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 이야기 8
타니카와 후미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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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 숲노래 만화책 2023.3.18.

혼자가 아니니 혼자인


《솔로 이야기 8》

 타니카와 후미코

 한나리 옮김

 대원씨아이

 2022.1.15.



  《솔로 이야기 8》(타니카와 후미코/한나리 옮김, 대원씨아이, 2022)을 돌아봅니다. 2012년부터 한글판이 나온 《솔로 이야기》는 2023년에 이르러 모두 열걸음으로 매듭을 짓습니다. 책이름처럼 ‘혼살이’를 하는 순이돌이 이야기를 토막토막 다루기도 하되, ‘함살이’를 그리거나 누리는 순이돌이 발걸음을 짤막짤막 들려주기도 합니다. 이제 갓 스무줄에 접어드는 순이돌이 오늘을 그리고, 어느새 마흔줄을 넘어서는 순이돌이 하루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은 다릅니다. 참으로 다르니, 삶도 살림도 다릅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다르고, 좋아하는 마음이 다르지요. 얼핏 ‘사랑’이라고 여겼으나, 사랑이 아닌 ‘매달림’이나 ‘끄달림’이라 느끼기도 하고, 살을 섞거나 손을 잡으니 좋다고 느끼기도 하며, 손도 안 잡고 살도 섞은 일이 없으나 어느 날 문득 “사랑이었구나” 하고 알아차리기도 합니다.


  모든 풀꽃나무는 혼자 싹틉니다. 흙이 품어 주는 데에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되, 어미풀이나 어미나무가 도와주어야 싹트지 않아요. 틀림없이 흙이 둘러싸는 고요한 어둠 한복판에서 싹이 틉니다만, 다른 씨앗이나 푸나무가 도와서는 싹틀 수 없는 작은 씨앗 한 톨입니다.


  싹이 트고 보면 둘레에 ‘저처럼 스스로 싹튼 숱한 푸나무’가 가득한 줄 알아차립니다. 싹이 틀 때까지는 혼자 모든 힘을 쏟았다면, 싹이 트고 보니, 다 다른 씨앗이 나란히 서서 저마다 즐겁게 사랑을 속삭이면서 깨어난 줄 알아볼 만해요.


  하나이기에 함께입니다. 함께이기에 하나입니다. 혼자서 살림을 가꾸기에 둘레에서 함께할 수 있습니다. 함께 돕고 거드는 마음이 모이기에 홀로서기를 하면서 날갯짓을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나이면서 함께’이고 ‘혼자이면서 어깨동무’를 하는 삶길이자 살림길이고 사랑길이에요.


  혼자라서 부끄럽거나 창피하지 않습니다. 혼자라서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습니다. 함께라서 세거나 든든하지 않습니다. 함께라서 안 외롭거나 안 쓸쓸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아닌 끌림이나 얽힘일 적에는 부끄럽거나 외롭습니다. 끌림이나 얽힘이 아닌 사랑일 적에는 스스럼없이 일어서고 스스로 빛나는 걸음걸이예요.


  《솔로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이되 혼자가 아닌’ 길이란 무엇인지 숱한 사람들한테 물으면서 길을 헤아립니다. ‘함께가 아닌 듯하지만 함께인’ 길이란 무엇인지 다 다른 사람한테 넌지시 물으면서 길을 찾아요.


  하늘은 크게 하나이되 함께 파랗습니다. 바다는 너르게 하나이되 다 다른 물방울이 어우러집니다. 바람은 크고작은 온갖 줄기가 얽혀서 하나이면서 다 다르지요. 우리는 사람이란 몸을 입은 다 다르면서 모두 같은 숨빛인 줄 얼마나 알아보거나 알아차리거나 알아내는 이 길을 걷는 몸짓일까요?


