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기의 현장
이경모 / 눈빛 / 199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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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진기자는 어디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2] 이경모, 《격동기의 현장》(눈빛,1989)



 1926년에 태어나 1946년부터 호남신문사 사진부장으로 일했던 이경모 님은 《격동기의 현장》이라는 사진책에서 1945∼1951년 무렵 이 나라 삶자락을 하나하나 보여줍니다. 이경모 님이 일하던 신문사는 사라졌고, 한국전쟁 때 국방부 정훈국 보도과에서 뛰며 찍은 사진은 현상처리가 나빠 이 책에 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따로 갖고 있던 사진기에 담았던 필름이 남아 있어 이 사진책 하나를 꾸릴 수 있었답니다.

 우리한테 사진 문화가 조금이나마 있었다면 해방 이야기를 호남신문사에서 1945년에 내놓을 수 있었을 테며, 한국전쟁 이야기를 국방부에서 1953년에 펴낼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그무렵에 사진책으로 엮지 않았기에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삶자락을 담은 사진은 하나둘 자취를 감춥니다. 아니, 처음부터 빛을 보지 못합니다. 박도 님이 엮은 《그들이 본 한국전쟁》이라는 사진책이 있습니다만, 미국에 있는 도서관에 있든 누군가 개인으로 갖고 있든 오래도록 빛을 보지 못한 채 묻혀 있는 사진들은 이보다 훨씬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지난 1996년에 《끝나지 않은 전쟁》(조지 풀러 사진,눈빛 펴냄)이라는 사진책이 나온 적 있습니다. 한국전쟁 모습을 미국 군인이 빛깔 사진으로 담아 엮은 책입니다. 우리 지난 삶자락을 돌아보는 더없이 애틋한 사진책이지만, 이 사진책은 거의 눈길을 못 받고 사랑 또한 못 받은 채 묻혀 있습니다. 사진책으로 나오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 우리 나라인데, 애써 사진책으로 나왔다 할지라도 제대로 읽히거나 보이지 못하는 우리 나라입니다. 제아무리 잘 팔린 사진책이라 할지라도 1만 권 넘게 팔리는 일이란 몹시 드물고, 10만 권이나 100만 권 팔렸다는 사진책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이름있는 사진기들이 몇 만 대씩 팔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사진을 찍는 아름답거나 해맑은 길을 보여주는 사진책들이 조용히 묻혀 있는 모습이란 그다지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슬프기 짝이 없습니다.

 이경모 님은 지난 2001년 5월 17일에 눈을 감았습니다. 사진과 얽혀 여러 가지 큰일을 했다지만 우리 문화와 역사에는 거의 아무런 자국을 남기지 못했고, 눈을 감은 소식을 찾아보기란 몹시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진을 찍었건 저런 사진을 남겼건 이 땅에서는 제대로 알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 이런 눈물이 있건 저런 사람들 저런 웃음이 있건 이 나라에서는 찬찬히 헤아려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격동기의 현장》이 나온 1989년을 돌아보면 이경모 님이 1945∼1951년치 사진을 찍은 지 거의 쉰 해 만입니다. 어쩌면 군부독재 정권이 무너졌기에 이런 사진책 하나 비로소 나올 만하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해방 무렵 사진이란 해방을 맞이하고 쉰 해가 지나서야 빛을 볼 만한 사진은 아닐 텐데, 이 나라 책마을이나 사진마을은 이와 같은 사진을 두루 살펴서 널리 나누고자 힘쓰지 못했습니다. 이런 흐름은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요즈음 우리 삶터를 요즈음 차근차근 돌아보며 요즈음에 알뜰살뜰 묶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여느 사람들이 복닥이고 있는 눈물과 웃음이 어린 삶을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그때그때 옮기며 웃고 울며 나눌 수 있으면 얼마나 반가울까요. 수수한 사람들 투박한 땀방울과 착한 손길을 그날그날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함께할 수 있으면 얼마나 기쁠까요.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은 어느 자리에서 어느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면서 글을 쓰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 어느 동무하고 손을 맞잡으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은 어느 터전에서 어느 겨레붙이하고 부대끼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해방도 격동기이지만 입시지옥도 격동기입니다. 한국전쟁도 격동기이지만 국가보안법도 격동기입니다. 여수ㆍ순천 사건도 격동기이지만 비정규직도 격동기입니다. 우리는 지난날과 오늘날과 앞날 격동기를 어느 만큼 헤아리면서 어느 만큼 올바른 눈썰미로 어느 만큼 알차게 보듬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글쟁이와 그림쟁이와 사진쟁이들만 탓할 수 없습니다. 정치꾼만을 탓한다고 정치가 달라지거나 나아지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며 우리 스스로 꾸리는 삶을 나무라며 가다듬는 가운데 정치를 바로세우도록 힘을 모아야 합니다. 바로 우리 스스로를 굽어살피며 우리 스스로 일구는 삶을 꾸짖고 뜯어고치는 가운데 문화와 예술이 살가이 꽃피우도록 뜻을 그러모아야 합니다.

 사진기자가 비틀어 보이는 거짓 사진에 홀리고 있는 우리들이라 한다면 몇몇 엉터리 사진기자들은 참을 비트는 사진을 자꾸자꾸 찍어서 내보냅니다. 사진기자가 엉터리 사진을 내놓을 때에 ‘이런 쓸개빠진 엉터리!’ 하면서 손가락질할 줄 안다면, 사진기자들이 우리들 앞에서 부끄러워 할 뿐 아니라 우리들을 두려워 하며 옳고 바른 사진으로 나아가고자 힘을 쓸밖에 없습니다. 엉터리 정치꾼이 나오는 까닭은 엉터리 유권자 때문이며, 엉터리 사진이 쏟아지는 까닭은 엉터리 독자 때문입니다. 참다운 정치꾼이 나오려면 참다운 유권자로 거듭나야 하며, 참다운 사진책이 나오려면 참다운 사진 독자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마땅한 노릇인데, 이제 어느 누구도 1945∼1951년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을 수 없습니다. 2009년 이야기 또한 어느 누구도 사진으로 찍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2010년 올해 이야기만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으며, 5월 17일 어제나 5월 16일 그제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을 수조차 없습니다. 오로지 5월 18일 오늘 이야기만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으며, 하루하루 새로 맞이하는 그날그날 삶과 사람을 사진으로 엮을 수 있습니다. 사진쟁이란 언제나 바로 그때 그곳에 있지 않고서는 아무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글쟁이와 그림쟁이는 바로 그때 그곳에 없었어도 글과 그림을 낳지만, 사진쟁이만큼은 총알이 빗발치든 군화발이 으르릉거리든 바로 그때 그곳에 머물며 삶과 죽음이 가로지르는 터에서 참거짓을 마주해야 합니다. 사진책 《격동기의 현장》은 이경모 님이 사진기자였기 때문에 낳을 수 있던 책이 아니라, 삶과 죽음이 가로놓인 자리에 두 다리 튼튼하게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낳은 보배덩어리입니다. (4343.5.18.불.ㅎㄲㅅㄱ)

― 격동기의 현장 (이경모 사진,눈빛 펴냄,1989.11.10./판 끊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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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공명
지율 스님 지음 / 삼인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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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스님 사진책은 시중 책방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지율 스님 다른 책에 이 글을 걸쳐 놓는다. 이 사진책은 녹색평론사에 전화해서 주문해야 한다. 이 사진책을 보고 싶은 분은 한 권에 3000원이니 10권을 3만 원에 장만해서 둘레에 선물해 주신다면 더없이 고맙겠다.)
 

 






 낙동강 삶터와 거짓말하는 사진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18] 지율 스님, 《낙동강 before and after》



- 책이름 : 낙동강 before and after
- 글ㆍ사진 : 지율 스님, ‘낙동강 숨결 느끼기’ 순례 동행들
- 펴낸곳 : 녹색평론사 (2010.3.31.)
- 책값 : 3000원
(http://www.chorok.org)


 (1) 사진은 거짓말을 한다


 사진을 참말을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사진은 참말만 하지 않습니다. 사진은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

 참을 밝히는 글이 있으나 거짓으로 가득한 글이 있습니다. 참을 보여주는 그림이 있는 한편, 거짓으로 넘실거리는 그림이 있습니다. 참을 숨긴 목소리가 있고 참이 고스란히 담긴 목소리가 있습니다.

 바라보는 자리에 따라 사진을 다르게 느낀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쪽에 서 있느냐 저쪽에 서 있느냐에 따라 사진은 사뭇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니까요. 우리 동네 한복판에 51층으로 올라설 아파트는 누군가한테는 아주 멋진 집자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51층짜리 아파트 둘레에서 햇볕을 쬐지 못하고 찬바람만 씽씽 불어대는 곳에서 살아야 할 사람한테는 끔찍한 집자리입니다. 돈 몇 푼으로 햇볕권을 갚아 줄 수 없는 노릇이요, 살림을 꾸리는 넋을 보듬을 수 없습니다.

 헌책방을 속깊이 헤아리면서 책시렁을 가만가만 살피는 이들한테는 헌책방에서 숨죽이는 책들이 어떻게 아름답고 좋은가를 온몸으로 깨달으며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무슨 책 있어요?” 하고 묻기만 하거나 어쩌다 한 번 지나치는 걸음으로 찾아오는 사람한테는 헌책방처럼 구지레하거나 어수선한 데는 따로 없습니다. 누군가한테는 보배로운 책을 찾고 얻는 헌책방이지만, 누군가한테는 아무런 책이 없는 헌책방입니다.

