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없는 아이와 아이 없는 엄마와 우리문고 4
쓰보이 사카에 지음, 서혜영 옮김 / 우리교육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숲노래 어린이책 /어린이문학 비평 2023.3.25.

맑은책시렁 287


《엄마 없는 아이와 아이 없는 엄마와》

 츠보이 사카에

 서혜영 옮김

 우리교육

 2003.3.25.



  《엄마 없는 아이와 아이 없는 엄마와》(츠보이 사카에/서혜영 옮김, 우리교육, 2003)는 일본 우두머리가 저지른 싸움판에서 수수한 어른하고 아이가 어떤 멍울이며 생채기이며 눈물을 품고서 살아남는가 하는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싸움을 누가 일으키는지 생각해야 하고, 싸움이 터지면 누가 길미를 챙기고 누가 죽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싸움은 아이가 안 일으킵니다. 마땅할 테지요? 모든 싸움은 ‘아이를 사랑으로 낳은 어버이’가 안 일으킵니다. 더없이 마땅하겠지요?


  모든 싸움은 ‘어른스럽지 않은 꼰대와 늙은이’가 일으킵니다. 잘 짚어야 합니다. ‘슬기롭게 빛나는 철이 든 사람 = 어른’입니다. 나이가 들거나 몸뚱이가 크기에 어른이지 않습니다. 싸움을 일으키는 놈이나 무리는 ‘어른이 아닌 꼰대와 늙은이’입니다.


  그래서 이쪽 나라 우두머리이든 저쪽 나라 우두머리이든, 나이가 들거나 몸뚱이는 컸어도 ‘어른스럽지 않은 마음이나 눈망울’이기에 총칼(전쟁무기)을 자꾸자꾸 만들어서 사람들을 종(노예)으로 길들여 놓습니다. 종살이에 길든 사람들은 철없고 바보스런 우두머리가 쥐어 주는 총칼을 받아들고서 한목소리로 ‘충성·애국’을 외칩니다.


  어느 싸움터에서도 우두머리가 앞장서지 않고, 죽지도 않습니다. 우두머리·벼슬아치·글바치는 싸움터 뒷전에서 팔짱을 끼며 구경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종으로 부리면서 허수아비로 삼아요. 사람들을 ‘말(장기 말)’로 다룹니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싸움을 속으로 파헤쳐서 민낯을 알자면 겉모습(나라이름·국적)이 아닌, ‘우두머리·벼슬아치·글바치’랑 ‘종살이’ 얼거리를 나란히 헤아리면서, 누가 어떤 꿍꿍이와 속셈이고 검은짓인가를 읽고서, 누가 어떻게 시달리고 짓밟히면서 죽음길로 치닫는가를 알아차릴 노릇입니다.


  《엄마 없는 아이와 아이 없는 엄마와》는 ‘역사’를 말하지 않습니다. 글을 쓴 츠보이 사카에 님은 ‘역사 아닌 살림살이’를 가만히 다루고 짚으며 말하려고 합니다. 어리석은 나라가 어진 나라로 거듭나려면 어떠해야 하는가를 차근차근 짚으면서 밝힙니다. 어진 마음인 어른이 참한 마음인 아이들한테 물려줄 사랑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돌아보고 담아내려 합니다.


  모든 아이는 엄마아빠가 있기에 태어납니다. 모든 엄마아빠는 아이를 낳기에 이 이름을 받습니다. 어버이하고 아이는 한마음이자 한몸입니다. 둘은 언제나 사랑이라는 눈빛이기에 보금자리를 일굴 수 있습니다. 작게 짓는 보금자리에는 ‘스스로 짓는 사랑이 푸르게 우거지는 숲’이 깨어나고, 조촐히 어우러지는 보금자리가 모이는 마을에는 ‘두레랑 품앗이로 손을 맞잡는 즐거운 노래’가 흐릅니다.


