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 34. 끌어안네


  어깨에 지는 짐마다 손을 닦는 천이 있고, 등짐마다 천주머니를 챙기다 보니 꽤 많이 들고 다닙니다. 한국 아닌 일본에서 여러 날 묵으며 길손집에서 짐을 몽땅 풀어헤쳐 보는데, 겹친 짐이 꽤 많습니다. 겹치게 들고 다녔어도 늘 아이들하고 다니면서 ‘이때에 써서 없으면 다음에 곧장 쓸 수 있도록’ 챙긴다고 하다가 그야말로 겹겹이 짊어지고 다니는구나 싶더군요. 이제는 두 아이가 모두 잘 자랐으니 아이들을 돌보느라 건사하던 짐을 내려놓아야지 싶어요. 조금 더 홀가분한 몸으로 다니면서 한결 홀가분한 마음이 되려 합니다. 그만 끌어안아야겠네 싶습니다.


2018.3.30.쇠.ㅅㄴㄹ / 숲노래.최종규 / 사진넋.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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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 33. 씩씩히 말하자


  혼자 일본으로 마실을 가던 날, 몇 사람을 만나서 말을 섞을 수 있었는데, 거의 모든 말을 못 알아들었으나, 마지막에 ‘아리가또오 고쟈이마싀으’는 알아들었어요. 저도 이 말을 따라하려고 했으나 막상 입밖으로 아주 가늘게 튀어나오더군요. 소리가 샐까 걱정하나 싶어 부끄러웠습니다. 낯익은 말씨가 아니면 누구라도 소리가 샐 수 있으니, 씩씩히 말하면 될 텐데. 씩씩히 말하다가 틀리거나 어긋난 대목이 있으면 바로 앞에서 일본 이웃이 ‘어디가 어떻게 엉성한가’를 짚어 줄 텐데, 멋진 스승이 코앞에 있는데, 멋진 스승을 코앞에 두고도 부끄럽다는 걱정으로 입을 제대로 못 떼다니, 참말로 이런 몸짓이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하루를 보낸 뒤에는 그쪽에서 내 말씨를 못 알아듣더라도 거듭거듭 말하면서 소릿결을 헤아립니다. 말하기뿐 아니라 살림하기에 사진찍기도 다 같겠지요. 씩씩히 말하기에 제대로 배우고, 씩씩히 나서기에 제대로 찍습니다.


2018.3.30.쇠.ㅅㄴㄹ / 숲노래.최종규 / 사진넋,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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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 32. 눌린 삶


  누구나 쓰고 읽을 수 있는데 아무나 못 쓰고 못 읽을 뿐 아니라, 사전풀이에서 잘못된 곳을 짚어내지도 못하는 모습이란, 어떤 힘, 이른바 권위와 지식에 눌린 모습이라고 할 만합니다. 사진도 전문가나 작가여야 잘 찍지 않아요. 아니, 전문가나 작가라면 즐겁게 못 찍어요. 우리는 늘 우리 모습 그대로이기에 사진을 즐겁게 찍을 수 있고, 사전을 즐겁게 쓰고 읽을 수 있습니다.


2018.3.18.해.ㅅㄴㄹ / 숲노래.최종규 / 사진넋.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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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 31. 사진이랑 사전 2


  즐겁게 보려고 사진을 찍습니다. 즐겁게 생각하려고 사전을 읽습니다.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요. 사진은 “누구나 찍을 수 있다”가 하나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막상 “이곳에서 아무나 못 찍네”이고요. 누구나 찍을 수 있는데 아무나 못 찍는 모습이란 거의 종이 한 장만큼이라고 할까요. 팔에서 머리에서 힘을 빼고 그저 눈으로 즐겁게 바라보면 누구나 찍을 수 있어요. 작품이 되기를 바라면 아무나 못 찍어요. 사전은 누가 쓰고 읽을까요? 사전은 “누구나 읽을 수 있다”가 하나예요. 그렇지만 사람들은 꼭 “전문가만 사전을 쓴다”고 여겨요.


2018.3.18.해.ㅅㄴㄹ / 숲노래.최종규 / 사진넋.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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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 30. 사진이랑 사전 1


  사진하고 사전은 퍽 닮았지요. 둘 모두 담아내는 일이되, 사진은 “보는 삶”을 담고, 사전은 “생각하는 삶”을 담아요. 사진은 “스스로 보는 삶을 눈으로 새롭게 느끼려고 그림처럼 종이에 얹”어요. 사전은 “스스로 생각하는 삶을 눈으로 새롭게 읽으려고 글이라는 틀로 종이에 얹”지요.


2018.3.18.해.ㅅㄴㄹ / 숲노래.최종규 / 사진넋.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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