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반바지, 치마바지



  가을에도 반바지를 입고 싶습니다. 더 이쁜 반바지를 지어서 입고 싶습니다. 아직 바지를 바느질로 짓지는 못하지만, 남들이 지은 멋진 바지를 가만히 살피면서 바느질을 헤아립니다. 아이들이 입다가 무릎이 터진 바지를 기우면서, 제가 열 해 남짓 입는 동안 어느새 엉덩이가 닳아서 구멍이 나는 바지를 덧대면서, 즐겁게 옷을 입는 살림을 헤아리다가, ‘치마반바지’가 있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그래, 치마반바지라면 사내도 입을 만하겠지? 한국에서는 치마를 입는 사내를 보기 어렵습니다만, 치마는 누구나 입을 만한 옷이라고 느껴요. 더욱이 바지하고 치마를 하나로 묶은 치마바지는 더없이 멋진 옷이로구나 싶어요. 멋스럽기도 하고 더 따뜻하기도 하달까요. 아버지가 치마반바지를 입고 지내는데 아이들은 딱히 쳐다보지 않습니다. 따로 묻지조차 않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사내는 이래야 하거나 가시내는 저래야 한다는 틀을 세우지 않아요. 곱다고 여기는 옷이면 누구나 입는 옷이라고 여깁니다. 아버지도 치마를 입고 어머니도 바지를 입어요. 마음에 안 드는 옷이라면 그냥 안 입으면 된다고 여깁니다. 사내라서 머리카락을 짧게 쳐야 한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가시내라서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려야 한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가시내인가 사내인가에 따라서 옷을 가르지 않고, 쓰임새에 맞추어 옷을 지어서 입을 노릇이요, 저마다 좋아하는 결을 살펴서 즐겁게 옷을 손질해서 입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2017.10.30.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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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를 누구한테 미루기



  요 열흘 사이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일을 합니다. 가을철이기에 가을걷이를 하느라 단내가 나지는 않아요. 아직 우리 논은 없거든요. 어느 지자체 공문서를 200꼭지 손질해 주는 일을 하면서 입에 단내가 납니다. 지자체 의회에서 공문서를 마련할 적에는 숱한 사람들이 꽤 긴 나날을 들여서 땀흘렸을 텐데, 이런 공문서 200꼭지를 혼자서 쉽게 손질해 주는 일을 하자니, 게다가 이를 한 달 만에 끝내도록 일을 하자니 단내가 안 날 수 없습니다. 이러다 보니 일하다가 틈틈이 쓰러져서 해롱거리다가 밤에 일어나서 밀린 설거지나 청소를 하기 일쑤인데요, 오늘 낮에는 밥을 맛나게 먹는 식구들 앞에서 “밥 맛있게 먹은 누가 설거지를 하면 참 좋겠네.” 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자, 이 말을 듣고서 누가 설거지를 하려나요? 곁님이? 큰아이가? 작은아이가? 틀림없이 마음이 착하면서 살뜰한 누가 설거지를 하겠지요?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니 때때로 일을 나눌 수 있어서 홀가분하면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2017.10.25.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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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한 모금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말은 모두 우리 어버이가 스스로한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얘야, 방을 좀 치워야 하지 않겠니?”는 어버이로서 세간을 얼마나 살뜰히 건사하느냐를 돌아보도록 스스로 하는 말이에요. “얘야, 동생한테 말을 곱게 하면 좋을 텐데?”는 어버이로서 문득 아이한테 안 고운 말을 한 적이 있지 않느냐고 되새기는 말이지요. 우리 집은 아이들이 아주 어릴 적부터 스스로 물을 따라서 마시도록 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한두 살 즈음이나 서너 살에는, 또 예닐곱 살이 되더라도 아이들은 곧잘 물을 쏟거나 흘릴 뿐 아니라, 때로는 물병이 손에서 미끄러지며 째쟁 소리를 내며 깨지기도 해요. 아이가 스스로 물을 따라서 마시도록 하는 데까지 얼마나 숱하게 걸레질을 하고 깨진 물잔이나 물병을 치워야 하는지 몰라요. 밥그릇에 붙은 밥알 하나가 흙지기 땀방울을 비롯한 숲내음이 오롯이 깃든 먹을거리라면, 물잔에 따르는 물 한 방울은 우리를 둘러싼 온 지구가 서린 마실거리가 되겠다고 느낍니다. 파란 하늘을 담은 물 한 잔을 파란 물병에 받아서 파란 물잔에 따릅니다. 아이가 물 한 모금 마시는 몸짓을 곁에서 물끄러미 지켜봅니다. 2017.10.19.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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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배운다



