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70 : 서울시장과 책읽기


 우리 집 네 식구는 다른 시골로 살림을 옮겼습니다. 오래오래 뿌리내리면서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즐거이 살림을 꾸릴 만한 곳으로 옮겼어요. 그동안 지내던 시골은 충청북도 충주시 끝자락에 있었고, 새로 지낼 시골은 전라남도 고흥군 아래쪽에 있습니다. 네 식구 살림이 전라남도 고흥으로 옮긴다 하니까, 어느 분은 ‘가까워지네.’ 하고 말하지만, 어느 분은 ‘더 멀어지네.’ 하고 말합니다. 우리 식구 깃들 마을에서는 ‘마을에 새 사람들이 찾아드네.’요, 면내나 읍내에서는 ‘새 얼굴이 찾아오네.’입니다.

 길그림으로 따지자면 전라남도 고흥은 아랫녘 끝자락입니다. 서울에서 고흥으로 오자면 500킬로미터가 넘는 길입니다. 고흥에서 서울로 가재도 500킬로미터가 넘는 길이에요. 서울에서 고흥이 멀다면, 고흥에서 서울도 멀어요.

 고흥군에서 나오는 〈고흥신문〉은 한 주에 한 차례 나옵니다. 고흥군 이야기만 담으니 한 주에 한 차례 나와도 신문이 얇다 할 수 있을 테지만, 마을사람 마을살림을 구성지게 담으려 한다면 날마다 열 쪽 스무 쪽씩 펴내도 모자랍니다. 논일 밭일 집일 마을일 이야기를 차곡차곡 담으면 날마다 다 다른 사람들 다 다른 이야기를 아기자기하게 엮을 수 있어요.

 얼마 앞서 재·보선 선거를 치렀고, 이 자리에서 서울시장 다시 뽑는 일이 크게 불거졌어요. 중앙일간지라 하는 신문은 온통 서울시장 이야기로 기사를 채웠어요. 누리신문도 이와 마찬가지였어요. 충주시장이나 남원시장 다시 뽑는 이야기를 다룬 신문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중앙일간지라서 이럴밖에 없는지 모르지만, 중앙일간지는 ‘중앙’, 그러니까 ‘한복판’, 곧 ‘서울’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만 다뤄요. 게다가 서울에서도 더 커다랗다는 이야기, 더 알려지고 더 이름나다는 이야기 아니면 쳐다보지 않아요. 서울땅 일곱 평짜리 작은 집 작은 식구 이야기를 다루는 중앙일간지는 없어요. 서울땅 골목동네에서 텃밭 일구는 이야기를 다루는 중앙일간지는 없어요. 서울땅에서 조용히 자전거 출퇴근 하는 사람 이야기를 날마다 다루는 중앙일간지는 없어요. 정치꾼 이야기만 큼지막하게 날마다 다뤄요.

 오제 아키라 님 만화책 《나츠코의 술》(학산문화사,2011) 2권을 읽고 《술의 장인 클로드》(대원씨아이,2007) 1권을 읽습니다. 두 가지 만화책은 ‘술빚기’가 줄거리이지만, ‘술을 사랑하는 삶’이 알맹이입니다. 술을 사랑하는 삶이란, 술에 절어 해롱거리는 삶이 아닙니다. 내가 가장 아끼면서 돌볼 꿈과 넋이 무엇인가를 짚을 때에 비로소 ‘사랑’ 어린 삶입니다.

 김기찬 님 사진을 그러모은 《골목안 풍경 전집》(눈빛,2011)을 나란히 읽습니다. 김기찬 님이 바지런히 골목길 사진을 담을 때에는 빛을 제대로 못 보았으나, 이제서야 퍽 뒤늦게 빛을 받습니다. 그러나, 빛을 받기는 받더라도 ‘어제를 담은 골목 사진’이 빛을 받을 뿐, ‘오늘 골목동네에서 가난하며 작고 예쁘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는 빛을 받지 못해요. 서울시장이나 대통령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요. (4344.10.3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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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69 : 한글날맞이 이야기책


 올해에도 한글날은 있습니다. 한글날이 국경일이든 기념일이든 공휴일이든, 어찌 되든 한글날은 있습니다. 한글날 하루가 빨간날이 된대서 더 거룩히 여기지는 않으나, 한글날 하루가 까만날이기만 하대서 더 어설피 깎아내리지는 않습니다.

