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른입니까 24] 풀읽기
― 군대 사계청소(시계청소)가 저지른 짓

 


  네 식구 함께 시골집 떠나 도시로 마실을 오면서 새삼스레 느낍니다. 내가 군대에 있을 적에 중대장·대대장·연대장·사단장·군단장 같은 분들께서 우리한테 시킨 짓 ‘사계청소’가 우리를 어떻게 길들이거나 물들였는가를 새삼스레 느낍니다.


  비무장지대라고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완전무장지대’인 휴전선 철책 둘레에서 스물여섯 달을 보내며, 봄날 되고 여름날 맞이하면 날이면 날마다 해야 하는 숱한 ‘사역’ 가운데 하나는 ‘사계청소’였습니다. 한자말로 ‘사계청소’라 했는데, 이를 ‘시계청소’라고도 했습니다. ‘사계’라는 한자말 쓴 하사관, 이를테면 행정보급관은 ‘둘레에 있는 풀과 나무를 없애 멀리까지 잘 보이도록’ 하자는 뜻이요, ‘시계’라는 한자말 쓴 장교, 이를테면 중대장이나 대대장은 ‘보초를 서는 병사들 눈앞이 확 트여 저기 북녘 인민군 병사가 뭘 하는지 잘 보이도록’ 하자는 뜻입니다.


  우리들은 낫, 정글칼, 톱 들을 하나씩 들고 철책 둘레에 섭니다. 백육십 졸개(땅개, 육군 사병)는 한 줄로 서서 풀을 베고 나무를 자릅니다. 눈앞에 보이는 ‘푸른 빛깔’은 모조리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그야말로 작은 들풀 하나조차 남기지 않고 뽑고 베고 죽이고 짓밟습니다. 이렇게 한 다음 무엇을 하느냐 하면 고엽제를 뿌립니다. 고엽제를 뿌려서 풀이 돋지 못하도록 해요. 고엽제는 맨손으로도 뿌리고, 바가지로도 퍼서 뿌리며, 하이바로도 담아 뿌려요. 철책 둘레에서 풀을 베고 죽이고 없애는 동안, 또 전역을 할 때까지 어느 누구도 그 가룻덩어리가 고엽제였다고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사계청소이든 시계청소이든 막일을 해야 하던 졸개(땅개, 육군 사병)들마다 팔과 다리와 몸에 두드러기가 생기고 피부병 걸린 까닭을 어느 누구도 제대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나는 한 해 동안 뒤탈을 앓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고, 마취제 없이 칼로 생채기를 도려내기도 해야 했습니다.


  예전에는, 그러니까 전역을 하고 열 몇 해 동안은, 군대에서 사계청소나 시계청소를 하며 고엽제를 쓴 대목이 엿같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즈음, 시골에서 아이들과 살아가며 문득 지난날이 떠오르거나 어쩌다가 군대 적 일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 있으면, 풀을 미워하고 나무를 몽땅 죽이도록 하는 군대 몸짓이란, 사람들(젊은 사내) 마음속에 아름다운 사랑이나 맑은 꿈이 깃들지 못하도록 하려던 꿍꿍이였구나 싶어요. 군인이란 살인기계이니까, 군인이란 ‘내 이웃이나 동무라 할지라도 적군이라는 자리에 있으면 거침없이 죽이도록 명령을 따라야 하는 졸개’이니까, 군인들 마음속에 푸른 빛깔과 씨앗과 생각이 깃들면 안 된다고 여겼구나 싶어요.


  그런데, 시골집 떠나 인천으로 나들이를 오는 동안, 시외버스가 서울 버스역에 닿고, 서울에서 전철로 갈아타서 인천으로 오면서, 둘레에서 풀이나 나무를 거의 못 봅니다. 서울도 인천도 풀과 나무는 제자리를 못 찾습니다. 부산도 그렇고 대구도 그래요. 광주라고 다를 수 없고, 울산이라고 낫지 않아요. 마산 진해 창원을 마창진으로 엮어 엄청나게 큰 도시로 바꾸었다지만, 마창진이라는 데에 풀숲과 나무숲 얼마나 있는가요.


