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에 있는 책은 ‘여성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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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서 아이를 낳으려고 오랫동안 알아보고 애쓰고 마련하고 집을 꾸며 놓았으나, 한 가지 챙기지 못한 대목이 있습니다. 새벽녘에 비가 올 때 집안 온도가 뚝 떨어지는 줄을 미리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더운 날 아이를 낳게 되니, 더위에 아기 어머니가 힘들겠다는 걱정만 했습니다. 둘레 사람들은 한결같이 “왜 병원을 놔두고 집에서 아이를 낳으려고 하느냐”고 우리 두 식구를 괴롭히거나 들볶기만 했을 뿐, 정작 우리가 집에서 아이를 낳을 때 무엇을 더 살피고, 어느 대목에서 빠뜨린 곳이 있는가를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여름에도 온도를 뚝 떨어뜨리는) 비와 새벽 온도’는 두고두고 곱씹을 일입니다. 비록 첫 아이에서는 쓴맛을 보고 말았으나, 다음 아이한테는, 그리고 집에서 아이를 낳을 마음이 있는 다른 식구들한테는 ‘자칫 지나칠 수 있는 아쉬움’을 짚어 주면서 찬찬히 아기낳이를 할 수 있다고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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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16일 새벽 05시 33분에 병원에 닿아, 05시 36분에 분만실에 들어갔고, 05시 46분에 아이를 낳았습니다. 우리는 스물네 시간 동안 진통을 견디고 분만실에 갔기에, 여느 아기 어머니들처럼 무통주사니 촉젠주사니 항생주사니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산부인과에서는 회음부를 자르고 의사가 손을 집어넣어 아기를 잡아뺍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늘날 거의 모든 산부인과에서는 ‘회음부 자르기’를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할 뿐더러, 회음부를 자르고서도 이런 아기낳기가 마치 ‘자연분만’인 듯 잘못 알고 있습니다.

 “최악이었어요.” 하고 말하는 옆지기를 개인병실로 옮깁니다. 병원에 발을 디딘 우리들은, 바로 이때부터 ‘아기 어머니’와 ‘아기 아버지’가 아닌 ‘환자’와 ‘보호자’입니다.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나 간호사나 ‘아기 어머니’를 흔한 상품과 마찬가지로 다루며 함부로 굴립니다.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할까, 이 사람들은 학교 다니면서 의사 일과 간호사 일을 무엇이라고 배웠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의과대학이나 간호학교를 마쳤다고 해서 ‘의사 공부’와 ‘간호사 공부’가 끝이 아닙니다. 학교를 마치고 병원에서 사람들과 마주하게 되더라도, 의사와 간호사는 ‘사람 공부’를 해야 하고 ‘세상 공부’를 해야 합니다. 똑같은 시술이라고 해도, 백이면 백 모두 다른 사람이요 다른 몸이요 다른 몸입니다. 모두 다르면서 소중한 목숨임을 느끼며, 한 사람 한 사람 따순 마음으로 다스리고 껴안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8월 16일 새벽에 병원에 들어와서 8월 18일 낮에 이르는 이제까지, 병원에서 부대끼는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청소 일을 맡은 사람들한테까지도 ‘사람냄새’를 맡기가 몹시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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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이 글을 쓰는 병원 골마루에는 셈틀 하나 놓여 있고, 〈여성○○〉, 〈우먼○○〉 하는 이름이 붙은 두툼한 잡지 몇 권 놓여 있습니다. 병실에는 칸마다 텔레비전이 있습니다. 하루 지내는 데에 9만 원을 치러야 하는 병실 어느 곳에도 ‘아기를 낳아 기르는 어버이’가 차근차근 읽고 되새길 만한 책 하나 놓이지 않습니다. 간호사가 일하는 자리에도 책 한 권 보이지 않습니다. 의사가 일하는 방에는 어던 책이 꽂혀 있을까 궁금합니다.

 올림픽 철이니, 침대에 드러누워 올림픽 응원만 하면 되는 산부인과일는지요. 저녁에는 연속극을 보며 울고 웃으면 되는 산부인과일는지요. 덩그러니 큼직한 방에 오로지 하나 있는 ‘문화시설’ 텔레비전은, 아기를 낳는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무슨 뜻이 될는지요.

 아기 사진을 찍고 아기 동영상을 찍는 업체하고는 제휴가 되어 ‘무료 사진’을 주고 ‘무료 뭐’를 줍니다. 분유회사하고도 협찬이 되어 ‘무료 분유’ 한 통을 주고 또 무어를 줍니다. 그러나, 정작 아기 몸과 마음을 읽어내면서 함께 살아가는 길을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책 하나 소개해 주지 않습니다. 아니, 소개해 줄 수 없다고 해야 옳지 싶습니다. 의사님과 간호사님부터 ‘아기 어머니와 아기 아버지가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고 새길 훌륭한 이야기책’으로 무엇이 있을는지, 먼저 읽어 보지 못하기 때문에요.

 먼저 읽어 보았다면, 먼저 읽어 보면서 가슴이 짜릿하고 뭉클하고 북받치는 무엇인가 있었다면, 병실이나 골마루에 여성잡지나 대충 쌓아 놓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방마다 텔레비전만 들여놓을 게 아니라, ‘아기 사진 무료 제공’ 같은 ‘서비스’가 아니라, 참으로 아이와 아이 어버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새 목숨을 맞아들이면서 이 세상을 힘차게 헤쳐 나가고, 기쁨을 함께 누리면 좋을지를 나누어 줄 수 있었으리라 봅니다. (4341.8.1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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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8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08-08-19 11:34   좋아요 0 | URL
아이고 고맙습니다 ^^
 





 막내리고 뒤돌아보니 극장에 남은 사람 열대여섯
 [내가 본 영화 10]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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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에서 책 만드는 일을 하는 ㄱ출판사 사장님이 시내에 나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았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때 극장에 함께 있던 사람 숫자는 다섯이라고 합니다. 제가 인천 ㅇ극장에서 옆지기와 함께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열대여섯쯤 함께 보았습니다. 사백 사람 남짓 들어올 수 있는 극장에 열대여섯이라.

 고등학교 다니던 때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이나 〈숲속의 방〉을 보러 인천 ㅇ극장이나 시민회관에 찾아갔을 때, 영화를 함께 본 다른 사람들 숫자는 너덧이었습니다. 그때 뒤로 이렇게 적은 숫자가 큼직한 극장에 앉아서 영화를 보기는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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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4분에 걸친 짧지 않은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핸드볼 하나로 살아가는 아줌마들이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펼칩니다. 배경은 2004년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을 앞둔 훈련과 올림픽 때 경기를 치르던 일.

