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을 산다

 


  국어사전을 산다. 늘 곁에 두고 읽는다. 국어사전은 벌써 수백 질 갖추었다. 천 가지 남짓 온갖 갈래사전을 나란히 두기도 한다. 한국말을 다루는 여러 가지 자료를 함께 놓기도 한다. 한겨레이기에 누구나 한국말을 쓰며 살아간다지만, 막상 한겨레 스스로 한국말을 알뜰살뜰 갈무리하면서 찬찬히 돌아본 지는 아직 백 해가 채 안 된다. 유럽 나라들은 일찍부터 저희 겨레 말글을 찬찬히 살피거나 다루면서 저마다 온갖 사전을 빚는데, 우리 나라는 아직까지도 우리 말글을 찬찬히 살피지 않을 뿐더러 슬기롭게 다루지도 못한다. 나라를 다스린다는 우두머리와 나라일을 이끈다는 지식인이나 권력자 또한 우리 말글을 곰곰이 헤아리거나 알차게 가다듬지 않는다. 지난날에는 한문을 내세워 권력을 누렸고, 오늘날에는 영어를 앞장세워 권력을 잇는다.


  그러고 보면, 권력만 따지기 때문에 한겨레는 스스로 한국말을 안 아끼거나 안 사랑하거나 안 돌볼는지 모른다. 권력을 따지지 않는다면, 이웃끼리 서로 돕거나 아끼며 살아간다면, 동무와 살붙이를 내 몸처럼 돌보며 지낸다면, 한겨레가 북돋우는 한국말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울 수 있겠지.


  국어사전을 산다. 한글학회에서 엮은 국어사전을 1947년 것부터 1957년 것과 1960∼70년대 것, 1980년대 것, 1990년대 것, …… 이것저것 다 다르게 갖출 뿐 아니라, 여러 국어학자가 저마다 엮은 국어사전에다가, 국립국어원이 1999년에 엮은 국어사전까지 갖춘다. 두툼한 국어사전 한 질을 갖추자면 20∼30만 원쯤 들곤 한다. 적잖은 돈이 들지만, 애써 품과 돈을 팔아 국어사전을 산다. 셈틀을 켜서 인터넷으로 살펴도 되지만, 굳이 국어사전을 산다. 국립국어원 국어사전에는 잘못된 풀이와 올바르지 못한 올림말이 퍽 많다지만, 나 스스로 내 말을 한결 살찌우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글을 한껏 북돋우고 싶다. 국어사전을 산다. 말을 살리는 곳간인 국어사전이요, 말을 새롭게 길어올리는 우물과 같은 국어사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머리와 가슴과 눈과 손 모두 살가운 말빛이 되기를 꿈꾼다. ‘걸어다니는 국어사전’이 되는 일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본다. 그렇지만, 내가 바라기로는 ‘걸어다니는 국어사전’보다는 ‘푸르게 빛나고 환하게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싱그러이 말하고 곱게 글을 쓸 줄 아는 길이 즐겁다. 늘 쓰는 말로 가장 즐거운 하루를 빚고 싶다. 아이들과 언제나 주고받는 말로 가장 재미난 삶을 일구고 싶다. 4345.12.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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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만화 책읽기

 


  아이들 보라고 나오는 만화책이나 만화영화가 꽤 많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무언가 가르치려’고 만화책이나 만화영화를 만들곤 한다. 참말 ‘가르치려’는 생각으로 만화책이나 만화영화를 만든다. 재미있게 보라는 뜻이나 즐겁게 누리라는 마음 되어 만화책이나 만화영화를 빚지는 않는구나 싶다.


