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창비시선 158
이대흠 지음 / 창비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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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2.17.

노래책시렁 406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이대흠

 창작과비평사

 1997.2.1.



  내가 바라보는 곳에 내 마음이 있습니다. 붉구슬 같은 열매를 주먹만 하게 맺는 나무를 바라볼 적에는 손끝과 눈길을 거쳐 불길 닮은 이슬이 스밉니다. 새끼손톱보다 작고 보랏빛은 봄까지꽃을 땅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서 마주하면 겨울이 저물면서 봄이 피어나는 숨소리가 퍼집니다. 왁자지껄한 서울 한복판에서 걸쭉한 말잔치에 끼면, 왁자지껄하고 걸쭉한 입심에 물들어요.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가 태어난 1997년 겨울을 떠올립니다. 그무렵에 저는 강원 양구 멧골짝에서 삽으로 눈을 푸다가 맨손으로 와락 씹었습니다. 키높이로 쌓이는 눈은 그칠 날이 없고, 배곪는 싸울아비는 함박눈을 뭉쳐서 밥을 삼았습니다. 나라에 왜 싸울아비가 있어야 하는지 곱씹어 보았지요. 땅을 갈아 기름진 논밭으로 일굴 사내를 바보짓으로 길들여 눈먼 바보로 뒹굴리려는 속뜻 같습니다. 글밭도 비슷합니다. 비슷비슷 구순하게 손을 내밀고 살을 섞고 몸을 비벼야 비로소 ‘서정문학’이라는 일본스런 이름을 붙이는 듯싶습니다. 그렇지만 참답게 ‘삶내음’이 흐르는 글자락이라면, 오순도순 부엌일을 하고 집안일을 하고 아기를 돌보면서 벌나비랑 흙빛으로 어울리는 곳에서 고즈넉이 태어나리라 봅니다. 응큼스러이 불끈거리는 글치레는 낡았습니다.


ㅅㄴㄹ


그리운 것은 내 안으로 떠나는 것이다 // 다만 나는 / 내 속을 보지 못한다 (鵲枕/9쪽)


늙은 여자가 / 앞에 서 있는데 / 자리를 양보하기 싫습니다 차창 밖은 검은 세상 … 일곱 박스의 귤을 팔았습니다 / 리어카 끌고 셋방 갑니다 / 귤 껍질 벗기듯 마누라 벗기고 / 달콤하고 신맛도 좀 있는 밤 / 그런 귤쪽같이 붉은 시월입니다 (자화상/18쪽)


사랑이란 머릿속의 포르노 테이프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것 / 그리움이란 성욕의 다른 이름 / 나는 그다지 타락한 것 같지 않은데 / 너를 만나면 관계하고 싶다 (꽃핀 나; 검증 없는 상상/32쪽)


아침 일곱시 무렵에 전철을 탄다 / 허벅지가 드러난 / 치마를 입고 내 앞에 붙어 있는 여자 순간 나는 / 본능만의 성교를 꿈꾼다 강간이나 / 추행이라는 무서운 말들이 / 내 안에 있구나 불현듯 / 아버지를 죽인 한 아들이 신문 속에서 / 내 마음과 함께 구겨지고 (전철은 나를 수행자로 만든다/42쪽)


저리도 많은 젖가슴 달고 / 정신이여 // 평생에 풀어내지 못한 말들이 / 풀로 돋아 // 젖내음 같은 바람 불고 / 호랑나비는 하늘을 찢지 않으며 날아간다 (4·19 묘지에서/83쪽)


+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이대흠, 창작과비평사, 1997)


