  ‘전국 새책방’을 찾아다니는 사람도 틀림없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전국 헌책방’을 찾아다니는 사람만큼 많으리라고는 느끼지 않는다. 전국에 있는 헌책방을 두루 찾아다니는 사람은 제법 많다. 이분들이 서로 조각조각 정보를 주고받은 열매를 얻어, 지난 2004년에 처음으로 ‘전국 헌책방 목록과 전화번호부’를 마무리짓고 세상에 두루 알렸다. 아마, 이 목록과 전화번호를 내려받아 ‘전국 헌책방’ 나들이를 즐기는 분이 꽤 될 테지. 관광지도에는 없으니, 이 목록과 전화번호를 바탕으로 이곳저곳 찾아다니리라.


  전주 관광지도에 〈홍지서림〉 한 군데는 나온다. 그렇지만, 〈홍지서림〉을 둘러싼 헌책방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홍지서럼〉이 있는 골목에 전주시는 ‘예술의 거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예술의 거리’라, 예술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있기에 예술인가. 전주시 공무원과 예술인한테 참말 차분히 여쭙고 싶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은 어디에 있는가? 4347.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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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책이 있다

 


  여기에 책이 있는데 어디를 보니? 코앞에 있는 책은 왜 안 쳐다보고 자꾸 저 먼 데만 바라보니? 네 앞에 있는 책부터 보렴. 네 앞에 있는 책을 살뜰히 볼 수 있을 적에 비로소 저 먼 데에 있는 책을 알아볼 수 있어. 네 발밑에서 자라는 풀을 알고 느끼며 뜯어서 먹을 줄 알 때에, 비로소 밭을 가꾸어 푸성귀를 돌볼 수 있어. 밭을 가꾸어 푸성귀를 돌볼 때에 바야흐로 숲에서 자라는 모든 풀이 얼마나 상큼하고 푸르며 싱그러운가를 알 수 있어.


  책은 여기에 있어. 책은 바로 네 가슴에, 네 마음속에, 네 눈빛에, 네 온몸에 있어. 스스로 빛이 되어야 책을 읽지. 스스로 빛이 되지 않는데 어떻게 책을 읽겠니. 스스로 빛이 되지 못하면 어떤 책을 손에 쥐더라도 사랑과 꿈을 읽어내지 못해. 스스로 빛이 될 적에는 어떤 책을 손에 쥐어도 사랑과 꿈을 깨달으면서 맞아들이지.


  훌륭하다는 책을 내 손에 쥔다 한들 읽을 수 없어. 스스로 훌륭해야 비로소 훌륭한 책을 알아보면서 받아들여. 스스로 사랑스러워야 비로소 사랑스러운 책에서 흐르는 사랑빛을 알아채고는 받아먹어.


  온 사랑 담아서 쓴 책은 온 사랑으로 읽을 때에 어깨동무를 하지. 온 사랑 담아서 쓴 책을 줄거리훑기만 하거나 대학입시교재로 삼아서 들여다보면 무엇을 얻을까. 내가 바로 책이고, 풀 한 포기가 바로 책이요, 바람 한 줄기가 바로 책이야. 책은 바로 여기에 있어. 4347.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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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으로 들어오는 책

 


  헌책방으로 온갖 책이 들어온다. 헌책방을 찾아오는 온갖 사람들이 이 온갖 책을 살펴보다가는 온갖 책을 저마다 즐겁게 장만한다. 누군가 즐겁게 읽은 책을 즐겁게 헌책방에 내놓아 주머니 가벼운 이가 즐겁게 장만하도록 할 때가 있고, 출판사나 작가가 신문·잡지·방송사 기자한테 보낸 책을 이들 매체에서 다 껴안을 수 없어 폐휴지로 내놓았다가 고물상을 거쳐 헌책방 일꾼이 거두어들일 때가 있다. 정치꾼이나 지자체 우두머리나 대학 교수한테 보낸 책을 비서가 틈틈이 폐휴지로 모아서 내놓을 적에 고물상을 거쳐 헌책방 일꾼이 거두어들이기도 한다.


  이름난 작가가 이름난 누군가한테 선물한 책이 헌책방으로 들어오는 일은 흔하다. 책을 버렸기 때문일까? 어떤 사람은 ‘책을 버렸’기에 헌책방에 이 책이 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돌고 도는 책’이 되도록 내놓아서 ‘책을 나눈다’고 해야 옳은 말이리라 느낀다. ‘책을 버린다’고 할 적에는 책을 북북 찢어서 아무도 못 보게 불쑤시개로 했다는 뜻쯤 되어야지 싶다. 헌책방에 책이 들어갈 때에는 ‘다시 읽히도록’ 하는 일이다.


  어떤 사람은 ‘선물받은 책’을 헌책방에 내놓을 적에 이녁 이름 적힌 자리를 찢거나 칼로 오리곤 한다. 그런데, 이렇게 찢거나 칼로 오린 종이는 어떻게 될까. 잘 건사할까. 이 또한 찢어서 버릴까. 돌고 도는 책이기에, 어느 책을 건사하는 사람이 숨을 거두면, 이 책은 으레 돌고 돌면서 헌책방으로도 들어오기 마련이다. 굳이 이름 적힌 자리를 찢거나 오리지 않아도 된다. 누가 누구한테 선물한 자국도 ‘책이 살아온 발자국’이다. 헌책방 나들이를 즐기는 이들은 이런 발자국을 보는 즐거움을 곧잘 누리곤 한다.


