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에 잠자리



  풀잎에 잠자리가 앉습니다. 살며시 다가가서 바라봅니다. 날벌레를 잡아먹는다고 알려진 잠자리는 풀내음을 어느 만큼 느낄는지 궁금합니다. 잠자리도 여뀌꽃 냄새를 맡을까요. 들판마다 노랗게 익는 나락내음도 잠자리한테 구수할까요. 작은 풀잎 하나도 잠자리한테는 날갯짓을 그치고 내려앉는 반가운 쉼터가 됩니다. 2016.9.25.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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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없는 흙사마귀



  아마 짝짓기를 마친 뒤이지 싶다. 흙사마귀 한 마리가 갈 곳을 잃은 채 마을 어귀 군내버스 타는 데에서 맴돈다. 머리를 잃었어도 몸은 움직인다. 머리는 없으나 팔도 다리도 움직인다. 몸에서 기운이 다할 때까지 이 흙사마귀 몸은 그대로 움직일 테지. 그냥 암사마귀한테 몸을 다 내주어 이듬해에 새로운 새끼가 알에서 깨어날 밑힘이 되도록 했어도 좋았을 텐데 싶다. 아무쪼록 흙사마귀가 흙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살그마니 집어서 풀밭으로 옮겨 준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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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 멧범나비(산호랑나비)



  빨래터를 치웁니다. 언제나처럼 아이들하고 함께 수세미를 북북 밀면서 신나게 놀듯이 빨래터를 치웁니다. 구월에는 배롱꽃이 잔뜩 떨어져서 치울 일이 많습니다. 거의 다 치웠구나 싶어서 허리를 토닥토닥 두들기는데, 문득 멧범나비(산호랑나비) 한 마리가 찾아들어 우리 둘레에서 날갯짓을 합니다. 멧범나비는 발치에서도 머리맡에서도 살몃살몃 내려앉더니 빨래터 바닥에 떨어진 배롱꽃에 앉아서 꽃가루를 찾으려 합니다. 아기야, 넌 어디에서 깨어났니? 우리 마을에서 깨어났니, 아니면 우리 집에서 깨어났니? 우리 집에는 네가 좋아하는 초피나무가 여러 그루 있는 줄 알지? 배롱꽃 꿀하고 꽃가루도 먹고, 우리 집 초피나무에서도 날개를 쉬렴.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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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사마귀



  어느새 날씨가 가을로 접어들면서 우리 집 사마귀도 몸빛을 바꾼다. 사마귀를 비롯해서 온갖 풀벌레는 한여름에는 풀빛이기 마련이지만 가을을 앞두고 몸빛이 차츰 바뀐다. 이제 막 가을로 접어들려 하니 흙빛으로 조금씩 물드는데 한가을이 되면 그야말로 까무잡잡한 흙빛으로 거듭난다. 뽑아도 다시 돋는 모시풀잎에 앉은 우리 집 사마귀를 문득 보고는 한동안 서로 마주보았다. 얘야 너는 우리 집에서 무엇을 먹니? 우리 집에는 너한테 어떤 먹이가 있니? 얌전히 접은 날개가 반들반들 빛난다. 만져 보고 싶지만 만지지는 않고 눈으로 바라본다. 내가 만지려 하면 사마귀는 엄청나게 놀랄 테지. 얘야 놀라지 말아라. 너도 알 테야. 우리 집은 너희 같은 이웃을 아끼거든. 2016.8.29.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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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터지려는 솔꽃



  바야흐로 솔꽃이 천천히 터진다. 하나씩 둘씩 터지는 솔꽃으로 머잖아 솔꽃잔치를 이루리라 본다. 이른봄부터 즐겁게 누리던 솔잎이니, 여름 막바지부터 가을에는 흐드러지는 솔꽃을 기쁘게 누린다. 우리 집에서 자라는 예쁜 밭꽃아, 날마다 네 고운 꽃숨을 나누어 주렴. 이제 너희 꽃숨을 먹으면서 우리 살림을 지을게.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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