내가 없었을 때 세상은 짐승들의 것이었다

→ 내가 없을 때 온누리는 짐승판이었다

→ 내가 없던 때는 온통 짐승나라였다

12쪽


이따금 하자 보수를 해야 할 때도 있지만

→ 이따금 고쳐야 할 때도 있지만

→ 이따금 손봐야 할 때도 있지만

→ 이따금 기워야 할 때도 있지만

12쪽


그리움이란 성욕의 다른 이름

→ 그리움이란 발딱질 다른 이름

→ 그리움이란 불끈질 다른 이름

32쪽


너를 만나면 관계하고 싶다

→ 너를 만나면 몸섞고 싶다

→ 너를 만나면 살섞고 싶다

→ 너를 만나면 뒹굴고 싶다

32쪽


치마를 입고 내 앞에 붙어 있는 여자 순간 나는 본능만의 성교를 꿈꾼다

→ 치마를 입고 내 앞에 붙은 가시내 갑자기 나는 몸을 섞고 싶다

→ 치마를 입고 내 앞에 붙은 가시내 문득 나는 부둥켜안고 싶다

42쪽


철든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노여움으로부터

→ 철들기란 둘레를 미워하는 마음부터

→ 철들려면 바깥에 발끈하는 마음부터

46쪽


평생에 풀어내지 못한 말들이 풀로 돋아 젖내음 같은 바람 불고

→ 내내 풀어내지 못한 말이 풀로 돋아 젖내음 같은 바람 불고

8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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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교실 사계절 동시집 8
백창우 외 52인 지음, 김유대 그림 / 사계절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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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2.3.

노래책시렁 398


《날아라, 교실》

 백창우 외 52사람 글

 김유대 그림

 사계절

 2015.12.22.



  시골에서 살아가며 둘레를 보면, 갈수록 새노래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시골에서 서울로 이따금 마실을 가면, 새바라기를 하는 이웃이 조금 늘어난 듯 보여도, 막상 새터를 사람들이 모조리 빼앗거나 짓밟는 줄 못 느끼는 분이 대단히 많습니다. 시골아이도 서울아이도 둘레를 헤아리는 눈망울이 차츰 사라지고, 시골어른도 서울어른도 ‘어른’이란 이름이 안 어울리는 꼰대가 부쩍 늡니다. 《날아라, 교실》은 쉰두 사람이 쓴 글을 싣는데, 쉰두 사람 어느 누구도 시골아이 마음이나 삶에 다가서려는 줄거리를 엮지 않았습니다. 모두 서울아이 쳇바퀴와 수렁에 맞추어 줄거리를 엮는군요. 그야말로 이제는 서울도 시골도 온통 쳇바퀴에 수렁이니까, 이 쳇바퀴에 수렁을 다루어야 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린이가 스스로 꿈을 그리도록 곁에서 이야기를 지필 줄 알아야 어른이라는 이름이 어울립니다. 어진 마음하고 먼 채 말장난으로 그친다면, 글이 아닌 그저 노리개일 테지요. 어린이는 배움터를 꼭 다녀야 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모든 곳을 놀이터에 배움터에 만남터에 쉼터에 마실터로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대목을 놓친 채 글만 만지작거린다면 아이들도 글장난에 허울스런 말치레에 갇힐 뿐입니다.


ㅅㄴㄹ


풀꽃을 좋아하는 아빠가 / 양재천 둑에서 제비꽃을 캐다가 / 작은 화분에 옮겨 심었다. (제비꽃 납치 사건-신형건/12쪽)


저 자동차들은 어쩌면 / 백 년 묵은 여우인지도 몰라요. / 꼬리를 감추고 사람들을 꼬드기는, / 백 년 묵은 여우, / 천 년 묵은 여우 (꼬리 달린 자동차-김철순/18쪽)


책 속에 사는 / 책벌레들아, 큰일 났어! / 아기돼지 삼형제랑 / 손오공이랑 / 백설공주가 / 만나서 뭘 했는지 알아야 해! / 난 책 안 읽었으니까 / 너희가 도와줘! (SOS!-이옥용/50쪽)


도둑님 도둑님 좀도둑님 / 우리 집 좀, 좀 훔쳐 가세요. / 우리 엄마의 좀 / 우리 아빠의 좀 / 까칠쟁이 누나의 좀 / 하나도 남김없이 / 모조리 좀 훔쳐 가세요. (좀도둑님께-박방희/69쪽)