 국민학교 적부터 핸드볼이라는 운동경기가 참 좋았고, 학교에 운동부라도 있으면 이 운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며 고등학교며 대학입시에 따른 교과서 외우기에만 치달을 뿐, 동아리 활동으로라도 핸드볼 운동을 즐길 수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운동장 한쪽 구석에 핸드볼 골대라도 있어야 이 운동을 하지요. 골대가 있어도 그물이 없으니 공 한 번 넣으면 주으러 가는 것도 일이지만.

 혼자서는 핸드볼을 할 수 없으니, 아쉬운 대로 평일 낮 두어 시에 가끔 보여주는 방송중계를 보곤 했습니다. 그것도 겨울방학이나 여름방학 때 드문드문.

 중고등학생 때(1988∼1993) 집에서 핸드볼 중계방송을 보노라면, 관중자리는 썰렁하기 그지없었는데, 저처럼 핸드볼 중계방송을 ‘재미있다고 지켜본’ 사람은 얼마나 있었을까요. 제가 핸드볼 중계방송을 보던 때, 형은 으레 ‘재미없는 걸 왜 보냐?’ 하면서 다른 곳으로 돌리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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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첫머리에, 전국대회 결승전을 치르는 모습이 나옵니다. 응원하는 관중 거의 없이 대회 우승을 차지하는 ‘인천 ㅎ’ 팀은, 우승을 했어도 팀이 해체가 됩니다. 해체되는 핸드볼 팀 연고지가 ‘인천’이라는 대목이, 인천을 연고지로 했다가 해체된 숱한 운동팀들을 떠올리게 해서 살짝 아찔합니다. 현실 삶과 영화 이야기가 다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또 누구나 알면서도 바꾸지 않다시피, 핸드볼이건 하키건 체조건 펜싱이건 양궁이건 배드민턴이건, 여느 때에는 이러한 운동을 하며 살아가는 선수들한테 눈길 한 번 따숩게 건네는 사람이 드뭅니다.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운동 하나만 해서 먹고살아간다는 일은 아주 위험합니다. 운동을 좋아하고 즐기는 가운데 자기 밥벌이가 따로 있어야지요. 따로 자기 밥벌이가 되는 일을 하면서 생활체육으로 운동경기를 즐길 수 있어야지요. 그렇지만 우리 나라 얼거리를 살피면, 돈이고 힘이고 이름이고 없는 사람들이 돈과 힘과 이름을 얻는 어렵고 고달프지만 고작 하나 보임직한 길이 ‘운동선수로 금메달을 따거나 세계대회 1등’이 되는 길입니다. 박세리는 그저 골프를 즐기면 좋았을 사람이지만, 세계대회 1위를 하지 않고는 스스로 먹고살 길도 자기 운동을 이어나갈 길도 없습니다. 어느 한편으로 보면 불쌍하고 쓸쓸하고 고단한 삶입니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 나오는 핸드볼 선수들은 어떠한가요. 팀이 우승을 해도 포상금 한 푼이나마 제대로 주어졌을까요. 고작 스물 앞뒤일 선수들이 ‘뛸 곳이 없어지’면 어찌해야 할까요. 운동 하나만 죽어라 바라보며 살아왔는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영화에 나오는 ‘한미숙’ 남편처럼, 핸드볼 하나만 알고 사회는 ‘좆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사기에 걸리고 폐인이 되다시피 스러져 갈밖에 다른 길이 있을까요. 그래서 몇몇 생각있던 운동선수들은 영화에 나오는 ‘김혜경’처럼 나라밖으로 눈을 돌리며, 더 가시밭길과도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실제로 일본 구단으로 가고 스위스로 가고 오스트리아로 가고 하면서 선수목숨을 이어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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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경기는 돈이 되기 때문에 하는 일일까요. 그러면, 고작 서른다섯도 못 되어 거의 다 은퇴를 해야 하는 이런 운동경기를 뛰는 선수들은, 서른다섯, 또는 마흔쯤 되는 나이부터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할까요.

 우리들 여느 사람들한테는 왜 자기 일터를 다니는 가운데, 야구며 축구며 핸드볼이며 하키며 체조며 달리기며 헤엄치기며 활쏘기며 탁구며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터전이 없을까요. 서울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구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인천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침 축구’ 하나를 빼면 무슨 생활체육을 즐길 수 있을까요. 그나마 아침 축구도 남정네들이 하지, 남녀가 아우르며 즐길 수 있는 놀이란 무엇일까요. 어디에서 마음껏 맑은 바람을 쐬면서 뛸 수 있는가요. 하다못해 골목길에서 자동차 빵빵거림에 시달리지 않으며 배드민턴이라도 할 수 있는지요. 초중고등학교 잘 닦인 테니스장에서 동네사람들이 테니스를 즐길 수 있는지요. 운동부가 있는 초중고등학교 체육관에서 동네사람들도 생활체육을 즐길 수 있는지요.

 “생각도 하고, 하늘도 보고, 구름도 보고.” (시골학교 체육교사가 된 스승이 한미숙한테 하는 말)

 ‘한미숙’과 ‘송정란’ 들이 뛰던 핸드볼팀 감독이었던 분은 어느 시골학교 체육교사가 되어 아이들한테 핸드볼을 가르칩니다. 실업팀 감독이었을 때는 늘 찌푸린 얼굴이었는데, 시골학교 체육교사로 일할 때에는 활짝 갠 밝은 얼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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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갑니다. 얼마쯤 나오다가 툭 끊어집니다. 영화를 볼 때는 자막 올라가는 마지막까지 보는 맛이 있는데, 인천 이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면 늘 자막을 잘라먹습니다.

 뒷간에 들러 물을 빼고 낯을 씻습니다. 옆지기와 손을 잡고 터덜터덜 싸리재 길을 걸으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 앞에 섭니다. 바로 들어갈까 하다가 동네 구멍가게에 들르기로 합니다. 보리술 두 병과 과자 한 봉지를 삽니다. (4341.1.2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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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입시험 치른 아이들은 책을 읽고 싶을까?
 : 친구들아, 이제 ‘진짜’ 책을 쥐어야지



 〈1〉 시험을 마친 친구들한테


 아침부터 날이 따뜻합니다. 지금은 가을이 아닙니다. 겨울도 아닙니다. 미친날씨 탓에 뒤죽박죽이 된 철없는 아침입니다. 그러면 이 아침은 왜 철없는 아침이 되었을까요. 그냥 날씨가 미쳤기 때문일까요? 흔히 말하는 지구온난화 때문일까요? 지구온난화 때문이라면 지구온난화는 왜 일어날까요?

