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학자의 노트 - 식물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
신혜우 지음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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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숲책 2023.3.4.

숲책 읽기 191


《식물학자의 노트》

 신혜우

 김영사

 2021.4.27.



  《식물학자의 노트》(신혜우, 김영사, 2021)는 겉에 ‘식물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라고 작은이름을 적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풀꽃나무가 들려준 이야기’를 참말로 듣고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렸는지 알쏭했습니다. 도무지 풀꽃나무하고 이야기를 안 한 채, 아니 풀꽃나무가 들려준 마음이나 말을 안 들은 채 쓴 책이라고 느끼다가 265쪽에 이르러 수수께끼를 풀었어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분은 “결국 이런 과학적 원리를 보면 식물은 역시나 마음도, 마음이 생길 수 있는 뇌도 없고, 우리 인간과 교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확인하게 됩니다(265쪽).” 하고 끝자락에서야 밝힙니다. 그러고 보면, 첫머리에 “식물 그림은 … 길고 고된 과정이 있습니다(5쪽).” 하고 말하는 까닭을 알 만합니다.


  마음을 읽지 않는 그림이니 길고 고될밖에 더 있겠습니까? 풀꽃나무한테 마음이 없다고 ‘과학’으로 그렇게 밝혔다고 버젓이 말하는데, 이분이 담은 글·그림에 ‘마음’이 깃들지 않았다고 느낄밖에 없어요.


  지은이는 “문헌 조사와 오랜 관찰, 많은 표본을 살펴보는(5쪽)” 데에는 그토록 품을 들였으되, 막상 풀꽃나무를 ‘마음’으로 만나려고는 안 했구나 싶어요. ‘말린 풀꽃’을 오래오래 지켜보면서 그대로 옮겼습니다.


  어린이가 풀꽃나무를 지켜보면서 담는 그림은 오롯이 마음으로 만나고 느끼고 본 결을 옮깁니다. 어린이는 어떠한 ‘문헌·표본 조사’를 안 하고, 눈앞에서 마주하는 풀꽃나무만 바라보면서 그림으로 담아요.


  마땅합니다만, 온누리 풀꽃나무는 다 달라요. 그리고, 온누리 풀꽃나무는 다 같습니다. 더 많은 풀꽃나무를 들여다보아야 풀꽃나무를 제대로 알지 않습니다. 눈앞에 있는, 눈앞에서 바람에 살랑거리는, 눈앞에서 해바라기를 하면서 웃고 노래하는, 눈앞에서 싱그러이 살아숨쉬는 풀꽃나무를 ‘나도 똑같이 숨붙이’라는 마음을 틔워서 다가가면, 모든 풀꽃나무는 우리한테 마음을 열고서 스며들어요.


  마음읽기가 어렵다고요? 정 마음읽기가 어려우면 풀잎이나 나뭇잎을 하나 톡 따서 먹으면 돼요. 풀줄기랑 풀뿌리를 먹어 보고, 나무줄기하고 나무뿌리도 먹어 보면 됩니다. 날로 먹기 어려우면 끓는물에 우려서 먹을 수 있고, 말리거나 덖은 다음에 뜨거운물에 우려서 마실 수 있어요. 풀꽃나무를 다룬 모든 글(책·문헌)은 이렇게 마음읽기로 알아낸 이야기에다가 스스로 먹고 마시고 누린 살림을 갈무리해서 담습니다. 그러니까 식물도감이나 표본이 아닌, 눈앞에 있는 바로 이 싱그러이 살아서 춤추고 노래하는 풀 한 포기에 꽃 한 송이에 나무 한 그루만 마음으로 사귀면, 글도 그림도 끝없이 쏟아지게 마련입니다.


  《식물학자의 노트》 지은이는 다시 태어나도 ‘식물학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히는데, 주검(죽은 몸)만 들여다보는 길이 식물학자라면 어떤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을까요? ‘고사리’라는 이름 하나는 ‘식물학자’가 아닌, 들살림을 짓고 숲살림을 사랑하는 수수한 시골사람이 어느 날 문득 골골샅샅에서 저마다 다른 말씨(사투리)로 지었습니다. 마음으로 만나기에 이름을 짓고, 살림으로 먹고 나누고 누렸기에 쓰임새를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로 이어와 오늘날 누구나 누리지요.


