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창비시선 452
정현우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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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1.18.

노래책시렁 395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정현우

 창비

 2021.1.15.



  어린이는 아직 말을 다 알지 않으니, 으레 틀리고 바로 고치고, 다시 어긋나다가 또 추스르면서 차근차근 마음을 읽고 배웁니다. 이와 달리 숱한 어른은 아직 말을 잘 알지 않으나, 도무지 말을 배우려는 마음을 안 일으키더군요. 우리가 쓰는 말은 한낱 소리이지 않습니다. 모든 말은 마음입니다. 말을 제대로 배우지 않는다면, 또 나이가 든 뒤로도 꾸준히 말을 익히지 않는다면, 내 마음도 네 마음도 우리 마음도 등돌리는 셈입니다.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처럼 ‘-에게·-한테’를 잘못 쓰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노래에 적는 말씨라서 넘어가도 되지 않습니다. 글쓴이가 놓치면 엮는이가 짚어서 알려줘야지요. “나는 천사한테 줍니”다. “나는 천사한테서 받습니”다. “나는 천사한테 갑니”다. “나는 저쪽에서 옵니”다. ‘가르치다·주다’는 ‘가다’이니 ‘-한테·-에게’를 붙입니다.‘배우다·받다’는 ‘오다’이니 ‘-서·-한테서’를 붙입니다. 아이들처럼 ‘틀린말’이어도 요조모조 재미나게 말놀이를 해보며 삶을 새롭게 볼 수 있습니다만, 따로 꾸러미로 여미는 이야기라면 말재주가 아니라 삶과 살림과 사랑을 차근차근 갈무리하고 갈피를 잡을 일이지 싶어요. 가는지 오는지 읽어야 노래를 부르지 않을까요?


ㅅㄴㄹ


꿈속의 잠을 벗겨내면 나무들의 흉터라고 부를 수 있겠다. 가슴이 숭숭 뚫린 몸의 껍질, 햇볕에 마른 주둥이, 바스락대는 몸을 줍는다. (꿈갈피/28쪽)


나의 아홉살은 얼음 감옥. / 쌀은 씻어도 묵은 냄새가 났다. // 엄마, 사람에게도 겨울잠이 있으면 좋겠어요. / 사람이 어는 점을 알고 싶어요. / 지루한 속도는 언제 떨어질까. (빙점/128쪽)


+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정현우, 창비, 2021)


인간은 기형의 바닷바람

→ 사람은 비틀린 바닷바람

→ 사람은 넝쿨진 바닷바람

10


바깥을 쌓아도 세워지지 않는 나의 성 안에서

→ 바깥을 쌓아도 서지 않는 이 울타리에서

→ 바깥을 쌓아도 세우지 못 하는 이 담에서

16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다

→ 나는 빛한테서 말을 배웠다

→ 나는 별한테서 말을 배웠다

18


일정하지만 오차가 난무하는 곳

→ 가지런하지만 마구 틀리는 곳

→ 고르지만 어긋나서 날뛰는 곳

21


두 눈은 울기 위해 만들어졌지

→ 두 눈은 울려고 있지

→ 두 눈은 울려고 생겼지

23


이팝나무 아래서 재채기를 하면

→ 이팝나무 밑에서 재채기를 하면

→ 이팝나무 곁에서 재채기를 하면

→ 이팝나무 둘레서 재채기를 하면

27


읽히지 않는 당신을 붙들고, 나는 틈과 틈 사이를 다닌다

→ 읽히지 않는 너를 붙들고, 나는 틈과 틈을 다닌다

→ 읽히지 않는 자네를 붙들고, 나는 틈새를 다닌다

40


물고기의 귀는 어디에 달린 걸까

→ 헤엄이는 귀가 어디 달렸을까

61


거미의 귀는 바람이 가진 선 속에 있을 것

→ 거미는 귀가 바람금에 있다

→ 거미는 귀가 바람줄에 있다

61


벌목된 숲, 식물들이 새들의 발목을 움켜잡고 있었다

→ 베어낸 숲, 풀이 새발목을 움켜잡는다

69


과육을 도려내듯

→ 살점을 도려내듯

→ 살을 도려내듯

107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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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달이 떠오릅니다 삶창시선 70
박영선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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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1.10.

노래책시렁 390


《분홍달이 떠오릅니다》

 박영선

 삶창

 2023.4.13.



