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먹을 밥을 하는 마음

 


  내가 차리는 밥은 나도 먹고 옆지기도 먹고 아이들도 먹습니다. 아이들이 노느라 바쁘면 애써 차린 밥이 다 식을 때까지 밥상맡으로 안 모이기도 하는데, 여름날이라면 모르되 겨울날 따순 밥과 국이 다 식도록 밥상맡으로 모이지 않는 날이면, 이내 서운합니다. 애써 차린 밥을 안 먹어서 서운하지 않습니다. 아이들 몸으로 따순 기운이 덜 들어가겠구나 싶어 서운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우리 살붙이 모두 따순 넋 되고 따순 삶 되기를 바라는 이야기를 밥 한 그릇에 담아 아침저녁을 차립니다.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 못지않게 날마다 새롭게 자라는 어버이로 살아가고 싶어 아침저녁을 차립니다. 풀을 뜯고, 헹구고, 손질하고, 톡톡 끊거나 썰어서 예쁜 접시에 담습니다. 때로는 김을 장만해서 알맞게 자르고, 국을 끓일 적에는 으레 다시마를 불려서 끓인 뒤 작게 썹니다. 집일을 하며 손가락과 손마디에 굳은살 두껍게 잡히니 뜨거운 냄비이건 그릇이건 아무렇지 않게 집습니다. 뜨겁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내 어릴 적 우리 어머니 손도 오늘 내 손처럼 굳은살 두껍게 잡히며 단단했어요. 나는 어머니 손을 물려받아 오늘 하루 살아가고, 우리 아이들도 내 손을 이어받으며 저희 하루 살아가겠지요.


  아이와 살아가니 아이 먹을 밥을 차린다 할 테지만, 아이가 먹는 밥이란 어버이인 내가 먹는 밥입니다. 서로 먹는 밥이고, 서로 살리는 밥입니다. 아이한테만 이것저것 먹일 수 없어요. 어버이부터 이것저것 먹어야 합니다. 아이한테 고기를 먹이고 싶다면 어버이도 고기를 먹어야지요. 아이한테 풀을 먹이고 싶으면 어버이도 풀을 먹어야지요.


  지난날 돌이키면, 나는 풀을 그닥 안 먹는 삶이었습니다. 옆지기를 만나고 아이가 하나둘 찾아오면서, 밥차림에 풀빛이 차츰 늘어납니다. 앞으로 한 해 더 지나면 우리 집 밥차림은 더 푸른 빛이 될 테고, 두 해 더 흐르면 우리 집 밥차림은 한결 푸르게 빛나는 꽃밥 되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나 혼자 아닌 아이들도 나란히 풀을 뜯어서 밥상에 올릴 테니까요.


  옆지기가 처음 풀물 짜서 건네던 날을 돌아봅니다. 처음에는 풀물을 마시기 무척 힘들었는데, 이제는 풀물을 아주 잘 마십니다. 처음에는 날푸성귀 씹어서 먹기가 수월하지 않았으나, 이제는 날푸성귀가 가장 맛있어, 들길을 지나거나 숲속을 걷다가도 아무 풀이나 먹음직스럽다고 느끼면 톡톡 뜯어서 입에 넣고 한참 오물거립니다. 봄에도 가을에도 나뭇잎 새로 돋은 자국 보면, “나무야 한 잎만 주라.” 하고 말하면서 새로 돋은 잎을 톡 뜯어서 입에 넣고 오물오물 오래도록 씹습니다. 나무 한 그루 이 땅에 뿌리내려 햇볕과 바람과 빗물을 머금으며 내놓은 싱그럽고 보드라운 푸른 빛을 온몸으로 맞아들입니다.


  우리 먹을 밥이란, 우리 살아갈 빛이라고 느낍니다. 밥을 날마다 차리면서, 밥순이 노릇 할 수 있는 하루가 얼마나 즐거우며 대단한가 하고 깨닫습니다. 아이들한테 밥을 먹이며 밥돌이 구실 하는 삶이란 얼마나 놀라우며 아름다운가 하고 느낍니다. 숨을 쉬고, 물을 마시며, 밥을 먹습니다. 볕을 쬐고, 바람을 쐬며, 흙을 만집니다. 사람이 오롯이 사람빛이 되는 삶을 그립니다. 사람이 되는 사람빛이란 어떤 무늬와 결일까 하고 떠올립니다. 우리가 먹는 밥 그대로 우리 몸이 되며 우리 넋과 말과 빛이 됩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 앞에서 삶을 살찌우는 이슬떨이가 됩니다. ‘어버이’라는 이름이 고맙습니다. 4346.11.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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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펴낼 돈 모으는 마음

 