ㅅㄴㄹ


식물 그림은 그리는 식물 종에 대해 깊이 조사하고 전 생애를 관찰하여 최소 1년에 걸쳐 제작됩니다. 그릴 때는 문헌 조사와 오랜 관찰, 많은 표본을 살펴보는 길고 고된 과정이 있습니다. (8쪽)


영국 식물학자는 철로 주변뿐만 아니라 식물원 근처 공원에도 고사리가 자라는데, 봄마다 고사리를 꺾는 아시아인이 많다고 했습니다. 아시아 음식을 잘 알지 못하는 영국인들은 아시아인들이 고사리를 어디에 쓰는지 매우 궁금해 한다고 합니다. (51쪽)


결국 이런 과학적 원리를 보면 식물은 역시나 마음도, 마음이 생길 수 있는 뇌도 없고, 우리 인간과 교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확인하게 됩니다. (26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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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을 닮다
이현주 글, 강진주 사진 / 진주식당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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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숲책 2023.3.4.

숲책 읽기 190


《쌀을 닮다》

 이현주 글

 강진주 사진

 진주식당

 2019.5.15.



  《쌀을 닮다》(이현주·강진주, 진주식당, 2019)는 틀림없이 뜻있는 책이리라 봅니다. 논일을 안 무겁게 다루려 하고, 시골사람이 먼먼 남이 아닌 서울사람(도시인)하고 똑같이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이웃이라는 대목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서울내기가 논일이며 시골마을을 찬찬히 보면서 가까이하다가 문득 시골로 삶터를 옮기도록 이바지하려는 마음까지 흐르는 책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시골사람한테 안 읽힐 마음으로 여민 책으로 느낍니다. 시골사람한테 읽히려는 책이라면 깨알보다 작은 글씨를 안 넣었을 테고, 깨알보다 작은 글씨가 사진에 뭉개지도록 엮지도 않았을 테지요.


  머리말에 나오는 “주식(主食)의 위치에서 밀려난 동시에 미식(美食)의 모습”이라는 대목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 왜 이렇게 멋을 부리며 글을 써야 할까요? 첫머리에 ‘벼’를 풀이하면서 “쌀이 열리는 한해살이 식물”로 적는데, 아주 틀린 말입니다. “쌀이 열리는 풀(식물)”은 없습니다.


  쌀이 열리는 풀이 없는 줄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논일을 어떻게 바라보고 시골을 어떻게 헤아리려나요? ‘벼’는 열매 이름입니다. 풀에서 얻는 작은 열매는 따로 ‘낟알’이라 합니다. ‘벼’라는 낟알에 있는 껍질을 벗겨야 ‘쌀’입니다. 벼껍질은 절구로 찧을 수 있고 칼(기계)로 깎을 수 있습니다. 찧거나 깎아서 껍질이 없기에 ‘쌀·쌀알’인데, 껍질이 없는 열매를 내놓는 풀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보리나 콩이나 조가 ‘잡곡’일 수 없습니다. 무슨 생각으로 ‘잡곡’이라는 농협스러운 말을 함부로 쓸 수 있을까요? 풀이 있을 뿐 ‘잡초’란 없습니다. 지심·김을 매기는 하되 ‘지심·김’이라고는 하더라도 ‘잡초’라 안 합니다.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할머니한테 ‘그녀’라고 하니 소름이 돋습니다. 할머니는 그저 ‘할머니’입니다. 시골 할머니는 예전에 빗물을 받아서 마신 삶을 잊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빗물은 더없이 달고 맛나거든요. 빗물을 마셔 보지 않았다면 시골 할머니 말뜻을 모를밖에 없습니다.