  풀이 마음껏 자라지 못하는 곳에 사랑이 자라지 못합니다. 나무가 흐드러지게 뿌리내리지 못하는 곳에 꿈이 흐드러지지 못합니다. 꽃이 곱다시 빛나지 못하는 곳에 생각이 곱다시 빛나지 못합니다.


  오늘날 이 나라 도시는 모두 군대와 같습니다. 회사도 공공기관도 일꾼(사람들)을 군인처럼 다뤄요. 회사원도 공무원도 마치 군인처럼 위계질서와 명령만 받아들여요. 게다가,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마치고 사회에서 일자리 얻으려는 푸름이와 젊은이도 군인과 똑같은 매무새나 넋이 되고 맙니다.


  군대를 가서 여러 해 지내는 일은 얼마나 나라사랑 될까요. 군대에서 이웃사랑 동무사랑 하나도 배우지 않으면서 사람 죽이는 솜씨를 배우는 한편, 풀과 나무와 꽃을 짓밟는 일을 끝없이 할 때에, 어떤 나라사랑 될까요. 풀사랑과 나무사랑과 꽃사랑을 하지 못한다면, 나라사랑이나 지구사랑 이룰 수 있을까요.


  가만히 눈을 감다가 눈을 다시 뜹니다. 서울 벗어난 전철이 인천으로 달리는 바깥을 바라보며 풀빛을 찾습니다. 전철역에는 풀포기 하나 없으나, 전철역과 전철역 사이에는 풀포기 제법 있습니다. 골목집 사이사이 우람한 나무 보입니다. 그렇지만, 아파트 높직한 데에는 아무런 풀포기도 나무도 안 보입니다. 전철은 동인천역에 닿고, 네 식구는 내립니다. 사람들은 쉽게 새치기를 하고, 표를 끊은 뒤 저마다 갈 곳을 찾아갑니다. 동인천역 뒤쪽은 너른터 만든다며 골목집 허물어 시멘트와 아스팔트와 벽돌을 깔아 놓았습니다. 나무는 어디에서 자라야 하고 풀은 어디서 돋아야 할까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푸른 숨결 마셔야 목숨을 잇는데, 도시에 풀과 나무와 꽃이 제대로 자랄 수 없으면, 사람은 무엇을 마시면서 삶을 일구는지 모르겠습니다. 4346.6.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당신은 어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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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23] 고향읽기
― 살아가는 곳과 태어난 곳

 


  나는 ‘고향’이라는 낱말을 그닥 즐겨쓰지 않습니다. 나는 두 가지 말을 씁니다. 하나는 ‘태어난 곳’, 또 하나는 ‘살아가는 곳’, 이렇게 두 가지 말을 으레 씁니다.


  고향이라는 곳을 헤아려 보면, 고향이 이곳이라 하더라도 이곳에서 내처 살아가는 사람 매우 적은 오늘날입니다. 이곳이 고향이 아니라 하더라도 어릴 적에 어버이와 함께 옮긴 뒤 내처 살아가는 사람 많고, 고등학교 마치고 스무 살부터 새롭게 살아가며 새로운 고향 되는 곳으로 여기는 사람 많습니다.


  어느 곳에서 태어났기에 굳이 어느 곳을 고향으로 삼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태어난 곳’과 ‘살아가는 곳’에 한 가지를 더해서, ‘사랑하는 곳’을 생각합니다. 아마, 누군가는 태어난 곳이 살아가는 곳이면서 사랑하는 곳일 수 있어요. 아마, 누군가는 태어난 곳도 사랑하는 곳도 아닌 데에서 살아갈 수 있어요. 아마, 누군가는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겠지요.