  열네 살로 접어든 작은아이는 자꾸 ‘어려운 말’을 쓰려고 합니다. 작은아이는 낱말책을 주루룩 뒤지면서 “국립국어원 및 국어학자 낱말책이 뜬금없이 어렵게 적은 뜻풀이”를 달달 외우려 합니다. 이 아이가 왜 이러나 하고 여러 해 지켜보며 이따금 “얘야, 네 입에서 흐르는 소리는 ‘네 말’이 아니야. 왜 네 마음을 네 말로 그리지 않고, 남이 적어 놓은 대로 외워서 너를 크게 세우려고 하니?” 하고 짚어 줍니다. 《분홍달이 떠오릅니다》를 읽는데, 무늬는 한글이되 영 우리말일 수 없는 글씨가 주루룩 흐르는구나 하고 느껴요. 우리는 설마 입으로도 이렇게 말을 할까요? 입으로는 이렇게 말을 않지만, 글로는 이렇게 써야 한다고 여기나요? “작은 구김들이 소란스럽다”는 오직 ‘시문학’에서만 나옵니다. “두드림은 경쾌하다”라든지 ‘비상구·잡초’ 같은 한자말도 으레 ‘시문학’에서 튀어나옵니다. 길을 바라보지 않으니, 풀을 마주하지 않으니, 나를 나로서 헤아리지 않으니, 자꾸 덩치만 키우려는 말잔치에 사로잡혀요. 삶을 여는 길로 글을 가다듬어서 펴려고 할 적에는, 겉무늬가 아니라 속살을 가꾸어 열매를 맺고 씨앗을 심을 노릇일 텐데요. “말에 흐르는 빛과 별과 씨앗”을 읽고 잇고 이곳에 있기에 임(님)입니다.


ㅅㄴㄹ


셔츠를 펼치자 / 작은 구김들이 소란스럽다 / 천천히 뜨거운 기운으로 밀고 나간다 / 누르고 지나간 자리마다 / 반듯하게 평등해진다 (다림질/34쪽)


발목까지 젖는다 / 젖은 신발은 두렵지 않아 // 돌아가거나 / 떠나거나 / 빗소리는 진행 중이다 (빗소리/45쪽)


지하철, 거울로 얼굴을 반쯤 가린 여인이 / 화장을 한다 / 콤팩트의 두드림은 경쾌하다 / 길다란 펜을 꺼낸 그녀 / 눈 위에 갈매기 한 쌍을 날렵하게 그린다 (눈―화장하는 여인/86쪽)


+


《분홍달이 떠오릅니다》(박영선, 삶창, 2023)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 모두 고맙다

5쪽


마른 풀 위로 사과가 떨어지고

→ 마른풀에 능금이 떨어지고

12쪽


쓸쓸한 나의 노래는 늘 낮은음자리

→ 쓸쓸한 내 노래는 늘 낮은자리

12쪽


나에겐 두 개의 심장이 있어요

→ 나한텐 가슴이 둘 있어요

→ 나는 두 가슴이 있어요

14쪽


소리 없이 떨어지는 잎들은

→ 소리 없이 떨어지는 잎은

18쪽


낡은 비상구만 즐비한 이곳에서

→ 낡은 뒷길만 가득한 이곳에서

→ 낡은 구멍만 넘치는 이곳에서

20쪽


잡초처럼 자라나 녹슨 꽃을 피웠다

→ 들풀처럼 자라나 고린 꽃을 피웠다

→ 수수하게 자라나 낡은 꽃을 피웠다

21쪽


셔츠를 펼치자 작은 구김들이 소란스럽다

→ 윗도리를 펼치자 작은 구김이 시끄럽다

→ 적삼을 펼치자 작은 구김이 시끌거린다

34쪽


반듯하게 평등해진다

→ 반듯하고 나란하다

34쪽


빗소리는 진행 중이다

→ 빗소리는 흐른다

→ 빗소리는 이어간다

45쪽


마트를 다녀온 그의 검은 봉지 안에서 커다란 쏘세지가

→ 가게를 다녀온 그이 검은 자루에 커다란 고기떡이

54


타오른다는 것은 발화점을 넘어섰다는 것

→ 타오른다면 불눈을 넘어섰다는 뜻

→ 타오를 때는 타는길을 넘어섰다는 말

59


콤팩트의 두드림은 경쾌하다

→ 꽃가루를 가볍게 두드린다

→ 꽃물가루를 톡톡 두드린다

8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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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자격을 얻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557
이혜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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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1.10.