  엄마아빠(어버이)한테 아이가 없다면, 총칼에 넋나간 우두머리·벼슬아치·글바치가 목숨을 빼앗았다는 뜻입니다. 아이한테 엄마아빠(어버이)가 없다면, 총칼에 얼빠진 우두머리·벼슬아치·글바치한테 사람들이 휘둘렸다는 뜻입니다.


  ‘일본·한국’이라는 나라이름에 숨은 몹쓸 우두머리·벼슬아치·글바치를 읽어야 합니다. ‘한국·일본’이라는 나라이름에 숨긴 고약한 민낯·검은셈·뒷짓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어른스럽게 철들며 깨어나는 눈빛이어야 할 테지요. 여기에 아이답게 뛰놀며 노래하는 마음빛이어야 할 테고요.


  모든 빛은 오직 사랑으로 깨울 수 있습니다. 모든 삶은 오직 살림짓기로 이룰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랑은 오직 숲을 품어 풀꽃나무를 곁에 두는 넉넉한 몸짓으로 일으킬 수 있습니다. 모든 살림은 아이어른이 한마음이자 한사랑으로 나누고 누리는 작은 보금자리에서 저마다 스스로 지을 수 있습니다.


  ‘들보’는 집을 튼튼히 세우는 자리에 놓을 노릇입니다. 눈에 들보를 씌우지 말아요. 돌팔매로는 어떤 싸움도 끝장내지 못 합니다. 돌은 기둥을 받치는 자리에 놓고서 우리 보금자리를 든든히 돌볼 적에 아름답습니다.


ㅅㄴㄹ


이치로는, 오토라 아줌마가 어제 부친 엽서를 보고 벌써 와 주었구나 하고 기뻐서 활짝 웃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노릇인지 눈물이 먼저 나와, 그 자리에 선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40쪽)


“그럼, 아줌마도 이제 일 좀 할게.” 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조금 있자 광 안에서는 재봉틀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왔습니다. 아기 시로는 갑자기 모두가 욘아, 욘아 하고 불러대자 어리둥절해서 서 있었습니다. 시로는 어리둥절해 하는 아기 시로에게 다가가, “욘은, 너.” 하고 아기 시로의 코를 살짝 건드리고, “시로는, 나.” 하고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82쪽)


전쟁 중에는 나무를 다 뽑아내고 주식으로 먹는 곡식 농사를 지으라고 채근 당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몸이 약해서 배 타는 것을 그만둔 시로의 아버지가 즐겨 손질하던 자몽밭이었기에, 할아버지는 고집스레 자몽나무를 지켰습니다. 전쟁 때문에 자몽 도둑이 많아져서 자몽이 익기 시작하면 밭의 문은 늘 부서져 있곤 했습니다. (154쪽)


농사를 짓지 않는 집 아이라도 이치로나 기쥬로처럼 각자 잘 아는 집으로 가서 일을 돕고 있을 터입니다. 떨어진 이삭을 줍는다든가, 묶어 놓은 다발을 한 곳에 모은다든가, 일곱 살 먹은 아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루야마 같은 먼 길에 등짐은 꽤 고생스럽습니다. (213쪽)


“아내가 죽고 없는 남편하고, 남편이 죽고 없는 아내하고, 엄마 없는 아이하고 아이 잃은 엄마하고, 그러니까 전쟁 탓에 쓰라린 경험을 한 사람들끼리 서로 모여서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단다. 치로야, 아줌마가 아버지하고 의논해 봐도 되겠니?” 오토라 아줌마 눈에 눈물이 그득히 고여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이 방울져 있었습니다. 이치로의 눈에도 그만 눈물이 맺혔습니다. (292쪽)


#母のない子と子のない母と #壺井榮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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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코의 질문 - 개정판, 6학년 2학기 읽기 수록도서 책읽는 가족 3
손연자 지음, 김재홍 그림 / 푸른책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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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어린이문학 비평 2023.3.25.

맑은책시렁 296


《마사코의 질문》

 손연자 글

 이은천 그림

 푸른책들

 1999.8.20.