 골목길을 오로지 추억이나 퇴락한 곳이라고 이야기하는 분이 있습니다. 골목길을 추억이나 퇴락한 곳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치고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골목동네 사람으로서 살림을 꾸리는 이들은 내 터전인 골목길에 휴지 한 장 버리지 않습니다. 곱고 맑고 살갑게 일구고 돌봅니다. 골목동네 사람한테 골목길이란 추억 아닌 삶(현실)이며, 퇴락한 곳이 아닌 아름다운 곳입니다.

 서울과 부산을 네 시간으로도 모자라 두 시간 반이나 두 시간 만에 오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이들로서는 수천 억이 아닌 수십 조를 쓰더라도 빠른기차를 놓아야 합니다. 수천 억이나 수십 조를 교육과 복지에 바쳐서, 대학 교육까지 개인이 돈을 내지 않고 나라에서 돈을 내도록 하면서 튼튼하고 곧은 배움마당이 되도록 마음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서울과 부산을 오갈 빠른기차 때문에 얼마나 많은 논밭과 산들과 냇물이 파헤쳐지거나 무너지거나 앓고 있는지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아주 빨리 휙휙 지나치는 ‘풍경’이지, 숱한 목숨과 사람이 기나긴 나날을 보내온 삶터에 기찻길을 놓았음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빠른기차를 달리며 바깥을 바라보는 사진하고 기찻길한테 자리를 내준 논밭이나 산들이나 냇물에 서서 빠른기차를 바라보는 사진은 다릅니다. 빠른기차를 타고 있는 사람은 기차가 내는 어마어마한 소리를 느끼지 못합니다. 논밭이나 산들이나 냇물에 서 있는 사람은 삶자리를 빼앗겼을 뿐 아니라 무시무시한 소리까지 등에 업으며 귀를 막아야 합니다.

 자가용을 타고 골목을 쌩 하니 달리며 내다보는 모습이랑 오토바이를 타고 휙휙 달리며 골목을 둘러보는 모습이랑 자전거를 타고 바람처럼 달릴 때 골목을 쳐다보는 모습이랑 아이 손을 잡고 거닐며 골목을 둘러보는 모습은 저마다 다릅니다. 자전거를 타더라도 빨리빨리 달리기만 해서는 골목을 느낄 수 없습니다. 두 다리로 걷더라도 머리속에 자질구레한 생각조각이 많으면 골목을 한갓지게 거닐고 있어도 아무런 느낌을 못 받습니다.

 사진 하나를 찍는다고 할 때에는 내 사진감인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연이나 물건하고 함께 살고 있어야 합니다. 구경하는 삶으로는 구경하는 사진일 뿐입니다. 여행하는 사진은 거의 모두 구경꾼 사진입니다. 이러다 보니 여행 사진은 으레 그럴싸하거나 멋들어진 모습으로 꾸미려 할 뿐, 그 좋다고 하는 곳을 두루 다니면서 맛보고 받아들인 좋은 모습을 꾸밈없이 담는 가운데 스스로 조촐하고 아름답게 거듭나지 못합니다. 내 삶터를 찍고 내 사랑이를 찍으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무언가를 찍어야 비로소 사진입니다.

 돈을 좋아하고 아파트를 아끼며 빠른기차와 자가용을 아끼는 사람한테는 ‘쇠삽날 재개발 정책’에서 장미빛 꿈을 들여다봅니다. 한강 낙동강 금강 섬진강을 파헤치는 모습을 보면서 큰물을 막는다느니 물을 잘 살려쓸 수 있다느니 일자리를 늘린다느니 아름다운 나라로 탈바꿈한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엮어냅니다. 잔뜩 파헤쳐진 강바닥을 보면서 ‘이제 더 멋지게 다시 태어날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강바닥에 박아 놓은 쇠말뚝을 바라보면서 ‘꿈처럼 아름다운 관광길’이 태어나겠거니 생각합니다. 서울 청계천하고 매한가지입니다.

 돈을 좋아하지 않고 자연 삶터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은 ‘4대강 살리기’란 무서운 말장난이면서 우리를 바보로 만드는 데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느라 정작 우리 삶을 망가뜨리고 있음을 들여다봅니다. 한강 낙동강 금강 섬진강뿐 아니라, 일찌감치 우리 둘레 우리들 조그마한 터전부터 어처구니없는 막공사와 막개발이 판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좋은 삶 좋은 삶터 좋은 자연이란 사람이 돈을 써서 억지로 꾸밀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자연을 살리거나 사랑한다면 자연을 그대로 놓아 두기만 하면 되는 줄 헤아립니다. 씨앗 하나 스스로 뿌리를 내려 자라도록 지켜보기만 하면 넉넉한 줄을 읽습니다. 자연이 자연 그대로 있으며 자연스러울 때에 비로소 아름다운 터전이요, 이 아름다운 터전에서 우리들을 아름답게 어루만지는 멋과 웃음이 있음을 느낍니다.

 온누리 모든 사진은 사진기를 든 사람 눈높이와 삶자리에 따라 달리 나타납니다. 그래서 모든 사진은 다른 사람들한테 거짓말을 하는 사진이 됩니다. 구경꾼 사진은 동네 주민한테 거짓말 사진입니다. 동네 주민 사진은 구경꾼한테는 거짓말 사진입니다. 짓밟히고 억눌린 삶을 뜯어고치고자 집회를 하는 사람들한테는 몽둥이 휘두르며 집회를 때려부수는 사람들이 찍은 사진이 거짓말입니다. 몽둥이 휘두르며 집회를 때려부수는 경찰하고 한 자리에 선 사람들한테는 짓밟히고 억눌려서 집회를 하겠다는 사람들 이야기와 삶이 거짓말입니다. 흔히들 ‘왜곡 사진’이니 ‘비틀린 기사’이니 하지만, 왜곡이나 비틀림이란 없습니다. 모두들 저마다 서 있는 자리에서 생각하고 살아갈 뿐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한테는 수수하고 꾸밈없는 매무새가 당신들 삶이지만, 누군가한테는 꾸미거나 겉발림하는 모양새가 당신들 삶입니다. 큰 돈과 큰 집과 빠른 차를 바라는 이들하고 가난과 작은 삯집과 두 다리로 살아가는 이들하고는 참거짓을 가르는 잣대와 금과 틀이 다릅니다.

 그렇다면, 사진은 거짓말을 한다는 말이 옳지 않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사진이 거짓말을 한다기보다 삶이 거짓말을 한다고 해야 옳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사진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 찍을 뿐이지만, 사진기를 든 사람이 당신 삶을 있는 그대로 꾸리지 않을 뿐더러, 사진기를 든 사람이 당신 삶을 돈바라기로 내몰고 있기 때문에 돈바라기 사진이라는 허울을 감추고 있다고 해야 옳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2) 지율 스님 사진 《낙동강》


 ㅈ일보는 지율 스님이 찍은 사진을 놓고 “이들의 허위 선동은 국민 가슴에 근거 없는 증오를 심고, 막대한 국가 예산을 낭비하게 만든다(2010.5.11.)”고 이야기합니다. 또다른 ㅈ일보는 “현지 민심부터 읽어야 한다. 더 이상 식상한 이벤트로 감동을 줄 수 없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려면 논리적인 설득만이 유일한 길이다(2010.5.13.)”라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지율 스님은 《낙동강 before and after》(녹색평론사)라고 하는 아주 조그마한 사진책을 내놓으며 사진잔치를 열고 있습니다. ㅈ일보에서 논설위원으로 있거나 기자로 뛰는 분들이 지율 스님 사진책을 읽었는지 궁금하며, 지율 스님 사진잔치에서 사진을 보았는지 궁금합니다. 또는 지율 스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는지 궁금합니다.


.. 강을 파괴하고 그 위에 세워진 시멘트 기둥을 자연과 신의 선물로 부르는 사람들에 의해 4대강 사업은 계획되고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거부하지 않은 더 많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우리의 강은 원형을 잃고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녹색의 그믈망에 덮여 있는 저 베어진 나무들은 얼마전 까지 우리와 함께 호흡하며 바로 이 강가에 서있던 생명들이었다. 한 나무들의 봄은 우리의 봄이었고 그 나무들의 여름은 우리들의 여름이었다. 그 나무들의 죽음은 바로 계절의 죽음이며 강의 죽음이며 우리들의 죽음이다 ..  (초록의 공명/2010.2.11.)


 지난 2007년에 사진쟁이 홍순태 님이 《낙동강》(눈빛)이라는 사진책을 내놓았습니다. 홍순태 님은 1970년대 낙동강 물줄기와 낙동강 둘레 터전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을 책 하나로 묶었습니다.

 올 2010년에 스님 지율은 《낙동강 before and after》라는 작은 사진책을 내놓으며 2009년과 2010년에 낙동강 물줄기와 낙동강 둘레 터전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007년에 빛을 본 사진책 《낙동강》에서는 2000년대에는 찾아볼 길이 없는 1970년대 낙동강 삶자락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사진책 《낙동강》은 1970년대에 홍순태 님이 찍은 사진일 뿐, 1960년대나 1950년대나 1940년대나 이 사진에 깃든 모습하고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 옷차림을 바꾼다면 1870년대라든지 1770년대라든지 1670년대하고도 다를 바 없겠지요. 아마 1070년대라든지 570년대하고도 어슷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2010년에 빛을 보는 사진책 《낙동강 before and after》에서는 2000년대에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쇠삽날 개발 정책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2009년과 2010년에 이르러 갑작스레 사라져 버리는 수많은 모습이 어떻게 사라지고 마는가를 찬찬히 알려줍니다.

 사진쟁이 홍순태 님은 “낙동강은 단순히 자연경관을 이루는 자연의 일부만이 아니라 물의 원천이요, 물은 인간의 희망이기도 하다.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은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고 삶을 살찌운다”고 이야기합니다. 당신은 “수자원의 원천이며 우리 고유문화의 젖줄이기도 한 낙동강의 옛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남기고 싶었다”고 덧붙입니다.

