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65 : 책을 읽는 도시

 경상남도 김해는 퍽 예전부터 ‘책읽는 도시’라는 이름을 내세웁니다. 경기도 파주에는 출판마을이 들어서면서 책도시로 거듭나려 애쓴다고 합니다. 이 나라 크고작은 도시에서 저마다 ‘책읽는 도시’라는 이름을 붙이려고 퍽 힘씁니다.

 ‘책읽는 도시’는 시장이나 군수가 “자, 이제부터 우리 시(군)는 책을 읽는 시(군)입니다!” 하고 외친들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널리 책을 읽고 두루 책을 사랑한다면, 시장이나 군수가 나서기 앞서 따사롭고 너그러운 책도시나 책마을로 이름을 날리기 마련입니다.

 오늘날 여러 지자체에서 ‘책읽는 도시’를 내세우는 까닭은, 그만큼 책을 안 읽기 때문이요, 책을 읽을 도서관이 없기 때문이며, 책을 살 책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지자체마다 ‘책읽는 도시’가 되고 싶으면 두 가지를 먼저 해야 합니다. 첫째, 건물이 우람한 도서관이 아니라, 작은 동이나 면이나 리에 조그맣게 책쉼터를 마련해야 합니다. 둘째, 아직 살아숨쉬는 새책방과 헌책방이 앞으로도 꾸준하게 책방 살림 잇도록 돕는 한편, 새로운 새책방과 헌책방이 문을 열도록 여러모로 도와야 합니다.

 어느 한 가지 책을 읽자고 외친다 한들, 책읽기 모임을 열어 독서토론을 한들, ‘책읽는 도시’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책이 재미없거나 책을 들출 겨를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책을 재미있게 느낄 만한 삶터가 되어야 하고, 사람들이 책을 가까이할 만큼 삶이 너그러워야 합니다. 메마른 정치와 서글픈 경제와 비틀린 제도권교육을 그대로 두면서 ‘책읽는 도시’가 될 수 없습니다. 아이들 모두 대학입시에 목매달도록 하면서 책을 읽거나 읽히지 못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는 일터에서 비정규직으로 아슬아슬하게 목숨줄을 잇거나 정리해고로 몸살을 앓는다면 책을 읽거나 읽히지 못합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맡긴 채 돈을 벌러 다니는 어버이가 저녁나절 고단함에 절디전 몸으로 아이들한테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읽히지 못합니다. 아이들한테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못 읽히는 어버이는 당신 삶을 살찌울 아름다운 이야기책을 찬찬히 살피거나 읽지 못합니다.

 책만 읽자 해서, 도서관을 큰돈 들여 짓는다 해서, 무슨무슨 걸개천을 길거리에 내걸거나, 이름난 몇몇 글쟁이를 불러서 강연모임을 마련한다 해서, 어느 도시인들 ‘책읽는 도시’가 되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도시란, 무엇보다 살아가기 좋은 터전입니다. 책을 읽는 도시란, 사람들이 자가용을 버리고 자전거로 시원시원 조용히 오가는 삶터입니다. 책을 읽는 도시란, 아시안게임이니 올림픽이니 하면서 수천 억을 들여 새 경기장 짓는 데에 돈을 바치는 데가 아니라, 새 경기장 지을 자리에 숲을 지키고 돈을 아끼면서 풀과 꽃과 나무를 사랑하는 넋으로 책 하나 가슴에 고이 품자고 하는 데입니다.

 경제성장을 바라면 ‘책읽는 도시’가 안 됩니다. 일류대학을 꿈꾸면 책을 읽지 못합니다. 사랑과 믿음으로 살아갈 때에만 책을 읽고, 책을 읽는 사람이 모여 책마을이 태어납니다. (4344.7.31.해.ㅎㄲㅅㄱ)
 

(내 고향 인천을 생각하면서 쓴 글. 인천은 책도시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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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31 20:51   좋아요 0 | URL
얼마 전 신문에서 읽었는데
일년 책 읽는 평균 권수가 한권이 안 되더군요. 그나마 거의 학습지이고
그리고 서울 경기 쪽이 평균 수치가 훨씬 높구요. 여하간 생각이 많은 통계였답니다. ㅡㅡ;;

숲노래 2011-08-01 06:04   좋아요 0 | URL
사람들이 문학책은 읽어도 환경책은 읽지 않아요.
환경책이 무언지 제대로 모르니까,
사회운동도 환경운동도 평화운동도... 아무런 진보운동도 하지 못해요.