 지난해까지만 해도, 어린 친구들이 대학교 들어가는 시험을 치르는 날은 모질게 추웠습니다. 열 해쯤 앞서는 더 추웠고, 스무 해쯤 앞서는 훨씬 추웠고, 서른 해나 마흔 해쯤 앞서는 대단히 추웠으리라 봅니다. 하지만 올 11월은 안 춥습니다. 안 추울 뿐 아니라 낮에는 덥기까지 해서 모기와 파리가 잠들지 않습니다.

 친구들은 시멘트로 지은 학교 건물에 아침부터 늦은밤까지 갇혀 지내면서 이런 미친날씨를 느껴 보았나요? 요즈음 햇볕이 어떠한지, 요즈음 하늘은 파란빛 없이 뿌옇기만 한 빛깔인지, 도시고 시골이고 백 미터 앞도 또렷하게 드러나 보이지 않는 먼지띠가 드리웠는지, 겨울이 코앞인데 안 추운지, 여름이 한창인데 비만 퍼붓는지를 살갗으로 느껴 보았나요? 산성비와 산성이 아닌 비가 어떻게 다른지 맞아 본 적이 있나요?

 지금은 열두 시. 친구들은 한창 연필이나 볼펜을 놀리며 문제풀이를 하고 있겠군요. 수학능력시험을 치르지 않는 친구들도 있겠지요. 모든 친구들이 대학교에 갈 수 있지 않은 한편, 꼭 대학교에 가야 하지는 않으니까요. 대학교에 가서 학문을 깊이 갈고닦을 수 있지만, 학문을 갈고닦는 길은 반드시 대학교만이 아닙니다. 대학교를 다니며 앞으로 자기가 다니고 싶은 회사에서 쓰일 만한 실무를 익힐 수 있으나, 대학교를 안 가고 곧바로 ‘고졸’ 또는 ‘중졸’ 또는 ‘학력없음’인 채로 세상을 부대끼며 일손을 하나하나 익힐 수 있습니다.

 오늘 저녁, 친구들이 수학능력시험을 다 치르고 난 뒤(또는 시험을 안 치르고 보낸 뒤), 어떻게 하루를 마감할까 궁금합니다. 시험을 치르고 난 이튿날부터는 어떻게 하루하루를 보낼까 궁금합니다. 여태껏 하고 싶었어도 못한 꿈을 펼치려는지, 여태껏 보고 싶어도 못 본 영화를 보려는지, 여태껏 사귀고 싶었어도 못 만나고 지낸 이성친구(또는 동성친구)를 만나려는지, 여태껏 다니고 싶었어도 먼나들이(여행)를 떠나지 못한 아쉬움을 풀고자 신나게 길을 나서려는지.

 벌써부터 술맛을 들인 친구도 있을 테고, 술하고는 멀리 떨어진 채 지내는 친구도 있겠지요. 어떠하든 좋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아버지나 어머니한테 ‘저, 술 한 잔 사 주셔요’ 하고 말씀드리며 알딸딸한 채로, 마음에만 담고 있던 온갖 이야기를 풀어 놓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내일 하루쯤, 또는 이틀쯤 학교를 빠지고 고향땅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며 여행을 떠나 보면, 시외버스나 기차를 타고 바람을 쐬러 나가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개근상을 반드시 타야 하지는 않으니까요. 오토바이를 타고 싶다면 헬멧은 꼭 쓰셔요. 우리들 푸른 친구들 소중한 목숨은 하나이니까요. 자전거를 타고 우리 나라를 한 바퀴 돈 다음 학교로 돌아가도 괜찮겠지요. 자기 몸뚱이로만, 자기 두 다리로만 페달질을 하면서 홀로 노래도 부르고 중얼거리기도 하면서 옴팡 땀으로 범벅이 된 채로 이 나라 구석구석을 밟으며 우리네 이웃사람들 삶터와 발자취를 마음껏 느껴 보아도 참으로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대학교 입학시험을 치른 해는 1993년입니다. 그때 수학능력시험이 처음 치러졌고, 저는 11월 6일과 한 달쯤 뒤에 다시 한 번 해서, 두 번 치렀습니다. 덕분에 마음을 놓고 느긋하게 쉴 수 없었고, 홀가분하게 나들이를 떠날 수도 없었어요. 다만, 제 살가운 너나들이네 집에 놀러갔더니, 동무 아버님께서 손수 고기를 구우시면서, “너희들도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술을 마셔도 돼!” 하면서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뿅 따서 내리 일곱 잔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한 잔을 마시면, 당신이 구운 고기를 젓가락으로 손수 집어서 입에 넣어 주시고. 이렇게 거푸 일곱 차례.

 이튿날 학교에 갔더니 열두 시 즈음 끝내더군요. 뭐, 이 나라 고등학교는 ‘대학교 들어가는 시험 치르기’가 끝나면, 우리 친구들한테 아무것도 가르쳐 줄 수 없으니까 그렇겠지요. 친구들 다니는 학교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친구들이 초등학교 여섯 해, 중학교 세 해, 그리고 고등학교 세 해, 모두 열두 해 동안 배운 교과서란 무엇입니까? 한낱 대학입학시험 치르는 연장일 뿐 아닌가요. 대입시험을 치르면 찢어버려도 되는 종이뭉치, 대입시험을 치르면 헌책방에 내다 팔아도 되는 종이덩이, 대입시험을 치르면 신발로 마구마구 밟거나 종이비행기 접어서 던져도 되는 종이꾸러미…….

 아무튼, 제 고3 때를 더듬어 보면, 두 번째 수능이 끝난 뒤부터는 아주 자유로워졌고, 학교도 일찍 끝냈기에, 저는 곧바로 제 고향인 인천에 있는 모든 책방을 샅샅이 누비고 다녔습니다. 대한서림, 동인서관, 시민서점, 동아서림, 한겨레문고, ……, 그리고 배다리에 있는 헌책방들, 부평에 있던 헌책방 광장서점 들 …….

