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종이로 싼 책



  예전에는 책을 곧잘 신문종이로 쌌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를 떠올리면 나도 동무도 으레 교과서를 신문종이로 쌌다. 뒤가 하얗게 깨끗한 달력을 얻으면 달력을 뜯을 적마다 안 버리가 잘 간수했다. 학기마다 새 교과서를 받으면 맨 먼저 깨끗한 달력종이로 교과서를 쌌고, 달력종이로 모자라면 신문종이를 썼다. 때로는 공책을 신문종이로 싸기도 했다.


  곰곰이 돌아보면, 어릴 적 푸줏간에서도 으레 신문종이였다. 물고기를 파는 이들도 신문종이를 썼다. 학교에서 폐품을 내라며 다달이 신문종이를 오 킬로그램씩 모아야 했지만, 신문종이는 어느 가게에서나 집에서나 아주 알뜰하게 썼다. 내가 신문배달을 할 적에는, 우리 신문사지국에 있던 도박에 빠진 형이 신문뭉치를 몰래 한두 덩이씩 고물상에 가져가서 오천 원에 팔고는 도박을 하기도 했고, 그 형은 신문뭉치를 팔아 술값에 보태기도 했다.


  헌책방에서는 오늘날에도 신문종이를 알뜰히 건사한다. 책손한테 택배로 책을 부칠 적에 빈틈을 신문종이로 채운다. 이제 웬만한 헌책방에서도 책손한테 비닐에 책을 담아 건네지만, 몇 군데 헌책방에서는 신문종이로 알뜰살뜰 여미어 책을 싸 준다.


  신문종이로 싼 책뭉치는 얼마나 멋스러운가. 종이로 빚은 책을 종이로 싼 꾸러미는 얼마나 예쁜가. 헌책방 일꾼이 빚은 사랑스러운 책꾸러미를 한참 바라보며 웃는다. 4347.4.2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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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끈은 낡지 않다



  눈으로 바라보면서 낡다고 생각하면 낡은 끈이 된다. 눈을 감고 손으로 살살 어루만지면서 끈이로구나 하고 생각하면 끈이 된다. 끈은 아랑곳하지 않고 책을 손에 쥐어 한 쪽씩 넘기면 그예 책이 된다. 낡은 끈으로 묶은 낡은 책이라고 여기면 그예 낡은 책이 된다.


  2004년에 처음 나오고 2014년에 여러 쇄를 찍은 책은 어떤 책일까. 낡은 이야기를 담은 책일까 새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일까. 1994년에 처음 나온 뒤 더 찍지 못했기에 1994년에 나온 대로 내 앞에 놓인 책은 어떤 책일까. 1974년에 처음 나오고 2014년에 새로 찍은 책은 어떤 책일까.


  많은 사람들이 아끼고 사랑해서 앞으로도 꾸준히 찍는 책이 있다. 몇몇 사람들이 아끼고 사랑하기에 한 번 찍고 나서 다시 못 찍지만, 헌책방에서 애틋한 손길을 받는 책이 있다. 책은 책을 읽는 사람 몫이지, 책 몫이 아니다. 책은 그저 책으로 있을 뿐이요, 우리들이 책에 빛과 값과 넋과 숨결을 불어넣는다. 책에 깃든 이야기는 글쓴이 몫이 아닌 읽는이 몫이다. 글쓴이는 이녁 온 사랑과 꿈을 이야기로 엮어 책으로 묶는다. 읽는이는 글쓴이가 바친 사랑과 꿈을 이야기로 읽을 뿐 아니라, 읽는이 나름대로 새로운 빛과 숨결을 불어넣으면서 새로운 이야기로 짓는다.


  낡은 끈이 낡은 까닭은 낡았다고 생각하는 마음 때문이다. 끈이 끈인 까닭은 그저 끈으로 마주하면서 아끼기 때문이다. 헌책도 없고 새책도 없다. 모두 똑같은 책이다. 종이로 빚은 책과 종이에 앉히지 않고 마음에 담는 책은 모두 똑같은 책이다. 4347.4.2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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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른 책을 넘겨주기



  새책방에서는 책 하나를 두고 다투거나 실랑이를 벌일 까닭이 없다. 새책방에서는 같은 책을 여러 권 장만할 수 있으니까. 헌책방에서는 책 하나를 두고 다투거나 실랑이를 벌일 수 있다. 왜냐하면, 헌책방에 들어오는 헌책은 꼭 하나뿐이기 일쑤이니까.


  《사진으로 보는 소설 70년사》라는 조그마한 사진책이 있다. 나는 사진비평을 하기 때문에 이 책을 헌책방에서 찾으려고 꽤 여러 해 바지런히 다리품을 팔았다. 그러고서 드디어 이 책을 만난다. 아 반갑구나, 이제 비로소 네 이야기를 쓸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함께 헌책방 나들이를 한 분이 자꾸 이 책을 바라본다. 이 책을 보고 싶다고 넌지시 마음을 내보인다.


  딱한 일이다. 책은 하나인데, 이 책을 건사하고 싶은 사람은 둘이로구나.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모르는 척해야 할까. ‘나도 이 책으로 사진비평을 써야 한다구요.’ 하고 말해야 하는가.


  빙그레 웃으면서 책벗한테 책을 넘긴다. “저는 전국 여러 헌책방을 두루 돌아다니니, 다음에 다시 만날 일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책벗이 이 책을 즐겁게 읽고 알뜰히 아낄 수 있기를 빈다. 아무렴, 알뜰살뜰 건사하며 보듬어 줄 테지.


