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읽기를 권함 - 2004년 2월 이 달의 책 선정 (간행물윤리위원회)
야마무라 오사무 지음, 송태욱 옮김 / 샨티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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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책읽기 2022.1.19.

읽어치우지 않기



《천천히 읽기를 권함》

 야마무라 오사무

 송태욱 옮김

 샨티

 2003.11.11



  《천천히 읽기를 권함》(야마무라 오사무, 송태욱 옮김, 샨티, 2003)은 ‘천천읽기’나 ‘느릿읽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좋은읽기·나쁜읽기’를 가리려 하지 않습니다. ‘느슨읽기·느긋읽기’나 ‘가만읽기·찬찬읽기’로 저마다 스스로 ‘삶읽기·살림읽기’를 거쳐서 ‘사랑읽기·숲읽기’로 나아가자고 속삭입니다.


  바쁘고 일거리가 넘치는 오늘날 천천히 읽거나 느릿느릿 읽는다면 뒤처진다고 여길 만합니다. 느슨히 읽거나 느긋이 읽다가는 줄거리를 종잡지 못한다든지 글도 못 쓰겠거니 여길 만합니다.


  그렇다면 묻고 싶습니다. 왜 빨리 가야 할까요? 왜 빨리 죽어야 할까요? 왜 빨리 먹어야 할까요? 왜 빨리 늙어야 할까요? 빨리 죽고 싶지 않다면서 정작 빨리 달리지 않나요? 빨리 늙기를 바라지 않는다면서 막상 빨리 먹어치우지 않나요?


  2003년 여름이었지 싶은데 민음사에서 엮음빛으로 일하는 분이 제 단골책집으로 찾아와서 함께 책을 내면 좋겠다고 얘기한 적 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민음사처럼 커다란 곳에서 책을 낼 생각은 터럭만큼도 없는걸.” 하고 생각했으나, 그곳 엮음빛이 들려주는 말을 찬찬히 듣고서 되물었어요. “아니, 편집장님이 한 해에 책을 쉰 자락씩 엮어내야 한다면 거의 이레마다 내는 꼴인데, 그러면 글손질(교정·교열)은 어떻게 해요?” 그때 그 엮음빛은 스스로 책이 아니라 쓰레기를 내놓는다고 느껴서 그만둘 생각이라고 밝히시더군요.


  책을 즐겁게 읽는 사람은 ‘책이 쏟아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책을 안 읽거나 모르거나 책읽기가 지겨운 사람이 으레 ‘책이 쏟아진다’고 말합니다. 다 다른 책은 다 다른 사람한테 맞추어 태어납니다. 그래서 다 다른 고장마다 책숲(도서관)은 매우 넓어야 하고, 다 다른 사람이 스스로 살필 책을 골고루 오래오래 건사할 노릇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거의 모든 책숲은 마치 빌림터(대여점)로 굴면서 책을 자주 쉽게 버릴 뿐 아니라, 잘팔리는책(베스트셀러)에 너무 꽂힙니다.


  곰곰이 보면 글을 쓰거나 책을 내놓는 사람들 스스로 ‘좋아하는 갈래’만 더 북돋운다고 할 만합니다. ‘모든 갈래가 새롭게 어우러지면서 다 다르게 빛나는 무지개로 나아가도록 북돋우는 길’이 아닌 ‘몇몇 글님·펴냄터에 쏠린 책밭’으로 내몬다고 느낍니다. 이런 얼거리를 바꾸어 내는 힘 가운데 마을책집이 있습니다. 책을 더 많이 팔려는 뜻으로 여는 마을책집이 아니기에, 마을책집은 오늘날 이 나라 굳어버린 책밭을 바꿀 만합니다. 마을책집은 잘팔리는책을 하루에 열스물씩 팔려는 데가 아닙니다. 마을책집은 마을을 이루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르게 누릴 책길을 헤아려 찬찬히 이끌고 ‘느긋이 기다려서 책을 받도록’ 징검다리 노릇을 합니다.


  읽어치우지 않을 생각입니다. 읽어치울 책은 처음부터 사지도 들추지도 만지지도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읽으려고 손에 쥡니다.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밝히려는 뜻이기에 이 삶을 들여서 가만히 읽습니다. 스스로 사랑하는 삶을 짓는 어진 사람으로 노래하면서 아이들한테 살림을 물려주려고 오늘 하루를 들여서 차근차근 읽습니다.


