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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일부터 17일까지 인천과 서울을 오락가락하는 마실을 마치고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니 물이 얼었다.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기에 설마 얼랴 싶었는데 얼고 말았다. 아직까지 안 녹는다. 몸은 무척 무겁다. 하루를 자고 따뜻한 낮에 햇빛 받는 사진으로 새로 찍거나 스캐너로 긁어야지. 이번 책은 다음주쯤에나 알라딘 목록에 뜨려나. 아직까지 책방에는 안 들어가네... 

  


책을 내놓으며 붙인 꼬리말 : 삶을 사랑하는 글쓰기


 삶을 사랑하는 글쓰기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글쓰기입니다. 목숨을 사랑하는 글쓰기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글쓰기입니다. 책을 사랑하고 노래를 사랑하며 사진을 사랑하는 글쓰기입니다. 풀과 나무와 꽃과 나비와 벌레 모두를 사랑하는 글쓰기입니다. 자전거와 하늘과 바닷물과 물고기를 사랑하는 글쓰기입니다.

 꾸미고 싶지 않은 글쓰기입니다. 가꾸고 싶은 글쓰기입니다. 덧바르고 싶지 않은 글쓰기입니다. 껴안고 싶은 글쓰기입니다. 내세우고 싶지 않은 글쓰기입니다. 토닥이며 어루만지고픈 글쓰기입니다.

 《사랑하는 글쓰기》라는 이름으로 ‘오늘날 이 땅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제대로 살피지 않으며 엉뚱하게 잘못 쓰는 겹말’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겹말을 바로잡는 이야기를 펼치며 붙인 “사랑하는 글쓰기”라는 이름은 자칫 너무 크거나 동떨어졌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아니, 참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굳이 “사랑하는 글쓰기”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저를 비롯해 우리 집식구와 이웃과 동무와 둘레 사람들 누구나 우리 말글을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꿈꾸기 때문입니다. 내 사랑을 담아 글 한 줄을 쓰고, 내 사랑을 실어 말 한 마디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기 때문입니다.

 미움을 담는 글이 아닌 사랑을 담는 글로 거듭나면 고맙겠습니다. 가르침을 밀어넣는 말이 아닌 사랑으로 함께 배우는 말로 새로워지면 반갑겠습니다.

 국어학이나 언어학이라는 틀에 사로잡히기보다, 내가 사랑할 말과 내가 좋아할 글이라는 고운 보금자리 마련하면 기쁘겠습니다. “우리 말 달인”이라거나 “우리 말 상식”이라거나 “바른 말 고운 말”이라는 울타리에 매이기보다, 서로서로 사랑할 삶과 다 함께 어깨동무할 터전이라는 어여쁜 마음밭 일구면 보람차겠습니다.
 

..  

 그동안 나온 내 낱권책들

<사랑하는 글쓰기>(호미,2010)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양철북,2010)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내 1인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은 2007년부터 2010년 12월까지 모두 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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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히유, 사흘에 걸쳐 아이랑 둘이서 서울마실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를 안고 다니느라 팔다리와 허리가 쑤시고 결려 쓰러질 판이다. 몇 가지 글조각 끄적이고 얼른 곯아떨어져야겠다. 아무튼, 소식이나마, 인사나마 남기고 쓰러져야지... @.@ 

 

ㄱ.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ㄴ. 책 헌책방 삶 

ㄷ. 사진책 읽는 즐거움 

 만세...를 불러야 할까. 이 세 가지 책을 바탕으로, 또다른 세 가지 책이 가지를 치고, 이 여섯 가지 책을 발판 삼아 해마다 새로운 책을 꾸준하게 내놓을 밑틀을 얻는다. 책을 내주려 하는 분들은 한결같이 고맙고 사랑스럽다. 참말, 신나게 책을 쓸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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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011년에 <10대 청소년한테 들려줄 우리 말 이야기> 글을 씁니다. 책이름은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로 나올 텐데, '통하다'라는 이름이 내키지 않으나, 아무튼 이런 이름으로 책을 쓰기로 했어요. 얼마 앞서부터 신나게 이 글을 쓰는데, 출판사에서 바라는 꼭지에 따라, 맨 끝에 "우리 말과 얽힌 묻고 알려주기 스무 가지"를 넣어야 한답니다...

스무 가지가 되는 '궁금한 이야기'로 무엇이 있으려나요?

