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나무 꽃내음에 멈춘 발걸음



  벌이 좋아하는 꽃나무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 국수나무. 오월이 무르익으면 자그맣고 노란 꽃을 잔뜩 매달아 벌뿐 아니라 사람도 끌어당기는 국수나무. 여름을 앞두고 나뭇잎이 짙어질 무렵, 찔레나무 곁에서 한껏 꽃내음을 퍼뜨리면서 ‘어서 숲으로 오렴.’ 하고 부르는 국수나무. 국수나무 국수꽃을 바라보려고, 꽃내음을 맡으려고, 꽃빛을 즐기려고, 가던 길을 멈추고 나무 곁에 섭니다. 국수꽃 한 송이는 작지만, 엄청나게 많은 꽃송이가 한데 어우러지면서 이렇게 짙고 달콤한 냄새를 베풉니다. 2016.5.2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심은 아이, 자란 아이



  집 앞뒤로 밭을 일구면서 씨앗을 심는데, 우리가 안 심은 싹이 꽤 크게 튼다. 밭을 일구다가 ‘콩알 비슷한 씨앗’에서 싹이 튼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아니, 이곳에 콩씨를 묻어 두었기에 봄이 되어 싹이 텄을까요? 무슨 씨앗이고 어떤 싹인지 모르지만 지켜보기로 합니다. 앞밭에서도 뒷밭에서도 이 싹이 틉니다. 어느덧 떡잎이 넓게 퍼지면서 새로운 잎이 돋으려 하기에, 어렴풋하게 어떤 씨앗이었네 하고 어림합니다. 더 자라면 또렷하게 깨달을 테지요. 한나절 남짓 흙을 만지면서 호미질을 하노라니, 허리가 결려 끙끙거리면서 흙바닥에 폴싹 주저앉아서 돌을 캐노라니, 그야말로 수많은 개미가 이 밭자락을 기어다니는 모습이 보입니다. 온갖 무당벌레가 기거나 날거나 쉬는 모습을 봅니다. 조그마한 개미가 제 몸보다 열 곱이나 큰 벌레를 잡아서 끌고 가는 모습을 봅니다. 밭일을 쉬며 가만히 해바라기를 하는 동안에는 작은 새가 발치까지 내려앉아서 콩콩 뛰다가 날아갑니다. 마을고양이 두어 마리가 내 옆을 아무렇지 않게 천천히 스치듯이 지나갑니다. 구름이 그림자를 지을 적에는 그늘이 생기고, 구름이 지나가면 다시 땡볕입니다. 밭에서 일어서면 마을이 휘 보이고, 밭에 주저앉아서 흙을 쪼면 우리 집 풀밭만 보입니다. 문득 이 조그마한 밭자락이 우리 집으로서는 숲이 되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텃밭을 거느린 모든 시골집은 저마다 조그맣게 집 둘레에 숲을 이루는 셈이구나 하고 느낍니다. 나는 우리 집에 어떤 숲이 깃들어 숲바람이 부는 살림을 짓는가 하고 새삼스레 생각하며 기운을 내어 더 호미질을 합니다. 2016.5.13.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꽃과 책읽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6-05-13 2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14 0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광이풀, 사광이아재비



  앞밭하고 뒷밭을 날마다 조금씩 갈며 씨앗을 심고 돌보다가 ‘어린 싹’인데에도 줄기에 살짝 날카로운 가시나 톱니가 난 아이를 봅니다. 너는 누구인가 하고 한참 들여다보다가, 아하 이 아이가 사광이풀이나 사광이아재비이겠네 하고 깨닫습니다. 어린 싹으로는 올해에 비로소 들여다보기에, 이 어린 싹이 사광이풀일는지, 아니면 사광이아재비일는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더 자라서 꽃이 피는 모습을 본다면 바로 알아챌 테지요. 한 번 어느 풀인지 알아채고 나면 이듬해부터는 어린 싹만 보아도 어느 풀인지 더 빨리 알아볼 테고요. 어리고 여릴 적에는 나물로도 먹기에 그대로 둘까 하다가도, 어느새 무럭무럭 자라 밭을 덮기에 어린 싹을 뽁뽁 뽑습니다. 하나쯤은 남겨서 풀이름을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도 생각해 봅니다. 2016.5.13.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봄날에 가랑잎



  봄날에 가랑잎을 봅니다. 아니, 어떻게 가을이 아닌 봄에 가랑잎을 보느냐 하고 묻는다면 사진으로 보여줄밖에 없습니다. 또는, 이 늦봄에 남녘 시골마을로 나들이를 해 보라는 말씀을 올려야 할 테지요. 꽤 많은 나무는 가을에 가랑잎을 떨구는데, 후박나무는 이 봄에 가랑잎을 떨구어요. 그래서 봄비가 내리는 날씨라면 마당은 후박나무 가랑잎이 수북하게 쌓입니다. 후박나무 가랑잎 사이에는 조그마한 후박꽃도 섞여서, 후박내음이 물씬 풍기지요. 2016.5.10.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말물옺 까치무릇 산자고



  아이들하고 골짝마실을 하며 고즈넉한 숲을 사그락사그락 밟다가 아주 작고 하얀 꽃을 만납니다. 겨우내 떨어진 잎은 가랑잎이 되고, 이 가랑잎은 숲에 그득 떨어져서 한 걸음 내디딜 적마다 사그락사그락 소리가 새삼스럽습니다. 꼬리잡기를 하듯이 아이들하고 천천히 거닐다가 ‘쓰러진 나무 밑’에 돋은 하얀 꽃을 오래도록 지켜보는데, 이 흰꽃을 지난해에도 지지난해에도 이 언저리에서 보았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앞으로 이곳이 고즈넉하게 있을 수 있다면 이 흰꽃은 차츰 퍼질 만하겠지요. 삽차가 함부로 골짜기로 들어와서 냇물 바닥을 까뒤집어 시멘트로 들이붓는 짓을 하지 않는다면, 이 작은 숲꽃은 제 보금자리를 지킬 만하겠지요.


  아이들이 함께 꽃 앞에 쪼그려앉아서 묻습니다. “아버지 이 꽃 뭐야? 예쁘다.” “예쁘지. 예쁘면 네가 이름을 지어 줘.” “음, 흰꽃? 아니면 별꽃?” 아이들한테 ‘예부터 사람들이 붙인 이름’을 알려주기 앞서 ‘아이 나름대로 어떻게 느끼는가’ 하는 대목을 생각하도록 북돋우고 싶습니다. 때로는 우리 고장이나 마을에서 우리 나름대로 새 이름을 붙일 수 있겠지요. 모든 꽃이름이나 풀이름은 그 고장이나 마을에서 누군가 새롭게 붙인 이름이었으니까요.


  옛날에는 ‘말물옺’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하고, ‘까치무릇’이라는 이름도 함께 있었다 합니다. 오늘날 남녘에서는 ‘산자고(山茨菰)’라는 이름을 ‘나라이름’으로 삼는다 하는데, 동의보감에서 ‘가채무릇’이라고도 나온다는 이 풀을 놓고, 북녘에서는 ‘까치무릇’을 ‘나라이름’으로 삼아서 쓴다고 합니다. 남녘하고 북녘이 풀이름 하나를 굳이 똑같이 써야 하지 않을 테지만, 부러 다르게 써야 하지도 않겠지요. 무엇보다 예부터 널리 쓰던 이름이 있으면 이 이름을 알뜰히 살리고 아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2016.4.1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