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175] 시골돌이, 놀이순이

 


  ‘-아이’를 붙이는 낱말은 오늘날 맞춤법에서는 모두 띄어야 합니다. ‘시골 아이’나 ‘도시 아이’처럼 띄어야 맞습니다. 그러나 나는 굳이 띄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며 ‘시골아이·책아이·자전거아이·꿈아이·사랑아이’ 같은 이름을 하나하나 새롭게 붙입니다. 아이들 노는 모습 지켜보면서 ‘시골돌이·시골순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놀이순이·놀이돌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밭에서 호미 쥐고 놀면 ‘호미순이·밭돌이’가 됩니다. 아이들은 ‘책아이’가 되면서 ‘책순이·책돌이’도 됩니다. ‘자전거순이·자전거돌이’가 되다가는 ‘꿈순이·꿈돌이’가 되고 어느새 ‘밥순이·밥돌이’에 ‘이야기순이·이야기돌이’ 되는 아이들을 얼싸안으며 생각합니다. ‘돌이’와 ‘순이’라는 이름은 아주 먼먼 옛날부터 우리 겨레가 흙을 만지고 하늘을 마시면서 저절로 얻은 보드랍고 사랑스러운 이름이로구나 싶습니다. 돌돌돌 흐르는 냇물이고, 순순순 흐르는 바람입니다. 4346.11.1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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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74] 길손집

 


  길손은 길을 떠나 어디론가 가는 사람입니다. 때로는 걷고, 때로는 자동차를 얻어서 타며, 때로는 자전거를 달립니다. 길을 재촉하며 빨리 가려 할 수 있고, 느긋하게 마을을 휘 둘러보면서 천천히 갈 수 있습니다. 길을 가다 힘들면 다리를 쉬지요. 길을 가다 힘들지 않더라도 새로운 마을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며 여러 날 머물기도 합니다. 길손이 머무는 집은 ‘길손집’이 됩니다. 여인숙이나 모텔이나 게스트하우스 같은 데에서 머물 수 있는데, 어디에서 묵더라도 길손한테는 ‘길손집’이에요. 그렇다면, 길손이 먹는 밥이라면 ‘길손밥’이 될까요. 마실길에 즐겁게 부르는 노래가 있으면 ‘길손노래’ 될 만해요. 길가에 피고 지는 꽃은 길손을 반기며 ‘길손꽃’이 됩니다. 길손이 걷는 길에 흘리는 땀을 식히는 ‘길손바람’ 또는 ‘길바람’이 불어요. 4346.11.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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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73] 어린이 표

 


  시골 읍내에서 버스표를 끊으며 ‘어른 표’ 하나와 ‘어린이 표’ 하나, 이렇게 달라고 말합니다. 작은아이는 아직 세 살이고 큰아이는 아직 여섯 살이라 ‘어린이 표’를 따로 안 끊어도 되지만, 시외버스에 때때로 자리가 꽉 찰 날이 있기에 두 장을 끊습니다. 옆지기까지 네 식구 나들이를 하면 어른 표 둘하고 어린이 표 둘을 끊습니다. 버스표를 끊거나 기차표를 끊을 때 살피면 ‘어린이 표’라는 이름은 없습니다. ‘초등학생 표’만 있어요. 그러나 모든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지 않고 가야 하지 않아요. 모든 푸름이가 중·고등학교를 다녀야 하지 않아 ‘푸름이 표(청소년 표)’라는 이름을 써야 올바르듯, 아이들도 ‘어린이 표’라는 이름을 쓰고, 어른은 ‘어른 표’라는 이름을 써야 알맞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끊는 표도 ‘어른 표’ 아닌 ‘성인 표’예요. 우리들은 이 나라에서 언제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이름인 ‘어른·푸름이·어린이’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 4346.11.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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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72] 하얀김치

 


  꽃이 하얗게 핍니다. 하얀 꽃송이가 어여쁩니다. ‘하얀꽃’이며 ‘흰꽃’입니다. 밤하늘이 까맣습니다. 까만 빛 사이사이 반짝이는 별을 봅니다. 밤에 바라보는 별이기에 밤별이요, 밤하늘 빛은 까맣기에 ‘까만하늘’입니다. 마음을 다스립니다. 마음속이 하얗디하얗게 다스립니다. 하얗게 빛나는 마음이라면 티끌이나 먼지나 얼룩이 없는 마음빛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하얀마음’이 될 테지요. 이와 달리 하얗지 못한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까만마음’일까요. 너른 들판과 싱그러운 숲과 같은 마음이 되고 싶다면 ‘푸른마음’을 꿈꾼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깊은 바다와 넓은 하늘과 같은 마음이 되겠다고 하면 ‘파란마음’을 꿈꾼다고 할 만합니다. 고춧가루 듬뿍 넣어 빨갛게 물드는 ‘빨간김치’를 먹습니다. 소금으로만 절여 하얗게 맑은 ‘하얀김치’를 먹습니다. 겨를 살짝 벗겨 씨눈이 곱게 있는 ‘누런쌀’을 먹고, 씨눈까지 벗겨 누런 빛 사라지는 마알간 ‘흰쌀’을 먹습니다. 4346.1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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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71] 마을빛

 


  전남 고흥에 살면서 부산 보수동을 자주 드나듭니다. 올 2013년에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책잔치 열 돌을 맞이했고, 열 돌째 책잔치 기리는 이야기책 하나를 내놓았어요. 책을 엮으려고, 또 보수동 책방골목 책지기들 만나려고, 다달이 드나들면서, 고흥 시골빛과 부산 도시내음을 돌아봅니다. 고즈넉하며 따사로운 시골빛이 고흥에 있다면, 부산과 같은 큰도시에는 하루 내내 멈추지 않는 자동차물결과 높다란 건물들이 있어요. 새소리 아닌 차소리 넘치고, 풀과 나무 아닌 시멘트와 아스팔트 가득해요. 그렇지만, 이 도시 한복판에도 하루를 밝히고 빛내면서 삶을 사랑하려는 사람들 있습니다. 바쁘고 부산스레 볼일 보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넘치지만, 어느 누구라도 하늘바람 마시면서 목숨을 이어요. 지구별을 찬찬히 흐르는 하늘바람 마시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숨결 잇지 못해요. 풀노래 아닌 빵빵거리는 소리에 귀가 멍하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큰길에서는 이토록 시끄럽지만 안골목으로 깃들면 조용하며 아늑합니다. 크고작은 집들 다닥다닥 잇닿은 도시일 텐데, 이곳에서 저마다 아기자기한 이야기 일굽니다. 우리는 스스로 꿈 하나 품으며 살림을 꾸립니다. 내 보금자리에서, 우리 마을에서, 다 함께 어깨동무하는 이 지구별에서, 사랑노래 부르며 삶을 짓습니다. 마을마다 다 다른 마을빛으로 어우러집니다. 고을마다 새삼스레 어여쁜 고을빛으로 마주합니다. 4346.10.2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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