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일이 책과 얽힌 일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받게 되는 책이 더러 있습니다. 이런 책이 그동안 미처 몰랐던 좋은 책이라면 참으로 반갑습니다. 하지만 딱히 내키지 않을 뿐더러, 이런 책을 왜 내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면, 받는 손이 참 멋쩍습니다. 요리조리 핑계를 대며 안 받으려고 하지만, 우편으로 보내온다면 그야말로 돌려보낼 수 없는 노릇. 이런 책은 차곡차곡 모아서 가까운 헌책방에 가져다주곤 합니다. 그러나 모든 책을 이처럼 가져다주지는 않아요. 차마 헌책방에 내놓을 수 없는 책은 그냥 껴안습니다. 이 책이 헌책방 책꽂이에 꽂혀서 사람들 눈을 더럽힌다면 슬픈 일이니까요. 새책방 책꽂이에도, 헌책방 책꽂이에도 우리 눈을 밝히고 마음을 살찌워 주는 책들이 꽂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온갖 책을 자료로 삼는 도서관이라면 간이나 쓸개가 빠진 책이 꽂힐 수 있겠지요. 어느 사무실에서 헌책방으로 책이 통째로 흘러나온다면, 얄궂은 책이 다른 책과 섞여서 꽂히거나 쌓일 수 있고요. 하지만 제 손에 쥐어진 달갑지 않은 책들까지 헌책방에 들어가도록 하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제 방 한쪽 구석에 차곡차곡 쌓아둔다든지, 북북 찢어서 폐휴지에 섞어 놓고 싶습니다. (4340.2.2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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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 사기 -

 내 책들은 내가 손수 찾아간 책방에서 내 손으로 끄집어내어 내 눈으로 살핀 뒤 내 마음에 파고드는 책을 내 주머니를 털어서 산다. 내 주머니에 있는 돈은 내가 일해서 번 돈. 이렇게 산 책은 내 가방에 담아 내 자전거를 타고 내가 즐기는 골목길을 달려서 집으로 들고 온다. 자전거를 세우고 가방을 내리고 땀을 닦은 뒤 가방에서 하나하나 꺼내거나 짐받이에서 차근차근 풀어 놓은 책을, 내 손으로 빤 걸레로 깨끗이 닦아낸다.

 내가 번 돈으로 사는 책이고, 내가 좋아서 사는 책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지 않고 내 마음에 드는 책만 산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칭찬한 책이라 해도, 내 마음에 안 들면 젖혀 놓는다. 아무도 칭찬하지 않고 소개해 주지 않은 책이라 해도, 내 마음에 들면 기꺼이 산다. 나는 내가 땀흘려 일해서 번 돈을, 내 마음을 채워 줄 만한 책을 사는 데에 마음껏 쓴다.


 - 2 : 읽기 -

 남이 줄을 그어 놓았든 말든 내 마음에 드는 곳에 줄을 긋고 빗금을 치고 별을 그리고 이것저것 적어 놓는다. 내 책이니까, 내가 읽는 책이니까, 뒷날 다시 돌아볼 사람도 나니까.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내가 하는 일을 돌아보도록 하는 줄거리를 읽고, 내가 가는 길이 얼마나 올바른가 되새기는 줄거리를 곰곰이 새기며, 내 생각이 얼마나 고르고 알맞는가 헤아리며 줄거리를 받아들인다. 책은 껍데기로 읽지 않는다. 책꽂이를 꾸미려고 모아 놓지 않는다. 새로 나온 책이든, 헌책방에 오래도록 묵혀 있던 책이든, 내 마음을 움직이거나 내 마음을 살찌우거나 내 마음 깊은 곳에 잠자는 생각을 일깨울 수 있는 책이면, 나한테 고마운 책이다. 스승이 되는 책이다. 이름난 글쟁이는 이름뿐이다. 훌륭하다는 출판사 이름도 이름뿐이다. 잘팔린다며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는 것은 한낱 숫자놀음이다. 이름과 숫자가 밥먹여 주지 않는다. 이름과 숫자는 내게 즐거움을 선사하지 않는다. 오로지 책에 담긴 줄거리가 밥먹여 주며 즐거움을 선사한다. 내가 읽는 책 하나를 엮어내려고 지은이와 엮은이가 흘린 땀방울만큼 내 마음은 들뜨고 기쁘며 아름다울 수 있다.