  그나저나 앞으로 몇 해를 더 살펴야 다시 이 책을 만날 수 있을까. 나는 앞으로 몇 해쯤 뒤에나 이 책을 놓고 사진비평을 쓸 수 있을까. 4347.4.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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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린다고 사라진다면

 


  서강대학교에서 ‘폐기’ 도장을 찍어서 버린 책을 서울 신촌에 있는 헌책방에서 만난다. 대학교 도서관에서 어느 책 하나를 버리려 한다면 버릴 만한 까닭이 있으리라. 우리들이 이 까닭을 알아내든 알 수 없든 틀림없이 까닭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이 참말 아주 사라져서 종이쓰레기가 되든 되살림종이가 되면 어떻게 될까. 도서관에서는 ‘버리려는 뜻’에 걸맞게 가슴을 쓸어내릴는지 모르지만, 책이 걸어온 발걸음과 발자취로 돌아보자면 여러모로 아쉽다. 생각해 보라. 일제강점기가 끝날 무렵, 일본 군인이 이녁한테 나쁘게 쓰일 만한 자료와 문서를 엄청나게 불태워 없앴다고 하지 않는가. 정권이 바뀔 적에도 자료 없애기나 문서 없애기는 늘 일어나지 않으랴 싶기도 하다. 우리 역사를 돌아본다면, 1960∼70년대를 흐르는 동안 유신독재와 종신독재를 하고자 여러 가지 공공문서와 공공도서를 나라에서 앞장서며 불태워 없애기도 했다.


  여러 달 앞서 헌책방에서 만난 《한국문인협회 엮음-새 국민 문고, 민족 중흥》(어문각,1969)이라는 책을 따올린다. 1969년에 처음 나온 이 ‘유신독재 부스러기’가 언제부터 대학교 도서관 한쪽에 꽂혔는지 알 길은 없다. 어쩌면 1969년에 정부에서 신나게 찍어 전국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 도서관에 한 권씩 꽂았을는지 모른다. 나중에 수없이 찍어서 꾸준하게 널리 퍼뜨렸을 수 있겠지. 이 책이 오늘날 몇 권이 남았는지 어느 곳에 남았는지 알 길은 없다.


  그러면, 이 책을 대학교 도서관뿐 아니라 국립중앙도서관에서까지 없앤다면? 그때에 이 책은 어떤 책이 될까? 없는 책이 될까? 잊혀지는 책이 될까? 태어난 적이 없는 책으로 사람들 마음에 남을까? 아니, 이런 책이 태어난 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테니, 쥐도 새도 모르게 조용히 지나갈 수 있을까?


  버린다고 사라진다면 역사란 없으리라. 버린다고 사라진다면 역사란 모두 거짓말이 되리라. 버린다고 사라지지 않기에 역사가 있고, 버린다고 사라질 수 없기에 역사를 참된 말로 적을 수 있으리라. 이 나라에서 헌책방이 맡은 몫은 참 대단하다. 4347.4.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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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한 권 알아보는 눈길

 

 

  모든 책은 돈으로만 살 수 없다. 돈을 들인대서 모든 책을 사들일 수 없다. 새로 나온 책이라면 새책방에 주문을 넣으면 집에서 택배로 얼마든지 받는다. 그러나 판이 끊겨 사라진 책은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 판이 끊겨 사라진 책을 사고 싶다면, 이 책을 건사한 누군가 헌책방에 즐겁게 내놓는 날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무도 헌책방에 책을 내놓지 않으면, 판이 끊어진 책은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

 

  책방지기는 책손한테 책을 판다. 새책방에서는 새책을 파고 헌책방에서는 헌책을 판다. 어느 책방에서는 책을 판다. 새책방에서는 늘 똑같은 책을 팔고, 헌책방에서는 늘 다른 책을 판다. 왜냐하면, 새책방에 놓는 갓 나온 책은 모두 똑같은 책이다. 아직 누구 손길도 타지 않은 새책은 모두 똑같다. 책손 손길을 탈 적에 비로소 다른 책이 되고, 다 다른 책손이 다 다른 넋으로 읽고 삭히는 동안, 다 똑같던 책에 다 다른 숨결이 깃들면서 다 다른 이야기로 피어난다. 그래서 헌책방에서 다루는 헌책은 똑같은 책이 한 가지조차 없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삶에 따라 다 다른 즐거움을 누리며 읽은 책이니까.

 

  책을 한 권 알아본다. 책을 한 권 알아본 사람은 책을 한 권 장만한다. 책을 장만한 날 곧바로 끝쪽까지 다 읽을 수 있다. 바쁜 일이 있어 이레쯤 묵힌 뒤 읽을 수 있다. 사 놓고 깜빡 잊은 나머지 한 해가 지나서 읽을 수 있다. 장만하고서 곧바로 읽으려고 손에 쥐었다가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겠구나 싶어 덮은 뒤, 열 해나 스무 해 지나서야 펼치니 비로소 머릿속에 쏙쏙 들어올 수 있다.

 

  책은 읽힐 적에 새책이다. 책은 누군가한테 읽히면서 비로소 새책이 된다. 열 해를 묵든 백 해를 묵든, 알아보는 눈길이 없으면 모든 책은 그저 묵은 책일 뿐이다. 먼지가 쌓이고 더께가 앉으면서 헌책이 되면, 책은 책으로서 제 빛을 드러내지 못한다. 이러다가 누군가 이 책 한 권을 알아보고는 살며시 집어서 가만히 넘기면, 모든 헌책은 새책이 된다. 새롭게 빛나고 새삼스레 눈부시다.

 

  모든 책은 태어나면서 헌책이 되지만, 모든 책은 읽히면서 새책이 된다. 모든 책은 책꽂이에 꽂으면 헌책이 되나, 모든 책은 손에 쥐어 읽으면 새책이 된다. 4347.4.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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