 책을 좋아해서라기보다, 여태까지는 ‘진짜 책이라 할 만한 책’은 한 권도 제대로 읽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과서는 책이 아닌데, 교과서 아니면 아무것도 볼 수 없도록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을 담은 책, 우리 이야기를 엮어낸 책, 우리 생각과 뜻과 마음을 이끌어 주거나 북돋워 주는 책, 진짜 책을 만나고 싶어서 새책방이고 헌책방이고 낮 열두 시부터 저녁 여덟아홉 시까지 박혀 지냈습니다. 나중에는 서울에 있는 교보문고와 영풍문고와 종로서적에도 먼 나들이를 가 보았습니다. 그런 데는 얼마나 책이 많은가 싶어서.


 〈2〉 교과서는 가짜 책


 우리 푸른 친구들한테 여덟 가지 책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이 여덟 가지 책은 제 나름대로 참 괜찮다고 느낀 책들인데, 친구들한테도 괜찮다고 느껴질는지, 그저 그렇네 하고 다가갈는지, 지루하거나 따분하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습니다. 진짜 책, 친구들 마음을 움직이거나 울리는 책은, 어찌 되었든 친구들 두 손으로 고르거나 찾아내야 합니다. 저는 제 두 손으로 이 여덟 가지 책을 찾아냈고, 읽어냈고, 가슴으로 녹여냈습니다.

 아무쪼록, 가벼워진 몸과 마음을 채울 꺼리는 친구들 스스로 찾아보시면 좋겠어요. 그 꺼리는 책이 될 수 있고, 자전거가 될 수 있으며, 살가운 벗이 될 수 있습니다. 사진기가, 붓이, 인터넷이, 술이, 오토바이가, 또는 호미나 낫이 될 수 있겠지요. 종이접기가, 장구와 북이, 피리와 기타가 될 수 있고요.


 (ㄱ) 두 친구 이야기
 : 안케 드브리스 씀, 박정화 옮김 / 양철북, 2005.11.18, 8500원



.. “엄마가?” “놀랄 줄 알았다. 그 여자는 대낮에 별이 보일 정도로 호되게 자식을 팼다. 그 애가 지르는 비명소리가 가끔 여기까지 들렸지.” “그…… 그런데…….” 미하엘은 말을 더듬었다. “왜 아무 일도 하지 않으셨어요?” “괜히 남의 일에 간섭하는 법이 아니란다.” 할아버지가 중얼거렸다. “저 양반 때문에 못했다! 그 불쌍한 꼬마를 도와야 한다고 말해도 우리 일이 아니라고 영감이 한사코 말리잖아!” 할머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실제로 우리 일이 아니잖아. 이 세상은 골칫거리로 가득하다고. 그걸 다 당신이 해결할 수는 없잖아. 아무도 당신더러 참견하라고 부탁하지도 않았고.” 미하엘은 그들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유디트 등의 멍과 부은 자리만 생각났다. 엄마가 그랬다니! 왜 유디트는 나한테 숨겼을까? 거짓말까지 하면서. 난 유디트의 남자친구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말인가? ..  〈257쪽〉


 (ㄴ)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 더글러스 러미스 씀, 김종철ㆍ이반 옮김 / 녹색평론사, 2002.12.10, 7000원



.. 매년 몇 십만의 사람들이 살인훈련을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단히 큰 살인학교가 있어서, 미국에서 몇 백만 명의―주로 남자들― 사람들이 그 살인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그 살인학교라는 것은 물론 군대입니다. 나도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잘 알지만, 군대의 훈련 중에서 이런저런 기술도 가르치지만, 그 이외 군대의 훈련에는 큰 목표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사람을 죽이지 못합니다. 저항이 있어서, 그리 간단히는 되지 않습니다. 적이라고 해도 실제로 인간의 몸을 겨냥해서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군대에서는 그 저항을 없애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죽이지 못하는 인간을 죽이는 인간으로 훈련시킵니다 ..  〈42쪽〉


 (ㄷ) 보통 사람들을 위한 제국 가이드
 : 아룬다티 로이 씀, 정병선 옮김 / 시울, 2005.9.29, 8500원



.. 일단 시민사회가 자유를 넘겨주고 나면 투쟁 없이는 되찾을 수가 없습니다. 자유를 회복하는 것보다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 훨씬 더 쉽습니다. 우리의 자유가 비록 변변치 못하다고 할지라도 정부가 결코 하사한 게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게 중요합니다. 자유를 얻어낸 것은 우리의 투쟁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자유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때때로 자유를 시험해 보지 않는다면 자유는 위축되고 맙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자유를 수호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유를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더욱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초라하고 빈약한 것만 남게 될 것입니다 ..  〈24∼25쪽〉


 (ㄹ) 백성백작―농부는 백 가지 일을 하고 백 가지 작물을 기른다
 : 후루노 다카오 씀, 홍순명 옮김 / 그물코, 2006.7.22, 8000원



.. 국산 밀이라고 상표가 붙은 밀가루가 이따금 팔리지만, 내가 알기로는 화학비료, 제초제, 농약을 일체 사용하지 않는 밀가루는 거의 없는 것 같다. 퇴비만으로 키운 밀가루에는 미묘한 맛의 차이가 있다. 부추를 썰어 넣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쳐서 굽기만 해도 정말 맛이 있다. 조미료를 넣을 필요가 전혀 없다. 원래 밀에는 밀의 맛이 있고, 쌀에는 쌀의 맛이 있고, 무에는 무의 맛이 있다. 그 맛을 내는 농법과 요리법, 즉 자연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수입 농산물이 아무리 있어도, 사람은 진정한 풍요로움을 실감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의 은혜를 실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유기농업의 가장 좋은 점은, 가족들이 함께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78∼79쪽, 165쪽〉


 (ㅁ) 블루백
 : 팀 윈튼 씀, 이동욱 옮김 / 눌와, 2000.2.25, 7000원



.. 아벨은 어머니의 편지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읽고는, 자기가 그곳에서 어머니를 돕지 못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밤이면 뜬눈으로 어머니와 롱보트 만을 생각했다. 사람들이 아무리 많은 돈을 내놓든 어머니는 꺾이지 않는다는 것을 아벨은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한 그루 나무처럼 완강하고 또 굳건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얼마나 어머니를 지치게 하고 어머니의 시간을 허비하며 어머니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을까. 사람들은 그 땅이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라는 것을 알 리 없었다. 그들은 롱보트 만이 아벨의 어머니에게는 한 생애이자 친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 땅이 어머니에게 남편 같은 존재였다는 것도 역시 몰랐을 것이다. 날마다 그 박하나무 아래서 어머니는 아벨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서 있곤 했다. 사람이 어떻게 하면 해가 지고 달이 가도록 변함없이 그럴 수 있는지 아벨은 당혹해 하곤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아벨은 그 모든 것들―바다, 관목숲, 집,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추억―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강한지 알게 되었다. 어머니를 외로움으로부터 지켜준 것은, 그리하여 어머니를 굳건하게 만들어 준 것은 바로 그 사랑이었다. 그것은 어머니에게 양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아벨은 그 어머니의 사랑 덕택에, 줄곧 숨죽이는 생활을 해야 했던 도회지에서의 무미건조한 학교 생활을 견뎌내고 마침내 얼굴에 바다의 푸르름을 적시게 될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  〈100∼101쪽〉