ㅅㄴㄹ


‘타임머선을 타고 사귀는 사이로 돌아간다 해도, 결국 우린 헤어지겠지. 정말 좋아하지만 거긴 서로의 자리가 아니니까. 좀 가슴이 아프지만, 그대로 멈추지 말고 나아가자. 언젠가 여기가 내 자리라고 생각되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19쪽)


‘먼 곳에서 서로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기쁠 때, 문득 지쳤을 때, 가슴속에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는다. 그런 사람이 지구 반대편에 있다. 맹세 없는, 그러나 놓을 수 없는 마음을, 나는 선택했다.’ (56쪽)


‘미워하기보다 놓아버리는 편이 좋아. 깨끗한 바람이 반짝이는 방을 훑고 지나간다. 내 가슴도 망가져버렸지만, 그를 정말 사랑했다.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74쪽)


“이름은 재밌어. 알게 되면 윤곽이 확실해지는 느낌이 들어. 이름은 생명이니까, 마물한테 본명을 들키면 안 돼.” (84쪽)


“나도 네가 좋아. 즐거웠어. 저 세상이든 다음 생에든, 마주하게 되면 또 말 걸어 주기다.” (92쪽)


‘아아, 나 더 씩씩해지고 싶어. 많은 걸 잘해내고 싶고. 40대가 되어도 미래의 나에게 기대해도 되잖아? 내일 당장 운명적인 사랑에 빠질 수도 있잖아? 그럼 지금부터 뭘 할까? 뭘 배워 볼까?’ (110쪽)


#おひとり樣物語 #谷川史子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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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진 2
마키무라 사토루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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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노래 그림꽃/숲노래 만화책 2023.3.16.

사랑없는 곳에는 돈·이름·힘만


《이매진 2》

 마키무라 사토루

 서미경 옮김

 서울문화사

 2001.8.25.



  《이매진 2》(마키무라 사토루/서미경 옮김, 서울문화사, 2001)을 곰곰이 읽었습니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첫머리에 나왔고,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첫무렵에 한글판이 나왔습니다. 우리로 치면 2020년대에 볼 만한 모습이나 일이나 이야기라 할 텐데, 일본에서는 1980∼90년대에 이미 치르거나 겪으면서 훅 지나간 모습이나 일이나 이야기로 여길 만합니다.


  우리나라는 2000년으로 접어들 즈음까지 여느 배움터(학교)에서 길잡이(교사)가 아이들을 버젓이 두들겨팼습니다. 이무렵에는 돈자루(촌지)도 아직 꽤 춤추었습니다. 그런데 몽둥이질이나 돈자루는 2020년대 즈음에는 ‘배움터에서는 사라진 듯하되, 나라 곳곳에서는 몰래 일어나거나 불거지’기 일쑤입니다.


  길잡이나 늙은이(나이만 먹었을 뿐, 어른이 아닌 놈팡이)한테 으레 얻어맞으며 돈을 빼앗기던 작은이는 ‘나도 힘을 키워 남을 때리거나 남한테서 돈을 우려내야지!’ 하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맞는 쪽도 때리는 쪽도 없이 어깨동무하는 새나라를 이루면서, 모든 멍울하고 응어리를 씻어야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숱하게 얻어맞고 돈을 빼앗겼대서, 그놈들을 두들겨패거나 그놈들 주머니를 터는 앙갚음을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고요? 모든 앙갚음은 늘 앙갚음을 심고 낳아요. 주먹질은 늘 주먹질을 심고 낳듯, 되갚음을 그리면 늘 되갚음을 심고 낳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얻어터지거나 빼앗긴 자리에 선 작은이는 ‘미움갚기(권선징악)’이 아닌 ‘사랑하기’를 그립니다.


  《이매진》을 읽으면, 여러 자리 여러 사람이 나옵니다. 먼저 어머니하고 딸이 나와요. 홀로 어린 딸을 돌보면서 스스로 일순이(사업가)로 서려는 어머니가 있고, 고리타분한 틀에 마음이 갇힌 아버지가 나옵니다. 힘겹고 벅찬 홀로서기이지만, 어린 딸아이한테 “핏줄잇기 아닌 살림짓기를 보여주고 물려주고픈 마음”인 어머니가 줄거리를 이끕니다. ‘어머니 사랑’을 누렸으나 ‘아버지 사랑’은 모르는 아이가 ‘여러 사내’를 마주하면서 ‘왜 굳이 사람은 순이돌이(남녀)로 따로 있을까?’를 자꾸자꾸 생각하면서 홀로서기란 길을 어머니하고 다르게 나아가려는 딸아이가 다른 줄거리를 이끌어요.