성적을올리자 / 실적을높이자 / 목적을달성하자 // 왜 항상 내 주위에는 / 적이 많을까? // 아, 적적하다. (적-박정섭/79쪽)


아빠의 자동차는 크고 낡아서 / 소리가 요란합니다 (꿈나라 가는 길-윤제림/90쪽)


+


《날아라, 교실》(백창우 외 52사람, 사계절, 2015)


휴일이라 집에 놀러 온

→ 쉬느라 집에 놀러 온

12쪽


이웃 아파트 담장으로

→ 이웃 잿집 담으로

22쪽


먹이를 물고 재잘재잘대는데

→ 먹이를 물고 재잘대는데

24쪽


아무나 다 되는 건 아니래

→ 아무나 다 되진 않는대

36쪽


왜 항상 내 주위에는

→ 왜 늘 내 곁에는

79쪽


아, 적적하다

→ 아, 심심하다

→ 아, 따분하다

79쪽


별의별 모자 가운데

→ 온갖 쓰개 가운데

→ 갖가지 갓 가운데

9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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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 솔시선(솔의 시인) 4
허만하 지음 / 솔출판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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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2.3.

노래책시렁 402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

 허만하

 솔

 2002.12.10.



  우리 곁에 아이가 있으면 언제나 아이랑 어깨동무하는 마음으로 말빛을 펴게 마련입니다. 우리 곁에 아이가 없으면 아이하고 나눌 말씨를 잊게 마련입니다. 살아가는 곳에서 말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마음을 소리로 옮깁니다.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에는 ‘문학이라는 시를 엮느라 흘리는 땀방울’이 가득합니다. 땀냄새 나는 글을 읽으며 우리 집 아이들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두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서 두바퀴를 달려 멧골을 오르내리거나 바닷가를 돌거나 들판을 가를 적이면, 머리부터 샘솟는 땀이 볼을 타고서 길바닥으로 줄줄줄 떨어집니다. 등판에는 소금꽃이 하얗게 핍니다. 아이들은 “아버지 안 힘들어?” 하고 묻고, “수레에 앉아서 노래를 불러 주면 언제나 즐겁지.” 하고 대꾸합니다. 아이들은 수레에 앉아 노래하다가 잠들고, 아이들이 잠들면 이 두바퀴를 달리면서 숨이 가쁘더라도 찬찬히 고르면서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허만하 님은 ‘알뜰히 짜고 엮은 글’을 남깁니다. 다만, 아이한테 남겨 줄 만하지 않습니다. ‘머리로 짜는 꾸밈새’만으로는 빛이 나지 않고, 씨앗으로 싹트지 않거든요. 모든 새는 다 다르게 노래하는데, 다 다른 새소리를 글로 옮기려 한다면 ‘머리로 짜낼’ 수 있지 않겠지요.


ㅅㄴㄹ


무너지기 위하여 물결은 몸을 안으로 말아올리며 힘껏 솟아오르나 붕괴 직전 잠시 숨을 죽이는 시간을 가진다. 높이뛰기 선수가 뛰어오른 하늘에서 잠시 머무는 것과 같다. (물결에 대해서/35쪽)


물결은 자신이 자기의 해답이 될 때까지 탄생의 갈등을 몸으로 고해하고 있었다. 곰소 포구 지나 선운사 감나무 추운 가지 끝 노을 머금은 까치밥 찾는 길에 개펄빛 물결이 흐느끼는 것을 보았다. (선운사 감나무/47쪽)


+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허만하, 솔, 2002)


