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자폐인 이야기 - 개정판
템플 그랜딘 지음, 박경희 옮김 / 김영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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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 숲노래 청소년책 2023.3.14.

푸른책시렁 165


《어느 자폐인 이야기》

 템플 그랜딘

 박경희 옮김

 김영사

 1997.6.28.



  《어느 자폐인 이야기》(템플 그랜딘/박경희 옮김, 김영사, 1997)를 읽었습니다. 예전에도 읽었고, 아이들이 부쩍 자라서 아이들한테 글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새로 읽고는, 이 책을 아이들한테 건넵니다. 어느 모로 보면 템플 그랜딘 님을 ‘훌륭하다(위인)’고 여길 수 있을 텐데, 이보다는 우리 곁에 있는 작은 이웃으로 바라볼 적에 비로소 마음을 읽고 나눌 만하리라 봅니다.


  작게 태어난 아이는 작게 숨쉬는 이웃을 알아봅니다. 작게 숨쉬는 이웃은 작게 태어난 아이한테 마음으로 다가갑니다. 둘은 이 별에서 작으면서도 빛나는 하루로 만나면서 이야기를 합니다.


  푸른별(지구)은 온누리로 보자면 더없이 자그맣습니다. 우리 몸을 이루는 조각(세포)도 우리 몸뚱이로 본다면 가없이 자그맣습니다. 누구나 별빛 같은 조각으로 몸을 이루고, 사람 하나하나도 별빛이요, 이 별빛으로 푸른별이 한덩이를 이루고, 이 별은 하나하나 모여서 온누리를 이룹니다.


  모든 조각(세포)은 다릅니다. 똑같은 조각은 하나조차 없습니다. 머리카락도 모두 달라요. 뭉뚱그려 머리카락이라 하지만, 다 다른 결이 나란히 있을 뿐입니다. 나라에도, 마을에도, 배움터에도 다 다른 사람이 어우러집니다. 똑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나 마을이나 배움터를 들여다볼까요? 다 다른 사람을 다 같은 울타리나 틀에 가두지는 않나요?


  다 다른 사람은 다 다른 몸을 입고서 다 다른 마음으로 살림을 짓습니다. 다 다르니 다 다른 책을 읽고서 다 다른 글을 쓸 만합니다. 그렇지만 배움터도 마을도 나라도 모든 사람이 똑같거나 닮은 책을 읽고 똑같거나 닮은 글을 쓰며 똑같거나 닮은 눈으로 바라보도록 길들거나 내몰아요.


  우리는 참으로 다 다른 숨결이 맞나요? 우리는 그야말로 서로 다르게 만나서 스스로 사랑을 싹틔우는 사람이 맞을까요?


  맞춰야 할 까닭이 없고, 맞아야 하지도 않습니다. 남을 쳐다볼 일이 없고, 남한테 마음을 기울여야 하지도 않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마음결을 들여다보면서, 새롭게 사랑을 일으켜 보금자리를 돌볼 적에 아름답습니다. 겉모습이나 몸매나 얼굴이 아닌 숨결을 북돋우기에 비로소 사람이며, 숲을 느낄 테고, 별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시 제 넋을 쓰다듬겠지요.


ㅅㄴㄹ


나는 상황을 설명했고, 어머니는 귀 기울여 들었다. 항상 그렇듯이 어머니는 내 편이 돼주었다. 어린 동생들을 침대에 뉘어놓고 아버지가 산책하러 나간 뒤에 우리는 자세한 계획을 세웠다. (82쪽)


까마귀 둥지를 발견한 지 1년 후, 나는 그 작은 전망실에 서서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밤하늘의 별들이 반짝였고 나에게 좀더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는 듯했다. 그 작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밤하늘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아름다움에 빨려들었다. (108쪽)


자폐인들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면서 그들이 다룰 수 없는 여러 자극들을 차단한다.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자극은 일반 성인에게서도 쉽게 일어나는 신경질을 감소시킨다. (147쪽)


