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 2 - 군더더기 한자말 떼어내기 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 2
최종규 글, 숲노래 기획 / 자연과생태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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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사랑하는 일본이웃한테 한국말 강의
[책이 나왔습니다+일본 강의] 군더더기 한자말 떼어내기 《읽는 우리말 사전 2》


말을 할 적에는 한자말이 어떤 한자인가를 밝히면서 말하지 않기 마련입니다. 이와 달리 글을 쓸 적에는 한자말에 묶음표를 치고 한자를 넣는 분이 있습니다. 한자로 된 낱말이기에 한자를 꼬박꼬박 밝히거나 묶음표를 쳐서 한자를 그때그때 넣어야 할까요? 학교는 그저 ‘학교’입니다. ‘學校’라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동차는 그저 ‘자동차’입니다. ‘自動車’를 밝혀 주지 않아도 됩니다. 전화기를 ‘전화기’ 아닌 ‘電話機’로 적는들 알아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 한자말은 얼마나 될까요? 우리는 한자말을 모르면 말을 못 할까요? (4쪽)


  2018년 3월 31일 낮 12시부터 일본 도쿄 진보초에 있는 〈책거리〉에서 이야기꽃을 폈습니다. ‘이야기꽃’이란, 다른 말로 하자면 강의입니다. 둘레에서 으레 쓰는 대로 ‘강의’라고도 할 수 있으나 굳이 ‘이야기꽃’이라는 이름을 지어서 써 봅니다. 사람들 앞에서 혼자 말을 편다기보다, 함께 말을 주고받으면서 생각을 새로우며 곱게 피어내는 즐거운 마당이라고 여겨서, 이야기로 피우는 꽃이라는 느낌을 나누려고 이야기꽃이라고 합니다.

  일본 도쿄 진보초에 있는 ‘한국책 전문 책집’인 〈책거리〉에는 이날 일본 이웃님이 책집 가득 찾아오셨습니다. 한국문학을 사랑하여 한글로 적힌 문학책을 사서 찬찬히 읽는 분들인데요, 이분들한테 사십 분 즈음 통역 없이 오로지 한국말로만 이야기꽃을 폈고, 그 뒤 한 시간 즈음은 일본말로 통역을 하는 분하고 나란히 서서 이야기꽃을 폈습니다.

  일본 이웃님은 일본에서도 보기 힘든 ‘사전 지음이(집필자)’를 눈앞에서 마주하셨는데, 사전 가운데에서도 한국말사전을 쓰는 뜻, 사전이란 어떤 책인가, 한국말사전에 담는 한국말이란 무엇인가, 말은 어떤 길을 거쳐 사전이란 책에 담기는가, 문학에서 쓰는 말하고 살림자리에서 쓰는 말은 어떻게 다른가, 책을 읽고 말을 살피며 삶을 돌아보는 흐름은 어떻게 맞물리는가, 일본하고 한국은 문학과 책과 사전으로 어떻게 만나 서로 이웃이 되는가, 같은 이야기를 펴 보았습니다.


가장(家長) · 15쪽
집안을 이끄는 사람을 한자말로 ‘가장’이라 하니 “한 집안의 가장(家長)”이라 하면 겹말입니다. 보기글은 한자를 덧달기까지 하는데, ‘한 집안을 이끄는 사람’이라고 수수하게 적으면 됩니다. 또는 ‘한 집안 기둥’이나 ‘한 집안 주춧돌’이라 해 볼 수 있습니다.

* 천 번이고 무릎 꿇고 밥을 구하는 것이 이 땅 노동자다. 한 집안의 가장(家長)이다
→ 천 번이고 무릎 꿇고 밥을 얻는 이가 이 땅 노동자다. 한 집안 기둥이다
→ 천 번이고 무릎 꿇고 밥을 얻는 이 땅 노동자다. 한 집안을 이끄는 사람이다


  제가 2017년부터 내는 “읽는 우리말 사전” 꾸러미는 얼핏 한국 이웃님한테도 안 쉬울 책일 수 있습니다. 일본 이웃님한테는 더욱 안 쉬울 책일는지 모르고요. 그러나 일본 이웃님은 “읽는 우리말 사전” 꾸러미도 차근차근 읽어 주십니다. 처음에는 한국말을 외국말로만 익혀서 외국문학인 한국문학을 읽을 생각이셨을 텐데, 삶자리에서 쓰는 말하고 책에 적히는 말이 다르다는 대목, 또 오늘날 한국 작가들이 쓰는 말이 퍽 가난하며 군더더기가 많다는 대목에 살짝 놀라시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불편’이라는 일본 한자말을 놓고 재미난 실랑이가 있었어요. 제 말을 일본말로 통역해 주시는 분이 얼핏 ‘불편하다’라는 말을 하셔서, 저는 이 말을 받아 “저는 그다지 ‘거추장스럽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했어요.

  어쩌면 ‘불편(不便)’이라는 한자말은 퍽 쉬운 한자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파고들면, 우리가 때와 곳에 맞게 다 다르며 알맞게 쓰던 숱한 말이 일본 한자말 ‘불편’한테 밀리기도 합니다.

  제가 ‘거추장스럽지’ 않다고 말하니, 이 소리를 들은 일본 이웃님 가운데 한 분은 “‘고추장스럽지’ 않다? ‘고추장스러운’이 뭔가요? ‘고추장’인가요?” 하고 물으셔요. 이렇게 묻는 일본 이웃님 옆에 앉은 다른 일본 이웃님은 “아, ‘거추장스럽다’는 옷에 단추가 많아 풀기에 힘들다를 가리킬 적에 쓰는 그 말이지요?” 하고 말했어요. 다들 ‘거추장스럽다’를 모르셨으나 꼭 한 분은 아셨어요. 그래서 이분들한테 몇 가지 비슷하면서 다른 낱말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저는 ‘불편하다’라는 일본 한자말을 안 써요. 이 일본 한자말을 안 쓰는 까닭은, 이 일본 한자말을 쓸 때마다 한국말을 잃거나 잊기 때문이에요. 이를테면 ‘번거롭다’가 있어요. ‘번거롭다’는 할 일이 많거나 어지러워서 손이 많이 갈 적에 써요. ‘성가시다’도 있어요. 저는 바라지 않는데 자꾸 저한테 들러붙어서 마음에 안 들 적에 써요. ‘귀찮다’가 있어요. ‘귀찮다’는 마음에 안 들어서 어떤 일이나 말을 안 하고 싶을 적에 써요. ‘거북하다’도 있지요. 뱃속이나 마음이 안 좋아서 잘 움직일 만하지 않을 적에 써요. 말마다 결이 달라서 쓰는 자리가 다른데, 이를 ‘불편’ 하나로 뭉뚱그리면 말맛이 사라지고 따분해요. 이런 대목을 요즈음 한국에서도 문학하는 사람뿐 아니라 꽤 많은 지식인이나 전문가도 제대로 가릴 줄 모르더군요.”


거묘(巨猫) · 20쪽
고양이가 크다면 ‘큰 고양이’라 하면 됩니다. 고양이를 놓고서 ‘큰고양이·작은고양이’처럼 쓸 수 있고, 이 얼거리를 살려서 ‘큰냥이·큰냥’이나 ‘작은나비·작은괭이’처럼 쓸 수 있습니다. ‘큼직하다·우람하다’라는 낱말을 써서 ‘큼직냥·우람냥’이라 해도 잘 어울립니다.

* 저와 함께 사는 거묘(巨猫) 이응 옹을 소개합니다
→ 저와 함께 사는 큰고양이 이응 할매(할멈)를 소개합니다
→ 저와 함께 사는 큼직냥 이응 할배(할아범)를 소개합니다
→ 저와 함께 사는 우람냥 이응 할배(할아범)를 소개합니다


  《읽는 우리말 사전 2 군더더기 한자말 떼어내기》(자연과생태, 2017)라는 책은 한국에서 글을 쓰는 분들이 한자말을 너무 군더더기로 쓰는 보기를 257가지 모았습니다.

  가심(歌心), 감우(甘雨), 거년(去年), 고(告), 공백(空白), 관목(灌木), 기도(祈禱), 난분분(亂紛紛), 녹음(綠陰), 다음(多飮), 도화(桃花), 두한족열(頭寒足熱), 모자(母子), 못(池), 박색(薄色), 방하착(放下着), 복토(覆土), 비(雨), 생목(生木), 설산(雪山), 소(小), 습(習), 언피해(凍害), 염치(廉恥), 월편(月片), 이세계(異世界), 장고(長考), 즐문토기(櫛文土器), 진선미(眞善美), 촌락(村落), 타(他), 파랑(波浪), 한역(漢譯) 문자(文字), 해무(海霧), 화신(花信), 흑백(黑白)……처럼 굳이 한자를 안 붙여도 될 자리에 붙였거나, 쉬운 한국말을 안 쓴 여러 보기를 살폈습니다.

  쉽게 말하면 될 말을 쉽게 말하지 않은 보기를 모은 《읽는 우리말 사전 2 군더더기 한자말 떼어내기》입니다. 우리가 말을 쉽게 하고 글을 쉽게 쓸 적에 생각을 한결 넓고 깊게 나눌 수 있다는 뜻을 다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글로 나타낼 생각을 더 깊이 바라보자는 뜻을 다루기도 합니다.