아침노을을 가장 먼저 느끼는 눈부신 정신의 높이를

→ 아침노을을 가장 먼저 느끼는 눈부신 마음길을

15쪽


겨울나무의 혼은 오히려 건조하다

→ 겨울나무 넋은 오히려 딱딱하다

→ 겨울나무 숨은 오히려 깡마르다

16쪽


앞뒤로 겹치는 능선의 선율

→ 앞뒤로 겹치는 등성이를

→ 앞뒤로 겹치는 멧줄기를

19쪽


적설층의 시린 무게를 안고 빙하는 협곡을 서서히 흐른다

→ 시린 눈켜 무게를 안고 얼음은 고랑을 천천히 흐른다

→ 시린 눈더미를 안고 얼음장은 골을 넌지시 흐른다

→ 시린 눈밭을 안고 얼음더미는 골짜기를 가만히 흐른다

24쪽


낯선 지형이 풍경이 될 때까지 날개를 젓는 새

→ 낯선 곳이 그림이 될 때까지 날개를 젓는 새

→ 낯선 땅이 보일 때까지 날개를 젓는 새

31쪽


무너지기 위하여 물결은 몸을 안으로 말아올리며 힘껏 솟아오르나 붕괴 직전 잠시 숨을 죽이는 시간을 가진다

→ 물결은 무너지려고 몸을 안으로 말아올리며 힘껏 솟아오르나 무너지기 앞서 살짝 숨을 죽인다

35쪽


잔모래 풀풀 날리는 모래사장에 내려서서

→ 잔모래 풀풀 날리는 땅에 내려서서

→ 풀풀 날리는 모래밭에 내려서서

40쪽


다른 별의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가 반짝이는 투명한 표면장력

→ 다른 별 하늘에 뜬 무지개가 반짝이는 맑은 볼록뜨기

→ 다른 별 하늘에 있는 무지개가 반짝이는 맑은 겉뜨기

46쪽


물결은 자신이 자기의 해답이 될 때까지 탄생의 갈등을 몸으로 고해하고 있었다

→ 물결은 스스로 풀어낼 때까지 넌출진 첫물을 몸으로 밝힌다

→ 물결은 스스로 풀 때까지 뒤엉킨 첫날을 몸으로 털어놓는다

47쪽


인적 없는 해안선 물가를 걷고 있는 지금

→ 발길 없는 바닷가를 걷는 오늘

→ 조용한 바닷가를 걷는데

→ 허전한 바닷가를 걷는 이때

60쪽


아득한 탄생의 중심에서 밀려드는 파도가 남색 엷은 껍질을 찢고

→ 아득한 첫복판에서 밀려드는 물결이 엷고 검파란 껍질을 찢고

→ 아득한 처음마당에서 밀려드는 물결이 쪽빛 엷은 껍질을 찢고

6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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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들어온 너에게 창비시선 401
김용택 지음 / 창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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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1.26.

노래책시렁 399


《울고 들어온 너에게》

 김용택

 창비

 2016.9.9.



  둘레에 아는 숱한 분들이 잿집에서 삽니다. 잿집 아닌 시골집에서 살아가는 이웃은 줄어듭니다. 시골에서 그대로 살아가는 이웃부터 적어요. 시골에서 살지 않을 적에는 “마당 없는 겹겹집”에 깃들게 마련이고, 쇳덩이를 부릉부릉 끄는 살림이곤 합니다. 쇳덩이를 안 모는 이웃은 서너 사람뿐이고, 다들 안 걷고 여느발(대중교통)하고 먼 나날입니다. 서울에서 살더라도 아침저녁으로 납짝쿵으로 짓뭉개지는 길을 모른다면, 길막힘은 겪되 휩쓸리고 밟히고 밀리는 수렁에서 스스로 건사하는 삶을 모른다면, 이때에 어떤 글을 쓸는지 곱씹어 봅니다. 《울고 들어온 너에게》를 읽고서 하나부터 열까지 말장난 같다고 느꼈습니다. 햇살은 높다란 잿집에도 눈부시게 들어옵니다. 햇살은 서울하고 시골을 안 가려요. 언제 어디에서나 햇살입니다. 그러나 해는 계집도 사내도 아닙니다. 봄가을이나 여름겨울은 사내도 계집도 아닙니다. 그저 철이고 빛이며 숨입니다. 발은 땅에 딛고 손은 바람을 쓰다듬을 적에 노래한다고 느껴요. 눈은 별빛을 담고 마음은 오늘을 맞이할 적에 노래가 샘솟는다고 느껴요. 뚝딱거리듯 맞추는 틀이 아닌, 바람이 되고 바다가 되어 밭자락에서 피어나는 푸른빛을 옮기는 글일 적에 싱그럽다고 느낍니다.


