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문학의 재발견
김상욱 지음 / 창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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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인문책 2023.3.12.

인문책시렁 291


《어린이문학의 재발견》

 김상욱

 창비

 2006.11.15.



  《어린이문학의 재발견》(김상욱, 창비, 2006)은 ‘창비사단’이라 일컫는 무리가 드러내는 속마음인가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창비사단’은 우리나라 어린이책을 그들이 이끌거나 퍼뜨리거나 가르치거나 키운다고 하는 자랑이 꽤 드높습니다. 어른책이건 어린이책이건 ‘몇 자락을 팔았는가?’로만 바라본다면 ‘창비사단’이 읊는 목소리가 어느 만큼 들어맞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창비사단’에서 북돋우거나 추켜세우는 어린이책을 보면 종잡을 길이 없습니다. 그저 많이 팔리는 책이고, 그들 울타리에 깃든 글꾼이라면 다 좋기만 하다고 여기는 물결입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여미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문학 비평’이라고 하면 어린이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여미기 일쑤입니다. 어린이는 그저 어른이 내려보내는 책(문학)만 읽으면 되기 때문일까요? 어린이가 스스로 어린이책을 말할(비평할) 까닭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일까요?


  2020년대로 접어든 배움책(교과서)은 이제 배움책이 아니라 ‘웹툰 캐릭터 도감’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어린배움터 배움책에 ‘창비사단’을 비롯한 곳에서 우르르 엮고 펴내어 팔아치웁니다.


  배움터에 다니는 어린이는 이 어린이대로 배움책 아닌 ‘웹툰 캐릭터 도감’을 펼칩니다. 배움책 옆에 두는 어린이책은 ‘학습 보조도구’ 노릇을 하는 책이거나 심심풀이 노릇을 하거나 ‘머잖아 불수렁(입시지옥)에 쓰일 만한 인문책’을 조금 쉽게 풀어낸 책이기 일쑤입니다. 요즈음 어린이책은 ‘어린이 현실세계’를 그린다면서 ‘학교·학원·게임·다양성 존중·이주노동자·학교폭력·젠더갈등·이성친구……’라는 틀에 뻔하게 얽혀드는 줄거리에서 오락가락한다고 느낍니다. 꿈(상상력)을 그리는 어린이책이 요즈음 몇이나 있다고 여길 만할까요? 좋아함(연애)을 다루는 책은 수두룩하지만, ‘좋아함이 아닌’ ‘사랑’이 무엇인지 찬찬히 짚을 줄 아는 책은 있기는 있을까요?


  어린이 자리에 서지 않을 뿐더러, 어린이 곁에 없이 허울(대학교수·비평가·작가)만 쓰고 싶은 분들은 《어린이문학의 재발견》 같은 책을 쓰고 읽는다고 느낍니다. 어린이 자리에 서거나, 어린이 곁에 있다면, “숲한테서 얻은 종이로 아름책을 여미지 못하여 잘못했구나” 하고 먼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릴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참말로 ‘어른’이라면, 나이만 잡숫는 늙은이가 아닌, 어질고 슬기로워 이슬받이로 나아가는 ‘어른’이라면, 오늘날 온갖 자질구레한 쓰레기로 망가뜨린 어린이책 민낯부터 엎드려 빌고 눈물로 씻을 일이 아닐까요?


  오늘날에는 ‘일하는 아이들’에 앞서 ‘일하는 어른들’부터 잘 안 보입니다. 돈벌이를 해야 ‘일’이지 않습니다. ‘일’이란 우리말은 ‘일다’가 바탕입니다. 스스로 일으키면서 삶을 빛내는 몸짓이 ‘일’입니다. 집일을 할 줄 아는 어른이 요새 얼마나 있나요? 집일을 넘어 마을일·품앗이를 헤아리는 어른이 얼마나 있지요? 아이들한테서 소꿉놀이랑 빈터랑 숨쉴 풀밭을 빼앗은 수렁에 잠긴 ‘어른 아닌 늙은이’들이 온누리를 망가뜨리는 판에, 어린이책이 이러쿵저러쿵 비평을 해본들 참으로 덧없는 씨나락 까먹는 소리 같습니다.


