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보는 법 - 지식의 집을 잘 짓고 돌보기 위하여 땅콩문고
정철 지음 / 유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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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11.4.

읽었습니다 35



  한자말 ‘사전’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말꾸러미”요, 다른 하나는 “살림꾸러꾸러미”입니다. 어느 한자를 쓰는지 궁금해 하기보다는, 어린이도 쉽게 헤아릴 만한 ‘말책’하고 ‘살림책’이란 대목을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말을 모은 책일 적에는, 말을 바탕으로 삶과 사람과 숲을 마음에 품는 징검다리 노릇입니다. 살림을 모은 책일 적에는, 살림에 붙인 이름을 바탕으로 이웃과 동무와 별(지구)을 마음에 담는 징검다리 구실이에요. 《사전 보는 법》은 여러모로 틀(이론)에 맞추어 두 갈래 ‘꾸러미(사전)’가 어떤 뼈대요, 우리나라 꾸러미는 어떤 길을 걸었나를 살짝 짚습니다. 다만, 책이름처럼 “사전 보는 길”로 나아가지는 않는구나 싶어요. 어느 쪽 꾸러미이건 다리(잇는 몫)이거든요. 옳거나 바르게 갈무리하기에 사전이 아닌,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을 지펴서 마음을 가꾸도록 이바지하는 나즈막하고 상냥한 숨결을 말로 풀어내기에 사전입니다. 퍽이나 아쉬운 이 책입니다.


《사전 보는 법》(정철 글, 유유, 2020.8.24.)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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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 자연주의자의 일기 - 지구에 무해한 존재가 되고 싶은 한 소년의 기록
다라 매커널티 지음, 김인경 옮김 / 뜨인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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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숲책 2021.8.17.

숲책 읽기 171


《15살 자연주의자의 일기》

 다라 매커널티

 김인경 옮김

 뜨인돌

 2021.3.25.



  《15살 자연주의자의 일기》(다라 매커널티/김인경 옮김, 뜨인돌, 2021)를 만나서 반가웠으나, 책을 읽으며 내내 한숨을 쉬었습니다. 틀림없이 열다섯 살 푸른씨가 쓴 글을 옮겼을 테지만, 하나도 열다섯 살 말씨가 아니요, 숲을 사랑하는 푸른씨가 쓴 글을 옮겼다는데, 글에서 푸른빛이나 숲빛이 나지 않아요.


  이웃나라 푸른씨한테 ‘자연주의자’ 같은 이름은 얼마나 어울릴까요? 그런데 영어 낱말책은 ‘naturalist’를 “동식물 연구가, 박물학자”로 풀이하고, 독일 낱말책은 “자연주의자, 자연 연구자, 박물학자”로 풀이하는군요. 낱말책 풀이를 고스란히 붙였구나 싶은데, 열다섯 살에 이르도록 숲을 사랑하고 숲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하루를 갈무리한 책이라면 ‘숲아이’쯤으로 옮겨야 걸맞겠다고 봅니다. 열다섯 살 푸른씨는 내내 ‘숲’을 이야기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숱한 어른이 잊어버린 숲을 말합니다.


  영어 ‘forest’만 ‘숲’이 아닙니다. ‘nature’도 으레 ‘숲’입니다. 《diary of a youngn aturalist》에도 나옵니다만, 열다섯 살 푸른씨는 매캐한 바람에 둘러싸여 돈만 바라보는 어른을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사랑으로 녹이면서 보듬고픈 마음입니다. 책을 좀 덮어 보겠어요? 손전화도 끄고 글은 이제 그만 읽어 보겠어요?


  눈을 감고서 바람을 읽어 보겠어요? 스스로 읽고 느낀 바람을 스스로 말로 옮기고 노래로 담아 보겠어요? 이제 눈을 뜨고서 나무를 안아 보겠어요? 나무를 안다가 귀를 나무줄기에 대고서 가만히 나무 숨결을 느껴 보겠어요? 나무가 무어라 속삭이나요? 나무 이야기가 잘 들리나요?


