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지 않은 시집을 읽으면

 


  새벽에 일어나서 시집 두 권을 읽는다. 문학상 여럿 받고 널리 사랑받는다는 이들이 내놓은 시집 두 권이다. 한 권은 뒷간에서 읽다가 아침햇살 받으며 마당에 선 채 다 읽는다. 다른 한 권은 마당 한쪽에 선 채 아침햇살이 차츰 따스해지는 기운을 느끼며 다 읽는다. 이 시집 두 권을 내놓은 두 사람은 시집 하나를 이루려고 시를 몇 해에 걸쳐서 썼을까. 어떠한 삶을 어떻게 누리면서 이 같은 싯말을 빚을 수 있었을까.


  시집 두 권을 덮으며 생각한다. 참 즐겁지 않은 시집이고, 참 즐겁지 않은 시집을 읽은 나머지 내 마음밭에 즐겁지 못한 싹이 트는구나 싶다. 즐겁지 못한 노래를 들으면 즐겁지 못한 생각이 자꾸 스멀거리듯, 즐겁지 못한 싯말을 훑으며 내 마음에도 즐겁지 못한 이야기가 끝없이 오물거리는구나 싶다.


  온누리에 책이 많고, 온누리에 사람이 많으며, 온누리에 이야기가 많다. 눈을 감아 집을 잊고 시름을 잊으며 오늘 하루 재미나던 모든 이야기를 잊으며 잠이 들 때에는 새로운 꿈터에서 새로운 삶을 찾으며 새로운 사랑을 꽃피운다. 재미나던 일을 되새기며 잠이 들면 재미나게 꿈누리를 누비고, 따분하거나 고단하다 싶은 일을 돌이키며 잠이 들면 따분하거나 고단하다 싶도록 꿈누리에서 허우적거린다.


  그렇다. 나는 나부터 내가 쓰는 글이 내가 늘 돌아보더라도 즐겁게 웃으며 맑게 노래할 만한 글이 되기를 바란다. 내 삶은 즐겁게 웃으며 누리고 싶은 하루이니까, 즐겁게 웃으며 누리고 싶을 만한 싯말이 영글지 않은 시집을 펼치면서 낯에 빙긋 웃음을 띠기는 어렵구나 싶다. 아름다운 꿈을 노래하는 시가 아니어도 틀림없이 시가 맞다. 사랑스러운 꿈을 아끼는 시가 아니어도 어김없이 시가 맞다. 전쟁도 사람이 빚는 일이고, 미움과 다툼도 사람이 빚는 일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사랑스레 하는 일’이라 할 수 있을까?


  모든 시집이 ‘사랑스레 하는 일’이 되기는 바랄 수 없으리라. 그러나, 어느 시집은 ‘사랑스레 하는 일’이 되리라 느낀다. 어느 책은 ‘사랑스레 하는 일’이 될 테고, 어느 사람 눈길은 ‘사랑스레 하는 일’로 따스하겠지. 어느 모로 보면, 즐겁지 않다 싶은 시집을 읽으면서도, 나는 즐겁게 누리고 싶은 삶이야 하고 생각하며 즐거이 읽을 수 있겠지. 내 마음 어느 한켠에서 ‘오늘 어쩐지 시무룩하거나 슬프거나 고단한 앙금이 있네’ 하고 느끼기에 시집 두 권을 읽으면서 해맑으면서 예쁜 마음이 못 되었구나 싶다. (4345.8.3.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래 기다린 만화책

 


  오래 기다린 만화책을 기쁘게 장만해서 읽는다. 그런데 첫머리부터 어딘가 께름하다. 이야기 흐름이 첫머리부터 몹시 늘어진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고단한 몸을 잠자리에 눕히고는 끝까지 읽는다. 사이사이 아이 오줌바지를 갈아입힌다. 밥을 차려서 식구들하고 먹는다. 빨래를 한다. 손에 다 마르고 겨우 한숨을 돌릴 만한 즈음 마저 읽는다. 그렇지만 매우 따분하다. 왜 이렇게 느낄까?