ㅅㄴㄹ


특히 동화는 자본의 시대와 그런대로 잘 어울리는 문학 장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자본의 시대와 동화는 불화가 아닌 깊은 친연성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부추기는 기묘한 상생의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닌가? (16쪽)


그러나 상상력이란 ‘기발함’과 동일한 개념은 아니다. 판타지의 근간을 이루는 상상력이란 언제나 현실을 더욱 선명하게 투영해 보기 위한 장치이지, 현실에서부터 자유분방하게 멀어져도 좋은 착상의 기발함이 아닌 것이다. (76쪽)


고통 자체를 형상화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던 역사적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현실을 다루었다는 것만으로 높이 평가받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134쪽)


이 동시는 하나로 결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의 질서로부터 아이들의 삶이 변모되는 놀라운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모든 것들이 하나로 원환을 이룬 채, 아름다운 한 세상의 풍경을 그려 보이고 있다. 이 동시 한 편으로 이원수의 동시는 깊은 사색과 성찰을 어떻게 동시 속에서 풀어놓을 수 있는지 그 전범을 제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근대 이후 어떤 동시로 달성하지 못한 정교함과 풍부함, 깊이와 폭을 한꺼번에 입증하고 있다. (296쪽)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재의 아이들에게는 더이상 ‘일하는 아이들’이라는 구체적인 노동이 없다. 어렵게 발견한 것은 다만 이오덕의 길일 뿐, 그의 뒤켠에 남겨진 우리의 길일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새로운 아이들을 발견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 새로움은 갑자기 솟구쳐나오지도, 떨어져내리지도 않는다. 지금껏 힘겹게 이어온 길을 벗어날 수 없다. (34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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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셋 키우는 남자
권귀헌 지음 / 리오북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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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노래 책읽기 2023.3.1.

인문책시렁 289


《아이 셋 키우는 남자》

 권귀헌

 리오북스

 2017.1.24.



  《아이 셋 키우는 남자》(권귀헌, 리오북스, 2017)를 읽었으나 마음에 와닿은 대목은 없이 ‘잘나가던 사람으로서 돈도 이름도 버리고 아이를 돌보는 멋진 아버지’로 살아가려 한다는 자랑만 자꾸 느꼈습니다. 비가 오는 날 아이가 비에 안 젖도록 쇳덩이(자동차)를 몰아서 마중을 갔다는데, 그때 아이가 들려준 말을 듣고는 “아이가 느긋이 비랑 놀 틈을 빼앗아서 잘못했다”고 뉘우칠 줄 모르는 채 “아이가 많이 컸다(246쪽)”고 생각했다니 참으로 아찔하기까지 합니다.


  글쓴이는 틀림없이 ‘좋은 뜻’으로 “우리 부부는 인사상의 불이익과 재산상의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한지붕에서 사는 것을 선택했습니다(27쪽)” 하고 밝히지만 더없이 거북하기만 합니다. 높은자리(승진)하고 돈(재산)보다는 아이를 바라보았다는 줄거리인 듯싶지만, ‘아이랑 뛰놀며 어버이란 자리를 새롭게 배우는 길’이 아닌 ‘이름과 돈이 아닌 아이’라고 말해야 하나 아리송해요.


  아이를 바라보려고 아이 곁에 있으니 어버이란 이름입니다. 아이를 낳기에 어버이가 아닙니다. ‘보고·돌보고·돌아보고·바라보고·보살피고’를 비로소 할 줄 아는 마음하고 몸짓을 추스르기에 조금씩 철이 들면서 어버이·어른으로 섭니다.