  배우고픈 마음은 크지만, 갇힌 울타리인 배움터(학교)는 영 못마땅한 아이는 고단합니다. 우리는 언제쯤 형광등을 치우고 엘이디(LED)도 치울까요? 우리는 언제쯤 밤을 어둡게 누리면서 별빛을 맞이할까요? 우리는 언제쯤 자가용을 싹 치워 버리고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탈까요? 우리는 언제쯤 다섯겹(5층)이 넘는 잿빛집을 싹 밀어내어 아름드리 나무가 자라는 숲으로 바꿀까요?


  우리는 ‘-주의자’가 아닌 ‘-사랑’이 될 노릇입니다. 수수하게 ‘-순이·-돌이’가 될 노릇입니다. 숲돌이 곁에 숲순이가 있으면 됩니다. 서로 숲사랑으로 만나면서 하루를 푸르게 노래하면 됩니다. 책으로는 못 배웁니다. 숲에서 살림빛으로 사랑을 배웁니다.


ㅅㄴㄹ


봄은 우리 내면에 어떤 영향을 끼친다. 만물이 공중으로 붕 떠오르는 계절이니 인간도 이리저리 흔들릴 수밖에 없다. 빛도, 시간도, 할 일도 많아진다. (22쪽)


교실은 밝다. 너무 밝아서 노란빛과 빨간빛이 내 망막을 뚫을 지경이다. 형광등 불빛이 자연광을 잠식하고 있다. 밖이 보이지 않는다. 상자 속에 갇힌 기분이다. 우리 속의 야생동물처럼. (46쪽)


우리가 나무의 언어를 번역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나무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을 텐데. (88쪽)


그저 고요함과 수달, 수달과 고요함뿐이었다. 나는 그 순간 큰 힘에 압도되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232쪽)


바람이 간질이는 느낌을 느껴 보려고 손을 뻗었다. 대륙검은지빠귀가 내 손바닥 위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 일은 없겠지만, 내가 자연과 사람을 향해 항상 손을 뻗은 채로 있으리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283쪽)


#diaryofayoungnaturalist #DaraMcAnul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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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프리 - 삶의 기술, 세 번째 삶의 기술 3
김성원 외 지음, 크리킨디센터 전환교육연구소 기획·편집 / 교육공동체벗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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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노래 숲책 2021.8.9.

숲책 읽기 170


《삶의 기술 3 : 플라스틱 프리》

 크리킨디센터 엮음

 교육공동체벗

 2018.8.13.



  《삶의 기술 3 : 플라스틱 프리》(크리킨디센터, 교육공동체벗, 2018)를 읽으면서 ‘플라스틱’을 가만히 생각합니다. 영어라 해야 할는지 바깥말이라 해야 할는지, 이 낱말을 그냥 ‘플라스틱’으로 쓰는데, 1995∼97년에 싸움판(군대)에 있을 즈음, 멧골짝 사람들은 ‘뿔 식기’처럼 ‘뿔’이란 말을 쓰더군요. 한동안 ‘뿔’이 뭘 가리키는지 몰랐으나 싸움판에서 날마다 얻어맞으며 어느 날 알아차렸어요. 그곳에서는 ‘플라스틱’을 ‘뿔-’로 줄여서 가리키더군요. 그러고 보면 이 바깥말이 처음 들어올 즈음 ‘뿌라스틱’처럼 쓰는 분도 많았고, 싸움판에서는 ‘뿔’로 자리잡았겠다 싶더군요.