 해마다 맞이하는 한글날 즈음, 우리 말글을 다루는 이야기책 몇 권 태어나곤 합니다. 올해에는 저도 우리 말글을 이야기하는 책 하나를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철수와영희)라는 이름을 붙여 내놓습니다. 굳이 한글날에 맞추려 하지는 않았으나 한글날에 맞추어 한겨레 말글을 기리거나 돌아보는 일은 뜻깊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글날에 맞추어 한겨레 말글을 기리거나 돌아보는 책 이야기를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에서 그닥 다루어 주지 않습니다. 다룬다 한들 한글날 언저리에서 살짝 스치듯 다루고 끝입니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뿐 아니라, 여느 삶을 일구는 수수한 우리들부터 여느 때에 우리 말글을 참다이 사랑하거나 착하게 아끼거나 곱게 북돋우지 않아요.

 신문사 기자나 방송국 피디한테만 ‘여보시오. 누구보다 당신들이 우리 말글을 아껴야 하지 않소?’ 하고 따질 수 없습니다.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든지, 초·중·고등학교 교사라든지 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라든지, 국어사전을 엮는 사람이라든지, 국립국어원 공무원이라든지, 한글학회 일꾼이라든지, 이와 같은 사람들끼리 사랑하거나 아끼거나 북돋울 한겨레 말글이 아니에요. 아주 마땅한 노릇이지만 아주 마땅히 잊고 마는데, 이 땅에서 지식인이나 전문가만 한국말을 나누거나 한국글을 쓰지 않아요. 잘난 사람이건 못난 사람이건 많이 배운 사람이건 적게 배운 사람이건, 누구나 한국말을 나누고 한국글을 써요.

 한글날이기에 한겨레 말글 이야기를 더 돌아보거나 살펴야 하지 않습니다. 한 해 삼백예순닷새 내내 한겨레 말글 이야기를 알뜰히 돌아보면서 살펴야 합니다. 어린이날 하루만 내 아이와 이웃 아이를 사랑해도 될까요? 어버이날 하루만 내 어버이와 이웃 어르신을 섬기면 되나요? 한 해 내내 한결같이 아끼고 사랑하며 섬기는 넋으로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를 보듬어야 할 삶입니다. 한 해 내내 늘 아끼고 사랑하며 섬길 한겨레 말글이에요. 한 해 내내 우리 집 밥차림을 살피고, 한 해 내내 우리 집 살붙이 마음을 어루만지며, 한 해 내내 우리 집 살림을 가꿔야 해요.

 ‘우리 말글 달인’이 안 되어도 됩니다. 참말로 띄어쓰기나 맞춤법은 틀려도 됩니다. 나 스스로 어떠한 삶을 사랑하면서 한길을 예쁘게 걸어가는 사람인가를 깨달아야 해요. 내 삶길을 씩씩하고 아름다이 일구면서 이웃과 살붙이와 동무하고 나눌 어여쁜 말글이란 무엇인가를 스스로 찾아야 해요. 아름다운 삶에서 비롯하는 아름다운 넋이요, 아름다운 넋에서 꽃피우는 아름다운 말입니다. 아름다운 말을 사랑할 때에 아름다운 글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책 하나 알아보면서 껴안습니다. 아름다운 꿈을 아름다운 땀으로 일구려 할 때에 아름다운 빛을 느끼면서 아름다운 씨앗 하나 내 보금자리 깃든 조그마한 마을에 살포시 심습니다. (4344.10.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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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1-10-09 09:47   좋아요 0 | URL
안타깝게도 광고 먼댓글은 지웁니다...
애써 올려 주신 분한테 죄송하다는 글 한 줄 남기면서.
 


 책으로 보는 눈 168 : 책을 언제 읽어야 할까


 사람들이 나날이 책을 덜 읽는다지만, 책을 읽는 사람은 예나 이제나 읽어요. 책을 좋아하면서 책을 살가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가난한 살림일 때이건 가멸찬 살림일 때이건 책을 알맞게 장만해서 즐거이 읽습니다. 책을 안 읽는 사람은 예나 이제나 안 읽어요. 바쁠 때에는 바빠서 안 읽고 느긋할 때에는 느긋해서 안 읽어요.