내가 압박기를 조작할 때 나 자신이 느긋한 태도를 취하면 가축들이 이리저리 날뛰지 않았다. 가축들도 인간의 긴장감을 느낀다. (178쪽)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의미를 미치도록 추구하던 시기도 이제는 지나갔다. 더 이상 한 가지 일에 집착하지 않았다. 지난 4년 동안 나는 일기를 거의 쓰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항우울제가 많은 정열을 제거해 버렸기 때문이다. (195쪽)


나는 내 지성을 사용하는 데 큰 만족을 느낀다. 나는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났을까 궁리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좋아한다. (238쪽)


#Emergence #LabeledAutistic #TempleGrandin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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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건축과 인권 이야기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42
서윤영 지음 / 철수와영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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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 숲노래 청소년책 2023.3.14.

푸른책시렁 164


《10대와 통하는 건축과 인권 이야기》

 서윤영

 철수와영희

 2022.11.13.



  《10대와 통하는 건축과 인권 이야기》(서윤영, 철수와영희, 2022)를 곰곰이 읽었습니다. 그리 멀잖은 지난날에는 쇳덩이가 넘치지 않았어요. 골목도 길도 누구나 누리면서 아이어른 모두 사이좋게 놀거나 일하던 삶터였습니다. 이러다가 골목에도 길에도 쇳덩이가 넘치면서, 쇳덩이에 몸을 실은 이들은 마구 몰아댑니다. 쇳덩이를 몰지 않는 이들은 구석으로 내몰립니다.


  쇳덩이가 더 빨리 더 많이 달리도록 자꾸 들숲을 밀어대고, 멧자락에 구멍을 뚫기까지 합니다. 쇳덩이는 누가 달릴까요? 이른바 ‘어른’이란 이름인 사람들입니다. ‘어린이’란 이름인 사람하고 ‘푸름이’란 이름인 사람은 쇳덩이를 몰지 않아요. 어린이·푸름이가 서울하고 부산이나 광주 사이를 자주 오가야 하는 일이란 없습니다. 어린이·푸름이는 마을살이를 하면서 마을살림을 사랑하는 마음을 펴려는 숨결입니다.


  왜 나라 곳곳에 구경터(관광지)를 늘려야 하는지 따질 노릇입니다. 이 나라 이 땅을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물려받아서 누려야 한다면, 참말로 아무렇게나 부릉길을 늘리지 말아야 하고, 잿집(아파트)은 그만 때려박아야 합니다. 모든 부릉길하고 잿집은 어깨동무(평등·평화)하고 등집니다. 온통 돈으로 굴러가거나 흐르는 부릉길에 잿집입니다. 어린이하고도 푸름이하고도 멀디먼 잿빛살림(도시생활·도시문화)이에요.


  ‘집과 사람(건축과 인권)’은 따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숱한 ‘도시개발·재개발·투자’는 그저 ‘서울에서 돈을 굴리는 어른’들 손바닥에서 놀아나는 꼴입니다. 이제는 그만 건드릴 노릇입니다. 이제는 그냥 둘 일입니다. 그동안 건드린 숱한 곳은 조용히 천천히 숲으로 돌아가도록 놔두어야겠지요. 땅바닥에 놓은 부릉길도 조금씩 걷어내고, 하늘수레(케이블카)를 늘리지 말고, 하늘나루(공항)도 그만 지으며, 쾅쾅 쏘아대는 쇳덩이(미사일·군사드론)도 그만 만들 일입니다.


  《10대와 통하는 건축과 인권 이야기》는 어려운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습니다. 어느새 ‘집’이 아닌 ‘부동산’으로 바뀌는 우리나라가 하루빨리 멈추어야 할 삽질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집’이라고 할 적에는, 뿌리를 내리고 나면 구태여 옮겨야 할 까닭이 없이 이백 해나 오백 해를 고스란히 잇는 삶터를 가리킵니다. 자꾸 허물고서 다시 잿더미(시멘트)로 쌓는 무더기는 ‘집’일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건축’이 아닌 ‘집’을 바라보기를 바라요. ‘짓고’서 깃드는 보금자리인 ‘집’을 생각해야지 싶어요. 사고팔면서 돈을 버는 잿더미가 아닌, 하루를 그리고 삶을 누리며 사랑을 속삭이는 보금자리인 ‘집’을 바라볼 때입니다.