  뜻(대의명분)만 세우려 하면 겉치레로 그칩니다. 짝꿍이 숱한 집안일을 혼자 해낸 줄 뒤늦게 느끼면서 ‘놀랐다’고 밝히기에 참으로 놀랄 뿐입니다. 곁님에 앞서 어머니랑 할머니가 먼 옛날부터 다 하던 집안일이요, 지난날에는 몽땅 손으로 했습니다. ‘아이키우기를 했다’고 밝히고 싶다면, 아기수레(유모차)가 아닌 처네나 포대기로 아기를 안거나 업으면서 저잣마실을 다닐 노릇이고, 종이기저귀 아닌 천기저귀로 손빨래를 할 노릇이고, 늘 자장노래를 불러 주고, 같이 춤추고, 같이 뛰고 달리고 풀꽃나무 곁에서 나비춤을 보고 풀벌레노래에 귀를 기울이는 하루를 보내기를 바라요. 이런 하루를 안 보내고서 ‘아이키우기’를 했다고 말하는 이들은 한낱 겉치레에 눈가림일 뿐입니다.


ㅅㄴㄹ


나름 화려했던 경력을 뒤로하고 하루 종일 집구석에 앉아 있으니 대한민국의 수많은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5쪽)


가끔씩 아내가 이런 일들을 혼자서 해냈다는 생각이 들면 놀랄 때가 많습니다. (23쪽)


우리 부부는 인사상의 불이익과 재산상의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한지붕에서 사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27쪽)


아들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어떤 아빠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분명하게 규정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37쪽)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공부만 했지 세상을 배울 기회가 없었잖아요. (67쪽)


아들이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아빠랑 오니까 편하고 좋긴 한데 친구하고 떠들고 나뭇가지 줍기 하면서 걷는 게 더 재밌어. 다른 애들도 그냥 우산 쓰고 와.” 순간 섭섭함보다는 아이가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24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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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한강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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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12.17.

인문책시렁 271


《채식주의자》

 한강

 창비

 2007.10.30.



  《채식주의자》(한강, 창비, 2007)를 읽고서 몇 가지를 느꼈습니다. 첫째, ‘글쓰는 순이(여성)’가 돌이(남성) 마음을 섣불리 옮기려 하는구나 싶더군요. 예전부터 ‘글쓰는 돌이’도 순이가 어떤 마음인지 제대로 모르는 채 함부로 쓰는 버릇은 매한가지입니다. 그동안 숱한 글꽃(문학)이 ‘순이를 모르는 돌이 눈높이’로 휘갈겼다면, 거꾸로 ‘돌이를 모르는 순이 눈길’로 똑같이 휘갈긴다면, 그저 갈라치기나 싸움만 이룹니다.


  둘째, 영어를 한글로 옮긴 글인지, 영어로 옮기기 좋게 쓴 한글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글결은 우리말씨가 아닌 옮김말씨(번역체)입니다. 한글로 적는다고 해서 다 ‘우리글꽃(한국문학)’이라고 아우를 수 있을는지 아리송합니다. 2000년 무렵까지 웬만한 우리글꽃은 ‘무늬만 한글’이 아닌 ‘속살로 우리말’이라는 얼개를 다스리면서 글빛을 밝혔다면, 2000년을 넘어선 뒤부터는 ‘무늬도 한글 같지 않’은데다가 ‘속살마저 일본말씨에 옮김말씨가 범벅인 글멋을 부리는 길’로 확 기울었습니다.