 스님 지율은 “무엇보다 어둠에 잠기기 직전 강가에 물드는 보라빛 낙조를 보여주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당신은 “천성산을 통해 나는 자신이 서 있는 땅의 역사와 문화를 자신이 신고 다니는 신발만큼도 여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국토가 맡겨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단 한 번도 천성산을 밟아 보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아무런 애정도 관심도 없는 자들의 기술적인 잣대에 의하여 천성산은 무너지고 파헤쳐졌다. 천성산은 내게 우리의 국토가 처해 있는 아픔과,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기류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다”고 덧붙입니다.


.. 눈이 아픈 현장들을 담은 사진전을 여는 이유는 -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 없이 무참하게 그것을 파괴하고 있는 4대강 개발의 실상을 알리고, 금수강산이라 불리던 아름다운 산하를 돌이킬 수 없이 파괴한 시대를 살다간 한사람으로써 도덕적 책임을 느끼고 우리 뒤에 올 이들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함입니다 ..  (초록의 공명/2010.3.30.)


 스님 지율은, 또는 지율 스님은 왜 밥굶기 싸움에 이어 사진찍기로 접어들었을까요.

 스님 지율은, 또는 지율 스님은 왜 그토록 기나긴 밥굶기 싸움을 하면서도 목숨을 잃지 않았으며, 그토록 가녀린 몸뚱이로 작은 사진기를 어깨에 달랑달랑 걸치고는 기나긴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걷고 또 걷고 다시 걷고 있을까요.

 《낙동강》을 펴낸 사진쟁이 홍순태 님은 강물이 얼어붙을 때이든 큰물이 져 풀집이 물에 잠기든 낙동강으로 달려갔습니다. 《낙동강 before and after》를 펴낸 스님 지율은 낙동강 물줄기에 쇠삽날이 한 번 찍히고 두 번 찍힐 때마다 거듭거듭 사진기 단추를 누르고 있습니다.


.. 제가 초록의 공명이라는 이름의 창을 쉽게 닫지 못했던 것은 문명과 자본의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과도하게 자연을 파괴하는, 혹은 소유하는 행위가 계속 된다면 이 오리섬에 깃들었던 많은 생명들의 몰락처럼 멀지 않은 시간에 우리도 지구라는 별에서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하긴 인간이 지구에서 사라질 동원은 무수히 많아 보이고 살아남을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것이 더 사실적이기는 합니다 ..  (초록의 공명/2010.2.3.)


 무엇을 참이라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무엇을 거짓이라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자연에는 태어남만 있지 않고 죽음이 함께 있는데, 우리는 우리 사람 삶을 어떻게 돌아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람은 살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무엇을 담아서 나눌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진을 보는 사람은 어떤 모습에 어떤 이야기가 깃들었다고 읽어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율 스님 사진은 거짓부렁 사진일는지 궁금합니다. 지율 스님 사진을 거짓부렁이라고 온나라 수백만 사람들한테 외치고 있는 사람이 거짓부렁 목소리일는지 궁금합니다.

 지율 스님 목소리는 고작 수십 또는 수백 사람 귀에만 들어가는데, 수백만 사람 앞에서 외치는 목소리는 이 낮고 작은 목소리가 무엇이 그리도 무섭거나 두려워서 그렇게 비아냥거리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비아냥거리기 앞서 지율이라고 하는 스님 하나가 선 낙동강 물줄기에 나란히 서 있어 보았는지 궁금합니다. 깎아내리거나 손가락질하기 앞서 산을 보고 물을 보며 흙을 보았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물과 바람과 밥이 아닌 돈과 이름과 힘을 먹어야 살 수 있는 목숨인지 궁금합니다.


.. “여러분도 낙동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직접 걸으면서 느꼈을 것입니다. 먼젓번 순례에 참가한 외국인 한 분은 전 세계 어디서도 낙동강처럼 아름다운 강을 본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낙동강 before and after/36쪽)


 서울과 부산을 잇는 빠른기차를 놓고 싶다면 놓을 수 있습니다. 서울과 인천을 잇는 빠른전철을 놓고 싶다면 놓을 수 있습니다.

 빠른기차는 서울과 부산 사이에서 거의 안 멈추고 달립니다. 빠른전철은 서울과 인천 사이에서 드문드문 설 뿐 신나게 달립니다.

 빠른기차가 있어야 하는 만큼, 아니 빠른기차가 있어야 하는 까닭보다 느린기차가 있어야 합니다. 골골샅샅 이웃동네를 오갈 느린기차가 있어야 합니다. 빠른전철이 있어야 하는 만큼, 아니 빠른전철이 있어야 하는 까닭보다 느린전철이 있어야 합니다. 옆동네를 드나들 느린기차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느린기차와 느린전철을 넘어, 자전거와 두 다리와 아기수레로 오갈 조용하고 걱정없으며 오붓한 길이 있어야 합니다.


.. 지난 주말, 설악산의 단풍객이 5만이 넘었고, 해운대 광안리 불꽃놀이 인파가 70만을 넘었으며, 올 시즌 야구 관람객은 600만을 돌파했다고 한다. 오색 단풍의 풍광, 바닷가의 현란한 불꽃놀이, 운동장의 함성과 열기에 이의를 달 수는 없다. 하지만 억만 년 이어져 내려온 자연의 물길이 위험에 처해 있고, 그 재앙에 대한 경고가 하루도 빠짐없이 이야기되고 있어도, 태어나 자라게 해 준 국토가 겪는 아픔의 현장으로 향하는 발길은 너무나 드물다 ..  (낙동강 before and after/10쪽)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즐기는 사진이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바라보는 사진은 거의 모두 빠른기차와 빠른전철하고 맞닿은 사진입니다. 느린기차와 느린전철을 닮은 사진이 아주 드뭅니다. 자전거로 천천히 달리는 사진은 더욱 드뭅니다. 아기수레를 끄는 사진은 손에 꼽을 만큼 적고, 두 다리로 거니는 사진은 아예 보이지조차 않습니다.

 저는 손빨래를 사랑합니다. 우리 옆지기도 손빨래를 사랑합니다. 엄마랑 아빠가 손빨래를 사랑하는 만큼 우리 딸아이 또한 손빨래를 사랑하여 머잖아 제 손으로 제 옷가지를 빨래하는 날을 맞이하리라 봅니다.

 저는 우리 식구 옷가지를 손빨래로 깨끗하게 건사하는 삶을 사랑하듯이 제가 마주하는 삶을 손빨래하는 마음으로 사진 한 장에 담고 두 장에 싣습니다.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마찬가지입니다. 손빨래를 하고, 두 다리로 걸으며, 동네에서 생협하고 어깨동무하는 내내 알맞게 벌고 알맞게 일하며 알맞게 노는 삶을 좋아합니다.

 홍순태 님 사진책 《낙동강》하고 지율 스님 사진책 《낙동강 before and after》를 포개어 놓으며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지율 스님 사진책은 고작 50쪽짜리인데다가 앞등조차 없어 책꽂이에 꽂으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지율 스님 사진책은 여느 책방에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여쭈어야 따로 받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낮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어 낮은 자리에서 만들며 낮은 자리에서 나누는 사진입니다. 이런 낮은뱅이 사진이 뭇사람을 쑤석거린다든지 엉터리 이야기를 퍼뜨린다든지 할 수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낙동강에 선 사람들은 낙동강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느끼니까요. 낙동강에 박힌 쇠말뚝을 본 사람들은 낙동강이 얼마나 아파하는가를 받아들이니까요.

 사진책 《낙동강》에서는 우리가 기나긴 나날 아름다이 건사해 오며 울고 웃고 보듬던 물줄기 삶터를 보여줍니다. 사진책 《낙동강 before and after》에서는 우리 스스로 짓밟아 버리며 등돌리는 바람에 앞으로는 더 아름다움을 보여주지 못할 슬픈 물줄기 생채기를 보여줍니다.

 사진은 아름다움을 말없이 말하기도 하지만, 사진은 슬픔을 눈물과 함께 보여주기도 합니다. 사진은 사랑이지만, 사진은 미움이기도 합니다. 사진은 눈물을 담은 땀방울이기도 하지만, 사진은 겉치레 돈벌레 몸짓이기도 합니다. 사진은 따스한 손길이기도 하지만, 사진은 우악스런 주먹다짐이기도 합니다. 사진은 너그러운 어버이 품이기도 하지만, 사진은 차가우며 매몰찬 총칼이기도 합니다. (4343.5.1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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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과 반동
이갑철 사진, 강운구.김용택 글 / 포토넷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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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사진은 ‘엉터리’입니다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17] 이갑철, 《충돌과 반동》



- 책이름 : 충돌과 반동
- 사진 : 이갑철
- 펴낸곳 : 포토넷 (2010.4.1.)
- 책값 : 7만 원



 (1) ‘대가’와 ‘엉터리’


 언제부터인가 우리 나라 사진밭에서 ‘대가(大家)’라는 이름이 붙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나라밖에서 그리 알아주지 않으나, 나라안에서는 서로서로 추켜세우거나 부추기면서 ‘대가’가 되는 분이 있습니다. 꼭 나라밖에서 알아주어야 훌륭한 사람이지 않습니다. 나라안에서 몇몇이 알아준다 하여도 얼마든지 훌륭한 사람입니다.

 크게 뜻을 이루었다는 분들이란 어떤 분들인지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오랜 나날에 걸쳐 작품 하나 빚었기에 크게 뜻을 이룬 셈일는지요. 작품 하나 빚기까지 오랜 나날을 보냈기에 크게 뜻을 이룬 셈일는지요.

