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면 더

일터에서 자료를 쉴새없이 글판으로 쳐서 넣는 일을 하루 내내 하노라면 오른쪽 손목이 뻑뻑하다. 새로운 사전을 지어야 하니, 처음부터 새로 꾸려야 하는 자료가 어마어마하다. 글판을 칠 적에 왼쪽 손목은 그대로 두고 오른 손목을 많이 움직이다 보니 오른손이 힘들기도 하지만, 오래 치노라면 두 손 모두 뻑뻑하다. 오늘 복사집에서 〈헌책사랑〉 19호를 다 뜨고 책 몇 권을 상자로 묶어서 집으로 들고 오는 전철길. 아, 어깨까지 아프군. 이레 앞서 옛동무들이랑 놀러가서 찍은 사진도 찾아서 스캐너로 긁으니 이 또한 힘들구나. 힘들지만 쉬지 않는다. 아니, 힘들기에 이 힘든 하루를 잊으려고 더 책을 읽고 더 글을 쓰고 더 사진을 찍는다. 더 기운을 짜내어 스캐너를 움직여 필름을 긁는다. 2001.4.29.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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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인천시가 드디어 골목집 없애는 재개발을 힘껏 밀어붙이기로 나섰다. 우리 도서관을 옮길 자리를 알아보아야 한다. 도서관이 깃든 마을을 송두리째 헐어낸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곳에 ‘문화 무슨무슨 단지’를 새로 짓겠다고 한다. 골목마을을 하나둘 없애는 인천이 되면, 인천은 이제부터 내 텃마을이 아니다. 사진으로 어느 만큼 찍어서 남겨 두었지만, 앞으로 이 사진을 ‘인천시 어느 관공서나 공공기관 건물’에 내걸리도록 할 마음은 하나도 없다. 스스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한테 무슨 값이 있으랴? 춘천시립도서관에서는 내 사진을 걸어 놓고 전시회 자리를 마련해 준단다. 웃기는 노릇이다. 왜 텃마을 인천에서 내 사진이 걸리지 못하고, 부산으로, 춘천으로, 서울로 떠돌이를 해야 하는가? 그러나 웃고 살아야지. 이제 인천 골목길 사진은 그만 찍을까 싶다. 떠날 마당에 굳이 인천을 사진으로 더 찍을 까닭이 없다. 2009.8.28. (덧말 : 2010년 여름에 인천을 떠난다. 떠나는 날까지 인천 골목을 사진으로 찍었다. 시에서 어떤 막짓을 하건 말건, 나는 인천시를 보며 사진을 찍지는 않았으니까. 나는 바로 내가 태어나서 자란 마을을 찍고, 사랑스러운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는 골목을 찍을 뿐이기에)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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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사진책

어느 교수님 사진책을 본다. 처음 이 사진책을 보았을 적에 ‘이 따위도 사진이냐’고 생각했다. 교수님 사진이라지만. 나중에 이분 사진책을 헌책집에서 만났을 적에도 ‘헌책이라지만, 값이 조금 눅어도 사 주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한 해가 지난 어느 날, 이 사진책을 사든다. 이날 찾아간 헌책집 아저씨가 저녁밥을 사 주어, 고맙게 얻어먹은 밥값을 책을 사면서 갚음을 하고자 책을 둘러보는데 마땅히 눈에 뜨이는 책이 없다가 이 교수님 사진책이 보였다. 그리 내키지 않았으나, 그래도 사진책도서관을 꾸린다고 하는 몸인데, 자료로 장만해 놓아야 하지 않느냐 생각하며 골라들어 책값을 셈했다. 그러나 막상 사들여 집에 가지고 와서 다시금 꼼꼼히 두어 벌 되읽는데, 도무지 봐주기 어렵다. 참말로 이 사진학과 교수님께서는 ‘사진으로 무얼 말하고’ 싶어할까? 무엇을 말하려고 사진을 찍었을가? 학생들한테 무엇을 가르치고 싶어할까? 학생들한테 사진으로 이녁 어떠한 이야기를 담아내라고 가르치려나? 한국에서는 고작 이만한 사진을 찍는 눈썰미로도 사진학과 교수를 한단 말이지? 기껏 이런 사진을 찍는 데에도 출판사에서는 책으로 엮어내 준단 말이지? 이러니 사람들이 사진책을 안 사지. 이러니 사람들이 사진장비를 올리는 데에는 마음을 쏟아도 사진책을 곁에 두면서 늘 새롭게 배우는 몸짓하고는 멀어지지. 이러니 젊은 사진벗도 겉멋에 휘둘리는 빈껍데기 사진을 뚝딱뚝딱 만들면서 스스로 ‘아티스트’입네 하고 떠벌이며 다니지. 2009.3.21.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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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