  2007년부터 내 서재를 사진책도서관으로 꾸며 문을 연 뒤 ‘1인 잡지’를 내놓습니다. 서재도서관이자 사진책도서관인데, 이렇게 도서관지기를 하기 앞서도 ‘1인 소식지’를 내놓았습니다. 나는 1994년에 ‘우리 말 동아리’를 하나 꾸리면서 동아리 사람들과 ‘우리 말 소식지’를 내고 싶었는데 아무도 글을 써 주지 않아,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하는 수 없이 혼자서 글을 쓰고 엮어서 ‘1인 소식지’를 냈습니다. 1998년에 ‘헌책방 사랑 동아리’를 새로 꾸리면서 ‘헌책방 소식지’를 ‘1인 소식지’로 함께 냈어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를 꺼리지 않아요. 그러나, 모두들 바쁘다고만 말하니 바쁜 사람들한테 안 바쁜 때가 찾아오기까지 기다릴 수 없더군요. 얼결에 혼자서 글을 쓰고 엮어서 내놓은 뒤 혼자서 봉투에 담아 풀을 발라 우체국에 들고 가서 부치는 일까지 다 합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바쁜 사람은 글을 쓰지 못합니다. 바쁜 사람은 글을 읽지 못합니다. 참말 바쁘다 하더라도 몸을 바지런히 놀리면서 마음을 느긋하게 추스를 수 있어야 글을 쓰거나 읽습니다. 느긋한 마음이 될 때에 쓰는 글이요 읽는 글입니다. 소식지나 잡지나 단행본을 낼 적에도, 마음을 차분히 다스려야 해요. 바쁜 몸과 마음이 되면 어느 하나 하지 못해요.


  지난 1995년부터 올 2013년까지 낸 숱한 ‘1인 소식지’와 ‘1인 잡지’와 ‘1인 단행본’을 떠올립니다. 어느 때고 돈이 있어서 이 책들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으레 돈에 시달리면서 하나하나 내놓았어요. 없는 돈을 뽑아냈고, 정 힘들면 돈을 꾸어서라도 냈습니다. 그날그날 살림돈이 빠듯하더라도 아무튼 소식지나 잡지나 단행본을 혼자서 내고 보자 하는 마음이었어요. 참말 끼니를 굶고 단골가게에 라면 몇 봉지 외상으로 달면서 책을 엮었습니다.


  신문배달을 하며 소식지를 내던 때, 학교 선배들은 흔히 밥이나 술을 사 주겠다 얘기했어요. 나는 밥도 술도 안 사 주어도 되고, 밥값만큼 또는 술값만큼 소식지 낼 돈을 보태어 달라 말했어요. 그런데 선배들은 밥이나 술은 사 주어도, 소식지 내는 돈에 천 원이나 삼천 원 보태어 준 이는 없었어요.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에 글을 씁니다. 더 널리 알리고 싶은 삶빛이 있기에 소식지나 잡지나 단행본을 꾸립니다. 두고두고 건사하거나 즐겁게 밝히고 싶은 사랑이 있기에 씩씩하게 봉투에 책을 담아 우체국으로 들고 가서 부칩니다.


  전남 고흥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뒤 여덟 권째 내놓을 ‘1인 단행본’ 찍을 돈 32만 원을 모으기까지 일곱 달이 흐릅니다. 80부 빠듯하게 내놓아 32만 원입니다. 올 한 해 옆지기를 미국에 배움길 떠나도록 하는 데에 밑돈을 대느라 이쪽에 온힘을 쏟다 보니 두 달에 한 차례 30∼50만 원쯤 그러모아 책 하나 내는 일을 도무지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11월에 ‘1인 단행본’ 하나 내놓은 다음 2014년 1월에 새 ‘1인 단행본’을 내놓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즐겁게 살림 꾸리면서 푼푼이 그러모으면 1월이든 2월이든 기쁘게 선보일 수 있겠지요. 예전에 혼자 살 적에는 끼니를 굶어도 소식지를 냈지만, 이제는 옆지기와 아이들 있으니 끼니를 굶지는 않아요. 식구들 밥을 먹이는 일이 첫째고, 책 내는 일은 둘째입니다. 4346.11.2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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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믿는 마음

 


  나무를 믿고 나무를 심어요. 이 나무 한 그루 이곳에서 잘 뿌리를 내려 아름드리 우람한 그늘과 바람과 숨결 나누어 주리라 믿고 나무를 심어요. 어린나무를 얻어 심기도 하고, 씨앗을 심기도 해요. 이 나무들 햇볕과 바람과 빗물을 먹으면서 줄기가 굵고 가지가 단단하리라 믿어요.


  사람은 누구라도 나무가 있어야 살아가요. 나무가 없는 데에서는 사람이 살아가지 못해요. 온통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북극이라지만, 북극에도 봄이 찾아오면 푸르게 빛나는 들판이 있어요. 이와 달리 남극에는 나무도 풀도 없어, 사람도 다른 짐승도 살아가지 못해요. 나무도 풀도 없는 가없는 모래벌에 누가 살 수 있을까요. 모래벌에 누가 산다면, 어딘가에 나무와 풀이 있기 때문이에요. 나무도 풀도 없다면 아무것도 살지 못해요.


  새로 만든 에어컨이 있더라도 나무그늘처럼 시원하지 않아요. 첫손 꼽는 식품공장이 있더라도 나무열매처럼 달콤하지 않아요. 사람이 짓는 어떤 집도 나무처럼 오래도록 푸르게 살아가지 못해요. 사람이 세우는 어떤 문명도 나무가 살아온 나날에 대면 덧없어요. 사람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내거나 문화를 밝히려 한다면, 나무가 있어 연필과 종이를 얻어야 해요.


