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살아가는 마음



  반가운 이웃을 만날 적에 마음속에서 노래가 흐릅니다. 마음속에서 흐르는 노래를 가만히 헤아리면서 공책을 폅니다. 연필을 손에 쥐고 노래를 적습니다. 공책에 적은 노래를 다시 정갈한 종이 한 장에 천천히 옮겨적습니다. 정갈한 종이에 천천히 옮겨적은 노래를 새롭게 읽은 뒤 반가운 이웃한테 건넵니다.


  이웃한테 선물하는 노래란 이웃이 나한테 불러일으킨 빛입니다. 이웃은 나한테서 노래를 선물받지만, 곰곰이 따지면 이웃이 내 마음을 건드려 샘솟게 한 빛입니다. 이웃이 나한테서 받는 빛은 이웃이 나한테 베푼 사랑입니다.


  나한테는 내 고운 이웃이 있고, 내 이웃한테는 내가 고운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거꾸로 보면, 나는 내 이웃한테서 노래를 선물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이웃 마음밭에 사랑스러운 씨앗 한 톨 심을 수 있다면, 내 이웃은 나한테 노래 한 자락 선물합니다.


  선물이란 주면서 즐겁고 받으며 기쁩니다. 선물이란 새롭게 빚어서 들고 가는 동안 즐겁고, 선물을 건네받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쁩니다. 선물을 꾸리는 동안 살림을 가꾸며 즐겁고, 선물을 받아서 우리 집 어디에 놓을까 생각하면서 기쁩니다.


  나는 글과 사진으로 이웃한테 선물을 건네는 삶을 누리자고 생각합니다. 나는 날마다 신나게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이웃한테 사랑빛 담은 선물을 보내자고 생각합니다. 내 글쓰기는 선물하기입니다. 내 글읽기는 선물받기입니다. 책 한 권 새로 엮어 펴내는 동안 이름과 얼굴을 모르는 이웃한테 선물을 줄 수 있어 즐겁습니다. 책 한 권 새로 장만하여 읽는 동안 이름과 얼굴을 모르는 이웃한테서 선물을 받으니 기쁩니다. 4347.4.1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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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나무 꽃잎 마음

 


  두 아이가 마당 한쪽에서 놀다가 꽃잎을 주워 하늘로 휘휘 뿌립니다. 와, 와, 하면서 놉니다. 내가 마당으로 내려서니 묻는다. “아버지, 이 꽃은 왜 이렇게 많이 떨어져.”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꽃이 많이 떨어져. 떨어진 꽃송이는 나무 옆으로 던져 놓자.” 큰아이와 함께 커다란 꽃송이를 동백나무 줄기 둘레로 던져 놓습니다. 낱낱으로 흩어진 꽃잎도 하나씩 주워서 내려놓다가 아주 보드라우면서 다친 데 없는 꽃잎은 석 장 건사합니다. 책 사이에 꽂아 볼까 생각합니다. 이대로 말려도 무척 고울 테지요. 조그마한 상자에 동백꽃잎을 모으면 어떨까요. 올해부터 한 번 동백꽃잎을 모아 볼까 싶습니다. 어디 보자, 쓸 만한 예쁜 작은 상자가 어디에 있더라. 4347.3.3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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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읽는 마음

 


  이 땅에 착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착한 마음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거나 살리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언제나 착한 사람들과 만나거나 스친다고 생각하는데, 가끔 부딪히는 안 착한 사람들을 볼 적마다 ‘저이는 왜 착한 마음을 저렇게 눌러서 괴롭힐까’ 하고 생각합니다.


  반가운 이가 보낸 편지를 받으면 두근두근 설렙니다. 이것저것 자잘한 일을 모두 마치고 나서 가장 느긋하며 아름다운 눈빛과 매무새로 편지를 엽니다. 반가운 이가 보낸 편지는 글 한 줄로 띄운 이야기라 하더라도 애틋하기에 웃음과 눈물이 살짝 솟습니다.