 
 - 3 : 묶기 -

 자취살이 열한 해 동안 아홉 차례 집을 옮겼다. 이번에 또 한번 책짐을 옮겨야 한다. 지난해 3월 아홉째 옮길 때에는 책 묶는 데에도, 나르는 데에도, 나른 책 풀어서 제자리 찾아 주는 데에도 퍽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모두 더하면 반 해쯤 걸렸을 테지. 그때는 하루에 다 나르지도 못했고, 네 차례에 나누어서 모두 짐차 다섯 대 부피만큼 옮겼다. 이번에도 한꺼번에 다 나르지는 못한다. 여러 차례 나누어야 한다. 왜냐하면, 책을 풀어서 쌓으면 자리를 적게 차지하지만, 책을 묶어 놓으면 자리를 훨씬 많이 차지하니까, 모든 책을 다 묶어 놓은 뒤 한꺼번에 나를 수 없다. 한 번 묶어서 쌓은 책을 한 번 덜어내고, 빈자리에 새로 묶은 책을 쌓아서 다시 한 번 나르고를 되풀이해야 한다.

 그동안 아홉 차례 책짐을 나르면서, 내가 사들여서 읽은 책은 모두 내 손으로 묶었다. 책짐은 내 등짐으로 날라서 짐차에 실었고, 다시 내 등짐으로 집에 옮겨 놓았으며, 내 손으로 풀어서 손질해서 꽂아 놓았다. 책짐을 옮길 때마다 끈이 더더욱 많이 든다. 이번에도 끈을 새로 많이 사 놓아야겠지. 책짐을 꾸릴 때는 헌 신문이 쓸모가 많다. 신문은 하루만 지나도 낡은 정보로 가득한 종이뭉치밖에 안 되지만, 꾸러미로 모아 놓으면, 책짐을 쌀 때 책이 안 다치게 해 주어서 고맙다. (4340.3.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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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바이크》라는 자전거 잡지가 있습니다. 이 잡지 2007년 2월호에 제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지난달에 이곳 기자와 만나보기를 했고, 이때 이야기가 사진과 함께 제법 크게 실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실렸을까 궁금해서 한 권 사려고 어제부터 동네책방을 다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못 샀습니다.

 먼저 홍제동. 이곳 홍제동에는 책방이 딱 한 군데 남았습니다. 큰길가에 있는데, 이곳에는 자전거 잡지를 안 다룹니다. 다만, 자동차 잡지는 다섯 가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은 신촌에 하나 남은 홍익문고에 갔습니다. 이곳 또한 자전거 잡지를 아예 안 다룹니다. 다만, 이곳도 홍제동 책방과 마찬가지로 자동차 잡지를 여러 가지 다루고 있습니다. 홍대 전철역 지하에 있는 책방에도 가 볼까 하다가 또 실망할까 싶은 마음에, 여기까지는 가지 않습니다. 예전에 이곳에 갔을 때를 떠올려 보면, 그때에도 자전거 잡지는 구경을 못했습니다.

 내일은 어디를 가 보면 좋을는지. 불광동에 있는 불광문고에는 자전거 잡지를 다룰는지. 연신내에 있는 연신내문고는 다룰는지. 궁금한 한편, 걱정이 됩니다. 애써 먼길을 나섰는데, 가는 데마다 자전거 잡지를 안 다룬다면 어쩌지요?

 어쩔 수 없이 광화문 교보문고나 영풍문고나 반디앤루니스에 가야 할까요. 이렇게 큼직한 책방에만 자전거 잡지를 다룰까요? 이곳마저 자전거 잡지가 없지는 않겠지요?

