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들 창비시선 79
고재종 지음 / 창비 / 1989년 9월
평점 :
품절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2023.9.30.

노래책시렁 341

《새벽 들》
 고재종
 창작과비평사
 1989.9.15.


  나락이 물결치는 가을들을 보면 똑같은 낟알은 하나조차 없습니다. 나락들 곁 도랑에서 자라는 억새를 보면 똑같은 억새꽃도 억새씨도 없습니다. 봄여름에 벌레잡이를 하고서 가을에 낟알을 조금 훑는 참새는 으레 떼지어 날갯짓을 하는데, 쉰이나 아흔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도 다 다른 참새입니다. 오늘날은 모심개(이앙기)로 똑같이 때려박고서, 벼베개(콤바인)로 똑같이 잘라내지만, 지난날에는 손으로 다 다르게 심고서, 낫으로 다 다르게 거두었습니다. 손으로 밥옷집을 짓던 지난날에는 나락도 남새도 열매도 다 다른 숨결인데, 틀(기계)로 욱여넣는 오늘날은 삶도 글도 넋도 똑같이 수렁에 잠기는구나 싶어요. 《새벽 들》을 가만히 읽습니다. 열 살 딸아이한테 고기덮밥을 먹이던 하루를 1989년하고 2023년은 어떻게 다르게 바라보려나요? 1989년 아닌 2023년에도 풀죽임물을 듬뿍 뿌리려나요? 이제는 안 뿌리려나요? 〈로빙화〉에 나오는 아이가 사람들 가슴을 적시는 눈부신 그림을 어떻게 낳았는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요. ‘풀죽임물’이 아닌 ‘손가락·젓가락’으로 애벌레를 하나하나 떼었어요. 아이 옷가지를 빨래하고, 아이 밥차림을 돌보고, 아이 말씨를 북돋우듯, 그저 오늘을 사랑으로 살리면 언제나 푸른노래입니다.


굽고 지지고 볶은 고기덮밥으로 / 열살 난 딸아이 돼지처럼 비육시켜놓은 / 선진조국의 영양가족이 먹느냐 / 버터네 치즈네 / 비프스테이크네 피자파이네 / 기름진 양식요리 가르치기에 분주한 / 오늘의 요리시간의 / 그 머언 이방인들이 먹느냐 (쓴 밥 한 그릇―농사일지 8/21쪽)

논을 고르는 일은 / 농삿일 중 가장 힘이 든다 / 흙탕물은 온몸에 튀어오르고 / 흙굴헝에 발은 빠지고 / 유월 땡볕에 범벅땀은 흘러도 / 가장 평평한 땅에 / 키 나란한 모를 심기 위하여 / 반듯이 논을 고르다보면 (논 고르기―농사일지 12/32쪽)

최루탄처럼 쏘아대는 / 우리 무지한 농약살포를 보아라 / 저 새하얀 분말의 확산 속에 / 조용히 눕고 싶다 / 어질어질 어질머리 눕히고 싶다 / 울렁울렁 울렁가슴 눕히고 싶다 (농약을 뿌린다―농사일지 17/46쪽)


《새벽 들》(고재종, 창작과비평사, 1989)

우리 낫질은 노엽다
→ 우리 낫질은 끓는다
→ 우리 낫질은 불탄다
19쪽

돼지처럼 비육시켜놓은
→ 돼지처럼 살찌운
21쪽

농삿일 중 가장 힘이 든다
→ 가장 힘드는 시골일이다
→ 가장 힘이 드는 흙일이다
32쪽

흙탕물은 온몸에 튀어오르고
→ 흙물은 온몸에 튀어오르고
32쪽

우리 무지한 농약살포를 보아라
→ 우리 얼뜬 죽음물질을 보아라
46쪽

저 새하얀 분말의 확산 속에 조용히 눕고 싶다
→ 저 새하얗게 퍼지는 가루에 조용히 눕고 싶다
46쪽

조석으로 시원한 때를 골라
→ 아침저녁 시원한 때를 골라
50쪽

폭염일수록 미치게 더욱 푸르른 저 씩씩한 벼들
→ 더울수록 미치게 더욱 푸른 저 씩씩한 벼
→ 불볕일수록 미치게 더욱 푸른 저 씩씩한 벼
82쪽

주막집 깨워 해장술 한 병 홀라당 비우고
→ 술집 깨워 속풀이술 한 병 홀라당 비우고
99쪽

농사꾼은 죽을둥 살둥 일해도 퇴직금 한푼 못 받는 무지렁이여
→ 흙꾼은 죽을둥 살둥 일해도 마침돈 한푼 못 받는 무지렁이여
9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별에서의 하루 창비시선 154
강은교 지음 / 창비 / 199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2023.9.30.