  셋째, 풀밥이건 고기밥이건 맛없게 지으면 맛없고, 맛있게 지으면 맛있습니다. 풀밥차림이 맛없어야 할 까닭이 없고, 맛없지 않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를 가볍게 비아냥대거나 나무라면서, 또 ‘채식주의’인 사람들까지 슬며시 비웃거나 타이르면서 ‘순이돌이하고 얽힌 서울살이 쇠사슬’을 옮기는 듯한 줄거리이기는 한데, 언제까지 ‘막장 연속극’ 같은 판을 깔아야 할까 아리송합니다. 2007년 아닌 2017년에도 ‘집안일 안 하는 돌이’가 많습니다만, 2007년뿐 아니라 1997년에도 ‘집안일을 하고 바깥일을 끊은 돌이’가 꽤 있었습니다. 글꽃(문학)은 우리 어떤 살림자리를 옮겨서 앞으로 어떤 살림꽃으로 피우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을 노릇일까요? 글꽃이란 무엇일까요?


  사람들 스스로 차츰 바꾸어 나가는 터전입니다. 다만, 사람들 스스로 바꾸어 나가더라도 끝까지 안 바꾸려고 버티는 무리가 있어요. 글꽃은 ‘끝까지 안 바꾸려고 버티는 무리’를 쳐다보면서 그런 줄거리를 담는 삶일까요? 아니면, 글꽃은 먼저 스스럼없이 나서면서 바꾸어 나가는 삶하고 어깨동무하는 길일까요?


  끝까지 안 바꾸는 사람을 나무라기란 ‘매우 쉽’습니다. 이슬받이처럼 첫길을 열기란 ‘매우 어렵’겠지요. 우리글꽃은 매우 쉬운 길만 풀어놓으면 그냥그냥 읽히고 팔리는 판인가요? 우리글꽃은 첫길을 이슬빛으로 나아갈 만한 새글일 수는 없을까요?


  온누리를 아름답게 바꾸려면, 남이 아닌 나부터 아름답게 말·넋·삶을 바꿀 노릇입니다. 나라지기를 거꾸러뜨리거나 둘레(사회)만 바꾸더라도 나부터 안 바뀌었으면 늘 도루묵입니다. 나부터 바꾸어 나가기에 나라나 둘레가 어수선하더라도 우리 스스로 한 줄기 들풀로 돋아서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면서 천천히 바꾸어 냅니다.


ㅅㄴㄹ


그런데 이제 아내가 차려놓은 식탁은 무슨 꼴인가. 비스듬히 의자에 앉은 아내는 한눈에도 맛없어 보이는 미역국을 입에 떠넣고 있었다. 밥과 된장을 상추에 싸서 볼이 불룩하게 넣고 씹었다. (22쪽)


“뭐가 문제야?” “피곤해.” “그러니 고기를 먹으라고. 고기를 안 먹으니 힘이 없지. 전에는 이러지 않았잖아.” “사실은.” “뭐?” “…… 냄새가 나서 그래.” “냄새?” “고기냄새. 당신 몸에서 고기냄새가 나.” 나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못 봤어? 나 샤워했어. 어디서 냄새가 난다는 거야?” 그녀의 대답은 진지했다. “…… 땀구멍 하나하나에서.” (24쪽)


다음 음식은 깐풍기였고, 그다음 음식은 참치회였다. 모두가 먹는 동안 아내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작은 도토리알 같은 유두를 블라우스 속에서 뚜렷이 내민 채, 거기 모인 사람들의 입술과 그 움직임을 샅샅이, 빨아들이듯 지켜보았다. (33쪽)


처형이 달려들어 장인의 허리를 안았으나, 아내의 입이 벌어진 순간 장인은 탕수육을 쑤셔넣었다. 처남이 그 서슬에 팔의 힘을 빼자, 으르렁거리며 아내가 탕수육을 뱉어냈다. 짐승 같은 비명이 그녀의 입에서 터졌다. “…… 비켜!” (5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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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미움들 - 김사월 산문집
김사월 지음 / 놀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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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11.22.
인문책시렁 255


《사랑하는 미움들》
 김사월
 놀
 2019.11.13.