 자전거 타는 사람이 나날이 늘고,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분들도 차츰 늘고 있습니다. 자전거 문화도 조금씩 퍼져 나갑니다. 그런데, 자전거 타는 분들 가운데 자전거 잡지를 정기구독하는 사람은 매우 적고, 가끔이나마 사서 보는 사람도 참 적다고 합니다(자전거 잡지 만드는 분 이야기를 들으니). 왜 그럴까요.

 괜히 저 혼자 마음이 무겁습니다. 슬픕니다. 그래서 술자리에서 소주 두 병을 쓰게 마십니다. 주량은 소주 두 병 안팎인데, 두 병을 마셨어도 술이 안 오릅니다. 취하지 않습니다. 술을 더 마시고픈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더 마시지는 않고 뚝 끊습니다. 신촌에서 홍제동까지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야 하니까요.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도 속은 활활 타오르고 자꾸만 눈물이 나오려고 합니다.

 얹혀지내는 홍제동 집으로 옵니다. 앞바퀴를 떼어 집으로 들어갑니다(자물쇠가 없어서 바퀴 한쪽을 떼어 집에 둡니다). 냉장고에 있는 맥주를 마실까 하다가 그만둡니다. 술을 마신다고 마음이 나아질 듯하지는 않아서. 멍하니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다가 새벽 네 시가 가까워서야 자리에 듭니다. 눈을 감습니다. 하지만 잠은 안 오고 자꾸자꾸 울컥울컥 치밀어 올라오는 무엇이 있습니다. 아. 하. 후아. 한숨을 몇 번 내쉬다가 벌떡 일어납니다. 오늘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골라든 책 몇 권을 집어들고 옆방으로 가서 불을 켭니다. 책을 조금 뒤적이다가 노트북을 켭니다. 인터넷을 엽니다. 즐겨찾는 자전거 모임 게시판에 글을 하나 남깁니다. 책읽기 모임 게시판에도 글 하나 남깁니다. 그래도 어딘가 텅 빈 듯한 느낌.

 내일은, 아니 밝아오는 오늘은 또 어디로 가면 좋을지. 헛걸음이 되더라도 불광문고에 가 볼는지. 싫어도 교보문고에 가 볼는지. 아니면 자전거 잡지사에 전화를 걸어 손수 찾아가서 그곳에서 사면 좋을는지. 아. 젊음과 문화가 넘친다고 하는 신촌과 홍대 둘레에서마저 자전거 잡지를 구경할 수 없다면, 어느 동네, 어느 마을, 어느 골목, 어느 곳에서 자전거 잡지를 구경할 수 있다는 말인지. 마른침만 꿀꺽꿀꺽 삼킵니다. 오늘 보름달이 떴는데, 달님을 보며 소원을 빌면 들어 줄까요. (4340.2.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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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2007-02-09 21:34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서 구입하시길 그리고 2월호 부터는 미국유명잡지 마운틴바이크액션지 제휴로 번역본이 실려 있습니다.
 

 인터넷 새책방에서 보내온 책

 
  인터넷 새책방  ‘알라딘’이 있다. 보름쯤 앞서부터 이곳에서 편지가 왔다. ‘유효기간이 다 되어 가는 마일리지’가 있으니 어서 쓰라고. 얼마나 되랴 싶은 마일리지가 삼만 원쯤 있다. 아마, 언젠가 올렸던 책소개 글이 하나 뽑혀서 받은 돈과 가끔 올린 책소개 글 덕분에 어느 만큼 쌓여 있는 듯. 그래서 책 세 가지를 주문했고, 오늘 시골집에 닿았다.

 상자를 연다. 책 세 권이 들어 있는데 두 권은 상태가 안 좋다. 하나는 책이 바닥에 뒹굴고 긁힌 자국이 많이 나 있고, 하나는 속종이가 구겨져 있다. 두 권은 창고에 오랫동안 처박혀 있었거나, 반품이 여러 차례 되면서 많이 다친 듯하다(출판사 영업부에서 일했던 경험으로 미루어 본다면). 글쎄, 어차피 줄거리를 보는 책이니 크게 상관은 없다만, 내가 주문한 이 책들은 새책이지 헌책이 아니다. 헌책방에서도 책겉이 이렇게 낡거나 속종이가 구겨져 있으면 값이 떨어진다. 하지만 나는 이 책들을 새책으로, 더구나 온돈을 치르고 샀다.