 (ㅂ) 희망은 있다
 : 페트라 켈리 씀, 이수영 옮김 / 달팽이, 2004.11.15, 8000원



.. 유럽평화운동을 하는 일원으로서 서유럽에 사는 우리는 미국의 미사일 배치를 막기 위해 시민불복종과 적극적인 비폭력운동을 통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합법성과 정당성의 차이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정부가 저지른 도덕적으로 잘못된 결정에 대한 마지막 대응수단으로 우리는 불법이라 하더라도 정당한 행동을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지속해 나가고 있습니다. 법적 권리와 도덕적 권리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불복종할 시민의 의무(!)가 있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토 미사일 배치에 반대하는 비폭력 시민저항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이러한 무기들이 배치되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새로운 상황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전쟁으로 이어질 확률이 훨씬 높아지고, 또 미래 세대의 생존기회가 줄어들 것이 뻔합니다. 시민불복종운동이 법을 어기는 행위라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소련이 쳐들어오면 어떻게 하지?”라는 질문뿐 아니라, “미국이 이곳에 머물면 어떻게 하지?”라는 질문, 점차 급박해지는 이 질문에도 비폭력행동으로 해답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전 세계에 주둔하고 있는 ‘모든’ 외국군대를 반대합니다. 소련은 아프카니스탄에서 떠날 것을 요구하며, 미국은 그레나다에서 떠날 것을 요구합니다 ..  〈69쪽〉


 (ㅅ) 깜둥바가지 아줌마
 : 권정생 씀 / 우리교육, 1998.11.20, 6000원


.. “나도 뚝배기 마음을 잘 알고 있어. 그리고 사기 접시랑 오목탕끼들이 우리를 무척 업신여기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단다.” “그러면서, 그러면서 왜 그 애들을 미워하지 않는 거예요? 꾸짖지 않는 거예요?” 뚝배기는 너무 서러워 목이 꺽꺽 막히었습니다. 깜둥바가지는 여전히 상냥스레 타일렀습니다.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나쁜 짓 하는 것을 꾸짖는 게 무슨 잘못이에요?” “그게 아니란다. 사기 접시랑 오목탕끼는 아직 어려서 그런 거야. 만약 내가 무섭게 그 애들을 꾸짖고 욕하면 되레 우리를 더 미워할 게 아니니? 전보다 더 나쁜 짓을 하면서 대들는지도 모를 거야. 그래, 이 좁은 부엌 안에서 매일 싸움만 하고 서로 미워한다면 얼마나 불안스럽겠니?” 깜둥바가지는 잠시 말을 그쳤습니다. 된장 뚝배기는 가만히 귀담아듣고 있습니다. “…… 그러니까 어느 한쪽이 참아야 하지 않겠니? 쬐그만 할 때는 누구라도 다 장난꾸러기인 거야. 그걸 탓하지 말고 사랑해 주면 언젠가는 스스로 깨닫게 된단다. 그러니까 그냥 꾹 참고 지내면 앞으로는 사기 접시도, 오목탕끼도, 수저들도 모두 뉘우치고 우리랑 친할 거야.” 된장 뚝배기는 어느새 눈물을 말끔 씻고 있었습니다 ..  〈40∼41쪽〉


 (ㅇ) 우리 말 살려쓰기 (셋)
 : 이오덕 씀 / 아리랑나라, 2005.8.25, 15000원



.. 초등학교란 이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만하다. 보통학교, 소학교, 어린이학교, 그밖에도 몇 가지 의견이 나왔던 모양인데, 왜 온 나라 사람들의 교육을 하게 되는 학교 이름을 붙이는데 일반 백성들의 생각을 물어 보지 않고, 행정관청에서 마음대로 붙이나? 몇 천 명인가를 상대로 알아보기는 한 모양인데, 그래서는 안 된다. 내 눈에는 어떤 직위에 있는 사람이 어떤 이름을 바라나 하는 것이 훤하다. 그러니 이런 여론조사는 조사 대상을 어떤 사람으로 하나 하는 데 따라서 얼마든지 바라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어린이학교’가 가장 좋다. 그러나 어린이학교로 되리라고는 바랄 수가 없었기에 내 생각을 한 번도 내놓지 않았다. 어린이학교가 되려면 아이들 생각을 들어 봐야 하는데, 일반 교사보다 교감, 교장의 생각을 더 잘 듣는 지금의 행정당국이 아이들 생각에 귀를 기울여 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그 정도로 될 줄 알았지. 우리가 하는 정도가 그저 이런 정도밖에 안 되니까. 초등학교가 되더라도 좋으니 부디 교육이나 좀 달라졌으면, 하고 바랄밖에 없다. 국민학교, 아, 그 몸소리나는 국민, 국민, 국민총동원, 총후국민, 비국민, 황국민, 국민정신작흥주간, 대일본국민체조, 국민독본, 국민복, …… 이제 그 왜정 때의 그 지긋지긋한 국민이란 말에서 벗어나게 되려나 ..  〈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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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다시 쓰겠습니다


 그제, 강릉에 사는 띠동갑 후배가 인천으로 찾아왔습니다. 서울에 있는 ㅁ대안학교에서 만난 후배입니다. 저를 보고 꼬박꼬박 ‘최종규 선생님’이라고 불러 주는 젊은 친구는 저를 자기 길동무로 생각해 줍니다. 스물한 살 젊은 나날을 보내며 부대끼는 온갖 걱정거리와 마음앓이를 털어놓고 자기 갈 길을 스스로 헤아리곤 합니다. 새벽 네 시가 넘도록 젊은 친구와 옆지기하고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젊은 친구가 저를 처음 보았을 때 이야기를 듣습니다. “처음 받은 느낌으로는, 저 사람 콧대가 높을 것 같다”였다고 합니다.