  《사랑하는 미움들》(김사월, 놀, 2019)을 읽었습니다. 저는 ‘우리말로 나온 노래’를 이제 안 듣습니다. 두 아이를 낳고 돌보면서 헤아리니, 어린이한테 들려줄 ‘우리말로 나온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즐거울 뿐 아니라, 우리말결을 살린 노래’는 아예 없다시피 하더군요. 그래도 아이들한테 노래를 들려주어야겠기에, 어릴 적부터 듣거나 익힌 여러 노래를 가락만 살리고 노랫말은 몽땅 뜯어고쳐서 두 아이가 열한 살에 이르기까지 날마다 내내 불러 주면서 같이 춤추었어요.

  흔히 우리나라 ‘여느노래(대중가요)’를 ‘사랑타령’이라고 일컫지만, 제가 느끼기로는 ‘사랑’이 아니에요. ‘짝짓기타령’이라 일컬어야 알맞다고 느껴요. 어린노래(동요)는 뜬구름 같은 노랫말이 너무 많습니다.

  노래를 부르다가 책을 쓴 분은 서울이라는 고장에서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는지 차근차근 밝힙니다. 어느 모로 보면 꾸밈없다(솔직)고 할 테지만, 가만히 보면 외려 ‘꾸밈티’가 물씬 흐릅니다. 우리 집 곁님이나 큰아이는 꽃가루(화장품)를 아예 안 바를 뿐 아니라, 할머니나 이모한테 제발 몸을 죽이는 꽃가루(화장품) 좀 내다버리라고 얘기합니다. 정 바르고 싶다면 풀꽃나무한테서 바로 꽃가루를 얻어서 쓰라고 얘기하지요.

  전남 고흥 시골 읍내조차 ‘순천 나이트클럽’ 알림종이가 곳곳에 붙습니다. ‘서울에서 이름난, 잘빠지고(?) 예쁜 아가씨’를 알림종이에 크게 새기고는, ‘여성은 무료 또는 5천 원이나 1만 원만 내면 된다’고 잔글씨로 보태더군요. ‘클럽’도 ‘나이트’도 제발로 간 적이 없는 저로서는 그곳에서 누가 뭘 어찌하는지 하나도 모릅니다. 부비부비는 사랑이 아닌 짝짓기인데, 푸르게 마음을 다독이면서 사랑으로 만나려는 짝짓기가 아니라면, 서로 살섞기로 그칠 텐데, 살섞기를 할 짝꿍을 바꾸거나 갈아치우는 하루라면, 스스로 너무 괴롭히면서 갉아먹지 않을까요?

  풀밥(채식·비건)을 먹는 살림도 목숨을 먹습니다. 나물이나 과일도 목숨입니다. 나물이나 과일을 칼로 썰면서 똑같이 “목숨을 죽이는 짓”인 줄 느끼지 않고, 소 돼지 닭한테만 “목숨을 죽여 잘못했다”고 느낀다면, 참으로 두동진 틀이라고 느껴요. 풀꽃나무 목숨을 죽이면서 “나를 살린다(구원한다)”고 말할 적에 풀꽃나무한테 부끄럽지 않을까요? 풀꽃나무는 안 불쌍할까요?

  다시 말하자면, 모든 밥살림이란 이웃 숨결을 우리 몸에 받아들이는 길입니다. 가게에서 주전부리(과자)를 사다가 먹든, ㅍ이나 ㄸ에서 빵을 사다가 먹든, 풀밥이나 고기밥을 먹든, 우리 곁에 있는 모든 숨결한테 사랑을 바라는 마음을 펼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도 함부로 걷어차면 돌멩이가 “아얏!” 하고 소리칩니다. 돌멩이 목소리를 듣기를 바라요. 페트병에 담긴 물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쏟거나 버리면 이 물방울이 “슬퍼!” 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물 한 방울에도 사람하고 똑같이 숨결이 흐릅니다.

  노래를 부르는 글님은 “꾸미지 않고”란 말을 책에 곧잘 쓰는데, 도리어 “난 이렇게 꾸미는걸?” 하고 어깨를 으쓱이는 듯합니다.