우리 말과 글하고 얽혀 궁금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은 대목을 물어 보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__) 물음으로 뽑힌 분들한테는 나중에 책을 부쳐 드릴 테니까, 알라딘서재 방명록이나 쪽지나 누리편지로 주소를 여쭐 때에 가르쳐 주셔요~ 출판사에서는 다음 다섯 가지를 보기로 내놓았답니다.
 

 ㄱ. 교과서와 신문은 띄어쓰기가 왜 다른가요
 ㄴ. 표준말과 사투리란 무엇인가요
 ㄷ. 띄어쓰기도 달라지나요
 ㄹ. 인터넷에서 ‘뭥미’처럼 쓰는 말도 나중에 표준말이 되나요
 ㅁ. 한자말은 쓰면 안 되나요


그리고, 다른 모임 게시판에서 다음 같은 물음이 나왔어요. 살펴보시고, 참말 대답하기 만만하지 않다거나, 아주 궁금하다거나, 청소년한테 도움이 될 만한 물음을 마음껏 퍼부어 주셔요 (__)


1. 순 우리말이란 무엇인가요?
2. 사투리에서 표준말이 된 말은 어떤 게 있나요?
3. 자주 틀리는 순우리말은 얼마나 많을까요?
4. 우리말로 착각하는 일본말은 무엇이 있나요?
5. 왜 우리나라는 쉬운 우리말 놔두고 어려운 한잣말을 섞어서 말을 하고 글을 쓰게 되었나요?
6. 말에 영어나 한잣말을 많이 섞어 쓰면 뭐가 문제가 되나요?
7. 읽기 교과서에 보면 일제시대에는 우리말을 지키는 일이 민족 얼을 지키는 일과 같았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뜻인가요?
8. 깨끗하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살려서 쓴 글 또는 시를 나에게 보여주세요. (아이들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우리말이 어떤건지 감이 잘 없습니다.)
9. 중학교 1학년 아이들 교과서에 '주동', '능동', '사동', '피동' 구분하기가 나오는데 아이들이 대개는 아주 어려워합니다.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문법을 쉽게 알려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10. 저마다 쓰는 말을 표준말과 사투리로 왜 갈라놓나요?
11. 토박이말은 한자말보다 말 만들기가 정말 어렵나요?
12. 누구나 알기 쉬운 말을 놔두고, 어려운 한자말이나 영어를 글에 쓰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13. 요즈음 휴대폰에 사용하는 단어들과 어법에 관하여서는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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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0-12-08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극에서 쓰는 말과 우리가 쓰는 말은 왜 다를까요?
북한과 남한의 표준어를 통일할 수는 없나요?

숲노래 2010-12-08 12:26   좋아요 0 | URL
흠... 만만하지 않으나 빠뜨릴 수 없는 물음이로군요... @.@
 



 책 두 권 함께 쓰기


 책 두 권을 함께 씁니다. 먼저, 사진책을 이야기하는 책을 하나 씁니다. 사진책을 이야기하는 책은 낱권으로 엮을 만한 부피로 글을 다 모았으나, 그러모은 글 가운데 절반쯤 되는 글을 덜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다른 데에 쓰기로 했어요. 나라안 사진쟁이들은 아직 ‘사진 이야기’를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해서 ‘나라안 사진쟁이 이야기’를 쓴 글은 통째로 덜었습니다. 그래서 이만큼 새로 씁니다.

 다음으로, 우리 말을 이야기하는 책을 하나 씁니다. 그동안 쓴 다른 ‘우리 말 이야기’만으로도 책을 열 권 넘게 내놓고 남지만, 새 글을 새삼스레 씁니다. 진작에 쓴 글이 잔뜩 있으면서 새 글을 쓰자니 눈이 아프고 등허리가 휩니다. 그렇지만 여느 사람들은 교재나 참고서처럼 앎조각이 환히 드러나도록 글을 적지 않으면 제대로 읽어 주지 않는다고 하기 때문에, 저로서는 참 쓰기 싫은 글을 씁니다.