  엊저녁, 어느 분이 저를 다른 어느 분한테 소개하면서 “이곳(전남 고흥) 분은 아니신데, 이곳으로 와서 살아가는 분이에요.” 하고 말합니다. 다른 어느 분은 “귀촌하신 분인가 보네.” 하고 말합니다. 이런 말을 가만히 듣다가 생각합니다.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스무 살에 인천을 떠났다가 서른세 살에 인천으로 돌아갔고, 이제 인천을 다시 떠나 시골마을에서 살아갑니다. 인천으로 돌아가 살던 때 일을 곰곰이 떠올립니다.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열세 해 동안 인천을 떠나서 지냈어요. 이런 나를 두고 사람들은 ‘인천 토박이네’ 하고 말하더군요. 나는 ‘글쎄요’ 하고 말했고, 다른 곳에서 태어나 살다가 인천으로 온 분이 있을 때에 나는 그저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면 인천사람이지요. 다른 말은 다 쓸데없어요.’ 하고 말했어요. 둘레 다른 분들이 인천 아닌 데에서 살다가 인천에 온 분을 보며 ‘당신은 아직 인천사람 아니에요.’ 하고 말하기에, 그런 말은 말이 안 된다고, 그러면 이분을 가리켜 ‘이농인’이라고 불러야 하느냐고,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며 이곳을 좋아하면 ‘이곳 사람’일 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나는 오늘 두 아이와 옆지기하고 전남 고흥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나는 ‘전라도사람’이면서 ‘고흥사람’입니다. 나한테는 다른 이름을 붙일 만하지 않습니다. 나는 텃세를 부릴 까닭이 없습니다. 나는 손님이 될 까닭이 없습니다. 살아가는 사람은 그저 살아갈 뿐입니다. 그리고, 살아가는 사람은 그저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듯, 일하는 사람은 그저 일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하루 먼저 어느 회사에 들어갔대서 ‘고참’이나 ‘선배’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하루 먼저 태어났대서 ‘형’이나 ‘선배’가 되지 않습니다. 그저 나이가 조금 더 많을 뿐입니다.


  돈이 조금 더 많대서 돈이 조금 더 적은 사람보다 웃사람 되지 않습니다. 이름값이 조금 높대서 이름값 없는 사람 앞에서 우쭐거릴 까닭 없습니다. 어느 마을 토박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보다 높은 자리에 서지 않습니다. 어느 마을에 새로 옮겨서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보다 낮은 자리에 서지 않습니다.


  모두 같은 사람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공장에서 일하는 ‘한국 노동자’이든,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한국으로 와서 공장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이든, 모두 똑같은 노동자요, 똑같은 숨결이며, 똑같은 사랑입니다.


  이주 노동자, 이른바 외국인 노동자와 한국인 노동자를 똑같이 아끼는 눈길로 바라볼 수 있자면, 토박이와 ‘외지인(손님)’ 나누기부터 없어져야 합니다. 나이에 따라 계급이나 신분을 쌓는 울타리를 없애야 합니다. 선배나 고참이라는 울타리를 허물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길을 걸어야지요. 서로 아끼는 삶을 가꾸어야지요.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꿈꾸는 마을 살찌워야지요. 4346.5.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당신은 어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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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22] 방송읽기
― 무엇을 보고 들어야 즐거울까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갈 때에 곧잘 버스 일꾼이 라디오를 켭니다. 군내버스 20분을 조용히 시골길 누비며 다닐 때가 있지만, 시골길 누비면서도 라디오 소리에 두 귀가 멍멍할 때가 꽤 됩니다. 시외버스를 타고 고흥읍에서 순천을 오갈 적에는 거의 언제나 버스 일꾼이 라디오를 틉니다. 시외버스로 고흥과 순천을 오가는 한 시간 길에는 거의 언제나 두 귀 멍멍한 채 있어야 합니다.


  시외버스 일꾼은 시외버스에 어른이 타건 아이가 타건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어린이가 타건 푸름이가 타건 어르신이 타건 대수로이 살피지 않습니다. 그저 버스 일꾼 스스로 들으려 하는 라디오를 켭니다.


