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지기 자전거

 


  요새는 누구나 자가용을 몬다. 요새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몸을 생각해 운동하는 사람이라고 여기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자전거를 탄 사람은 예나 이제나 자전거를 탄다. 시골에서도 아직 자전거에 삽이나 낫을 끼우고 들일을 가는 할배가 있다. 어느 시골이든 짐차나 경운기나 오토바이를 많이 몰지만, 아주 드물게 자전거를 천천히 달리는 할배가 어김없이 있다.


  헌책방지기 가운데 자전거를 모는 분은 매우 드물다. 거의 다 오토바이나 짐차나 자가용으로 바꾸었다. 오늘날에도 책자전거를 모는 헌책방지기는 거의 다 자가용을 끌지 않는 분이다. 돈이 없기에 자가용을 안 몰지 않는다. 자전거는 어디에나 세우기 수월하고 좁은 골목도 달리기 좋으며, 천천히 달리다가 골목골목 책꾸러미를 보면 곧바로 멈추어 가뿐히 실을 수 있다. 짐자전거에 책 백 권은 거뜬히 싣고, 이백 권은 아슬아슬 튼튼하게 여미어 나를 수 있다.


  헌책방으로 책마실을 오는 이들 가운데 자전거를 타는 이는 매우 드물다. 버스나 전철을 탄다든지 천천히 걸어서 오는 이가 아직 가장 많다 할 수 있는데, 요사이는 자가용을 몰고 찾아오는 책손이 꽤 많다. 자가용을 몰아 책방마실을 할 수 있겠지. 자가용을 몰아 회사나 학교를 다니기도 하지 않는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자가용을 몰면 자가용을 몰 수밖에 없다. 자가용을 몰면서 책을 읽지 못하고, 자가용을 몰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한다. 자가용을 몰기에 봄꽃이나 가을잎을 돌아보기 어렵다. 자가용을 몰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힘들다. 라디오를 틀기는 할 테지만, 흥얼흥얼 느긋하게 노래를 부르면서 자가용을 모는 이는 몇이나 될까.


  헌책방지기는 자전거를 몰면서 바람을 마신다. 추운 겨울에는 손가락이 꽁꽁 얼지만 찬바람 씩씩하게 마신다. 더운 여름에는 땀을 씻어 주는 시원한 바람을 듬뿍 마신다. 추위에 곱은 손으로 책먼지를 닦는다. 더위를 씻은 바람맛을 헤아리면서 책을 한 번 더 쓰다듬는다. 비바람에 슬고 햇볕에 바래는 자전거는 헌책방지기와 함께 늙는다. 비바람을 맞고 햇살을 받는 자전거는 헌책방 오래된 간판과 나란히 세월을 머금는다. 4347.3.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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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을 때에 눈에 띄는 책

 


  언제 어디에나 책이 있다. 동네책방이 아주 많이 문을 닫았지만, 책방은 곳곳에 어김없이 있다. 스스로 마음이 생겨야 비로소 책을 찾아나서고, 손에 쥐며, 차근차근 읽는다. 스스로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어떠한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 책을 옆에서 자꾸 보채듯이 건넨다 하더라도 읽지 못한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교실에 앉히고 교과서를 교사가 읽는들 모든 아이가 귀여겨듣지 않는다. 스스로 듣고 싶은 마음일 적에 교사가 들려주는 말을 듣는다. 스스로 해야 하는 공부라고 느껴야 비로소 공부를 한다. 똑같은 나이인 아이들을 똑같은 교실에 똑같은 옷을 입혀서 앉힌다고 해서 공부가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스스로 무엇인가를 배우고 깨달으며 찾도록 이끌 노릇이다.


  아름다운 책은 어디에서도 광고로 알려지지 않는다. 아름다운 책은 우리 스스로 아름다운 마음이 되고 아름다운 눈길을 밝히면서 아름다운 손으로 찬찬히 펼쳐서 읽을 때에 태어난다. 아름다운 사랑으로 만나는 책일 때에 아름답다. 아름다운 꿈을 키우는 길에 길동무로 삼아서 읽는 책일 때에 아름답다.