 옆지기도 웃고 저도 웃었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할수록, 거울을 안 보고 사는 제 얼굴이 이웃사람들한테 어떻게 비치고 있는가를 잘 안 듣고 살았구나 싶은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살며 거울을 꼭 봐야 하지는 않고 이웃사람들이 허튼소리를 할 때에는 한귀로 흘리며 마음을 고요히 다스릴 수 있으면 좋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보지 못한 세상 모습을 들려준다든지, 제가 미처 느끼지 못하고 엇나가고 있는 걸음걸이를 알려준다든지, 제가 느끼지 못한 사람들 아픔과 눈물과 웃음과 즐거움을 보여준다든지, 제가 알지 못하는 슬기를 깨우쳐 줄 때에는, 어느 자리 어느 때 누구 말이라 해도 고개숙여 받아들여야 한다고 느낍니다.

 강릉 사는 젊은 친구한테 미처 묻지 못했는데, 저를 처음 본 2005년 여름 그날 콧대 높게 느껴지던 제 모습이, 2007년 여름 이날도 마찬가지일까요.

 어제 잠깐 서울 나들이를 했습니다. 서울로 사람 만나러 떠나는 젊은 친구가 혼자서 전철간에서 심심할까 싶어서 함께 갔습니다. 저녁나절 집으로 돌아오기 앞서 들른 헌책방에서 《텍스트》라는 ‘북매거진’ 35호를 보았습니다. 저는 이 잡지를 정기구독하고 있는데 거의 한 해 가까이 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나온 35호를 보니 지난 34호를 낸 뒤로 사람품이며 돈이며 다른 여러 가지며 참 안 좋아서 한 호도 못 내고 있었더군요. 다시 펴내는 말을 이렇게 적습니다.


.. 이렇게, 다시, 결국, 시작합니다. 늘, 끝의, 시작입니다. 《텍스트》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많다는 것 잘 압니다. 어떻게 사과와 용서를 빌어도 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솔직히 고백컨대 그 불만과 불신을 온전하게 해소시키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입니다. 다만 텍스트에 대한, 버리지 못한 욕망이 다시금 《텍스트》를 시작케 합니다. 그 욕망에 기대는 것만이 지금 할 수 있는 전부일 따름입니다. 부디 그 텍스트의 욕망 안에 모두가 행복해지는 오솔길이 놓여 있기를 희망합니다 ..


 그동안 〈오마이뉴스〉에 글을 안 쓰면서, 제가 해 오던 수많은 글쓰기(우리 말 / 책 / 헌책방 / 자전거)를 많이 줄이거나 꺾거나 묻어 놓았습니다. 자원봉사로 몇 군데 자그마한 매체에 글을 보내기는 하지만, 정작 제가 세상에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는 털어놓고 있지 못했으며, 아니 안 했으며, 숨죽이며 또아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올해 4월 15일, 네 해 조금 못 되는 세월을 일하면서 보냈던 충주를 떠나 인천으로 왔습니다. 이오덕 선생님 원고 갈무리는 지난해에 다른 분한테 넘겨 드린 뒤 다른 일거리 없이 자전거만 타고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녔습니다. 덕분에 자전거로 못 가는 곳이 없음을 느꼈고, 오른무릎과 오른팔꿈치는 맛이 가서 요 몇 달 동안 자전거를 탈 수 없을 만큼 몸이 무너졌습니다.

 인천으로 오면서 여태껏 읽고 추슬러 온 책을 갈무리해서 ‘지역 전문 도서관’을 열었습니다. 제가 읽은 책은 제 마음에 담겼다가 제 몸으로 드러나서 사람들한테 펼쳐질 뿐이라고 생각하기에, 제가 읽은 책을 이웃사람한테 선물로 드리는 일도 좋지만, 차곡차곡 모아 놓은 뒤 한꺼번에 드러내어 누구나 찾아와서 읽을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 한결 좋겠구나 깨달으면서 일을 벌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부대끼며 마음에 담은 이야기를 글 한 쪼가리로 써낸다면, 이런 글은 종이에 옮겨지는 그때부터는 ‘제 것’이 아닐 테지요. 어느 누구 것도 아닌 ‘글’일 뿐이며, 이 글을 좋게 받아들여 주는 사람한테는 좋은 이야기로, 얄궂게 받아들이는 분한테는 비판과 칼질을 해야 하는 못난 이야기로 다가가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글을 읽으며 좋음을 배우고, 나쁜 글을 읽으며 모자람과 어리숙함이 무엇인지를 느껴서, 저마다 자기가 선 자리에서 더 나은 길로 거듭날 수 있다고 봅니다.

 요즈음 인천은, ㅇ시장이 벌이는 밑도 끝도 없는 재개발 공사계획 때문에 가난하지만 수수하게 살던 골목집 사람들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인천사람이지만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살다가 충주로 옮겨 지내는 동안 살갗으로 못 느끼던 일이었습니다. 지역신문에서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중앙신문에서는 ‘거긴 너네들 지역 일이잖니’ 하고 한수 접고 들어가는 일임을 뼛속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운명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자전거로 전국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느끼기로, 골목집 문화가 남은 마지막 곳은 인천이었습니다. 고향이라서가 아니라, 도시 삶터에서 이웃집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조용하고 조촐하게 살 수 있는 한 곳이라면 인천밖에 없다고 느꼈습니다. 돌아가신 김기찬 선생이 온삶을 바쳐 찍은 《골목 안 풍경》은 이제 중림동에 없습니다. 사직동에 없습니다. 공덕동에 없습니다. 남산에 없습니다. 경교장이 있는 서울 종로구 평동도 ‘이명박 뉴타운’으로 지정된 지 오래이고, 〈오마이뉴스〉 김대홍 기자가 사는 홍제동도 개미마을과 전철역 둘레를 중심으로 높직높직 아파트를 새로 짓는 계획이 차근차근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파트값이 높고낮음만 다를 뿐, 강아랫마을과 강웃마을과 강옆마을 삶터가 무엇이 다를까요.

 인천은 2014년에 아시아경기를 치르게 되면서, 2013년까지 모든 구에 걸쳐서 모든 서민들 집을 허물고, 이 자리에 아파트와 쇼핑센터와 대형할인마트를 올려세우는 계획을 ㅇ시장 지시와 명령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전국 어디를 가나 아파트 없는 마을이 없고, 이제는 이 나라 사람들은 절반 넘게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멍가게나 옛 저잣거리에서 장보기를 하는 사람보다도 대형할인마트에서 장보기를 하는 사람이 훨씬 많지 않을까요. 두 다리로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고 장보기를 하기보다 덩치 큰 suv라는 자가용을 몰고 장보기를 하는 분이 더 많지 않을까요.