  나무 없는 삶이란 죽은 삶이에요. 나무 잊는 삶이란 사랑 없는 삶이에요. 나무와 등돌린 삶이란 평화와 등돌린 삶이에요. 나무와 멀리하는 삶이란 죽음으로 나아가는 삶이에요.


  먼먼 옛날부터 아무리 조그마한 집을 지어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집 안쪽 쬐꼬만 마당에 나무 한 그루 있어요. 가난한 사람일수록 더 깊은 숲이나 멧골에 깃들어, 온통 아름드리로 우거진 나무한테 둘러싸인 채 살았어요. 곁에 나무를 두어 보살핌을 받는 사람은 아프거나 힘든 일이 없어요. 곁에 나무를 안 두고 기와집이나 궁월 으리으리하게 짓는 사람은 늘 아프거나 힘들어요. 나무와 멀리하는 사람은 전쟁과 싸움과 정쟁과 술수로 얼룩져요. 나무와 가까이하는 사람은 노래와 꿈과 사랑과 이야기로 활짝 웃어요.


  아파트를 장만하지 말고 나무 심어 돌볼 수 있는 집을 장만해요. 아이들과 언제나 나무를 바라보고 쓰다듬으면서 살아갈 만한 집을 얻어요. 나무가 흙에 뿌리를 내려 햇볕을 쬐고 바람과 빗물을 마실 때에 튼튼하게 자라듯, 사람도 흙땅에 발을 대고 햇볕을 쬐고 바람과 빗물을 마실 적에 튼튼하게 살아가요.


  나무를 믿고 나무와 함께 살아요. 나무를 사랑하고 나무와 함께 이웃이랑 어깨동무해요. 나무를 아끼고 나무 같은 마음 되어 이 지구별에 꿈씨앗 심어요. 4346.11.1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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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리는 마음

 


  버스를 타면, 내내 덜덜 떨리고 바퀴와 엔진 소리 달달달 들어야 합니다. 귀가 멍하고 골이 띵합니다. 버스가 빨리 달리는 만큼 숲내음과 숲노래와 숲빛 모두 잊거나 잃어야 합니다. 시골집 떠나 면소재지나 읍내나 시내로 볼일 보러 나오면, 버스나 기차에서 내려 걷더라도, 골목까지 파고들어 싱싱 달리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넘칩니다. 눈과 귀와 골이 모두 아파요.


  그런데 나는 이런 데에서 스물여덟 해를 보냈습니다. 도시를 벗어나 넉 해 반을 살았으나 다시 도시로 돌아와 세 해 반을 살았어요. 이러구러 스물아홉 해째 되던 어느 날 비로소 자동차 없는 시골마을 작은 집에서 풀노래와 풀바람과 풀내음과 풀빛을 만났습니다. 낮에도 밤에도 새벽에도 아침에도 자동차 지나가거나 흐르는 소리하고 동떨어진 멧골집에서 새로운 빛과 소리와 냄새와 무늬를 처음 만났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가는 목숨들인가 돌아봅니다. 우리 넋 살찌우고, 우리 얼 북돋우는 길을 저마다 어떻게 걸어가는가 헤아립니다. 우리 아이는 우리 어른한테서 무엇을 보거나 물려받는가요. 앞으로 우리 어른과 아이는 어떤 꿈과 사랑을 누리며 살아가고 싶은가요.


  버스에서 내릴 때로구나 생각합니다. 버스는 그만 달리게 할 때로구나 싶습니다. 사랑할 삶을 사랑하고, 꿈꿀 길을 꿈꿀 때로구나 생각합니다. 어깨동무할 이웃을 사귀고, 손을 맞잡으며 삶 함께 일굴 옆지기를 아껴야 할 때로구나 싶습니다. 4346.10.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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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선물하는 마음

 


  고흥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마실을 오는 동안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까 하고 생각합니다. 공책을 폅니다. 마음속에서 흐르는 여러 생각을 하나둘 적습니다. 내가 만날 고운 님들한테 싯노래 한 가락씩 적어서 선물하고 싶습니다.


  조곤조곤 삶빛을 싯노래로 적습니다. 다 적은 싯노래를 몇 차례 읊습니다. 손질하거나 고칠 데를 추스릅니다. 이제 되었구나 싶으면 깨끗한 종이를 꺼내 천천히 옮겨적습니다. 흔들리는 시외버스에서 글씨가 안 떨리도록 살몃살몃 옮겨적습니다.


  싯노래를 옮겨적은 뒤, 싯노래 적은 종이에 구김살 안 지도록 가방에 잘 여밉니다. 서울에 버스가 닿을 때를 기다립니다. 시를 선물받을 분들이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며 반길 수 있기를 빕니다. 시골빛 먹으면서 사랑빛 씨앗으로 심고픈 꿈이 내 이웃들한테 하나둘 퍼지는 삶이란 얼마나 예쁜가 하고 되뇝니다. 이야기를 선물하면서, 나 또한 이 이야기를 나한테도 선물하는 셈입니다. 4346.10.1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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