ㅅㄴㄹ


아파트 창틀을 넘어온 햇살이 좋았다. / 햇살이 찾아오면 먼지들이 피어났다. / 나 없이도 지들끼리 / 잘 놀다 가는 작은 뒷방, / 베고니아를 키웠다. 새벽에 일어나 / 시를 쓰고, 쓴 시를 고쳐놓고 나갔다 와서 / 다시 고치고 (베고니아/17쪽)


계집의 마음 같다. / 계집의 마음 같다 해놓고 / 웃었다. (봄 산은/24쪽)


+


《울고 들어온 너에게》(김용택, 창비, 2016)


나의 시는 어느 날의 일이고

→ 내 노래는 어느 날 일이고

10


그런 빛깔의 꽃이 풀 그늘 속에 가려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 그런 빛깔인 꽃이 풀그늘에 가린 줄 떠올린다

→ 그런 빛깔 꽃이 풀그늘에 가린 줄 생각한다

11


한 아이가 동전을 들고 가다가

→ 아이가 돈을 들고 가다가

→ 아이가 쇠돈 들고 가다가

12


자연이 하는 말을 받아 땅 위에 적었다

→ 들숲이 말하면 땅에 받아적는다

→ 숲이 말하면 땅에 적는다

15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 흙지기 아들로 태어났다

→ 시골집 아들로 태어났다

18


꼬막 껍데기 반의반도 차지 않았다

→ 꼬막 껍데기 조금도 차지 않았다

→ 꼬막 껍데기 거의 차지 않았다

→ 꼬막 껍데기 얼마 차지 않았다

18


귀환은 평화롭고 안착은 아름답다

→ 돌아와 아늑하고 앉으며 아름답다

→ 돌아가 고요하고 깃들며 아름답다

28


한일자로 누운 노을도

→ 반듯이 누운 노을도

→ 곧게 누운 노을도

→ 반반히 누운 노을도

→ 한 줄로 누운 노을도

29


내 귓속이 환해졌어

→ 내 귓속이 환해

→ 내 귓속이 트였어

68


아버지에 대한 시를 쓰면서 편안함을 얻었다

→ 아버지 노래를 쓰면서 포근했다

→ 아버지를 노래하면서 오붓했다

99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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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닥불 창비시선 74
안도현 지음 / 창비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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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1.25.

노래책시렁 308


《모닥불》

 안도현

 창작과비평사

 1989.5.5.



  지난 1989년에 읽던 노래를 1999년이나 2009년에 되읽을 적에 깜짝 놀랐습니다. 1989년만 해도 집이나 마을이나 배움터에서 으레 주먹질이 판쳤고, 숱한 길잡이나 꼰대는 아이들을 마구 때리거나 막말을 일삼았어요. 이런 나라 얼거리가 예전 글자락에 고스란히 흐르는 줄 1989년에는 미처 몰랐으나, 2019년을 넘어서면서 새삼스레 보이더군요. 《모닥불》을 되읽다가 놀랐다고도 할 만하고, 썩 놀랍지 않다고도 할 만합니다. 그때에는 누구나 그랬다고 둘러댈 수 없습니다. 그때에도 아이를 아끼는 ‘꼰대 아닌 어른’은 있었어요. 어린이한테 함부로 말을 안 깎는 어진 분이 제법 있었습니다. 예나 이제나 가시내를 옆에 끼는 줄거리를 ‘시·소설’이란 이름으로 쓰는 분이 수두룩하고, 예전에는 으레 그런 글을 쓰다가 요새는 싹 감추는 글바치도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무엇을 갈아엎어야 할는지 돌아봅니다. 우두머리나 벼슬꾼도 갈아엎어야 할 노릇이요, 바로 우리 스스로도 갈아엎을 일입니다. 지난날 얼룩도 갈아엎고, 글담도 이름값도 모조리 갈아엎어야지 싶어요. 지나간 글을 섣불리 ‘달콤(낭만)’으로 덮어씌울 수 없습니다. 창피한 어제를 뉘우치고서 다 내려놓지 않는다면, 모두 거짓이자 허울일 뿐이라고 느낍니다.