  반갑지 않은 편지를 받을 적에는 두근두근 떨립니다. 반갑지 않은 편지란, 누군가 나한테 사과하는 편지입니다. 거꾸로, 내가 누군가한테 사과하는 편지를 띄운다면, 내 편지를 받을 누군가도 두근두근 떨릴 테지요. 히유 한숨을 쉬다가 사과편지를 저쪽으로 밀어놓고 한참 안 들여다볼 테지요.


  사과편지 한 통을 열이틀만에 엽니다. 열이틀만에 연 사과편지를 찬찬히 읽고는 답장을 띄웁니다. 열이틀만에 사과편지를 열었더니, 오늘 새로운 사과편지가 다른 사람한테서 옵니다. 하아, 하고 숨을 고릅니다. 마음이 쓰려 도무지 열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사과편지를 쓴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요. 참말 사과하려는 마음일까요, 겉으로 말을 번지르르하게 꾸미려는 넋일까요.


  내 어버이는 어릴 적부터 으레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누군가한테 잘못을 했으면 곧바로 찾아가서 대문 앞에서 무릎 꿇고 절을 하라고. 대문 앞에서 무릎 꿇고 절을 하되, 대문을 두들기지 말라고. 그 집에서 대문 앞으로 문을 열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그쪽에서 아는 척을 하며 사과를 받아 줄 때까지 기다리라고.


  누군가 나한테 잘못을 했을 적에 나한테 이렇게 하라고는 바라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웬만한 사람들이 서울에서 사니까, 서울에서 전남 고흥까지 오자면 얼마나 멀까요. 아침저녁으로 서울과 고흥을 오갈 수도 없어요.


  그러면, 오늘날에는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할는지요. 적어도 인터넷편지 아닌 종이편지를 띄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갑작스레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 하고 말하면, 전화를 받는 내 쪽도 거북합니다. 손전화 쪽글로 미안하다 말하면 대꾸하기에 더욱 거북합니다. 엎지른 물은 담을 수 없지만, 엎지른 물을 새로 채울 수 있습니다. 엎지른 물을 새로 채우려는 마음인지, 엎질렀으니 그냥 지나치려는 마음인지, 사과하려는 매무새를 보면 찬찬히 읽을 수 있습니다. 4347.3.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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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나누는 마음

 


  우리 집 매화나무에 꽃이 한가득 터졌습니다. 매화꽃이 한가득 터지기를 한 해 동안 기다렸습니다. 왜냐하면 매화꽃은 삼월 한 철 살그마니 피었다가 지거든요. 삼월꽃인 매화꽃을 놓치면, 꼬박 한 해를 지나 이듬해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배롱나무에 피는 발그스름한 꽃은 온날을 간다고 합니다. 그러니 ‘온날꽃(백일꽃)’이기도 합니다. 온날꽃인 배롱나무를 빼고는 웬만한 꽃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부추꽃이나 고들빼기꽃은 꽤 오래가곤 하는데, 이레를 지나고 열흘을 지나면 꽃은 하나둘 떨어지거나 조용히 사라져요. 수세미 암꽃은 꽃가루받이를 마치면 하루만에 지기도 해요.


  매화꽃이 그득그득 터지기를 기다리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매화꽃이 잔뜩 터진 뒤에는 곁님과 아이들을 불러 다 같이 꽃내음을 맡습니다. 코를 가까이에 대도 매화내음이 번지고, 집안이나 마당에 있어도 매화내음이 퍼집니다. 꽃이 고운 나무를 심어 돌볼 적에는 꽃내음이 보금자리와 마을에 두루 퍼지면서 살가운 빛이 흐른다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꽃나무를 심거나 꽃그릇을 돌보는 사람은 얼마나 대단한 빛을 나누는가 하고 다시금 깨닫습니다.