  논에서 자라는 벼한테 수돗물이나 먹는샘물(페트병물)을 주면 어찌 될까요? 아마 다 죽어버리겠지요. 우리가 먹는 쌀밥을 이루는 벼는 늘 해바람비를 머금습니다. 해바람비를 머금기에 우리 몸에 이바지합니다. 빗물은 벼뿐 아니라 사람이 그대로 마실 수 있는 가장 빛나고 맛난 물입니다. 빗물이 땅으로 스며서 샘솟은 다음에 들숲을 가로지르듯 흐르기에 냇물입니다. 땅밑물(지하수)도 고스란히 빗물입니다. 그런데 이 빗물은 바닷물이지요. 이 얼거리를 헤아려야 비로소 땅과 사람과 숲이 하나인 살림살이를 하나씩 풀면서 배웁니다.


  《쌀을 닮다》는 104쪽에 ‘낫’을 빛꽃(사진)으로 싣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일본이 총칼로 쳐들어온 뒤로, 또 박정희 새마을바람이 온나라를 휩쓸 즈음에, ‘왜낫’이 빠르게 번졌습니다. 왜낫은 숫돌로 갈아서 쓰기 어렵습니다. 왜낫은 너무 얇아서 쉬 부러집니다. 숫돌로 갈아서 쓰는 낫은 ‘조선낫’입니다. 조선낫은 굵직하고 두툼하고 묵직합니다. 그래서 조선낫으로 웬만한 나뭇가지까지 칠 수 있습니다. 왜낫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겉보기로 반지르르하게 꾸미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되, 굳이 왜 해야 하는지 알쏭합니다. 서울사람한테 읽힐 ‘예쁘게 꾸민’ 책이 아닌, 누구보다 시골 어린이가 읽으면서 ‘벼’랑 ‘들숲바다’랑 ‘낫’이랑 ‘씨앗’이랑 ‘낟알’이랑 ‘빗물’이랑 ‘흙’을 즐거우면서 정갈하게 누리면서 새롭게 바라보는 꾸러미를 엮는 눈길부터 틔우기를 바랍니다. 다만, 이런 이야기를 쓰자면 짧아도 스무 해나 서른 해를 시골살림짓기를 해야 할 텐데,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빛꽃을 찍는 젊은이 가운데 스물∼서른 해를 조용히 살림짓기를 하고 지켜본 뒤에라야 이야기를 여밀 분이 있을까 잘 모르겠네요.


ㅅㄴㄹ


주식(主食)의 위치에서 밀려난 동시에 미식(美食)의 모습으로 변화하는 쌀을, 벼농사가 지닌 치유의 힘을 말입니다. (1쪽)


‘벼’는 쌀이 열리는 한해살이 식물이다. (6쪽)


당시엔 보리나 콩 같은 잡곡이 주로 재배되었다. 벼농사를 주로 하며 쌀밥을 지어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삼국시대부터이다. 허나 쌀은 여전히 귀족이나 먹는 고급음식으로 당시 서민들은 보리나 조, 기장 등의 잡곡밥을 먹었다. (11쪽)


여전히 어머님의 이야기는 입에 올리려 하지 않는다. 영혼에 깊게 팬 상처가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한 많은 세월에 주름이 굵게 파인 그녀는 말한다. (64쪽)


“지하수를 파면 짠물이 나오는 동네니 웅덩이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지. 그 물도 흙물이라 물독에다 가라앉혀 먹었어. 그 물을 개구리도 먹고, 뱀도 먹고, 사람도 먹었어. 그땐 빗물도 많이 받아먹었는데, 빗물이 제일 맛있었어.” (96쪽)


지난 시절 농사는 다 낫으로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퇴비를 하거나 꼴을 베는 것도 낫, 벼를 베는 것도 낫, 불을 지필 나무를 할 때도 낫이 필요했다. (10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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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오늘도 균형 - 반 농부 × 반 큐레이터
정광하.오남도 지음 / 차츰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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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숲책 2023.3.4.

숲책 읽기 189


《시골살이, 오늘도 균형》

 정광하·오남도

 차츰

 2023.2.15.