노래책시렁 391


《빛의 자격을 얻어》

 이혜미

 문학과지성사

 2021.8.24.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 아이들한테 속삭인다고 여기면서 말을 한다면, 제 손과 입과 눈과 귀에서 피어나는 말은 반짝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 아이들이 속살거리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말을 들으면, 온몸과 온마음으로 스미는 말이 춤춥니다. ‘저분’이라고 여길 적하고, ‘저놈’이라고 여길 적에는, 우리가 스스로 펴는 말이나 듣는 말이 다릅니다. “저 꽃”이라고 볼 적하고, “저 서울”이라고 볼 적에도, 우리가 스스로 나누는 말이 달라요. 《빛의 자격을 얻어》는 어떤 마음인 채 어떤 말을 나누려는 글자락일까요? 굳이 ‘시’를 쓰지 않는다면, 언제나 ‘말’을 나누는 마음으로 문득 몇 마디를 추스른다면, 애써 ‘문학’을 하지 않는다면, 오늘도 어제도 모레도 서로서로 노래로 피어나는 사랑을 누린다면, 글자락이 확 달랐으리라 생각합니다. 글은 언제나 말을 담고, 말은 언제나 마음을 담습니다. 마음은 언제나 삶을 담고, 넋은 언제나 우리가 온몸으로 삶을 누리도록 북돋웁니다. 이 얼거리를 헤아린다면, 말글이 늘 반짝여요. 이 얼거리를 안 헤아리면, 말글을 꾸미다가 헤매요. 말빛을 보기에 마음빛을 봅니다. 글빛을 읽기에 삶빛을 읽어요. 턱(자격)을 치워야 바람이 드나듭니다. 


ㅅㄴㄹ


가장 아름다울 때 가장 슬픈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오늘은 달무리를 떠나왔고 아침에 못다 쓴 눈보라에 집중했다. 교차하던 밤과 낮. 기만과 거짓. 목을 다정하게 조여오던 손에게 더없이 친절해지던. 밤의 가장자리로 엎드리며 나는 순한 목소리가 되고 싶었다. (삭흔/35쪽)


커피를 마실 때 불운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 검은 것을 만지며 먼 곳을 생각하지 않는다 / 차가운 물을 마실 때는 식물 아닌 것을 떠올린다 / 무늬가 화려한 옷을 입고 잠들지 않는다 (드림캐처/52쪽)


+


《빛의 자격을 얻어》(이혜미, 문학과지성사, 2021)