  중국에서 비롯한 돌림앓이가 퍼진 뒤로 입가리개를 꼭 하라고 다그치는데, 사람들 입을 틀어막는 가리개는 플라스틱입니다. 솜이나 모시나 누에실이 아닙니다. 이 책 《플라스틱 프리》도 매한가지인데, 책을 낼 적에 찍는곳(인쇄·제본소)에서는 플라스틱 끈으로 동입니다. 책이 팔리면 팔릴수록 쓰레기로 버리는 플라스틱 끈이 허벌납니다. 비닐자루도 플라스틱이지만, 사람들이 몸에 걸치는 옷이며 신도 거의 플라스틱입니다. 자동차도 으레 플라스틱을 잔뜩 쓰고, 손전화 껍데기나 싸개도 하나같이 플라스틱입니다. 예전에는 삽자루를 나무하고 쇠로만 썼으나, 요새는 플라스틱이 끼어듭니다. 논밭에 뿌리는 풀죽임물(농약)을 담는 병이나 자루도 플라스틱입니다. 먹고 마시는 숱한 싸개는 플라스틱입니다. 셈틀을 쓰는 분 가운데 글판이나 다람쥐(마우스)를 플라스틱 아닌 나무로 쓰는 분은 드뭅니다.


  그나저나 이 책 《플라스틱 프리》에 나오는 말이 하나같이 어렵습니다. 책을 엮은 곳이 ‘크리킨디센터’라는데 무엇을 하는 곳인지 영 모르겠습니다. 가만 보면 “플라스틱 프리”라는 책이름에서 ‘프리’도 영어인데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 홀가분하거나 가볍거나 단출하거나 아름답거나 즐겁게 실타래를 푸는 길을 가기는 힘들까요?


  책 첫머리를 보면 “세뇌가 아닌 교육”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그래요, ‘옳은 이야기를 머리에 집어넣기’는 그만해도 됩니다. 책을 더 많이 읽을 까닭도 없습니다. 누구나 집에서 스스로 즐겁게 “살림을 짓는 길을 사랑스럽게 배우고 물려주면서 어깨동무하는 하루가 되어 푸르게 숲이 되면” 넉넉합니다.


  적게 써야 하지 않아요. 스스로 지어서 즐겁게 쓰면 됩니다. 가장 낮고 작은 자리부터 차근차근 지으면 돼요. ‘난좌’란 뭘까요? 알을 놓는 자리라면 ‘알자리’입니다. 틀(기계)은 하나같이 플라스틱덩이요, 기름을 먹습니다. 연장은 하나같이 나무나 쇠요, 우리 손힘으로 움직입니다. 이제 어른도 어린이도 푸름이도 ‘이론·지식’은 그만 먹으면 좋겠어요. 삶을 사랑으로 먹고, 살림을 노래로 나누며, 숲을 즐겁게 놀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는 근본적으로 버리는 문화를 바꾸지 않는 한 해결될 수 없습니다. 세뇌가 아닌 다른 교육이 필요합니다. (5쪽)


생리대뿐만이 아니다. 분리배출을 잘하고 재활용을 잘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사용량을 줄여야 한다. 그러려면 개인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소비를 줄일 수 있는 생산 방식이 필욧하다. (28쪽)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난좌의 재질은 소티로폼이다. 그 이유는? 가격이 제일 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장 튼튼한 난좌는 무엇일까? 플라스틱이다. 그런데 단가는 제일 비싸다. 그래서 명절 때 고가의 선물 세트에만 주로 사용된다. (38쪽)


농촌에서 살아가며 젊은 여자이기 때문에 겪은 상처를 드러내는 것, 불편한 것은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 이웃에게 맡기기보단 스스로 기계 작업을 해보는 것 등 모두가 우리에겐 선을 넘어 보는 일이었다. (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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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아틀라스 - KOHLESATLAS 한국어판 지구를 살리는 지도 1
하인리히 뵐 재단 외 지음, 움벨트 옮김, 작은것이 아름답다 기획 / 작은것이아름답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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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5.7.

책으로 삶읽기 679


《석탄 아틀라스》

 하인리히 뵐 재단·분트

 움벨트 옮김

 작은것이아름답다

 2021.3.19.



