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내음을 누리고 싶은 마음



  네 식구가 시골에서 살아가는 까닭은 숲내음을 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숲자락에 깃들어 살고 싶으며, 우리 스스로 땅을 차근차근 마련해서 보금자리를 숲터로, 또는 집숲으로 가꾸고 싶습니다. 우리 식구는 옛사람이 일군 아름다운 숲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식구가 아름다운 숲을 일구어 우리 아이들과 뒷사람한테 아름다운 숲을 물려줄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갈 때에 즐거울까요? 누구와 어떤 삶을 지을 때에 사랑스러울까요? 풀이 돋고 들꽃이 피며 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거닐면서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아갈 땅을 생각합니다. 이웃과 동무가 서로 아끼면서 빙그레 웃는 자리를 생각합니다. 4347.5.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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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뛰놀도록 하는 마음



  아이들이 뛰놀도록 하려면 걸림돌이 없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뛰놀 곳에는 자동차가 없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뛰놀 자리에는 지뢰밭도 철조망도 군부대도 없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뛰놀 터에는 경찰도 공무원도 교사도 없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뛰놀 들에는 풀과 나무가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뛰놀 숲에는 싱그러운 바람이 불고 따사롭게 햇볕이 내리쬐어야 합니다.


  커다란 공장이나 발전소가 있더라도 아이들은 뛰놉니다. 아이들 마음이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뛰놀고 싶습니다. 폭탄이 퍼붓는 곳에서도 아이들은 뛰놉니다. 아이들 마음이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뛰놀고 싶습니다.


  학교에서 시험으로 다그쳐도 아이들은 뛰놉니다. 아이다움을 잊고 애어른이 되고 마는 아이들은 시험으로 다그치면 그만 놀지 못해요. 주눅이 들어요. 그러나, 아이다움을 곱게 건사하는 아이들은 시험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뛰놀 생각을 합니다.


  빈터에 선 자동차는 몹시 그악스럽습니다. 아이들은 가만히 선 자동차 때문에 놀이터를 빼앗깁니다. 풀이 돋고 나무가 자랄 빈터를 주차장으로 삼으려는 어른은 몹시 끔찍합니다. 아이들은 빈터를 빼앗는 어른 때문에 숨을 못 쉽니다.


  아이들은 공원이나 놀이터만 가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집과 마을에서 놀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층집에서 살더라도 방방 뛰고 구를 수 있어야 합니다. 방방 뛰거나 구를 수 없도록 만드는 층집이라면, 이런 층집이 몇 억을 하든 참말 값어치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놀 수 없도록 만드는 층집에서 왜 어른들은 살림을 꾸리려 할까요? 어른들은 왜 자꾸 ‘아이들이 놀 수 없는 집’을 부동산으로 장만하려 할까요?


  어른이 일터로 가는 길이 멀지 않아야 할까요. 어른은 얼마든지 이리저리 일터를 찾아갈 수 있어요. 어른에 앞서 아이를 헤아려, 아이가 즐겁고 기쁘며 스스럼없이 뛰놀 수 있는 보금자리를 장만할 노릇입니다. 아이가 맑은 바람을 마시고, 아이가 싱그러운 물을 마시며, 아이가 포근한 햇볕을 누릴 데로 보금자리를 마련할 노릇입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뛰노는 곳이 바로 우리가 즐겁게 살아갈 곳입니다. 아이들이 기쁘게 노래하는 곳이 곧 우리가 기쁘게 살림을 가꾸는 곳입니다.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뒹굴거나 구르는 곳이 곧바로 우리가 스스럼없이 꿈꾸고 사랑을 속삭이는 곳입니다. 몇몇 곳에 공원을 따로 짓는 도시에서 벗어나기를 빌어요. 모든 집과 마을이 공원처럼 푸르고 싱그러우며 조용하기를 빌어요. 시골에서는 농약물결이 사라져서 아이들이 아무 풀밭에서나 드러눕거나 뒹굴 수 있기를 빌어요. 모든 시골과 들과 숲이 아름답게 빛날 수 있기를 빌어요. 4347.5.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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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 물러서는 마음



  이야기는 서로 마음과 마음으로 나눕니다. 이야기는 지식이나 정보로는 나누지 않아요.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지식이나 정보로 이야기를 나누려 해요. 이때에는 겉보기로는 이야기가 이루어지는 듯하지만, 정작 이야기라 할 수는 없습니다. ‘지식나눔’이나 ‘정보나눔’이 될 뿐입니다.


  요즈막에 사람들이 세월호 이야기에 그토록 힘을 쏟는데, 막상 ‘예방접종’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오늘날 어른들은 아이와 함께 살아가며 예방접종이 무엇인지 얼마나 살피실 수 있을까요. 예방접종에 들어가는 성분이 무엇인지 알면서 어른들이 아이한테 이 주사를 놓을까요. 그저 맞히라고 하니까 맞히지 않을까요. 수은과 포르말린과 알루미늄을 버젓이 집어넣는 예방주사인데, 이런 주사를 반드시 맞혀야 아이가 아프지 않으면서 살 수 있을까요.


