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간



  밥을 짓고 국을 끓이는데 간을 보기 어렵습니다. 몸이 매우 무겁고 오들오들 떨리기 때문입니다. 하룻밤 사이에 시외버스를 달려 바깥잠을 자면서 서울하고 수원에서 바깥일을 한다며 부산스레 다녀온 터라 몸에 새 기운이 아직 오르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밥짓기를 미룰 수 없으니 용을 써서 밥을 짓고 국을 끓이는데 혀에 닿는 맛을 하나도 못 느낍니다. 그동안 밥을 지으면서 간을 본 어림으로 겨우 국냄비 불을 끄고 부엌바닥에 폭 주저앉습니다. 개수대를 두 손으로 잡고 주저앉은 채 한참 끙끙거리다가 일어납니다. 이쁜 아이들아, 부디 맛나게 먹으렴. 틀림없이 간은 잘 맞았으리라 생각해. 이 무더위에는 조금 짜게 먹어도 괜찮을 테지. 땀 옴팡지게 흘리면서 뛰어놀고, 시원한 믈로 씻고, 낮잠도 자다가, 너희 그릇은 너희가 설거지를 하렴. 너희 아버지는 도무지 설거지까지 할 기운은 없네. 2017.7.22.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억지 부리지 않기



  나흘째 온 집안을 뒤엎는 큰청소를 하느라 두 어버이도 두 아이도 힘을 많이 쏟습니다. 저는 큰청소 닷새째가 되는 날 아침에 서울·수원에 바깥일이 있어서 일찍 집을 나서야 합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짐을 꾸리고 살림을 건사하고 청소를 하는데 마을 앞을 지나가는 버스를 타야 할 때가 다가옵니다. 바삐 움직이며 이것저것 하다가 우뚝 멈춥니다. 생각에 잠깁니다. ‘너무 서두르지 말자. 혼자 모든 일을 다 하려 들지 말자. 곁님하고 아이들도 하루나 이틀쯤 좀 어질러진 채 쉬거나 놀면서 보낼 수 있어. 나도 오늘 바깥일을 하러 집을 나서야 한대서 더 많이 힘을 쏟아서 뭔가 더 치우려고 하지 말자. 할 만큼 즐겁게 하자.’ 일손을 멈추고 몇 분쯤 생각에 잠기니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습니다. 쓰레기자루 두 묶음을 여밉니다. 가방을 들에 멥니다. 작은아이가 일찍 일어나서 부시시한 얼굴로 묻습니다. “아버지 어디 가?” “응, 서울에 일 보러 다녀올게. 곧 돌아와.” “나도 가고 싶긴 한데, 그러면 잘 다녀오셔요.” “고마워. 손낯 시원하게 씻고, 즐겁게 놀면서 오늘 하루 새롭게 배울 것들 기쁘게 배우셔요.” “네.” 2017.7.20.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들이를 가려고



  나들이를 가려고 짐을 꾸립니다. 두 아이는 스스로 갈아입을 옷하고 손천을 챙깁니다. 물병까지 알뜰히 챙기기도 하지만 깜빡 잊기도 합니다. 아버지도 곧잘 한두 가지를 깜빡 잊으니 아이들도 더러 한두 가지를 잊을 수 있어요. 아이들한테 빠뜨린 것이 있느냐고 묻고, 더 챙겨 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아무 말 없이 그냥 나서기도 합니다. 나중에 맞닥뜨려 보아야 배울 수 있으니까요. 한여름 뙤약볕을 쬐면서 바닷물을 안으려고 나들이를 갑니다. 2017.7.19.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겉절이 담그다가 씻기다가



  아침에 배추를 썰어서 절여 놓았습니다. 배추를 썰면서 쌀겨로 풀을 쑤었지요. 낮에 읍내 우체국을 다녀오고서 저녁을 차려 아이들을 먹인 뒤에는 큰아이부터 씻는데 작은아이는 아직 씻어 주어야 합니다. 한창 겉절이 양념을 하다가 부랴부랴 작은아이를 씻기고는 다시 겉절이 양념을 썰고 갈고 다집니다. 온 하루를 신나게 뛰어논 아이들은 먼저 꿈나라로 갑니다. 나는 절인 배추에 양념과 풀물을 붓고는 천천히 버무려서 겉절이를 마무리짓습니다. 마무리지은 겉절이는 김치통에 옮겨서 냉장고에 넣습니다. 설거지를 다 끝내고 시원하게 씻으니 뼈마디마다 욱신거리지만, 이튿날부터 새 김치를 함께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달게 꿈나라로 갑니다. 2017.7.14.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루 네 번 빨래



  무더운 여름날입니다. 아침 일찍 빨래를 했고, 낮에 빨래를 더 합니다. 아이들하고 마을 어귀 빨래터에 가서 물이끼를 걷어내는데, 두 아이는 한여름에 빨래터 물놀이를 하고 싶답니다. 그러마 하고 지켜봅니다. 옷을 몽땅 적시며 까르르 웃고 떠듭니다. 마을 할매는 회관에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시다가 우리 아이들이 함께 빨래터 치우기를 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수박을 썰어 가져다주십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빨래를 다시 합니다. 물놀이를 하며 적신 옷을 빨지요. 하루 내내 신나게 논 아이들은 저녁에도 지치지 않습니다. 달빛을 바라보며 마을 한 바퀴를 걷는데 작은아이는 내내 달립니다. 이리 앞서 달리고, 저리 돌아오며 달려요. 옴팡지게 땀을 흘리며 저녁놀이를 즐긴 작은아이를 씻기고서 작은아이 옷을 또 빨아요. 아이들을 재우기까지 하루 네 번 빨래를 한 셈이고 네 번 씻긴 셈이에요. 하루에 네 번 빨래를 하자니 어지럽습니다만 예전에는 하루에 네 번뿐 아니라 열 번이나 스무 번도 빨래를 했다는 대목이 떠오릅니다. 두 아이가 갓난쟁이일 적에 그랬어요. 큰아이는 천기저귀 하루 마흔다섯 장씩, 작은아이는 천기저귀 하루 서른 장씩 빨랫감을 주었어요. 이불은 사나흘에 한 번씩 빨래하도록 했지요. 포대기나 처네도 이레마다 빨래를 했고, 배냇저고리나 손천이나 참말로 어버이는 빨래돌이로 살아야 했습니다. 한동안 잊고 살던 ‘아침부터 저녁까지 빨래돌이 살림’을 이 한여름에 문득 맞닥뜨렸어요. 참말로 씩씩하게 무럭무럭 개구지게 잘 크네요. 2017.7.6.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