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내가 사는 집에 여러 벌레가 같이 산다. 야릇한 일이다. 1995년부터 여러 벌레하고 만난다. 다른 곳도 아닌 서울에서 여러 벌레를 만난다니 재미있다. 1995년부터 일하던 신문사지국에선 늘 곱등이가 밤마다 튀어나와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처음엔 바퀴벌레인 줄 알고 놀랐으나, 곱등이는 곧잘 노래하더라. 귀뚜라미하고는 살짝 다른 노래가 재미있다. 오늘 사는 이 종로구 구석진 평동 한켠 나무집에도 곱등이가 살고 귀뚜라미도 더러 노래한다. 이렇게 비가 쏟아붓는 날, 비를 어디서 잘 긋는지 여러 벌레 노랫소리가 퍼진다. 그야말로 신나게 울어댄다. 서울에서 귀뚜라미 우는 소리를 듣기는 어렵다지만, 이 집에 있으면 밤이면 밤마다 귀뚜라미를 비롯한 여러 가지 소리를 듣는다. 때로는 바퀴벌레가 사각사각 무언가 긁어대는 소리, 가끔 쥐가 천장과 나무벽 사이를 지나다니며 내는 소리, 개미가 기어다니는 소리, 거미가 슥슥 거미줄을 치는 소리, 모기가 앵앵대는 소리, 때때로 족제비가 열린 창문으로 들어와서 흘깃흘깃 구경하다가 사라지는 소리, 참 재미나다. 너희가 같이 살아 주니 나는 이 집에서 혼자 산다는 느낌이 하나도 안 든다. 2001.7.15.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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콕콕

스무 해 넘게 콕콕 박아 두었던 날적이를 들춘다. 그때그때 살아낸 발자국을 돌아본다. 아팠던 일, 슬펐던 일, 괴로웠던 일, 고달팠던 일, 애쓰던 일, 땀흘리던 일, 눈물젖던 일, 이러면서 웃던 일, 신나던 일, 놀라던 일, 아름답다고 느끼던 일, 반가우면서 사랑을 느끼던 일, 온갖 일이 갑자기 휙휙 스치고 지나간다. 오래도록 콕콕 박아 두던 예전 글조각은 어쩌면 글씨앗이었을는지 모른다. 콕콕 박을 적에는 까맣게 잊던 발걸음이지만, 어느덧 하나하나 새롭게 피어나는 봄노래일 수 있다. 지난날에는 그런 씨앗을 글로 콕콕 박았다면, 오늘 나는 어떤 씨앗을 콕콕 박아서 앞으로 맞이할 스무 해나 서른 해를 살아내려나. 2019.3.24.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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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1

새벽 세 시 반쯤이었을 게다. 한참 자는데 갑자기 등짝에 무언가 달라붙었다는 느낌이 들어 화닥닥 하고 일어나 긴 머리채를 흔들며 탁 터니 바닥에 툭 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 얼른 불을 켜고 보니 바퀴벌레. 신문종이로 확 때려잡고 치운다. 다시 잠들려는데 잠이 안 온다. 이러던 다섯 시 무렵, 활짝 열어 놓은 2층 창문 바깥에서 때이른 매미소리가 들린다. 어라, 매미가? 게다가 이런 새벽에? 문득 생각한다. 서울이라는 곳에서 굼벵이가 땅속에서 잠자기 갑갑했겠지. 너무도 갑갑해서 다른 동무보다 일찌감치 땅을 박차고 나왔을까. 그렇지만 혼자서 너무 일찍 나오고 말아 이 새벽에는 너랑 함께 울어 줄 동무가 없구나. 그래도 네가 길잡이로 나섰으니 다른 동무도 곧 땅속에서 네가 우는 소리를 듣고 슬슬 땅밖으로 나오려고 애쓸 테지. 새벽소리가 새롭다. 이부자리를 개고 자리에 앉아 책을 편다. 2001.7.2.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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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련