인문책은 지식을 쌓는 책이 아니라,
나부터 삶을 바꾸려는 책이거든요...
 


 책으로 보는 눈 164 : 내 삶에 따라 읽는 책


 《도깨비를 혼내버린 꼬마요정》(한림출판사,2000)이라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이 그림책을 안다면, 아이 어버이라든지 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 교사라든지 어린이책을 좋아하는 어른이라든지 책마을 일꾼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지 않는 어른이나 둘레에 아이가 없는 어른이라면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을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교사가 아닌 중학교나 고등학교 교사라면, 또 대학교 교수라면 어린이책을 애써 읽으려 하지 않아요. 책마을 일꾼이라 하더라도 어린이책을 만들거나 다루지 않는다든지, 책마을 이야기를 글로 쓴달지라도 어른책 이야기만 쓰는 사람은 이러한 그림책이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저마다 알거나 읽거나 즐기거나 아로새기는 책이 다릅니다. 스스로 어떠한 길을 사랑하면서 뚜벅뚜벅 걸어가느냐에 따라 내 마음으로 받아들이려는 책이 다릅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가 가장 많이 읽는 책입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부터 읽는 책입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도 즐거이 읽도록 마련한 책입니다.

 ‘어린이책을 읽는 어른’이라는 말이나 ‘어른이 읽는 동화’라는 말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어린이책은 어린이만 읽도록 만들지 않으니까요. 동화책이나 그림책이나 모두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도록 만듭니다.

 설마,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어떠한 어린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읽을 책을 스스로 돈을 벌어 장만할 수 없습니다. 모든 어린이가 읽는 모든 어린이책은 ‘어른이 일을 해서 돈을 번 다음, 이 돈으로 책방에 마실을 가든 누리집을 뒤적여 집에서 소포로 받든’ 해야 합니다. 어린이책을 책방에서 사들이거나 도서관에서 빌릴 때에 ‘늘 어른이 먼저 읽거나 살피’기 마련이에요.

 그림책 《도깨비를 혼내버린 꼬마요정》은 참 예쁘며 시원한 그림에다가 참말 어여쁘며 시원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림으로 빚어 나누는 문화나 예술이라면 현대회화나 정통회화에 앞서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즐기는 그림책’만큼 돋보이거나 아름다울 문화나 예술은 둘도 없지 않겠느냐 싶도록 사랑스럽습니다.

 그런데, 막상 《도깨비를 혼내버린 꼬마요정》을 장만해서 읽는다더라도, 이 그림책이 어떻게 즐겁고 얼마나 고운가를 못 느낄 어른과 어린이가 꽤 있습니다. 제아무리 빛나는 그림책이라지만, 빛나는 속살을 읽을 빛나는 내 삶이 못 된다면 빛나는 책 하나를 가슴으로 품지 못해요. 돈을 더 벌기를 바라며 사는 책, 영어시험 점수를 높이려고 사는 책, 진급이나 승진을 바라며 처세를 잘하려고 사는 책, 재미난 이야기만 좇으며 사는 책, 베스트셀러라는 유행에 휘둘려 사는 책, …… 이런저런 책은 모두 내 삶이 어떠한가를 보여줍니다.