  가끔 도시로 가서 시내버스를 탈 적에는 좀 다르다고 느끼곤 합니다. 왜냐하면, 도시에서는 자동차 너무 많고, 사람들 지나치게 많아서, 도시 시내버스 일꾼으로서는 라디오라도 켜지 않으면 골이 아프겠구나 싶어요.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와 손전화 소리와 수다 떠는 소리에서 홀가분하면서 도시 시내버스를 몰자면, 라디오란 더할 나위 없는 길벗이 되리라 느껴요.


  시골 군내버스는 퍽 달라요. 호젓한 시골길을 달리는 군내버스는 앞에서나 옆에서나 뒤에서나 숲을 보고 들을 봅니다. 때로는 냇물을 보고 바닷물을 봅니다. 눈을 맑게 틔우고 생각을 환하게 여는 푸른 빛깔을 한 가득 바라보면서 버스를 몰 수 있어요. 그러니, 시골 군내버스 일꾼은 굳이 라디오를 안 켜도 됩니다. 게다가, 시골 할매나 할배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가 있고, 갓 태어난 아기들 무럭무럭 자라 어린이 되고 푸름이 되며 어른 되는 흐름을 죽 지켜보기도 하기에,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새록새록 누립니다. 따로 라디오를 헤아릴 틈이 없다 할 만해요.


  도시에서 택시를 모는 일꾼이 손님들 기다리면서 텔레비전을 볼밖에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루 내내 찻길에서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에 시달리면서, 자동차 배기가스를 맡을 뿐 아니라, 열 몇 시간 좁은 자동차에 갇히다시피 들어앉아 일을 해야 하니, 택시 일꾼 또한 버스 일꾼처럼 라디오가 길벗이요 텔레비전이 삶벗 되리라 느껴요.


  그러면,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버스와 택시 일꾼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채우는 이야기는 어느 곳에서 살아가는 어떤 사람들이 빚을까요. 사람들 마음을 따사롭게 보듬는 이야기가 새벽부터 밤까지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흐르나요. 치거나 박거나 싸우거나 하는 이야기가 흐르는 방송은 아닌가요.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이야기는 뒤로 밀린 채, 갖가지 정치 다툼·경제 다툼·외교 다툼 따위만 다루다가는, 차별 문제·반민주 문제·막개발 문제조차 제대로 못 다루는 방송이지 않나요.


  라디오에서 흐르는 노래는 사람들 마음을 어떻게 건드리는지 궁금합니다.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영화나 연속극이나 운동경기나 새소식이나 정보나 토론이나 연설 들은 사람들 생각을 어떻게 움직이려는지 궁금합니다.

  고흥읍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이웃도시 순천으로 마실을 가서 한나절 지내고는 다시 고흥읍으로 와서 군내버스로 갈아타고는 시골마을 우리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합니다. 시외버스 타고 오가는 동안 내내 라디오 소리에 귀가 멍멍했고, 군내버스에 내리자마자 마을 어귀부터 훅 끼치는 고소하고 시원한 들바람에 개구리 노랫소리 가득 울려퍼집니다. 개구리 노랫소리 사이사이 아직 나즈막하다 싶은 풀벌레 노랫소리 섞입니다. 멧새 노랫소리는 개구리 노랫소리에 그예 파묻힙니다. 머잖아 이 밤에 개똥벌레 불꽃춤잔치 벌어지리라 생각합니다. 해마다 찾아오는 밤노래잔치 즐겁고, 해마다 다시 마주하는 개똥벌레 불꽃춤잔치 반갑습니다. 하늘 올려다보면 별이 쏟아지고, 멀리 내다보면 까만 밤하늘 가로지르는 멧자락 얼핏설핏 보입니다.