《석탄 아틀라스》(하인리히 뵐 재단·분트/움벨트 옮김, 작은것이아름답다, 2021)를 2020년 12월에 두레손길(텀블벅)로 장만했다. 2021년 봄에 누리책집에 들어가는 판으로 다시 나왔단다. 틀림없이 뜻있게 낸 책이라 여기지만, 몇 벌을 되읽으면서 참 아쉽더라. 머잖아 자리에서 물러날 나라지기(대통령)는 전라도에서는 ‘신안·전남 해상태양광’으로 “48조 투자, 일자리 12만”을 외치고, 경상도에서는 ‘울산 부유식 해상태양광 36조 투자, 일자리 21만’을 외친다. 끔찍하다. 그저 끔찍하다.


나는 예전에 ‘햇볕판’이 새길(대안에너지)이 되리라 여겼으나, 이렇게 숲이며 바다이며 들이며 논밭을 망가뜨리면서 때려짓는다면 막길(환경파괴)일 뿐이라고 새삼스레 깨닫는다.


햇볕판을 붙이려면 찻길에 지붕으로 씌우면 된다. 이러면 ‘송전탑·송전선’으로 걱정할 일이 없다. 바다 한복판에 햇볕판을 씌우면, 또 시골이며 숲이며 논밭에 햇볕판을 뒤덮으면 ‘송전탑·송전선’을 모두 새로 때려박아야 하는데, 그야말로 무시무시하지 않나?


풀꽃모임(환경단체)은 하나부터 열까지 입을 다문다. 《녹색평론》 같은 책도 입을 씻는다. 밀양이란 고장을 가로지르는 ‘송전탑·송전선’이 나쁘다고 외친 그들은 모두 어디에 갔는가? 국립공원이기도 한 바다에 ‘해상태양광’으로 쏟아붓겠다는 돈이 48조 더하기 36조가 끝이 아니다. 갯벌을 모두 파헤치고 바다를 몽땅 더럽히면서 아마 100조뿐 아니라 200조가 넘는 돈을 들이부으려 하는구나 싶다. 이러면서 ‘석탄·석유는 온실가스를 많이 내뿜으니 나쁘다’고 외쳐도 좋을까?


글쎄. ‘해상태양광 설비’는 어떻게 만들까? ‘해상태양광 설비’를 만든 다음에는 어떻게 나르고, ‘송전탑·송전선’은 어떻게 되는가? 일자리가 수십만이라고 떠들지만, 마을사람한테 가는 일거리조차 아니다. 햇볕판이 새길이라면 크게 때려짓지 말자. 집집마다 지붕에 씌워 주자. 그러면 된다. ‘송전탑·송전선’이 모든 집이 저마다 스스로 전기를 얻어서 쓰는 틀로 간다면 48조나 36조는커녕 10조도 1조도 안 들 텐데?


집집마다 지붕에 햇볕판을 씌워 주면 ‘보상비’를 들일 까닭이 없고, 찻길에 햇볕판을 지붕으로 씌우면 ‘토지보상·구입비’가 들 턱도 없다. 오늘날 새길(대안에너지)을 말하는 모든 풀꽃모임과 먹물붙이는 거짓말을 하는구나 싶다. ‘새길을 연다면서 새로 나올 온실가스’ 이야기는 한마디도 벙긋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대규모 태양광 발전시설’도 똑같이 모두 망가뜨리고 더럽히며 ‘로비’에 힘입는다.


ㅅㄴㄹ


온실가스는 계속 늘고 있습니다. 지구는 지금보다 기온이3도에서 4도 더 오르는 온난화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5쪽)


석탄 채굴은 막대한 피해를 불러온다. 석탄 채굴사업은 갱내 채굴이든 노천 채굴이든 자연 파괴, 수질 오염, 주택과 도로 손상, 마을 주민들의 집단 이주 같은 문제가 잇다른다. (8쪽)


연결망이 잘 돼 있는 석탄 산업은 로비 구조, 막대한 선거자금 지원,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에 대한 재정지원 등을 통해 재생에너지 성장에 제동을 건다. (9쪽)


.