  아름다이 살아가려는 사람이 아름답다. 돈이 많거나 이름값이 드높기에 아름답지 않다. 많이 팔리거나 널리 읽혔기에 아름다운 책이 아니다. 삶에 눈을 뜨고 사랑에 마음을 열어 빙그레 웃는 손길로 손에 쥐는 책이 아름답다.


  읽고 싶을 때에 눈에 띄는 책이다. 읽고 싶은 마음이란, 삶을 알고 싶은 마음이다. 읽고 싶은 마음이란, 사랑을 하고 싶은 마음이다. 읽고 싶은 마음이란, 스스로 살가운 이웃이 되어 스스럼없이 어깨동무를 하는 웃음노래를 부르고 싶은 마음이다. 4347.3.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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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 장만한 책을 선물하기

 


  책을 장만하는 까닭은 누구보다 나 스스로 읽고 싶기 때문이다. 곁님도 아이들도 없이 혼자 책빛을 누리던 지난날에도 ‘나 혼자만 읽을 책’보다는 ‘뒷사람한테 물려줄 책’을 생각했는데, 곁님과 아이들하고 살아가는 오늘은 더더욱 또렷하게 ‘아이와 나중에 함께 읽을 책’을 생각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아버지 책을 좋아할 수 있고 안 좋아할 수 있는데, 어느 쪽이든 아이들 몫이지만, 아이들이 좋아해 주건 안 좋아해 주건 ‘책이 있어야’ 좋아하거나 안 좋아할 수 있다. 오늘 널리 읽히는 책이라 하더라도 스무 해 뒤에는 사라진 책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나 스스로 즐겁게 읽는 책을 고이 건사해서 아이들한테 물려주는 일을 생각한다. 아이들이 나중에 책짐이라 여긴다면 둘레에 나누어 줄 테고, 아이들이 나중에 책빛이라 여긴다면 기쁘게 읽어 주겠지.


  헌책방을 애써 찾아가서 책을 장만한다. 새로 나오는 책이 날마다 무척 많지만, 굳이 예전 책을 찾으러 헌책방마실을 한다. 판이 끊어졌을 뿐 아니라 까맣게 잊힌 책을 찾으러 헌책방으로 나들이를 간다. 천 사람도 아니고 백 사람도 아닌 열 사람조차 제대로 사랑해 주지 못했을 책이라 하더라도 내가 사랑해 주면 즐거운 책이다. 만 사람이나 십만 사람이 사랑해 줄 때에 빛나는 책이 아니다. 내 책은 내가 사랑해 줄 때에 빛난다.


  오래오래 읽으면서 두고두고 물려줄 책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헌책방마실을 하다가 재미나고 예쁜 책들을 본다. 나는 예전에 읽은 책이지만, 오늘날 새책방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책이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지나치지 않기로 한다. 새롭게 장만한다. 다시 읽으려고 장만하기도 하지만, 고운 책이웃한테 선물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이웃이 생일도 아니고 다른 어떤 기림날도 아니라 하지만, 엽서에 짤막하게 편지를 써서 슬그머니 책선물로 부치자고 생각한다.


  헌책방에서 장만하는 책을 선물하는 일은 돈으로는 못 한다. 돈값으로 치면 천 원이나 이천 원짜리 책일 수 있고, 돈값으로 치면 삼천 원이나 사천원 짜리 책일 수 있다. 새책방에서 만 원이나 이만 원짜리, 때로는 오만 원이나 십만 원짜리 책을 장만해서 선물할 수 있다. 책선물이라 한다면 책값은 대수롭지 않다. 아름답게 읽을 만한 책인가 아닌가를 살필 노릇이다. 두고두고 간직하면서 아름다운 빛과 노래와 내음을 누릴 수 있을 만한 책인가 아닌가를 들여다볼 노릇이다.