ㅅㄴㄹ


레스토랑의 비싼 음식값에는 한두 시간 정도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을 수 있는 자릿세도 포함되어 있어요. (40쪽)


성 역할이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사회에서는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어요. (76쪽)


‘환경 개선 작업’이라는 명목으로 들어선 벽화에는 “쇠락한 동네는 범죄가 발생하기 쉬우며, 환경 개선 작업을 통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 담벼락에 벽화가 그려진 벽화 마을은 곧 가난한 동네이자 쇠락한 동네라는 이미지가 굳어집니다. 주말이면 놀러와서 사진을 찍어가는 사람들 때문에 정작 주민들이 불편을 겪기도 합니다. (103, 105쪽)


의사가 되면 동료 의사가 많아지고 교수가 되면 동료 교수가 많아지는 등의 직접적 연관 외에 부촌의 고급 아파트에 살면 이웃집도 대개 고만고만한 중산층이기 때문에 문화 자본이 쌓입니다 … 이미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문화 자본을 가지고 있으므로 학력 자본도 남들보다 훨씬 쉽게 취득할 수 있습니다. 엄마가 대학교수인 덕에 고등학생 시절부터 해외 논문에 이름을 등재하고 이 스펙으로 명문대에 진학했다는 스토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16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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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가게
하야시바라 다마에 지음, 하라다 다케히데 그림, 김정화 옮김 / 찰리북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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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2023.3.11.

맑은책시렁 294


《숲 속의 가게》

 하야시바라 다마에 글

 하라다 다케히데 그림

 김정화 옮김

 찰리북

 2013.2.8.



  《숲 속의 가게》(하야시바라 다마에·하라다 다케히데/김정화 옮김, 찰리북, 2013)를 가만히 읽어 봅니다. 숲에 무슨 가게가 있어야 하겠습니까만, 숲살이를 한결 즐거이 나누고 싶은 여러 아이들이 조곤조곤 마음을 기울인다고 합니다. 근심걱정을 마음에 담기보다는 웃음꽃을 마음에 담으려 합니다. 까맣게 타들어가는 마음이 아닌 푸르게 물드는 마음을 옮기려 합니다.


  생각해 봐요. 어떤 일을 하든 ‘안 될는지 몰라’ 하는 걱정을 할 까닭이 없습니다. 어떤 일을 하다가 ‘안 된다’면 “아, 안 되었구나.” 하고 지나가면 됩니다. 이다음을 바라보면 되고, 새롭게 나아갈 하루를 그리면 되어요.


  남이 들려주기에 노래이지 않습니다. 스스로 들려주기에 노래입니다. 들숲이며 마을을 오가며 날갯짓하는 마음을 들려주는 새노래도, 풀밭이며 꽃밭에 앉아 풀내음을 맡는 마음을 들려주는 풀벌레노래도, 저마다 다르게 빛나는 가락입니다.


  벌이가 되는 가게를 차리는 마음이 아닌, 꿈을 사랑으로 펴는 가게를 여는 마음이라면, 온누리가 늘 아름다우면서 즐거울 테지요. 돈이 되거나 힘을 얻거나 이름을 날리는 가게나 일이 아니라, 살림을 가꾸고 사랑을 지으면서 숲빛으로 어우러지는 가게나 일이 싹트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흰토끼는 딱따구리를 올려다본 채 가만히 듣고 있었어요. 딱따구리도 넋을 잃고 듣고 있었어요. (13쪽)


“잠깐, 잠깐만요, 너구리 씨, 혹시 이 점 모두 ‘행복’이나 ‘행운’만 나오는 거 아니에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너구리는 부루퉁한 토끼를 보고 고개를 가로저었어요. “그것 말고도 ‘럭키’나 ‘운수대통’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20쪽)


내일 아침 들쥐 가족은 은색 거미줄 한가운데 쓰여 있는 글자를 발견하겠지요. “잘 잤니?” (60쪽)


숲이 예쁜 색으로 물들고 가끔씩 바람 소리도 들려와요. (76쪽)


고슴도치는 꼬마 너구리 바지에 달린 작은 주머니를 한 땀씩 정성스럽게 꿰매 주었어요. 길 잃은 갈색 꼬물이 들쥐가 주머니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신기하다는 듯이 고슴도치가 꿰매는 모습을 지켜보았어요. (10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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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왕 세종
권오준 지음, 김효찬 그림 / 책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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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숲노래 책읽기 2023.3.10.