 고운 넋으로 고운 삶을 일굴 때에 고운 글을 쓰면서 고운 책을 빚습니다. 고운 얼로 고운 말을 나누며 고운 사랑을 어깨동무할 때에 고운 책을 알아보며 즐깁니다. (4344.7.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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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63 : 자랑하려고 읽는 책


 아무리 바빠도 밥을 먹어야 합니다. 바쁘기 때문에 끼니를 걸러도 되지 않습니다. 바쁘니까 하루에 한두 끼니만 먹는다든지, 밥때에 반 그릇만 먹어도 되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쁘기 때문에 잠을 안 자도 된다든지 반만 자도 되지 않습니다. 내 몸을 살찌울 밥을 먹고, 내 몸을 쉴 잠을 자야 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책을 읽어야 합니다. 바쁘기 때문에 책읽기를 걸러도 되지 않습니다. 바쁘니까 한 해에 한 권을 사서 읽는다든지, 한 달에 한 권 가까스로 사서 읽는다든지, 아예 책이라고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든지 해도 되지 않아요. 바쁘다 해서 내 마음과 넋을 살찌우는 책하고 등돌릴 수 없어요. 바쁘니까 책을 읽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밥을 굶어도 되거나 적게 먹어도 되지 않습니다. 돈이 많건 적건 배고프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가난하기에 잠을 적게 자야 하지 않습니다. 가난하대서 밤잠을 줄이거나 건너뛰어도 되지 않아요. 가난하니까 책 따위를 장만하는 데에 돈을 못 써도 되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마음밥을 안 먹어도 되지 않아요.

 가난하기에 더 맛나게 밥을 먹어야 합니다. 가난하니까 더 달콤하게 밤잠을 즐겨야 합니다. 가난한 만큼 더 알차게 마음밥을 맞아들여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마음과 넋을 살찌우는 책을 장만하는 데에 품과 돈과 땀을 들여야 합니다.

 1923년에 태어나 인천 화평동에서 수채그림을 그리며 마지막 삶을 빛내는 박정희 할머님 이야기가 담긴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걷는돌,2011)가 새로 나왔습니다. 2000년에 처음 나왔으나 제대로 빛을 못 보고 스러졌는데, 새옷을 입고 한결 어여삐 태어났습니다. 새로 나온 책 머리말에 박정희 할머님은 “좋은 동화책을 찾아다니다가 구할 수가 없어 직접 만들어 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려 넣은 〈육아일기〉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주었다.”고 적습니다. 네 딸과 한 아들이 태어나 자란 자취를 곰곰이 되돌아보며 적바림한 육아일기는 아이들이 한글을 깨우치는 길잡이가 되기도 했고,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다섯 아이가 저희 어린 삶뿐 아니라 저희 새 아이들한테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좋은 길동무가 되기도 합니다. 박정희 할머님은 당신 다섯 아이를 돌보며“유명한 사람,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스스로의 삶을 즐기는 행복한 어른으로 크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고 덧붙입니다.

 참 그렇습니다. 누구나 이름난 사람이 되거나 돈 잘 버는 사람이 되거나 힘센 사람이 될 까닭이 없어요. ‘어버이한테 효도하는 사람’이 될 까닭이나 ‘나라에 충성하는 사람’이나 ‘회사에 몸바치는 사람’이 될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제 삶을 사랑하며 아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동무와 이웃과 살붙이를 믿으며 어깨동무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착하고 참다우며 곱게 살아야 할 아이들이에요. ‘효도’하거나 ‘충성’하거나 ‘근면’한 삶은 자랑하는 책읽기입니다. ‘사랑’하고 ‘믿’으며 ‘나누’는 삶이 될 때에 비로소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책읽기예요. 착한 어버이가 착한 아이를 낳아 착한 책을 읽습니다. (4344.6.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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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6-22 15:35   좋아요 0 | URL
된장님의 글을 읽다보면...어느새 저도 독기 빠지고 유순해 지는 느낌이 들어요.
바빠도 책을 읽어야 할텐데 쉽지 않네요.