  선물할 만한 헌책 한 권을 만나 살살 쓰다듬는다. 서른 해 남짓 쌓인 책먼지를 손바닥으로 살살 닦아낸다. 오늘 읽기에 오늘 마음밥이 되는 책이다. 오늘 만나면서 오늘 사랑노래가 되는 책이다. 책이 있으니 책을 읽고, 책방이 있으니 선물할 책을 장만한다. 4347.2.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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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4-02-25 13:17   좋아요 0 | URL
제가 사는 곳에는 헌책방이 없어서 더 정겹게 느껴지는 페이퍼입니다...
헌책 냄새도 그립구요 ㅎㅎ
학교 다닐때 쪼그려 앉아 읽었던 만화책도 그립구요 ^^ ㅎㅎ
책 사이로 보이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ㅎㅎㅎ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숲노래 2014-02-25 13:25   좋아요 0 | URL
고흥에도 헌책방은 없답니다.
읍내까지 나간 뒤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순천까지 가야 비로소 헌책방이 있어요.

고흥서 헌책방마실을 하자면, 세 시간에 걸쳐 오가야 하고
찻삯도 이만 원 즈음 들어요 ^^;

그래도, 이렇게 가끔 마실을 할 수 있으면
재미난 책들이 찾아들면서
예쁜 이야기가 샘솟더라구요 ^^

드림모노로그 2014-02-25 14:24   좋아요 0 | URL
아휴 장난이 아니네요
말그대로 헌책 찾아 삼만리길이네요...
함께 살기님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군요 !!
다시 한번 존경을 ~!! 보냅니다 ㅎㅎ

숲노래 2014-02-25 20:35   좋아요 0 | URL
멀다 하더라도
아름다운 책방이니
언제나 즐겁게 마실을 다녀요.
순천도 부산도 인천도 서울도~ ^^

대단하다기보다... 책내음이 저를 이끈다고 할까요~
 

책을 살피는 손길

 


  책은 온몸으로 찾는다. 눈으로만 책을 찾지는 못한다. 책꽂이는 사람 키높이로만 있지 않다. 키보다 높은 데에도 책을 꽂고, 키보다 낮은 데에도 책을 꽂는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책을 살피기도 하며, 쪼그려앉아서 책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책을 살피다 보면 으레 손이 책때가 타거나 먼지가 묻기도 한다. 새책방에서나 도서관에서나 헌책방에서나 늘 똑같다. 새책방에서 책을 살피기에 손에 먼지가 안 묻지 않는다. 새책에도 똑같이 먼지가 깃든다.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는 책은 수많은 사람이 돌려보는 만큼, 책먼지뿐 아니라 여러 사람 손때가 깃든다.


  헌책방은 어떠할까? 헌책방에 깃드는 헌책도 여러 사람 손때가 깃들 만할 테지. 그런데, 헌책방 헌책 가운데에는 출판사에서 드림책으로 누군가한테 보낸 뒤 한 번도 펼쳐지지 않은 책이 있기도 하다. 신문사나 출판사로 날아간 드림책이 스무 해나 마흔 해 동안 그대로 꽂히거나 쌓인 뒤 헌책방으로 흘러나오기도 한다. 이름난 작가한테는 드림책이 꽤 많이 간다 하고, 이름난 작가는 이녁한테 날아온 드림책을 다 읽거나 건사하지 못하다가 조용히 헌책방에 내놓곤 한다. 이녁은 못 읽더라도 다른 누군가 즐겁게 읽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있다가 헌책방으로 들어오는 책 가운데에는 참말 많은 사람 손을 거쳐 너덜너덜한 책이 있지만, 도서관에서 내놓는 책들은 으레 대출실적이 적은 책이다. 이리하여, 헌책방 헌책은 뜻밖에도 사람들 손길을 거의 안 타거나 못 탄 책이 많다. 도서관에 꽂힌 책보다 한결 ‘깨끗하다’고까지 할 만한 헌책방 헌책이라 할 수 있다.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책을 살피는 이들은 으레 책방 골마루에 손바닥을 척 대거나 아예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눌러앉아서 책시렁을 돌아보곤 한다. 이렇게 해야 밑바닥 책이 잘 보이고, 책탑 아래쪽 책을 잘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손과 바지와 옷에 책먼지가 묻더라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이 헌책방 책손이다. 손에 먼지가 묻으면 물로 깨끗이 씻으면 된다. 손에 먼지가 묻도록 즐겁게 살피면서 마음을 살찌울 책 하나 찾으려는 손길이 헌책방을 키우고 동네책방을 북돋우며 작은 책쉼터를 일으킨다. 4347.2.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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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본다