마음의 눈(心眼) · 80쪽
‘심안’이라는 한자말은 사전에 나오는데 ‘마음눈’이라는 비슷한말이 있다고 덧붙입니다. 사전은 ‘마음눈’을 풀이하며 “= 심안”으로 적습니다. 퍽 아쉽습니다. 뜻풀이는 우리말 ‘마음눈’에 붙여야 올바를 텐데요. 보기글은 ‘마음의 눈’으로 잘 적은 뒤에 군더더기를 붙이고 맙니다. 굳이 한자로 ‘心眼’을 붙여야 했을까요? 오히려 보기글은 ‘마음눈’으로 적으며 ‘-의’를 덜어야 올바릅니다.

* 전에도 말했잖아요. 마음의 눈(心眼)으로 본다고
→ 예전에도 말했잖아요. 마음으로 본다고
→ 예전에도 말했잖아요. 마음눈으로 본다고
→ 예전에도 말했잖아요. 마음에 있는 눈으로 본다고


  ‘사고(思考), 궁리(窮理), 고찰(考察)’ 같은 한자말은 어떤 결을 나타낼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한국말로 ‘생각하다, 헤아리다, 살피다, 돌아보다, 짚다, 셈하다, 어림하다, 여기다, 보다, 새기다’ 같은 낱말이 어떤 결인가를 차츰 잊거나 잃지는 않을까요?

  〈책거리〉에서 이야기꽃을 함께 피우는 자리에서 어느 일본 이웃님은 “최 선생님이 쓴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어떤 일본말을 쓰는가 하고 새롭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착한’ 일본말을 얼마나 썼는지 돌아보면서, 앞으로 ‘착한’ 말을 쓰기로 생각했습니다.”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분은 카프카 문학을 사랑해서 독일말로 카프카 문학을 다 읽으셨다고 해요. 그래서 독일말로 카프카 문학을 읽으며 느낀 대목을 “카프카가 어떤 독일어로 글을 쓴 줄 아십니까? 카프카는 매우 쉬운 독일어를 썼습니다. 카프카는 매우 쉬운 독일어로 아주 깊은 철학을 문학으로 담아냈습니다.” 하고도 덧붙여 주었습니다.

  군더더기 한자말을 떼어내는 글쓰기란, 쉬운 한국말로 문학을 펴고 생각을 펴며 이야기를 펴는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군더더기를 떼어내면 말이 살아나고 글이 빛날 수 있습니다.


유성우(流星雨) · 190쪽
별똥이 비처럼 쏟아진다고 할 적에 한자말로 ‘유성우’라 합니다. 이를 ‘별똥비’나 ‘별비’라고 하면 구태여 ‘流星雨’라고까지 안 밝혀도 됩니다.

* 지금 남해안에서 막 유성우(流星雨)를 맞고 있다는 문자가 떴다
→ 남해안에서 막 별똥비를 맞는다는 쪽글이 떴다
→ 이제 남녘 바닷가에서 별비를 맞는다는 쪽글이 떴다


  이제 우리는 새롭게 생각해 볼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쉬운 말로 쉽게 생각을 펴면서 글이나 문학이나 지식을 살리는 길로 갈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어려운 말’을 ‘쉽게’ 써 버리고 마는 몸짓이나 글버릇이 아닌, 쉬운 말을 쉽게 쓰면서 깊고 너른 숨결을 한결 넉넉하면서 즐겁게 나누는 길을 찾아야지 싶어요.

  굳이 ‘유성우(流星雨)’처럼 써야 할까요? 한자만 뗀 ‘유성우’도 다시 생각해야지 싶습니다. ‘별똥비’라 하면 되고, ‘별비’라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분은 ‘불꽃비’라든지 ‘불똥비’라고도 할 수 있어요. ‘반짝비’나 ‘불반짝비’ 같은 이름을 새롭게 지어도 재미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외려 새로운 말을 쉽게 지으면서 뜻이나 결을 훨씬 즐겁게 살릴 만합니다. 우리 누구나 새롭게 말을 지어서 쓸 수 있는데, 새롭게 지은 말이 매우 쉽고 재미나서 말살림을 북돋울 만합니다.

  밤하늘에는 별비라면, 낮에는 꽃비입니다. 봄에 꽃잎이 비처럼 내리니 ‘꽃비’예요. 그러면 밤하늘 별비도 ‘별꽃비’나 ‘꽃별비’처럼 더욱 새롭게 이름을 지어 볼 수 있습니다. 낮에 누리는 꽃비도 ‘꽃잔치비’라 할 수 있고, 별비를 놓고 ‘별잔치비’나 ‘밤꽃비’라 해도 어울립니다.


화양연화(花樣年華) · 267쪽
. 화양연화: ×
. 연화(年華): = 세월(歲月)
‘화양연화’라는 이름을 붙인 중국 영화가 나온 뒤로 이 말마디가 제법 퍼졌습니다. 사전에는 ‘화양연화’가 나오지 않습니다. 보기글에 나오듯이 이 중국말은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날을 나타내는데, 중국사람이 중국말로 ‘花樣 + 年華’를 쓴다면, 한국사람은 한국말로 ‘꽃 + 날’을 써 볼 만합니다. 또는 ‘꽃길’, ‘꽃빛’, ‘꽃다운 날’, ‘꽃 같은 날’이라 할 수 있습니다.

*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표현하는 말
→ “꽃길.” 삶에서 가장 아름답고 즐거운 나날을 나타내는 말
→ “꽃날.” 살면서 가장 아름답고 기쁜 때를 나타내는 말
→ “꽃빛.” 사는 동안 가장 아름답고 기쁜 날을 나타내는 말


  ‘꽃비’를 생각하고 ‘별비’를 생각하다 보면, 저절로 ‘별꽃비’나 ‘꽃별비’ 같은 이름을 새롭게 얻는데, 요즈음 부쩍 널리 쓰는 ‘꽃길’하고도 맞물려서 ‘별꽃길·꽃별길’ 같은 말을 새로 지어서 쓸 수 있습니다. 누구는 ‘꽃길’을 걷고, 누구는 ‘꽃날’을 누리며, 누구는 ‘꽃빛’으로 웃음이 가득합니다. 이밖에 어떤 ‘꽃-’을 앞뒤에 넣어서 새말을 기쁘게 지을 만할까요?

  그런데 이처럼 새말을 기쁘게 지으려면 홀가분해야지요. 군더더기를 달고 살아서는 새롭게 태어나기 어렵습니다. ‘꽃길·꽃비’ 같은 낱말은 열 살 어린이나 대여섯 살 어린이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어요. 그러나 ‘화양연화’라면 열다섯 살이나 스무 살한테도 쉽지 않을 만합니다. ‘화양연화(花樣年華)’처럼 군더더기를 붙이면 더욱 어렵겠지요.


한글로 적어도 알아보기 어려운 낱말은 한자가 무엇인가를 밝혀 주어도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린이도 어른도 모두 알기 쉽도록 한국말을 새롭게 짓거나 가꾸도록 마음을 기울일 노릇입니다. 사전을 뒤적여 한자말이 어떤 한자인가를 살펴서 묶음표에 붙이는 글버릇은 이제 멈추고, 쉽게 알아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쓰는 한국말을 알차며 곱게 가꿀 수 있도록 새롭고 쉬우며 고운 말결을 헤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5쪽)


  일본 도쿄 진보초 〈책거리〉에서 편 이야기꽃은 “제가 사전을 짓는 길을 걷는 까닭을 돌아보면, 우리가 생각을 즐겁게 펴서 기쁘게 살림을 짓는 아름다운 사랑을 배우는 자리에서 상냥한 도움벗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뜻이라고 여깁니다.” 같은 말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일본 이웃님이 더욱 포근하고 넉넉하며 알찬 한국말로 한국문학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요. 한국에서 한국말로 한국문학을 누리는 한국 이웃님도 상냥하면서 눈부신 한국말로 한국문학을 누리면 좋을 테고요.

  군더더기 아닌 따사로운 손길로 말을 보듬습니다. 군말 아닌 꽃말로 문학을 가꿉니다. 말꽃도 생각꽃도 살림꽃도 홀가분하면서 고운 말 한 마디를 나누면서 새롭게 피워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8.4.3.불.ㅅㄴㄹ


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 2 군더더기 한자말 떼어내기》
숲노래 기획·최종규 글, 자연과생태, 2017.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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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최종규 글.사진, 사름벼리 그림 / 스토리닷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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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누리신문 오마이뉴스에 올리려고 씁니다.

시민기자 가 손수 쓴 책을

다른 사람 소개 아닌 스스로 소개하는 꼭지가 있어요.

아마 어쩌면 아무래도

글쓴이가 글쓴이 책을 가장 잘 말할 수 있을까요?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하고 짝꿍책입니다.

이 글을 너그러이 읽어 주시면서

두 가지 책을 넉넉히 사랑해 주시면 좋겠어요.

모두 고맙습니다.

모두 사랑해요! 


+ + +


살림하는 아버지가 사랑을 아이한테 가르쳐요

[책이 나왔습니다] 아이랑 살며 배운 사랑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참말로 쓰고 싶은 책을 드디어 썼습니다. 2017년 한 해에만 다섯 권에 이르는 책을 썼는데, 이 가운데 12월 첫무렵에 태어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스토리닷, 2017)은 지난 열 해를 통틀어 가장 손꼽아 기다리던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말사전을 새로 짓는 길을 걷기에, 언뜻 보기로는 저한테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2016)이나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2017)이나 《읽는 우리말 사전 1·2》(2017) 같은 책이 더없이 뜻있는 책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아이들하고 살림을 함께 지으며 살아온 지난 열 해를 통틀면서 다른 어느 책보다 ‘아이들을 만나서 삶을 새롭게 바라보고 살림을 새롭게 가꾸는 길을 걸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여느 ‘육아일기’를 쓸 마음은 없어요. 제가 쓰고픈 이야기는 ‘살림노래’입니다. 고된 육아나 힘겨운 집안일 이야기가 아닌, 아이를 낳아서 하나부터 열까지 보듬고 돌보는 동안 새롭게 배운 이야기란 늘 노래처럼 제 삶을 곱게 북돋아 주는구나 하고 느껴서, 이 이야기를 살림노래를 쓰고 싶었어요.