  글을 한 줄 쓰면서 꽃내음을 생각합니다. 한 해에 한 차례 피고 지는 나무꽃처럼, 내가 써서 나누는 글 한 줄이 한 해에 한 차례 즐겁게 마주하는 나무꽃내음처럼 퍼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배롱나무처럼 온날에 걸쳐 꽃내음과 꽃빛을 나누어도 좋아요. 네 철 푸른 나무처럼 삼백예순닷새에 걸쳐 푸른 잎빛을 나누어도 좋아요.


  그런데, 온날에 걸쳐 맑은 배롱꽃은 꽃가지마다 새 꽃이 피고 지면서 온날을 잇습니다. 네 철 푸른 나무는 잎가지마다 새 잎이 돋고 지면서 언제나 푸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날마다 새로우면서 밝은 글을 길어올리면서 한결같이 즐거운 노래가 되도록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되뇝니다. 글에 사랑을 싣자. 글에 꿈을 담자. 글에 이야기를 빚자. 글에 노래를 품자. 글에 웃음을 넣자. 글에 너른 품을 두자. 글에 알뜰살뜰 고소한 밥 한 그릇을 얹자. 4347.3.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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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한 송이 보는 마음


  꽃은 하루아침에 피어나지 않습니다. 꽃망울이 터질 듯 말 듯하다가도 좀처럼 터지지 않으면서 여러 날 지납니다. 이레가 지나고 열흘이 지납니다. 곧 터질 듯하더니 아니네 하고 생각하며 하루쯤 꽃망울을 안 들여다보면, 이튿날이나 다음날 어느새 활짝 열리기도 합니다. 쳇, 날마다 들여다볼 적에는 왜 안 터지고, 하루나 이틀을 거르면 왜 이때에 터지니, 하고 토라져 본들 어쩔 수 없습니다.


  한 번 피어난 꽃은 쉬 지지 않습니다. 다만, 수세미꽃이나 박꽃은 꽃가루받이가 끝나면 암꽃은 이내 저물어요. 수꽃은 오래오래 꽃잎을 벌리지요. 다른 암꽃도 그렇겠지요. 꽃가루받이를 마치면 암꽃은 저뭅니다. 수꽃은 꽃가루를 내놓았어도 오래도록 지지 않습니다.


  우리 집 뒤꼍 매화나무를 두고두고 바라봅니다. 앙증맞고 바알간 꽃망울은 언제쯤 활짝 터질까 궁금합니다. 보고 또 보아도 늘 그렇다는 듯이 터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보름쯤 흐른 어느 날, 드디어 꽃잎을 활짝 벌린 송이를 찾습니다. 여기에 하나 있구나, 저기에도 하나 있네, 저쪽에도 곧 터지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활짝 벌린 꽃잎을 살살 쓰다듬습니다. 곧 벌어지려는 꽃망울을 가만히 어루만집니다. 나뭇가지를 살포시 쥡니다. 볼을 대고 입을 맞춥니다. 고마워 하고 인사를 합니다. 꽃을 바라보며 웃고, 내 웃음은 나무한테 다시 스며듭니다. 꽃망울 터뜨린 매화나무는 새롭게 기운을 내고, 우리 집에는 매화꽃내음이 감돌면서 다 같이 즐겁습니다. 4347.3.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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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4-03-16 22:37   좋아요 0 | URL
매화봉오리에 맺힌 빗방울이 참 싱그러워보입니다.
오늘 날씨가 참 포근했어요. 조카와 놀이터에 놀면서 이제 정말 봄이구나..하고 느낀날이었답니다. 미세먼지만 없으면 정말 좋을텐데.... 고흥에는 미세먼지가 없겠지요? ^^

숲노래 2014-03-16 23:27   좋아요 0 | URL
며칠 뒤 비가 한 차례 훑으면
이제는 그야말로 따사롭고 아름다운
봄빛이 골골샅샅 드리우리라 생각해요.

고흥은... 올봄에
참 비가 자주 내려 주어
미세먼지가 낄 틈이 없구나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