  엉성하거나 어설픈 숱한 사내는 저마다 다른 줄거리를 이끌고, 참하거나 착한 사내도 곧잘 나와서 다른 줄거리를 이끕니다. 빛나는 마음과 눈길인 사람들이 있고, 맹하거나 덜된 마음과 눈길인 사람들이 있어요. 자, 그렇다면 생각해 보기로 해요. 저이는 어떻게 잿더미에서도 빛나는 마음과 눈길일까요? 저이는 어떻게 배부르거나 가멸찬 집안에서도 맹하거나 덜된 마음과 눈길일까요?


  돈이 많은 집안이기에 사랑을 알지 않아요. 돈이 없는 집안이기에 사랑을 모르지 않습니다. 주먹을 휘두르기에 사랑을 빼앗지 못 합니다. 주먹힘이 없대서 사랑을 빼앗기거나 잃지 않아요. 이름을 드날리기에 사랑을 누리지 않습니다. 이름값이 없다지만 사랑을 아름답고 즐거이 나누고 누려요.


  사랑없는 곳에는 돈·이름·힘만 판칩니다. 사랑을 모르거나 등지거나 짓밟는 이나 무리는 언제나 돈·이름·힘만 외칩니다. 이른바 ‘경제개발·경제발전’도 사랑을 모르거나 등지거나 짓밟는 놈팡이가 들먹이는 말입니다. 이른바 ‘자기개발·자기계발’도 사랑하고 동떨어진 놈이 읊는 말입니다.


  사랑을 그리는 사람은 ‘사랑’을 말합니다. 사랑을 말하는 사람은 ‘자기개발’ 같은 허울스러운 말을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사랑을 바라는 사람은 ‘성취·성공·성과’를 입에 담지 않습니다. 잘 보셔요.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겉모습을 안 쳐다보고, 이름값에 휩쓸리지 않고, 힘이 여리고 돈이 없어도 늘 웃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홀가분합니다.


  배불리 살고 싶으면 배불리 살아야겠지요. 다만, 배불리 사는 곳에는 아무런 사랑이 싹트거나 자라지 않습니다. 말끔하거나 번듯하게 꾸미고 싶으면 꾸며야겠지요. 그저, 말끔하거나 번듯하게 꾸미는 곳에는 풀 한 포기 돋지 못 할 뿐 아니라, 새 한 마리도 찾아오지 않을 뿐입니다.


ㅅㄴㄹ


“평소에 안 보는 코너를 둘러봤어요. 서점은 참 즐거워요.” (64쪽)


“난 내 인생을 완전히 살 거야. 그걸 애한테 보여주는 게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71쪽)


“엄만 엄마 우산 쓴다.” “유우는 유우 우산.” “우리는 다른 인간이지만 인연이 있어서 같이 사는 거야.” (74쪽)


“이상하지. 그녀를 만나고부터 만나는 사람이 달라져.” “그건 주위 사람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변해가는 겁니다.” (87쪽)


“저 남자하고 가정을 꾸렸단 말이지? 미츠코 일생일대의 실수인가?” “아니, 인생 최고의 행운이죠. 나한테 유우를 주었는걸요.” (109쪽)


“내가 연인하고 하고 싶은 건 하녀 놀이가 아냐! 서로가 따뜻하게 자고 말하고 싶다구. 얼굴을 볼 때마다 사랑한다고 느끼고 싶어! 유쾌하게 놀면서 둘이 함께 웃고 싶어!” (135쪽)


#まきむらさとる #イマジン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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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수 애장판 5
이와아키 히토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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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 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2023.3.6.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랑



《기생수 5》

 이와아키 히토시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03.10.25.