ㅅㄴㄹ


나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한 쪽 읽는 데 1초, 좀 늦더라도 2,3초’라는 읽기 방식이다. 그런데 이것은 불가능한 방법은 아니다. 굳이 심신에 무리를 주면서라도 훈련을 거듭하면 나한테도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도대체 무슨 책을 그렇게나 빠른 속도로 읽지 않으면 안 되는지 그것을 모르겠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내가 읽은 재미있는 책, 엉터리 책 그리고 나의 대량 독서술, 경이의 독서술》은 서평집이기도 하지만, 거기서 예로 들고 있는 책 가운데 5분이나 15분에 읽어버리고 싶은 책은 단 한 권도 없다. 매력이 있을 것 같은 책이라면 여느 때처럼 느릿느릿 읽고, 읽고 싶지 않은 책이라면 처음부터 아예 손에 들지

 않는다. (18쪽)


그들(다치바나 다카시)이 주장하고 권유하는 독서법은 그들 외에 어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일까? (19쪽)


눈이 글자를 좇아가다 보면 그에 따라 정경이 나타난다. 눈의 활동이나 이해력의 활동이 다 갖추어진다. 그때는 아마 호흡도 심장 박동도 아주 좋을 것이다. 그것이 읽는다는 것이다. 기분 좋게 읽는 리듬을 타고 있을 때, 그 읽기는 읽는 사람 심신의 리듬이나 행복감과 호응한다. 독서란 책과 심신의 조화이다. (38쪽)


필요가 있어서 책을 읽을 때 나는 그것을 독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읽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살펴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혹은 ‘참조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설령 한 권의 책을 읽고 기획서나 리포트를 쓰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어도, 나에게는 그것을 두고 독서라고 말하는 그런 감각이 없다. 물론 필요가 있는 일이기 때문에 띄엄띄엄 읽기도 하고 건너뛰며 읽기도 한다. 그러나 한 권의 책을 띄엄띄엄 다 읽고 난 뒤, 나는 그것을 독서한 책의 권수로 세지 않는다. 나만이 아닐 것이다. (46쪽)


건강을 위해서는 하루에 30분이라도 낮잠을 자야 한다고 쓴 신문 기사를 보고 웃고 만 적이 있다. (144쪽)


#山村修 #遅読のすすめ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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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자르러 왔습니다 1
타카하시 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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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2022.1.8.

시골이 품는 빛



《머리 자르러 왔습니다 1》

 타카하시 신

 정은 옮김

 대원씨아이

 2021.9.15.



  《머리 자르러 왔습니다 1》(타카하시 신/정은 옮김, 대원씨아이, 2021)를 곰곰이 읽었습니다. 이 그림꽃책은 시골·섬·바다를 바탕으로 아이·어버이·사랑이 무엇인가를 짚으면서 삶·살림·마음이 얽힌 수수께끼를 부드러이 풀어 나가는 얼거리입니다.


  시골은 시골일 뿐, 좋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다만, 시골은 물을 플라스틱에 담아서 마시는 데가 아니요, 풀꽃나무를 그릇에 담아 사고팔거나 돌보는 데가 아닙니다. 시골은 빨래를 마당에 널어 말리고 해바라기를 누리는 데입니다. 시골은 부릉이가 없으면 모든 볼일을 하루를 통째로 써서 보아야 하되 서두를 까닭이 없이 느긋하게 지내는 데입니다. 오늘날 시골은 풀죽임물(농약)이 춤추지만, 손수 가꾸는 땅에는 풀벌레를 이웃으로 두면서 풀노래를 언제나 싱그러이 들으면서 멧새를 동무로 사귀는 데입니다.


  그림꽃책은 시골 가운데 섬을 다룹니다. 섬은 바다를 빙 두르면서 헤아립니다. 언제라도 바다에 몸을 담그고, 가만히 바람을 쐬면서 몸하고 마음을 씻을 만한 데입니다. 기쁨도 바닷바람에 얹고 슬픔도 바닷바람에 싣습니다. 웃음도 바닷바람에 담고 눈물도 바닷바람에 놓아요.


  시골사람으로서는 서울·큰고장에 나들이를 갑니다. 서울사람이라면 시골로 나들이를 옵니다. 시골사람은 서울사람으로 살 수 있을까요? ‘시골쥐 서울쥐’라는 이솝 이야기가 있듯, 시골사람은 풀꽃나무하고 숲을 품는 마음을 버려야 서울에서 겨우 버팁니다. 서울사람은 풀꽃나무하고 숲을 이웃이자 동무로 삼으면서 온마음에 온몸으로 품지 않는다면 시골은 그저 ‘놀러가는 데’일 뿐입니다.