 두 가지 책을 함께 쓰면서 생각합니다. 글은 저 스스로 좋아하는 결대로 씁니다. 따로 남한테 읽힐 마음으로 쓰는 글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말을 이야기하는 책은 다른 사람이 읽는다는 생각으로 써야 합니다. 이 대목에서 골이 아파, 원고지 예순 장 남짓 되는 첫머리를 쓰고 난 뒤 지끈지끈 아픈 머리를 어찌저찌 가눌 길이 없습니다. 하루를 푹 쉬고 사진책을 이야기하는 책에 넣을 글을 하나 여밉니다. 이렇게 다른 책 글을 하나 여미고 나니 조금은 개운합니다. 어차피 나는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지만, 내가 쓴 내가 좋아하는 글을 다른 사람이 읽기도 하고 안 읽기도 하는데, ‘다른 사람한테 읽히려는 글’이라고 생각하면서 쓰기보다, ‘언제나처럼 내가 좋아하는 내 삶을 고스란히 담는 글’로 갈무리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곱씹습니다.

 이러면서 새로운 책 하나를 또 엮기로 다짐합니다. 두 가지 책 글만 쓰다 보면 아무리 저 스스로 마음을 가벼이 다스린다 할지라도 때때로 머리가 터질는지 모르거든요. 세 번째로 함께 쓰기로 한 책은 환경책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저는 수많은 갈래 책 가운데 환경책을 몹시 좋아합니다. 인천에서 시골로 살림집을 옮기며 사진책 도서관을 조촐히 열어 놓는데, 저 스스로 사진책 도서관을 열어 놓을 뿐 아니라, 제가 가장 마음 쏟아 적바림하는 글은 ‘우리 말 이야기’이건만, 제가 가장 아끼는 책은 환경책입니다.

 환경책은 사람이 살아가는 밑틀을 다룹니다. 요즈음 쏟아지는 적잖은 환경책은 이와 같은 ‘사람이 살아갈 밑틀’이 아닌 ‘환경 지식’을 다루기 일쑤인데, 참다운 환경책이나 옳고 어여쁜 환경책은 ‘환경 지식’을 다루지 않아요. 환경 지식을 다루는 책은 환경책이 아니라 여느 학문책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한국땅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환경책’은 속알을 살피면 환경책이 아닌 ‘학문책’이거나 ‘지식책’이에요.

 이렁저렁 세 가지 책을 함께 쓰는데, 이 세 가지 책을 쓰기 앞서 또다른 책 하나를 써 왔습니다. 음, 네 번째 책이라 해야 하나요? 정작 맨 처음 쓰던 책인데. 아무튼, 네 번째 책은 골목길 마실을 하며 사진을 찍는 이야기를 다루는 책입니다. 이 책은 인천문화재단에서 해마다 하는 문예기금 공모에 넣으려고 글을 갈무리했어요. 인천문화재단 기금 공모는 어제로 끝났습니다. 그러니까 어제 문화재단에 글을 보내 주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공모에 제 글을 보내지 않았어요. 한참 망설이다가 그만두기로 했어요. 이 글을 마무리짓고 이래저래 지원 서류를 쓰자니 몹시 골치가 아프더군요. 다른 무엇보다 지원 서류 쓰기가 참 번거롭고 까다로와서 못 하겠더군요. 이 지원 서류를 쓰자면 여러 날 다른 일을 붙잡지 못하는데, 둘째를 밴 몸아픈 옆지기를 보살피면서 스물여덟 달을 함께 사는 딸아이랑 놀자면, 도무지 엄두가 안 납니다. 글은 다 써 놓았으나 책으로 여미는 틀을 짜지 못했어요. 아니, 안 짜기로 했어요. 언젠가 누군가 이 글을 책으로 내 보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주섬주섬 다시 그러모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오늘 제 삶으로서는 집식구랑 오순도순 지내는 데에 더 크게 힘을 쏟아야 한다고 느껴요.

 그러면 다른 세 가지 책도 안 써야 옳다고 여길 만한데, 이 가운데 두 가지 책은 출판사에서 내주기로 했답니다. 우리 말 이야기책은 출판사에서 우리 살림돈을 보태어 준다며 아직 계약서도 안 쓰고 글도 안 모였는데 계좌번호부터 알려 달라 하더군요. 몹시 고마운 일입니다. 세 번째 책도 출판사에서 내주리라 믿으며 글을 갈무리합니다. 될까 안 될까 모를 노릇이지만, 되리라 믿으며 글을 갈무리한답니다.