노래책시렁 340


《어느 별에서의 하루》

 강은교

 창작과비평사

 1996.10.10.



  가장 뛰어나거나 훌륭하다고 여기는 스승을 모셔야 가장 뛰어나거나 훌륭하게 배우지 않습니다. 삶은 높거나 낮지 않아요. 삶은 다 다릅니다. 둘레(사회)에서는 이곳을 위아래로 가르고 셈(점수)을 매기곤 하는데, ‘1등 대학교’부터 ‘꼴뜽 대학교’까지 가른다고 하더라도 ‘1등 대학교’를 다니거나 마쳐야 뛰어나거나 훌륭하지 않습니다. 누가 뛰어나거나 훌륭할까요? 뛰어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뛰어나고, 훌륭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훌륭합니다.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어머니는 ‘뛰어나거나 훌륭한 젖’이 아니라 ‘사랑으로 아기한테 물리는 젖’만 헤아립니다. 아이한테 밥을 차려주는 아버지는 ‘뛰어나거나 훌륭한 밥’이 아니라 ‘사랑으로 아이하고 나누는 밥’만 바라봅니다. 《어느 별에서의 하루》를 읽었습니다. ‘어느 별’은 푸른별(지구)일 수 있고, 이웃별(외계)일 수 있고, 우리 몸일 수 있고, 네 몸일 수 있고, 나무나 나비일 수 있고, 빗물이나 바닷물일 수 있습니다. 숨빛을 품은 모든 몸이 별입니다. 저 멀리에도 있는 별이고, 우리 스스로도 누구나 별입니다. 뛰어나게 노래하려고 애쓰지 마요. 우리 삶을 우리 목청으로 노래하면 됩니다. 훌륭하게 쓰려고 힘쓰지 마요. 우리 하루를 우리 손으로 사랑하면 돼요.


ㅅㄴㄹ


오늘 아침, 수류탄 위에 넘어져 죽은 한 이등병의 소식을 읽는다 / 실은 자살할 용기도 없었음, / 인질과 함께 하이트 맥주 다섯 병을 나눠 마신 뒤 세상 모르고 잘 만큼 / 순진하기 짝이 없었으며, / 한강 공원에서의 새벽 나절엔 드라이브하자고 했다는, 그 이등병의 / 소식을 읽는다. / 그러나 / 고향인 광주로는 가지 않겠다고 했으며 / 하늘은 보지 않겠다고 했다는. // 그런데 그것은 사실일까. / 우리들의 그 일단 기사, 그대를 요약함……. (아침 신문/80쪽)


조그만 울에 갇혀 그 녀석은 / 풀을 뜯으며 그 녀석은 / 노오란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그 녀석은 / 풀과 함께 바람을 씹으며 그 녀석은 / 검은 궁둥이로 그 녀석은 / 흙을 받치고 그 녀석은 / 나를 바라보네 / 마치 별을 바라보듯이 (염소―미사리에서/85쪽)


+


《어느 별에서의 하루》(강은교, 창작과비평사, 1996)


한 여자가 빨래를 널고 있다

→ 순이가 빨래를 넌다

8쪽


이제 아기 원피스를 넌다

→ 이제 아기옷을 넌다

→ 이제 아기 치마를 넌다

8쪽


정오에 구름을 보며 햄버거를 먹었다

→ 낮에 구름을 보며 고기빵을 먹었다

→ 한낮에 구름을 보며 함박빵을 먹었다

17쪽


드넓은 홀 안에는 비에 젖은 구두들이 예의바르게 앉아 있었다

→ 드넓은 뜰에는 비에 젖은 구두가 얌전히 앉았다

→ 드넓은 드락에는 비에 젖은 구두가 가만히 있다

2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적이지 않는 꽃의 질서 시산맥 기획시선 94
문젬마 지음 / 시산맥사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2023.9.30.

노래책시렁 338


《북적이지 않는 꽃의 질서》

 문젬마

 시산맥

 2023.2.28.