.

숲책(환경책)을 다루는 느낌글을

비추천도서 이야기로 쓸 줄이야.

슬프다만

오늘 우리 민낯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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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지 친구이야기
이와타 겐자부로 지음, 이언숙 옮김 / 호미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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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이었나 느낌글을 쓴 적 있는데

군더더기 같은 잔소리를 덜어내고서

새로 써 보았다.


숲노래 책읽기/숲노래 아름책

동무하며 걷는 길


《백 가지 친구 이야기》

 이와타 켄자부로 글·그림

 이언숙 옮김

 호미

 2002.5.25.



  《백 가지 친구 이야기》(이와타 켄자부로/이언숙 옮김, 호미, 2002)가 갓 나오던 무렵, 저는 서울에서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쓰고 엮는 일을 했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을 꾸리는 분(출판사 사장님)은 멋스러운 책이 나왔다면서 잔뜩 장만하셨고 둘레에 하나씩 건네셨어요. “그래, 너도 좀 봐라. 순 글씨가 가득한 책만 읽지 말고, 이런 그림도 읽고 시도 읽으면서 마음 좀 다스려 봐.” 하고 한마디 보태셨어요. “사장님, 저, 시집도 많이 읽는걸요?” “에그, 그런 시 말고, 이렇게 여백을 남기면서 노래하는 글을 읽으라고!” “그럼 시에 빈자리(여백)가 있지, 빈자리가 없는 시가 어디 있어요?” “됐다. 그냥 읽어라.”


  그때 그 어른은 왜 제가 《백 가지 친구 이야기》 같은 책을 안 좋아하거나 못 알아보리라 여겼을까요? 우리말꽃이라는 책은 그야말로 글이 빼곡하고 두툼합니다. 이런 책을 지어야 하는 일을 한대서 글책만 읽을 까닭이 없습니다. 2002년 무렵에 저한테 아이가 없었어도 그림책이며 동화책을 늘 곁에 두고 살았어요. 나라를 꾸짖는 노래(시)도 읽고, 숲을 사랑하는 노래(시)도 같이 읽었어요. 나라를 꾸짖는 노래하고 숲을 사랑하는 노래는 동떨어지지 않는다고 느껴요. 둘은 한마음입니다.


  저를 낳아 돌본 어버이는 제가 열일곱 살이던 해까지 ‘13평짜리 잿빛집(아파트)’에서 살림을 꾸렸는데, 이듬해부터 ‘48평짜리 잿빛집’으로 덜컥 옮겼습니다. 빚을 지면서 옮기셨는데, 열석 평은 코딱지만 한 집이라서 더는 못 살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나 저는 코딱지만 한 열석 평짜리가 아닌 ‘나고 자란 마을에서 늘 어울리는 동무가 있는 집’이었습니다. 저한테 집은 ‘크기’가 아닌 ‘동무’하고 어울리는 삶자리예요.


  우리 아버지가 넓은 잿빛집으로 옮긴다고 할 적에 차마 아버지한테는 무서워서 말은 못하고 어머니한테 “어머니, 이 집을 팔고 나가야 하니 어쩔 길 없더라도, 한 칸짜리 조그마한 데를 얻어서 저는 이 마을에 그대로 살면 안 될까요? 제 동무는 모두 여기에 있는데 동무가 하나도 없는 그 커다란 곳으로는 가기 싫어요.” 하고 귓속말을 했어요. 어머니는 “너만 그러니? 어머니도 어머니 동무가 다 이 마을에 있잖아. 나도 가기 싫어.” 하시더군요.