 오늘은 모처럼 아이가 아침에 느즈막하게 일어나 주어, 아빠는 아침에 글조각을 살짝 다듬었습니다. 아이하고 아침을 맛나게 먹었으니, 아이보고 한 시간쯤 혼자 놀라 해 놓고, 아빠는 아빠 일을 조금 더 하고 나서 아이하고 놀아야지 싶어요. 이제 열한 시 즈음에 빨래를 하고, 이때부터 저녁을 먹을 때까지는 아이랑 복닥이고 씨름하며 얼크러져야지요. 날이 가장 따뜻할 때에 산에 올랐다가, 보일러집에 전화를 넣어 우리 집 망가진 콘트롤박스(이 녀석을 무어라 다른 이름으로 고쳐서 일컬어야 할까 모르겠군요)를 바꿀 수 있는가 여쭈어야겠습니다. (4343.12.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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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새로 나와서 이주에 책방에 들어간 내 여덟째 책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에 적은 머리말. 머리말이라지만 좀 깁니다. 이 글을 쓸 때에는 머리말로 썼다기보다는 청소년책을 놓고 청소년을 보내는 고운 넋한테 편지를 쓰는 마음이었습니다. 

 


 여는 글 : 푸른책 푸른삶 푸른날


 1.

 우리 말에는 ‘아이’와 ‘어른’이 있고, ‘젊은이’와 ‘늙은이’가 있습니다. 짝을 짓는 우리 말이기 때문에 이밖에 다른 말은 없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방정환 님은 따로 ‘어린이’라는 말을 지었습니다. 우리한테는 ‘아이’라는 말이 있으나, 어린 나날을 보내는 목숨들을 좀더 아끼고 사랑하고픈 마음을 담아 새말 하나를 지었습니다.

 저는 ‘푸름이’라는 말을 곧잘 쓰고 있습니다. 이 낱말은 저뿐 아니라 둘레에서도 익히 쓰고 있으나 국어사전에는 안 올라 있습니다. 저로서는 딱히 누군가 이 낱말을 썼기 때문에 따라서 쓰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분들 또한 누군가 이 낱말을 쓰고 있어서 따라서 쓰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청소년’이라는 한자말 풀이가 아니더라도, 아이였던 나날을 거쳐 어른으로 자라나는 넋들이 보내는 나날이란 바로 ‘푸른’ 나날이라고 느끼니 저절로 쓰는 ‘푸름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린이들이 즐겨읽도록 마음을 기울이는 책을 일컬어 ‘어린이책’이라 합니다. 지난날에는 ‘아동도서’라 했습니다. 푸른 넋들, 곧 푸름이들이 즐겨읽도록 마음을 바치는 책을 놓고 ‘청소년책’이라 합니다. 그러나 저는 ‘푸름이책’이라 말하고, 한 글자 줄여 ‘푸른책’이라고 곧잘 이야기합니다.

 푸름이란 이름 그대로 ‘푸른 사람’을 가리킵니다. ‘푸른’ 사람이란 ‘풀과 같은’ 사람입니다. 풀은 아직 꽃이 되지 못한 목숨이요 나무로 자라는 목숨 또한 아닙니다. 우람한 나무 한 그루로 자라자면 어떠한 나무이든 아주 작은 씨앗 하나가 땅에 뿌리내려야 하고, 이 씨앗이 움을 트고 새 잎을 틔워야 합니다. 어떠한 나무라 할지라도 맨 처음에는 씨앗 하나요, 잎사귀 하나이며, 풀포기 하나인 나날을 거칩니다.

 이리하여, 푸름이란 ‘풋내기’하고 닮았습니다. ‘풋능금’이나 ‘풋사랑’처럼 아직 여물지 못한 모습을 담습니다. 그런데, 우리들 푸름이들만 ‘아직 여물지 못한’ 모습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숱한 ‘안 푸름이’인 어른들 가운데 제대로 여물지 못한 사람이 더없이 많습니다.

 저는 딸아이 하나를 옆지기와 함께 돌보며 살아가는 아저씨 삶을 보내고 있습니다. 푸름이하고는 한참 먼, 머잖아 우리 딸아이 또한 푸름이가 될 아저씨 나날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어린이책을 좋아하고 푸름이책을 즐깁니다. 어른이라 해서 어른책만 보지 않습니다. 저는 사진책 그림책 만화책 글책 노래책 모두 기쁘게 맞아들입니다. 제 삶을 일깨우고 제 넋을 북돋우며 제 길을 열어젖히는 책이라면 다 고맙다고 느낍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 책도 좋고 나라밖 사람들 책도 좋습니다. 옛사람 책도 좋으며 오늘날 사람 책도 좋습니다. 헌책방마실을 하며 찾아드는 책 하나가 좋고, 새책방마실을 하며 골라드는 책 하나가 좋습니다. 책다운 책이면 언제나 기쁘고 들뜹니다.