 이런 세상에서 글쓰기란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아찔아찔 골이 아파서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이런 세상에서 혼자 깨끗한 척, 잘난 척, 모든 것을 아는 척 콧대를 세우고 우쭐거리는 꼬락서니가 얼마나 우스운가 돌아보니 얼굴이 화끈해집니다. 참말로 글은 왜 썼고, 책은 왜 읽었고, 그동안 〈오마이뉴스〉에 그 어리숙하고 모자랐던 글과 사진은 왜 올렸을까요.

 어느 누구도 제대로 알아보아 주지 않는 헌책방 이야기를 사람들한테 알리고픈 마음이 있었지만, 헌책방 이야기를 알린다기보다는 ‘헌책방처럼 따돌림받고 푸대접받는 이웃사람들 삶과 삶터도 함께 느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올바르게 쓰지 않는 우리 말과 글을 살가이 돌아보고 느끼면서 말하고 글써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지만, 우리 말과 글을 올바르게 쓰는 일보다는 ‘말과 글을 깨끗하고 알뜰하고 아름답게 추스르는 동안 우리 마음과 생각도 깨끗하고 알뜰하고 아름답게 추스를 수 있을 테고, 이러는 동안 우리가 저마다 서 있는 곳에서 좀더 힘내고 기운차게 어깨를 겯고 일하고 놀고 싸우고 노래하고 술과 밥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신문과 방송과 잡지에서 알아보아 주지 않는 조그마한 출판사 알맹이 탄탄한 책도 좀 읽으면서 세상 공부를 해야 우리 사회 밑바탕이 차츰차츰 탄탄해지지 않겠느냐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묻혀 있는 책 이야기를 들려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 삶과 경험을 톺아보면서 내 삶과 경험을 되새기고, 내 사는 이야기를 이웃사람과 나누며 우리한테 정작 중요한 일을 깨닫고, 이웃사람들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으면서 참말 우리가 깨닫고 맞서고 함께해야 할 일거리 싸움거리 걱정거리 이야기거리가 무엇인가 스스로 찾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예전에 쓴 글을 하나하나 다시 읽어 보면 참 부끄럽습니다. 저 어설픈 생각찌끄레기를 어쩜 저렇게 낯빛 하나 안 바꾸고 대단한 척 우쭐댈 수 있었나 싶어 예전 글은 다 불살랐으면 좋겠구나 싶은 마음뿐입니다. 하지만 지금 쓰는 글도 앞으로 몇 해가 지난 뒤 다시 읽었을 때 똑같이 느끼겠지요. 하루하루 나이를 먹으며 모자람과 어설픔만 깨닫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 모자람과 어설픔을 느끼기 때문에 날마다 더 애쓸 수 있고, 날마다 더 주먹을 불끈 쥘 수 있으며, 날마다 더 눈에 불을 켤 수 있을까요.

 나한테 깃든 모자람을 느낀다면, 내 이웃한테서 느껴지는 모자람을 더 따뜻한 눈길로 굽어살피고, 나한테 깃든 어설픔을 느낀다면, 내 이웃한테서 느껴지는 어설픔을 더 포근한 손길로 어루만져야 하는구나 깨닫습니다. 남이 나한테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다가서야지요.

 내 잘난 이야기를 떠드는 일이 목적이었다면 글쓰기를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내 이웃들 복닥이는 온갖 삶을 바라보는 눈길이 있고, 느끼는 가슴이 있고, 곰삭이는 머리가 있으며, 함께하려는 손발이 있다면, 그때에라야 비로소 볼펜을 들든 자판을 두들기든 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제가 썼던 〈오마이뉴스〉 기사는 ‘높지도 않은 콧대를 높이 세우면서 거들먹거린’ 이야기였구나 싶습니다. 높여야 할 것은 콧대가 아닌 붓대일지 모르나, 붓대조차도 높일 까닭이 없으며, 높여야 할 것이 없는 만큼 낮춰야 할 것도 없고, 있는 그대로 손을 맞잡고 저마다 자기 길을 다부지게 걸어가야지 싶습니다. 핑계만 가득한 생각쪼가리 늘어놓습니다. (4340.8.3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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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이 보는 ‘교과서 참고자료’를 가리켜 ‘학습지’라고 합니다. ‘학습(學習)’은 ‘배울 학 + 익힐 습’을 쓰는 한자말입니다. 그러니까, ‘학습지’란, 쉬운 우리 말로 풀면 “배우는 책”, “배움책”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사서 본다고 하는 그 학습지들은 우리들한테 얼마나 “배움을 선사하는 책, 배우는 책”이 되고 있을까요.

 시험 한 번 치고 나면 버리는 책, 시험점수 높이는 데에만 쓸모가 있는 책, 학교를 마치면 종이뭉치밖에 안 되는 책이 아닐는지요. 학년갈이나 학기갈이를 할 때마다 집밖에 통째로 내놓거나 헌책방에 팔러 가는 종이뭉치는 아닐는지요. 새것으로 온돈 주고 사기 아깝고 헌책방에서 반값쯤에 사도 아깝다고 느끼는 책은 아닐는지요. 참으로 우리들이 “배우는 책”이라 할 때에는, 그 책을 처음 살 때만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을 하고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죽는 날까지 늘 곁에 놓고 틈틈이 펼치고 돌아보며 되새길 만한 책이어야 좋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우리들은 진짜 “배우는 책”은 무엇인지 모르는 채, 가짜 “배우는 책”에 마음이고 몸이고 푹 길들고 찌들어, 우리 세상도 우리 자신도 제대로 못 살피면서 어영부영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학습지’를 사서 무언가 배우거나 가르친다고 할 때에 참말로 ‘무엇’을 배우거나 가르칠까요. 우리가 배우는 것은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요. 우리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치려 하나요. 누구한테 쓰는 배움이나 가르침일까요. 어느 때에 쓸까요. 짤막짤막한 지식이나 상식을 잠깐 동안 머리에 담고 시험을 치를 뿐이라면, 이런 앎은 1회용품이지 싶은데. 우리 삶을 가꾸는 일이 아니라, 시간때우기이지 싶은데. 우리들 재주와 슬기는 시험을 치러서 얻는 점수로 잴 수 없잖아요. 요리대회에서 1등을 받은 사람 밥이 가장 맛있고, 예선에 떨어진 사람이 짓는 밥은 가장 맛없을까요. 요리대회에 나가지 않더라도 우리가 사랑을 담아 짓는 밥이 참으로 맛있지 않던가요. 100만 원짜리 고급스런 상차림이 아니더라도, 고작 3000원어치 찬거리로 나물 몇 가지와 김치 몇 조각 올린 상차림이라도 신나고 맛나게 밥그릇 비울 수 있지 않나요.