 다른 어느 문화밭이나 예술밭보다 사진밭에서 ‘대가’라는 이름이 널리 쓰이고 팔리고 나돈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 대가라는 이름이 붙거나 이 이름을 붙이는 분들 사진책은 좀처럼 팔리지 않습니다. 대가라는 분들 사진책이 덜 팔린다고 이분들이 대가가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많이 팔리는 사진책을 내놓았다고 대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습니다.

 사진을 처음 배울 무렵부터 사진을 꾸준히 찍고 사진책을 차근차근 즐기는 오늘날까지 “대가 = 엉터리”이고 “엉터리 = 대가”가 아닌가 하고 느끼고 있습니다. 머리로 품는 생각이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느낌이 이와 같습니다.

 스스로 대가라고 일컫거나 둘레에서 대가라고 일컫는 이름에 흐뭇해 하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손사래치지 않는다면 그예 엉터리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고 느낍니다. 남들이 엉터리라 하든 스스로 엉터리라고 이야기하든 엉터리 소리를 흔히 듣거나 자주 듣거나 으레 듣는다면 이이야말로 대가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느냐고 느낍니다.

 작품 하나로 그치는 대가란 없습니다. 작품 하나로 마무른 대가라 한다면 새로운 작품 하나로 나아갈 노릇이요, 지난날 당신이 이룬 대가다운 작품은 더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노릇이라고 봅니다. 작품 하나를 일군 대가라 한다면 하루하루 새 나날을 보내는 동안 당신이 지난날 이룬 대가다운 작품을 깎고 보태고 다듬고 손질하면서 마지막 숨결을 잇는 그때까지 땀흘리기를 멈출 수 없는 노릇이라고 봅니다.

 한자말로는 ‘대가’라지만, 우리 말로는 ‘큰그릇’입니다. 사진찍기를 하든 글쓰기를 하든 그림그리기를 하든, 우리가 굳이 큰그릇만 되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작은그릇이면 어떠하고 작은그릇조차 못 되면 어떠하랴 싶습니다. 우리는 크거나 작은 그릇이 되고자 사진을 찍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내 삶을 사랑하는 만큼 사진을 찍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린다고 느낍니다. 내가 사랑하는 만큼, 내가 아끼는 만큼, 내가 알아 가는 만큼, 내가 고개숙이는 만큼, 내가 부대끼는 만큼, 내가 껴안는 만큼, 내가 느끼는 만큼, 내가 깨닫는 만큼, 내가 믿고 보듬는 만큼 일을 하고 놀이를 한다고 봅니다.

 큰사람이 되라고 딸아들을 낳아 기르지 않습니다. 저 또한 딸아이 하나를 옆지기와 낳아 함께 복닥이고 씨름하는 나날을 보내며 생각합니다. 우리 딸아이가 아빠나 엄마보다 크고 거룩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착하고 참되고 고운 사람으로 씩씩하고 튼튼하게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큰그릇이 되라고 빚는 작품이란 처음부터 큰그릇이 되지 못합니다. 작은그릇이 되라고 빚는 작품 또한 마찬가지인데, 아마 작은그릇이 되라고 작품을 빚는 사람은 없을 테지요. 다들 당신들 삶을 고루 담아내는 살가우며 사랑스러운 열매 하나를 생각하는 사진이라기보다, 무언가 억지로 짜맞추거나 끼워맞추거나 들어맞추도록 하려는 작품으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당신들 삶을 찬찬히 실어내며 따사로운 보람 하나를 헤아리는 사진이라기보다, 무언가 더 크고 높게 내세우거나 내놓으려고 하는 작품으로만 헤아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작가’라는 이름을 걸치고 ‘대가’라는 옷에 휘감긴 채 ‘작품’이라는 굴레를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좋아서 하는 사진이어야 하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사랑해서 하는 사진이어야 옳지 않으랴 싶습니다. 즐기며 함께하는 사진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열 해 뒤를 내다보면 오늘 하루 복닥이는 삶이란 아무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쉰 해 뒤를 내다보면 오늘 하루 얽매일 사슬이란 참으로 부질없습니다. 앞으로 백 해 뒤를 내다보면 오늘 하루 악다구니를 쓰듯 붙잡으려는 힘-돈-이름이란 가없이 덧없습니다.

 사진을 좋아하고 사랑하며 즐기는 사람 하나로서 생각합니다. 부디 이 나라에서 사진으로 일거리를 찾고 이름값을 높이며 돈벌이를 하는 한편 큰배움터나 문화마당 같은 자리에서 가르치는 분들 누구나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곰곰이 곱씹으면 고맙겠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왜 하고, 사진을 왜 찍고, 사진을 왜 가르치며, 사진을 왜 보여주고, 사진을 왜 돈 받고 파는지를 찬찬히 되새기면 반갑겠습니다. 사진을 책 하나로 엮는 까닭을 생각하고, 당신이 찍어서 엮은 사진책을 사람들 앞에 선보이는 까닭을 생각하면 기쁘겠습니다.

 사진은 사진으로 말해야 한다는데, 마땅히 글은 글로 말하고 그림은 그림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더없이 마땅한 이야기를 괜히 멋부리듯 읊지 말고, 그저 그대로 온몸과 온마음 고스란히 내맡겨 스스로 사진삶을 일구는 모습이 사진에 담기도록 힘을 쏟아야지 싶습니다. 삶이 그대로 글이고 그림이듯, 삶이 그대로 사진입니다. 글쟁이와 그림쟁이뿐 아니라 사진쟁이 또한 삶이 어떠한가에 따라 사진이 달라집니다. 자꾸자꾸 대가라는 이름에 매여 있는 당신 삶을 풀어 놓지 못한다면, 어설픈 이름 하나 얻을는지 몰라도 이러한 이름이 사진일 수 없습니다. 사진이란 이름값이 아니니까요. 사진이란 권력이 아니니까요. 사진이란 돈값이 아니니까요. 사진은 사진이니까요. 사진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내 사진은 아직 엉터리’라고 여기며 늘 새롭게 거듭나거나 다시 태어나려고 몸부림을 치기 마련이니까요.
 











 (2) 다시 나온 사진책 《충돌과 반동》


 2002년에 처음 나왔던 사진책 《충돌과 반동》이 새옷을 입고 다시 나왔습니다. 예전 판은 보지 못했는데, 새옷을 입고 나온 책은 예전 판에 실린 사진하고 똑같다고 합니다. 예전 책에는 육명심 님 글이 붙어 있었으나 이 글을 덜고 강운구 님 글을 새로 붙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진쟁이 이갑철 님으로서는 2002년이나 2010년이나 《충돌과 반동》이라는 작품 하나만을 내놓은 셈입니다(2009년에 《RED》라는 작품을 내놓으셨데 ‘충돌과 반동’이라는 사진감으로는 여덟 해 동안 다른 발돋움이 없었다는 소리입니다).

 충돌이 있고 반동이 있대서 책이름이 《충돌과 반동》이요, 이갑철 님이 일구어 온 사진밭은 다름아닌 충돌과 반동이라는 낱말로 갈무리할 수 있습니다. 영어로는 ‘conflict’와 ‘reaction’으로 적는데, 우리 말로는 ‘부딪힘’과 ‘거스름’ 또는 ‘부대낌’과 ‘튕김’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거나 부딪히고,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거스르거나 튕깁니다. 부대끼는 사람들은 서로 얼싸안거나 어깨동무를 하고, 때로는 밀어내거나 등을 돌립니다. 따지고 보면 아무리 사랑스러운 사이라 할지라도 만나고 헤어지기를 되풀이합니다. 충돌과 반동이란 그치지 않는 흐름이요, 만남과 헤어짐이며, 잠과 깸입니다. 해와 함께 달이 있듯,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습니다. 밥하고 똥은 다르지 않으며, 어른과 아이는 똑같이 고운 목숨입니다.

 이갑철 님이 2002년에 보여주었던 《충돌과 반동》은 여덟 해가 흐른 2010년에 이르러서도 그리 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 삶터는 고작 여덟 해로서는 달라지지 않는 탓입니다. 아니, 앞으로 열여덟 해나 여든 해가 흐르더라도 그리 달라질 듯하지 않는 탓입니다. 돌이켜보면 지나온 여든 해조차 사람들이 서로 악다구니가 되어 돈이며 이름이며 힘이며 더 움켜쥐려고 할 뿐, 더 나누거나 더 베풀거나 더 내려놓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더 바빠지는 삶이라고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어슷비슷합니다. 더 바쁘고 덜 바쁘고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우리 흐름을 붙잡지 못합니다. 우리 삶이 어떠할 때에 우리 스스로 즐겁고 아름다운가를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 길이 어디로 이어질 때에 우리 스스로 신나고 맑은가를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 터전을 어떻게 가꿀 때에 우리 스스로 반갑고 넉넉한가를 살피지 못합니다.

 같은 일이 되풀이되는 한국땅입니다. 같은 잘못이 이어지고 같은 슬픔이 잇달으며 같은 생채기가 자꾸 파이는 한국땅입니다. 이름과 때와 곳이 다를 뿐, 지난날과 오늘날 이 땅에서 벌어지는 크고작은 이야기들이란 거의 한결같습니다.

 이러한 한국땅에서 《충돌과 반동》에 깃든 이야기는 예나 이제나 어슷비슷하게 받아들여지리라 봅니다. 제대로 받아들여진다면 예나 이제나 제대로 받아들여지는 셈이요,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예나 이제나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셈입니다.