 책을 빨리 읽는 사람은 책을 늘 빨리 읽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책을 언제나 많이 읽어요. 걸음이 빠른 사람은 걸음이 늘 빠릅니다. 일이 많아 바쁜 사람은 노상 일이 많아 바빠요. 삶 그대로 책을 읽고, 삶 그대로 마음을 씁니다.

 사람들은 책뿐 아니라 영화를 즐기고 노래를 사랑합니다. 춤이나 연극이나 그림을 좋아해요. 신문도 많으며 손전화로 신문글을 언제 어디서나 읽습니다. 정보와 지식이 넘치고, 상식과 소문이 흐릅니다. 그러나, 막상 내 몸으로 녹이거나 삭이는 이야기는 무엇인지 아리송해요. 책이며 영화이며 새소식이며 가득하지만, 문화나 예술은 춤을 추지만, 이들 지식이나 정보나 문화나 예술은 조각조각 난 채 내 삶을 아름다이 못 돌보거나 이웃사랑을 어여삐 못 나누지 싶습니다.

 북아메리카 토박이 사람들과 삶을 사진으로 담은 에드워드 커티스 님 책이 《북아메리카 인디언》(눈빛,2011)이라는 이름을 달고 태어났습니다. 저는 에드워드 커티스 님 사진책을 예전에 일본판과 미국판으로 읽었습니다. 한국판으로는 나오기 힘들겠다고 여겼어요. 한국에서는 사진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을 뿐 아니라 사진에 깃든 넋을 옳게 읽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700쪽이 넘는 두툼한 사진책을 만지작거리면서 참 대견한 녀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국판 책에 실린 사진 빛느낌은 일본판이나 미국판보다 퍽 떨어집니다. 사진을 다루는 솜씨나 매무새가 아직 못 미쳐요. 가만히 보면, 한국땅에서 디지털사진기 한 대쯤 안 갖춘 사람은 거의 없다 할 만하지만, 사진읽기와 사진보기와 사진찍기를 슬기로이 살피는 분은 퍽 드뭅니다.

 집에서 옆지기하고 《샤먼 시스터즈》(대원씨아이)라는 아홉 권짜리 만화책을 함께 읽습니다. 옆지기는 이 만화책이 그림도 괜찮고 줄거리도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샤먼 시스터즈》를 그린 타카토시 쿠마쿠라 님 다른 만화책은 한국말로 옮겨지지 않습니다. 《샤먼 시스터즈》 또한 널리 사랑받지 못해요. 아니, 널리 사랑받지 못한다기보다 이 만화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찬찬히 헤아리지 못한다고 해야 맞는 말이겠지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는 게 어떨까요? 저는 이렇게 당신과 얘기할 수 있어서 기쁘니까요(4권 62쪽).” 하는 말마따나, 돈이 있건 없건 이름이 높건 낮건 힘이 세건 여리건, 더 너그러우면서 한결 사랑스레 살아가지 못할 때에는 책을 손에 쥐더라도 책맛을 볼 수 없습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책을 언제 읽어야 좋을까 하고 차분히 되뇝니다.

 아이하고 마주한 자리에서는 아이 눈을 바라보며 웃으면 됩니다. 아이한테 놀잇감을 쥐어 주거나 수레에 태워 어디 마실을 가거나 값진 옷을 입히거나 값나가는 가루젖을 먹여야 하지 않아요. 따순 어머니 품에서 젖을 알맞게 먹이면서 포근한 아버지 품에서 시원을 바람을 쐬도록 안으면 됩니다. 나부터 사랑스러울 때에 아이를 사랑스레 껴안고, 나 스스로 따사로울 때에 따사로운 책 하나 손에 쥡니다. (4344.9.2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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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67 : 책을 읽는 마음


 나라 안팎으로 이름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님이 쓴 글을 그러모은 《영혼의 시선》(열화당,2006)을 읽었습니다. 브레송 님은 “사진기는 환경을 존중해야 하고, 사회적 배경을 묘사하는 삶의 환경을 포함시켜야 한다(29쪽).”고 이야기합니다. 참 옳고 무척 맞는 이야기입니다. 사람과 삶과 삶터를 바라볼 줄 아는 눈길이기에 사진 하나 어여삐 빚을 수 있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야기는 브레송 님만 꺼내지 않습니다. 나라 안팎으로 이름나지 않은 수많은 여느 사람들도 한결같이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내 삶을 사랑하고 내 삶터를 알아야 합니’다.

