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꾸락

오늘 하루도 네 임자가 여기저기 싸돌아다니고 무거운 책짐을 한 가득 메고 걸어다니느라 힘들었지? 꾸덕살이 몇 밀리미터는 되게 두껍게 잡혔구나. 맨발로 아스팔트길을 달려도 안 아프게 생겼네. 오늘도 집에 돌아와 맨 먼저 너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씻어 주었는데 손에 잡히는 너희들 발꾸락이 참 거칠고 못 생겼더구나. 얼마나 너희들을 힘들게 굴렸으면. 부디 집에서만큼은 너희들이 아늑하도록 하마. 아늑하게 시원하게. 2001.5.6.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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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교과서

어린이도서연구회 누리집에서 ‘교과서 문학성’ 이야기가 오간다. 여러 이야기를 가만히 읽다가 한 가지가 빠졌다고 느낀다. 바로 어린이 눈높이에서 ‘교과서 말씨가 얼마나 쉬운가?’이다. 어도연 누리집에 다음처럼 글을 띄웠다. 


“초등학교 교과서를 구한말 적 것부터 2001년에 새로 나온 것까지 두루 보면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구한말 적은 세로로 쓰고 있으며 한문이 들어가기도 했지만 오늘날 초등학교에서 쓰는 교과서는 ‘한글로만 쓴다’는 틀이 있어요. 그나저나 요즈음 초등학교 교과서를 보면 문학성도 문제로 나무랄 대목이 많지만 저는 이런 대목에다가 ‘말’이 참 어렵구나 하고 느낍니다. 게다가 ‘말’이 지나치게 많기도 해요. 이제 갓 초등학교에 들어선 아이들이 1학년부터 6학년으로 가는 동안 ‘배우고 알아야 할 말’이 너무 많더군요. 고작 여덟 살인 어린이가 초등학교 1학년을 맞이한 그해에 이천도 넘는 낱말을 다 외우도록 알고 쓰도록 해야 하는지 아리송합니다. 교과서를 엮는 분은 이 대목을 거의 안 헤아린 듯합니다. 이와 더불어 말이 안 쉬운데다가 우리 삶이나 살림자리에서 널리 즐겁게 쓸 낱말이 빠지기도 하더군요. 초등학생이 보는 한국말사전에도 빠진 낱말이 있다 하지만, 들어가서는 안 될 만한 말이 들어가기도 해요. 아마, 교과서를 엮거나 어린이사전을 엮는 분들, 어른들로서는 ‘그런 어렵거나 삶하고 동떨어진 낱말도 사회에 몸을 붙이려면 알아두어야 한다’고 여길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말은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어 익혀도 늦지 않아요. 어린이 때에는 차츰 크는 몸나이에 걸맞게 마음나이를 헤아려서 낱말을 차근차근 짚어 줄 노릇입니다. 이를테면, 일자리에 얽힌 말을 보면 ‘돈을 많이 버는 일자리’에 얽힌 낱말은 많이 들어가네요. 그러나 우리 삶자리 곳곳에서 보람차게 일하는 사람들이 쓰거나 이분들을 가리키는 ‘여러 갈래 일말이나 살림말’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없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교과서에 실린 낱말을 다 살펴보았고 2학기 교과서를 한창 살펴보는데요, 1학기 교과서에 실린 낱말이 1455이더군요. 이 낱말을 살피면, 누구나 쉽게 쓸 만한 낱말이 아니라, 굳이 ‘안 쉽고 아이한테 낯설 한자말’을 겹겹으로 집어넣기도 해요. 사회에서는 그런 한자말을 쓴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교과서에 나오는 꽃이름도 오랜 텃꽃을 다루기보다는 그저 이쁘장해 보인다는 서양꽃을 지나치게 많이 다룹니다. 짐승이름도 이 땅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짐승을 다루지 않고, 아프리카나 다른 나라에서 사는 짐승을 너무 많이 다루더군요. 