  2007년에 나온 《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스테파니 케이브)라는 책과 2006년에 나온 《예방접종, 부모의 딜레마》(그레그 비티)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책은 예방접종을 어떤 화학약품으로 만드는가를 낱낱이 밝힙니다. 2014년에 《우리 집 백신 백과》(로버트 W.시어스)라는 책이 한국말로 나옵니다. 이 세 가지 책을 보면, 오늘날 이 나라 어른들이 아이한테 맞히는 예방주사에 수은·포르말린·알루미늄이 들어간다고 밝힙니다. 예방접종 문제를 조금 살핀 분이라면, 이 세 가지 때문이라도 예방접종이 무척 무서운 줄 느낍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어버이는 예방접종 성분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부와 학교와 병원에서 맞히라고 하니까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할’ 뿐입니다.


  세월호에서 죽은 아이들은 어른들 탓입니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은 세월호가 가라앉았아도 아이들을 그저 ‘시키는 대로 따라가야 하는 듯이’ 내몰기만 하고, 우리 어른들 스스로도 ‘삶을 찾고 사랑을 찾으며 사람을 찾는 길’로 좀처럼 접어들지 않습니다. 언론보도에 자꾸 얽매이기만 한다면 참모습도 못 보고 참을 가리는 거짓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왜 이렇게 모두들 세월호 취재와 보도에 목을 매달까요.


  한발 물러설 적에 비로소 참모습을 봅니다. 한발 물러서지 않으면 참모습을 놓치기 일쑤입니다. 헤엄을 못 치는 아이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곳은 깊은 물속이 아니라 얕은 곳입니다. 아이 손을 잡고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면 어른도 아이도 깨닫습니다. 한발 뒤로 물러나서 바라보면 비로소 참모습을 볼 수 있고, 삶과 사랑을 볼 수 있어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 사랑스럽고 아름다우며 즐겁게 살아갈 숨결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우리와 똑같이 사랑스럽고 아름다우며 즐겁게 살아갈 숨결입니다. 어른들 잘못 때문에 그만 푸른 꽃을 피우지 못한 채 떠난 아이들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우며 즐겁게 살아야 하던 숨결입니다. 대학입시에 목을 매달아야 하는 아이들이 아니라, 언제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우며 즐겁게 살아갈 숨결입니다.


  예부터 시골사람은 전쟁이 터져도 씨앗을 심었습니다. 예부터 시골사람은 전쟁이 터지는 한복판에서도 풀을 뜯고 밥을 지으며 베틀을 밟고 절구를 찧었습니다.


  세월호라는 배가 가라앉아 수많은 아이들이 죽고 말았지요. 어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른들은 우리 삶과 삶터를 어떻게 다시 지어야 할까요. 우리 아이들을 대학입시로 똑같이 밀어넣어야 할까요. 세월호에서 빠져나와 살아남은 아이들한테 다시 교과서를 외우도록 하고 대학입시만 살피도록 해야 할까요.


  씨앗을 심는 손길을 돌아보고 깨달을 수 있기를 빌어요. 한발 물러서서 참모습을 읽고 참삶을 가꾸는 길로 걸어갈 수 있기를 빌어요. 한발 물러서는 까닭은 두발 앞으로 나오고 싶기 때문입니다. 한발 물러나는 까닭은 앞으로 한결같이 씩씩하게 걸어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4347.4.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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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4-04-29 05:14   좋아요 0 | URL
글이라는 게 한 허리를 베어쓰면 독해지는 것 같아요...독은 베는 칼에 묻은 것일 텐데요...

숲노래 2014-04-29 06:40   좋아요 0 | URL
허리란 무엇이고
독이란 무엇일까요.

글이든 삶이든 사랑이든 사람이든
누구나 스스로 읽으려 하는 만큼 읽고
마주하려 하는 만큼 마주하며
받아들여 살아내려 하는 만큼 받아들여 살아낼 수 있습니다.
 

참거짓을 읽는 마음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옵니다. 봄이 지나면 여름과 가을을 거쳐 겨울이 옵니다. 철은 숨기지 못합니다. 철 따라 피고 지는 꽃은 감추지 못합니다. 이 지구별에 철이 없고 해와 달과 풀과 나무가 없으면 모두 죽겠지요. 어느 것도 이 지구별에서 숨쉬지 못하겠지요.


  철을 아는 사람은 삶을 압니다. 날과 날씨를 읽는 사람은 삶을 읽습니다. 아이를 어루만지고 어버이를 꼭 안는 사람은 사랑을 깨닫습니다. 책을 읽거나 방송을 보거나 신문을 펼쳐야 삶을 알지 않아요. 삶을 사랑할 때에 삶을 알아요.


  신문은 신문으로 다룰 정보와 소식을 다룹니다. 방송은 방송으로 다룰 정보와 소식을 다뤄요. 책은 책으로 다룰 정보와 소식을 다룹니다. 신문이나 방송에 기대면 언제까지나 신문이나 방송에 기대고 말아요. 책에 기대면 늘 책에 기댄 채 살아요.