맑은책시렁 295


《새내기왕 세종》

 권오준 글

 김효찬 그림

 책담

 2021.5.15.



  《새내기왕 세종》(권오준·김효찬, 책담, 2021)을 읽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뭇임금 가운데 세종을 가장 우러른다고 합니다. 이 책은 사람들이 우러르는 으뜸임금인 세종을 기리려는 뜻으로 줄거리를 짰구나 싶습니다. 그런 탓인지 모르나 “까막눈 백성(14쪽)”이라든지 “백성들은 장국과 고기를 어찌나 배부르게 먹었는지(31쪽)”처럼, 어쩐지 우리 스스로 ‘우리(백성)’를 깎아내리거나 얕보는 말씨나 이야기가 자꾸 나옵니다.


  앞에서 이끄는 이가 한 사람 있어야 나라가 흘러가지 않습니다. 앞에서 이끄는 이가 훌륭해야 나라가 훌륭하거나 살기에 좋지 않습니다. 나라가 흘러가려면 ‘우리(백성·민중·국민·시민·민초·인민)’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저런 한자말로 가리키는 허울이 아닌, 그저 수수하게 ‘우리’이면 됩니다.


  우리가 낳아서 돌보는 아이들이 우리처럼 수수하게 자라면서 빛나는 터전이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우리가 아이들 곁에서 슬기롭고 어질게 살림을 가꾸면서 스스로 맑게 웃고 밝게 춤추며 잔치를 이루는 곳이 사랑스러운 마을입니다.


  요새는 ‘왕씨 고려’나 ‘이씨 조선’이라 하지는 않는 듯싶으나, 이런 이름을 2000년에 접어들 즈음까지 썼습니다. 왜 이런 이름을 썼을까요? 고려나 조선을 깎아내리려는 이름일까요? ‘왕씨 고려’나 ‘이씨 조선’이란 왕씨나 이씨만 임금 자리에 설 뿐 아니라, 벼슬이고 감투이고 온통 몇몇 사내만 거머쥔다는 속뜻을 드러냅니다. 나라지기나 벼슬을 ‘순이돌이(남녀)’가 고르게 맡지도 않을 뿐더러, 사람들 사이에 위아래(신분·계급·질서)를 단단히 세워서 종(노예·노비)으로 허덕여햐 하는 사람이 숱하게 있었다는 뜻으로 ‘왕씨 고려’나 ‘이씨 조선’이란 이름을 씁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로 쳐들어온 일본을 ‘일본 제국주의’라고 하지요. 총칼로 사람을 입을 틀어막고 억누른 나날 가운데 ‘박정희 군사독재’도 있어요.


  아무리 임금 한 사람이 훌륭했다고 해도, 그분은 임금집 밖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백성)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나리(양반)한테 짓눌려 시름시름 들볶였습니다. 아무리 훈민정음을 여미었어도 사람들은 종이나 붓조차 만질 수 없던 조선이란 나라요, 글씨는 어깨너머로 구경을 해서도 안 되던 조선이란 굴레였어요.


  어린이한테 섣불리 ‘훌륭한 임금’이라고만 가르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발자취를 어린이한테 들려줄 적에는 ‘높다란 자리에서 내려다보는 줄거리’가 아니라, 바로 들풀과 들꽃 같은 작고 수수한 사람들 자리에서 ‘손수 집을 짓고 옷을 짓고 밥을 지을 뿐 아니라, 우리가 주고받는 말을 짓고 생각을 짓고 마음을 지은 숲빛마을 보금자리’라는 눈길로 이야기를 여밀 노릇이라고 봅니다.


