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1

인천 율목동에 도서관이 있다. 동무들하고 율목풀장에서 물놀이를 하러 오갈 적마다 도서관을 보았다. 집이 가득한 골목에 있는 도서관이 궁금하다만, 동무들은 “도서관? 거길 왜 가? 그냥 놀자.” 하고만 말한다. 그러나 이런 동무들한테 “그래도, 그래도, 도서관에도 가 보자.” 하고 달래고 꼬드기고 한 끝에 드디어 처음으로 도서관 문턱에 이른다. 커다란 문을 당겨서 들어가는데 벼락같은 목소리. “너희들 뭐니! 여기는 왜 들어와! 여기는 너희 같은 애들이 올 곳이 아니야! 도서관은 공부하는 곳이야!”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에 가슴이 벌렁벌렁 뛴다. 우리는 도서관 안쪽으로는 발도 들이지 못하고 달아나야 했다. 1985.8.6.


도서관 2

동무들은 독서실을 끊어서 시험공부를 한단다. 나는 독서실이 달갑지 않다. 좁은 칸을 질러서 빼곡하게 들어차는 그곳에 있으면 외려 시험공부가 안 될 듯하다. 더구나 독서실 갈 틈이 어디 있니? 날마다 학교에서 밤 열한 시까지 붙잡히는데. 토요일에는 낮 네 시까지 붙잡히는데, 고작 토요일 저녁하고 일요일에 가자며 독서실을 끊을 생각이 없다. 그리고 일요일 하루라도 기찻길을 걷거나 바닷길을 걸으면서 바람쐬며 쉬고 싶다. 그런데 다른 동무가 “독서실 말고 도서관에 가면 돈이 안 들어.” 하고 나더러 같이 가잔다. 도서관이라면 좀 다를까 싶어 가 본다. 한 시간쯤 칸막이에 앉아 숙제를 한다. 기지개를 켜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도서관이니, 이런 칸막이에만 있고 싶지 않아 책꽂이 있는 자리를 살피기로 한다. 책이 있는 자리가 그리 안 크다. 칸막이 자리는 여러 층인데, 책은 고작 한 층에만 있다. 더구나 책은 왜 이리 낡고 지저분하고 오래된 것만 있는지. 하. 인천이 이것밖에 안 되나? 이러니 다들 인천을 싫어하고, 인천에서 하루빨리 나가 서울로 가고 싶어하겠구나. 참 미친 도시이다. 인천이란 데는. 1991.4.17.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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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책집

마을마다 책집이 새롭게 문을 연다. 새롭게 문을 열었으나 조용히 문을 닫기도 한다. 그럴 만하지. 모든 가게가 다 장사가 잘 되지는 않는다. 책집뿐 아니라 닭집도 빵집도 매한가지이다. 백화점이나 편의점조차 장사가 어려워 문을 닫기도 한다. 책집이라 해서 문을 닫는 일이 없이 이어가지는 않는다. 마을책집은 말 그대로 마을에서 마을사람이 사랑할 만한 우물가 같은 쉼터이자 책터인 곳이다. 으리으리하거나 널찍널찍한 책집이 아닌,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 더 많은 책을 쌓아 놓는 책집이 아닌, 마을에서 마을살림을 사랑하는 사람이 수수하면서 곱게 책으로 삶을 배우는 길에 벗님이 되려고 하는 숲터이자 마음터이다. 마을책집이 빛나는 까닭을 아는가? 마을책집에는 참고서나 문제집이나 교과서가 없다. 자, 보라. 참고서나 문제집이나 교과서가 없으니 책터가 얼마나 눈부신가? 우리 삶에서도 이와 같다. 참고서나 문제집이나 교과서는 안 봐도 된다. 아니, 치울 적에 아름답다. 시험점수를 높이려는 길이 아닌, 살림자리를 빛내려는 길을 가기에 스스로 눈부시기 마련이다. 마을책집은 벽에 그림이나 사진을 붙일 수 있다. 마을책집은 글쓴이나 책낸이 누구나 느긋하게 찾아와서 글벗을 오붓하게 만날 수 있는 도란터나 수다터가 되기도 한다. 하루를 그리는 그림터요, 마을에서 살아가며 짓는 꿈을 함께 글로 담아내어 작은 책으로 새삼스레 엮기도 하는 글터이기도 하다. 2018.12.23.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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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란 말을 쓰다

여태 몰랐다. 오늘까지 몰랐다. 사전을 쓰는 사람인 주제에 여태 ‘글’이란 낱말을 놓고서 뜻풀이를 안 했다. ‘글’을 안 다루었다 보니 ‘글씨·글월’ 같은 비슷한말을 놓고도 뜻풀이를 안 했네. 깜짝 놀란다. 더구나 ‘글’이란 낱말을 놓고도 동시를 아직 안 썼네. 어쩜, 이럴 수 있나 싶다가도 마음을 추스른다. 여태 안 썼다면 여태 쓸 수 없을 만큼 배움길이 얕았다는 뜻이겠지. 이제 깨달아서 드디어 오늘 ‘글·글씨·글월’ 세 마디를 따로따로 풀이해 냈다면, 바야흐로 그동안 배움길을 찬찬히 걸어서 실마리를 잡고 수수께끼를 풀었다는 뜻일 테고. 2019.3.28.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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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씨 2