더군다나 교과서는 거의 ‘도시 아이들 삶’을 한복판에 놓다 보니 이런 교과서로서는 아이들이 다 다르면서 아름다운 삶과 삶터를 느낄 수 없겠구나 싶고, 아이들한테 너른 꿈을 심도록 북돋우는 길하고도 멀구나 싶어요. 말을 말답게 다스리면서 아이들이 저마다 생각을 새롭게 가꾸는 길을 스스로 가도록 이끄는 틀하고도 꽤 멀구나 싶습니다. 오늘날 초등학교 교과서는 틀림없이 문학성도 뒤떨어졌을 텐데, 말은 말대로 한참 뒤떨어진 채 그림만 곱게 꾸미려고 하는 겉치레라고 느낍니다. 구한말 교과서는 50쪽도 안 되지만, 이 작은 교과서에도 모든 교과를 담아내지만 아주 훌륭하고 알뜰하게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느낍니다. 1960년대 첫머리에 나온 교과서는 “철수야 놀자. 영희야 같이 놀자” 하는 “온통 놀자판”이기는 해도 아이들이 ‘처음 말을 배우는 걸음’를 깊이 살핀 자취를 엿볼 수 있어요. 교과서를 어떻게 엮어야 할까요? 교과서는 참으로 문학, 그러니까 노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만, 문학이라는 노래를 어떤 말로 담는 그릇이어야 할까요? 다 다른 아이들이 저마다 다른 말로 저마다 다른 생각을 꿈으로 지피도록 이끄는 교과서는 언제쯤 우리 손으로 빚어서 아이들한테 건네줄 수 있을까요?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르면서 아름다운 사랑을 즐겁게 배우고 스스로 익혀서 활짝 피어나는 길을 우리 어른들은 얼마나 헤아리는 셈일까요? 수십 수백만 어린이가 모두 ‘똑같은 교과서’를 받아서 보아야 하는데 그 똑같은 교과서가 그야말로 아이들이 아름답고 힘차며 씩씩하고 튼튼하게 자라는 밑거름이 되지 못한다면, 우리 앞길은 어떻게 될까요? 초등학교뿐 아니라 중·고등학교 교과서는 문학성도 문학성일 테지만 말은 얼마나 말답게 엮은 길잡이책 노릇을 할까요? 오늘날 이 나라 교과서는 ‘똑같은 기계로 싹둑싹둑 맹장을 잘라버리는 의료기계’와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사람은 다 다르지만 기계처럼 모조리 똑같은 가위질을 일삼는 굴레는 아닐까요? 초등학교 교과서는 너무 어렵습니다. 실린 말부터 너무 많고 어려운 말도 너무 많습니다. 초등학교 여섯 해를 살아야 할 아이들은, 배움길이 아닌 배움짐을 온몸에 무겁게 짊어져야 할 판입니다. 숨막히고 짓눌려 허우적거리는 아이들을 바라보아야겠어요. 차라리 교과서를 몽땅 없애면 좋겠어요. 졸업장을 주는 학교가 아니라, 부디 살림을 가르치고 배우는 나눔터가 되면 좋겠어요.” 2001.5.15.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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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

이렇게 더운 날, 참새는 어디에서 목을 축일까? 들고양이와 들개는? 뭇목숨들은 ‘돈’으로 살지 않기 때문에 가게에서 물을 사마실 수 없다. 그렇다고 이 서울이라는 곳에 냇물이 시원하게 흐르지도 않고, 푹푹 찌는 날씨에 물웅덩이가 고이는 데도 없다. 비라도 오지 않는다면. 이와 마찬가지로 참새는 먹을거리를 사먹을 수도 없다. 이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물 한 방울이 고맙고 밥 한 톨이 고마운 줄 새삼스레 생각한다. 내가 물방울하고 밥톨을 모르며 산다면, 고마운 숨결을 잊은 채 산다면, 나는 아마 이 지구라는 별에서 사라져도 될 목숨이리라. 2001.5.16.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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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삯