  잿빛집한테 동무가 있다면 우리한테 마을이며 골목을 빼앗은 자동차일까요. 자동차한테 동무가 있다면 크고작은 벌레와 길짐승을 비롯해 사람조차 마음놓고 건너다닐 수 없는 까만 찻길일까요. 까만 찻길한테 동무가 있다면 나날이 바닥나는 까만 기름일까요. 까만 기름한테 동무가 있다면 우리가 하루 한때도 잊을 수 없어서 꼭 껴안으려는 돈일까요. 돈한테 동무가 있다면 우리가 날마다 손쉽게 쓰고 버리는 갖가지 살림인, 뚝딱터(공장)에서 뽑아낸 것일까요.


  뚝딱터에서 뽑아낸 것한테 동무가 있다면 이 땅 아이들을 괴롭히는 살갗앓이(아토피·피부병)를 비롯한 갖가지 몸앓이를 일으키는 화학물질이며 항생제일까요. 항생제한테 동무가 있다면 우리 입을 길들이는 고기떡(소시지)이랑 튀김닭일까요. 고기떡이랑 튀김닭한테 동무가 있다면 부릉부릉 씨잉씨잉 골목길과 찻길을 요리조리 헤집고 다니는 씽씽이(오토바이)일까요. 씽씽이한테 동무가 있다면 몽둥이를 휘두르는 경찰일까요. 경찰한테 동무가 있다면 길가에 나뒹구는 담배꽁초일까요. 담배꽁초한테 동무가 있다면 그 옆에 비슷한 크기로 뱉은 엄청난 침덩이일까요. 침덩이한테 동무가 있다면 바로 옆에 비슷한 크기로 눌린 다 씹은 껌일까요. 다 씹은 껌한테 동무가 있다면 껌을 싼 비닐 껍질일까요. 비닐 껍질한테 동무가 있다면 비닐 껍질이 처박히는 쓰레기통일까요. 쓰레기통한테 동무가 있다면 아무렇지 않게 주전부리 껍데기를 휙휙 집어던지는 이 나라 어린이·푸름이·젊은이들 손일까요. 아무렇지도 않게 주전부리 껍데기를 휙휙 집어던지는 어린이·푸름이·젊은이들 손한테 동무가 있다면 큰일터(재벌회사) 글종이(면접 서류)일까요.


  큰일터 글종이한테 동무가 있다면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열린배움터(대학교) 마침종이(졸업장)일까요.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열린배움터 마침종이한테 동무가 있다면 배움수렁(입시지옥)으로만 몰아넣는 푸른배움터(고등학교) 길잡이(교사) 회초리일까요. 푸름배움터 길잡이 회초리한테 동무가 있다면 날마다 얻어맞고 꾸지람을 듣는 아이들 허벅지일까요. 뻘겋게 물드는 아이들 허벅지한테 동무가 있다면 배움터가 싫어 당구장으로 달려가며 붙잡은 길다린 작대기일까요. 길다란 작대기한테 동무가 있다면 짜장국수 한 그릇일까요. 짜장국수 한 그릇한테 동무가 있다면 한 벌 쓰고 버리는 나무젓가락일까요. 나무젓가락한테 동무가 있다면 빈 종이꾸러미와 넝마를 주으러 다니는 할배 할매 손길을 타는 낡은 수레일까요. 낡은 수레한테 동무가 있다면 새벽부터 밤까지 쉬잖고 짐더미를 안고 굴리는 할배 할매가 살짝살짝 쉬면서 걸터앉는 거님길 돌일까요.


  서울은 처음부터 서울이지 않습니다. 서울도 똑같이 숲이자 마을이요 들이고 냇물이었습니다. 어느새 서울은 지하철에 잿빛집에 찻길에 끝없이 잇닿는 가겟길입니다. 바야흐로 서울은 흘러넘치는 열린배움터에 큰일터에 자가용에 매캐한 바람입니다.


  제비는 서울하고 시골을 안 가렸으나, 더는 서울에 깃들기 어렵습니다. 돌멩이도 서울이며 시골이며 두루 있었으나, 더는 서울 한켠 골목에서 구르기 어렵습니다. 서울 아이는 뭘 하며 노나요. 시골 아이는 뭘 하며 소꿉을 할까요.