  한국 어른이 만들어 한국 방송사에서 내보내는 ‘어린이만화’를 살펴보면, 하나같이 도시살이를 다루는데, 자동차랑 비행기랑 로봇이 나온다. 꽃이나 나무가 나온다 하더라도 틀에 박힌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귀엽게 보이거나 앙증맞게 보이도록 그리기는 하는데, 곱게 그리거나 사랑스럽게 그리지는 못한다. 무엇보다, 한국 텔레비전 어린이만화는 모두 ‘어른이 하는 일’을 아이들한테 그대로 보여준다. 아니, ‘어른이 하는 일’이라기보다 ‘어른이 돈을 벌려고 얻는 직업’을 ‘몸뚱이만 어린이’인 모습으로 보여준다.


  어린이놀이가 없는 어린이만화가 가득하다. 아이들이 서로 놀고 서로 어깨동무하며 서로 웃고 떠드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는 어린이만화일 뿐이다. 가끔 놀이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곤 하지만, 이런 어린이만화에는 ‘요즘 어른들이 떠올리는 아스라한 옛 추억’ 같은 놀이가 흐를 뿐, 오늘날 아이들이랑 즐겁게 흐드러지도록 놀 수 있는 이야기하고는 동떨어진다. 때로는, 놀이 비슷하게 보이지만, ‘학교를 다니며 겪은 뭔가 남다른 옛 추억’일 뿐이다.


  길창덕·김수정·이진주·김동화·이두호, 이런 분들이 그린 만화에는 어김없이 ‘어린이놀이’가 나온다. 이분들이 지난날 그린 만화에는 ‘어른들 옛 추억’이 아니라 ‘오늘 아이들이 마음껏 누리는 놀이’가 나온다. 그러나, 오늘날 만화를 그리거나 만화영화를 만드는 이들은 놀이를 담지 못한다. 아니, 놀이를 담을 수 없을는지 모른다. 오늘날 만화를 그리는 어른이나 만화영화를 만드는 어른들은 ‘스스로 즐겁게 뛰논 적’ 없이 만화책과 만화영화를 만들 뿐이라, 그저 귀엽게 보이거나 앙증맞게 보이는 ‘캐릭터’와 ‘콘텐츠’ 굴레에서 헤어날 수 없다 할 만하다.


  즐겁게 뛰놀지 못한 어른은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이 되도록 이끌지 못한다. 즐겁게 뛰놀며 웃고 떠들며 노래하지 못한 어른은 오늘날 아이들한테 놀이와 노래와 삶을 물려주지 못한다. ‘타요’도 ‘뽀로로’도 모두 덧없으며 슬픈 캐릭터일 뿐, 만화책도 만화영화도 될 수 없다. 어른들 생각주머니가 얼마나 얕거나 모자란지 ‘마법천자문’이나 ‘그리스로마신화’ 같은 학습만화만 그려 이런 만화책만 수천만 권 팔아대고 읽히지 않는가. 4345.12.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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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에 시집 네 권

 


  저녁에 시집 네 권을 읽는다. 한 권은 즐겁게 읽고, 세 권은 이렁저렁 시큰둥하게 읽는다. 즐겁게 읽은 시집을 쓴 이도 어떤 문학상 하나를 받았다 하는데, 신문배달 하던 어릴 적 이야기부터 방위병으로 지내며 현역병한테 숱하게 얻어맞은 이야기에다가 탄광일과 김일 하는 삶을 시로 알뜰히 적바림했다. 다른 세 권을 쓴 이도 이런 상 저런 상을 받았다 하고, 누군가는 대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기도 한단다. 그런데 나는 이들 시집 세 권이 썩 즐겁지 않다. 이들은 시를 왜 썼을까. 이들은 시를 써서 왜 상을 받고 왜 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할까.


  시는 헛소리를 담지 않는다. 시는 삶을 담는다. 삶을 담지 않고서는 시가 태어나지 않는다. 주절주절 떠들거나 말놀이를 한대서 시가 될까. 주절주절 떠들면 ‘주절주절 시끄러운 소리’요, 말놀이를 하면 ‘꼬투리 잡는 말놀이’가 될 뿐이다.