 내 삶을 사랑하지 않고서야 ‘무상급식’이 어떠한 일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정치꾼들이 시끄러이 떠들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 깨달아야 할 ‘무상급식’입니다. 경제꾼들이 어수선하게 외치지 않더라도 내 머리와 마음으로 알아채야 할 ‘4대강사업’입니다. 경찰과 판검사가 읊어야 할 만한 ‘국가보안법’일 수 없습니다. 신문기자가 쓰는 글을 읽고서야 ‘진보와 보수’를 판가름한다면 벌써 늦습니다.

 조 신타 님이 그리고 데라무라 데루오 님이 글을 쓴 그림책 《임금님과 수다쟁이 달걀 부침》(돌베개어린이,2003)을 읽습니다. 그림책 임금님은 높직하게 올려세운 성벽으로 둘러싸인 안쪽에서 살아갑니다. 임금님이 성벽 밖으로 나갈 일이란 아주 드물 뿐 아니라 거의 없습니다. 성벽 안쪽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임금님이 성벽 바깥 터전이나 사람이나 자연을 알 길이란 없습니다. 성벽 안쪽에는 냇물도 바람도 멧자락도 푸나무라든지 숲도 없습니다. 오직 사람들이 만든 돌길에 돌집에 돌방이 있습니다. 창과 방패를 든 무시무시한 군인들이 가득 있습니다. 임금님이 이곳 성벽 안쪽에서 닭장 문을 함부로 열어 모든 닭이 빠져나오는데, 임금님은 당신이 잘못을 저지르고도, “‘앗, 큰일났다.’ 임금님은 깜짝 놀라 도망쳤습니다(8쪽).”라는 말마따나 그냥 냅다 내빼면서 당신 잘못을 숨깁니다.

 어리숙한 임금님을 섣불리 탓할 수 없습니다. 임금님은 자연을 모르고 자연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자연하고 벗삼으며 살아가지 않습니다. 볼 줄 모르고 느낄 줄 모르며 알 줄 모르는데, 임금님을 나무랄 수 없습니다. 길은 하나입니다. 임금님이 무거운 금관을 벗고 무거운 비단옷을 벗으며 맨몸 맨발로 성벽 밖으로 뛰쳐나가 냇물로 뛰어들어 멱을 감거나 풀숲에 드러누워 해바라기를 해야 합니다.

 이리하여, 온통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시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꽁초니 쓰레기니 아무 데나 버릴 뿐 아니라, 발을 밟거나 어깨를 툭 치고도 ‘잘못했습니다’ 하고 고개숙일 줄 모르는 모습을 어찌 꾸짖을 수 없습니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삶을 모르고 사람을 모르며 사랑을 모르는데, 어떻게 ‘무엇이 잘못이고 무엇이 참이며 무엇이 빛인’ 줄 알아차릴까요.

 시골에서 흙을 일구며 살아가는 사람은 책을 읽을 틈이 없습니다. 시골에는 책방이 없습니다. 시골은 인터넷도 느리고, 아예 안 들어오기까지 합니다. 도시에서 회사를 다니거나 가게를 꾸리는 사람은 돈벌이에 바빠 책을 들출 겨를이 없습니다. 도시에는 책방이 많고 인터넷도 빠릅니다. 책을 손에 쥐고 책을 읽는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삶을 사랑하려는 몸짓일까요. (4344.8.2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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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66 : 책을 읽는 소리


 두 아이는 집에서 옆지기가 돌보기로 하고, 아버지 혼자 자전거를 몰고 집을 나섭니다. 옆지기는 둘째를 낳고서 두 달 넘게 아무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나빴습니다. 둘째가 백 날째가 가까운 얼마 앞서부터 옆지기가 집일을 차츰차츰 맡아서 할 수 있습니다. 멧골자락 조용한 집에서 싱그러운 풀과 나무를 맞아들이면서 맑은 바람과 고운 소리를 받아들였기 때문일까요. 빨래기계를 안 쓰고 자가용을 몰지 않으며 텔레비전을 켜지 않는 우리 집에서는 모든 일을 손으로 합니다. 손으로 비질을 하고 손으로 걸레를 빨아 손으로 방을 훔칩니다. 손으로 둘째 기저귀를 빨고 손으로 기저귀를 널어 손으로 기저귀를 갭니다.