신촌에 있는 헌책집 두 군데를 들러서 등짐에 다 채우지 못할 만큼 책을 많이 산다. 그리고 사진기 어깨짐과 함께 이 녀석들을 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마을버스를 타려 했으나, 버스길을 말도 않고 갑자기 바꾸어서 이제 우리 집 언저리는 안 지나간단다. 어처구니 없는 사람들. 버스길을 바꾸면서 어떻게 말도 안 하고 바꾼 다음에도 알림글 하나 안 붙여 놓을 수 있을까. 대단한 사람들이다. 이러구러 신촌에서 우리 집 사이는 버스를 안 타고 걷기로 한다. 책집부터 집까지 짐 들고 땀 뻘뻘 흘리며 돌아와 보니 한 시간 걸리네. 그래, 한 시간 동안 몸을 잘 쓴 셈이지. 일찍 집에 들어온다 하더라도 이 고단한 몸으로 어찌 책이라도 제대로 읽을 수 있겠는가. 땀 쪽 뺐으니 시원하게 씻고 드러누울 노릇이다. 더구나 신촌서 사람 발길 하나 없는 후미진 길을, 또 터널길을, 이래저래 걸으면서 목청 틔워 노래도 불렀지. 사람 하나 얼씬하지 않는 길도 서울에 제법 있기에, 이런 길을 홀로 걸을 적에는 신나게 목청껏 노래를 부른다. 이때에는 등짐도 손짐도 어깨짐도 다 잊는다. 땀도 잊지만 추위도 잊는다. 노래를 마치고 비로소 사람 있는 골목에 접어들면 어찌나 후련하던지. 이래서 사람들이 멧봉우리에 올라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려 하는지 모른다. 씻고 빨래하고 옷을 옷걸이에 꿰어 넌다. 오늘 장만한 책을 넘긴다. 창문을 모두 연다. 불빛 아닌 별빛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하늘을 볼 수는 있다. 저 하늘을 보며 앞으로 나는 몇 해쯤 더 살면 좋으려나 어림한다. 예순? 아니, 너무 짧아. 여든? 글쎄, 좀 모자라. 백? 음, 이백 살쯤 살면 어떨까? 그때쯤이면 이 나라도, 땅덩이도 아름답게 바뀔는지 모를 노릇 아닌가. 아름다운 꽃누리를 볼 때까지 튼튼하게 씩씩하게 걸어가자. 이 다리로. 이 몸으로. 2001.7.11.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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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우리

아랫칸에 새로 옮겨온 집 둘째 아이는 일곱 살. 이 아이는 여러 가지 짐승을 기르네. 서울 한복판인 이곳 종로구 평동 적산가옥 나무집에서. 오래된 나무집이나 적산가옥이라 옆에는 우쭉우쭉 빌라가 솟아 햇볕이 잘 비치지도 않는 이 자그마한 집에서. 토끼 여러 마리, 병아리 여러 마리. 이야 놀랍다. 너 참 대단하구나. 그런데 어느 날 중병아리 둘 가운데 하나가 보이지 않더라. 그리고 또 어느 날, 새장에 살며 새벽 같은 아침에 내가 일 나가고 밤 같은 저녁에 집으로 돌아올 적마다 뺙뺙거리며 슬피 울던 중병아리도 사라졌다. 아이는 나를 보더니 “나비 보세요.” 하며 “이제 나비만 남았어요” 하며, 토끼랑 병아리는 다 죽었다고 말했다. 불쌍한 병아리와 토끼 들. 이 목숨들은 죽어서도 묻힐 흙 없을 서울 한복판 종로에서 저희 삶길을 마쳤구나. 병아리는 새장에 내가 손가락을 집어 넣고 그러면 내 손가락에 붙어서 뺙뺙거리니 차마 발걸음을 떼기 힘들다. 그 중병아리는 저와 함께 자라던 짝을 잃고, 다른 새끼병아리와 사는 곳이 갈라진 채 지내다가 제 어머도 마지막으로 보지 못하고 살다가 떠났다. 이런 말을 일터에 가서 했더니 “짐승들이 뭔 그런 걸 다 아느냐”고 하더만, 나는 이 작은 숨결을 보면서 그렇게 느낀다. 이 숨결도 혼자서 쇠우리에 갇혀서 사람이 주는 모이만 받아먹어야 할 적에, 이 모이를 받아서 먹고 싶겠는가? 병에 갇히고 만 나비도 그렇다. 병에 갇혀 날갯짓을 할 수 없는 나비도 머지않아 이미 죽은 토끼와 병아리 뒤를 따르리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갇히면 숨은 끝이다. 2001.6.12.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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