  《마사코의 질문》(손연자, 이은천, 푸른책들, 1999)이 처음 나오던 무렵 여러모로 말이 많았습니다. 우리 발자취를 고스란히 드러냈다고 여기기도 했지만, 우리 발자취라기보다 미움만 잔뜩 담을 뿐 아니라, 총칼로 쳐들어온 일본을 나무라는 줄거리이면서 막상 ‘마사코의 질문’이나 ‘나의’나 ‘-에게로’처럼 일본말씨를 그대로 드러낸 대목이 얄궂다고 여기기도 했습니다.


  참말로 “마사코가 묻다”처럼 책이름을 붙여야 우리말답습니다. 총칼을 앞세운 일본 무리를 탓하면서 정작 일본말씨를 어린이책에 그대로 쓸 뿐 아니라, 스무 해가 지나도록 이런 책이름을 바로잡지 못 한다면, 어린이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남길 만할까요? 24쪽을 보면 ‘야마·소라·호시’라는 일본말이 아닌 ‘산·하늘·별’이라는 우리말을 쓴다는 대목을 들려주는데, 요사이는 ‘산’을 더 쓴다고 하더라도, 지난날에는 ‘山’이 아닌 ‘메·갓·고개·재’ 같은 우리말을 썼습니다. ‘산나물’이 아닌 ‘멧나물’입니다.


  일본 우두머리가 처음부터 뉘우칠 줄 아는 마음이라면 총칼을 함부로 만들지도 않았을 테고, 이웃나라로 쳐들어오지 않았겠지요. 뉘우칠 줄 모르는 무리는 싸움판에서 무너지더라도 잘못을 빌지 않습니다. 나라 곳곳에서 터지는 숱한 주먹질(폭력)을 봐도 쉽게 알 만합니다. 주먹을 휘두른 놈은 ‘가정폭력·학교폭력·사회폭력’ 어디에서고 참말로 안 뉘우칩니다. 잘못한 값을 달게 치르더라도 그들 주먹꾼(폭력배)이 참말로 뉘우치면서 거듭났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마사코의 질문》도 어느 만큼 이 대목을 헤아린 듯이 168쪽에서 살짝 멧새 목소리를 옮겨서 “새는 남을 미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미움이 가득해서 날지 못하는 새는 자유가 없다”고 밝히기도 하지만, 이렇게 ‘미움 아닌 사랑’으로 멍울과 생채기를 어루만지는 줄거리가 아닌, ‘미우니 미워하겠다’는 줄거리가 가득한 《마사코의 질문》이에요. 201쪽을 보아도 엿볼 수 있듯 “그래도 친구하고는 사이좋게 지내야 해.”처럼 말만 해서는 ‘사이좋게’가 무엇인지조차 알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가난하던 지난날 아이들은 ‘내 것’이라고 삼을 만한 것이 없기 일쑤였어요. 붓도 종이도 보따리도 없이 맨몸으로 배움터를 오간 아이들이 수두룩합니다. 동무 것을 함부로 건드릴 만한 삶터가 아니었습니다.


  일본은 틀림없이 총칼을 앞세워서 이 땅을 짓밟았고, 숱한 일본사람은 이 나라 사람들을 괴롭히고 죽이고 들볶았습니다. 자, 그러면 그때 이 나라 사람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우리나라 우두머리하고 벼슬아치는 뭘 했지요? 이 나라 글쟁이는 뭘 했나요? 몇 사람을 빼고는 죄다 일본바라기이지 않았는지요? 일본바라기를 했던 부끄러운 티를 뉘우친 이가 몇몇 있었으나, 거의 모든 우두머리·벼슬아치·글쟁이는 안 뉘우친 채 돈·이름·힘을 움켜쥐고서 오늘날까지 거들먹거리지 않는가요? 잘못을 뉘우쳐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이지만, 막상 일본바라기를 뉘우친 사람들조차 그저 뭉뚱그려서 나무라기만 하지 않는지요? 더구나 오늘날 우리나라는 무엇을 하는가요? 오늘날 우리나라는 지난날 일본 못지않게 총칼(전쟁무기)을 끝없이 잔뜩 만들어서 내다팔지 않는가요? 총칼을 만들어서 내다파는 우리 모습은 자랑스러운가요? 아니면 창피하거나 부끄러운가요?