이 땅 모든 사내한테 물어보고 싶어요. 여보세요, 우리 사내들, 이녁은 김치를 먹나요 안 먹나요? 김치를 먹는다면, 그대는 김치를 담그나요 안 담그나요? 김치를 먹는 그대들은 김치를 담글 줄 아나요 모르나요? 김치를 좋아하는 그대는 소매 걷어붙이고 즐겁게 김치를 담그는가요 안 담그는가요? (31쪽)


집 바깥자리에서 큰 이름을 드날린다고 하더라도 집 안자리에서 살림을 거느리지 못할 적에는 반토막이 된다고 느끼며 자랐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밥하기도 배우시고 김치 담그기도 배우시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으나, 그보다 저 스스로 이런 안살림을 차근차근 잘 익혀서 해 보고 나서 말씀을 여쭙자는 마음입니다. (39쪽)



  저는 김치를 담근 지 몇 해 안 됩니다. 아마 큰아이가 일곱 살 무렵까지 김치를 안 담그고 살았지 싶습니다. 이제는 틈틈이 김치를 담가요. 지난날에는 제가 매운김치를 못 먹기 때문에 안 담갔다면, 이제는 ‘안 매운김치’를 담그면 되는구나 하고 뒤늦게 깨달아 김치를 담급니다.


  참 더디게 깨닫지요? 매운김치를 못 먹으면 안 매운김치를 담그면 되었을 텐데요. 그리고 제가 김치를 못 먹더라도, 찬국수를 몸에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곁님이나 아이들을 더 헤아리는 살림이라면 훨씬 진작부터 김치 담그기나 살림짓기를 더 씩씩하게 했으리라 느낍니다.


  그런데 이러면서 배운 대목이 있어요. 왜 사내라는 사람은 이렇게 핑곗거리가 많아서 뭐를 못 하거나 뭐를 안 하는가를 가만히 되새겼습니다. 저를 낳은 어머니하고 아버지가 지은 살림을 되새기면서, 학문으로는 훌륭할는지라도 집안일은 한 가지조차 못하던 아버지를 다시 바라보았어요.


  우리 아버지한테는 미안한 노릇이지만, 저는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이라는 책에서 우리 아버지 이야기를 곧잘 적었습니다. 이를테면 우리 아버지는 ‘남이 해 주는 밥’만 먹고 사신 터라, 스스로 밥을 지을 줄 모르십니다. 이뿐 아니라 혼자서 라면을 끓여서 드실 줄도 모르셨어요.



아이들한테 하나하나 맡겨 봅니다. “자, 작은 도마를 꺼내고 작은 칼을 꺼내 보세요. 한 사람씩 오이를 썰어 봐요.” “누나가 오이를 썰면 동생은 토마토를 썰어 봐.” “스스로 먹을 만큼 주걱으로 밥을 푸세요.” “어머니 수저를 누가 챙겨 줄까?” “밥상을 펴면 행주로 잘 닦아 주세요.” (43쪽)


저희가 아이들한테 물려주려고 하는 땅은 그냥 땅이 아닌 ‘숲 보금자리’나 ‘보금자리 숲’입니다. 숲이 될 보금자리, 또는 보금자리가 될 숲을 아이들이 물려받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차근차근 가꾸지요. (52쪽)



  흔히들 말하기를, 밥은 못 할 수 있더라도 어떻게 라면도 못 끓이느냐고 물을 만해요. 이때에 저희는 아이들을 보며 새삼스레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많이 어릴 적에는 밥은커녕 라면도 못 끓여요. 아이들은 밥상에 버젓이 밥하고 국하고 반찬이 있어도 손수 수저를 챙겨서 밥을 먹으면 배가 안 고프다는 대목을 모르기 일쑤입니다.


  아직 아이들은 매우 어리고 철이 덜 들었기에 코앞에 있는 먹을거리를 못 알아봐요. 게다가 노느라 바쁘고, 놀이가 좋은 나머지, 배고픈 줄을 늘 잊기까지 합니다. 이는 어른도 매한가지라고 할 수 있어요. 내로라하는 숱한 ‘남성 지식인·남성 정치인·남성 고위 공무원’ 가운데 밥할 줄 알거나 김치 담글 줄 아는 사내는 몇이나 될까요? 아기가 울 적에 어떻게 안아서 달래며 자장노래를 불러야 하는가를 아는 사내는 몇이나 될까요? 천기저귀를 어떻게 접어서 아기 샅에 대어야 아기가 좋아하는가를 몇 사내쯤 알까요? 천기저귀나 행주나 걸레는 어떻게 삶고 말려야 하는가를 몇 사내쯤 알려나요?



제가 열한 해째 곁님 핏기저귀를 삶고 헹구면서 살아온 바탕에는 이런 뜻이 있어요. 비록 저 한 사람 몸짓이라 하더라도, 작은 한 사람 몸짓으로 살림을 조금씩 가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 집 두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손으로 가꾸거나 지어서 흙을 보듬는 살림을 물려받을 수 있을 테고요. 시골에서도 서울에서도 기저귀 빨래가 따사로운 볕을 받고 싱그러운 바람을 쐬면서 눈부시게 춤추는 모습을 그려 봅니다. 집집마다 빨랫줄을 걸고서 즐겁고 아름답게 옷살림을 다스리는 새로운 모습을 그려 봅니다. (77쪽)



  그렇다고 제가 이 모두를 처음부터 잘 알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저한테 아이들이 찾아오기 앞서까지 ‘머릿속 성평등주의자’로 살았어요. 아이들이 찾아오고 나서는 ‘머릿속 성평등주의자’를 몽땅 내려놓았습니다. 아이들한테는 ‘온몸으로 사랑님’이 되어야 한다고 깨달았어요.


  곁님 어머니한테서 천기저귀 접기를 배웠습니다. 마을 할머니한테서 천기저귀를 얻었습니다. 곁님한테서 핏기저귀를 삶아서 말리고 건사하는 길을 배웠습니다. 바깥에서 밥을 사다 먹거나, 이웃집에 마실하여 밥을 함께 먹을 적에는 으레 어깨너머로 반찬하기를 살피거나 이모저모 여쭈면서 집에서 스스로 해 보곤 했어요.


  제가 못 먹는 밥이 있더라도 아이들이 맛을 볼 수 있도록 지어서 차려야 하는구나 하고 배웠어요. 저는 참말 못 먹지만 아이들은 맛나게 잘 먹는 반찬이 있네 하고 깨달으면서,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치거나 물려줄 적에 서로 즐겁고 슬기로운가를 비로소 헤아렸습니다.



대학 교육 네 해에 들일 돈으로 책을 사서 읽는다면, 거의 사오천만 원에 이르는 책을 사서 읽을 수 있어요. 엄청나답니다. 사오천만 원에 이르는 돈을 스스로 책방에 가서 책을 골라서 읽고, 이렇게 읽어서 모은 책으로는 저마다 마을도서관을 열 수 있지요. 네 해에 걸쳐 사오천만 원에 이르는 돈으로 책을 읽어서 모아 두었으면, 앞으로 이 책으로 헌책방이나 마을책방을 열 수 있기도 해요. 마을도서관도 열 수 있지만, 스물네 살 젊은이 나름대로 새롭고 재미나게 멋진 책방을 열 만해요. (83쪽)



  아이들을 낳아서 돌보는 어버이로, 아버지로, 어른으로 살기 앞서, 저한테는 늘 한 가지만 있었어요. 혼자서 오랫동안 살면서 책만 사고 책만 읽고 책만 건사했습니다. 곁님이나 아이들이 저한테 오기 앞서인 2007년 봄에 인천에서 ‘사진책 도서관’을 열었는데요, 이 사진책 도서관은 이제 ‘사전 짓는 책숲집 + 숲놀이터’로 거듭난 모습으로 전남 고흥에서 잇습니다만, 예전에는 그저 책만 아는 어리보기였습니다.


  그래도 책 한 가지에 사로잡힌 채 살면서 배우거나 얻은 깨달음도 있어요. 이를테면 대학교 졸업장을 거머쥐지 않고도 책으로 얼마든지 삶이나 사회를 배울 수 있는 줄 알았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졸업장만으로도 스물여섯 살에 ‘국어사전 집필을 도맡는 편집장’ 일을 했습니다. 대학교 졸업장이 없을 뿐 아니라 사회나 단체에 아무런 줄이나 끈조차 없었지만, 2003년 여름에 이오덕 어른이 돌아가신 뒤에는, 이오덕 어른을 기리면서 쓴 원고종이 1000장에 이르는 글 하나를 쓴 터라, 이 글이 징검돌이 되어 이오덕 어른이 남긴 글하고 책을 갈무리하는 일을 맡았지요. 스물아홉 살 적입니다.