 아버지는 시골집에서 자전거를 몰며 이웃 면내로 갑니다. 이십 분 남짓 달립니다. 시골버스는 한두 시간에 한 번 지나가는데,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는 면내로 가자면 자전거를 몰거나 한참 시골버스를 기다리거나 택시를 불러야 합니다. 혼자 바깥마실을 하는 날이라 자전거를 몹니다. 자전거는 시외버스 짐칸에 싣습니다. 오늘은 시외버스 기사님이 차에서 내려 “자전거 안 다쳐요?” 하고 물으며 걱정해 줍니다. 참 오랜만입니다. 시외버스 기사님 가운데 1/5쯤은 자전거를 짐칸에 싣는 일을 못마땅해 합니다. 3/5은 무덤덤하고 1/5은 이렇게 따사로이 말마디를 건넵니다. “네, 튼튼하지 않으면 이 자전거를 탈 수 없잖아요.” 빙그레 웃습니다.

 시외버스에 올라탑니다. 빈자리에 앉습니다. 아버지가 찾아간 면내에서 탄 시외버스에는 사람이 얼마 없었는데, 다음 면내에서는 푸름이들이 아주 많이 올라탑니다. 널널하게 앉아 책을 읽다가 가방을 모두 무릎에 올려놓고 몸을 웅크립니다. 푸름이들 얼굴이 앳됩니다. 아이들 몇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금세 잠이 듭니다. 아이들은 다 함께 서울로 놀러 가는 듯합니다. 내 옆에 앉은 푸름이는 한손에 천 원짜리 여러 장을 꼬깃꼬깃 접어서 꼭 쥔 채 잡니다.

 시골집에서 옆지기랑 두 아이하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를 듣습니다. 벌레가 풀숲에서 풀잎을 건드리는 소리하고 벌레가 스르스르 우는 소리를 듣습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습니다. 끔찍하거나 모질다 할 만한 막비가 그치지 않기에 빗소리를 참말 지겹다 싶도록 듣습니다. 그렇지만 빗소리는 어찌할 길이 없습니다. 대통령이 사대강사업을 한대서 망가지는 자연 터전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땅 여느 사람들 스스로 자가용을 장만하여 자주자주 타면서 온갖 전자제품을 쓰고 쓰레기를 날마다 어마어마하게 버리니까 자연 터전이 무너지면서 이 여름에 막비가 퍼붓습니다. 막비가 퍼붓는 소리를 들으며 햇살이 언제쯤 비칠는지 꿈을 꿉니다.

 면내로 나와 시외버스를 탈 때부터 오로지 자동차 소리입니다. 서울에 닿은 뒤에도 자동차 소리입니다. 서울에서 볼일을 마치고 여관에서 묵을 때에는 냉장고와 정수기가 전기를 먹으며 끙끙대는 소리에다가 술이 얹힌 사람들 떠드는 소리를 듣습니다. 하루를 지새운 이듬날 새벽에 비로소 참새 몇 우짖으며 날아가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 이 나라 사람들 1/4이 서울에 몰려서 살아간다는데 서울사람은 새소리도 바람소리도 벌레소리도 나뭇잎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도 못 들으면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소다 오사무라는 일본사람이 쓴 청소년소설 《우리들의 7일 전쟁》(양철북,2011)을 여관 침대에 누워서 읽습니다. “모두 하늘 좀 봐. 별이 참 예쁘다(49쪽).” 아이들은 중학교부터 이루어지는 입시지옥에서 스스로 떨쳐나옵니다. 버려진 건물 옥상에서 한뎃잠을 자며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서울에서는 밤하늘 별을 하나도 볼 수 없습니다. 보드라운 살내음 소리가 죽고, 책을 읽는 소리도 죽습니다. (4344.8.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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