수평선은 누군가 쓰다 펼쳐둔 일기장 같아

→ 물금은 누가 쓰다 펼쳐둔 하루글 같아

→ 물끝금은 누가 쓰다 펼쳐둔 날적이 같아

9쪽


나는 당신이 내버렸던 과실

→ 나는 그대가 내버린 과일

→ 나는 네가 내버린 알

12쪽


배달집 전단지들이 점점 화려해지는 이유를

→ 나름집 꾸러미가 자꾸 반짝거리는 뜻을

→ 돌림집 알림쪽이 더 무지갯빛인 까닭을

→ 날개집 쪽갈피가 날로 반들거리는데

15쪽


저기압골이 굵어지는 새벽 출항이다

→ 낮바람골이 굵은 새벽에 떠난다

→ 바람골이 굵은 새벽에 떠난다

22쪽


오늘을 감당하느라 열 손가락이 녹아들던 우기

→ 오늘을 메느라 열 손가락이 녹아들던 비날

→ 오늘을 지느라 열 손가락이 녹아들던 비철

24쪽


투입구로 불쑥 들어오던 손

→ 밑으로 불쑥 들어오던 손

→ 구멍으로 불쑥 들어오던 손

→ 굿으로 불쑥 들어오던 손

→ 틈으로 불쑥 들어오던 손

27쪽


비참을 껴안으며 조개는 날아오르고

→ 슬픔을 껴안으며 조개는 날아오르고

→ 구렁을 껴안으며 조개는 날아오르고

→ 눈물을 껴안으며 조개는 날아오르고

→ 가난을 껴안으며 조개는 날아오르고

30쪽


겨울이 복용한 가루약이 서서히 헐거워지는 새벽입니다

→ 겨울에 넣은 가루가 천천히 헐거워가는 새벽입니다

38쪽


멀어지는 중이니까

→ 멀어지니까

→ 멀리 가니까

43쪽


불투명한 스노우볼처럼

→ 흐릿한 눈꽃공처럼

→ 보얀 눈덩이처럼

46쪽


간이침대는 창백하게 젖어듭니다

→ 접는자리는 허옇게 젖어듭니다

→ 곁자리는 파리하게 젖어듭니다

70쪽


멀리서 모국어를 데려와 선물하던 밤

→ 멀리서 우리말을 데려와 베풀던 밤

→ 멀리서 엄마말을 데려와 건네던 밤

→ 멀리서 겨레말을 데려와 읊던 밤

72쪽


너는 몇 층의 눈을 가졌을까

→ 네 눈은 몇 겹일까

→ 너는 눈이 몇 켜일까

106쪽


두꺼운 이불 아래에서 서로를 만지며

→ 두꺼운 이불 밑에서 서로를 만지며

→ 두꺼운 이불을 덮고 서로를 만지며

11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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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돌멩이 오리 - 2020 화이트 레이븐즈 선정도서 문학동네 동시집 77
이안 지음, 정진호 그림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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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어린이문학비평 . 시읽기 2023.12.30.

노래책시렁 387


《오리 돌멩이 오리》

 이안 글

 정진호 그림

 문학동네

 2020.2.20.



  어린이한테 아무 밥이나 먹이는 어른은 없습니다. 아무 옷이나 입히는 어른도 없습니다. 아이 몸을 망가뜨리는 밥이라든지, 아이 살결에 나쁜 천이나 실로 지은 옷을 입힌다면 어른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린이 마음밭을 망가뜨리는 말씨로 여민 ‘문학’을 함부로 읽혀도 될까요? 《오리 돌멩이 오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말장난으로 가득합니다.


기차는 긴 차 / 길어서 / 길게 / 휘어지기도 / 하는 차 // 철커덕 철커덕 철커덕 / 소리가 긴 차 // 떠난 사람 생각이 / 길게 되감기는 차 (기차/16쪽)


  ‘기차’는 “긴 차”가 아닌 “김을 내며 달리는 수레”입니다. 우리말 ‘김’은 ‘길게’ 올라가는 ‘기운’을 가리킵니다만, ‘김·길다·기운’하고 한자 ‘기(氣·汽)’가 맞물리는 대목이 있습니다만, “떠난 사람 생각이 / 길게 되감기는 차”를 들려주는 〈기차〉라는 글은 여러모로 터무니없습니다. 어린이가 뭘 느끼거나 배울까요? 더구나 예전 “이승만·박정희 군사독재에 어린이를 억누르던 동심천사주의”를 닮은 이런 얼거리를 2020년에도 ‘동시’라는 이름으로 쓰니 안타깝습니다. 이른바 ‘추억·완상’에 젖어 군사독재를 감추기에 바빴던 예전 사람들이 쓰던 ‘문학기교’입니다.


뻐꾹요 뻐꾹이오 / 뻐꾹입니다 / 존댓말 쓰는 꼴을 / 한 번도 못 봤다니까 / 요 (뻐꾸기/18쪽)


  새는 새입니다. 새가 들려주는 소리는 노래이고,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는 바로 새랑 개구리랑 풀벌레랑 바람이랑 바다한테서 배운 소릿가락입니다. 들숲을 가르며 노래하는 뻐꾸기가 아닌, 사람들 마음을 달래고 녹이는 멧새가 아닌, 어린이한테 삶도 숲도 들려주지 못 하는 얕은 글이 ‘동시’라면 어린이 앞에서 너무 창피합니다.


웃는 거야, / 찡그린 거야? / …에헴이야! // 야옹이야, / 멍멍이야? / ―어흥이야! (삼색제비꽃/22쪽)


  우리말씨로는, 글에 ‘―’를 안 넣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낱말이며 글자락에 으레 ‘―’를 넣습니다. 어린이가 읽는 글에 이런 일본말씨를 함부로 넣는 분이 무척 많아요. 아직 우리가 못 털거나 안 씻은 일제강점기 찌꺼기입니다. 그런데 세빛제비꽃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장난을 해본들 무슨 보람이 있을까요? 제비꽃이 왜 제비꽃인 줄 모르기에 이런 글을 어린이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쓰는구나 싶습니다. 제비꽃은, 겨울이 저물고 새봄이 찾아들 즈음 먼먼 바다를 가르면서 반갑게 찾아오는 제비가 돌아오는 즈음에 피는 새봄맞이꽃입니다.