  대학교 졸업장이 아닌, 오직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갈고닦은 앎 하나로 국립국어원에서 강사 노릇도 해 보았고, 한글학회나 문화체육관광부나 한글문화연대나 경기도청에서 맡기는 ‘공공언어 순화’ 같은 일도 해 보았습니다.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하는 터라, 어떠한 졸업장이나 자격증도 부질없는 줄 알았습니다. 스스로 새롭게 길을 닦으면서 살아가면 되더군요. 스스로 깊고 넓게 파헤치면서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는 슬기로운 몸짓이 되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고요.



저는 갓 스물이 넘을 무렵 ‘스무 살까지 학교를 다니며 배운 모든 것은 아무 쓸모가 없네’ 하고 느꼈어요. ‘스무 살까지는 학교에서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을 쓸모없이 가르쳤구나 하고 몸으로 아로새긴 나날이었네’ 하고도 느꼈어요. 저로서는 스무 살 적부터 0살이라고 생각했어요. 스무 살 나이를 모두 버리고, 그때부터 스스로 0살이니 처음부터 모조리 새로 하자고 다짐했어요. (105쪽)



  곁님을 만나서 함께 살림을 짓는 동안 날이면 날마다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책을 그렇게 많이 읽은 주제에 어쩜 이 쉬운 살림은 이다지도 모르느냐는 꾸지람에 지청구에 나무람에 …… 참으로 할 말이 없더군요. 그래서 스무 살부터 마흔 살까지는 책으로 배운 살림이었다면, 마흔 살부터는 스스로 0살이라 여기면서 살림으로 살림을 배우자는, 온몸으로 손수 짓는 살림길을 걸으면서 새롭게 살림을 배우자는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합니다.


  요즈막에는 곁님이 저를 나무라면 빙그레 웃으면서 한 마디 해요. “자, 자, 너무 성을 내지 말고, 가만히 돌아봐요. 내가 좀 어리보기라서 느즈막하게 달라지지만, 지난 열 해를 돌아보면 나는 한 걸음씩 스스로 고치면서 나아가는 삶이에요. 오늘은 아직 어리숙하게 하느라 못 바꾸거나 못 고쳤지만, 틀림없이 모레에는, 모레에 안 되면 다시 더 지내고서, 그때에도 또 못 바꾸거나 못 고치면 그다음에는 바꾸거나 고치려고 늘 마음하고 몸을 써요. 느긋하고 너그러이 기다려 봐요. 우리, 서두르지 말고 하나하나 즐겁게 바꾸거나 고쳐요.” 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집에서 ‘밥짓는 사내’로 삽니다. 밥을 손수 지어서 아이들한테 열 해째 먹이는 살림을 꾸리는데, 이러는 동안 늘 ‘밥말’을 들려줍니다. ‘밥말’이란 밥하고 얽힌 말이나 이름입니다. 부침개를 할 적에 ‘부침개’가 뭔지 알려주고, ‘부침(부치다)’하고 비슷하지만 다른 ‘지짐(지지다)’을 알려줍니다. 또 ‘볶음(볶다)’을 알려주며, ‘무침(무치다)’이나 ‘데침(데치다)’이나 ‘버무림(버무리다)’을 알려주지요. (113쪽)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이라는 책은 ‘우리 집안 책’이 되기를 바라면서 썼습니다. 저 스스로 제 삶과 살림과 사랑을 다시 새기면서 첫마음이 되려는 뜻으로 썼어요.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삶이나 살림이나 사랑이 궁금하다고 물어보면 언제나 선뜻 기쁘게 내어줄 책으로 썼어요.


  우리 어머니하고 아버지한테 보여줄 책으로, 곁님 어머니하고 아버지한테 보여줄 책으로, 그리고 온 이웃님한테 보여줄 책으로 썼어요. 우리는 이렇게 날마다 새롭게 배우면서 기쁨으로 살림을 짓는 길을 걸으려 한다는 뜻을 담아서 썼어요.


  비록 아직 어설프거나 어정쩡하거나 어수룩한 대목이 많으나, 지난 열 해를 이렇게 배우며 살았다는 이야기를 썼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열 해 동안 더욱 씩씩하고 신나게 한 걸음씩 내딛으면서 배우려는 마음이라는 이야기를 썼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와 둘레 어른이 일하고 놀이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배우고 살아갑니다. 아이들은 어버이와 둘레 어른이 여느 자리에서 으레 쓰는 말마디를 귀기울여 듣고 하나하나 따라하며 배웁니다. 아이들은 여느 때 여느 사랑을 나누는 어버이와 둘레 어른 삶을 받아먹으며 저희 꿈과 이야기를 빚습니다. (125쪽)


어떤 분이 묻더군요. “어떻게 같은 영화를 서른 번이나 백 번을 볼 수 있어요?” 저는 그분한테 되물어요. “어떻게 백 번이나 이백 번쯤 볼 만한 영화를 즐겁게 안 보고, 딱 한 번 보고 그칠 영화만 자꾸자꾸 보시나요?” (131쪽)



  곁님한테서 듣는 꾸지람 가운데 하나는 ‘왜 자꾸 책을 더 사요?’입니다. 곁님은 늘 말합니다. ‘한 번 보고서 덮을 책은 그만 사자’고요. ‘한 번 아닌 백 번을, 아니 천 번을, 아니 날마다 새로 읽으면서 날마다 새로 배울 수 있는 책 하나만 있으면 넉넉하다’고 말합니다.


  저는 고개 숙여 대꾸하지요. “그대 말이 참말 맞아. 그대 말대로야. 그래서 나도 생각해 보았어요. 앞으로 내가 지으려는 새로운 사전을 다 짓고 나면, 이제는 책을 이렇게 끝도 없이 사들이는 몸짓은 그치려고요. 꼭 열 해까지만 이렇게 할게요. 열 해 뒤에는 사뭇 달라지리라 생각해요.”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든 제 어릴 적을 돌아보든, 새로운 만화책이나 만화영화가 더 재미있지 않습니다. 가장 재미있는 만화책이나 만화영화를 참말로 끝도 없이 다시 보고 또 봅니다. 볼 때마다 재미있고 새로우니 자꾸 보고 다시 볼 수 있어요. 볼 때마다 배울 수 있기에 언제나 즐겁게 볼 수 있어요. 볼 때마다 나를 깨우치고 북돋우기에 활짝 웃으면서 새삼스레 볼 수 있어요.



제가 살아가며 얻는 목숨(밥)은 흙에서 얻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흙으로 집을 지어서 살아야 제 목숨을 옳게 건사할 만합니다. 그러면 저는 제가 밥을 삼을 터를 이루는 흙하고 같은 흙으로 집을 지어야 합니다. 쓰레기를 파묻는 흙땅이 아니라, 목숨이 살아숨쉴 흙땅이어야 합니다. 내 하루하루 살림에서 쓰레기를 내는 삶이 아니라, 꿈을 낳고 사랑을 피우는 삶이어야 합니다. 덜 쓰고 아끼는 삶이 아닙니다. 아름다이 누리며 착하게 꾸리는 삶입니다. (223쪽)



  아이들이 아침에 상냥하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봅니다. “아버지, 잘 주무셨어요?” “그래, 우리 이쁜 아이들도 잘 자고 일어났을까? 밤새 즐거운 꿈을 꾸면서 하늘을 날았을까? 지난밤에는 어떤 꿈을 꾸었니?” 서로 묻고 서로 이야기하고 서로 따스히 안습니다.


  이제 두 아이(2017년으로 큰아이는 열 살, 작은아이는 일곱 살입니다)는 모두 스스로 밥을 지을 줄 압니다. 갑작스레 두 아이가 밥을 잘 짓더군요. 아홉 살 여섯 살이던 때에는 두 아이가 밥을 안 짓거나 못 지었어요. 열 살 일곱 살로 접어든 2017년에 참말로 갑작스레 밥을 지어내요. 큰아이는 손수 반죽을 하고 부풀려서 빵도 굽지요. 작은아이는 누나한테 질세라 달걀삶기를 해 보았고, 이제 제법 잘 삶아냅니다. 설거지도 걸레질도 비질도 제법 야무집니다. 아직 아이들 아귀힘이나 팔힘으로는 빨래가 만만하지 않으나, 빨래를 마친 옷가지를 잘 널고 잘 걷어서 잘 갭니다.


  요새는 일부러 아이들한테 감 깎기를 시키곤 해요. “오늘은 누가 감을 이쁘게 깎아 보려나?” 하고 묻습니다. 두 아이는 저마다 감 한두 알을 깎느라 십 분 이십 분 넉넉히 씁니다. 반듯한 칼질하고는 아직 멀지만, 손수 칼을 쥐고서 깎고 썰고 접시에 곱게 놓는 즐거움을 누립니다.



이렇게 하고 나서 나도 잠자리에 누우려다가 물 한 모금 마시려고 부엌으로 가는데 부엌 바닥에 뭔가 하얗게 있는 듯해요. 허리를 숙여서 부엌 바닥을 짚는데 어라 아무것도 안 집힙니다. 아니, 별빛이 집히네요. 달빛하고. (270쪽)



  저는 온누리 이웃 어버이나 어른한테 살며시 말을 건네고 싶어요. 이웃 푸름이하고 어린이한테도 가만히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이라는 책 하나를 슬며시 건네면서 말을 걸고 싶어요. 손수 지은 밥이 가장 맛있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싶어요. 손수 지은 살림을 손수 고쳐서 쓰면 늘 웃음꽃이 피어난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싶습니다.