  서울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습니다. 다만 서울은 풀꽃나무하고 숲뿐 아니라 풀벌레나 새나 숲짐승을 이웃이나 동무로 둘 생각이 터럭만큼도 없는 터전입니다. 이러한 터전에서 그대로 살아갈 적에는 이러한 서울빛이 온마음뿐 아니라 온몸을 감돌 테지요. 귀뚜라미뿐 아니라 모든 풀벌레가 노래하고, 개구리뿐 아니라 뱀도 구렁이도 거미도 노래합니다. 사람눈으로만 보고 사람귀로만 생각하면 어떠한 노래도 듣지 못해요.


  아이가 푸르게 꿈꾸며 날갯짓을 하기를 바라요. 어른이 파랗게 하늘빛으로 사랑하며 노래하기를 바라요. 아이어른이 나란히 풀동무가 되고 꽃벗이 되어 오늘을 속삭이기를 바라요. 서울이어도 시골이어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모든 곳이 풀꽃나무로 어우러지는 숲으로 가도록 마음을 쏟고 몸을 움직이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이곳은 섬이다. 따뜻한 곳이다. 젖고 습해지면 내일, 다시 널면 된다. 그래, 다시 마를 거야.’ (55쪽)


“이 잠든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아버지는 도쿄의 료타네 미용실을 그만두고, 이 섬에 머리를 자르러 오길 잘한 것 같아.” (60쪽)


“저는 하루카 씨가 집을 나가고 나서야 겨우 깨달았어요. 아들에 대해 오랫동안 아무것도 보지 않았단 걸. ‘바쁘다’는 핑계로요. 짧은 기간이기는 해도 셋이 살고 있었는데, 저는 1인용의 삶의 방식밖에 몰랐어요. 그래서 둘이서 이 섬에 왔습니다.” (100∼101쪽)


“아버지는 이 섬에 머리를 자르러 왔어. 하지만 오늘은 손님이 없어서가 아니라, 머리를 자르지 않고 너와 바다를 보는 날로 하자.” (153쪽)


“늘 그렇듯 섬 생활이 말여, 당연하게도 불편하고, 지루하고, 유복하지 않아서, 그런 것들을 알게 되면 쉽게 돌아가버려. 우리한텐 돌아갈 곳 따위 없는데 말이여.” (19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たかはししん #高橋し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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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마리코 16
오자와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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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2021.12.16.

스스로 사랑하는 길



《80세 마리코 16》

 오자와 유키

 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1.9.30.



  《80세 마리코 16》(오자와 유키/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1)을 읽으며 이제 이 그림꽃책 이야기는 마치는구나 싶어 섭섭하면서 반가웠습니다. 조금 살을 붙여 열여덟걸음이나 스무걸음까지 그려도 될 텐데, 그림님은 시원스레 열여섯걸음으로 ‘여든 살 마리코 할머니가 늘 새롭게 걷는 길’을 바라보아 주었습니다.


  요즈막에 ‘할머니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 제법 나옵니다. 우리나라가 조금은 눈을 떴나 싶습니다만, 아직 갈 길은 멉니다. 할머니 이야기가 눈부시다면 ‘잘난 멋’이 아니라 ‘들꽃처럼 수수하게 빛나면서 품는 사랑’이기에 눈부셔요. 그런데 ‘잘난 할머니(?)’ 책이 꽤 나와 퍽 팔리더군요.


  할머니가 할머니로서 아름답다면 ‘아무개 할머니’라는 이름이 아닌 ‘할머니’라는 투박한 말에 이녁 이름을 가린 채 살아왔어도 언제나 아이를 상냥하게 아끼고 돌보며 사랑하는 숨빛을 씨앗으로 물려주는 자리에서 살림꾼이라는 길을 걸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천에서 물빛그림을 즐기시다가 조용히 숨을 거둔 할머니가 남긴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라는 씨앗처럼, 익산에서 말빛을 가다듬으며 조용히 살림하는 할머니가 품은 《지는 꽃도 아름답다》라는 씨톨처럼, 할머니는 그저 할머니로서 사랑스럽습니다.