 


  책을 본다. 눈앞에 그득 쌓인 책을 본다. 이 많은 책들 가운데 내 마음을 살며시 건드리는 책이 있고, 내 마음에 와닿지 못하는 책이 있다. 내 마음을 살며시 건드리는 책을 쓴 사람은 어떤 눈빛일까 헤아려 본다. 내 마음에 와닿지 못하는 책을 쓴 사람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갈까 가누어 본다.


  나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본다. 내 이웃이나 동무는 이녁이 읽고 싶은 책을 본다. 서로 삶이 달라, 서로 읽고 싶은 책이 다르다. 서로 넋이 달라, 서로 바라보는 자리가 다르다. 나는 자가용을 몰지 않을 뿐 아니라, 운전면허조차 따지 않았다. 내 이웃이나 동무 가운데 운전면허를 따지 않은 사람은 매우 드물다. 나는 운전면허책을 들여다보는 틈마저 아깝다고 여겼다. 운전면허 시험을 치르는 틈도 아깝다고 여겼다. 이동안 내 마음 살찌울 책을 읽자고 생각했다. 이동안 내 눈빛 밝히는 풀과 꽃과 나무를 살살 어루만지자고 생각했다. 자가용을 몰면 책방마실을 하며 장만한 책을 가방에 꾹꾹 눌러담아 땀 삐질삐질 빼면서 어기적어기적 짊어지고 집까지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달리지 않아도 된다. 자가용을 몰면 우체국으로 소포꾸러미 보내러 자전거수레를 몰지 않아도 될 테고, 자가용을 몰면 읍내 저잣거리로 마실을 가서 가방이 무겁도록 짐을 짊어지고 나르지 않아도 되겠지. 그런데, 자가용을 몰면 길바닥만 보고 다른 자동차를 살피기만 해야 한다. 내 보금자리와 이웃마을 사이에 드리운 숲이나 바다나 골짜기를 바라볼 수 없다. 자가용을 모는 사람 가운데 집과 읍내 사이를 오가다가 살며시 멈추고는 바람 한 줄기 쐬며 풀노래를 듣는 사람이란 찾아보기 어렵다.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로 달릴 때면, 언제나 풀바람을 쐬고 풀노래를 듣는다. 자가용을 빨리 달리면, 집에서 느긋하게 책을 더 오래 손에 쥘 만하다 말할 분이 있을 텐데, 자가용으로 더 빨리 달린대서 책을 더 오래 손에 쥔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더구나, 종이책만 책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겨울바람도 책이요, 봄꽃도 책이다. 멧새 노랫소리도 책이요, 개구리 울음소리도 책이다. 오르막에서 숨을 돌리면서 아이들더러 “얘들아 하늘 좀 보렴. 구름 멋있지 않니?” 하고 말하며 구름바라기와 먼산바라기를 하는 일도 책읽기라고 느낀다.


  책을 본다. 책방마다 가득 쌓인 책을 본다. 나는 이 많은 책들 가운데 어느 책을 마음밥으로 삼고 싶을까. 나는 이 많은 책들 가운데 어떤 책을 골라서 내 마음빛을 밝히고 싶을까. 남들이 나한테 묻지 않는다. 언제나 내가 나한테 묻는다. 나 스스로 걸어갈 길을 나 스스로 묻는다. 나 스스로 아름답게 가꾸고 싶은 삶을 나 스스로 돌아본다. 길동무가 되는 책을 살피면서 하루를 열고 닫는다. 4347.2.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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