말이나 이야기를 함께 누리는 가까운 사이를 가리킬 적에 ‘말친구·이야기친구’라 하지 않는다. ‘말동무·말벗’이라 한다. 그렇지만 ‘친구’라는 낱말이 훨씬 사람들 입에 가깝고 찰싹 붙는다. 요즘 들어 ‘동무’가 비로소 빨간 사슬에서 조금은 풀려나긴 했는데, 아직 한국말 ‘동무’가 제몫을 하기에는 어렵지 싶다. 그만큼 남과 북이 갈린 나날이 길었고, 이 나라 독재정권이 우리 말결과 말살림을 깡그리 짓눌렀으니까. 그래서 어설피 ‘동무’라는 말을 살리자고 하기보다는, 쓸 만한 자리에 차근차근 쓰면 더 좋겠다. 차츰차츰 쓰임새를 늘릴 수 있도록 ‘이야기동무’라든지 ‘책동무’라든지 ‘씨름동무·야구동무·축구동무·태권도동무’처럼 말을 해보면 어떨까. 요즘은 ‘이야기동무·책동무’ 같은 말도 제법 퍼졌다고 할 수 있고, 앞으로는 ‘놀이동무·배움동무·글동무·나들이동무’ 같은 말도 두루 쓰면 좋으리라 생각한다. ‘일동무’를 써도 좋고. 2006.12.22.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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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2

지난 3월 13일에 살짝 뜬금없는 기사를 보았다. ‘사진책도서관’과 얽힌 뜬금없는 기사였다. 그런데 이 기사는 3월에 나온 기사가 아닌 2월에 나온 기사였고, 여러모로 나를 아프게 들쑤셨다. 뜬금없는 기사를 올린 여러 신문기자한테 ‘정정보도 + 사과글’을 여쭈는 글월을 쓰려다가 한참 망설인 끝에 한 군데에만 보내고, 더는 보내지 않았다. 내가 사진책도서관을 2007년에 처음 연 까닭은 언론보도를 탈 마음이 아닐 뿐더러, 사진책을 주제로 도서관을 연 첫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할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에 사진책도서관이 태어나지 못할 뿐 아니라, 사진책을 널리 아끼고 사랑하면서 장만해 읽는 살림이 없다시피 하다. 그래서 이런 흐름을 바꾸고 싶어 사진책도서관을 열었다. 사진책도서관 일기를 쓰고, 소식지를 엮는다. 사진강의를 다니고 사진비평을 쓴다. 신문기자들이 내 사진강의를 챙겨서 듣는다든지 내 사진비평을 알아서 읽지는 못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러나 기사를 쓸 적에는 ‘첫 사진책도서관’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쓰면 안 되는 일 아니겠는가? 사진책도서관이 아닌 ‘만화책도서관’이라든지 ‘그림책도서관’일 때에도 이와 같다. 기자 스스로 더 살펴보고 찾아본 뒤에 이런 이름을 붙이면서 기사를 쓸 노릇이다. ‘정정보도 + 사과글’ 부탁은 누리신문 〈오마이뉴스〉에만 했다. 그런데 열흘이 되도록, 잘못된 기사를 쓴 이가 글을 바로잡지 않는다. 대꾸조차 없다. 그래서 〈오마이뉴스〉 편집부에 다시금 ‘정정보도 + 사과글’ 부탁을 했다. 〈오마이뉴스〉 편집부는 정정보도와 사과글을 언제쯤 띄울까? 띄우기는 할까? 류가헌 갤러리에서 이녁 누리집에 사과글과 정정보도를 올렸다. 오히려 류가헌 갤러리 대표님한테 미안하다만 내 마음이 많이 아프다. 미안한 마음보다 아픈 마음이 조금 더 크다. 류가헌 갤러리 대표님한테 글월을 하나 쓰려고, 절판되어 사라진 값진 사진책 하나를 장만해 놓았다. 월요일에 우체국에 가서 이 사진책과 글월을 띄우려 한다. 서로 즐겁고 아름다운 눈빛으로 사진책도서관을 ‘전남 고흥’과 ‘서울’에서 알차게 가꾸면서 밝힐 수 있기를 바란다. 2014.3.22. (덧말 : 언론사에 ‘사진책도서관 1호’라는 말로 취재를 받은 류가헌갤러리는 내가 하듯이 사진책도서관을 하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동안 값진 사진책을 이모저모 찾아내어 틈틈이 보내 주곤 했다. 이때를 마지막으로 류가헌한테는 ‘이제 사라진 오랜 한국 사진책’을 보내 주지 않는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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