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한 줄기

 


바람 한 줄기
후박나무에 앉았다가
동백나무에서 쉬었다가
초피나무하고 손짓하고는
모과나무와 살그레 웃고
감나무랑 도란도란 얘기하더니
뽕나무 곁에 사뿐 내려앉아
오늘은 재 너머
오리나무한테 가는 길이라
바쁘단다.

 


4346.12.1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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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귀

 


버스를 타면
덜컹덜컹 버스 소리

 

택시를 타면
조잘조잘 라디오 소리

 

기차를 타면
터덜터덜 쇠바퀴 소리

 

차에서 내려야 비로소
귀가 뚫리며 조용하다.

 

그러나
읍내에서 내리거나
시내로 나간다면
더 복닥거리는 소리물결.

 

그리고
우리 마을 어귀서 내려
천천히 걸어 집으로 가면
나긋나긋 풀바람과 새소리.

 


4346.12.1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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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내버스 타기

 


두 시간에 한 대 지나가는
군내버스 놓칠라
작은아이 안고
큰아이 달리도록 하며
장바구니 낀 손 흔들어
“저희요! 저희요!” 부른다.

 

사르르 멈춘 군내버스
후다닥 큰아이 태우고
작은아이 안아서 올라탄다.
“어디 가요?”
“도화 신호요.”
“내릴 때 내소.”

 

아이들 나란히 앉히고
짐가방 내려놓고는
두 아이 곁에 살짝
엉덩이 걸친다.

 

읍내 장보기 다 마쳤다.
자, 집으로 돌아가자.

 


4346.12.2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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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눈

 


올봄
마당 한쪽에 심은
작고 가냘픈 복숭아나무

 

섣달 접어들어
찬비 내리며 마지막 잎
똑똑 떨구는데

 

짙붉게 물든 잎사귀
몇 남아
대롱거릴 무렵에

 

벌써
새봄 기다리는 조고맣고
야무진 겨울눈 있었다.

 


4346.12.1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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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

 


밤에 아이들 쉬를 누여
다시 다독여 재우고는
슬그머니 부엌 불 켠다.

 

냄비에 누런쌀 흰쌀 보리쌀
골고루 부은 뒤
찬물로 헹군다.
다시마 끊어서 불리고
느긋하게 잠자리에 눕는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끓이고
마당에서 풀을 뜯고
까마중 훑고
찬찬히 밥상을 차린다.

 

아이들은 밥 먹기 앞서
큰아이 작은아이 갈마들며
똥을 눈다.
밑을 씻기고 옷 갈아입힌 뒤
둘이 놀도록 하고는
“자, 이제 밥 먹자.”

 

밥 잘 먹은 아이들은
마당에서도 놀고
마루에서도 놀며
방에서도 고샅에서도 논다.

 

작은아이 슬슬 눈꺼풀 감길 무렵
다독다독 낮잠을 재우고
큰아이는 공책 펴서
한글놀이 함께 한다.

 

따르릉 전화 울린다.
큰아이와 얘기하는데 걸리적거리고
작은아이 깰랴 걱정하지만,
상품광고 보험회사 일꾼은
집에서 아이 돌보는 줄 안 믿는다.

 

가까운 벗도
밥하느랴 바쁘거나
빨래하느라 부산하거나
아이 재우느라 고단한 줄
하나도 안 믿는다.

 

왜,
어머니만 밥하고 빨래하며 아이 돌보나.
왜,
아버지는 밥하고 빨래하며 아이 돌보면
거짓말 하는 줄 여기나.

 


4346.12.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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