  《시골살이, 오늘도 균형》(정광하·오남도, 차츰, 2023)을 곰곰이 읽었습니다. 시골에 깃들기 앞서 알던 대목으로는 ‘빈집은 많으나 서울로 떠난 딸아들이 할매할배가 시골집을 못 팔게 한다’를 알았되 ‘바가지를 얼마나 씌우는지’는 몰랐습니다. 제가 시골 빈집을 사서 들어올 적에 치른 집값은, 나중에 알아보니 ‘바가지 석 곱 남짓’이었는데, 바가지를 쓰고서 집을 산 터라 ‘마을발전기금’은 안 내도 되었다는 뒷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바가지를 안 쓰고서 시골 빈집을 샀다면 ‘마을발전기금’을 치러야 할 뿐 아니라 ‘경조사비’도 끝없이 내야 했던 셈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시골에서는 ‘목도장’을 마을지기(이장)가 건사합니다. 이른바 ‘인감’ 아닌 ‘목도장’을 마을지기가 건사하면서 온갖 일을 ‘100퍼센트 찬성’으로 어느새 하지요. 이렇게 해야 일을 빨리 많이 할 수 있다고 여기는데, 이런 ‘시골마을 목도장’은 박정희 새마을바람 때부터 자리잡은 듯싶습니다.


  이 나라 어느 시골을 보아도 매한가지일 텐데, 시골 논밭뿐 아니라 멧자락에 바다까지 햇볕판(태양광)이 잔뜩 뒤덮었습니다. 나라지기(대통령)에서 물러난 그분이 나라일을 맡던 무렵에는 바람개비(풍력)까지 바다에 잔뜩 심었어요. 그리고 ‘스마트팜’을 전남 고흥처럼 볕 넉넉하고 비 잘 오는 시골에 커다랗게 때려박습니다.


  서울 한복판이라면 ‘스마트팜’을 할 수도 있겠지만, 흙도 구수하고 볕도 넉넉하고 비가 잘 오는 곳에 왜 ‘유리온실수경재배’를 해야 할까요? ‘스마트팜’을 하는 곳은 흙이 아닌 잿더미(시멘트)를 두껍게 깔아놓고서 ‘빗물 아닌 수돗물’을 먹여서 ‘햇빛·햇볕’이 아닌 ‘형광등’으로 키우는 얼개인데, 이렇게 거두는 남새가 사람한테 이바지할 턱이 있을까요? 그저 돈빼먹기 좋은 막삽질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시골살이, 오늘도 균형》을 쓴 두 분은 ‘어울림(균형)’을 이야기합니다. 이 어울림이란, 사람이 사람으로서 모든 숨붙이하고 어울리는 길일 적에 아름다우면서 즐겁고 정갈합니다.


  생각해 봐요. 오늘날 이 나라에서 때려박는 갖가지 삽일 가운데 들숲바다한테 물어보고서 밀어붙인 일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사람들이 만든 총칼(전쟁무기)은 사람한테도 죽음수렁이고 들숲바다한테도 죽음수렁입니다. 싸움판(군대)을 거느리려고 전기를 얼마나 많이 쓰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이 나라에 싸움판(군대·전쟁무기)만 없어도 모든 사람이 거저로 전기를 쓸 수 있는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언제부터인가 ‘국방과학연구소’처럼 ‘과학’은 총칼을 만드는 곳에 이바지했습니다. 아니, ‘과학’은 진작부터 총칼을 벼리는 데에 어마어마한 돈과 품을 쏟았습니다. 일자리 때문에 과학자가 되는 분들은 스스로 무슨 짓을 하는지, 그들이 하는 짓이 들숲바다를 얼마나 죽이는지 아마 하나도 못 느낄 테지요. 과학자 가운데 시골에서 살면서 풀꽃나무하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시피 하거든요. ‘식물학자’조차 풀꽃나무하고 얘기할 줄 모르는 판입니다.


  우리는 ‘균형발전’을 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랑 어른이 어울리려면, 어른이 어른스럽게 아이한테 눈높이를 맞출 일입니다. 아이가 어른 눈높이에 맞추지 못 합니다. 서울(도시)하고 시골은 어떻게 어울려야 할까요? 마을하고 마을은, 사람하고 사람은, 사람하고 숲은, 우리가 쓰는 말글은, 순이하고 돌이는 어떻게 어울려야 할까요? 힘으로 밀어붙여야 하나요, 돈을 앞세워야 하나요, 갈라치기를 하며 싸워야 할까요, 아니면 오롯이 사랑 하나를 바라보는 어깨동무를 노래할 수 있을까요?