  라디오 방송 가운데 한 시간이나 두 시간 즈음 개구리 노랫소리나 제비 노랫소리 들려주는 적은 아직 없습니다. 텔레비전 방송 가운데 세 시간이나 네 시간 즈음 바람소리와 햇살내음이랑 풀노래랑 바다물결 골고루 보여주는 적은 아직 없습니다. 바람 따라 풀이 눕고 나뭇잎 살랑거리는 소리를 오래오래 들려주는 라디오 방송이 있을까요. 고래가 노니는 춤사위를 오래도록 보여주는 텔레비전 방송이 있을까요.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우리한테 어떤 이야기밭이 될까요.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지구별 사람들한테 어떤 사랑이나 꿈이 될 만할까요. 우리들은 꿈과 사랑을 헤아리면서 방송을 마주하는 삶인가요 아닌가요. 4346.5.2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당신은 어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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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21] 돈읽기
― 남한테서 무엇 하나 얻을 적에


 

  나는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돈을 법니다. 내가 쓴 글을 책으로 묶기도 하고, 내가 찍은 사진을 누군가 사들이기도 해서, 이럭저럭 돈을 법니다. 나는 글을 써서 돈을 벌되, 돈을 안 받고 글을 보내기도 합니다. 가난한 살림에 뜻있는 일을 하는 모임이 있으면 자원봉사를 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서 보냅니다. 사진도 이와 같아요. 애써 찍은 사진들을 아무 돈을 안 받고 보내곤 합니다.


  거꾸로 보면, 나도 내 둘레 사람들한테서 돈을 받습니다. 내가 하는 일을 곱게 바라보는 분들은 내가 시골마을에서 꾸리는 사진책도서관 튼튼하고 씩씩하게 이을 수 있도록 도움돈을 보내줍니다. 도서관이 좋은 자리 얻도록 밑돈을 보태어 줍니다. 도서관 꾸리는 살림돈을 요모조모 보태어 줍니다. 도서관 새 책꽂이 들이는 돈을 보태어 줍니다. 그러면 나는 도서관 소식지라든지 내가 내놓은 책들을 이웃들한테 보내거나 선물합니다.


  내 글 한 꼭지는 원고지 열 장이 되기도 하고 원고지 백 장이 되기도 합니다. 어느 때에는 원고지 열 장짜리 글을 써서 30만 원 값을 받습니다. 어느 때에는 원고지 백 장짜리 글을 써서 거저로 주기도 합니다. 내 사진 한 장에 50만 원 값을 받기도 하면서, 내 사진 서른 장을 거저로 주기도 합니다. 어떤 일이든 꼭 돈으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꿈과 사랑은 돈으로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돈이 있고 이름도 있으며 힘도 있는 사람이나 모임에서 나한테 ‘공짜 글’을 써 달라 할 때가 있고, ‘공짜 사진’을 보내 달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에는 딱 잘라 이야기합니다. 이녁한테 돈도 이름도 힘도 없으면 얼마든지 글과 사진을 자원봉사하는 마음으로 보낼 테지만, 이녁한테 돈도 이름도 힘도 다 있는데, 내가 왜 이녁한테 아무 돈을 안 받고 글이나 사진을 주어야 할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합니다.


  돈도 이름도 힘도 없으면서 뜻있는 일 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푸념을 하는 소리를 듣는 자리에서는 또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뜻있는 일을 하려는 그 마음을 더 깊이 엮어, 뜻있는 일을 하면서도 돈을 즐겁고 슬기롭게 버는 생각도 함께 해 보셔요, 하고요. 좋은 일을 하면서 좋은 돈을 벌어야 맞거든요. 아름다운 일을 하면서 아름다운 돈을 벌어야 참말 아름답지요.


  남한테서 무엇 하나 얻을 적에는, 나도 남한테 무엇 하나 건넵니다. 내 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깨끗한 종이 한 장 얻어 그 자리에서 시를 한 가락 씁니다. 내가 시골에서 살아가며 누리는 아름다운 사랑을 가만히 떠올리면서 그때그때 시를 한 가락 씁니다. 또는 내가 찍은 사진 가운데 내 마음을 아주 넉넉히 살찌우는 작품을 골라서 선물로 보냅니다.