  밤에 쉬 마렵다고 아버지를 깨우는 아이를 이끌고 쉬를 누이고는 물 한 모금 마시고 누우려다가 부엌에서 달빛을 주워 보셨나요? 마실길에 다리가 힘들다는 아이를 품에 안으니 어느새 새근새근 곯아떨어져요. 어버이 품에 제 온몸을 맡긴 채 꿈나라로 빠져드는 아이 가슴에서 내 가슴으로 스미는 따스함을 느껴 보셨나요? 갓난쟁이일 무렵 하루에 마흔 장 남짓 오줌기저귀에 똥기저귀를 내놓던 아이가 어느새 씩씩하게 커서 밥도 짓고 국 끓이기를 배우는 대견한 모습을 보셨나요?


  살림짓기는 사랑짓기라고 생각해요. 살림하기는 사랑하기라고 생각해요. 아직 살림에 등을 돌린 이웃 사내한테 여쭈고 싶어요. 바깥일을 줄이면서 집안일을 함께 배우면서 해 봐요. 온 집안에 사랑이며 평화가 흐른답니다. 어설프거나 어리숙한 사내하고 사느라 고단한 이웃 가시내한테 여쭈고 싶어요. 조금 더 느긋하게 기다리면서 차근차근 알려주고 가르치면서 어깨동무를 해 봐요.


  어릴 적부터 살림짓기를 배운 적도 어깨너머로 구경한 적도 없는 철없쟁이 사내가 슬기로운 어버이로 거듭나려면 적어도 열 해는 지내야지 싶습니다. 열 해가 흘러야 멧골도 들도 냇물도 바뀌어요. 살림하는 아버지는, 또 살림하는 어버이는,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주고 가르칩니다. 아이를 만나고 나서야 사랑을 똑똑히 깨닫고는 마음으로 사랑씨앗을 심으면서 새롭게 배우고 가르쳐요. 2017.12.21.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넋/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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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기쁘게 읽어 주셔요



2017년에 다섯 권째로 책을 내놓았습니다.

올해 다섯 권째로 내놓은 책은

지난 2011년부터 전남 고흥이라는 시골에서

‘우리 집 학교’라는 이름으로 아이들하고 함께 지은 살림이란

무엇인가 하고, 어떤 즐거움인가 하고,

시골에서 사전(국어사전)을 지으면서 살림을 짓는 하루란 무엇인가 하고,

조곤조곤 이웃님하고 나누려고 하는 생각을 갈무리한 이야기꽃입니다.


2017년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은

2016년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하고

한짝을 이루는 동무책입니다.

2018년에도 무언가 멋진 짝을 이루는

새로운 동무책 꾸러미를 선보일 수 있을까요?


서울을 비롯한 크고작은 도시에 계신 이웃님도, 

시골에 계신 이웃님도,

모두 즐겁고 넉넉히 ‘살림 짓는 즐거움’을 누리시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신나게 장만해서

기쁘게 읽어 주셔요.

고맙습니다 (__)


이제 밥 지으러 가려 합니다 ^^




* 책을 장만해 보셔요 ^^ *

[알라딘]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4416311



여는 말


아기 낳아 기르면서 육아책 말고는 볼 겨를이 없더라는 어느 분. 그런데 나는 예전부터 육아책을 곧잘 읽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길에 큰 깨우침과 가르침이 담겨 있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던 때에도 즐겨 찾으면서 읽었고, 기쁘게 받아들이며 마음에 담았다. (2011.9.11.)


  2011년 9월에 쓴 살림노래를 문득 돌아봅니다. 저는 아버지로서 살림노래를 씁니다. ‘살림노래’란 무엇인가 하면 ‘육아일기’입니다. 저도 한때 ‘육아일기’라는 이름을 썼으나, 이제는 ‘살림노래’라는 이름만 써요. 아이를 넷 낳아서 둘은 바람처럼 나무 곁으로 보냈고, 둘은 제 곁에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이렇게 여러 아이하고 살림을 꾸리는 동안 지켜보니, 아이를 키운다는 어버이는 언제나 아이한테서 보살핌을 받아요. 아이를 가르치는 어버이는 늘 아이한테서 배웁니다. 이런 하루를 한결같이 느끼기에 ‘육아일기’라는 이름은 저희한테 안 어울린다고 느껴요. 제 나름대로 생각을 기울여서 ‘살림노래’라는 이름을 새로 지었습니다.




벼리 *


살림을 짓는 길

ㄱ. “뭐? 남자가 무슨 김장이야?” -‘사람으로 사는 사랑’ 꿈꾸기

ㄴ. “쟤는 여자로 태어났어야 하는데” - 왜 ‘여자만’ 집일을 배울까?

ㄷ. 라면조차 못 끓이던 아버지 - 반토막 사내 아닌 오롯한 사람 되기

ㄹ. 아이들한테 살림 가르치는 아버지 -가르치면서 배우는 집안일

ㅁ. 우리는 ‘아이 성 새로 짓기’를 합니다 - ‘어버이 성 안 쓰기’를 하는 마음

ㅂ. 아이들한테 ‘땅 물려주기’ 하려고 - 재산 아닌 살림자리를

ㅅ. 사내도 가시내도 못질·톱질 함께 배우는 -아이들하고 책상 짜기

ㅇ. 메뚜기쌀 -고흥에서 ‘제비쌀’을 바라는 마음

ㅈ. 국립공원 마을에 화력발전소 짓지 마셔요 - 돈이 아닌 마을살림을 헤아리는 공무원은 어디에?

ㅊ. 빛나는 꽃송이 -제대로 자라며 고운 숨결

ㅋ. 사내가 ‘달거리천’ 빨래하면 달라집니다 - 핏기저귀 손빨래 열한 해를 돌아보며



사람이 되는 길

ㄱ. 대학 안 가고 책만 읽어도 됩니다 - 대학 졸업장과 책읽기

ㄴ. 우리는 씨앗을 이렇게 심어요 - 보금자리를 일구는 작은 손길

ㄷ. 흰민들레로 꽃밭을 이룰 꿈 - 재미난 살림짓기를 바라는 길

ㄹ. 찔레무침 한 접시 - 제철을 먹으려는 살림

ㅁ. 담 타고 넘어와 쑥 캐는 마을 할매 - 먹는 쑥, 흙으로 돌아갈 쑥

ㅂ. 어떻게 그 길을 갈 수 있나요 - 뜻·꿈·사랑을 스스로 짓기

ㅅ. 언제나 즐겁게 하는 일 - 직업과 일 사이에서, 벌교중 푸름이한테 이야기 한 자락

ㅇ. “저 집은 으째 사내가 밥을 짓는감?” - ‘밥짓는 사내’가 일구는 평화살림

ㅈ. 1:99 - 고흥 녹동고 푸름이한테 띄우는 글

ㅊ. 아이한테 학교는 마땅하지 않아요 - 아이는 숲에서 놀며 자라야지요

ㅋ. 시골에서 살며 사전을 짓듯 읽고 쓰다 - 백 번 읽을 책인가



책으로 배우는 길

ㄱ. 돼지가 ‘잡아먹히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 플랜던 농업학교의 돼지

ㄴ. ‘세계에 딱 하나만 살아남’은 고흥 좀수수치 - 야생 동물은 왜 사라졌을까?

ㄷ. 예방접종은 우리 삶을 어떻게 망가뜨리나 - 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

ㄹ. ‘대규모 문명’은 뭔가 크게 어긋난 모습 아닐까 - 소농, 문명의 뿌리

ㅁ. 가장 비싼 루왁 커피는 ‘가장 끔찍한’ 동물학대 - 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

ㅂ. 꿀뿐 아니라 밥을 베풀어 주는 작은 벌 - 사라진 뒤영벌을 찾아서

ㅅ. 항생제와 첨단장비로는 ‘아픈 데’를 못 고쳐 - 땅이 의사에게 가르쳐 준 것

ㅇ. 아이를 ‘숲사람’으로 키우는 기쁨 - 농부로 사는 즐거움

ㅈ. 아름다운 숲 - 블루 백

ㅊ. 밥짓기·집짓기·옷짓기는 사랑짓기·삶짓기·사람짓기 - 아나스타시아 4 함께 짓기 


아이들하고 노래하는 길

ㄱ. 맨발이 아주 좋아·비랑 우산·손가락 베기·놀면서 기쁜 몸짓·아이들 전화·새벽 설거지·선물 줄게 

ㄴ. 배추된장국이었는데·보라가 좋아하는 빛깔이야·뚝딱뚝딱 쓱삭쓱삭·작은아이 새옷·은빛으로·

빨래를 미루는 재미

ㄷ. 왜 우리보다 늦게 자는데 일찍 일어나?·연뿌리조림을 마친 날·삼천오백 원 오른 달걀 한 판·볶는 소리·따라쟁이·낡지 않은 자전거 

ㄹ. 밥보다 훨씬 좋아·아이를 키우는 길·사는 보람·기다림·네 손에는·선물이란

ㅁ. 모든 아이는 착하다·우뚝·그림잔치·설거지 요정·잔소리도 새롭게·잔소리를 멈추면

ㅂ. 하루 만에 책상 짜기·겉절이를 하는 밤·한 방울 짜내기·‘안아키’와 ‘사아키’·글월 띄우기

ㅅ. 어버이한테 팔이란·안 위험해요, 즐겁지요·작은 놀이벗·덜어 놓기·숲

ㅇ. 하루 네 번 빨래·부채를 두 손에 쥐고서·겉절이 담그다가 씻기다가·손발을 쓴다·나들이를 가려고·부엌에서 별빛을 줍다

ㅈ. 아이들 목소리·알타리무를 다듬으면서·밥을 짓는 기운·언제나 말은 딱히 안 했지만·골짜기로 달리는 마음은

ㅊ. 우리 집 책순이·어울림·허리가 결려 못 앉는·야무진 마실돌이·귀지를 파는 아침·맛있게 먹는 아름다움·바지를 기우다가




닫는 말

  온누리 숱한 사내는 ‘이 땅 여신’을 부엌에 묶어 둡니다. ‘이 땅 여신’을 부엌에 묶어 두면서도 정작 부엌에 묶어 두는 줄 몰라요. 그런데 여신만 부엌에 묶이지 않습니다. 여신은 부엌에 묶이는 동안 ‘남신은 집 바깥에서 돈을 버느라 묶인’ 얼거리입니다. 여신도 남신도 제자리에 없다고 할 수 있어요. 여신도 남신도 보금자리를 보금자리답게 가꾸면서 아이들하고 기쁜 살림을 짓는 길하고 멀어진다고 할 모습입니다.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읽어 주실 온누리 ‘여신·남신’인 분들이 우리 스스로 누구인가를 환하게 바라보고 아끼면서 돌볼 수 있기를 바라요. 어깨동무를 할 수 있기를, 참사랑을 할 수 있기를, 넉넉히 손을 맞잡으면서 하루를 가꿀 수 있기를, 아이랑 어른 모두 고운 사람인 줄 깨닫기를 바라요.