  그림꽃책 《80세 마리코》에 나오는 할머니는 참말로 이 땅에 있을는지 없을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여든한두 살에 ‘글꽃빛(문학상)’을 받은 할머니는 없거든요. 마리코 할머니가 받은 글꽃빛은 대단하다 싶은 줄거리를 펴지 않습니다. 여든 살이라는 나이에 ‘아이들이 살아가는 집을 홀로 떠난 날’부터 ‘버림받아 길에서 헤매는 늙은 고양이를 건사해서, 할머니 스스로도 떠돌이 몸이면서 함께 살아간 길’에다가 ‘늙은이 글은 더 안 싣겠다는 달책(잡지) 일꾼이 따갑게 나무라도 꿋꿋하게 글꽃을 새롭게 밝힌 오늘’을 수수하게 엮은 줄거리라지요.


  나이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나이를 따지는 사람이 있다면, 이녁은 늙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글빛을 헤아리는 사람이라면, 이녁은 함께 빛납니다. 글쓴이가 늙어서 싫고 젊어서 좋다고 여긴다면, 이녁은 낡은 마음에 스스로 갇힙니다. 글쓴이가 펴는 이야기에 온마음을 기울일 줄 안다면, 이녁은 언제 어디에서나 스스로 사랑으로 피어납니다.


  스스로 사랑하는 길에 홀가분하게 서기에 마리코 할머니는 스스로 빛납니다. 스스로 사랑하는 길하고 등진 숱한 사람은 자꾸 돈·이름·힘을 거머쥐려 합니다. 이 그림꽃책에는 ‘바람 피우는 숱한 사람’이 나오는데, 이들도 ‘사랑 아닌 바람질’에 얽매이기에 참말로 사랑하고는 동떨어질밖에 없습니다.


  남이 나를 사랑해 줄 수 없습니다. 내가 나를 사랑합니다. 내가 너를 사랑해 줄 수 없습니다. 네가 너 스스로 사랑할 뿐입니다. 사랑은, 이렇게 스스로 사랑하는 둘이 문득 맑고 밝게 마주하기에 새길을 찾아서 맺고, 이때에 아기를 낳습니다. 아무나 ‘어버이’가 되지 않고, 아무나 ‘어른’이라 하지 않습니다. 홀로 즐거이 사랑이기에 ‘어른’이요, 둘이 새롭게 사랑이기에 ‘어버이’입니다. 사랑이 아닌 사람은 모두 ‘늙은이’입니다.


ㅅㄴㄹ


“그렇겠지. 너도 결함주택으로 태어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 거야. 그래, 그래, 아프겠구나. 아픈 거 다아 날아가라!” (21쪽)


“뭐야. 집이랑 대화하는 거야?” “아. 죄송해요. 이상하죠.” “아니. 나랑 똑같다 싶어서!” (26쪽)


“‘돈이 드는 그릇’? ‘족쇄’?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에요. 우리 세 사람 모두 집 문제로 인해 인생이 바뀌었잖아요? 역시 집이란 존재는 커요. 그런 집을 코지가, 그 얌전한 아이가 내던졌어.” (31쪽)


“말씀하신 대로 쓸 수 있는 작품 수에 한계는 있겠지요. 60세를 넘어서부터 ‘다음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신은 아직 제게 글을 쓰는 걸 허락해 주고 있어요. 어쩌다 보니 20년을 더 해오고 있네요.” (58쪽)


“그러니까 여길 내 집으로 만들 거예요. 차기작은 여길 다 고쳐서 ‘마리코 하우스’를 만드는 이야기랍니다. 인테리어도 싹 바꾸고, 벽지도 고양이 무늬로 하고.” (61쪽)


“당신의 그 생각은 굉장히 밝고 훌륭합니다. 그대로 밀고 나가길 바라겠어요. 족쇄에 묶이지 않고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기회는 기나긴 인생에 정말 한순간밖에 없으니까요.” (65쪽)


“아들네는 선택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좋은 걸 고른 거예요.” “필사적으로 고른 게 잘못된 거였으니 굉장히 충격이 크겠죠.” (77쪽)


“이 가족은 아직 어딘가에 이어져 있어요. 무너진 게 아니죠. 그러니까 지금 손을 놓는다면 후회할 거야 떨어져 있다고는 해도 내 사랑하는 가족의 집. 고치면 아직 쓸 수 있어요.” (138쪽)


“전 여길 원점으로 삼아 다시 출발할 겁니다. 기념할 만한 무대에 걸맞은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코지. 인생은 이제부터다!” (139쪽)


#YukiOzawa #おざわゆき 

傘寿まり子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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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고다씨 이야기 1
오자와 마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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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노래 푸른책 2021.12.16.