 이리하여, 이갑철 님으로서는 딱히 새로운 작품을 일구어 새로 나오는 책에 보탤 까닭이 없습니다. 《충돌과 반동》은 2002년에든 2010년에든 2022년에든 2102년에든 똑같은 사진책이 되고, 똑같은 느낌이 되며, 똑같은 삶으로 자리잡습니다. 사진을 읽는 사람한테나 사진을 찍는 사람한테나 어떠한 움직임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진에 담기는 사람들 스스로 ‘달라질 삶’을 찾지 않습니다. 사진에 담는 사람 또한 ‘달라질 삶’을 붙잡지 않습니다.

 좋다고 여겨 예나 이제나 그대로 이어가는 삶일는지 아닐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넉넉하다고 여겨 예나 이제나 그대로 내놓는 사진일는지 아닐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 나라 이 삶터는 새로운 흐름이란 없고 달라질 삶이란 없습니다. 예나 이제나 사람들 마음에는 한껏 넓고 깊으며 따뜻하고 애틋한 사랑이 스며들 틈바구니가 없습니다. 이런 틈바구니가 가부장제도이든 남녀 신분과 계급이든 마을과 고을이든 보수와 진보이든 시골과 도시이든 매한가지입니다.

 있는 그대로가 좋다면 무엇이 있는 그대로일까요. 이어온 대로 좋다면 무엇이 예부터 이어온 줄기일까요.

 2010년에 새옷을 입고 거듭 태어난 《충돌과 반동》이란 미식가한테 맛난 밥이 되듯 소장가치가 있어 집안에 모셔 둘 만한 사진책인지, 또는 2002년에는 사람들이 읽어내지 못한 깊은 얘기가 있어 2010년이 된 오늘날부터는 새롭게 받아들일 얘기를 건네려고 내놓은 사진책인지, 또는 사진쟁이 이갑철 님을 대가로 섬기고자 마련한 사진책인지, 또는 웅숭깊은 사진말이 없는 한국땅 사진밭에 새 기운을 불어넣고자 선보이는 사진책인지 궁금합니다. 어느 쪽이 되든 오늘을 살아가며 오늘을 사진에 담으려는 젊은 사진쟁이한테는 고맙고 드물며 반가울 사진말로 다가설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오늘을 살아가며 오늘을 사진으로 담는 젊은 사진쟁이가 몇 사람쯤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꼭 젊은 사진쟁이가 아니더라도 대가를 이루었다는 사진쟁이들한테 이 사진책 하나가 얼마나 말걸기로 파고들 만한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을 열 수 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열 만한 마음밭이 있느냐 없느냐부터 걱정할 판이 아닌가 싶습니다.


.. 나는 어슬렁거리며 작은 방의 프린트들을 뜯어보며 고생많았겠다고 생각했다. 프린트하기가 얼마나 어려웠을 것인지를 잘 알 수 있었다. “주로 어두운 상황에서 뭔가를 본 순간에 쏠려고, 그러나 될 수 있는 한 심도를 깊게 하면서도 셔터 속도를 빠르게 하려고 필름의 감도를 두 배나 네 배로 올려서 찍는다”고 이갑철은 나에게 말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흔들리고 초점이 나간다. 그래도 이갑철은 개의치 않는다. 왜냐하면 그 흔들림과 초점이 나간 흐릿함에 귀신들이 깃들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갑철 사진의 흔들림, 불안정한 구도, 자동 카메라를 잘못 쓴 것 같은 엇나간 초점 같은 것들은 처음부터 고의적인 의도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윌리엄 클라인의 경우에서처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을 과감하게 수용하다가 점차 귀신 잡는 기법으로 발전시켜 나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 기법은 머리의 얄미운 계산이 아니라 뛰는 가슴의 어쩔 수 없는 필연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  (130쪽/강운구 풀이말)


 2002년에 첫선을 보인 사진책 《충돌과 반동》에는 1990년대 사람들 삶자락이 이갑철 님 눈길로 담겨 있습니다. 이갑철 님은 이갑철 님 눈썰미로 사람들을 마주하고 들여다보았기에 《충돌과 반동》을 이루어 낼 수 있었는데, 이갑철 님한테 당신한테만 남다른 눈길이 있기 앞서, 먼저 이갑철 님한테 보여지며 마주한 사람들이 오랜 나날을 당신들 터전에서 고이 살아내 왔기 때문에 이갑철 님 남다른 눈매가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뿐 아니라 지난날 숱한 사진쟁이들이 흔히 놓치는 대목이란 바로 사진에 담기는 사람들 삶자락이 거쳐 온 발자국 하나하나입니다. 옛날 사람이란 없고 오늘날 사람 또한 없습니다. 옛날 모습이란 따로 없고 오늘날 모습 또한 따로 없습니다. 옛날 결하고 오늘날 결은 있으나, 이 또한 사람들이 서로 복닥이거나 부대끼면서 이루어 내는 삶을 돌아본다면 언제 적 모습이니 어쩌니 하는 갈래 나눔이란 덧없습니다. 농사짓는 사람은 그대로 농사짓고, 낫질하는 사람은 똑같이 낫질하고, 절집 다니는 사람은 그예 절집을 다니고, 성모상에 절하는 사람은 언제나처럼 성모상에 절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이러한 기나길며 고스란히 이어지는 결 가운데 어느 하나를 사진쟁이 남다른 눈으로 잘라내거나 옮겨내거나 이어받아 한 가지 모습으로 선보이는 손짓입니다.

 함부로 잘라낼 수 없는 사람들 삶입니다. 섣불리 따지거나 잴 수 없는 사람들 마음입니다. 흔들리는 모습으로 찍혔다 한들 사람들 삶입니다. 조금 어둡게 찍히든 더욱 밝게 찍히든 사람들 삶입니다. 사람들 삶을 어떻게 마주하느냐를 느껴야 할 사진찍기이고, 사람들 삶을 나 스스로 어떻게 맺고 사귀고 다가서며 스며들며 어우러지는가를 느껴야 할 사진읽기입니다.

 어떤 사진기를 쓰든, 어떤 필름을 쓰든, 어떤 디지털 장비를 쓰든, 어느 사진감을 붙잡든, 어느 갈래 사진길을 걷든 더 낫거나 덜 떨어지지 않습니다. 바라보는 눈길보다 바라보는 눈길에 서린 삶을 느낄 노릇입니다. 사진에 담길 사람들 삶을 헤아리는 마음결만큼 내 사진기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나 자연 터전이나 물건들이 바로 나와 내 사진기를 어떻게 느끼며 마주하고 있느냐를 나란히 곰삭일 노릇입니다.

 그나저나, 2010년판 《충돌과 반동》은 곱게 여민 옷자락에 정갈하고 말끔하여 멋스럽지만, 책값 7만 원이란 지나치게 짐스럽습니다. 책꽂이에 박아 놓을 사진책이 아니라 한다면 좀더 단출하고 자그마한 그릇으로 여미어 한결 수수하며 너른 이야기자리가 되도록 매만질 때에 바야흐로 푸진 사진결이 빛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7만 원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으나 7만 원으로 이 사진책을 두어 권 장만할 수 있도록 여밀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을 지울 길 없습니다. (4343.5.1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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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야기 - 사진이 우리에게 남긴 것들
전민조 엮음 / 눈빛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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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꾸몄다고 다 책이 되지 않는다
 [다들 잘 모르는 사진책 1] 전민조 엮음, 《사진 이야기》(눈빛,2007)



 사진쟁이 전민조 님이 올 2010년 5월 19일부터 새로운 사진잔치를 엽니다. 이번 사진잔치는 〈담배 피우는 사연〉이라는 이름을 내겁니다. 나이가 들어 저절로 신문사 사진기자 일을 그만둔 뒤로 해마다 다른 사진감을 선보이며 사진잔치를 열고 있으신데, 여섯 해째 꾸준히 마련하는 새로운 사진잔치를 하나씩 들여다볼 때마다 새삼스럽게 놀랍고 반갑습니다. 전민조 님은 ‘새 사진감을 찾아 사진을 만드는’ 분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바쁜 틈을 쪼개어 ‘당신한테 가장 아름답고 좋을 사진을 찍어서 갈무리한’ 끝에 이렇게 해마다 당신 사진곳간에서 알찬 보배를 하나씩 꺼내어 우리들한테 선물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진쟁이들은 ‘무언가 톡톡 튀거나 남다르거나 뜻깊을 사진감’을 찾으려고 애씁니다. 괜찮다 싶은 사진감이 나오면 몇 해에 걸쳐 신나게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고는 사진잔치를 한 번 열거나 사진책을 하나 내놓고는 이 사진감 또한 슬며시 내려놓습니다. 꾸준히 이어가며 당신 마음밭을 일구는 사진찍기가 아니라 ‘작품 만들기’에 지나지 않는 사진찍기입니다.

 전민조 님은 지난 2007년에 엮은 책 《사진 이야기》에서 “셔터만 누른다고 모두 작품사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카메라는 정직하다. 벽에 걸어 놓기 좋은 아름다운 사진만 찾는 사람들, 또 그런 사진만 찍는 사람들이 많으면 사진의 발전은 어둡다(머리말).”고 이야기합니다. 사진기 단추를 누른다고 모두 사진이 되지 않으나, 사진기 단추를 누르면 모두 사진이 됩니다. 찍은 사진을 그러모아 책을 묶는다고 모두 사진책이라 할 수 없으나, 찍은 사진을 그러모으면 모두 사진책이기도 합니다. 마음을 쏟아 아끼는 사이가 모두 사랑하는 사이라 할 수 없으나, 마음을 쏟아 아끼는 사이란 모두 사랑하는 사이일 때하고 매한가지인데, 이 대목을 곱다시 헤아리는 사진쟁이는 퍽 드뭅니다. 전민조 님이 “카메라는 정직하다”고 읊은 이야기를 속깊이 읽어내는 사진쟁이란 몇 안 됩니다. 사진을 찍는다고 모두 사진쟁이는 아니나 사진을 찍으니 모두 사진쟁이요, 사진기는 있는 그대로 우리 삶을 종이에 담아내기는 하나 사진기는 있는 그대로 우리 삶을 종이에 담아내지 않기도 한데, 이를 우리들 가운데 몇몇이나 곱씹고 있으려나요.