  그래. 내가 좋아하는 마음으로 읽으려 하던 만화책은 ‘작은 시골마을에서 작은 아이들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꽃피우는 사랑’을 들려주는 이야기책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이 만화책이 넷째 권에 이르자 그만 ‘작은 마을’과 ‘작은 아이들’과 ‘작은 사랑’을 몽땅 놓치거나 잃는다.


  오래 기다리던 만화책이지만 애써 읽으면서도 즐거운 생각이 샘솟지 않는다. 앞엣권 세 권은 더 장만해서 내 좋은 이웃한테 선물하기도 했는데, 넷째 권을 읽고 나서는 이제까지 이어온 세 권 이야기는 무언가 싶어 쓸쓸하다.


  작은 마을은 참 작아요. 작은 아이들은 참 작아요. 작은 사랑은 참 작아요. 그런데, 작은 마을이라 하지만, 이곳도 마을이에요. 작은 아이들이라 하지만, 이들도 아이요 사람이며 목숨이에요. 작은 사랑이라 하지만, 바로 사랑이에요. 부디 놓거나 놓치지 말아 주셔요. 부디 예쁘게 아끼고 곱게 좋아해 주셔요. (4345.7.15.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보고 싶어, 〈미래소년 코난〉 원작소설

 


  오래도록 살까 말까 망설이던 〈미래소년 코난〉 디브이디 일곱 장을 장만했다. 오늘 드디어 첫째 아이하고 이 영화를 본다. 영화를 보기 앞서 디브이디에 적힌 풀이글을 읽는데,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쓴 글을 바탕으로 빚은 만화영화가 아닌 줄 처음으로 깨닫는다. 원작은 ‘알렉산더 힐 케이(Alexander Hill Key)’라는 미국사람이 쓴 《The Incredible Tide》라 하고, 1970년에 나온 청소년 장편 과학소설이라 하는데, 일본에는 “殘された人びと”라는 이름으로 옮겨졌다 한다. “남겨진 사람들”이나 “살아남은 사람들”이라는 이름이라는데, 아직 한국에는 안 옮겨진 작품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모르리라. 한국에도 어느 날 어떤 이름으로 조용히 옮겨졌다가 조용히 사라졌을는지. 그나저나, 이 원작소설을 한국에서 장만할 수 있을까 알아보니, 한국에 있는 책방에서는 장만할 길이 없는 듯하고, 아마존이라 하는 데에 알아보니, 자그마치 144달러. 게다가 일본 번역책 또한 장만할 길이 까마득한 듯싶다. 참말, 〈미래소년 코난〉 원작소설은 읽을 길이 없을까. 참말, 〈미래소년 코난〉 원작소설은 앞으로 한국말로 옮겨질 일이 없을까.


  보고 싶다. 이 원작소설을 보고 싶고, 우리 아이들이 이 원작소설을 한국말로 읽을 수 있는 날을 맞이하기를 빈다. 뜻있는 출판사에서 이 청소년문학을 한국말로 옮겨 펴내 주기를 빈다. (4345.6.9.흙.ㅎㄲㅅㄱ)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첫눈내린밤 2014-12-03 16:50   좋아요 0 | URL
<미래소년 코난> 원작소설(영어판)은 웹에서 PDF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아래 주소입니다.
http://hinomaru.megane.it/cartoni/Conan/Tide.pdf
또는 http://www.highharbor.net/en/divers.html

함께살기님 말씀처럼 어디선가 우리말로 번역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다시 사는 책


 만화책 《여자의 식탁》 7권째를 사서 읽었다. 7권을 펼쳐 읽다가 ‘6권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헷갈려 그만 6권은 나중에 사기로 했는데, 그냥 사야 했는걸’ 하고 느낀다. 《여자의 식탁》 6권이 나올 무렵 우리 시골살림을 새터로 옮기려고 부산히 떠도느라 새로 나온 만화책이 무엇인지를 헤아릴 길이 없었다. 그러니, 이무렵 나온 《여자의 식탁》 6권을 샀는지 안 샀는지 떠오르지 않고, 아직 풀지 못한 책짐에 갇힌 만화책들을 언제 풀어 살필는지 또한 모르니, ‘틀림없이 안 봤구나’ 싶은 7권만 먼저 사서 읽었다.