  글(한문)로 남은 조선왕조실록 같은 줄거리는 걷어치울 때라고 느껴요. 우리 몸에 아로새긴 ‘어버이가 아이를 사랑한 마음’과 ‘어진 어른 곁에서 슬기롭게 눈을 밝혀 철드는 아이 숨결’로 지난삶과 오늘삶을 나란히 바라보는 이야기를 갈무리해야, 비로소 동화요 위인전이요 어린이책이라 여길 만하다고 봅니다. 《새내기왕 세종》은 어린이한테 이바지할 줄거리가 도무지 없다고 느낍니다. 오히려 어린이한테 굴레를 새롭게 씌우면서 ‘우리(백성)’가 어리석을 뿐이라 위에서 임금님이 갸륵하게 보살펴 주어야 한다는 뜬금없는 마음만 심겠구나 싶습니다.


ㅅㄴㄹ


“한양에서는 산해진미를 차려 놓고 풍악 들으며 노셨을 텐데, 이런 시골에 콱 박혀 지내시다니, 상왕이 해도 너무하셨어.” 까막눈 백성들이라 해서 대궐 돌아가는 사정을 모르지 않았다. (14쪽)


몇 차례의 매사냥으로 꿩은 물론, 노루와 토끼도 잡는 성과를 올렸다. 상왕은 사냥으로 잡은 짐승들을 종묘로 보내라 하고, 군사들은 물론 몰이꾼들에게도 푸짐하게 먹을거리를 풀라 했다. 백성들은 장국과 고기를 어찌나 배부르게 먹었는지 서로서로 불록 나온 배를 내밀어 보이며 즐거워했다. (31쪽)


여기저기 구경꾼들 입에서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세상 참 좋아졌네. 하찮은 종놈이 나라님 대접까지 받으니.” 양반들은 임금의 조치가 지나치다며 수군거렸다. “말 한 필 값도 안 되는 노비한테 저렇게까지 해줘야 할까?” (47쪽)


이종무는 공격의 고삐를 더욱 조였다. 조선 군사들은 닥치는 대로 가옥들을 불살랐다. 이천 채에 달하는 가옥이 불타버렸고 적선을 백이십구 척이나 빼앗았다. (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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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쓰레기는 왜 생기나요? - 나부터 실천하는 ‘제로웨이스트’ 어린이 책도둑 시리즈 26
최원형 지음, 홍윤표 그림 / 철수와영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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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 숲노래 책읽기 2023.2.28.

맑은책시렁 293


《선생님, 쓰레기는 왜 생기나요?》

 최원형 글

 홍윤표 그림

 철수와영희

 2023.2.19.



  《선생님, 쓰레기는 왜 생기나요?》(최원형·홍윤표, 철수와영희, 2023)를 읽었습니다. 쓰레기가 왜 생기는지는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손수짓기(자급자족)를 하는 사람은 아무런 쓰레기를 안 내놓습니다. 손수짓기를 안 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쓰레기입니다.


  손수짓기를 하면 얼핏 느린 듯 여기지만, ‘느림’이 아닌 ‘제철’입니다. 여름에는 더위를 먹고, 겨울에는 추위를 머금으면서 철빛을 누리지요. 삼월에 천천히 덩굴이 퍼지면서 잎이 푸르게 빛나고, 사월에 흰꽃이 흐드러지면서 오월에 빨간알을 누리는 딸기입니다. 손수짓기로 제철살림을 한다면 딸기를 오월에 들숲밭에서 누릴 테니, 딸기를 비닐에 씌울 까닭이 없어요. 더구나 제철딸기라면 꼭지도 고스란히 먹겠지요.


  한겨울에 비닐집에서 기름을 때어 거두는 비닐밭딸기는 온통 쓰레기판입니다. 가게에서도 쓰레기일 뿐 아니라, 비닐집을 세우는 논밭집에서도 쓰레기투성이예요. 해바람비를 머금는 살림살이를 지을 적에는 쓰레기가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흙하고 돌하고 나무로 짓는 집에 무슨 쓰레기가 있을까요? 그러나 잿더미(시멘트)로 올리는 서울살이는 몽땅 쓰레기입니다. 우리는 ‘아파트’라는 쓰레기밭을 비싼값으로 사고팔면서 언제나 쓰레기 품에 있는 얼거리입니다.