 《사진 이야기》라는 사진책은 사진일을 하거나 사진밭에 몸담은 사람들이 쓴 글에서 ‘사진을 읽는’ 고갱이가 되는 넋을 담은 글을 간추려서 묶었습니다. 1994년에 중앙일보 사진기자였던 오동명 님은 대낮에 술에 절어 있는 전두환 씨를 사진으로 찍던 일을 되돌아보며, 전두환 씨가 당신을 바라보며 “필름 아껴 쓰라우” 하고 큰소리를 쳤다는 이야기를 사진과 글로 남겨 놓습니다. 월간조선에서 사진팀장을 하던 이오봉 님은 당신 후배들한테 “취재현장에서 예의를 갖춘 사진기자라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전몽각 님은 “아이들은 우리 부부에게 자랑이요, 기쁨이었다”고 말하면서 당신 아이를 사진으로 담은 까닭을 밝히고, 구와바라 시세이 님은 “만일 한국이 남태평양의 산호초로 둘러싸인 평화로운 섬나라였다면 굳이 내가 취재하고자 마음먹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합니다. 얼마 앞서 《황천의 개》라는 사진책이 옮겨진 후지와라 신야 님 1993년판 《인도방랑》이라는 사진책에는 “보잘것없는 여행을 하고 있을 때는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만난다”는 말마디가 적혀 있고, 1926년에 태어나 1967년에 《포토그라피》라는 잡지에 글을 쓴 조중 님은 “사진이 예술이냐 하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왜 찍었느냐에 따라 분간될 성질의 것이며, 한 장의 사진이 예술사진이냐 하는 것은 그 사진에 담겨 있는 내용이 문제될 것이다” 하는 생각을 펼칩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삶을 꾸리며 다 다른 사진을 찍는 한편 다 다르게 사진을 바라봅니다. 《사진 이야기》라는 책에서는 백 사람이면 백 가지 사진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보여주고, 백 사람으로 백 가지뿐 아니라 즈믄 가지 이야기를 엮을 수 있음을 일깨웁니다. 사람에 따라 다른 삶이니 사람에 따라 다른 사진이거든요. 사람에 따라 다른 눈길이니 사람에 따라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리하여,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모양으로 사진뿐 아니라 글이나 그림을 일굽니다. 다 다른 이야기가 다 다른 아름다움과 눈물웃음을 자아내면서 다 다른 문화나 예술로 자리매깁니다.

 다 다른 자리에 있으면서 다 다른 내 목숨이요 넋임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어슷비슷하거나 그냥저냥 ‘벽에 걸어 둘 만한’ 작품만 태어납니다. 이래저래 ‘꽤 볼 만한 사진책’이 태어나거나 ‘세계 사진 역사’에 이름 하나 걸칠 작품이 나타날 뿐입니다. 그렇지만 정작 아름다운 사진이 되지는 않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사진이란 참으로 아름다운 삶에서 비롯하고, 참으로 아름다운 삶이란 참으로 아름다운 넋을 보듬는 가운데 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이란 사진기 단추를 누르며 일구는 문화이며 예술입니다. 글이란 연필을 들어 일구는 문화이며 예술입니다. 그림이란 붓을 들어 일구는 문화이며 예술입니다. 그러니까, 살림이란 걸레 칼 도마 비누 따위를 들어 일구는 문화이며 예술이겠지요. 아이 하나란 어버이 손길과 마음길로 보듬으며 일구는 고운 목숨이면서 스스로 문화이며 예술일 테지요. 자연이란 풀과 나무와 짐승들이 골고루 어우러지면서 스스로 이루는 문화이며 예술이고요.

 사진이든 글이든 그림이든 바로 우리 살림과 우리 목숨과 우리 자연을 어루만지는 가운데 샘솟는 문화이자 예술입니다. 《사진 이야기》는 우리들 누구나 다 알고 있으나 제대로 알려 하지 않는 대목을 건드리는 작은 사진책입니다. (4343.4.30.쇠.ㅎㄲㅅㄱ)


― 사진 이야기 (전민조 엮음,눈빛 펴냄,2007.8.20 /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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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의 살림집 - 근대 이후 서민들의 살림집 이야기
노익상 / 청어람미디어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살갑고 고운 사람들 살림집과 어깨동무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16] 노익상, 《가난한 이의 살림집》



- 책이름 : 가난한 이의 살림집
- 글ㆍ사진 : 노익상
- 펴낸곳 : 청어람미디어 (2010.1.20.)
- 책값 : 18000원


 (1) 가난한 이들 살림동네


 가난한 이들이 살아가는 터전은 언제나 사진쟁이와 글쟁이와 그림쟁이 들한테 ‘좋은 취재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가멸찬 이들이 살아가는 터전이 사진감이 되거나 글감이 되거나 그림감이 된 적은 거의 못 보았습니다. 이를테면, 벌써 열 몇 해가 지난 이야기인데 예전에 대통령 뽑는 자리에 나왔던 이회창 님이 살던 서울 가회동 달삯 2000만 원짜리 빌라를 두고 사진감이나 글감이나 그림감으로 삼는 문화예술쟁이는 보지 못했습니다. 수십억 원에 이른다는 아파트 사진을 찍으러 다니거나 수십억 원까지는 아니어도 몇 억짜리 아파트를 골골샅샅 살피며 사진을 찍는다든지 하는 사람 또한 못 보았습니다. 아파트 발자취를 다룬 학술책이 더러 나오기는 했으나 겉보기로 돌아보는 논문일 뿐, 어떤 이야기를 뽑아내거나 얻어내는 곳으로 삼은 적은 아직 없습니다. 다만, 이름난 맛집이나 멋집이라는 틀거리로 다루기는 합니다. 서울 홍대라느니 테헤란길이라느니 명동길이라느니 하면서 도심지 사람 북적이는 길거리를 다루는 이야기는 꽤 많습니다.

 가난한 이들이 살아가는 터전치고 ㅅㅋ을 달거나 ㅋㅅ를 놓으면서 ‘무인경비 시스템’을 갖추는 데란 없습니다. 까치발을 하지 않아도 집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기 일쑤요, 가난한 이들 골목동네에서는 속옷 빨래조차 골목 담벼락에 줄을 드리워 해바라기를 하기 마련입니다. 아무 아파트나 들어가 사진을 찍으려 하면 이내 지킴이 할배가 달려와 “당신 뭐 하는 사람이요?” 하고 팔뚝을 잡아끌겠지요. 중국에서 사진을 함부로 찍다가는 공안한테 붙잡힌다고 하는데, 중국이 아닌 한국땅 아파트마을에서도 사진을 함부로 찍다가는 아파트 지킴이한테 붙들려 갑니다. 그러나 골목동네를 다니며 사진을 찍는 이들 가운데 골목사람한테 붙들려 갔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란 없습니다. 집살림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가난한 이들 살림동네요, 사진을 찍는 사람들한테 속옷 고쟁이까지 송두리째 내보이는 가난한 이들 살림집입니다.

 가난한 이들은 스스로 제 살림살이를 사진으로 담기 어렵습니다. 먼저 느긋하게 사진을 찍을 겨를이 없습니다. 다음으로 비싼 사진기나 장비를 장만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서 뽑을 돈이 없습니다. 굳이 제 살림동네와 살림집을 사진으로 찍어야 할 까닭을 느끼지 않습니다.

 가난한 이들 살림동네나 살림집을 사진으로 찍고 글로 다루며 그림으로 그려서 보이는 사람은 언제나 ‘가난하지 않은 동네에서 가난하지 않은 살림을 꾸리는’ 이들입니다. 똑딱이 사진기이든 값싼 캠코더이든 매한가지입니다. 이런 사진장비를 갖추면서 살아가는 골목동네 사람은 드뭅니다.

 가난, 가난, 가난 ……이라는 말을 되풀이하자니 더없이 멋쩍습니다만, 가난이란 잘못이 아니고 허물이 아닙니다. 부끄러움이 아니고 창피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끼리 딱히 가난이라는 낱말을 들먹이는 일이 없습니다. 그저 다들 똑같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꾸자꾸 가난을 들먹이면서 ‘가난하다는 골목동네 사람들 삶’을 일컫거나 빗대곤 합니다.

 디제이디오시 노래 〈삐걱삐걱〉을 들으면 “몇 십 억이 애들 껌값인가요. 그중에 백만 원만 우리 줄 생각 없나요”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가난이 어쩌느니 저쩌느니 하기 앞서 돈이 있는 이들이 당신들 수십 수백 수천 억 원에서 백만 원을 덜어 나누어 주면 될 노릇입니다. 보증금 30만 원 달삯 6만 5천 원에 살아가는 이들이 있고, 장기방 여인숙에서 보증금 없이 15만 원에 살아가는 이들한테는 한 해 백만 원이라는 돈만 하여도 아주 어마어마합니다. 도시미화이니 관광개발이니 하면서 도심지에서 바닥돌을 갈고 무엇무엇을 하느라 수십 수백 억 원을 아주 껌값처럼 쓰고 있는데, 가난한 사람들 달삯을 얼마쯤 보태어 준다면 도시는 저절로 깨끗해지며 도시에서 가 볼 만한 곳은 자연스레 늘어납니다.