  시골에서는 어느 누구도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에 기대어 씨앗을 심지 않습니다. 풀과 꽃과 나무는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하고는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자랍니다. 모두들 해를 바라보고 빗물을 먹으며 바람을 마셔요. 흙에 뿌리를 내리고 들과 숲을 이루어요.


  풀 한 포기를 읽는 사람은 온누리를 읽습니다. 꽃 한 송이를 읽는 사람은 모든 노래를 읽습니다. 풀을 못 읽으면 사회를 못 읽어요. 꽃을 못 읽으면 문화를 못 읽어요.


  대단한 사람이 풀과 꽃을 읽지 않습니다. 수수하고 작은 사람이 풀과 꽃을 읽습니다. 마음 한복판에 풀씨를 심고 꽃씨를 심기에 풀과 꽃을 읽습니다. 풀과 꽃을 심어서 곱게 돌보기에 삶을 읽고 사랑을 읽어요. 그러니까, 풀꽃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나 참과 거짓을 환하게 바라봅니다. 풀꽃으로 살지 않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나 참과 거짓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신문에는 참이 없고 방송에도 참이 없으며 책에도 참이 없어요. 들에 참이 있고 숲에 참이 있습니다. 들숨을 마시고 숲빛을 먹을 때에 참을 깨달아요.


  참은 늘 드러납니다. 봄은 봄임을 드러내요. 겨울은 겨울임을 드러내지요. 거짓은 언제나 드러납니다. 아무리 꾹꾹 눌러 숨겨도 거짓은 또렷하게 드러나요. 논평이나 비평에 기대어 참거짓을 살피려 하지 말아요. 내 마음을 읽으면서 참거짓을 깨달아요. 아니, 참거짓을 깨닫는다기보다 삶을 깨달아요. 사랑에 눈을 뜨고 꿈을 가꾸어요. 그러면 돼요. 4347.4.2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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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듣기를 바라는 마음



  알아듣기를 바라면서 글을 한 줄 적습니다. 이 글을 알아들을 분은 한 줄만 읽어도 알아들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글을 알아듣지 못하거나 알아들을 마음이 없거나 알아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백 차례 되읽어도 못 알아들으리라 느낍니다. 두 아이를 재우고 나서 고단한 몸으로 짤막하게 글을 적어 보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버이 마음을 알까요? 아이들 스스로 알려 하면 알 테고, 아이들 스스로 알려 하지 않으면 모를 테지요. 나는 이런 글을 하나 썼습니다. 4347.4.24.나무.ㅎㄲㅅㄱ



○ ○


예방접종과 농약과 종교는 똑같습니다.


본질을 생각해 보시면

스스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본질을 잘 모르겠다면

‘과학’으로 슬기롭게 공부하면

차근차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스승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마음으로 알아차릴 수도 있고,

마음으로 안 되면

과학으로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마음으로도 과학으로도 느끼지 못한다면

스승을 배울 수 없겠지요.


예방접종과 농약과 종교도

두 가지 모두로 바라보지 못하면

도무지 이런 이야기를 놓고

아무런 것도 나눌 수 없습니다.


지구에 풀이 없으면 모두 죽습니다.

왜 풀이 없으면 죽을까요?

풀은 어떻게 지구별에 있을까요?

스승한테 물어 보기 앞서

스스로한테 물어 보시기를 빌어요.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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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5 0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4-04-25 05:28   좋아요 0 | URL
무언가를 꼭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회와 문화가 흐르는데,
사회와 문화가 강요하는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헤아리지 못한다면,
스스로 삶을 가꾸지 못하고 제도권에서 톱니바퀴 부품이나 노예가 되어
끝내 제 넋을 찾지 못하기 일쑤예요.

농약을 쓰면 풀만 죽지 않고 사람도 죽는데,
아직도 어디에서나 농약을 쓰고
농약이 없으면 농사를 못 짓는 줄 여기며,
우리가 먹는 모든 밥과 빵과 과자에
엄청난 농약이 깃들어요.

예방접종이 병을 미리 막는다고 하지만,
도시 문명사회가 병을 부르는 줄 깨닫지 않고,
이런 병을 병원에서 돈을 내고 고친다고 하나
병을 고치는 일은 도무지 없이
아픔만 누그러뜨리는 것뿐인데
이런 굴레와 쳇바퀴에서 스스로 내려와서
삶을 짓지 않으면...
예배당에 나가지 않아도 문명사회를 맹신하는 종교일 뿐이겠지요.

농약이라는 종교
예방접종이라는 종교
대학교와 학벌이라는 종교
재산과 연봉과 지위와 신분이라는 종교
도시 생활이라는 종교
자가용이라는 종교
문화생활과 여가선용과 여행이라는 종교
... 온통 종교투성이예요.

오늘날 사람들이 과일을 그렇게 많이 먹어도
몸이 즐겁거나 좋아지지 않는 까닭은
오늘날 과일은 모두 농약과 비료로 키우기 때문에
과일 살점이 아닌 농약과 비료를 먹기 때문인데
이런 대목을 깨닫는 사람이 너무 적어요.

이대로 가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요.
참 쓸쓸한 일일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