 사랑과 땀과 믿음을 고이 담은 상차림이라면, 적은 돈으로 차렸든 반찬 몇 가지 못 올렸던, 한결 아름답거나 살갑다고 느낍니다. 사랑과 땀과 믿음을 고이 담지 않았다면, 아무리 많은 돈을 바치고 겉보기로는 맛깔스러울지 몰라도, 조금도 안 아름답고 안 살갑다고 느낍니다. 책을 볼 때에도 똑같습니다. 사랑과 땀과 믿음을 고이 담은 책 하나가 제 마음을 살찌우고 아름답게 돌본다고 느낍니다. 이런 책은 껍데기나 엮음새가 좀 어설프더라도, 책이름을 퍽 못 지었다는 생각이 들어도, 낯선 글쓴이가 쓰고 낯선 출판사에서 펴냈다고 해도, 책을 펼쳐 읽는 내내 입가에 웃음이 번집니다. 슬픈 줄거리에 눈물이 똑똑 떨어집니다. 하지만 사랑과 땀과 믿음을 고이 안 담은 책은, 아무리 번들번들 예쁘장하게 보이더라도 손이 가지 않습니다. 아무리 우리 삶을 밝힌다고 하는 훌륭한 줄거리를 담았다고 내세우더라도 웃음이나 눈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아무리 이름난 글쟁이가 글쓴이로 이름을 올리고, 아무리 잘 알려진 출판사에서 펴냈으며, 언론사 기자들이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어도 들춰보고 싶지 않습니다.

 가만히 보면, 옷 한 벌을 입든, 밥 한 그릇을 비우든, 몸뚱이 하나 뉘일 집을 찾든, 언제나 비슷하겠구나 싶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몸과 눈에 맞추며 우리 삶을 살찌울 사랑과 땀과 믿음을 살뜰히 찾는다면, 이런 옷과 밥과 집과 책을 스스로 찾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우리들이 사랑과 땀과 믿음을 찾기보다는 겉치레와 겉꾸밈에 매여 다른 사람들 눈치와 눈길에 발목잡힌다면, 정작 자기 삶을 살찌우는 책은 거들떠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껴안지 못하며 베스트셀러 목록만 더듬지 않을까요. 우리 마음과 머리와 생각에 맞추는 책읽기가 아니라, 세상사람들 지식수준이나 상식퀴즈 따위에 얽매이는 책읽기로 흘러 버리지 않을까요.

 우리한테 즐거울 옷밥집이어야 좋을 텐데, 우리한테 즐거운 책 한 권이어야 반가울 텐데, 우리 몸에 옷밥집을 맞추지 않고, 옷밥집에 우리 몸을 맞춘다고 할까요. 우리 삶에 맞추는 책, 우리 꿈에 맞추는 책, 우리 마음에 맞추는 책이어야 좋을 텐데, 책에 따라 우리 삶과 꿈과 마음을 맞추지는 않을까요. 나아가, 자기 삶이 무엇이고 꿈은 무엇이고 마음은 어떠한지를 제대로 못 살피며 엉뚱한 곳에서 헤매고 있지는 않을까요. 잘팔린다는, 많이 읽힌다는, 남들이 좋다는 책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좋아할 만한 책, 자기 생각을 가다듬을 책, 자기 꿈을 다독이며 살아가도록 이끄는 책은 놓치고 있지 않을까요.

 ‘맞춤책’이라고 해서 ‘어떠어떠할 때 읽는 책’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가지 책을 두루 묶어서 소개하는 일을 흔히 볼 수 있으며, ‘자기계발서’라고 해서 ‘자기한테 모자란 무엇을 느끼며 어찌어찌 자기 몸가짐과 생각을 추스른다는 책’이 자꾸자꾸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런 책들은 얼마나 ‘다 다른 어버이가 낳아서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모습으로 자라난 뒤, 다 다른 생각으로 다 다른 밥을 먹으며 다 다른 꿈을 꾸며 살아가는 우리들’한테 알맞춤한 책일까요. ‘다 다른 우리들을 얼마나 다 다른 모습으로’ 가꾸며 키우는 자기계발 책일까요. 책에 나온 줄거리에 우리를 맞추며 자기를 돌아보고 가꿀 일이 아니라, 자기 삶이 무엇인지를 속속들이 살피고 깨닫는 가운데 자기가 미처 못 느낀 자기 모습과 우리 둘레 모습을 헤아릴 책을 찾아야 앞뒤가 맞지 않을까요.

 학습지라는 것은 얼마나 배움직한 책일까 함께 생각해 봐요. 아니, 학습지를 책이라 할 수 있을까요. 학습지는 우리가 ‘책하고 멀어지게 하는 걸림돌’은 아닐까요. 학습지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학습지를 책상맡에 많이 채우면 많이 채울수록, 정작 우리가 알아야 할 참 지식하고는 멀어지고, 우리가 느껴야 할 참 세상하고는 동떨어지며, 우리가 보아야 할 참 내 모습은 잊혀져 버리지 않나요. 시험점수에 맞추는 내 머리나 마음이 아니라, 내 삶에 맞추는 내 머리나 마음이어야지 싶은데. 시험점수야 어찌 되든, 내 갈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면서, 참다운 나를 찾고 가꿀 수 있도록 마음을 쓰고 책도 읽고 사람도 만나고 일도 하고 놀이도 즐겨야 신나고 재미있는 우리 삶으로 꾸릴 수 있지 싶은데. 우리는 초중고등학교를 거치고 대학교까지 다니고 대학원이나 유학이라는 기나긴 배움을 거치면서도 정작 ‘나를 가꾸는 배움’, ‘나를 가꾼 뒤 내가 살아갈 이 세상에서 내 꿈을 어떻게 펼치면 좋은가 하는 배움’은 못 느끼거나 안 느끼면서 살지는 않을까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시험점수에 매였다가, 나중에는 차츰 길들고 물들어 아무 생각 없이 학습지에 따라가거나 매이며 자기 모습, 줏대, 뿌리, 줄거리, 바탕을 죄 잃고 있지 싶어요. (4340.2.2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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