이래 봬도 / 나, / 나무요. // 뾰족뾰족 뿔, / 보이지요? // 황소보다 / 크고 힘센 / 소나무가 될 거거든요 (어린 소나무의 각오/82쪽)


  ‘소나무’는 짐승 ‘소’가 아닌 ‘솔 + 나무’입니다. 전라도에서는 ‘부추’라 안 하고 ‘솔’이라 합니다. 이 ‘솔’은 ‘솟다’가 뿌리입니다. 그래서 ‘쏠’이라는 오랜 우리말도 있습니다. 잎이 ‘솟듯’ 나는 나무이기에 ‘소나무’입니다. 이 얼거리로 ‘송곳·솟대·솟구치다’라는 낱말이 태어났어요. 어느 모로는, 소는 뿔이 ‘솟았’다고 여길 수 있겠습니다만, 나무이름에 붙인 ‘소·솔’이 무엇인지 안 읽거나 잘못 읽으면서 쓰는 글을 어린이한테 읽힌다면, 어린이는 그야말로 뜬금없는 곳에서 헤맵니다. 부디 우리 어른들이 철이 좀 들어야겠고, 철빛부터 배워야겠습니다. 네 가지 철이 어떤 결이고 길이면서 숨빛인지 모르는 채 글만 붙잡고서 씨름을 하다 보니 말장난 동시가 판치는구나 싶습니다.


길에서 차에 치여 죽는 걸 / 로드 킬이라고 하는데 / 우리말로 / 길 죽음이라고 번역해 놓은 걸 봤어 (로드 킬/88쪽)


  영어로는 ‘로드킬’이라 하는데, 우리말로는 ‘길죽음·길주검’입니다. 이 낱말은 숲노래 씨가 2007년에 지었습니다. 황윤 님이 2006년에 찍은 〈어느 날 그 길에서〉라는 보임꽃이 있는데, 이 보임꽃을 보고서 처음 지은 낱말입니다. 할매할배를 비롯해서 어린이 누구나 “길에서 죽은 짐승”을 알아보기에 수월하도록 헤아려서 지었습니다. “번역한 낱말”이 아니라, 새로 지은 낱말인 ‘길죽음·길주검’입니다. 띄지 않고 붙여서 ‘길죽음’입니다. 이 낱말은 2007년부터 퍼졌습니다만, 이 얼거리를 모를 수 있을 테지요. 그러나 누리집에서 조금만 뒤적여도 다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ㅅㄴㄹ


《오리 돌멩이 오리》(이안, 문학동네, 2020)


52편의 동시가 실려 있단다

→ 52자락 글을 실었단다

→ 52꼭지 노래를 실었단다

4쪽


다른 모양과 색깔을 갖고 싶었던

→ 다른 모습과 빛깔이고 싶던

5쪽


마음이 한결 은은해질 거야

→ 마음이 한결 부드럽지

→ 마음이 한결 나직하지

6쪽


존댓말 쓰는 꼴을

→ 높임말 쓰는 꼴을

18쪽


웃는 거야, 찡그린 거야? …에헴이야! 야옹이야, 멍멍이야? ―어흥이야!

→ 웃니, 찡그리니? 에헴이야! 야옹이야, 멍멍이야? 어흥이야!

22쪽


풀칠 검사만 통과하면 합격이에요

→ 풀만 잘 바르면 돼요

29쪽


물속 나라로 들어가는 비밀번호가

→ 물나라로 들어가는 열쇠가

42쪽


옹알이도 시작했으니

→ 옹알이도 하니

45쪽


곧 듣게 될 거라며

→ 곧 듣는다며

45쪽


봄에 출발해서 가을에 도착한

→ 봄에 떠나 가을에 닿은

→ 봄에 가서 가을에 온

46쪽


놓아두고 기다리는 중이야

→ 놓아두고 기다려

49쪽


싸 보이는 펜던트가 실은

→ 싸 보이는 꽃걸이가 정작

52쪽


둥글려 만든 거라는 걸

→ 둥글린 줄

52쪽


딸기 맛도 좀 나는 거 같았어

→ 딸기맛도 좀 나

63쪽


전교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 온터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67쪽


저에에게 100일의 시간을 주세요

→ 저한테 온날을 주세요

75쪽


매운 건 사양할래요

→ 매우면 싫어요

→ 매우면 안 먹어요

75쪽


소나무가 될 거거든요

→ 소나무가 되거든요

82쪽


우리말로 길 죽음이라고 번역해 놓은 걸 봤어

→ 우리말로 길죽음이라 옮긴 글을 봤어

88쪽


찔레꽃 식당 2호점, 3호점, 4호점

→ 찔레꽃 밥집 둘째, 셋째, 넷째

10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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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랜 사랑 창비시선 134
고재종 지음 / 창비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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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2.30.