  골목길한테 동무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골목집한테 동무가 있었다면 무엇일까요. 골목사람한테 동무가 있었다면 누구일까요. 논과 밭한테 동무가 있다면 무엇이고, 멧골과 들한테 동무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냇물이랑 바다는, 바람이랑 구름은, 비랑 눈은, 들꽃이랑 나무꽃은, 나비랑 벌은, 누구를 동무로 삼아서 오늘 이곳을 살아가려나요.


  다람쥐와 너구리한테는 누가 동무가 되나요. 오소리와 여우한테는 누가 동무로 마주하는가요. 곰과 범한테는 누가 동무로 곁에 머무나요. 박새와 동무였던 동박새는 어디에서 살아가나요. 박쥐와 동무이던 올빼미는 어디에 깃들일까요. 매와 동무하던 무지개는 오늘 어디에서 숨을 죽이나요. 쉬리는 동무와 오붓하고 지낼까요. 각시붕어는 동무와 걱정없이 겨울나기를 할까요. 메기는 동무와 느긋하게 한삶을 마칠 수 있을까요. 땅강아지 동무는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사마귀 동무는 어디에 숨었을까요. 풀무치 동무는 어디에서 마지막 숨을 쉴까요.


  동무를 하나둘 손꼽아 봅니다. 잃어버린 동무하고 잊어버린 동무를 헤아려 봅니다. 우리 곁에는 누가 동무인가요? 우리는 누구를 동무로 곁에 두나요?


  마당에 조용히 서서 두 팔을 벌립니다.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눈을 감습니다. 이윽고 눈을 뜨고는 후박나무한테 다가가서 줄기를 쓰다듬습니다. 후박나무 우듬지에 앉은 멧새가 시원시원 노래합니다.


  우리는 누구한테 동무일까요. 어떤 사람한테 동무일까요. 우리를 두고 선뜻 동무라고 할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요. 기쁠 때만이 아니라 힘들 적에도 기꺼이 부르면서 웃고 울 동무는 누구일까요. 우리한테 기쁘거나 힘든 일이 있을 적에 스스럼없이 불러서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웃고 울 동무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 오늘인가요.


  그림이야기책 《백 가지 친구 이야기》를 덮습니다. 책이름에 온(100) 가지 동무라고 나옵니다만, 가만 보니 온한(101)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왜 온한 가지일까 하고 한동안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온(100) 가지 동무에다가 ‘나(1)’를 넣어서 온하나(101)가 되더군요.


ㅅㄴㄹ


1

한가로이 길을 걷다 보면 길에서 친구를 만난다.


3

돌멩이의 친구는 작은 시냇물.

작은 시냇물의 친구는 개구리.


15

조개의 친구는 물론 바닷가 모래밭.


25

비는 어느새 땅속으로 스며들고

도토리는 이불인 양 마른 낙엽으로 제 몸을 감싼다.


33

그런데, 정말 친구가 있기는 한 것이냐고,

물위에 떨어져 누운 나뭇잎이 묻습니다.


49

난 친구 따위는 필요없어, 하며 늑대거미가 물가를 달린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친구를 찾고 있을는지도

모르지…….


55

그럼, 누구나 마음속에 작은 등불 하나 켜고 태어나고말고!

반딧불이가 장담한다.


65

여뀌의 친구는 소꿉놀이할 때 쓰는 나뭇잎 접시.


74

제비의 친구는 모내기를 끝낸 논의 벼 포기,

파릇한 잎들, 바람 따라 살랑인다.


84

씽씽 부는 바람의 친구는 진눈깨비 섞인 함박눈,

아, 다시 겨울이 ……


93

전철길의 친구는 이젠 끊어져 아무도 다니지 않는

철길에 피어난 잡초,

아마 거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들국화이겠지요.


98

떠돌이 일꾼들의 친구는 술,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부르던 노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그 노래도 이곳저곳 여행하였지.


岩田健三郞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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