ㅅㄴㄹ


아내를 남쪽에 두고 / 나는 죄짓는 마음도 모르고 / 헝클어진 머리카락 미역냄새를 맡으면 / 부끄럼없이 굵어지는 어깨와 팔뚝 / 한반도의 허리를 꼭 껴안 듯이 / 더 깊은 신천지 속으로 / 힘차게 나를 밀어 넣으면 / 온 바다로 파도 치는 / 청진 여자, 그녀와 하룻밤 자고 싶다 (청진 여자/7쪽)


젖은 손 번들거리는 검은 얼굴로 / 마른 빵을 나누어 먹는 / 이 거칠은 조선의 어머니들이다 / 가난의 넉넉함이여 / 망둥어 피조개 꽃게가 퍼뜨리는 (군산선/14쪽)


김치 쉰내가 왁자그르 찰랑거리는 오후에 / 나는 그곳으로 갑니다 / 내가 가면 아이들은 먼지처럼 / 무릎을 굽히면서 가라앉습니다 / 순종에 아주 길들여졌다는 뜻이겠지요 / 해서 언젠가 들려줄 고백이 있습니다 (그곳/54쪽)


도선장으로 가는 길 선술집에서 / 피조개 한점 고추장 찍어 먹고 나면 / 바깥을 겹겹이 둘러싸고 퍼붓는 눈발이 / 바로 우리 편이다 우리를 지켜주는 노여운 사랑이다 / 젖가슴까지 올려치는 강대국 전투기 / 그 비행사들 시커먼 폭격 속에 까무러치고 싶어한다는 / 썩을 년, 미국 가고 싶은 내 누이여 / 저 폭설의 바다를 보아라 / 드디어 통일된 우리 조국 아니야 (군산행 1/87쪽)


+


《모닥불》(안도현, 창작과비평사, 1989)


더 깊은 신천지 속으로

→ 더 깊이 새마을로

→ 더 깊이 새누리로

7쪽


청진 여자, 그녀와 하룻밤 자고 싶다

→ 청진 순이, 이이와 하룻밤 자고 싶다

→ 청진 색시, 이녁과 하룻밤 자고 싶다

→ 청진 아씨, 그대와 하룻밤 자고 싶다

7쪽


대명천지에 똥차는 와서 진정 참다운 일 가르쳐 주고 간다

→ 똥수레는 대낮에 와서 참다운 일 가르쳐 주고 간다

→ 똥수레는 낮에 와서 참일 가르쳐 주고 간다

28쪽


고관의 저택에도 하수도는 흐른다

→ 나리 큰집에도 수챗길은 흐른다

→ 벼슬꾼 집에도 밑물은 흐른다

29쪽


내 지금 발 딛고 선 교단이 세계의 중심임을

→ 내 오늘 발 디딘 배움턱이 온누리 복판이니

→ 내 이제 선 배움터가 푸른별 한복판이니

35쪽


아이들이 누굽니까, 어린 조국입니다

→ 아이들이 누굽니까, 어린 나라입니다

→ 아이들이 누굽니까, 어린 멧숲입니다

→ 아이들이 누굽니까, 어린 들숲입니다

52쪽


어느덧 가투가 시작되고 있어싸

→ 어느덧 길너울이야

→ 어느덧 길물결이야

84쪽


저 폭설의 바다를 보아라

→ 저 함박눈 바다를 보아라

→ 저 눈보라 바다를 보아라

8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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