  아이들은 어른이 시키는 대로 곧이곧대로 하지는 않습니다. 어질고 참한 사랑으로 속삭이면서 먼저 보여주는 아름다운 몸짓이라면 누가 안 시켜도 아이들은 즐겁게 물려받거나 새롭게 지핍니다. 이와 달리 억지로 시키거나 나이로 밀어붙이거나 힘으로 누르려 하면, 아이들은 그만 앓거나 다치거나 멍들며 허수아비나 꼭두각시가 되거나 죽어버리기까지 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린이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는 ‘꼰대도 아니고 늙은이도 아닌, 참하고 착한 어른’으로 설 만할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잘잘못을 안 따져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잘잘못을 따진다면 왜 따져야 하는가를 되새기고, 어떻게 따져야 하는가를 짚고, 이 잘잘못을 따진 길을 앞으로 어떻게 추스를 적에 ‘아름답게 어깨동무하면서 살림을 짓는 사랑으로 어우러지면서 푸르게 숲으로 빛나는가’를 차근차근 생각할 일이라고 봅니다.


  “넌 잘못했으니까 나빠!” 하고 말하기란 쉽겠지요. 그러나 이런 미움 가득한 말은 언제까지나 싸움(전쟁)만 끌어당기고 심습니다. 미움으로 하는 앙갚음은 다른 미움을 끌어당기고 심으니, 끝없이 싸움판을 되풀이하다가, 나중에는 누가 먼저 때렸느냐로 다투기까지 합니다. 참말로 아이들한테 미움씨앗만 심는 글을 써야겠습니까? 우리는 참으로 ‘어른’이 맞습니까? 우리는 ‘꼰대나 늙은이’ 아닙니까?


ㅅㄴㄹ


“너희들은 아직 어려서 잘 모를 거다만 나라와 민족도 마찬가지란다. 승우야, 넌 나라와 민족의 뿌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 … 승우는 엄마가 쓰신 꽃글을 보았습니다. ‘야마’, ‘소라’, ‘호시’로 불렀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말들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제 ‘산’과 ‘하늘’과 ‘별’로 불리자 그 말들은 두렷두렷 살아나 승우에게로 왔습니다. (22, 24쪽)


“아니! 미움은 서로를 아프게 하니까 우리 새들은 남을 미워하지 않아. 우린 말야, 마음이 몸 안에 가득 차면 무거워 날지를 못해. 날지 못하는 새는 자유가 없단다. 새나 사람이나 다 마찬가지야.” “그래도 난 미워. 나를 조센징으로 낳은 아빠도 엄마도 미워.” 고개를 번쩍 든 난 산에다 대고 와라락 소리를 질렀다. “모두들 다 미워어!” 그 소리에 놀란 듯 나의 산새는 바람을 가르며 숲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168쪽)


“뭐 내가 한 짓을 절대로 안 잊겠다나. 유키짱은 바보 얼간이야.” “마사짱, 그런 말 하면 못 써. 그래도 친구하고는 사이좋게 지내야 해.” “자꾸 내 물건에 손을 대고 얄밉게 구니까 화가 나서 그랬지 뭐.” (20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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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자폐인 이야기 - 개정판
템플 그랜딘 지음, 박경희 옮김 / 김영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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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 숲노래 청소년책 2023.3.14.

푸른책시렁 165


《어느 자폐인 이야기》

 템플 그랜딘

 박경희 옮김

 김영사

 1997.6.28.



  《어느 자폐인 이야기》(템플 그랜딘/박경희 옮김, 김영사, 1997)를 읽었습니다. 예전에도 읽었고, 아이들이 부쩍 자라서 아이들한테 글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새로 읽고는, 이 책을 아이들한테 건넵니다. 어느 모로 보면 템플 그랜딘 님을 ‘훌륭하다(위인)’고 여길 수 있을 텐데, 이보다는 우리 곁에 있는 작은 이웃으로 바라볼 적에 비로소 마음을 읽고 나눌 만하리라 봅니다.