 그나저나, 사람들은 도시에서 왜 아파트를 사진감으로 삼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같은 아파트일지라도 5층짜리 옛날 아파트는 아파트로 치지 않는데다가 꾀죄죄하다고 보는 까닭이 궁금합니다. 아파트숲 사람들이라고 해서 ‘살가운 이야기’가 없을 턱이 없는데, 왜 아파트숲에서 조곤조곤 올망졸망 오순도순 살 섞고 부대끼는 이야기를 엮어내지 못하는지 궁금합니다. 왜 당신들 삶자리에서는 사진과 글과 그림을 엮어내지 못하면서, 마치 인도 순례를 하고 티벳 순례를 하듯이 ‘가난한 사람들 골목동네’로 출사나 취재를 나오려 하는지 궁금합니다. 누구나 저마다 살고 있는 터전을 아끼고 사랑할 노릇인데, 시설 좋고 문화마당 많다는 아파트와 도심지 한복판에서 굳이 도시 변두리 골목길로 다리품을 팔면서 취재를 다니고 출사를 나오는 까닭이 궁금합니다. 산이 좋으면 산에서 살면 될 텐데, 산에서 안 살면서 산으로 자가용을 몰고 찾아가거나 기차나 버스를 타고 찾아가는 까닭이 궁금합니다. 저마다 좋아하는 곳에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구나 사랑스러운 곳에서 뿌리를 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연이나 전원 풍경이 아름답다고 느껴 자연이나 전원 풍경을 사진으로 담는다면, 아파트에서 살 노릇이 아니라 자연이나 전원에서 살 노릇입니다. 자연이나 전원에서 살아가면서 자연이나 전원을 사진으로 담을 노릇입니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사진이 태어날 테니까요. 제주 오름을 사진으로 담으려고 김영갑 님이 스스로 제주 오름으로 녹아들면서 이곳에서 살아내는 가운데 사진을 담았듯이 말입니다.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담아서 보여준다든지 골목동네 이야기를 글로 써서 나눈다든지 골목동네 터전을 그림으로 그려 펼친다든지 하는 사람을 마주할 때마다 썩 반갑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골목동네 사람(정주민)이 아닌 구경꾼(관광객)처럼 어쩌다 한두 번 찾아와 한두 시간 후다닥 사진 찍고 낼름 내빼기 때문입니다. 자연 사진을 찍더라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고스란히 담는 한편, 새벽 아침 낮 저녁 밤을 고루 담아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 살림동네나 살림집인 골목길을 사진으로 담자고 한다면, 이때에도 마땅히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고스란히 담는 한편, 새벽 아침 낮 저녁 밤을 골고루 담아야 합니다. 맑은 날 흐린 날 비오는 날 눈오는 날 안개 낀 날을 찬찬히 담아야 합니다. 안개 서린 소나무숲만 그윽하겠습니까. 바다안개 낀 인천골목길 또한 그윽합니다.

 스튜디오에서 만듦사진을 일구거나 모델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이네들 사진쟁이 살림살이하고 스튜디오 얼거리하고 한동아리입니다. 스스로 만듦사진이나 모델사진 얼거리와 같은 삶을 꾸립니다. 다큐사진을 한다고 말하려면 스스로 다큐사진 주제가 되는 터전에서 이곳 사람들하고 복닥이며 살아가야 합니다. 살아가는 가운데 나오는 사진이고, 살아가기 때문에 찍는 사진이며, 살아가는 그대로 보여주거나 나누는 사진입니다.

 가난한 사람 살림집을 사진으로 담고자 한다면 스스로 가난한 사람이어야 하고 가난한 동네에서 가난한 살림집을 얻어 가난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가난하게 일하면서 가난하게 나누는 매무새여야 합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사진이 아니라, 땅에서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면서 찍는 다큐사진입니다. 먼발치에서 망원렌즈로 훔쳐보는 사진이 아니라, 곁에서 손 마주잡으면서 담는 다큐사진입니다. 함께 웃고 함께 울면서 살아가는 모양새가 고스란히 스며드는 다큐사진입니다. 같이 일하고 같이 놀면서 어우러지는 결이 꾸밈없이 녹아드는 다큐사진입니다.


 (2) 노익상 님과 다큐사진책 《가난한 이의 살림집》


 다큐멘터리 사진쟁이로 일하는 노익상 님 책 《가난한 이의 살림집》을 읽었습니다. 책 머리말에서 노익상 님은 “물론 이런 집들에 대한 연구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큰 회사의 도움을 받아 낸 《한국의 주거 민속지》나 민속박물관에서 학예연구로 조사한 민가의 기초조사들이 있다. 이 책들은 편중된 연구와 발표에서 그나마 가뭄에 단비처럼 여겨지는 귀한 연구서들이었다. 그러나 누구나 돌려 읽으며 무릎을 치고 감동하기에는 지나치게 어렵고 학술적이었다. 우리 이웃들에게 섞여 들어가 가난한 이들의 안타까웠던 현실을 함께 공감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는 게 아쉬움이었다(8쪽).”고 밝힙니다. 가난한 사람들 눈높이에서 가난한 사람들 살림집 삶을 이야기 한 자락으로 길어올리는 사람들이 없음을 안타까워 하면서 《가난한 이의 살림집》을 썼다고 합니다.

 노익상 님 말마따나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여느 살림집을 학문으로 다룬 책은 몹시 드뭅니다. 나라나 기관이나 큰 회사에서 돈을 받아 학술논문을 내는 일은 더러 있기는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 살림살이를 요모조모 깊이 살피고 어깨동무하며 ‘이웃사촌’으로서 이야기를 엮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한 걸음 나아가, 스스로 가난한 사람이 되어 가난한 살림동네에서 살아가는 가운데 당신 삶을 알알이 담아내는 사람은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


.. 이는 밀쳐내고, 가르며, 하대를 일삼았던 오래된 상처였다. 쌀밥이 아닌 조 따위로 제사상을 차리는 ‘천한 것’들이 감히 흉내낼 수 없었다는 말에 이르러선, 금수강산 맑은 물이 새롭게 보이던 순간이었다. (농악은) 쌀밥 농사에서만 가능한 놀이였고 잔치였던 셈이었다. 조나 수수로 부꾸미는 만들 수 있을지 몰라도 백설기, 송편과 같은 떡을 만들지 못하는 물리적 한계는 이를 준엄히 증명해 주었다. 그래서 전통마을에서 치루는 세시행사는 밭농사를 중심에 두고 벌이는 게 아니라, 바로 논농사를 맘에 두고 즐기는 전통마을만의, 그 공동체에 순응하는 사람들만의 주류 행사였음을 그들을 만나 가면서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  (74쪽)


 《가난한 이의 살림집》이라는 책은 사진쟁이 노익상 님이 만난 가난한 사람들 살림집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러나 노익상 님이 만난 사람들 살림집 이야기를 담았다기보다는 노익상 님 스스로 살아내지 못했으며 살아갈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다가 마주해 본 적이 없던 삶자락을 귀동냥으로 얻어들으면서 엮은 책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노익상 님은 틀림없이 가난한 살림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둘 만나고 여러 날 함께 어울리면서 바야흐로 깨닫거나 ‘처음으로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인’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런데 이들 가난한 사람들을 가난한 살림집에서 마주하기 앞서까지는 이들이 이런 곳에서 이렇게 살아가는지를 돌아보지 못합니다. 이야기를 한 번 듣고 두 번 듣고 세 번 네 번 잇달아 들은 끝에 아주 조금씩 알아듣습니다. 한 해가 흐르고 두 해가 지나며 세 해 네 해가 흐른 끝에 비로소 살짝 알아차립니다.

 책을 읽는 동안 자꾸 끊깁니다. 내처 읽지 못하고 자주 덮습니다. 노익상 님은 나라안에 손꼽히는 빼어난 다큐멘터리 사진쟁이입니다만, 이 책 《가난한 이의 살림집》 하나는 덜 여물었고 덜 무르익었으며 덜 고개숙였다고 느낍니다. 스스로 가난하지 않으면서 가난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은 만큼,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으로서는 더없이 마땅한 이야기를 너무 길게 적바림하는데다가 때로는 같은 말을 여러 차례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노익상 님 또한 어쩔 수 없는 구경하는 사진쟁이일까요. 노익상 님한테 길손이나 사진손 같은 자리가 아닌 동네이웃이나 마을이웃 같은 자리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일까요.


.. 교과서에 실린 이름 자체도 철수야! 영희야! 하고 부르며 논다는 사실이, 산간의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아이들에겐 제 스스로를 비하시키는 논리밖에는 되지 못했다는 말도 덧붙이기도 했다. 더욱이 당시 외딴집이나 화전촌의 아이들에겐 ‘논다’는 말이 당초부터 존재하지 않을 만큼, 제 아비어미를 도와야 겨우 호구를 지탱하는 절박한 노동의 현실이었음을 감안할 때, ‘철수야 영희야’는 이러나저러나 아이들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아픈 바늘 끝이었던 것이다 ..  (126쪽)


 저는 중학생이 되어 신문을 읽기 앞서까지는 제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가 그토록 찢어지게 가난한 동네인 줄 몰랐습니다. 중학생 세 해를 거치고 고등학생 세 해를 거치는 동안 제 동무들 살림동네가 나라안에서 손꼽히도록 밑바닥 살림동네인 줄 몰랐습니다. 다른 도시 사람들이 인천 만석동과 화수동을 그토록 가난뱅이 동네로 바라보는 줄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살며 처음 알았고, 인천사람 스스로 인천 골목동네를 제대로 모를 뿐더러, 인천 바깥사람은 인천 골목동네를 가엾고 딱한 눈길로 내려다보고 있음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 제가 다닌 ㅅ국민학교는 이웃한 ㅅ국민학교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 많이 몰린다는 소리를 익히 들었습니다. 가까이 있는 두 ㅅ국민학교이지만 학급 숫자이며 살아가는 집이며 아이들 부모 신분이며 하늘땅처럼 벌어져 있었습니다.