  《기생수 5》(이와아키 히토시/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03)에 흐르는 이야기를 곱씹어 봅니다. 우리한테 ‘목숨이 걸린 일’이나 ‘목숨을 거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일자리를 붙잡거나 거머쥐고서 그곳에서 물러나는 날까지 이럭저럭 일삯을 받아서 늘그막에 돈걱정이 없는 길에 목숨을 바치지는 않는가요?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아이를 누구한테 맡겨서 가르쳐야 어울릴까요? 이른바 ‘교육대학교’를 마친 ‘교원자격증’이 있는 사람한테 맡기면 아이들은 어련히 잘 자라서 ‘앞으로 돈을 잘 버는 일자리를 어렵잖이 따낼’ 만할는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책’을 읽는 사람이 드뭅니다. 글그림을 담아 종이에 묶었기에 ‘책’일 수 없습니다. 무늬가 책 같아 보이지만 ‘책 시늉’이나 ‘책 흉내’인 꾸러미가 수두룩합니다. ‘곁배움책(참고서)’에 ‘책’이라는 말끝을 붙이기는 하지만, 참말로 책으로 여겨도 될까요? ‘배움책(교과서)’에도 ‘책’이라는 말끝을 달기는 하는데, 참으로 책으로 삼아도 되나요?


  모름지기 ‘책’이라 할 적에는 셈겨룸(시험)에 쓰려는 연모가 아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곁에 놓고서 늘 틈틈이 돌아보면서 마음을 다독이고 가꾸는 징검다리로 삼는 이야기꾸러미일 노릇입니다. 한때 슥 훑다가 내버리는 종이꾸러미는 책일 수 없어요. ‘책인 척’입니다.


  오늘날 이 나라 배움터(초·중·고등학교 및 대학교)는 모두 아무런 ‘책’이 없습니다. 책다운 책이 아닌 ‘책 시늉’을 손에 쥐고서 ‘배움 시늉’을 하는 판입니다. 그래서 열두 해 동안 배움터를 다녔든, 서울에 있는 배움터를 마쳤든, 나라밖으로 배움마실을 다녀왔든, ‘사람다운 숨빛’이 아닌 ‘사람 시늉’이나 ‘사람 척’을 하는 얼뜨기가 흘러넘쳐요.


  작은 그림꽃 《기생수》는 그야말로 작은 푸름이하고 ‘오른손이(기생수)’가 주고받는 말이며 둘이 부대껴야 하는 하루를 찬찬히 보여주면서 “너희(사람)는 날마다 무엇을 보고 배우고 느끼고 생각하니?” 하고 묻습니다. “너희가 사람이라면 왜 사랑을 안 하니?” 하고 묻습니다. “너희가 참으로 사람이라면 너희는 왜 숲을 짓밟고, 같은 사람끼리 괴롭히거나 따돌리거나 들볶거나 짓밟거나 죽이기까지 하니?” 하고 묻습니다.


  이제는 좀 생각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남이나 나라가 시키는 대로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똑같은 하루가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가꾸고 지으면서 스스로 노래하고 꿈꾸고 춤출 줄 아는 ‘사랑을 알고 살림을 펴는 참한 사람빛’을 찾아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참다운 나를 잊은 자리에는 삶이 없습니다. 참다이 나를 바라보지 않는 하루라면 살림이 아닌 굴레나 수렁입니다. 참답게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심고 돌보지 않을 적에는 늘 싸우고 다투고 겨루는 쳇바퀴에서 허덕입니다. 이제부터 바보짓을 끝내고 사람길을 걸을 수 있기를 바라요. 오늘부터 죽임질을 치우고 살림빛을 밝힐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어떻게 할래, 신이치? 문제는 그 남자가 너 하나만을 노리고 접근한 듯하다는 점이다. 그놈은 우리를 잘 알고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는 그놈에 대해 전혀 모른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어?” (8쪽)


“잘 들으세요. 우리는 목숨이 걸린 일입니다.” (67쪽)


“그런 어린애가 어머니를 잃고 시체의 산을 넘고, 온갖 참혹한 지경을 당하고서도 꿋꿋이 살아가려 애쓰고 있어. 가엾지도 않아?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라. 너 같으면 견딜 수 있겠어?” (73쪽)


“앞으로는 어떤 의미에서든 인간들과의 공존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됐어. 그러니까 ‘동족’들끼리 서로 협력할 필요를 느낀 것뿐이라고 생각해 둬.” “웃기지 마. 공존이라니! 식인 괴물들과 무슨 공존?” “다른 생물을 예로 들어 봐야 허사겠지만, 인간과 가축들도 공존하고 있잖아! 물론 대등하진 않지. 돼지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일방적으로 자기들을 잡아먹는 괴물일 뿐이야.” (97쪽)