  우리는 날마다 배우면서 새롭게 삽니다. 저는 이 대목을 두 아이랑 함께 살아가며 늘 새삼스레 배웁니다. 두 아이가 아직 저한테 찾아오지 않던 무렵에는 이 대목을 어렴풋이 헤아리기만 했고, 곁님이 아직 저하고 보금자리를 짓지 않던 무렵에도 이 대목을 살짝 바라보기만 했어요. 오늘 큰아이 몸짓하고 모습을 오롯이 지켜보면서 아이들이란 언제나 “온몸으로 배운다”고 다시 배웁니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늘 “온몸으로 배운다”고 할 테고요. 큰아이는 서울에서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를 한참 잘 달리다가, 사이 쉼터에서 속을 게웠어요. 시외버스를 타기까지 이럭저럭 맑은 얼굴인가 싶었으나 속에 담은 응어리가 있었기에 이를 게움질로 드러냈더군요. 큰아이한테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큰아이는 서울에서 고속버스역으로 가려고 전철을 갈아타는 길에 그만 지갑을 떨어뜨렸어요. 큰아이는 손에 지갑을 들고 걸었거든요. 큰아이 곁에서 곁님이며 할머니이며 여러 사람이 지갑을 손에 들고 다니지 말고 가방에 넣으라 숱하게 말했어요. 그렇지만 큰아이는 이 말을 내내 흘렸지요. 큰아이는 칠칠하지 않은 몸짓이 아니었어요. 다만 어쩌다가 손에서 지갑을 떨어뜨렸는데, 큰아이가 제 손에서 지갑을 꼭 한 번 떨어뜨린 자리가 마침 전철을 탈 무렵이요, 전철을 탈 무렵에 아주 작은 틈에 지갑을 쏙 떨어뜨렸을 뿐입니다. …… 곁님은 집으로 돌아가서 지갑을 새로 짓자고 이야기합니다. 떨어뜨린 지갑에 아쉬움을 남기지 말자고,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마련하여 살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버지는 철없던 무렵 대단히 칠칠맞지 못해서 사진기랑 가방이랑 숱하게 잃어버리거나 도둑맞았다고 이야기합니다. ……  큰아이는 “어머니 아버지한테 돈 많이 모아서 주고 싶었는데.” 하면서 한참 울었어요. 시외버스역까지 닿는 동안 울음바다였어요. 큰아이는 일산이랑 서울을 거친 마실을 하는 동안 십만 원 가까이 돈을 모았답니다. 적잖은 돈이 있는 줄 아는 큰아이인 터라 아쉬움도 아픔도 클 수 있어요. 저는 큰아이한테 “네가 잃은 돈보다 열 곱이 넘는 돈을 곧 얻을 수 있어. 걱정을 잊어 보렴.” 하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우리한테는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리는 것이란 없다고, 우리 곁에 알뜰히 있다가 사라지거나 놓치는 모든 것은 잃거나 잊는 것이 아닌, 새로운 것으로 다시 태어나려고 하는 흐름일 뿐이라고 이야기해 보았어요. 그런데 이런 말 저런 이야기는 모두 아이한테 들려주는 말이나 이야기라기보다 바로 제가 저한테 들려주는 말이나 이야기이지 싶어요. 아이가 온몸으로 배우는 곁에서 어버이로서 꼭 배워서 새롭게 깨달을 대목이 있는 하루라고 느껴요. 사름벼리야, 네 가슴에는 한결같이 샘솟는 기쁨이라는 물줄기가 있단다. 이 물줄기는 네 눈물을 씻어 주고, 네 아쉬움을 달래 주면서, 네가 살아갈 앞길에 싱그러운 노랫결로 새로운 이야기를 속삭여 준단다. 가만히 눈을 감고 파란 하늘 같은 바람을 그리렴. 2017.10.16.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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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지를 파는 아침



  아이들 귀지를 팝니다. 두 아이 모두 “귀 파 주셔요” 하고 며칠 앞서부터 이야기했으나 그때에는 한창 부엌일이라든지 다른 일을 하던 때에 이야기한 터라, “그래, 이 일 끝내고.” 하고 대꾸했는데, 막상 그때에 다른 일을 끝내고서 저도 아이들도 잊었어요. 이러다가 사흘 동안 바깥마실을 다녀왔지요. 바깥마실을 다녀온 이튿날 아침에 큰아이가 “아버지, 귀 파 주셔요.” 하고 다시 말합니다. “그래, 귀 파야지.” 하고 대꾸합니다. 큰아이를 마루에 누이고 왼귀부터 팝니다. 작은아이는 큰아이가 귀지를 파낼 적에 곁에서 놀지만, 막상 작은아이더러 “우리 귀 파 볼까?” 하고 물으니 “아니.” 하고 대꾸합니다. 겨우 작은아이 오른귀는 팠으나 왼귀는 안 주겠답니다. 작은아이 오른귀에서 귀지가 얼마나 많이 나왔는가를 아이 눈으로 똑똑히 보았어도 왼귀를 안 내줍니다. “보라야, 네 말이 아닌 귀지 말을 하지 말자. 귀지가 귀 밖으로 나오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혀도 네가 귀지 말을 따라야 할 까닭이 없어. 우리가 밥을 먹고 이를 안 닦니?” “아니.” “우리가 신나게 놀고 몸을 안 씻니?” “아니.” “손낯도, 팔다리도, 몸도, 이도, 귀도, 늘 깨끗하게 가꿀 적에 즐겁고 몸이 가벼워. 네가 귀지를 안 파겠다면 네 뜻대로 해. 네 몸은 네 몸이지 아버지 몸이 아니야.” 오늘 낮이나 저녁 즈음에 작은아이가 오른귀도 마저 아버지한테 맡겨 줄까요? 기다려 보기로 합니다. 2017.9.15.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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