 내가 이 책을 인터넷 주문이 아닌, 책방에 두 다리로 찾아가서 샀다면, 책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낯빛 하나 안 바꾸고 그냥 팔았을까? 팔 수 있을까? 내가 받은 ‘알라딘’ 책 상자에는 어느 출판사에서 낸 책을 알리는 광고종이가 한 장 들어 있다. 광고종이를 넣은 까닭은 무얼까? 내가 주문한 책을 펴낸 출판사하고 상관있는 광고종이도 아닌 엉뚱한 광고종이를?

 가만히 생각해 본다. 틀림없이 알라딘 어느 일꾼이 이 책을 싸서 보냈겠지. 그러니 광고종이가 끼워져 있을 테며, 그 일꾼은 틀림없이 나한테 보낼 책을 자기 두 눈으로 보았을 테며 손으로 만졌겠지. 또한, 이 책을 출판사에 주문을 넣었을 때, 주문을 받고 알라딘으로 책을 보내는 배본회사 일꾼도 책 상태를 살핀 뒤 보냈겠지. 그런데 그렇게 여러 사람 손을 거친 책이 ‘여러 차례 반품을 거친 다치고 낡은 책’이라니. 아무리 얼굴 안 마주칠 사람이라지만, 아무리 말 한 마디 나누지 않고 책을 사고파는 인터넷 책방이라지만, 글쎄.

 뭐, 글 하나 잘 써서 받은 5만 원짜리 마일리지를 이태 만에 쓰는 셈이기는 하기에, 어떻게 보면 거저로 받는 책이라 하겠으나, 아무리 거저로 선물해 주는 책이라 해도 다치고 낡은 책을 주는 법이 있을까. 헌책방에서 사서 주는 책이라면 몰라도. (4340.1.2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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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9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베스트셀러 2

 
 누군가 저한테 “베스트셀러를 어떻게 생각하셔요?” 하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음, 베스트셀러라, 저도 고등학교 다니던 옛날에는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 책을 빠짐없이 읽으려고 무척 애를 썼어요. 하지만 그게 잘 안 되더군요. 그때그때 조금씩 바뀌는 순위에 맞추어 책을 읽자니, 정작 제가 바라는 책, 제가 읽고 싶어하는 책은 못 읽게 되더군요. 그래서 제가 바라거나 좋아하는 책을 읽자니 베스트셀러 순위에 든 책하고 멀어지고요. 그래서 저는 다부지게 금을 그었습니다. 이러다가는 이도저도 안 되겠구나 싶어서 말입지요. 그래, 어찌했느냐? 그때,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베스트셀러라는 책’은 죄 끊었습니다. 아예 순위표도 안 보았고, 그런 책들이 잘 팔리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이런 책들 이야기를 해도 귀담아듣지 않았어요. 누군가 베스트셀러라는 책을 선사해 주면, 앞에서는 ‘아이고 고맙습니다’ 하고 받았지만, 바로 그날 헌책방 한 곳 찾아가서 슬그머니 책방 아저씨 책상 위에 얹어 놓거나 그냥 선물이라면서 드리곤 했습니다. 이렇게 살아온 지 어느덧 열대여섯 해쯤 되었군요. 그동안 베스트셀러라는 책을 느끼고 돌아보노라니, 이 책, 베스트셀러란 ‘자기 품 안 들이고 대충 읽을 책’이 아니겠느냐,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자기한테 참말로 반갑고 고맙고 즐겁고 기쁜 책은 못 보게 막는 책’이 아니겠느냐, ‘자기가 볼 책을 스스로 찾는 몸가짐을 싹뚝 꺽어 버리거나 없애 버리는 책’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들더군요.” (4339.12.2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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