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170] 납작산

 


  충청북도 충주 무너미마을에 있는 이오덕학교로 찾아가는 길에, 금왕읍 옆을 지납니다. 벌판이던 곳에 아파트를 높직하게 올리느라 부산합니다. 이 시골 읍내에 이렇게 높다란 아파트를 지으면 누가 이곳에서 살까 궁금하지만, 이곳으로 와서 살려 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높직하고 커다랗게 많이 짓겠지요. 차를 얻어타고 아파트 공사터 옆을 지나가는데, 저를 태워 준 분이 “저기가 예전에는 납작산이래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멧자락이 하나 있었는데 높지 않고 납작하게 있대서 ‘납작산’이라 했다고 합니다. 이제 아파트숲으로 바뀔 저곳이 지난날에는 나즈막한 멧자락이었고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푸른 모습이었다고 떠올릴 만한 시골사람이 얼마나 될까 잘 모르겠습니다. 지도책에도 안 나오는 이름이니 가뭇없이 사라지겠지요. 땅이름 숲이름 사라진 곳이 여기뿐이겠습니까. 시골사람이 오랜 겨레말로 수수하게 붙인 땅이름 숲이름 마을이름 모두 신라와 고려와 조선과 일제강점기 거쳐 한자말 이름으로 바뀌었어요. 오늘날에는 영어 이름으로 바뀌지요. 4346.10.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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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69] 겹문·덧문

 


  기차역에는 없지만 전철역에는 있는 문이 있습니다. 기차역에도 때때로 사람들 복닥거리지만 전철역은 언제나 사람들 복닥거리는 터라,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다치지 않도록 하자면서 덧대어 붙인 문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영어로 ‘스크린도어’로 썼다고 하는데, 요즈음에는 ‘안전문’으로 고쳐서 쓰도록 한다고 합니다. 그래, 잘 고치려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안전(安全)’이라는 낱말은 써도 될 만한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안전하도록 이중으로 달아 놓은 문”이기에 ‘스크린도어·안전문’이라는 이름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답니다. 그런데, 영어로 쓰는 ‘스크린도어’에는 ‘안전’을 가리킬 만한 낱말이 없어요. 그저 ‘스크린’과 같이 붙인 문이라는 뜻이에요. 흔히 “안전에 주의(主意)하셔요” 하고도 말하는데, “안 다치게 잘 살피셔요”라는 뜻입니다. 곧, “안 다치도록 겹으로 달아 놓은 문”이 전철역에 있는 셈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겹으로 달아 놓은 문이 있으니, ‘겹문’입니다. 전철에 문이 있는데 다른 문을 하나 더 달았으면 ‘덧문’이기도 합니다. 겹문이나 덧문을 달 적에는 “안 다치게 하려는” 뜻입니다. 공공기관이나 공공장소에서 영어를 덜 쓰도록 하자는 뜻은 참 좋은데, 영어만 안 쓰도록 한대서 될 일이 아니에요. 쉬우면서 한겨레 넋과 삶을 아울러 헤아릴 만한 빛까지 짚기를 빕니다. 4346.10.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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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68] 사랑둥이

 


  텔레비전 있는 집에 나들이를 가서 텔레비전을 함께 보다가 “국민 사랑둥이”라는 말을 봅니다. ‘사랑둥이’라니, 무슨 말일까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다가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사랑을 받는 사람”을 가리키는 낱말이라고 나옵니다. 이야, 이런 말이 있었네 하고 놀라면서, 방송에서 이 고운 말 잘 살려서 쓰는구나 싶어 반갑습니다. 아직 아주 널리 쓰는 낱말은 아닌 듯하지만, ‘인기스타’나 ‘아이돌’ 같은 낱말과 달리, 낱말 모양새 그대로 사랑스럽고 따사롭습니다. ‘국민’이라는 낱말은 ‘일본 천황을 섬기는 나라 백성’이라는 뜻에서 일제강점기에 일본군국주의자가 퍼뜨린 한자말입니다. 이런 낱말을 방송에서 제대로 모르는 채 쓰는 모습이 못미덥지만, ‘사랑둥이’ 한 가지 예쁘게 살리는 대목을 사람들이 찬찬히 느껴 아름다이 아낄 수 있기를 빕니다. 4346.10.1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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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67] 이야기바람

 


  혼자서는 이야기를 하지 못합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있어야 나눌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혼자서 하는 말이란 혼잣말입니다. 말은 다른 사람이 없어도 읊을 수 있으나, 이야기를 하자면 다른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한자말 ‘대화’를 ‘마주이야기’로 풀어서 쓰는 분들이 있지만, ‘이야기’란 “마주보고 말을 나누는 일”인 만큼, 앞에 ‘마주’를 붙이면 겹말입니다. 다른 사람들 있는 자리라 하더라도, 마주보지 않고 혼자 하고픈 말만 한다면, 이때에도 혼잣말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생각을 기쁘게 나누고 싶기에 이야기를 합니다. ‘기쁜 이야기’나 ‘사랑 이야기’나 ‘고운 이야기’를 합니다.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보따리를 풀어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이야기꽃’이요 ‘이야기보따리’입니다. 바야흐로 ‘이야기잔치’가 되고, ‘이야기마당’이 벌어지며, ‘이야기밭’이 살갑습니다. 이야기는 너른 바다처럼 깊이 나눌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맑은 바람처럼 싱그럽게 나눌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푸른 숲처럼 푸르게 나눌 수 있습니다. ‘이야기바다’요, ‘이야기바람’이며, ‘이야기숲’입니다. 이야기가 자라 나무와 같기에 ‘이야기나무’입니다. 이야기가 노래처럼 흐르기에 ‘이야기노래’입니다. 이야기가 무지개와 같으 환하게 빛나 ‘이야기빛’입니다. 마음을 열면서 ‘이야기문’을 엽니다. 어깨동무를 하면서 ‘이야기나라’로 함께 날아갑니다. 4346.10.1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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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66] 꽃그릇

 


  “꽃을 심어 가꾸는 그릇”을 가리켜 ‘화분(花盆)’이라 합니다. 어릴 적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집에 ‘화분’을 무척 많이 놓으셨어요. 아주 어릴 적부터 화분에서 자라는 꽃을 보았어요. 그런데 나는 언제나 한 가지 궁금했어요. 꽃을 심어서 가꾸는데 왜 ‘꽃’이라는 말이 없는지 알쏭달쏭했어요. 국민학교 3학년에 한문을 처음 배우며 ‘화분’이 왜 화분인 줄 비로소 깨우쳤지만, 좀처럼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어요. 그러다 고등학생 되어 국어사전을 따로 한 권 장만해서 첫 낱말부터 끝 낱말까지 두 차례쯤 읽었는데, ‘화분’ 낱말풀이를 보고는 좀 어이없다고 느꼈어요. 아니, 꽃을 심어 가꾸는 그릇이라 한다면, 말 그대로 ‘꽃그릇’인걸요. 그 뒤로 서른 해 지난 요즈음, 우리 집 여섯 살 아이가 밥상에 공책을 펼치고 접시를 보고 그리는 놀이를 하다가 “꽃그릇! 꽃그릇!” 하고 외칩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고 들여다보니, 큰아이가 보고 그리는 접시에 꽃무늬가 있어요. 옳거니, 너는 그릇에 꽃이 새겨진 모습을 보고 ‘꽃그릇’이라 하는구나, 그래, 꽃을 심어도 꽃그릇이고 무늬나 그림으로 꽃을 새겨 넣어도 ‘꽃그릇’이네. 4346.10.1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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