  ‘돌흙나무’로 지은 시골집은 허물 적에 고스란히 땅으로 돌아가지만, ‘시멘트·플라스틱’으로 때려박은 아파트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이 엄청난 쓰레기더미를 어떡해야 하나요? 부릉부릉 달리는 쇳덩이도 온통 쓰레기입니다. 서울(도시)은 하나부터 열까지 온통 쓰레기예요. 우리 스스로 시골을 버리고 서울로 몰리면서 스스로 쓰레기터를 세웠으니, ‘쓰레기터 = 도시’인 얼개입니다.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할는지 어른스러이 처음부터 다시 헤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울에서 살더라도 잿집(아파트)에서 살지 않을 수 있을 노릇이고, 쇳덩이(자동차)를 안 거느릴 노릇이며, 손빨래를 하고, 스스로 밥을 지어서 누리면 그럭저럭 쓰레기를 적게 내놓을 만합니다.


  요 몇 해 사이에는 ‘돌림앓이 쓰레기’가 엄청나게 나왔습니다. 입가리개 쓰레기뿐 아니라 미리맞기(예방주사) 쓰레기가 끔찍합니다. 여기도 비닐 저기도 비닐로 씌우니 쓰레기밭인데, ‘손소독제’라는 것도 허벌난 쓰레기입니다. 손소독제가 흘러드는 냇물이나 바다는 끙끙 앓지만, 이를 얼마나 살피는 마음일까요? 얼굴을 하얗게 바르는 꽃물(화장품)도 고스란히 쓰레기입니다. 빗물을 멀리하고 햇볕을 등지고 바람을 막으니 온통 쓰레기가 날립니다.


  어느덧 꼭짓물(수돗물)이 아닌 먹는샘물(플라스틱에 담은 땅밑물)을 널리 마시는 판으로 바뀌는데, 나라 곳곳 정갈한 시골에서 땅밑물을 뽑아내어 왜 플라스틱에 담아야 할는지 궁금한 이웃이 매우 드문 듯해요. 모든 집이 땅밑물을 마시면 될 일 아닐까요? 땅밑물을 그대로 안 마시고서 플라스틱에 담아 ‘플라스틱 기운이 스민 쓰레기’를 마시는 요즈음 모습이에요. 이러고서 ‘플라스틱 빈 껍데기’는 고스란히 쓰레기를 이룹니다.


  물살림도 밥살림도 집살림도 옷살림도 ‘살림’이란 말이 부끄러운 서울살이입니다. 그래서 요새는 ‘살림’이란 우리말을 안 쓰고 ‘문화·생활·문명’처럼 일본스런 한자말을 쓰는 듯싶어요. 모든 ‘도시 문화·생활·문명’가 쓰레기인 줄 깨닫지 않는다면, 이 쓰레기판은 어찌할 길이 없으리라 느껴요. 서울을 시골이나 숲으로 바꾸어야겠고, 앞으로 아이들이 온나라를 시골빛에 숲빛으로 바꾸어낼 길을 들려주어야 비로소 어른이라고 할 만합니다.


ㅅㄴㄹ


언젠가는 쓰레기를 매립하는 일은 한계에 다다를 거예요. 여러분이 어른이 되고 나이가 몇 살쯤 되었을 때일까요? (22쪽)


숲을 없애는 건 산불만이 아니에요.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어떤 점에서 도끼를 든 나무꾼이라 할 수 있어요. (62쪽)


우리나라 바다에서 발견되는 쓰레기의 82%는 일회용 플라스틱이라고 해요. (67쪽)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의료 쓰레기를 최대 10배나 증가시켰다고 해요. 2020년 3월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하는 팬데믹 상황이 된 이후로 2022년 2월까지 코로나19 백신 약 80억 회분이 접종되었다고 해요. 이때 사용된 주사기와 바늘 등은 일회용이다 보니 쓰레기가 14만 4000톤쯤 되었을 걸로 추정하고 있어요. 진단 키트는 1억 4000만 개가 사용되었고 이를 만드는 데 쓰인 플라스틱이 약 2600톤 정도 쓰레기로 배출되었을 거라고 (7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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