(숲노래/최종규/사름벼리)


http://blog.naver.com/storydot/221149726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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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 2 군더더기 한자말 떼어내기》를 내놓았습니다. 긴 이름을 간추려 “읽는 우리말 사전” 둘째 권이나 “읽는 사전” 둘째 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읽는 사전” 둘째 권은 군더더기로 붙이는 한자말이 글쓰기에서 얼마나 걸림돌이나 수렁이 되는가를 밝힙니다.


남들이 잘 안 쓰는 어려운 말을 일부러 찾아 쓴다든지 한자말이나 영어를 섞어 쓰면, 무언가 그럴듯하거나 많이 아는 듯 보인다고 여기는 분들이 제법 있습니다. 그보다는 어른 아이 모두 잘 알아들을 만큼 뜻이 뚜렷하고 쉬운 낱말로 이야기하면 더 멋지지 않을까요? 군더더기 없이 산뜻하게 말하고 글 쓰는 데 이 책이 도움 되기를 바랍니다.


한자말을 쓴다고 해서 옳거나 그른 일이 아니지만 겉치레로 붙이는 묶음표 한자말은 털어내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새롭게 살릴 수 있는 말마디가 하나둘 깨어납니다. 숨죽이던 낱말을 만나고, 새로운 말을 슬기롭게 짓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알라딘]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3289127



머리말 : ‘(묶음표)’로 덧붙인 한자말 떼어내기



  말을 할 적에는 한자말이 어떤 한자인가를 밝히면서 말하지 않기 마련입니다. 이와 달리 글을 쓸 적에는 한자말에 묶음표를 치고 한자를 넣는 분이 있습니다. 한자로 된 낱말이기에 한자를 꼬박꼬박 밝히거나 묶음표를 쳐서 한자를 그때그때 넣어야 할까요?


  학교는 그저 ‘학교’입니다. ‘學校’라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동차는 그저 ‘자동차’입니다. ‘自動車’를 밝혀 주지 않아도 됩니다. 전화기를 ‘전화기’ 아닌 ‘電話機’로 적는들 알아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 한자말은 얼마나 될까요? 우리는 한자말을 모르면 말을 못 할까요?


  사전에 한자말이 퍽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말사전은 슬프고 아픈 발자국이 있어요. 일본말사전을 베껴서 한국말사전을 서둘러 엮은 탓에 한국에서 안 쓰는 일본 한자말을 비롯해서 우리가 한 번도 들을 일이 없고 쓸 일조차 없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한자말이 한국말사전에 터무니없게 실리고 말았습니다.


  어린이문학이나 어린이책에서 묶음표를 쳐서 한자를 밝히는 일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습니다. 청소년책을 비롯해서 어른이 보는 인문학, 문학, 학술 책에서 ‘묶음표 한자말’이 불거집니다. 사람들은 왜 묶음표를 치고 한자를 넣을까요? ‘묶음표 한자말’을 써야 글뜻이 또렷할까요?


  한글로 적어도 알아보기 어려운 낱말은 한자가 무엇인가를 밝혀 주어도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린이도 어른도 모두 알기 쉽도록 한국말을 새롭게 짓거나 가꾸도록 마음을 기울일 노릇입니다. 사전을 뒤적여 한자말이 어떤 한자인가를 살펴서 묶음표에 붙이는 글버릇은 이제 멈추고, 쉽게 알아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쓰는 한국말을 알차며 곱게 가꿀 수 있도록 새롭고 쉬우며 고운 말결을 헤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묶음표 한자말’은 군더더기 글버릇이라고 느낍니다. 이 군더더기를 찬찬히 걷어내면서 겉치레도 벗어던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산뜻하면서 홀가분하고 싱그러운 한국말을 새롭게 찾아나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읽는 우리말 사전’ 첫째 권에 이어 둘째 권에서도 이웃님이 단출하게 읽고 생각을 북돋우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띄우려고 합니다. 제가 손질해 본 보기글은 제 나름대로 힘을 기울인 말씨입니다. 이 책을 읽어 주시는 이웃님들도 나름대로 새롭게 말씨를 가꾸거나 북돋아 보시면 좋겠습니다. 저마다 다르면서 저마다 아름답게 말을 살리고 글을 살려서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멋진 글님으로 거듭나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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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롭게 살려낸 한국말사전 2
최종규 지음, 숲노래 기획 / 철수와영희 / 201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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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누리신문 <오마이뉴스>에 올리려고 씁니다.
오마이뉴스에서는 시민기자가 책을 새로 내면
[책이 나왔습니다]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책을 알리는 기사를 쓰도록 합니다.

새로 써내는 책을 스스로 알리는 일이란
때로는 부끄럽거나 멋쩍을 수 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새롭게 써내어
이웃님하고 너르며 깊은 이야기를 나누려는 뜻으로
책을 한 권 썼기에
시민기자는 저마다 그동안 흘린 땀방울 이야기를 적어요.

저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을 내기까지 이래저래
흘린 땀방울하고 얽혀서 이처럼 글을 하나 지었습니다.
너그럽게 헤아려 주시면서 읽어 주시고
<겹말 사전>이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이며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며
<읽는 우리말 사전>이며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며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이며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같은 책을
알뜰살뜰 장만하여 마음으로 벗삼아 주시면 좋겠어요.
고맙습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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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종이 5000쪽으로 써낸 두 권째 국어사전
[책이 나왔습니다] ‘숲노래’가 지은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처음은 아주 작았습니다. 대학입시를 바라보던 열여덟 살 푸름이는 주마다 두 차례씩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갔고, 그곳에서 ‘아벨서점’이라는 자그마한 책숲을 만났어요. 둘레에서는 그 작고 낡은 헌책방에서 무슨 책을 읽느냐고 핀잔을 하거나 비웃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바로 그 작고 낡은 헌책방에서 주마다 이틀씩 하루 여덟 시간을 오로지 책읽기를 누렸습니다.

  아니, 책읽기를 누렸다기보다 책을 새로 보고 느끼며 배웠어요. 저는 마을마다 작게 있는 헌책방을 놓고서 이때부터 ‘책숲’이라고 여겼습니다. 숲이 고스란히 옮겨온 책터요, 도시에서 마음을 놓고 쉴 뿐 아니라 새로운 기운을 얻는 샘터라고 느꼈어요.

  이렇게 책숲에서 책하고 숲하고 사람하고 삶을 새로 배울 무렵, ‘콘사이스 국어사전’을 통째로 두 차례 읽는데, 너무 어처구니없을 만큼 일본말이나 일본사람 이름이나 뜬금없는 영어나 외국말이 잔뜩 실린 모습을 보았어요. 이때 저도 모르게 “국어사전이 이 따위라면 차라리 내가 짓겠다.”는 말을 한숨처럼 내뱉았습니다. 이 작은 말이 빌미가 되어 저는 어느새 한국말사전(국어사전)을 새로 짓는 길에 섰고, 지난 2016년에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철수와영희 출판사 펴냄)을 써낼 수 있었습니다.

  스물 몇 해 만에 제 작은 ‘말씨(문득 내뱉아서 씨가 된 말)’를 이룬 셈인데, 이 작은 말씨를 이루고 나서 이듬해인 2017년에 두 가지 우리말 책하고 사전을 새로 써냅니다. 하나는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철수와영희 출판사 펴냄)이고, 다른 하나는 ‘읽는 우리말 사전’이라고 간추려서 말하는 《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 1 겹말풀이와 돌림풀이 다듬기》(자연과생태 출판사 펴냄)입니다. 그리고 2017년 11월에 764쪽에 이르는 도톰한 사전을 새로 하나 더 냅니다. 바로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철수와영희 출판사 펴냄)입니다.