사랑인가 아닌가



《이치고다 씨 이야기 1》

 오자와 마리 글·그림

 정효진 옮김

 학산문화사

 2010.10.25.



  《이치고다 씨 이야기 1》(오자와 마리/정효진 옮김, 학산문화사, 2010)를 오랜만에 되읽었습니다. 아름다운 책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이 빛은 두고두고 흐릅니다. 이와 달리 장사하는 책은 언제나 장사스럽습니다. 기나긴 나날이 흘러도 장삿속은 사그라들지 않아요.


  민낯은 틀림없이 불거집니다. 민낯을 감추며 살면 언제까지나 창피도 부끄러움도 감추는 나날입니다. 민낯을 밝혀서 나쁠까요? 민낯은 민낯일 뿐입니다. 얄궂은 짓을 했다면 스스럼없이 털어놓고서 새길로 나아갈 노릇입니다. 바보스러운 짓을 일삼았다면 이 바보짓을 이제 씻고서 새롭게 살아갈 노릇입니다.


  감춘대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숨긴대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털어내려고 마음을 기울이기에 창피한 지난날을 천천히 달래지요. 씻어내려고 마음을 쓰기에 부끄러운 어제를 하나하나 다독여요.


  그림꽃책 《이치고다 씨 이야기》는 푸른별 사람하고 바깥별 사람이 만나서 엮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바깥별 사람은 ‘몸’이 없어도 넉넉한 숨결로 살아왔는데, 어느 날 그만 이녁 별이 터지는 바람에 푸른별로 스몄다고 합니다. 몸이 없이 살아가던 바깥별 사람은 죽음이 따로 없고, 밥을 먹을 일조차 없다지요. 순이돌이(여남)로 가르는 겉모습마저 없고요.


  이와 달리 푸른별은 몸뚱이가 있어 밥을 먹고 옷을 입습니다. 순이돌이로 갈라서 짝을 맺으려고 합니다. 바깥별 사람한테 푸른별은 수수께끼투성이에 낯설고, 푸른별 사람한테 바깥별은 얼토당토않거나 믿기지 않는 삶일 만합니다. 이리하여 두 다른 별사람이 이곳에서 서로 다른 몸으로 마주하면서 서로 다른 마음을 새롭게 읽을 만합니다.


  다만, 둘 사이에 앙금이나 티끌이 없는 맑은 사랑일 적에 마주할 만해요. 이렇게 하면 좋거나 저렇게 굴면 나쁘다고 울타리를 세우면 어느새 엇갈립니다. 돈이나 밥이나 옷을 주기에 사랑이 된다는 터무니없고 바보스러운 생각에 아직 사로잡혀서 살아가나요? 오직 마음을 띄우고 받을 적에 시나브로 사랑이 싹트는 줄 아직 모르는 채 오늘을 맞이하나요?


  오롯이 사랑이기에 빛납니다. 사랑일 적에만 오롯이 빛납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거짓에 눈가림에 속임짓입니다. 둘레를 봐요. 삽차로 밀어대는 저 손길에 사랑이 깃들었나요, 아니면 돈을 바라는 생각이 가득한가요? 숱한 나라지기에 벼슬아치에 글바치는 이 땅에서 사랑을 펴려는 마음인가요, 아니면 그들 자리값을 거머쥐면서 이름하고 돈을 움켜잡는 생각에 사로잡힌 마음인가요?


ㅅㄴㄹ


“너, 설마 전엔 고양이였니?” “아, 응. 어떻게 알았어?” “바로 오늘 아침에 들었거든.” “뭐, 말하자면 길긴 한데. 내 고향은 지구와는 다른 공간이야. 사람들은 더 이상 육체라는 그릇을 필요로 하지 않고, 다툼도 기아도 없느 평화로운 세계.” “천국?” “아니. 아마 우주 어딘가의 진화한 혹성일걸.” (19∼20쪽)


“기껏 수화 가르쳐 줬는데, 쓸 기회가 없었네.” “응, 하지만 뭐, 급할 거 없잖아?” “그래.” ‘이 아인 어리버리하지만, 중요한 건 파악하고 있어. 뭐가 중요하고 뭐가 필요한지.’ (77쪽)