 어린 나날부터 제가 품은 꿈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어른이 되겠다”입니다. 국민학교 4학년 적 실과 시간에 ‘내 꿈 발표하기’를 하는 자리에서 저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하고 제 꿈을 밝혔습니다. 동무와 교사는 킬킬 깔깔 끅끅 푸하하 하며 웃었습니다. 그렇지만 제 꿈은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이 한 가지뿐입니다. 나이만 어른인 사람이 아닌, 밥그릇 비운 숫자만 어른이 아닌, 몸뚱이와 살갗만 어른이 아닌, 참다이 어른인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읽는 책들은 저 스스로 어른이 되어 가도록 길동무가 되고 어깨동무가 되는 책들이라고 여깁니다. 어린이책이라 해서 어린이만 읽는 책이 아니라, 어린이부터 어른 누구나 읽는 책입니다. 푸름이책이라면 마땅히 푸름이부터 어른 모두 읽는 책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푸름이들은 ‘푸름이책’만 읽을 노릇이 아니라 ‘어린이책’을 함께 읽으면서 푸름이 스스로 맑고 고우며 튼튼한 어른이 되도록 이끌고 돕는 좋은 책을 찾아서 만나면 됩니다. 추천도서나 권장도서가 아닌 푸름이로 살아가는 나 스스로한테 가장 착하고 참되며 고운 책을 찾아서 만나야 합니다. 베스트셀러도 아니지만 스테디설레 또한 아닌 나한테 가장 기쁘며 고맙고 반가울 책을 살펴서 쥐어들어야 합니다.

 누가 읽으라고 건네는 책을 읽는다고 나쁠 일이란 없습니다. 그러나 나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면서 찾아내어 읽을 책입니다. 도서관마실을 하든 새책방마실을 하든 헌책방마실을 하든, 나 스스로 내가 읽을 책은 내 눈길대로 살피며 내 손으로 골라서 내 가방에 담아 내 고향동네 내 살림집에서 나 스스로 내 바쁜 겨를을 쪼개어 읽을 책입니다.

 푸른삶을 일구는 우리 푸름이들이 스스로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푸름이들 스스로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으면 푸름이들 스스로 찾아들 좋은 책을 곧바로 그때그때 알아채거나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푸름이들 스스로 살아가는 매무새 그대로 푸름이들이 맞이할 책을 골라듭니다. 푸름이들 스스로 아름다운 삶을 바라며 애쓴다면 아름다움을 담고 아름다움이 녹아든 참된 책을 스스로 느끼며 찾아듭니다. 푸름이들 스스로 더 많은 돈과 이름과 힘을 꿈꾼다면 푸름이들 스스로 돈벌이와 이름높이기와 권력좇기에 가까운 책만 자꾸자꾸 집어들기 마련입니다. 살아가는 대로 읽는 책이지, 살아가지 않는 대로 머리에 지식으로 채울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부디 푸름이들 푸른날을 기쁘게 삭이면서 즐기면 좋겠습니다. 푸른날은 한 번뿐입니다. 어른으로 보내는 오늘 하루도 한 번뿐입니다. 나이들어 허리 구부정한 몸으로 보내는 삶 또한 한 번뿐입니다. 좋은 삶도 궂은 삶도 오로지 한 번만 나한테 찾아듭니다. 이렇게 한 번 받아들여 즐길 푸른삶이기에 우리 푸름이들한테는 가없이 아름다운 하루하루입니다.


 2.

 저는 대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졸자입니다. 대학교를 그만두고 고졸자로 살아가니 이 땅에서는 더없이 고달프고 힘겹습니다. 그러나 저는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바라지 않았기에 언제나 홀가분하며 뿌듯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우리 딸아이를 함께 낳은 옆지기를 지난 2007년 여름에 만나서 살아가고부터는 ‘나는 왜 고등학교 때부터 학교를 떠날 생각을 못했나?’ 하고 뉘우쳤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대학교가 엉망진창인 줄을 깨닫기 앞서, 고등학교에서도 고등학교가 엉망진창이었고, 중학교에서도 중학교가 엉망진창이었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이때에는 학교를 떠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무시무시한 몽둥이를 휘두르고 갖은 욕설과 체벌과 비아냥과 따돌림이 판치는 학교란 껍데기만 학교이지 참다운 학교가 아닙니다. 이런 데에서 내 알뜰하고 애틋한 푸른삶을 버려야 할 까닭이란 없어요. 왜냐하면 저한테는 졸업장이 쓸모있지 않으니까요. 저한테는 제 아름다울 하루하루가 쓸모있으니까요.