ㅅㄴㄹ

밤에 친구와 소주를 마시다가 별안간 클럽에 가기로 했다. 둘 다 꾸미지 않은 상태였다. “우리 집에 들러서 꾸미고 가자.” … 상대가 나를 욕망한다는 사실을 즐기다가 계속되는 스킨십에 기분이 불쾌해지면 그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춤을 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오늘 밤 클럽 안에 있는 놈들이 모두 쓰레기 같은 이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25, 26쪽)

비건을 지향하는 삶이 섭식에 대한 강박과 공포에서 완전히 나를 구하지는 못하지만, 비인간 동물에게 죄를 짓지 않고 나의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음식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 스스로를 구원하고 싶었던 나의 마음이 다른 누군가를 죽이지 않는 선택으로 해소가 된 걸지도 모른다. (39쪽)

꾸미지 않고 공연을 하는 경험은 특이했다. 리허설이 끝나고 본 공연이 시작되기 전, 평소 같으면 외모를 꾸미고 있을 시간에 마땅히 할 것이 없어서 대기실 소파에 그냥 누워 있었다. 그러나 무대에 오르기 10분 전, 피부 화장과 입술 색깔을 확인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던 시간이 되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45쪽)

종로구에만 오면 마음이 고즈넉해지고 아련해지며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서울이 내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면 당신은 종로구 인간이다. (95쪽)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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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카인드 womankind Vol.14 : 혼자 있는 시간 우먼카인드 womankind 14
우먼카인드 편집부 엮음 / 바다출판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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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숲노래 책읽기 2022.11.6.

인문책시렁 245


《womankind vol 14》

 나희영 엮음

 바다출판사

 2021.2.5.



  《womankind vol 14》(나희영 엮음, 바다출판사, 2021). 이 책을 뭐라 읽어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줄거리로나 엮은이 눈길로 보거나 ‘페미니즘’ 책인 듯싶은데, 읽다가 턱턱 막혔으나 어쨌든 끝까지 읽기는 했습니다.


  호주 또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나온 책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몇 꼭지를 우리나라 나름대로 새로 넣는구나 싶은데, 이 책에서는 한글을 찾아보기도 어렵습니다. 아니, 겉보기로는 한글입니다. 그러나 우리말인지 아닌지 모르겠어요. “무늬만 한글”이라 하더라도 “우리말은 아니”기 일쑤이거든요.


  저는 ‘언택트’도 ‘코로나블루’도 모르겠고, ‘록다운’도 모르겠습니다. 시골에서 이런 말을 쓸 일도 없고, 아이들하고 이런 말을 쓸 까닭조차 없습니다. “웅크림의 시간”이 뭔지 모르겠고,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글밭을 모르는 분이 많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2000년에 접어들 무렵까지 ‘한자말을 한자로 안 쓰면 글이 아니라’고 여긴 꼰대가 수두룩했습니다. 〈조선일보〉 하나만큼은 이름에 한자를 그냥 쓰지만, 글을 보면 꽤 쉽게 쓰려고 애씁니다. 이와 달리 〈한겨레〉는 무늬만 한글 이름이면서 글이 꽤나 어렵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아예 영어를 쓰지요.


  2020년 눈길이 아닌 2100년이나 2050년 눈길로 보면 《womankind vol ○○》는 ‘새로운 영어 꼰대’일까요, 아니면 먹물바치 글자랑일까요? 2000∼1945년은 “무늬조차 한글이 아닌 중국·일본 한자말을 자랑하던 글판”이었습니다. 1945∼1910년은 “일본글하고 한자를 섞으며 자랑하던 글판”이었습니다. 1910∼1392년은 “중국글하고 한문만 쓰며 자랑하던 글판”이었습니다. 이 틈바구니 어디에도 ‘우리말과 한글을 누구나 즐거이 널리 쓰던 때’는 없습니다.