오늘날 글을 쓰는 분이 부쩍 늘지만, 사전을 곁에 두는 분은 뜻밖에 무척 적구나 싶어요. 작가나 기자나 전문가라는 이름이 아니어도 누구나 글을 마음껏 쓸 수 있는 멋진 오늘날입니다만, 막상 ‘글을 쓰’면서 사전을 찬찬히 살피는 손길은 매우 적구나 싶어요. 사전을 곁에 두느냐 안 두느냐는 매우 달라요. 아주 흔하게 쓰는 낱말이더라도 이 ‘흔한 낱말’을 사전을 뒤적여 다시 읽고서 새롭게 헤아리며 글을 쓰는 사람하고, ‘흔한 낱말’이니까 구태여 사전을 안 뒤적이고 그냥 글을 쓰는 사람하고는 똑같을 수 없어요. (4쪽)


  2016년에 써낸 《비슷한말 사전》은 원고종이로 3000장이 넘습니다. 이를 꾸밈지기가 곱게 매만져서 496쪽으로 묶었어요. 2017년 가을에 선보인 《겹말 사전》은 원고종이로 4900장이 넘습니다. 이를 꾸밈지기가 알뜰히 매만져서 764쪽으로 묶었습니다.

  아마 이쯤에서 물을 만하지 싶어요. 《겹말 사전》이라면 아무래도 사람들이 겹말 얼거리로 글을 잘못 쓴 보기를 묶은 사전일 텐데, 어찌하여 원고종이로 거의 5000장에 이르도록 잘못된 보기를 엄청나게 찾아내어 도톰한 사전으로 엮느냐고 말이지요.


‘겹말’이란 “뜻이 같은 낱말을 겹쳐서 쓰는 말”을 가리킵니다. ‘초가집’이나 ‘처갓집’이나 ‘외갓집’ 같은 낱말이 겹말이요, ‘향내’나 ‘늘상’이나 ‘한밤중’이 겹말입니다. “도구와 연장을 쓴다”나 “느끼고 의식하다”라든지 “궁리하고 생각한다”나 “다른 대안”이나 “다시 반복하다”도 겹말이에요. “둥근 원”이라 하거나 “땅과 대지”라 말할 적에도 겹말이요, “똑바로 직진하다”나 “미리 예측하다”도 겹말입니다. ‘모래사장’이나 ‘모양새’가 겹말이고, ‘본보기’와 ‘살아생전’이 겹말이에요. “서울로 상경한다”라든지 “부정적이고 나쁘다”라든지 “아름답고 화려한”이 겹말이요, ‘삼세번’이나 “삼시 세끼”나 ‘시시때때로’가 겹말이지요. ‘아침조회’나 ‘야밤’이나 “헌신적인 희생”이나 “함께 연대”가 겹말이고, ‘연거푸’와 ‘이따금씩’과 ‘하나둘씩’이 겹말이에요. “잘못이나 실수”가 겹말이고 “저녁 만찬”이 겹말이며 “참고 인내하다”가 겹말입니다. 이밖에도 겹말은 수없이 많습니다. (8쪽)


  《겹말 사전》은 모두 1004가지 보기를 다룹니다. 이 사전을 내려고 2001년 1월 1일부터 2017년 7월 1일까지 모은 겹말 보기는 모두 1287꼭지입니다. 이 가운데 1004꼭지를 사전으로 묶었어요. 출판사로 글을 모두 넘기고 사전이 나온 뒤 오늘(2017.11.5.)에 이르도록 겹말 보기 181꼭지를 새로 모았습니다. 넉 달 사이에 벌써 181꼭지를 더 모은 셈인데, 저 스스로 새로운 사전을 쓰면서 날마다 꾸준히 배움길을 새삼스레 걷다 보니, 우리가 이제껏 제대로 안 느끼거나 지나친 겹말이 곳곳에서 자꾸 튀어나옵니다.

  이제 내놓은 《겹말 사전》에는 못 실었으나 요즈음 찾아낸 겹말 보기를 든다면, “소수의 몇 그루”, “일렬종대로 가지런하고 반듯하게 열 맞춰”, “이상하여 정상이 아니야”, “적갈색 빛”, “나뭇잎과 나무의 잎사귀”, “매일 일상 속에서”, “조금 더 과하게 애써”, “간절히 애걸복걸”, “구름 떼가 무리 지어”, “노동일”, “적성에 맞다”, “온기 없이 따뜻한 밥”, “언어로 말하는”, “빼앗기고 약탈당한”, “용의주도하여 철저히 빈틈없는”, “집에 돌아오는 귀가”, “나누고 공유하는”, “스스로 자발적”, “미리 선점”, “몸으로 실천”, “체득하고 경험한”, “희게 탁해지다”, “겹겹 포개다”, “야생에서 들로”, “이쪽 방향”, “모으고 저축하다”, “엔터테인먼트화로 즐겁다”, “시작한 것이 처음”, “좋아하고 호감을 가지다”, “키 작은 관목”, “올리고 업로드” 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꽃이 한창 만발하다”처럼 겹말을 쓰면서도 못 느끼기 일쑤입니다. “한도 끝도 없이”나 “혼자 독식”이 겹말이라는 생각을 안 하기도 하고, “회색빛”이나 “초록빛” 같은 겹말도 아무렇지 않게 쓸 뿐 아니라, 때로는 이런 겹말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버젓이 오르기도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 뜻풀이도 겹말풀이로 나오기 일쑤이고요.


한자말 ‘경운’은 ‘갈다’나 ‘갈아엎다’를 나타냅니다. “경운으로 갈아엎는”으로 쓰면 겹말이에요. 보기글을 쓴 분은 ‘경운·무경운’이라는 한자말을 잇달아 씁니다. 한자말로 짝을 맞추다 보니 이 같은 겹말이 나왔구나 싶어요. 처음부터 쉽게 ‘갈다·안 갈다(갈아엎다·안 갈아엎다)’만 썼다면 겹말도 아니 되면서 쉽고 부드러운 말씨가 될 수 있을 테지요. (74쪽)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제대로 못 쓰면서 겹말이 불거지는 까닭을 헤아려 봅니다. 학교에서 제대로 못 가르치는 탓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사전뿐 아니라 교과서도 한국말다운 한국말로 갈무리하지 못하니까요. 여기에 여느 신문이나 책이나 방송에서도 겹말이 툭툭 불거져요.

  방송 이름으로까지 널리 퍼진 “삼시 세끼”는 어찌해야 할까요? 이런 겹말은 널리 알려진 방송 이름이니 손질을 안 하고 그냥 써도 될까요? 방송에 흐르는 말이니 무턱대고 따라서 써도 될까요? 왜 “하루 세끼”나 “세끼니”나 “기쁜 세끼”나 “세끼 밥상”이나 “서로 세끼”나 “즐거운 끼니”처럼 새롭고 알맞게 말마디를 가다듬는 길로는 못 나아갈까요?


깊이 생각한다고 해서 한자말로 ‘사색’을 쓰니, “깊은 사색”이라 하면 겹말입니다. 한자말을 쓰고 싶다면 ‘사색’만 쓸 노릇이고, 누구나 쉽게 알아듣도록 말하려 한다면 “깊은 생각”으로 손보면 돼요. 더 헤아려 보면, ‘깊은생각’을 아예 새롭게 한 낱말로 삼을 수 있습니다. ‘깊은생각·좋은생각·너른생각·숨은생각·멋진생각·기쁜생각’처럼 즐겁게 새 낱말을 지어 볼 만해요. (117쪽)


  한국을 뺀 모든 나라에서는 사전을 ‘나라 규범’으로 내세우지 않습니다. 오로지 한국에서만 사전이 ‘나라 규범’이 됩니다. 이리하여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에서 ‘맞춤법하고 띄어쓰기를 반듯하게 갈무리하는 글’을 다루지요. 표준말·맞춤법·띄어쓰기로 사람들을 옭아맵니다.

  우리가 생각을 나누려는 말을 하자면 서로 ‘같은’ 말을 써야 할 테니, 표준말이나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여러모로 살필 만합니다. 그렇지만 한국은 이 나라 규범이 지나치지요. 즐겁게 말을 하도록 이끄는 틀이 아닌, 이렇게 해야 맞고 저렇게 하면 틀리다는 사슬이 되고 맙니다.


빛이 아주 아름답고 황홀한 모습을 가리켜 ‘눈부시다’라 하는데, ‘황홀하다’는 “눈이 부실 만큼 찬란하거나 화려하다”를 가리킨다고 해요. 돌림풀이예요. 더욱이 ‘찬란하다’나 ‘화려하다’는 모두 ‘아름답다’를 가리켜요. “눈부실 정도로 화려한”처럼 쓰면 겹말입니다. 한국말사전에 나오는 뜻풀이도 모두 겹말풀이에다가 돌림풀이가 되고요. ‘눈부시다’ 한 마디면 넉넉하고, ‘아름답다’를 알맞게 쓰면 됩니다. (164쪽)


  적잖은 분들은 ‘짜장면·자장면’ 이야기를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말을 슬기롭고 즐겁게 쓰도록 북돋우지 않고, 오직 위에서 시키기만 하는 사슬을 내세우는 국립국어원은 ‘자장면’만 쓰도록 오랫동안 윽박질렀으나 이제 살며시 두 손을 들었어요. 다만 살며시 두 손을 들었을 뿐입니다. 사전 뜻풀이나 보기글이 수두룩하게 엉망인데, 이를 손질하거나 가다듬는 데에서는 아직 나 몰라라예요.

  지난 2014년에 국립국어원은 드디어 ‘신나다’를 올림말로 삼았습니다. 저는 국립국어원에 ‘신나다’가 왜 올림말에서 빠졌느냐고 2001년부터 따졌어요. 2014년 가을까지 표준 맞춤법하고 띄어쓰기로는 ‘신 나다’로만 해야 했습니다. 이리하여 “재미나고 신 나는”처럼 써야 맞춤법에 들어맞은 셈이었지요.