“인간들 자신도 거창하게 떠들어대고 있잖아? ‘지구의 모든 생물은 공존해야 한다.’ 개중에는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 같은, 말도 안 되는 슬로건도 있고.” (98쪽)


“힘없는 인간인 나는! 나 하나를 지킬 힘도, 무기도 없고, 용기도 없어. 괴물들을 탐지할 안테나도 없어. 너와 같은 수준으로 여기지 말아 줘.” (163쪽)


“오, 오른쪽아. 뭐야? 이놈. 말도 많은데다 징그럽기도 하고.” “방심하지 마. 저러면서 우릴 탐색하는 거다. 아무리 표정이 풍부하고 말이 많아도 인간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걸 잊으면 안 돼.” (221쪽)


#寄生獣 #岩明均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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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에게 고한다 4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 장성주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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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2023.3.2.

총칼에는 사랑이 없다


《아돌프에게 고한다 4》

 테즈카 오사무

 장성주 옮김

 세미콜론

 2009.9.28.



  《아돌프에게 고한다 4》(테즈카 오사무/장성주 옮김, 세미콜론, 2009)은 예나 이제나 우두머리란 놈들이 떠벌이는 ‘나라사랑(애국)’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말잔치에 겉발림에 눈속임인가 하는 대목을 낱낱이 드러냅니다. 그들 우두머리는 언제나 막힘을 휘두르면서 숱한 마름(중간간부)을 거느렸는데, 이 마름 가운데 하나는 ‘배움터 길잡이’였습니다. 이들은 ‘선생님’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사랑의 매’를 퍼부었지요.


  그들은 왜 ‘사랑의 매’를 퍼부었을까요. 아이들이 ‘사랑’을 못 보도록 망가뜨리고 싶거든요. 아이들이 ‘사랑’을 생각하지 않도록 내몰 속뜻이었고요.


  그들은 왜 ‘나라사랑·겨레사랑’ 같은 외침말을 퍼뜨렸을까요? 그들은 사람들이 참답게 사랑으로 깨어나기를 바라지 않았기에 ‘나라사랑·겨레사랑’ 같은 굴레에 사람들 눈코귀입을 다 틀어막으려 했습니다. 지난날 일본 우두머리가 ‘죽음바치기(카미카제 특공대)’로 내몰았듯, 사람들이 스스로 자유도 민주도 평화도 평등도 생각하지 않도록 옭아매려 했어요.


  우리는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참말로 ‘사랑’이라면, 눈속임인 나라사랑이 아닌 ‘나사랑’이어야 합니다. ‘나사랑’이 싹터야 ‘너사랑’으로 뻗고, ‘우리사랑’으로 자랍니다. 나너우리가 남남이 아닌 언제나 하나로 흐르는 숨빛인 줄 깨달을 적에는, 사람하고 숲이 한결같이 하나였다는 대목을 알아차립니다. ‘나사랑·너사랑·우리사랑’은 ‘숲사랑·한사랑’으로 만나요.


  그래서 우두머리나 마름은 사람들이 ‘사랑’을 모르기를 바라면서 매를 들고서 ‘사랑의 매’를 휘둘렀습니다. 사랑에는 매질도 주먹질도 없는데, 거짓을 뒤집어씌운 나날이었어요.


  누구나 저마다 스스로 참사랑을 걸을 적에는 아무런 총칼을 안 휘두를 뿐 아니라, 모든 총칼을 녹여버립니다. 우리가 스스로 참사랑이라면 힘이 아닌 기운을 밝혀 어깨동무를 하고, 우리가 참말로 참사랑이라면 이름값을 내세워 작은이를 괴롭거나 밟지 않을 뿐 아니라, 서로서로 동무로 얼크러져요.


  사랑인 마음에는 사랑이 있을 뿐입니다. 사랑이 아닌 마음이기에 총칼을 거머쥐고서 싸움을 일으키려 하고, ‘총칼을 앞세워야 전쟁을 막는다’는 거짓말을 퍼뜨리려 해요.