ㅅㄴㄹ


시골에 땅이 생기면 씨앗을 뿌리고 나무를 심으면 된다. 집이 없으면 비바람을 피해 누울 작은 집 한 채를 지으면 그만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농부가 되었다. (20쪽)


지금 생각해 보면 도시를 향한 갈망은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이뤄진 무언가였다. 시골에서 자란 내가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기던 것들을 도시에서는 당연히 채울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54쪽)


나라마다 기호에 따른 고유 농작물이 있을 텐데 세계 각국에서 분업화해 생산하는 게 정말로 괜찮을까? (69쪽)


상추나 허브, 파와 같은 채소는 그저 단순한 식재료일 수 있다. 그런데 그토록 참담하고 눈물이 났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이 식물들에게 가장 좋은 환경을 제공하려 애썼기 때문일 것이다. (81쪽)


스마트팜이 농촌의 인구 감소, 고령화,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열쇠로 주목받고 있는 시대이지만, 스마트팜을 운영하는 데 들어갈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생각하면 완벽한 해결책이라 볼 수는 없다. (192쪽)


처음 시작할 때는 10년이면 뭔가 크게 이루었을 것이라 상상했는데, 지나고 보니 우리는 겨우 열 번의 농사를 지었을 뿐이다. (26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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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충분한 생활 - 씨앗 할머니의 작은 살림 레시피
하야카와 유미 지음, 류순미 옮김 / 열매하나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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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숲책 2023.3.4.

숲책 읽기 185


《이것으로 충분한 생활》

 하야카와 유미

 류순미 옮김

 열매하나

 2021.5.1.



  《이것으로 충분한 생활》(하야카와 유미/류순미 옮김, 열매하나, 2021)을 읽었습니다. 이 책을 여민 분이 이웃한테 들려주고 싶은 말은 ‘살림’ 하나이지 싶습니다. ‘농업·농촌’이 아닌 ‘귀농·귀촌’도 아닌 그저 ‘살림’ 하나입니다.


  우리말하고 한자말 사이인 ‘살림’하고 ‘농’이 아닙니다. 겉보기로는 우리말 

‘살림’이요, 속을 들여다보려고 한다면 ‘살림·사랑·사람·삶·사이·새로움·생각’이 하나씩 맞물립니다. 겉보기로 한자말인 ‘농’은 ‘농촌·농사·농업·농부’로 잇닿는데, 어디에서도 살림살이나 사랑이나 사람이나 삶을 엿볼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일본이나 중국도 ‘한자를 쓰던 사람’이 아닙니다. 글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흙을 만지면서 살림을 빛낸 사람들은 굳이 글을 짓거나 그리지 않았어요. 스스로 생각하고 말을 지어서 이야기를 펴면서 살림을 일군 사람들입니다.


  보금자리를 일구며 살아가는 길에 글은 딱히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말로 들려주면 되고, 몸으로 보여주면 되며 이야기로 함께하면 됩니다. 다만, 이제는 글이라는 ‘새로운 살림’이 태어난 터라, ‘우두머리(권력자)가 벼슬을 세워 사람들을 꼭두각시로 부리던 굴레’인 글이 아닌, ‘흙살림도 집살림도 옷살림도 밥살림도 보금자리에서 사랑으로 수수하게 짓는 길’인 글을 가꿀 수 있으면 됩니다.


  모든 살림길은 어른만 하지 않아요. 아이도 나란히 합니다. 어른이라면 쟁기질을 할 수 있을 테고, 아이라면 호미질을 할 수 있어요. 씨앗이며 나무는 어른도 아이도 함께 심습니다. 풀꽃나무는 어른하고 아이가 함께 사랑하지요.