  작게 태어난 아이는 작게 숨쉬는 이웃을 알아봅니다. 작게 숨쉬는 이웃은 작게 태어난 아이한테 마음으로 다가갑니다. 둘은 이 별에서 작으면서도 빛나는 하루로 만나면서 이야기를 합니다.


  푸른별(지구)은 온누리로 보자면 더없이 자그맣습니다. 우리 몸을 이루는 조각(세포)도 우리 몸뚱이로 본다면 가없이 자그맣습니다. 누구나 별빛 같은 조각으로 몸을 이루고, 사람 하나하나도 별빛이요, 이 별빛으로 푸른별이 한덩이를 이루고, 이 별은 하나하나 모여서 온누리를 이룹니다.


  모든 조각(세포)은 다릅니다. 똑같은 조각은 하나조차 없습니다. 머리카락도 모두 달라요. 뭉뚱그려 머리카락이라 하지만, 다 다른 결이 나란히 있을 뿐입니다. 나라에도, 마을에도, 배움터에도 다 다른 사람이 어우러집니다. 똑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나 마을이나 배움터를 들여다볼까요? 다 다른 사람을 다 같은 울타리나 틀에 가두지는 않나요?


  다 다른 사람은 다 다른 몸을 입고서 다 다른 마음으로 살림을 짓습니다. 다 다르니 다 다른 책을 읽고서 다 다른 글을 쓸 만합니다. 그렇지만 배움터도 마을도 나라도 모든 사람이 똑같거나 닮은 책을 읽고 똑같거나 닮은 글을 쓰며 똑같거나 닮은 눈으로 바라보도록 길들거나 내몰아요.


  우리는 참으로 다 다른 숨결이 맞나요? 우리는 그야말로 서로 다르게 만나서 스스로 사랑을 싹틔우는 사람이 맞을까요?


  맞춰야 할 까닭이 없고, 맞아야 하지도 않습니다. 남을 쳐다볼 일이 없고, 남한테 마음을 기울여야 하지도 않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마음결을 들여다보면서, 새롭게 사랑을 일으켜 보금자리를 돌볼 적에 아름답습니다. 겉모습이나 몸매나 얼굴이 아닌 숨결을 북돋우기에 비로소 사람이며, 숲을 느낄 테고, 별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시 제 넋을 쓰다듬겠지요.


ㅅㄴㄹ


나는 상황을 설명했고, 어머니는 귀 기울여 들었다. 항상 그렇듯이 어머니는 내 편이 돼주었다. 어린 동생들을 침대에 뉘어놓고 아버지가 산책하러 나간 뒤에 우리는 자세한 계획을 세웠다. (82쪽)


까마귀 둥지를 발견한 지 1년 후, 나는 그 작은 전망실에 서서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밤하늘의 별들이 반짝였고 나에게 좀더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는 듯했다. 그 작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밤하늘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아름다움에 빨려들었다. (108쪽)


자폐인들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면서 그들이 다룰 수 없는 여러 자극들을 차단한다.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자극은 일반 성인에게서도 쉽게 일어나는 신경질을 감소시킨다. (147쪽)


내가 압박기를 조작할 때 나 자신이 느긋한 태도를 취하면 가축들이 이리저리 날뛰지 않았다. 가축들도 인간의 긴장감을 느낀다. (178쪽)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의미를 미치도록 추구하던 시기도 이제는 지나갔다. 더 이상 한 가지 일에 집착하지 않았다. 지난 4년 동안 나는 일기를 거의 쓰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항우울제가 많은 정열을 제거해 버렸기 때문이다. (195쪽)


나는 내 지성을 사용하는 데 큰 만족을 느낀다. 나는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났을까 궁리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좋아한다. (238쪽)


#Emergence #LabeledAutistic #TempleGrandin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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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건축과 인권 이야기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42
서윤영 지음 / 철수와영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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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 숲노래 청소년책 2023.3.14.