  이제부터 눈뜰 수 있기를 바랍니다. 총칼을 쥔 놈치고 사랑으로 나아간 놈은 없습니다. 총칼을 앞세우는 놈치고 전쟁을 부추기지 않은 놈은 없습니다. 총칼을 들먹이거나 말하는 놈치고 사랑을 깨닫거나 바라보거나 나누는 놈은 없습니다. 총칼은 만들지도 팔지도 사지도 않을 일입니다. 사랑씨앗을 심고, 사랑노래를 부르고, 사랑살림을 지을 일입니다. 《아돌프에게 고한다》는 사랑을 잊은 채 사랑을 밟으려고 했던 어리석은 ‘아돌프’들한테 외치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철수와 영희가 총칼이 아닌 사랑을 바라보고 품고 가꾸기를 바라는 눈물노래입니다.


ㅅㄴㄹ


#アドルフに告ぐ #手塚治蟲


“황씨뿐만이 아니야. 만주인들은 사사건건 일본 군인한테 업신여김당하고 혹사당했어. 그런데도 학교에선 일본 군인이 정의로운 전쟁을 수행한다고 가르쳤지.” (42쪽)


“우리가 배운 정의는, 옳은 일을 행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위압하기 위한 허울에 불과하단 걸 깨달았지.” (43쪽)


“애국심이 왜 싫어요?” “아니, 그건 오로지 전쟁을 위해서 이용당하는 개념에 불과해. 일본인이 함부로 떠드는 ‘야마토다마시’란 말을 듣고 만주인들이 얼마나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는지, 난 몇 번이나 목격했어.” (44쪽)


“만약 쓰레기라면 쓰레기답게 총통 각하께 충성을 바치다가 쓰레기답게 죽는 거다! 제국이 무너지면 우리도 끝장이야! 결국 우린 국가라는 거대한 체제에 처박힌 쓰레기에 지나지 않아!” (182쪽)


“흠, 자네 베를린에서 꽤 유명했다던데, 여기서도 실력 좀 보여주게. 유대인 2000명을 부헨발트 수용소까지 이동시켜!” “걸어가란 말씀입니까?” “물론 도보로 이동한다. 단, 쉬게 하지 말고 계속 걷게 해. 뒤처지는 놈은 죽여. 먹을 것도 주지 마. 가능한 한 많이 탈락시켜서 처분해. 도착할 때까지 반으로 줄여. 수용소에 자리가 없으니까 말이야.” (194쪽)


“상관없습니다. 제가 바퀴벌레인지는 모르겠으나, 사실 녀석들은 대단한 존재입니다. 사람들한테나 까닭 없이 미움을 받지만 다른 생물들한테선 살아갈 권리를 인정받으니까요. 게다가 바퀴벌레는 인간이 멸망한 후에도 씩씩하게 살아남을 거라고 하잖습니까?” (203쪽)


“저런 놈들은 아무렇지 않게 유대인을 죽이다가도, 혼자가 되면 자칫 양심의 가책에 무너지곤 해. 아직 햇병아리거든.” (23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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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타너스의 열매 4
히가시모토 토시야 지음, 원성민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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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 숲노래 푸른책 2023.2.26.

아무도 똑같이 앓지 않아



《플라타너스의 열매 4》

 히가시모토 토시야

 원성민 옮김

 대원씨아이

 2022.12.31.



  《플라타너스의 열매 4》(히가시모토 토시야/원성민 옮김, 대원씨아이, 2022)은 “아무도 똑같이 앓지 않아” 한 마디로 간추릴 수 있습니다. 아픈 사람도 안 아픈 사람도 다 다릅니다. 아픈 사람이 다 똑같이 아프지 않아요. 튼튼한 사람도 다 똑같이 튼튼하지 않습니다.


  돌림앓이라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다 다르게 앓습니다. 이름은 같은 돌림앓이라 하더라도 다 다른 사람한테 다 다르게 돌보는 손길이어야 합니다.


  배움터에서 가르치거나 배울 적에도 이와 같아요. 똑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가르치더라도, 다 다른 아이들한테는 다 다른 아이한테 맞추어 다 다르게 들려주고 알려주며 가르쳐야 할 노릇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를 보면, 돌봄터(병원)나 배움터(학교)가 똑같은 얼개입니다. 다 다른 사람을 안 쳐다봐요. 그저 똑같은 틀에 가두려 합니다. 사슬터(감옥)조차 다 다른 사람을 다 다르게 일깨워서 잘못씻이를 할 노릇이지만, 참말로 다 다른 사람을 다 다르게 일깨우거나 이끄는 얼거리가 있을까요?