“이치고다 씨도 고향이 그리울 텐데 나만 가는 것도 미안하고, (내가) 시골에서 돌아왔는데 (이치고다 씨가) 집에 없으면 엄청 충격받을 것 같아. 내 고향 보고 싶지 않아?” (89쪽)


 “슬슬 가야지. 누나가 걱정하겠다.” “정말 그 누나를 좋아하는구나.” “당연하지.” “그럼 누나 결혼도 축하해 줘.” “좋은 사람이면 축하해 줄 거야.” “진짜지?” “그럼.” (113∼114쪽)


“그보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 다행이야.” “뭐어? 충분히 수상하잖아. 역시 반대야.” “그냥 질투 아니고?” “당연하지! 아냐. 그런 녀석한테는 누나가 아까워. 누나를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이 못 돼.” (133쪽)


“음. 행복해.” “맛있어?” “응. 먹어 볼래?” “마음만 받을게.” (15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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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타카코 씨 6
신큐 치에 지음, 조아라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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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2021.12.11.
모든 곳에는 저마



《행복한 타카코 씨 6》

 신큐 치에

 조아라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21.9.15.



  《행복한 타카코 씨 6》(신큐 치에/조아라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21)을 읽었습니다. 이 꾸러미는 여섯걸음으로 매듭짓습니다. 그림님이 나란히 선보이는 《와카코와 술》은 어느덧 열일곱걸음까지 나오는데, 저로서는 “술꾼 와카코”보다는 “소리꾼 타카코” 쪽으로 마음이 갑니다. 수수하게 하루를 살아내면서 둘레를 마음으로 아우르는 이야기가 흐르는 《タカコさん》이요, 오늘 하루를 애쓴 스스로한테 술 한 모금을 올리는 줄거리를 잇는 《ワカコ酒》입니다.


  가만 보면 하나는 ‘와카코’요, 둘은 ‘타카코’입니다. 둘 모두 ‘카코’이면서 술을 즐기고, 소리에 감도는 숨빛을 읽는 사람입니다. 다만 “술꾼 와카코”는 먹을거리에 기울고, “소리꾼 타카코”는 조용히 살림을 지으면서 나누는 길로 갑니다.


  모든 곳에는 저마다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잇는 길’입니다. 멈춘 소리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외마디로 멈춘 소리가 아닌, 생각을 담은 소리로 가며 ‘말’로 거듭나고, 생각을 담은 소리를 주거니받거니 하는 사이에 삶을 얹어서 이야기로 피어납니다.


  삶을 얹지 않거나, 살림을 들려주지 않으면, 텅 빈 말이면서 잔소리이기 일쑤입니다. 삶을 얹기에 아무리 수수해 보여도 이야기요, 살림을 담기에 아무리 하찮게 여겨도 이야기입니다. 이와 달리 겉으로 그럴듯하게 꾸미지만 삶이나 살림하고 동떨어지면 잔소리나 헛소리에 그쳐요. 혼자서만 떠들면 혼잣말이랍니다. 마음에 웅크리기만 할 적에도 혼잣말이에요. ‘이야기’란, 우리가 저마다 새롭게 자라나는 사람으로 가는 길인 줄 스스로 느끼면서 말에 생각을 심는 하루요, 소리에 뜻을 얹어 담아내려고 하는 몸짓이라는 속빛이라고 할 만합니다.


  여러모로 보면 《행복한 타카코 씨》가 여섯걸음에서 멈추어 아쉽지만, 굳이 늘어뜨리지 않고 끝내기에 한결 빛나는 그림꽃책으로 꼽을 만하겠다고도 생각합니다.


ㅅㄴㄹ


‘남의 입을 빌린 ‘쓴소리’는 그저 무책임한 험담일 뿐이다.’ (55쪽)


‘민폐 행위라고 느끼는 우리가 속이 좁아진 걸까?’ (75쪽)


“타카코 씨의 본 모습은 그런 느낌이구나! 엄마한테 온 전화예요? 고향이 시코쿠였던가?” “다들 언제 본래 모습이 나와?” “난 본가의 개한테 개의 언어로 말해.” (85ㅉ고)


‘원래부터 다양한 것들이 말을 하고 있다.’ (99쪽)


‘우리는 타인의 행복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그렇게 기뻐하는 것 자체가 분명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오늘도 깨달은 나는 역시 행복하다.’ (120∼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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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eShinkyu #新久千映 #タカコさ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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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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