  일을 하건 놀이를 하건 아이를 돌보건 살림을 꾸리건 마실을 다니건 숲에 깃들건 무얼 하건, 스스로 살아내는 하루를 노래 하나로 영글 때에 비로소 싯말이 태어난다고 느낀다. 어떤 일을 하건 무슨 대수랴. 어떤 일을 하건 스스로 말꽃을 피울 수 있어야 노래를 불러 시를 짓겠지. 어느 자리에 있더라도 스스로 사랑꽃을 피우지 못하는 사람은 노래를 부르지 못할 뿐 아니라 시노래를 짓지 못한다.


  한 달에 걸쳐 읽는 시집이 아니요, 한 해 내내 읽는 시집이 아닌, 저녁나절 휘리릭 훑고는 두 번 다시 펼칠 일이 없으리라 느끼는 시집 세 권이란 무엇일까. 이 시집이 되려고 싹둑싹둑 베이고 만 숲은 무엇이 된 셈일까. 종이 한 장은 나무 한 그루요, 책 한 권은 숲 한 자락이다. 시집 하나는 숱한 숲이 새로 태어난 넋이다. 사람들은 숲에 어떤 이름을 아로새길 생각인가. 사람들은 숲을 밀어 어떤 돈을 벌 생각인가. (4345.11.1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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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책읽기

 


  책은 책을 부른다. 이 책 하나 읽으니 저 책이 눈에 밟힌다. 저 책 하나 살피며 그 책이 보인다. 얼마나 많은 책을 살펴야 책이 눈에 안 밟힐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책을 건사해야 책을 안다 말할 만할까.


  옆을 돌아보면 책을 얼마 안 읽고도 책을 말하는 사람이 많다. 책을 얼마 건사하지 않고도 책을 내세우는 사람이 많다. 책을 깊이 사귀지 않고도 책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책을 널리 헤아리지 않고도 책을 안다고 말해도 될까.


  그런데, 몇 권쯤 읽어야 책읽기를 했다 말할 만할까. 몇 가지쯤 건사해야 책을 갖추었다 보여줄 만할까.


  동무를 몇 사람쯤 사귀면 동무가 많다고 말하려나. 이웃을 몇 사람쯤 알고 지내면 사람들과 많이 알고 지낸다고 말하려나.


  도시 한켠에 마련한 작은 공원을 드나들면서도 나무를 느낄 수 있고 나무를 알 만하며 나무를 말할 수 있겠지. 가끔 자가용 몰아 시골길 지나가며 나무를 더 많이 보거나 숲도 조금쯤 들여다볼 수 있겠지. 두멧자락 깊디깊은 숲이라든지 러시아 타이가숲이라든지 안데스나 알프스 같은 곳 숲을 느끼지 않고도, 아마존이나 열대우림 같은 숲을 살피지 않고도, 얼마든지 숲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 숲은 크고작은 크기로 나누지 않으니까. 숲은 숲 그대로 숲이니까.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도시에서 자라는 나무를 바라보며 나무를 말하리라.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시골에서 자라는 나무를 마주하며 나무를 말하리라. 별을 못 보는 도시에서는 별이 없는 밤하늘을 안고 밤이나 별을 말하겠지. 별을 흐드러지게 보는 시골에서는 별이 흐드러지는 밤하늘을 보듬으며 밤이나 별을 말하겠지. 누군가는 도시를 벗어나 비행기 타고 먼먼 나라로 가서 별을 본 다음 별을 말할 테고, 누군가는 시골에서 오래오래 살면서 늘 바라보는 별을 말할 테지.


  누구나 삶을 말한다. 누구나 스스로 꾸리는 삶을 말한다. 누구나 책을 말한다. 누구나 스스로 읽는 책을 말한다. ‘모든 삶을 말하’는 사람은 아직 거의 없다. ‘모든 책을 말하’는 사람도 아직 거의 없다. 곰곰이 돌아보면, 모든 나무와 모든 숲과 모든 별을 말하는 사람도 아직 거의 없다.