  그러니까, 어른끼리 알아듣는 어렵거나 까다로운 글이라면 걷어치울 노릇입니다. 어른끼리 읽고 읽히는 글이라면 처음부터 쓰지도 읽지도 말 노릇입니다. 아이하고 어깨동무하는 말을 옮길 글일 적에 스스로 어른답습니다. 아이가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거나, 아이가 알아보지 못할 글을 쓴다면, 그대는 ‘어른 아닌 늙은이나 꼰대’입니다. 일본도 중국도 아이들한테 섣불리 한자를 안 읽히고 안 보여줍니다. 그저 ‘말’을 들려주고, 이 말도 매우 쉽고 부드러이 살림살이를 드러내는 결로 살려서 들려줍니다.


  이만하면 넉넉한 삶으로 가자면, 살림말을 쓸 일입니다. 이처럼 아늑한 살림이자면, 사랑말을 쓰면 됩니다. 이대로 즐거운 나날이기를 바라면, 사람말을 펴고 숲말을 헤아리고 삶말을 스스로 짓는 하루로 살아가면 되어요.


ㅅㄴㄹ


작은 밭에 씨앗을 뿌립니다. ‘흙만 있으면’ 손바닥만 한 작은 밭에서도 행복을 키울 수 있습니다. (14쪽)


제가 무척 좋아하는 참마를 멧도지나 사슴도 좋아하나 봅니다. 밭에서 키우는 참마를 거의 절반이나 먹어치우는 바람에 속상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도 동물도 참마를 모두 먹어없애지 못할 정도로 참마는 생명력이 강합니다. (34∼35쪽)


제가 사는 마을에서는 매일 오후 3시가 넘으면 장작불로 목욕물을 데우느라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86쪽)


우리의 진짜 일은 살림이 아닐까요. 사람은 살림을 위해 살아갑니다. 하지만 사회는 경제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살고 있지요. (139쪽)


이름난 작가나 창작자만이 아니라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표현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66쪽)


칼을 가는 시간은 마음을 가라앉히기에 좋은 시간입니다. (17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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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푸어 가족의 가난 탈출기
강은진 지음 / 작아진둥지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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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인문책 2023.2.27.

인문책시렁 285


《워킹푸어 가족의 가난 탈출기》

 강은진

 작아진둥지

 2022.6.22.



  《워킹푸어 가족의 가난 탈출기》(강은진, 작아진둥지, 2022)를 읽었습니다. 글님은 글님 집안이 ‘가난하다’고 여기는 듯싶으나 이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로 본다면 ‘아주 가난’은 아닙니다. ‘참으로 가난’하고는 퍽 멀지만 ‘안 가난’이라고 여기기는 어렵습니다.


  가난은 돈셈으로 못 따집니다. 달삯으로 40만 원이나 100만 원을 벌기에 가난하다고 여길 만할 테지만, 41만 원이나 105만 원을 번다면 안 가난일까요? 40만 원이나 100만 원부터 1만 원씩 올려서 하나하나 따져 봐요. 우리는 어느 만큼 벌 적에 비로소 ‘안 가난’으로 받아들일까요? 얼핏 보자면 40만 원하고 40억 원 사이는 하늘땅처럼 먼 듯싶으나, 1만 원씩 놓고서 올라가거나 내려가면 40만 원하고 40억 원은 뜻밖에도 ‘똑같’습니다.


  가난벌이 탓에 으레 한숨인 가시어머니한테 여쭌 적 있어요. “장모님, 한 달에 얼마를 벌면 안 가난이라고 여기시겠어요?” “돈? 많으면 좋지.” “많으면 좋다고 하시면 안 돼요. 딱 금을 긋고서 얼마면 좋다고 말씀해 보셔요.” “너무 어려운데.” “200만 원은요?” “좀 적은데.” “300만 원은요?” “좀 좋기는 한데 그래도 모자라지.” “그럼 400만 원은요?” “한 달에 400 벌면 좋지.” “자, 그러면 399만 원은요?” “좋지.” “398만 원은요?” “좋지.”


