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한테 대통령 탄핵이란



  우리 집 두 아이는 ‘대통령’이라는 말을 모릅니다. 텔레비전을 들이지 않고 신문을 안 보는 터라, 우리 집 두 아이는 사회나 정치나 경제나 스포츠나 연예인을 하나도 모릅니다. 새로 태어나는 아기라든지 두서너 살 아이들은 대통령을 잘 모를 테고, 굳이 알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해요. 예전에는, 이를테면 제가 어릴 적이던 1970∼80년대에는 대통령 이름을 줄줄이 외워야 했어요. 학교에 대통령 사진이 교실 뒤쪽에 붙곤 했지요.


  이제 우리는 썩어서 문드러진 정치를 보여준 대통령을 탄핵이라는 이름으로 끌어내립니다. 이 같은 이야기를 시골 아이들이라든지 아직 퍽 어린 아이들한테 낱낱이 알려주기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이들한테 이야기라는 옷을 입혀서 새롭게 알려줄 수 있으리라 느껴요.


  아이들한테 조곤조곤 들려줄 글을 적어 봅니다. 어둠하고 빛을 알려주고, 어둠을 밝히는 작은 촛불을 알려주려고 합니다. 우리가 끌어내리려는 사람이 부디 거짓된 옷을 벗어던지고 고개 숙일 줄 알기를, 부끄러움을 깨달으면서 삶과 사랑을 처음으로 배울 수 있기를, 대통령은 권력이 아닌 줄을 알아차리기를 비는 마음으로 아이들한테 들려줄 글을 적어 봅니다.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올 분께서 부디 ‘서울 삼성동’이 아닌 ‘시골 조그마한 집’으로 살림을 옮기셔서 손수 텃밭을 짓고 하늘을 바라보며 흙내음과 풀내음을 느끼면서 조용히 이 삶을 되새겨 보실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이제 궁궐에서 벗어나 파란 하늘을 부끄러움 없이 맞이하면서 작은 ‘풀포기’를 살가이 마주하실 수 있기를 빌어요.



촛불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해

빛도 어둠을 이기지 못해


하늘을 보렴

해랑 달은, 또 해랑 별은

싸우거나 다투거나 겨루지 않아


해가 뜨며 날이 밝아

아침이며 낮이 곱지


달이랑 별이 뜨며 날이 져서

저녁이며 밤이 깊어


어둡기에 무섭지 않고

밝기에 안 무섭지 않아


어머니 품 어두운 곳에서

우리가 고운 사랑 얻고 태어났어

아버지 품 밝은 곳에서

우리가 너른 믿음 받으며 자라지


촛불 한 자루 켜서

어둠을 밝히듯이

사랑스러운 숨결을 받아

우리가 태어날 수 있어


아주 작은 촛불을 켜면서

어둠도 빛도 아닌

고요하며 즐거운 

새로운 보금자리 일군단다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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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 요정



  저녁에 고단하여 설거지를 못 마치고 드러누울 적이 있습니다. 이때마다 문득 생각하지요. 등허리를 펴고 나서 밤이나 새벽에 하자고. 이러다가 다시 생각해 봅니다. “우리 집에 설거지 요정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밀린 설거지를 깊은 밤이나 새벽에 마칠 즈음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내가 ‘우리 집 설거지 요정’이야!” 하고. 나는 다른 요정을 우리 집에 끌어들이기보다 내가 스스로 요정이 되기로 합니다. 2017.2.26.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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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끈



  요 며칠 사이 몸에서 우지끈 소리가 납니다. 갑자기 쏟아진 일을 해내느라 부산하면서도 집살림을 함께 거느린다는 생각에 몸이 좀 많이 벅찬 탓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저녁나절에 일찌감치 곯아떨어지고, 마치 죽은듯이 드러눕고는 새벽이 되어서야 비로소 우지끈우지끈하며 살아나서 주섬주섬 일손을 가다듬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신나게 잘 노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 아이들이 스스로 길어올리는 엄청난 기운을 새삼스레 헤아립니다. 아이들만 이렇게 엄청난 기운을 스스로 길어올릴 만할까요? 나도 아이들마냥 기운찬 어버이로 한 사람으로 신바람을 내 보자고, 아이들 곁에서 새로 배우는 길을 찾자고 생각해 봅니다. 2017.2.26.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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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사진



  아이들을 찍은 사진을 요 몇 해 사이에 거의 갈무리도 안 하며 지냅니다. 한동안 아이들 사진을 바지런히 종이로 뽑아서 일산하고 음성 두 곳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띄웠으나 요새는 이렇게 안 합니다. 다른 일이 많다고 여겨 사진을 찍기만 하고 그저 모셔 두기만 했어요. 이러다가 어제 하루 몰아서 지난 여덟 달치 사진을 한꺼번에 갈무리를 해 놓습니다. 종이로 뽑자니 벅차고, 이보다는 작은 사진책으로 꾸며 놓자는 마음으로 600장을 갈무리합니다. 따로 건사할 600장을 갈무리하려고 숱한 사진을 들여다보느라 하루가 꼬박 지나가더군요. 가만히 살피니 두 아이가 갓 태어날 무렵하고 대면 사진을 참 적게 찍는구나 싶기도 하고, 굳이 사진으로 안 남기는 사랑스럽고 살가운 살림도 꽤 많다고 깨닫습니다. 사진으로 담는 모습은 참말 얼마 안 되기 마련이에요. 눈부신 하루 가운데 1초쯤 사진으로 남을까요? 신나는 하루 가운데 아주 자그마한 조각이 사진으로 남는 셈일까요? 2017.2.23.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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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아버지가 서울에서 바깥일을 보고 사흘 만에 돌아오니, 두 아이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이것저것 했다고 참새처럼 노래합니다. 이 노랫소리를 들으며 기운을 차리고, 이 노랫소리를 헤아리며 잠자리에 들어요. 이 노랫소리를 그리며 새 아침을 열고, 이 노랫소리를 새롭게 지필 살림을 떠올리며 빨래부터 합니다.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글을 쓸 적에는 어떤 새로운 길을 걸으며 배우는가 하고 설렙니다. 나날이 자라는 아이들 곁에서 함께 가르치고 배우며 이끄는 살림에서는 가만히 지켜보고 기다리면서 새삼스레 깨닫는 이야기를 차곡차곡 담습니다. 함께 지필 수 있는 불씨이기에 기다릴 테지요. 함께 따뜻하게 쬘 불이기에 기다리면서 즐거울 테고요. 2017.2.19.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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