이야기꽃을 펴는 자리에 가서 내 책을 읽은 이웃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 나더러 “어쩜 그렇게 글을 잘 쓰느냐?”고 “글솜씨를 그렇게 키우는 비법이 있나요?” 하고 묻는다. 이런 말을 들으면 어쩔 줄 모르기 마련인데, 이제는 좀 나아졌다. 이제는 ‘어쩔 줄 살짝 안’다. 고작 열 해 앞서까지만 해도 나는 둘레 사람들한테서 “문장력이 형편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면 나는 열 해 사이에 아무한테도 안 밝힌 ‘문장력 향상 비법’이라도 있을까? 모르겠다. 나는 예나 이제나 똑같이 글을 쓸 뿐이다. 나는 스스로 겪은 삶을 글로 옮기고, 글을 쓸 적에 언제나 마음으로 말한다. 손으로는 글판을 두들기지만, 입으로는 내가 글판을 두들기는 빠르기하고 똑같이 말을 한다. 입으로는 말을 하면서 손으로는 글을 친다. 그래서 내 글은 모두 내 말이다. 내 말씨가 그대로 글씨이다. 그런데 이렇게 입으로 쓴 글을 곧장 올리는 일은 없다. 적어도 열 벌은 되읽고서 올린다. 때로는 서른 벌을 읽고서 올리고, 어느 글은 백 벌 넘게 되읽고 손질한 끝에야 올린다. 입으로 말할 적에 군더더기 하나 없기를 바라면서 글로 옮긴달까. 다른 사람 아닌 바로 나 스스로 토를 달 곳을 하나라도 두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입으로 말하면서 글쓰기’를 한다. 그런데 이렇게만 하지는 않는다. 나는 사전을 뒤적여서 내가 쓰는 모든 낱말을 찾아본다. 예전에는 종이사전을 뒤적여야 해서 글쓰기가 수월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누리사전으로 쉽게 낱말찾기를 하니 짐이 퍽 덜었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예나 이제나 글을 쓰면서 내 글에 깃드는 모든 낱말을, 뻔히 안다 싶은 낱말도 모조리 다시 찾아보고 뜻을 읽고 새기면서 쓴다. 아마 어느 낱말은 사전으로 만 벌 넘게 찾아봤겠지. 아니 십만 벌 넘게 찾아본 낱말이 있으리라. 나는 글을 쓸 적에 “내가 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글을 쓰면서 “나는 배우는 사람이다. 나는 제대로 알고 싶은 마음으로 배우려고 글을 쓴다”고 생각한다. 나한테는 글쓰기에서 띄어쓰기나 맞춤법이 대수롭지 않다. 말뜻하고 말결하고 말씨하고 말느낌하고 말넋하고 말숨하고 말사랑하고 말삶하고 말살림하고 말길이 대수롭다. 어떤 글이든, 눈으로 읽는 말이다. “눈으로 읽을 수 있는 그림 같은 말”이 바로 ‘글’이라고 할 만하다. 아무튼 나는 늘 이런 마음으로 글쓰기를 했는데, 어쩌면 2007년 무렵까지는 대단히 어수룩한 못난쟁이 글쓰기였다면, 2017년으로 접어드니 조금은 봐줄 만한 글쓰기로 나아졌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아직 모른다. 나는 그저 쓸 뿐이다. 생각하고 배우고 살펴보고 익히고 돌아보고 갈고닦고 헤아리고 사랑하면서 하루를 즐기는 글을 쓸 뿐이다. 2017.12.29.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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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씨 1

적잖은 분들이 내 글을 읽고서 하는 말은 “문장력이 너무 떨어진다”이다. 나는 이분들한테 “저는 아마 글솜씨(문장력)가 많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 글솜씨를 좋게 하려는 글을 쓸 생각이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쓰는 글은 우리말하고 책하고 헌책집, 거의 이 세 가지인데, 한 가지라도 제대로 짚어서 제대로 밝히려는 뜻이고, 한 군데 헌책집이라도 더 알리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제가 단골로 드나드는 서울 시내 헌책집이 100군데를 넘고 곧 200군데가 넘을 텐데, 적어도 다달이 이곳을 찾아가서 이곳 이야기를 쓰자면 날마다 몇 군데 헌책집 이야기를 써야 하고 책이야기도 잔뜩 써야 해요. 그래서 저는 제 글솜씨는 돌아보지 않기로 했어요. 아마 저는 글솜씨뿐 아니라 사진솜씨도 많이 뒤떨어졌을 수 있어요. 그러나 저는 제 이름이 드러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이, 제가 다루는 헌책집을 알아보거나 눈여겨볼 분을 늘리고픈 마음으로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요. 부디 제 글이나 사진에서는 최종규라는 이 글솜씨나 사진솜씨는 보지 말아 주셔요. 걔는 워낙 글을 못 쓴다고 여기면서, 제가 짚은 우리말 이야기를 헤아려 주시고, 제가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알리는 헌책집에 기쁘게 마실해 주셔요.” 하고 대꾸한다. 내가 쓰는 글은 늘 한 가지 틀이 있다. 스스로 즐겁게 읽은 책을 스스로 즐겁게 이야기한다. 스스로 즐겁게 다녀온 헌책집 이야기를 즐겁게 쓴다. 이뿐이다. 아마 이 때문에 나는 글솜씨 키우기는 하나도 못하는구나 싶다. 2007.6.15.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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