  “짓는 사람”을 한자말로 옮기면 ‘작가’입니다. 지을 줄 알면 누구나 ‘지음이(작가)’입니다. 글이나 그림을 지을 뿐 아니라, 그림꽃(만화)하고 빛꽃(사진)을 짓는 사람도 지음이예요. 옷을 짓고 밥을 짓고 집을 지을 적에도 지음이요, 삶을 짓고 살림을 짓고 사랑을 지을 적에도 지음이입니다. 우리는 언제 밥옷집을 지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삶·살림·사랑을 짓는가요? 아직 본 적이 없는 것을 처음으로 내놓기에 ‘짓다’이지 않습니다. 삶을 이루는 살림을 사랑이라는 빛으로 펴서 내놓기에 ‘짓다’입니다. 《북적이지 않는 꽃의 질서》를 읽었습니다. 겨울 끝자락인 2월은 잣나물이 돋아 밥살림을 북돋우고, 가을 한복판으로 접어드는 10월은 겨울을 앞두고 숱한 들풀이 마지막으로 꽃송이를 피우면서 씨앗을 남기려 합니다. 나무나 새나 꽃이나 나비는 북적이는 일이 없습니다. 스스로 깨어날 때를 그리면서 느긋이 기다리고 노래합니다. 사람들은 늘 북적입니다. 저잣판을 이루고, 부릉부릉 쇳덩이를 들이밀고, 자꾸 거머쥐려고 다투기까지 합니다. 우리말 ‘살림꾼’이 있으나 ‘일(직업)’에는 안 들어갑니다. 한자말 ‘주부·가정주부’도 일로 치지 않습니다. ‘지음 = 일(일다) = 물결·바다·바람’입니다. 지음꽃을 돌아봅니다.



고개 처박고 / 술만 퍼마셨다 // 부러질 듯 부러질 듯 무거운 목이 아슬아슬했다 // 게워도 게워도 몹쓸 그 사내 비워지지 않았다 // 넘치는 곳은 하수구만이 / 아니었다 (수국여자/38쪽)


평소에 못 한 말 // 쌓이고 쌓인 말 // 실컷 퍼부었다 // 달라진 건 끝끝내 // 아무것도 없었다 (소나기/103쪽)


+


《북적이지 않는 꽃의 질서》(문젬마, 시산맥, 2023)


선물 상자 언박싱 나도 좋아한다는 것

→ 꾸러미 열기 나도 좋아한다

→ 받은 꾸러미 뜯기 나도 좋아한다

19쪽


신생아실에서 처음 잡았다

→ 아기칸에서 처음 잡았다

36쪽


나의 가장 사랑하는 희고 검은 이율배반의 너

→ 내가 가장 사랑하는 희고 검게 뒤틀린 너

→ 가장 사랑하는 희고 검게 멋대로인 너

7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줌 단짝 브로콜리숲 동시집 9
한은선 지음, 신은숙 그림 / 브로콜리숲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2023.9.13.

노래책시렁 365


《오줌 단짝》

 한은선

 브로콜리숲

 2020.5.30.



  우리가 어른이라면 아무 말이나 하지 않을 줄 알 노릇입니다. 때를 가리고 자리를 살피면서 바람을 읽고 햇살을 따라서 별빛으로 말할 줄 안다면, 누구나 눈을 반짝이는 어른일 테지요. 둘레를 보면, 때를 가려서 얼굴을 꾸미고 자리를 살펴서 옷을 입는 사람만 수두룩합니다. 얼굴하고 몸을 치레하거나 씌울 줄만 알면 어른일까요? 마음을 헤아리지 않아도 어른일 수 있을까요? 사랑을 지어서 펴려는 숨결이 없다면 어떻게 어른일까요? 《오줌 단짝》은 여러모로 장난스레 말을 엮습니다. 장난스럽고 개구진 말잔치는 안 나쁘되, 말빛이나 말살림하고 멀어요. ‘살림’은 ‘장난’이 아니거든요. 살림은 자잘할 수 없어요. 살림은 사랑스럽고, 살림은 즐거워요. 말이 태어난 때를 알아보기를 바랍니다. 말이 깨어난 자리를 들여다보기를 바라요. 오늘날 우리가 흔히 쓰는 숱한 말은 살림터가 아닌 ‘잿터’인 서울(도시)에서 만들었습니다. ‘숲에서 지은 말’이 아닌 ‘서울에서 뚝딱뚝딱 맞춘 말’이 확 퍼졌어요. ‘만들기 = 맞추기’입니다. ‘짓기 = 살리기’예요. “말이 씨가 된다”는 숲에서 살림을 짓던 옛사람이 아이들한테 슬기롭게 물려주는 마음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말씨앗을 생각한다면 ‘세 살 버릇’ 속뜻을 제대로 읽겠지요.