숲노래 2011-06-22 18:34   좋아요 0 | URL
바빠서 책을 못 읽는 사람은 없어요.
몸이나 마음이 힘들어서 책을 못 읽는답니다...
기운내소서~
 


 책으로 보는 눈 162 : 알고 싶어 읽는 책


 내가 다 아는 이야기를 굳이 책으로 읽지 않습니다. 때로는 내가 다 아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책으로 읽을 수 있고, 다 알면서 재미가 있다고 느껴 책으로 읽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다 아는데 애써 책으로까지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다 아는 뻔한 이야기를 영화로 본다든지, 학교에서 강의나 수업을 들을 까닭이란 없어요. 내가 모르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힘껏 책으로 읽습니다. 내가 배워야 할 이야기라서 학교를 찾아가 강의나 수업을 듣습니다.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고개숙여 차근차근 새겨듣습니다.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고맙게 받아먹습니다.

 호시노 미치오 님 사진과 글로 조그맣게 이루어진 《숲으로》(진선출판사,2005)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호시노 미치오 님이 밟은 숲을 밟아 본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호시노 미치오 님은 여느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깊디깊다 할 만한 숲속을 헤맸고 들판을 누볐습니다. “나는 흙 위에 남겨진 커다란 발자국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숲 속으로 이어진 희미한 길은 곰이 다니는 길이었습니다(13쪽).”는 말처럼, 사람길이 아닌 곰길을 걷거나 다람쥐길을 걷습니다. 연어길에 함께 서거나 사슴길에서 다리를 쉬며 하룻밤을 묵습니다. 사진책 《숲으로》는 여느 사람들 여느 눈썰미와 여느 삶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그러나, 《숲으로》는 아주 남다르거나 아주 새로운 이야기이지는 않습니다. 이제 사람 발길이 안 닿는 곳이 되었을 뿐,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터에서 다 다른 사랑을 나누면서 다 다른 삶을 일구던 곳 이야기를 밝힙니다. 더 좋은 삶이나 더 나은 삶이 아니라, 예나 이제나 한결같이 흐르는 땅과 사랑과 삶을 바라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니다. 더 큰 도시로 찾아듭니다. 도시로 몰려들어 물질문명을 마음껏 누립니다. 작은 도시에서 살거나 시골에서 지내더라도 물질문명을 똑같이 즐깁니다. 입으로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뿐 아니라 한국땅 원자력발전소를 근심하지만, 막상 몸으로는 전기를 안 쓰거나 덜 쓸 뿐 아니라, 전기를 써서 만드는 수많은 물질문명을 안 쓰거나 덜 쓰는 길을 살피지 않아요.

 숲이 숲다웁도록 하는 이야기를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사람답도록 하는 슬기를 깨닫지 않습니다. 삶이 삶답도록 하는 깜냥을 빛내지 않습니다. 사랑이 사랑답도록 하는 땀방울을 흘리지 않습니다.

 이즈막에 새로 나온 《원전을 멈춰라》(이음,2011)는 벌써 스물한 해 앞서 《위험한 이야기》(푸른산,1990)라는 이름으로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스물한 해 앞서 이 나라 사람은 “위험한 이야기”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이라서 더 잘 느끼지 않습니다. 지난날보다 책으로 조금 더 읽을 뿐입니다. 위험한 이야기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알고 싶어 읽는다기보다 원자력발전소가 뻥 하고 터지니까 읽습니다.

 무언가를 알려고 한다면 무언가를 머리에 앎조각으로 담겠다는 뜻이 될 수 없습니다. 무언가를 알아차리면서 내 삶을 새롭게 일구겠다는 뜻이어야 비로소 알려고 애쓴 일이요, 배움이며 가르침입니다. 이 나라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알도록(살도록)’ 할 이야기를 먼저 스스로 ‘알려고(살려고)’ 애쓰는 교사가 몹시 드뭅니다. (4344.6.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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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61 : 좋아서 읽는 책


 좋아서 읽는 책입니다. 좋아서 기쁘게 장만하는 책입니다. 좋아서 예쁘게 선물하는 책입니다. 좋아서 내 삶으로 담고픈 책입니다. 좋아서 날마다 다시 들추는 책입니다. 좋아서 언제나 곁에 두면서 되새기는 책입니다.