아랫집이 나간 뒤 날라온 지난달 전기삯. 이만칠천 원 즈음 나왔다. 옆칸에 사는 아가씨나 나는 전기를 거의 안 썼으니 거의 아랫집이 쓴 만큼 나온 값. 아랫집은 어디로 집을 옮겨갔을까? 그분들은 이달 전기삯을 내야 하는 줄 알았을 테지만, 글쎄. 이제 계량기를 칸마다 따로 달면 전기삯 가지고 싸울 일이 없겠지. 전기 공사라 할 것도 없고, 1층과 2층 전깃줄도 다 나뉘었으니, 계량기만 붙이면 끝날 일이다. 가만 보니 일부러 1층하고 2층 계량기를 안 나눈 듯하다. 예전에 이 집에서 살던 분들은 서로서로 전기를 많이 쓰면서 돈은 반씩 나눠 내면 된다고 여기면서 그냥 두었지 싶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오히려 누진이라 해서 낼 돈은 더 늘어나는데 말이다. 작은 꿍꿍이로 그렇게 아웅다웅하니 서로서로 더 나쁜 일이 있고 서로를 더 못미덥게 보지 않는가. 2001.5.4. (덧말 : 집임자는 처음에는 1층하고 2층을 갈랐고, 몇 달이 지나서야 2층도 옆칸하고 내가 깃든 칸을 갈랐다. 몇 달 뒤, 내가 사는 칸에 나온 전기삯을 보니 한 달에 2000원이 채 안 된다. 나는 이태쯤 애먼 전기삯을 다달이 이만 원 남짓 치른 셈. 집임자 아저씨도 옆칸 아가씨도 나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않는다. 뻔히 고지서를 보았으면서)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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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

밤마실로 헌책집에 간다. 내가 사는 종로구 평동에서는 걸어서 조금만 가면 독립문 영천시장이 나오고, 영천시장 끝자락에 헌책집 〈골목책방〉이 있다. 〈골목책방〉 아저씨는 밤 열두 시까지 문을 열어 놓으시니, 밤빛이 깊어 가는 때에도 살살 밤마실을 다닌다. 또는 이화여대 가는 길목, 구름찻길 옆자락에 있는 〈문화책방〉도 늦게까지 문을 여시기에 그곳으로 밤마실을 가지. 퍽 짧은 길인데, 오늘은 어디로 갈까 어림하다가 〈문화책방〉으로 가기로 한다. 그런데 가는 길에 전경 떼거리를 본다. 전철역 나들목에 왼쪽 오른쪽 가에 붙어선 여섯 사람. 등에는 길이가 2미터나 되는 몽둥이를 찼네. 그네들 탓에 지하철을 타고 내려가고 올라오는 길은 겨우 두 사람이 비좁게 다닐 수밖에 없다. 서대문역을 지나 충정로역까지 걸어서 가는데 충정로역에는 빨간 모자를 쓴 백골단도 있다. 이네들은 누구를 지키려고 이 자리에 있었을까? 이네들은 누구를 지킬 셈으로 이 늦은 때에도 전철역을 꽁꽁 에워싸든 둘러쌀까? 누구를 지키고자 2미터짜리 몽둥이를 등에 차고 다니며, 길을 걷는 사람들을 한쪽 구석으로 밀어붙일까? 누구를 지키고자, 그걸로 찍으면 살점이 나가는 방패를 들고 다닐까? 그러나 이제는 밤이 늦어 철수하는지 다른 데로 가는지 전경 떼거리가 건널목을 건너 닭장차에 오른다. 건널목을 건널 때에 이네들이 들고 있는 방패에 가로등 불빛이 비치며 번쩍번쩍한다. 소름이 돋았다. 오늘은 ‘노동절’이란다. 2001.5.1.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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