노래책시렁 386


《날랜 사랑》

 고재종

 창작과비평사

 1995.5.10.



  서른 해쯤 앞서 《날랜 사랑》을 처음 만났고, 열 해쯤 앞서 느낌글을 썼고, 올해에 부산 보수동 헌책집에서 이 노래책을 새삼스레 만나서 다시 뒤적였습니다. ‘서울 서초 이동도서관’에 있던 노래책은 어쩌다가 부산까지 날아갔을까요? 이음책숲(이동도서관)이란, 책숲이 없는 마을에 책을 수레에 싣고서 찾아가는 얼거리입니다. 요즈음이야 서울 서초가 가멸다고 여기지만, 예전에는 가멸지 않은 마을도 품었습니다. 온나라 어디이든 가난한 이하고 가멸찬 이가 어우러집니다. 그나저나 《날랜 사랑》은 시골에서 짓는 삶을 담습니다. 그러나 시골말로 시골을 그리지는 않아요. “서울말로 문학을 하는 시집”인 얼개입니다. 예나 이제나 시골에서도 노래를 쓰는 분이 적잖습니다만, 막상 시골일을 글로 담지는 않더군요. 다들 서울말로 서울살이를 그립니다. 풀을 ‘풀’이라 하지 않으면 뭘까요? 멧들을 ‘멧들’이라 않고, 들숲을 ‘들숲’이라 하지 않으면 뭔가요? 오랜만에 되읽은 글자락에는 어김없이 술집(주막) 타령이 깃듭니다. “문학하는 남성”은 으레 술집에을 드나든 하루를 쓰더군요. 이와 달리 “글쓰는 순이”는 술집 타령을 아예 안 쓰다시피 합니다. 시골에서 흙 만지는 순이라면, 어떤 사랑을 어디에서 어떻게 노래할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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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아직도 낡은 집들에 / 제 등불을 건다 / 사위 꼭꼭 조여드는 칠흑을 뚫고 / 저 산밑 제각집도 대밭 안집도 / 밀감빛 흐린 등불을 건다 (마을의 별/24쪽)


괜히 서럽고 / 괜히 그리워 / 뜨건 소주 한잔 / 날래 꺾는 것이다 (대설/120쪽)


+


《날랜 사랑》(고재종, 창작과비평사, 1995)


서로의 애로와 집안의 우환

→ 서로 걱정과 집안 근심

53


사방 산천 연두초록 물감 걷잡을 수 없이

→ 곳곳 들숲 옅푸른 물감 걷잡을 수 없이

→ 둘레 멧들 옅푸른 물감 걷잡을 수 없이

66


누구도 호명해주지 않았던 궁벽의 한 생애처럼

→ 누구도 불러주지 않던 가난한 한삶처럼

→ 누구도 안 부르던 밑바닥 삶길처럼

78


적막이 산처럼 쌓이는 텅 빈 주위엔

→ 고요가 메처럼 쌓이는 텅 빈 곳엔

→ 말없이 가득 쌓이는 텅 빈 둘레엔

78


새 초록들 저희끼리만 울울할 뿐

→ 새싹은 저희끼리만 우거질 뿐

→ 푸른싹은 저희끼리만 그득할 뿐

→ 새 들빛 저희끼리만 너울댈 뿐

78


허한 마음들이야 쾡한 눈빛이

→ 멍한 마음이야 쾡한 눈빛이

→ 빈 마음이야 쾡한 눈빛이

88


거두어 봐야 냉해 쭉정이뿐이던

→ 거두어 봐야 언매 쭉쩡이뿐이던

→ 거두어 봐야 찬매 쭉쩡이뿐이던

88


나의 사랑은 가령

→ 나한테 사랑은

→ 나로서 사랑은

→ 나는 사랑이라면

104


주막집 난로엔 생목이 타는 것이다

→ 술집 불가엔 날나무가 탄다

→ 술집 불구멍엔 갓나무가 탄다

12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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