  누구나 사랑을 말하고 꿈을 말한다. 다만, 아직 모든 사랑과 모든 꿈을 아낌없이 말하거나 스스럼없이 말하거나 환하게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온갖 말이 수없이 떠돈다. 온갖 책이 숱하게 나온다. 그림책도 만화책도 어마어마하게 새로 나온다. 다만, 삶을 밝히는 빛줄기 같은 책은 좀처럼 구경하기 어렵다. 책을 더 읽는대서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4345.1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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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는 책

 


  ‘책을 말하는 책’이 요즈음처럼 유행이 되어 자주 나오는 적은 없었다. 사람들 누구나 책을 손쉽게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글도 즐겁게 쓸 수 있으니까 ‘책을 말하는 책’이 유행처럼 나올까? 그러나 그렇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책을 말하는 책’이 유행처럼 나오는 까닭은 오직 하나이다. 요즈음 이러한 책은 ‘돈벌이가 될 만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때 ‘책을 말하는 책’을 바지런히 그러모으며 읽었다. 이제는 거의 들여다보지 않고 사지도 않는다. 예전에는 그야말로 ‘책을 말하는 책’이 매우 드물었다. ‘책읽기’나 ‘글쓰기’를 말하는 책마저 아주 드물었다. 그렇지만 요즈음은 책읽기나 글쓰기를 말하는 책 또한 아주 봇물처럼 쏟아진다. 왜? 돈벌이가 될 만하니까.


  초등학생과 중학생과 고등학생한테는 대학입시를 앞둔 논술시험 교재로 쓰이도록 이 같은 세 갈래 책이 쏟아진다. 대학생한테는 취업을 앞둔 면접 교재로 쓰이도록 이 같은 세 갈래 책이 쏟아진다. 여느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사람들한테는 교양을 북돋운다든지 상식을 늘린다든지 가벼운 읽을거리가 되어 준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시골에서 흙 만지며 살아가는 사람이 읽을 만한 ‘책을 말하는 책’은 없다.


  그런데 말야, 참 알쏭달쏭한 일이란, 《테스》를 스스로 읽어야 《테스》를 알지, ‘《테스》를 읽은 느낌을 다룬 글이 모인 책’을 읽는들 《테스》를 느끼거나 알 수 있을까. 스스로 《테스》를 읽지 않고 ‘《테스》를 읽은 느낌을 다룬 글이 모인 책’을 읽을 때에 《테스》를 알게끔 아주 빼어나거나 훌륭하게 쓴 ‘책느낌글’은 있을까. 있다면 몇이나 있을까. 이와 같은 글이 있다면 이 글은 책느낌글이 아니라 오롯이 문학이다. 새로 태어난 문학이다.


  요즈음 유행처럼 나오는 ‘책을 말하는 책’은 하나같이 ‘자기계발’ 갈래에 들 만하다고 느낀다. 참말 도시사람 누구한테나 ‘자기계발 잘 시키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말하는 책’이기 일쑤이다. ‘책을 말하는 책’에서 다루는 책은 이 책이나 저 책이나 엇비슷하다. 평론가가 다루는 책이 이 평론가이든 저 평론가이든 하나같이 엇비슷하듯, ‘책을 말하는 책’을 쓴다는 사람 또한 ‘스스로 이녁 삶을 새롭게 일구는 사랑스러운 책’을 읽으며 ‘책을 말하는 책’을 쓰지는 못하기 일쑤이다.


  밥을 말하는 책을 쓴다고 생각해 보라. 꽃을 말하는 책을 쓴다고 생각해 보라. 어떤 책을 쓰겠는가? 내가 맛있게 차려서 먹는 밥 이야기를 쓰겠는가? 남들이 보기에 멋스럽거나 예뻐 보이는 밥 이야기를 쓰려는가? 내가 좋아하는 꽃 이야기를 쓰려는가? 남들이 예쁘다고 할 만한 꽃 이야기를 쓰려는가? (4345.9.1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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