 인천 만석동과 화수동에는 만석부두와 화수부두 품팔이 일꾼들 살림집이 ‘게딱지처럼 촘촘하게’ 붙어 있습니다. 노동운동 한다는 사람은 모두 아는 동일방직이라는 공장은 인천 만석동에 있습니다. 여공한테 똥물을 뒤집어씌운 자리는 골목동네 사람들 살아가는 동네 한복판입니다. 여공들은 저한테 동네 누나이거나 이모이거나 고모인 분들이요, 제 동무한테도 동네 누나이거나 이모이거나 고모인 분들입니다. 불쌍하게 바라본다면 하염없이 불쌍할 테지만, 동네사람으로서 바라보기에는 불쌍하고 아니고가 아닌 그예 좋은 동무이고 이웃이고 누나이고 어머니이고 아주머니인 사람들입니다.


.. 만석동 막살이촌이나 여인숙 고을을 다녀 보면서도 든 생각이지만 하나같이 그 집과 방들은 어른이나 가족이 들어가 살았다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만큼 아이들 장난감 집처럼 오밀조밀 작고, 심지어 앙증맞기까지 했다. 그래서 지금 그림을 보면서도 아이들이 저 집에 들어가 숨기도 하고 논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더구나 볕이 들지 않아 꿉꿉하기만 한 좁고 어두운 골목길은, 아이들에겐 호기심 많은 미로로 비치기에 충분해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당장 편을 갈라 숨바꼭질하기에 좋고, 작고 여린 몸을 숨기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인다. 특히 그림에서처럼 허리를 구부려야 겨우 운신할 만큼 낮은 다락방을 보면 나는 벌써 가슴이 뛴다. 거기에 숨어 들어가 제 새가슴을 한껏 부풀리며 재미지게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이런 막살이집들이 현실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간이었으면 그이들이 처음 정착하여 일터로 나갔던 엄혹한 살림집은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현실적으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  (262쪽)


 《가난한 이의 살림집》이라는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여러모로 반갑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웠습니다. 가난이라는 잣대가 무엇일까 궁금했고 걱정스러웠습니다. 가난하면 못사는 살림인가 궁금했고 걱정스러웠으며, 가난하지 않으면서 슬프고 괴로운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살림집을 바라보는 눈매가 ‘가난인가 아닌가’이니 두려웠습니다. 그저 ‘여느 살림집’이요 ‘이웃 살림집’이며 ‘도시 골목 살림집’이나 ‘시골 고샅 살림집’으로 바라보면 넉넉하지 않았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느 살림집”이라 하거나 “살림집”이라고만 해도 넉넉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골목동네 살림집이든 이웃사람 살아가는 골목동네 살림집이든 누구네가 더 가난하거나 더 가멸차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언뜻 보기에도 마당 넓고 돈 많은 집이 있고, 설핏 보아도 루핑에 차바퀴를 얹어 비가림을 하는 집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집에서 살아가는 동네사람이고 동네이웃이며 골목사람이고 골목이웃입니다. 한결같은 이웃이고 똑같이 고운 목숨 꾸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두 해에 뚝딱 하고 해치우듯 엮은 《가난한 이의 살림집》이 아니라 한다면 이와 같은 대목을 곰곰이 살펴야 하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이 책에 실린 살림집 사진들은 거의 모두 ‘추운 겨울 추운 모습’인데, 가난한 이 살림집이든 가멸찬 이 살림집이든 이 땅에 찾아드는 철과 날씨에 따라 다 다른 살림새를 고이 담을 수 있어야 하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더욱이 만석동 쪽방골목에 나무 한 그루 없다는 대목에서는 쓴웃음이 납니다. 만석동 쪽방골목에 참말 나무 한 그루 없는지요? 이곳 골목이웃이 가꾸는 꽃그릇에서 피어나는 꽃과 푸성귀는 그토록 초라해 보이기만 하는지요? 바깥 구경꾼 눈에는 ‘처연’하거나 ‘병약’할는지 몰라도, 이 동네에서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푸른나무’요 ‘푸른잎’입니다.


.. 또 다른 그림은 가까이에 헐벗은 나무가 서 있고 그 뒤로 막살이집들이 그려져 있다. 잎 진 앙상한 나무는 묘하게 뒤편 집들과 어울리며 그래도 살아 있음을 처연히 내세우고 있다. 만석동에 그런 나무는 없었지만 벽에 그린 꽃과 나무는 여럿 보았다. 강한 원색 페인트로 그려 넣거나, 미장으로 마감한 담벼락에 쇠못으로 긁어 그린 것이었다. 추레하고 볼품없는 바탕에 빼어난 선과 점으로 이어나간 그림은, 어느새 큰 면이 되어 주변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 인천 만석동이나 서울 거여동 막살이촌을 다닐 때만 해도 관목으로 피는 꽃나무를 보기는 어려웠다. 물론 그때는 추운 겨울이어서 꽃을 볼 수는 없었지만 사람 하나 겨우 지날 수 있는 골목의 병약해 보였던 화초들과는 분명 다른 것이어서 우선 반가웠다 ..  (272, 283쪽)


 외주물집이든 미관주택이든 막살이집이든 하고 살림집 갈래를 나누는 뜻과 값이 없지 않습니다. 학자님들이 알뜰살뜰 나누어 놓지 못하는 살림집 갈래를 차근차근 살피면서 올바로 갈무리하는 일이란 무척 반갑고 고맙습니다. 그러나 가난하게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은 당신들 살림집을 이렇게 외주물집이라느니 미관주택이라느니 막살이집이라느니 하고 나눌는지요? 가난한 살림집 식구들 눈높이에서도 이렇게 나누는 살림집 갈래가 올바르다고 할 만하지요? ‘my sweet room’이라는 글씨를 떠서 커텐으로 삼기도 하는 골목사람들 막살이집이라면 그저 가난한 살림집이라는 틀에 뭉뚱그리거나 때려넣어도 괜찮은지요?


.. 하지만 철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그렇게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오래도록 이 땅에서 살며 사랑한 이들에게 그것은 정겹고 평화로운 풍경일 수 있으나, 가까운 일본이나 서구로 유학을 하거나 한 번이라도 구경을 해 본 이들에게 그것은 제법 성가신 풍경으로 비칠 수 있는 미개하고 낙후된 모습이었다 … 아이들이 자신이 처한 환경을 이기고 도심 속 문화와 생활로 섞여 드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게 비쳐진 일도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것은 도심에 살면서도 결코 합류할 수 없는 주변부적 삶이 얼마나 큰 고통으로 남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시민아파트는 체념 어린 미래가 익숙하게 녹아 있는 공간에 다름 아니었다. 이 또한 시민아파트가 지닌 본질을 잘 드러내는 부분이었는데, 우리 근현대사의 적나라한 자화상이었던 체념이, 가난한 이의 살림집 곳곳에 미치지 않은 곳은 없었다 ..  (290, 356쪽)


 날이면 날마다 시끄러운 기차와 전철 소리를 듣고 컸어도 우리들한테는 평화로운 터전이었고 보금자리였습니다. 공장에서 매연과 석탄가루와 쇳가루 따위가 끝없이 날려 빨래를 못 널게 할지라도 우리들한테는 좋은 삶터였고 둥지였습니다. 그 좁다는 골목길에서 공차기를 하고 공치기를 했습니다. 야구방망이 없어도 부러진 각목을 주워서 방망이로 삼고, 철길가 돌멩이로 공을 삼았습니다. 굴러다니는 우유곽에 돌 하나 넣어 공으로 여기며 공차기를 했고, 갖가지 돌치기와 돌놀이를 즐겼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아름답거나 싱그러운 지난날이거나 오늘날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난날은 지난날대로 아픔이 있는 가운데 기쁨이 있고, 오늘날은 오늘날대로 웃음이 있는 가운데 울음이 있습니다.

 여느 사람들 여느 살림집에는 빛과 그늘이 함께 있습니다. 여느 사람들 여느 삶터에는 웃음과 눈물이 나란히 있습니다. 여느 사람들 여느 살림동네에는 생채기와 주름살이 아롱져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한테는 우리 삶이고 우리 발자국이요 우리 이야기입니다. 집에 따로 뒷간이 없어 주인집 눈치를 보며 똥오줌을 누는 삯집 사람들 이야기가 있고, 주인집에조차 뒷간이 없고 동네에 공동뒷간이 있을 뿐이라 줄을 서서 아랫배를 누르며 견디어야 하는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가멸찬 이하고 같은 시간을 일해도 같은 일삯을 받지 못했을 뿐더러 가멸찬 이와 견주어 더 오래 힘겨이 일해도 훨씬 적은 일삯을 가까스로 받으며 목숨을 잇고 살림을 꾸리며 딸아들을 보듬었습니다. 이런 살림살이가 막살이집이든 외주물집이든 미관주택이든 무엇이든, 저마다 사랑스럽고 애틋하며 믿음직하고 눈물겨운 이야기입니다.

 아무쪼록 노익상 님 다음번 다큐사진에서는 우리 둘레 여느 사람들 여느 살림살이와 여느 이야기를 여느 자리에서 좀더 여느 사람다운 목소리와 결과 높낮이로 수수하게 들려줄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막살이집 식구들이 제 살림집과 살림동네에서 사진 한 장 찍으려 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어디에서 어느 때에 담을까를 한번 곰곰이 헤아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4343.4.1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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