  나는 헌책방을 다니면서 그야말로 온갖 사람들 온갖 ‘이름 적기’를 보았다. 번거로운 듯이 흘려서 쓴 사람이 있고, 도장까지 찍으며 정갈하게 쓴 사람이 있다. 소설쓰는 박완서 님이 내놓은 책을 헌책방에서 만나기도 했는데, 박완서 님이 ‘나쁜 뜻으로 책을 버렸다’고 느끼지 않았다. 이녁이 집에 건사할 수 없는 책을 틈틈이 내놓아 헌책방에서 새로운 사람들한테 새롭게 읽히도록 했다고 느꼈다. 이오덕 님이 선물한 책도 헌책방에서 만났는데, 이오덕 님 제자라는 분이 ‘책을 안 읽고 버렸다’고 느끼지 않았다. 즐겁게 읽은 뒤 ‘누군지 모르지만 이 책을 아낄 젊은 넋’한테 즐겁게 물려주려는 뜻이리라 느꼈다. 요즈음은 손택수 님이 다른 시인한테서 받은 시집을 헌책방에서 퍽 자주 만나는데, 좋은 시집을 가난한 문학청년이 적은 돈으로 장만해서 읽을 수 있도록 고맙게 내놓았으리라 느낀다.


  얼마나 재미있을까. 누군가 누구한테 선물한 책이 헌책방에 들어와서, 이 책을 살살 어루만질 적에 얼마나 재미있을까. 돌고 도는 삶에 돌고 도는 책, 돌고 도는 이야기에 돌고 도는 사랑, 이 얼마나 재미있을까.


  요 며칠 사이, 김용옥 님이 홍준표 경남도지사한테 선물한 책이 헌책방에 나왔다고, 이 책을 헌책방에서 샀다는 사람이 트위터에 사진을 올렸다고 하는데, 그럴 만하지 않을까? 더 넓게 읽힐 수 있는 뜻인데, 왜 이런 일을 놓고 비아냥거리거나 손가락질하는 말이 나와야 할까? 언론사에서 보도자료를 폐휴지로 내버릴 적에 고물상 거쳐서 헌책방으로 들어오는 책이 무척 많다. 정치꾼이나 지자체 우두머리가 선물받은 뒤 비서가 알뜰히 내버려 주어 헌책방이 즐겁게 받아안는 책이 꽤 많다. 다만, 이런 책 모두 새로운 손길을 받을 만한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누군가 즐겁게 마주하며 즐겁게 읽을 사람이 있다. 스스로 즐겁게 읽으려는 책이 아니라면 다시 내려놓고 조용히 지나가면 좋으리라. 서로 예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예쁜 생각 주고받을 수 있기를 빈다.


  헌책방이 없으면, 애꿎은 책들 모두 종이쓰레기 되지 않았겠는가. 헌책방이 없다면, 누가 누구한테 선물한 책이 오래도록 돌고 돌며 새로운 이야기 길어올릴 일조차 없이 몽땅 사라지지 않았겠는가. 4346.12.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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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나무와 나무와

 


  나무로 짠 책꽂이에 나무로 엮은 사다리 있고, 나무로 묶은 책이 나란히 있다. 헌책방 골마루를 찬찬히 돌아보다가 세 가지 나무를 문득 느낀다. 나무와 나무와 나무가 어우러지는 책방이로구나. 나무와 나무와 나무가 있어 푸른 숨결 흐르는 책방이네. 나무와 나무와 나무가 어깨동무하면서 따순 사랑과 빛을 나누어 주는 책방이야.


  나무 책시렁을 쓰다듬는다. 나무 사다리를 어루만진다. 나무 책을 살몃 쥔다. 나무를 만지는 손에는 나무내음 스미고, 나무를 쥐는 손에는 나무빛 감돌며, 나무를 품는 손에는 나무노래 퍼진다. 나 또한 나무가 되어 새로운 이야기를 쓴다. 4346.1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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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07 21:02   좋아요 0 | URL
최영미님의 <꿈의 페달을 밟고>,가 있네요~?^^
오늘 어떤 책을 보다 이정록님의 詩 '나무기저귀'를 읽었는데

'목수는/ 대패에서 깎여 나오는/ 얇은 대팻밥을/ 나무기저귀라고 부른다
천 겹 만 겹/ 기저귀를 차고 있는,/ 나무는 갓난아이인 것이다
좋은 목수는/ 안쪽 젖은 기저귀까지 벗겨내고/ 나무아기의 맨살로/ 집을 짓는다
발가벗은 채/ 햇살만 입혀도 좋고/ 연화문살에/ 때때옷을 입어도 좋아라
목수가/ 숲에 드는 것은/ 어린이집에 가는 것이다'

이 시를 읽고 또, 함께살기님의 나무노래
'나 또한 나무가 되어 새로운 이야기를 쓴다' 를 들으니
참 좋습니다~*^^*

숲노래 2013-12-08 03:16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책방에서 이 책들 사려고 골라서 사다리에 얹었다가,
다른 책을 보는 사이
깜빡 잊고 이 책은 셈을 안 하고
사다리에 얹은 채 그대로 시골집으로 돌아온 듯하군요.
어어.... @.@ ㅜ.ㅠ

나무기저귀 이야기 재미있네요....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