푸른책시렁 164


《10대와 통하는 건축과 인권 이야기》

 서윤영

 철수와영희

 2022.11.13.



  《10대와 통하는 건축과 인권 이야기》(서윤영, 철수와영희, 2022)를 곰곰이 읽었습니다. 그리 멀잖은 지난날에는 쇳덩이가 넘치지 않았어요. 골목도 길도 누구나 누리면서 아이어른 모두 사이좋게 놀거나 일하던 삶터였습니다. 이러다가 골목에도 길에도 쇳덩이가 넘치면서, 쇳덩이에 몸을 실은 이들은 마구 몰아댑니다. 쇳덩이를 몰지 않는 이들은 구석으로 내몰립니다.


  쇳덩이가 더 빨리 더 많이 달리도록 자꾸 들숲을 밀어대고, 멧자락에 구멍을 뚫기까지 합니다. 쇳덩이는 누가 달릴까요? 이른바 ‘어른’이란 이름인 사람들입니다. ‘어린이’란 이름인 사람하고 ‘푸름이’란 이름인 사람은 쇳덩이를 몰지 않아요. 어린이·푸름이가 서울하고 부산이나 광주 사이를 자주 오가야 하는 일이란 없습니다. 어린이·푸름이는 마을살이를 하면서 마을살림을 사랑하는 마음을 펴려는 숨결입니다.


  왜 나라 곳곳에 구경터(관광지)를 늘려야 하는지 따질 노릇입니다. 이 나라 이 땅을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물려받아서 누려야 한다면, 참말로 아무렇게나 부릉길을 늘리지 말아야 하고, 잿집(아파트)은 그만 때려박아야 합니다. 모든 부릉길하고 잿집은 어깨동무(평등·평화)하고 등집니다. 온통 돈으로 굴러가거나 흐르는 부릉길에 잿집입니다. 어린이하고도 푸름이하고도 멀디먼 잿빛살림(도시생활·도시문화)이에요.


  ‘집과 사람(건축과 인권)’은 따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숱한 ‘도시개발·재개발·투자’는 그저 ‘서울에서 돈을 굴리는 어른’들 손바닥에서 놀아나는 꼴입니다. 이제는 그만 건드릴 노릇입니다. 이제는 그냥 둘 일입니다. 그동안 건드린 숱한 곳은 조용히 천천히 숲으로 돌아가도록 놔두어야겠지요. 땅바닥에 놓은 부릉길도 조금씩 걷어내고, 하늘수레(케이블카)를 늘리지 말고, 하늘나루(공항)도 그만 지으며, 쾅쾅 쏘아대는 쇳덩이(미사일·군사드론)도 그만 만들 일입니다.


  《10대와 통하는 건축과 인권 이야기》는 어려운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습니다. 어느새 ‘집’이 아닌 ‘부동산’으로 바뀌는 우리나라가 하루빨리 멈추어야 할 삽질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집’이라고 할 적에는, 뿌리를 내리고 나면 구태여 옮겨야 할 까닭이 없이 이백 해나 오백 해를 고스란히 잇는 삶터를 가리킵니다. 자꾸 허물고서 다시 잿더미(시멘트)로 쌓는 무더기는 ‘집’일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건축’이 아닌 ‘집’을 바라보기를 바라요. ‘짓고’서 깃드는 보금자리인 ‘집’을 생각해야지 싶어요. 사고팔면서 돈을 버는 잿더미가 아닌, 하루를 그리고 삶을 누리며 사랑을 속삭이는 보금자리인 ‘집’을 바라볼 때입니다.