  밥 한 그릇 만나게 얻어먹으면, 설거지를 맡아서 하거나, 걸레를 빨아 구석구석 방바닥을 훔치거나 먼지를 닦습니다. 몸을 써서 날라야 할 짐이 있으면 함께 나르고, 이것저것 종이 한 장 맞드는 마음 되어 어깨동무를 합니다. 내 동무들도, 내 이웃들도 서로서로 같은 마음이겠지요. 저마다 즐겁게 얻어서 누리고, 저마다 즐겁게 손을 내밀어 함께 일을 해요. 다 함께 즐겁게 주고받습니다. 서로서로 기쁘게 웃으면서 사랑과 꿈을 돈 한 푼에 실어 나눕니다.


  내 주머니에 돈 한 푼 있으니 한 푼을 반으로 갈라 함께 씁니다. 이녁 주머니에 돈 두 푼 있으니 두 푼을 반으로 갈라 함께 써요. 넉넉히 있으니 나눈다고 할 수 있지만, 넉넉하지 않더라도 스스럼없이 나눕니다. 많고 적고는 대수롭지 않아요. 마음이 대수롭습니다. 마음을 즐겁게 추스르면서, 환하게 웃는 어깨동무를 생각합니다.


  돈이란 나눌수록 즐겁습니다. 돈이란 함께할수록 커집니다. 왜냐하면, 돈이란 바로 사람들이 만들어서 쓰거든요. 사람들은 사랑으로 살아가는 숨결이고, 사람들은 꿈을 먹으면서 살아가는 목숨이에요. 곧, 사람들은 돈이라는 물건 하나에 사랑과 꿈을 담습니다. 사랑과 꿈은 돈을 징검돌 삼아 이 사람한테서 저 사람한테 갑니다. 저 사람한테서 이 사람한테 옵니다. 4346.5.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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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20] 도서관읽기
― 책은 어떻게 건사하면 아름다울까

 


  도서관은 책을 두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도서관 건물 한 번 지으면, 더는 새 건물 안 늘리기 일쑤예요. 책을 둘 자리 넉넉하게 늘리지 못해요. 도서관은 책을 두는 곳이지만, 책을 버리는 곳이 됩니다. 새로운 책을 꾸준히 사들이자면, 그동안 사들인 책을 꾸준히 버려야 해요.


  도서관은 책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도서관에서 책을 찾기 퍽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책이 없는 도서관은 없겠지요. 그렇지만 사람들이 드문드문 찾는 책이라든지 어쩌다 한 번 찾는 책이 있는 도서관은 퍽 드물어요. 대출실적 적은 책을 꾸준하게 버려야, 사람들이 새로 찾는 책을 장만해서 갖출 수 있거든요.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곳입니다. 그렇지만, 이 나라에서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기 참 힘듭니다. 아직도 아주 많은 도서관은 책을 읽기보다는 수험공부 하는 데로 여깁니다. 책을 읽기 좋도록 건물을 짓거나 꾸미거나 고치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도서관을 찾아오는 사람들 스스로 책을 읽으려는 마음이라기보다 수험공부 하려는 데에 마음을 기울입니다. 애써 아름답게 도서관을 지어 책을 읽기 즐거운 터로 꾸몄어도, 사람들 스스로 아름다운 마음 빚지 못하면, 도서관에서 책을 읽지 못합니다.