 대학 졸업장을 내밀어 공무원 7급이 되든 5급이 되든, 또는 대학 강사나 교수가 되든 무엇 합니까. 교사가 되는 길은 교대를 나와 초중고등학교에서 교사가 되는 길만 있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농사를 짓든 신문딸배를 하든 일하면서 대안학교 교사가 될 수 있어요. 아닌 게 아니라, 저는 ‘고졸 주제’에 대안학교 특강 교사로 때때로 불려 가서 일을 거들곤 합니다. 저한테는 졸업장이란 없지만, 저한테는 제 삶이 있기 때문에 대안학교에서 대안학교 멋진 동무들하고 멋진 삶과 생각을 나눌 수 있습니다.

 저는 1992년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헌책방을 다녔습니다. 이때까지는 ‘헌책’이 있는 줄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제 둘레에서 ‘책을 읽으려면 헌책방에 가 보렴’ 하고 알려준 어른이나 교사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저 어쩌다가, 참 우연하게 헌책방에 발을 디뎠고, 처음 디딘 발걸음이 제 삶을 아주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어떤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 목록뿐 아니라 권장도서와 추천도서와 교양도서와 명작도서 목록에 어느 한 번조차 들지 않았는데, 그토록 아름다우며 훌륭한 책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파묻히거나 잠든 채 헌책방 책시렁에 꽂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름난 분 책이라고 다 훌륭하겠습니까. 이름 안 난 사람들 책이라고 다 허접하겠습니까. 우리가 책을 읽을 때에는 ‘글쓴이 이름’이나 ‘출판사 이름’이나 ‘펴낸 날짜’를 읽지 않습니다. 종이에 찍힌 글월에 서린 ‘글쓴이 삶’과 ‘책을 엮은 사람 땀방울’을 읽습니다.

 저는 제가 이 길을 걸었기 때문에 푸름이들한테 ‘중학교를 집어치우라’라든지 ‘고등학교를 때려치우라’라든지 ‘초등학교를 걷어차라’라든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습니다. 다만, 학교는 굳이 안 다녀도 나 스스로 내 삶을 얼마든지 아름답고 알차며 사랑스레 돌볼 수 있음을 제 삶 그대로 보여줄 수 있습니다. 저한테는 푸름이들한테 들려주거나 쑤셔넣을 지식조각은 아무것도 없지만, 제 모습 그대로 푸름이들 앞에 씩씩하고 즐겁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책을 읽을 때에는 속을 읽으면 돼요. 책을 읽으면서 내 삶을 어루만지며 다독여 주면 돼요. 책을 읽고 난 다음에 내 몸과 마음을 어여쁘고 튼튼하게 일굴 수 있으면 돼요.


 3.

 우리 딸아이를 바라보면서 우리 푸름이들을 생각합니다. 우리 딸아이가 착하고 참되며 고운 사람으로 자라는 가운데 사랑스럽고 따스하며 넉넉한 믿음을 두루 나눌 수 있기를 바라듯, 우리 푸름이들한테 착함과 참됨과 고움이 깃들면서 사랑과 따스함과 넉넉함과 믿음이 무럭무럭 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만화책 《노다메 칸타빌레》가 드디어 23권으로 마무리되었어요. 《GREEN》이라는 재미난 만화를 그리기도 한 니노미야 토모코 님은 이제 한동안 푹 쉰 다음, 그동안 그린 만화와는 사뭇 다른 살가우며 아름다운 새 만화를 우리한테 선물해 줄 테지요. 사람은 누구나 무럭무럭 자라니까요. 열여섯에도 자라고 스물여섯에도 자라며 서른여섯이나 마흔여섯이나 쉰여섯에도 자라니까요. 자라지 않는 사람이라면 죽은 사람이고, 자라려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죽으려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푸름이들한테 이 책 《푸른책과 함께 살기》가 다문 거름 한 줌이 되어 푸름이들 스스로한테 좋은 길동무가 되어 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습니다. 모든 분들이 말할 수 없도록 고맙습니다.


2010년 6월 9일.
ㅎㄲㅅㄱ
 

 

-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 '우리글방'에 찾아온 고운 책손.

- 사진 하나 찍어 달라 해서 찍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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