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으로 짓는 마음

 


  내가 살아가고 싶은 모습을 마음속으로 짓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나하나 그립니다. 내가 즐기고 싶은 놀이를 차근차근 떠올립니다. 내가 쓰고 싶은 글, 내가 먹고 싶은 밥, 내가 가고 싶은 곳, 내가 듣고 싶은 노래, 내가 마시고 싶은 물, 내가 보고 싶은 하늘, 내가 가꾸고 싶은 풀밭, 내가 일구고 싶은 숲을 저마다 가만히 마음속으로 짓습니다.


  스스로 꿈을 지은 뒤에라야 삶을 짓습니다.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하는 실마리를 풀지 않으면 하루가 흐리멍덩합니다. 오늘 하고 싶은 일뿐 아니라, 오늘 누리고 싶은 빛과 넋을 곰곰이 헤아립니다.

 

  글을 쓰면서 어제와는 사뭇 다르면서 오늘 하루 내 마음을 빛낼 만한 글을 쓰자고 다짐합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이제까지와는 퍽 다르면서 오늘 하루 내 사랑을 밝힐 만한 사진을 찍자고 다짐합니다. 가장 멋스러운 글이나 사진이 아닌, 가장 나답고 가장 살가운 글이요 사진이 되도록 내 마음을 다스리자고 다짐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동 트는 기운을 느낍니다. 아침에 아이들 오줌그릇을 비우며 저 멀리 멧봉우리 사이로 솟는 해를 바라봅니다. 아침저녁으로, 또 한낮에도, 언제나 맑고 밝게 노래하는 새들을 만납니다. 싱그럽게 흐르는 물을 마시고, 포근하게 부는 바람을 가슴으로 맞아들입니다. 내 몸과 마음은 바로 내가 마시는 물과 바람으로 이루어집니다. 내 넋과 눈길은 늘 내가 마시는 물과 바람에 따라 새로 태어납니다. 맑은 기운이 흐르며 맑게 꿈꾸자고 생각합니다. 밝은 기운이 감돌며 밝게 일하고 놀며 쉬자고 생각합니다. 꿈으로 삶을 짓고, 삶은 이야기로 다시 짓습니다. 이야기는 살이 되고, 살은 뼈가 되며, 뼈는 다시 꿈으로 이어집니다. 4346.10.1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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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똥별 기다리는 마음

 


  구름 하나 없이 새까맣고 깊은 밤에 별바라기를 하다가 별똥을 하나 봅니다. 별똥이 휘익 하얗게 빛나며 지나갈 적에 “어, 별똥이로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그제 저녁 별똥을 하나 본 뒤, 이튿날 저녁에도 별똥을 하나 봅니다. 오늘도 저녁이 다가오면 또 볼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그리 멀지 않던 지난날까지,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누구나 개똥벌레를 보고 박쥐를 보며 별똥을 보았습니다. 무지개를 보고 미리내를 언제 어디에서라도 모든 사람들이 보며 살았습니다. 고작 서른 해나 마흔 해입니다. 수백만 해나 수천만 해에 이르도록 사람들은 늘 별똥도 개똥벌레도 박쥐도 무지개도 미리내도 가까이하며 살았는데, 고작 서른∼마흔 해 사이에 이 모두를 내동댕이칩니다. 어쩌면 머잖아 개구리도 제비도 뱀도 안개까지도 사라질는지 몰라요.


  풀밭이 있어야 풀벌레가 삽니다. 풀벌레가 있고 날벌레가 있어야 개구리가 삽니다. 개구리가 있어야 뱀이 삽니다. 뱀이 있어야 멧새가 삽니다. 멧새가 살아야 또 다른 짐승들이 살아갑니다.


  풀밭이 있어야 풀과 나무가 자랍니다. 풀과 나무가 자랄 풀밭이 있어야 사람들이 논밭을 일구어 먹을거리 얻을 수 있습니다. 풀밭을 없애고 찻길과 아파트와 시멘트건물 끝없이 지으면, 사람들 스스로 삶터가 망가집니다. 도시에 공원이 있어야 하기도 하지만, 공원에 앞서 동네텃밭 있어야 하고, 학교텃밭도, 회사텃밭도, 공장텃밭도 모두모두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따로 밭으로 일구지 않고 조용히 쉬는 동네풀밭과 학교풀밭과 회사풀밭과 공장풀밭도 있어야 해요. 풀과 나무가 스스럼없이 자라면서 푸른 숨결 나누어 주는 자리가 있어야지요.