‘따뜻하다’는 “정답고 포근하다”를 가리킨다고 하는데,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포근하다’는 다시 ‘따뜻하다’를 가리킨다고 나와요. 돌림풀이입니다. ‘정답다’는 “따뜻한 정”이 있는 모습을 가리킨다고 하니, 다시금 돌림풀이입니다. 그런데 ‘따뜻하다 = 정답다 = 따뜻한 정이 있다’라고 하는 돌림풀이 얼거리인 터라, “따뜻한 정”이라고 할 적에는 겹말이에요. 생각해 보셔요. ‘따뜻하다 = 따뜻한 정이 있다’라고 하는 뜻풀이나 말마디는 얼마나 얄궂은가요. 보기글에서는 “따뜻한 정”을 “따뜻한 마음”이나 “따뜻한 손길”이나 “따뜻한 눈길”이나 “따뜻한 품”으로 손질해 볼 수 있습니다. (228쪽)


  그런데 말예요, 나라에서 ‘신나다’를 올림말로 비로소 받아들이기는 했으나 ‘신명나다·신바람나다’는 아직 안 받아들입니다. 앞뒤가 어긋난 모습이라 할 테지요. 비슷한말 갈래를 넓게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짜증나다·싫증나다’는 아직 사전 올림말이 못 됩니다. ‘쓸모없다’는 사전 올림말이지만, ‘쓸모있다’는 사전 올림말이 아닙니다. 뒤죽박죽이에요.

  이런 뒤죽박죽인 표준 맞춤법 띄어쓰기에서 머무는 터라, 한국말로 새로운 문화나 살림이나 이야기를 담아내도록 하는 데에 이 나라 사전은 매우 많이 못 미칩니다.

  바람이 나오도록 해서 손을 말리는 것이 있어요. 이를 가리켜 영어로 ‘에어타올’이나 ‘핸드드라이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만, 왜 한국말로 알맞게 새 이름을 붙일 생각을 안 할까요? 손을 말리니 ‘손말리개’라 하면 됩니다. 바람을 일으켜 손을 말리니 ‘바람말리개’라 해도 되고요. 이처럼 알맞게 새로 짓는 이름을 그때그때 사전이 살뜰히 담아서 사람들한테 알려주는 몫을 맡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묵묵하다’는 “말없이 잠잠하다”를 뜻한다는데, ‘잠잠하다’는 “말 없이 가만히 있다”를 뜻한다고 하니, ‘묵묵하다 = 말없이 말없이 가만히 있다’인 꼴입니다. 겹말풀이예요. 더군다나 한국말사전은 ‘묵묵하다’에서는 ‘말없이’로 적으나, ‘잠잠하다’에서는 ‘말 없이’로 적으면서 띄어쓰기도 오락가락이에요. (291쪽)


  말을 담는 한국말사전은 백과사전이 아닙니다. 이것저것 잔뜩 뭉뚱그리면 한국말사전이 못 됩니다. 말을 말답게 가누도록 이끌고, 말마다 다른 결을 밝힐 적에 비로소 한국말사전입니다.

  우리가 사전에서 낯설거나 어렵다 싶은 낱말만 찾아보다 보니, 사전을 곁에 놓고서 말을 새롭게 배우려는 몸짓이 안 되다 보니, 이런 흐름이 쌓이고 쌓여서 어느새 한국말사전은 대단히 부질없는 종이꾸러미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어를 처음 배울 적에 어떻게 하나요? 일본말이나 프랑스말을 처음 배울 적에 어떻게 하나요? 우리는 낯선 외국말을 새로 배울 적에 어김없이 책상맡에 그 외국말을 담은 사전을 둡니다. 모든 외국말을 사전에서 하나하나 찾아보기 마련입니다.


시골에 있는 닭이라 ‘촌닭’이요, 촌스러운 사람이라 ‘촌닭’이라 한답니다. “시골 촌닭”은 겹말입니다. 한국말사전을 보니 ‘촌스럽다’는 “시골에 사는 사람답다”라든지 ‘시골스럽다’로 풀이하지 않아요. 어수룩한 데가 있는 사람을 가리켜 ‘촌스럽다’라 한다네요. 시골이라는 터전을 얕보거나 낮보거나 깔보려는 생각이 ‘촌닭·촌스럽다’ 같은 낱말에 스미는구나 싶습니다. (417쪽)


  제가 《비슷한말 사전》에 이어 《겹말 사전》을 써낸 뜻이라면, 아직 한국은 사전다운 사전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에요. 비슷한말을 먼저 한동아리로 묶어서 보여주면서 결이 다른 뜻하고 보기를 밝히려 했어요. 이다음으로는, 말뜻을 더욱 또렷하게 짚어서, 한자말이든 영어이든 한국말이든, 제자리에 제대로 쓸 수 있는 길을 우리 스스로 익히고 살피자는 마음을 밝히려 했고요.

  《겹말 사전》은 짜임새를 보자면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흔히 잘못 쓰는 겹말 보기’를 다룹니다만, 잘못 썼다고 나무라려는 마음이 아닙니다. 왜 잘못 쓰고 말았는가를 살피려 합니다. 어떻게 하면 즐겁고 알맞으면서 또렷하고 쉽게 쓸 수 있는가를 헤아리려 합니다.

  ‘의사소통’에서 그치지 않고 ‘생각을 나누는 이야기’를 이루도록 우리 스스로 말에 깃든 숨결을 읽어 보자는 뜻을 《겹말 사전》으로 펼치려 해요.


처음으로 지어내는 모습을 가리키는 ‘창출’은 “새로 만듦”으로 고쳐써야 한다고 합니다. “새로 만들다”를 가리키는 ‘창출하다’인 셈이에요. “새롭게 창출되어”처럼 쓰면 겹말이 되지요. ‘창출’이라는 한자말을 처음부터 안 쓴다면 이 같은 겹말이 안 나타나리라 봅니다. (379쪽)

즐겁다’라는 낱말을 한국말사전에서는 ‘흐뭇하다 + 기쁘다’로 풀이합니다. ‘흐뭇하다’는 ‘흡족 + 만족’으로 풀이하고, ‘기쁘다’는 ‘흐뭇하다 + 흡족’으로 풀이해요. 이런 뜻풀이라면 벌써 겹말풀이가 됩니다. ‘만족 = 흡족’으로 풀이하고, ‘흡족 = 만족’으로 풀이하는 한국말사전이에요. 더구나 ‘행복 = 만족 + 기쁨 + 흐뭇함’으로 풀이하니 아주 뒤죽박죽입니다. ‘즐겁다’하고 ‘기쁘다’하고 ‘흐뭇하다’는 틀림없이 다른 낱말이에요. ‘행복’이라는 한자말을 꼭 써야 한다면 ‘행복’만 쓸 노릇이면서, ‘즐겁다’나 ‘기쁘다’나 ‘흐뭇하다’가 어떻게 다른가를 알맞게 살펴서 써야겠습니다. 한국말사전은 몽땅 뜯어고쳐야 할 테고요. (576쪽)


  저는 2016년 《비슷한말 사전》, 2017년 《겹말 사전》에 이어, 2018년 새해에는 “살려쓰기 사전”을 쓰려고 합니다. 이러면서 새해에는 “5살 어린이 첫 사전”을 함께 쓰려고 해요.

  틀에 가두거나 사슬에 매이도록 위에서 억누르는 사전이 아닌, 우리가 서로 이웃이라는 대목을 느껴서 즐겁게 어깨동무하는 길에, 말로 나타내는 싱그러운 마음을 넉넉히 어우르는 살림을 짓도록 북돋우는, 신나면서 푸른 사전을 지으려 합니다.

  다 다르기에 저마다 아름다운 비슷한말입니다. 겹치지 않게 가다듬을 줄 알기에 슬기로우면서 사랑스러운 말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보태어 본다면, 우리 나름대로 우리 살림살이를 나타내는 새로운 말을 짓는 손길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한자말 ‘협력’은 “힘을 합하여 서로 도움”을 뜻한다고 합니다. “힘을 모아 협력할”처럼 쓰면 “힘을 모아 힘을 모아 서로 도움” 꼴이 돼요. “힘을 모을”이라고만 하든지 “서로 도울”이라고만 해야 올바릅니다. 한자말을 쓰고 싶으면 ‘협력할’로만 적습니다. (760쪽)


  저는 어제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워 면소재지 초등학교 놀이터로 나들이를 다녀오면서 함께 웃으며 놀았어요. 서로 마주보며 걸상에 앉아서 쿵쿵 엉덩방아를 찧는 놀이틀 한 가지를 함께 즐기면서 문득 “‘엉덩널’ 재미있지?” 하고 작은아이한테 말했습니다.

  우리 겨레 오랜 놀이인 널뛰기는 서서 발을 굴리면서 높이 오릅니다. 놀이터에 있는 놀이틀은 걸상에 앉아 서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엉덩이를 바닥에 쿵쿵 찧으며 즐겁습니다. ‘널방아’라 할 수도 있고, 재미있게 ‘엉덩널’이라 할 수 있어요.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이 이웃님한테 새로운 말을 새로운 생각으로 지어서 새로운 삶을 새로운 사랑으로 가꾸는 길동무책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해마다 새로운 사전을 한두 권 또는 여러 권을 써낼 수 있도록 더욱 힘쓰려고 합니다. 넉넉한 마음하고 따사로운 눈길로 지켜봐 주셔요. 고맙습니다. 2017.11.5.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전 짓는 책숲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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