  도서관은 책을 사랑하는 곳입니다. 그런데요, 이 나라에서는 도서관이 책을 사랑하도록 북돋우는지 이끄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는 몸가짐과 책을 다루는 손길을 보여주거나 알려주는 도서관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도서관에서는 ‘사람들 손길 타는 책’이 튼튼하도록 껍데기를 두껍게 댄다든지 테이프를 바른다든지 해요. 책마다 딱지를 붙이고 번호와 숫자를 매겨요. 책마다 도장을 찍고 ‘훔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를 붙여요. 도서관에 있는 책을 바라보며 가만히 생각해 보곤 합니다. 책을 이렇게 망가뜨려도 될까 하고. 책에 이렇게 덕지덕지 지저분한 짓을 해도 될까 하고. 사람들이 책을 사랑하도록 이야기를 들려주고, 책을 어떻게 만지고 넘기며 책을 어떻게 건사해야 하는가를 차근차근 가르쳐야지 싶습니다. 이런 장치 저런 딱지 붙인대서 책을 안 도둑맞지 않아요. 이렇게 도장을 찍고 저렇게 테이프를 발라야 ‘어느 도서관 책’이라고 널리 보여주지 않아요.


  도서관은 책을 배우는 곳입니다. 그래, 도서관은 책을 배우는 곳이지요. 그래, 도서관은 책이 어떠한 숨결이요 삶이며 마음인가를 배우는 곳이지요. 그러면, 우리 도서관은 사람들한테 책이 무엇인가 하고 가르치나요. 우리 도서관은 사람들한테 책으로 어떤 삶 짓거나 일구거나 가꿀 수 있는지를 어떻게 가르치나요. 우리 도서관은 사람들한테 책 하나에 깃든 꿈과 사랑과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어떻게 가르치나요.


  작은도서관을 떠올려 봅니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서울 한복판에 커다란 건물로 서는 모습 말고, 국립중앙도서관이 서울 곳곳에 조그마한 ‘책집’으로 깃드는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골목도서관을 헤아려 봅니다. 시립도서관이든 군립도서관이든 골목골목 조그마한 살림집에 스며들어 책집이 되면서 잠집(게스트하우스) 구실까지 맡는, 살가운 책터 하나 헤아려 봅니다.


  골목집 한 곳을 정갈하게 꾸며 책 만 권씩 건사한다면, 골목집 백 곳을 마련하면 책 백만 권 너끈히 거느립니다. 골목집 천 곳을 마련하면 책 천만 권 알뜰히 거느리겠지요. 인터넷이 발돋움한 오늘날은 인터넷으로 ‘어느 책이 어느 골목도서관에 있는가’를 쉬 알아볼 수 있으니, 굳이 커다란 건물로 있는 큰 도서관으로만 가지 않아도 됩니다. 책을 알맞게 나누어 백 군데나 천 군데로 나누어 놓으면, 사람들은 즐겁게 골목마실 누리면서 책마실 빛낼 만합니다. 조용하고 사랑스러운 골목도서관에서 느긋하며 한갓지게 책을 누리면서 책삶을 되새길 수 있습니다.


  골목도서관은 골목도서관 있는 동네에서 지킬 수 있어요. 골목동네 사람들이 골목도서관을 스스로 돌보며 가꿉니다. 꼭 사서자격증 있어야 ‘골목도서관 책지기’를 할 수 있지 않아요. 사서자격증 아닌 ‘골목동네 사랑하는 마음씨’ 있는 슬기롭고 착한 사람을 ‘골목도서관 책지기’로 두면 돼요. 이렇게 하면, 골목도서관 책지기는 일흔 살 할아버지가 맡을 수 있고, 열다섯 살 푸름이가 맡을 수 있습니다. 책을 참답게 아끼고 사랑하는 누구라도 도서관 책지기 될 수 있지요.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은 책을 건사하고 돌보고 살피고 헤아리고 나누는 몫을 맡습니다. 십진분류법이라든지 무슨무슨 학문을 갈고닦은 사람이 일할 도서관이 아니라, 책을 사랑하고 아름답게 돌보는 꿈을 꾸는 사람이 일할 도서관입니다. 이때에 시나브로 책사랑이 피어나리라 생각합니다. 이때에 바야흐로 책날개 온누리에 팔랑이면서 ‘책으로 나누는 문화’ 곱게 크리라 생각합니다. 4346.5.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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