  별똥별을 기다리면서 우리 지구별에 푸른 숨결 넘실거리기를 빕니다. 별똥별을 바라면서 이 지구별에 풀과 나무가 사람들과 곱게 어우러질 수 있기를 빕니다. 4346.10.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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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빛을 읽는 마음

 


  풀잎이 빗물에 젖습니다. 나뭇잎도 나뭇줄기도 빗물에 젖습니다. 나무로 짠 평상도 빗물에 젖습니다. 나무에서 떨어져 뒹구르르 구르는 가랑잎도 빗물에 젖습니다. 모두 빗물에 젖습니다. 봄에는 상큼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빗물인데, 가을에는 어떤 느낌일까요. 살짝 추운 느낌일까요. 조금 서늘한 느낌일까요. 아, 이제 겨울이 코앞으로 닥치는구나 하는 느낌일까요.


  햇볕을 쬐는 풀잎은 반짝반짝 눈부신 풀빛입니다. 빗물을 받는 풀잎은 초롱초롱 맑고 밝은 풀빛입니다. 풀잎은 빗물을 받으며 목마름을 풀고, 가랑잎은 빗물을 받으며 천천히 흙으로 돌아갑니다. 4346.10.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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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냄새 맡는 마음

 


  아픈 냄새가 흐릅니다. 숲을 이루고 그늘을 드리우며 푸른 숨결 베풀던 나무들 모조리 잘린 멧자락에서 아픈 냄새가 흐릅니다.


  왜 멀쩡한 나무를 벨까요. 왜 떡갈나무 신갈나무 베고 소나무 몇 그루 달랑 남길까요. 땔감으로 쓸 생각이 아니면서 왜 삽차와 기계톱으로 멧기슭을 파헤쳐 나무도 풀도 몽땅 죽여야 할까요.


  누가 시키는 짓일까요. 누가 벌이는 일인가요. 나무가 없는 숲이 있는가요. 나무가 없는 메가 있을까요.


  군청 공무원은 스스로 씨앗을 내려 자라던 숲나무를 베고는, 돈을 들여 어떤 꽃나무를 나무젓가락처럼 박습니다. 나무젓가락 같은 어린나무가 쓰러지지 말라며 ‘나무 버팀대’까지 댑니다. 나무를 벤 자리에 다른 나무를 심으며 또 나무 버팀대를 쓰는 모습이 얼마나 어리석은 줄 깨닫지 않습니다.


  숲나무는 스스로 숲이 됩니다. 숲나무는 사람들이 억지로 베고 심고 한대서 숲이 되지 않습니다. 천 해를 살고 만 해를 살아가는 나무입니다. 사람이 섣불리 건드릴 만한 나무가 아닙니다. 앞으로 천 해나 만 해 동안 숲이 어떻게 될는지 하나도 모르면서 나무를 건드리지 마셔요. 이녁이 앞으로 천 해나 만 해쯤 살아갈 만한 목숨이라 하더라도 나무를 쉽게 건드리지 마셔요. 나무한테서 아픈 냄새 흐르게 하지 마셔요. 나무한테서 싱그러운 풀바람 흐르도록 사랑을 하셔요. 4346.9.3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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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읽는 마음

 


  예전에 바다였던, 아니 예전에 바닷물 드나드는 뻘밭이던 곳을 자전거로 달립니다. 뻘밭을 흙으로 덮어 논으로 바꾸었고, 논으로 바꾼 드넓은 들 사이사이 아스팔트나 시멘트를 깐 둑길이 있습니다. 자전거는 시멘트 둑길과 아스팔트 둑길을 달립니다. 한참 너른 들을 달리고 보니 예전에 뭍이던 곳하고 퍽 멀리 떨어집니다. 몇 킬로미터쯤 떨어졌을까, 퍽 멀리 떨어지기는 했는데, 이렇게 깊이 들어오면 돌아가는 길이 좀 힘들기는 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자꾸 달립니다.


  두 시간 즈음 간척지 너른 들을 자전거로 이리저리 달리다가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으로 돌아가다가 저 멀리 보이는 멧등성이를 바라봅니다. 뭍에서 멀리 떨어진, 아니 이제는 들이니까, 간척지 너른 들에서 저 먼 멧등성이 바라보며 높직하게 열린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자전거를 세우고 한참 고개를 들어 빙 둘러봅니다. 이리로도 저리로도 막힌 데가 없습니다. 이 깊은 들 안쪽까지 걸어서 들일 하러 올 사람은 없겠지요. 모두 경운기나 짐차나 오토바이를 몰고 들일 하러 오겠지요. 봄에 모를 심고 가을에 나락을 벨 적에 기계를 쓰고, 기계에 실어 나르겠지요.


  가을볕은 들판을 보듬습니다. 가을바람은 나락을 쓰다듬습니다. 가을내음은 바다까지 퍼집니다. 저 먼 바다에서는 바닷내음과 바닷노래가 바람에 실려 들판으로 밀려듭니다. 들빛은 바다빛으로 물들고, 바다빛은 들빛으로 젖습니다. 하늘은 들과 바다를 가만히 내려다보면서 맑은 숨결을 내어줍니다. 고즈넉한 들길에 서서 구름과 인사를 나눕니다. 4346.9.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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