흙 속에서 / 하늘 향해 // 끙차! / 심지 밀어 올려 // 햇살 아래 / 피워 올린 // 일렁일렁 / 초록 불꽃들 (무 밭/48쪽)


“장하린, 다리 그만 떨어. / 세 살 버릇 여든 간다잖아!” // “엄마, 그럼 여든한 살 되면 / 자동으로 고쳐지는 거죠?” // “으이구, 내가 못살아.” // 엄마는 못살아 못살아 하면서 / 참 열심히 산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면/65쪽)


+


《오줌 단짝》(한은선, 브로콜리숲, 2020)


책을 공들여 만들어 준

→ 책을 땀흘려 엮은

→ 책을 힘껏 여민

3쪽


수런수런 이야기 나눌 때

→ 수런수런 이야기할 때

12쪽


왼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왔다

→ 왼쪽 다리를 다져서 왔다

→ 왼쪽 다리를 굳혀서 왔다

18쪽


흙 속에서 하늘 향해

→ 흙에서 하늘 보며

48쪽


햇살 아래 피워 올린

→ 햇볕에 피워 올린

48쪽


자동으로 고쳐지는 거죠?

→ 저절로 고쳐요?

→ 스스로 고쳐요?

6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정묘지 민음 오늘의 시인 총서 14
조정권 지음 / 민음사 / 200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2023.9.13.

노래책시렁 366

《산정묘지》
 조정권
 민음사
 1991.7.5.


  노래를 쓰고 싶다면 노래를 쓸 일입니다. 혀에 소리로 얹어서 가만히 들려주고 듣다 보면, 우리가 여느 때에 읊는 말이 노래인지 아닌지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허울을 씌우거나 치레를 해야만 노래인 듯 잘못 여긴다면,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말에 가락을 입히는 노래가 하나도 안 와닿을 수 있어요. 《산정묘지》는 ‘山頂墓地’로 적는 글을 잔뜩 싣습니다. ‘멧부리뫼’란 소리일 텐데, ‘꼭대기’나 ‘무덤’ 같은 우리말을 쓰지 않아야 노래인 듯 여기는 낡은 틀입니다. 참말로 지난날에는 한문을 수글로 여기며 높였고, 우리글은 암글로 여기며 낮잡았습니다. 몇몇 글바치를 뺀 모든 글바치는, ‘우리말을 우리글로 담으면 문학이 아니’라고 여겼어요. 말이란, 마음을 담은 소리입니다. 쉽게 ‘말’이라는 낱말을 혀에 얹고 노래로 부를 적에는 ‘소리로 흐르는 마음’을 나눌 만합니다. 그러나 말을 ‘말’이라 하지 않고, 일본말씨까지 섞는 “나의 언어들”이라 읊을 적에는, 그만 꾸미기로 번지고, 겉치레에 허울로 휘감습니다. 숱한 ‘시창작교실’과 ‘문학강좌’는 ‘수글잔치’입니다. 이제는 ‘수글잔치’가 아닌 ‘우리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요? 마음을 나누려는 말을 펴고, 마음을 가꾸려는 글을 담을 일입니다.

ㅅㄴㄹ

나와 나의 언어들을 / 자석처럼 몸을 붙이게 하라 (山頂墓地·2/20쪽)

고요를 일으키며 잔잔히 파도치는 雪風이여 / 너희들 雪風의 옷자락조차 또 한차례의 고요를 기슭에다 선사하고 있지 않은가 (山頂墓地·8/36쪽)

《산정묘지》(조정권, 민음사, 1991)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 겨울에 멧길 오르면서 본다
→ 나는 겨울메를 오르면서 본다
→ 겨울메를 오르면서 본다
13쪽

바위는 스스로의 무거운 등짐에 스스로 도취하고 있다
→ 바위는 스스로 무겁게 등짐으로 스스로 사로잡힌다
→ 바위는 등짐을 무겁게 이고서 스스로 홀린다
16쪽

天上의 계단마다 하나씩 바치며 나의 눈은
→ 눈부신 디딤돌마다 하나씩 바치며 내 눈은
→ 빛나는 디딤칸마다 하나씩 바치며 눈은
16쪽

어둠은 존재의 處所에 뿌려진 生木의 향기
→ 어둠은 이곳에 뿌린 나무내음
→ 어둠은 여기에 뿌린 갓나무내
17쪽

소쿠리가 神의 문간으로 도착하기를 기대하면서
→ 소쿠리가 하늘 길목으로 닿기를 바라면서
→ 소쿠리가 저 난달로 가기를 빌면서
24쪽

내일의 歌人을 이토록 오랫동안 기다리는 것은
→ 새 노래님을 이토록 오랫동안 기다리는 뜻은
→ 다음 소리꽃을 이토록 오랫동안 기다리니
44쪽

구름 위에서 폭포구경을 하다가
→ 구름에서 쏠을 구경하다가
→ 구름에 앉아 쏟물을 구경하다가
93쪽

처녀시집은 영원한 그리움이다 왜냐하면 너의 라이벌은 너 자신이었으니까
→ 첫걸음은 늘 그립다 왜냐하면 네 맞잡이는 너이니까
→ 첫노래는 내처 그립다 왜냐하면 너는 너랑 겨루니까
11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