 만화책 《여자의 식탁》은 1권만 읽든 5권만 읽든 7권만 읽든, 이야기가 서로 얽히거나 이어지기도 하지만, 따로따로 홀로서기를 하기에, 차례대로 읽거나 거꾸로 읽거나 괜찮다.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이 이야기를 먼저 읽든 저 이야기를 먼저 읽든 즐겁다.

 늦은 밤 아이들 잠든 다음 조용히 읽고 덮은 《여자의 식탁》 7권 빈자리 한쪽에 몇 마디 끄적인다. “겹칠 듯하면 좋은 이웃한테 선물해도 되지요.” 그렇다. 깜빡 잊고 다시 산 책은 내가 좋아하는 책인 만큼, 내가 좋아하는 이웃이나 동무한테 두꺼운종이로 예쁘게 싸서 슬그머니 선물로 부치면 된다. (4344.11.26.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림책을 산다


 아이와 함께 읽을 그림책을 산다. 그러나, 아이와 함께 읽을 그림책을 넘어, 아이가 혼자서 수없이 되읽고 싶다며 집어들 만한 그림책일까 아닐까 혼자 곰곰이 생각하면서 그림책을 산다.

 시골마을에 책방이 알뜰히 있어, 너른 그림책을 두루 살피면서 장만할 터전이 있다면, 아이는 오래오래 되읽을 그림책을 얻을 수 있을까. 면내에 책방이 없고, 읍내에는 나가기 힘드니까 두 다리로 책방마실을 할 꿈을 꾸기조차 힘들다. 집에서 셈틀을 켜고 누리책방에서 이럭저럭 괜찮겠거니 생각하며 그림책을 고른다. 소포꾸러미를 받아서 풀 때에 참 좋다고 느끼는 그림책이 있지만, 아이도 어버이도 좀처럼 손이 안 가고 마는 그림책이 있다.

 그래도, 아이들 그림책은 이야기가 참 많다. 어른들 인문책은 이야기가 너무 좁다. 아이들 그림책은 이야기가 참 쉽다. 어른들 인문책은 이야기가 너무 어렵다. 아이들 그림책은 이야기가 무척 깊으며 넓다. 어른들 인문책은 이야기가 너무 틀에 박힌다.

 왜 어른들 읽는 책은 아이들 읽는 책처럼 더 넓은 갈래를 다루지 못할까. 왜 어른들 읽는 책은 지식조각과 정보조각 그러모으는 데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까. 아이들 그림책이 지식조각이나 정보조각으로 넘치면, 어느 아이라도 따분해 한다. 아이한테 그림책 읽히는 어른도 이런 그림책은 재미없다. 지식이든 정보이든 이야기에 스며들어야 한다. 지식이나 정보는 이야기에 녹아들어야 한다. 삶이 있어야 하고, 사랑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살아숨쉬어야 하고, 사람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아이가 읽을 그림책을 산다. 아이하고 즐길 그림책이기도 할 테지만, 어른인 내 마음을 살찌울 그림책을 산다. 아이가 오늘 읽어도 좋은 그림책이면서, 아이가 나중에 어른이 된 다음에 읽어도 좋을 그림책을 산다. 오늘 장만해 놓지 않으면 아이가 앞으로 스무 살이 되거나 서른 살이 된 다음에는 구경할 수조차 없을 그림책을 아버지한테 돈이 조금 있을 때에 한 권이라도 더 장만한다. (4344.10.31.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