  200에서 100을 붙인 300이랑 100을 더 붙인 400을 가르면 얼핏 ‘더 좋은 벌이’를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1씩 덜면 400에서 어느새 300에 이르러도 “좋지.”란 말이 나올 수밖에 없고, 200뿐 아니라 100에 이르러도, 0을 지나 -100에 이르러도 “좋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거꾸로 셈해도 똑같습니다. -400이 나쁘다고 여기더라도 1씩 더해서 +400에 이르러도 그만 똑같이 “나쁘지.”란 말이 나와요.


  벌이가 크기에 가멸찬 살림이지 않습니다. 벌이가 적기에 가난한 살림일 수 없습니다. 스스로 가멸차다고 여기니 가멸차고, 스스로 가난하다고 자르니 가난합니다. 몇 억을 넘어 20억이나 200억이나 2000억을 주무른다지만, 웃지 않고 울지 않는 그들은 참말로 가멸찰까요? 이름을 드날린다지만 길거리에서 붕어빵을 500원에 사먹을 틈이 없는 그들이 참말로 가멸찰까요? 한동안 우두머리(대통령)나 벼슬꾼(시장·군수·장관·국회의원)으로 우쭐거린다지만,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가볍게 바람을 가르면서 노래할 줄 모르는 그들이 어떻게 가멸찰까요?


  부디 ‘가난씻이(가난 탈출)’를 하지 않기를 바라요. 스스로 삶을 가꾸어 살림을 노래하는 하루를 지으면서 이야기꽃으로 빛나는 사랑을 길어올리는 오늘을 누리기를 바라요. 돈 얼마를 버느냐가 아니라, 스스로 온마음 가득 사랑을 품고서 온몸으로 함께할 만한 일놀이를 하려느냐 아니냐를 바라볼 노릇이지 싶어요.


  둘레에서는 저를 보면서,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버스를 타면서 아이랑 천천히 다니는 저를 보면서, 등짐을 잔뜩 짊어지고 한여름에 뙤약볕을 걸을 뿐 아니라, 한겨울에도 으레 맨발에 고무신으로 다니는 저를 보면서 “왜 그리 가난하게 사소?” 하고 흘겨보는데, 언제나 빙그레 웃으면서 “조금 앞서 노래하는 새 보셨어요? 어쩜 이렇게 구성지게 노래하면서 하늘을 가를까요?” 하고 대꾸합니다. 이런 다음에는, 흔들흔들하는 시골버스에서 쓴 노래꽃(동시)을 글판에 옮겨적어서 척 건네요. “걸어다니고 새노래를 듣고 하늘바라기를 하고 아이들하고 도란도란 수다를 떨다가 쓴 글(시)이에요. 즐겁게 누려 보셔요.” 하고 덧붙입니다.


ㅅㄴㄹ


작지만 다시 집이 생기고 아빠는 오토바이 퀵서비스 기사가 되어 돈을 벌었다. 자식들은 모두 성인이 되어 각자의 삶을 살았다. 엄마는 그제야 ‘일’을 나섰다. 처음에는 집에서 인형에 눈알 붙이는 부업을 했다. 이후 집 근처 공장에 다녔다. 엄마는 공장에서 중국인 노동자를 만났다. 엄마가 처음 알게 된 외국인이다. 엄마는 중국인 동료로부터 배운 중국어를 집에 와서 내게 알려주었다. 또 중국 요리를 배워 와 집에서 만들어 주었다. (78쪽)


우리 가족은 유정 언니가 풀타임 직업을 가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언니가 풀타임 직장을 구했다면, 혼자서 아이 둘을 키우는 것이 가능했을까? (137쪽)


위험하고, 힘들고, 오랜 시간 일하던 지훈이는 반복적으로 일을 그만두었다. 또 지훈이가 오토바이 배달, 치킨집, 카페 매니저로 10년을 성실하게 일한다고 해도 승진할 수 없고, 기술자가 되지도 못한다. 아무리 오랜 시간 일해도 월급은 제자리다. (233쪽)


우리 가족의 계급은 노동자고, 계층은 빈곤층이다. 그리고 노동자로의 자부심은 가난으로 훼손당했다. (24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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