  세종 임금은 ‘훈민정음’을 여미었고, 독립운동을 하던 주시경 님이 ‘한글’이란 이름을 지었으나, 두 이름을 옳게 갈라서 쓰는 사람이 대단히 적습니다. 입으로 소리를 내는 ‘말·우리말’이고, 손으로 옮겨적어 눈으로 읽는 ‘글·한글’인데, 이 둘을 똑똑히 헤아리는 사람이 매우 적어요.


  페미니즘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습니다. 그저 ‘-니즘(주의)’입니다. 어느 곳에서나 누구나 목소리를 내면서 이 별을 아름답게 사랑으로 가꾸는 길을 밝히고, 어깨동무를 하거나 손을 맞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해바람비는 왼날개한테만 찾아들지 않고, 또 오른날개한테만 스며들지 않아요. 풀꽃나무는 왼오른을 안 가릅니다. 열매는 왼오른 누구한테나 달콤합니다.


  우리가 지을 길이 ‘참사랑’이라면, 외곬로 치닫는 목소리는 이제 내려놓기를 바랍니다. 《womankind vol 14》을 보면 김소연 씨는 “남자들은 나이를 먹어도 계속 문인으로 커나가고 고위 공직에 오르기도 하잖아요. 여기도 유리천장이 있는 거예요.” 하고 말합니다만, 터무니없습니다. 저도 돌이(남자)입니다만, “계속 문인으로 커나가고 고위 공직에 오르는 놈”은 알랑거리는 분들입니다. 순이(여자)도 ‘알랑거리’면 얼마든지 ‘문단 어른’으로 섬김질을 받으면서 웃질을 일삼습니다. 알랑거리지 않고 조용히 글밭을 일구는 사람은 섬김질을 못 받고 웃질을 안 하며 ‘고위 공직’ 따위는 안 쳐다봅니다.


  글을 “문단 안팎에서 충분히 인정받”으려고 쓰나요? ‘나이든 여성 시인이 생활고’에 시달린다고 합니다만, 알랑질을 안 하는 ‘나이든 모든 남녀 시인’이 똑같이 가난할 뿐입니다. 순이돌이(남녀)를 갈라치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알랑질을 안 하고 시골에서 글빛을 가꾸는 사람을 누가 알아주는지요? 글판조차 온통 ‘서울바라기(in Seoul)’입니다. ‘서울바라기’라는 고약한 틀을 허물어야 ‘밝게(형형하게)’ 글을 쓰는 참한 순이돌이 누구나 글빛을 밝힙니다. “글 좀 썼다고 문단 원로로 추앙받아야 하는 썩은 틀”이 아닌, 스스로 삶을 숲빛으로 지으면서 사랑으로 나아가는 작은사람 누구나 오순도순 지낼 길을 그려야 ‘페미니즘다운 페미니즘’이지 않을까요? 우리말도 한글도 쓰지 않는 페미니즘은 누구한테 이바지하려는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ㅅㄴㄹ


언택트가 새로운 일상이 되면서 자신의 몸과 감정을 잘 추스르는 게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블루는 작년 한 해를 설명하는 단어 중 하나였죠 … 혼자 있는 시간은 다른 형태의 연결을 향해 열린 웅크림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이 인터뷰를 읽는 분들께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 (Editor's letter/4, 5쪽)


언니 시인들과 친하게 지냈거든요. 그런데 이분들이 할머니 나이가 되어 아직도 시를 형형하게 잘 쓰시는데도 문단 안팎에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 있어요. 심각한 생활고가 기다리기도 하고요. 남자들은 나이를 먹어도 계속 문인으로 커나가고 고위 공직에 오르기도 하잖아요. 여기도 유리천장이 있는 거예요. (김소연 인터뷰/44쪽)


전 세계적인 록다운이 시행되고 6개월이 지나자 공공생활은 사실상 해체되었다. 여럿이 모여 정치 토론을 하거나 집회를 열 공간이 사라졌다. (7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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