  새삼스럽습니다만, 스승은 가르치는 자리가 아닙니다. ‘스승’은 그저 스스로 하는 살림길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참말로 스승이라면, 모든 배움이(제자)가 다 다르기 때문에 어느 배움이도 스승이 가르치거나 이끌 수 없어요. 다 다른 배움이는 저마다 다르게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스승으로서는 “보렴, 너희가 스승이라 일컫는 나(스승)는 이렇게 스스로 배워서 이렇게 스스로 살림을 짓는단다. 너희(제자)는 너희 나름대로 느끼고 보고 배워서 너희 스스로 깨달아서 너희 길을 너희 손으로 지으렴.” 하는 말만 할 수 있습니다.


  돌봄이(의사)란 이름이든, 길잡이(교사)란 이름이든, 어버이(부모)란 이름이든, 우리는 그저 다 다른 눈망울을 바라보면서 다 다르게 말을 하고, 다 다르게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르게 앓고 아픈데, 똑같은 돌봄물(약)을 준다면 어찌 될까요? 다 다른 사람한테 모두 똑같이 미리맞기(예방주사)를 밀어붙이면 어찌 되겠습니까?


  우리가 사람이라면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참말로 사람이란 몸을 입고서 살아간다면, 다 다른 사람이 ‘다 같은 책’을 ‘베스트셀러·스테디셀러·고전명작’이란 이름으로 함께 읽는 바보짓을 멈추어야 합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같은 책을 읽고서 다 같은 말을 쓴다면, 이곳은 사슬터(감옥)가 단단히 섭니다. 우두머리(권력자)가 바라는 꼴입니다.


  우리는 다 다른 책을 다 다른 눈으로 읽을 노릇입니다. 때로는 아름책을 돌려읽을 수 있을 텐데, 어떤 아름책이라 하더라도 ‘똑같이 느낄’ 생각은 그쳐야 합니다. 우리 나름대로 읽고 새겨서, 우리 살림을 짓는 밑자락으로 삼을 노릇이에요.


  그림꽃 《플라타너스의 열매》는 어린돌봄터(소아과병원)에서 마주하는 삶죽음을 다룹니다만, 아프거나 앓는 아이들뿐 아니라, 튼튼한 아이들도, 또 아이 곁에 서는 어른하고 어버이가 어떤 마음하고 몸으로 어우러질 적에 참사랑일까 하는 대목을 짚습니다. ‘좋아함(마음끌림)’이 아닌 ‘사랑’을 다루는 줄거리입니다. 이 숨결을 다 다른 우리가 저마다 새롭게 느끼고 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딱히 그렇게 생각 안 해.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추억도 있고, 무슨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거지. 그뿐이야.” (20쪽)


“병 때문이든 다른 무엇 때문이든 뭐 어때? 토모미를 못 견디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보다 멋진 일이 어디 있겠어.” (47쪽)


‘환자는 하나하나 다른 인간이고, 제각기 다른 가족을 가졌으며 다양한 삶을 살고 있으니까, 똑같은 병을 두고도 환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지. 그렇기에 의사는 환자 하나하나에 맞춰서 마주할 필요가 있어.’ (131쪽)


“살다 보면 병을 앓거나 다치기도 하고, 사랑을 하면 상처받게 될 때도 있지. 토모미의 병은, 연애나 우정과 연관 지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지금은 그냥 지켜봐 줬으면 좋겠어.” (153쪽)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손을 쓰는 건 소아외과의야. 너는 느긋하게 지켜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생사를 가르는 현장에 서는 건 소아외과의라고.” “그럼 형은 단 한 번이라도 토모미를 진찰해 본 적이 있어? 환자와 마주하고 얘기를 해보지도 않고, 데이터와 차트만을 보고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그런 소아외과의에게 누가 목숨을 맡길 수 있겠냐고?” (183쪽)


#東元俊哉 #プラタナスの実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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