ㅅㄴㄹ


레스토랑의 비싼 음식값에는 한두 시간 정도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을 수 있는 자릿세도 포함되어 있어요. (40쪽)


성 역할이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사회에서는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어요. (76쪽)


‘환경 개선 작업’이라는 명목으로 들어선 벽화에는 “쇠락한 동네는 범죄가 발생하기 쉬우며, 환경 개선 작업을 통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 담벼락에 벽화가 그려진 벽화 마을은 곧 가난한 동네이자 쇠락한 동네라는 이미지가 굳어집니다. 주말이면 놀러와서 사진을 찍어가는 사람들 때문에 정작 주민들이 불편을 겪기도 합니다. (103, 105쪽)


의사가 되면 동료 의사가 많아지고 교수가 되면 동료 교수가 많아지는 등의 직접적 연관 외에 부촌의 고급 아파트에 살면 이웃집도 대개 고만고만한 중산층이기 때문에 문화 자본이 쌓입니다 … 이미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문화 자본을 가지고 있으므로 학력 자본도 남들보다 훨씬 쉽게 취득할 수 있습니다. 엄마가 대학교수인 덕에 고등학생 시절부터 해외 논문에 이름을 등재하고 이 스펙으로 명문대에 진학했다는 스토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16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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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가게
하야시바라 다마에 지음, 하라다 다케히데 그림, 김정화 옮김 / 찰리북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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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2023.3.11.

맑은책시렁 294


《숲 속의 가게》

 하야시바라 다마에 글

 하라다 다케히데 그림

 김정화 옮김

 찰리북

 2013.2.8.



  《숲 속의 가게》(하야시바라 다마에·하라다 다케히데/김정화 옮김, 찰리북, 2013)를 가만히 읽어 봅니다. 숲에 무슨 가게가 있어야 하겠습니까만, 숲살이를 한결 즐거이 나누고 싶은 여러 아이들이 조곤조곤 마음을 기울인다고 합니다. 근심걱정을 마음에 담기보다는 웃음꽃을 마음에 담으려 합니다. 까맣게 타들어가는 마음이 아닌 푸르게 물드는 마음을 옮기려 합니다.


  생각해 봐요. 어떤 일을 하든 ‘안 될는지 몰라’ 하는 걱정을 할 까닭이 없습니다. 어떤 일을 하다가 ‘안 된다’면 “아, 안 되었구나.” 하고 지나가면 됩니다. 이다음을 바라보면 되고, 새롭게 나아갈 하루를 그리면 되어요.


  남이 들려주기에 노래이지 않습니다. 스스로 들려주기에 노래입니다. 들숲이며 마을을 오가며 날갯짓하는 마음을 들려주는 새노래도, 풀밭이며 꽃밭에 앉아 풀내음을 맡는 마음을 들려주는 풀벌레노래도, 저마다 다르게 빛나는 가락입니다.


  벌이가 되는 가게를 차리는 마음이 아닌, 꿈을 사랑으로 펴는 가게를 여는 마음이라면, 온누리가 늘 아름다우면서 즐거울 테지요. 돈이 되거나 힘을 얻거나 이름을 날리는 가게나 일이 아니라, 살림을 가꾸고 사랑을 지으면서 숲빛으로 어우러지는 가게나 일이 싹트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흰토끼는 딱따구리를 올려다본 채 가만히 듣고 있었어요. 딱따구리도 넋을 잃고 듣고 있었어요. (13쪽)


“잠깐, 잠깐만요, 너구리 씨, 혹시 이 점 모두 ‘행복’이나 ‘행운’만 나오는 거 아니에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너구리는 부루퉁한 토끼를 보고 고개를 가로저었어요. “그것 말고도 ‘럭키’나 ‘운수대통’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20쪽)


내일 아침 들쥐 가족은 은색 거미줄 한가운데 쓰여 있는 글자를 발견하겠지요. “잘 잤니?” (60쪽)


숲이 예쁜 색으로 물들고 가끔씩 바람 소리도 들려와요. (76쪽)


고슴도치는 꼬마 너구리 바지에 달린 작은 주머니를 한 땀씩 정성스럽게 꿰매 주었어요. 길 잃은 갈색 꼬물이 들쥐가 주머니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신기하다는 듯이 고슴도치가 꿰매는 모습을 지켜보았어요. (10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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