 좋아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좋아서 곱게 살림을 꾸립니다. 좋아서 나무를 아끼고 좋아서 꽃과 풀을 보듬습니다. 좋아서 길을 천천히 걷습니다. 좋아서 파란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좋아서 누런 빛깔 흙을 맨발로 밟으며 보송보송한 기운을 살며시 받아들입니다. 좋아서 나비 날갯짓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만화책 《누나는 짱!》(와타나베 타에코 그림,학산문화사 펴냄)은 일본에서 1990년대 첫머리에 나왔고, 한국에서는 1999∼2000년에 옮겨집니다. 4권 87쪽을 보면, 다섯 쌍둥이가 툭탁툭탁 얽히다가는  “타쿠미도, 나오토도, 똑같지 않으니까 둘이 있는 거잖아?” 하는 이야기가 톡 튀어나옵니다. 쌍둥이라 으레 똑같이 생겼다고 여기지만, 똑같이 생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똑같은 삶이 아니요 똑같은 넋이 아니에요. 둘은 많이 닮았다 할 만하지만 ‘많이 닮았’을 뿐, ‘서로 다른’ 예쁜 목숨이에요.

 《누나는 짱!》 12권을 펼치면 100쪽에 “설령, 그래도 못 쉬어. 나를 대신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으니까.”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만화책은 연예기획사에 몸담아 손꼽히는 가수나 연예인으로 뛰는 젊거나 어린 사람들이 나오는데, 고작 스물 안팎밖에 안 된 어린 사람들이 삶과 사랑과 사람을 꿰뚫는 눈이 참으로 남다릅니다. 아니, 남다르다기보다 ‘널리 사랑받는 손꼽히는 연예인’이기에 앞서 ‘나는 이 지구별에 내 어버이한테서 오직 하나뿐인 사랑을 받아 태어난 꼭 하나뿐인 예쁜 목숨’인 줄을 뼛속 깊이 알뜰히 아로새겨요.

 모두 열다섯 권에 이르는 만화책 《누나는 짱!》을 둘째 아이 똥기저귀를 빠는 틈틈이 읽습니다. 둘째가 우리 집으로 찾아온 지 꼭 이레가 되는 오늘까지, 이 아이는 날마다 똥기저귀를 마흔 장, 오줌기저귀를 두 장 즈음 내놓습니다. 몸이 아픈 옆지기는 집일을 하나도 못하기에 첫째 때하고 똑같이 둘째 때에도 기저귀 빨래나 집일을 아버지가 도맡습니다. 둘째 똥기저귀를 빨면서 ‘그래, 첫째 때에도 똥기저귀를 세이레까지 마흔 장 남짓 늘 빨았잖아?’ 하고 떠올립니다. 그때 어떻게 이런 빨래를 했나 나도 참 대단하구나 하고 생각하며 둘째 똥기저귀를 빱니다. 둘째 기저귀를 빨며 첫째한테 얘기합니다. ‘네가 아기였을 때에도 이렇게 했어. 네가 아기였을 때에는 둘째 때보다 훨씬 오래 안고 달래며 놀아 주었어.’ 그러나 첫째는 저한테 더 사랑을 쏟아 달라며 엉겨붙거나 달라붙습니다. 아이니까, 아직 네 살밖에 안 된 아이라 할 테니까, 오래오래 더 깊이 사랑받고 싶으니까, 아이는 더 촐싹대고 더 방정맞게 굴겠지요.

 그러니까, 아이는 좋아서 엉겨붙습니다. 좋아서 떼를 씁니다. 좋아서 조잘조잘 떠들거나 노래를 부릅니다. 어버이는 좋아서 아이를 업고 안으며 토닥입니다. 좋기에 힘겹거나 바쁜 틈을 쪼개어 책을 읽습니다. 기저귀를 갈고 아기를 품에 살며시 안은 채 책을 읽습니다. (4344.5.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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